아이스크림 :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띵 시리즈 20
하현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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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 작가의 [아이스크림: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20번째 책이다. 체리쥬빌레, 거북알, 메로나, 바밤바, 깐도리, 트위스트 트리트, 아이스팜 자두바, 투게더, 빵빠레, 더위사냥, 엑설런트, 맥도날드 소프트콘, 하겐다즈, 키위아작, 빠삐코 딸기, 구구콘, 뽕따, 수박바 등 챕터 마다 열거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떠올리게 만드는 마치 마력을 가진 글을 만난 기분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띵 시리즈 전권 중에 가장 재미있었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으며 반전으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열거된 아이스크림 중에 안 먹어본 게 몇 개 안되는 걸 보니 나 또한 어릴 때는 꽤나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일까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세계에서 신인이 나와서 히트를 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위의 많은 아이스크림을 내가 어릴때도 먹었었는데 지금도 잘 팔리는 품목이라니 정말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길고 기존의 기성세대 같은 아이스크림의 위엄은 아무나 높아서 쉽게 무너지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아는 이탈리어어 중의 하나가 젤라또가 아닐까 싶다. 아이스크림의 시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 만큼이나 젤라또에 대한 자부심이 꽤나 크다. 대부분 수제 젤라또를 만들어 팔기 때문에 가게 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고 수분의 양도 차이가 나서 쫀쫀한 젤라또를 주로 파는 가게와 수분이 좀 더 많은 젤라또를 파는 가게 혹은 사베트처럼 얼음 알갱이가 느껴지는 젤라또를 파는 가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번 마트 냉동고에 있는 아이스크림, 하드만 먹다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수제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다. 신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너무나 다양한 맛과 열대 과일들의 과육이 씹히는 맛이며 찐득한 초콜렛을 먹는 것 같은 맛은 1일 1젤라또를 외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미 우리나라에 베스킨라빈스가 상륙하여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데도 어느 정도 돈을 써야 한다는 것에 익숙해졌기에 없는 살림에도 젤라또는 꽤나 꾸준히 먹고 다녔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서 맛 본 것들이기에 저자의 글에 나온 향수와 추억은 그렇게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열거한 아이스크림을 거의 다 나도 어릴때 먹어봤기에 갑자기 그 아이스크림이 생각나서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젤라또에 비하면 거의 5분의 1가격인 하드 하나를 나누며 즐거워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나 거북알에 대한 내용은 진짜 너무 공감되서 거북알의 주둥이를 떼어내기 전에는 심호흡을 하며 멈추면 안된다는 국률을 떠올리 게 만든다. 소개된 하드 중에 아이스팜 자두바를 못 먹어봤는데, 역사가 길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자두맛이라는 레어템이라서 그런건지 나도 요즘 우후죽순 생기는 아이스크림 할인 판매점에 들어가서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어른이 되면 입맛이 변하기도 하고 건강을 생각해서 어릴때 즐겨먹던 간식과 주전부리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 요즘처럼 더운 날이라 해도 점심 식후에 슈트를 입은 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아니라 뽕따를 입에 물고 회사로 복귀하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뽕따가 값도 싸고 더 시원할텐데 말이다. 건강 걱정하지 않고 무턱대고 좋아하는 걸 마구마구 먹을 수 있던 때가 그립다. 시간이 갈수록 이건 이래서 먹으면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좋을텐데 라는 입맛 떨어지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진짜 꼰대가 되어간다는 증거일까? 이런 저런 이유가 먹지 않고 못 먹는 상황이 생겨나지만 이 책 덕분에 유년 시절을 추억하며 한바탕 웃고 아직도 내 안에 동심이 남아있기를 바라게 된다. 조만간 아이스크림 털러 가야지. 


“한 사람의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에 나는 관심이 많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제일 먼저 그의 취향이 궁금해진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작가가 있는지, 역 근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골목 깊숙한 곡의 작은 개인 카페 중 어느 쪽이 더 편한지. 살아온 시대와 지역,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 잊지 못할 추억, 용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취향에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때로는 열 마디 말보다 하나의 취향이 그 사람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준다.(43-44)”


“나는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 마음은 아마도 의심일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 내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대한 의심, 내가 이룬 성과에 대한 의심, 나의 노력과 의지에 대한 의심, 다음 기회에 대한 의심… 의심에는 끝이 없어서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다른 것들도 줄줄이 무너진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재빨리 손을 떼도 이미 늦었다. 그래서 가만히 지켜본다. 다 무너질 때까지. 더 좋은 방법도 있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143)”


“누군가의 최선을 기억하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모두가 돌아서도 끝까지 응원할 용기를 주니까. 가능성은 숨은그림찾기의 아주 작고 희미한 그림 같아서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존재를 자꾸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가장 멋진 모습을 발견하면 그 장면이 흐릿해지기 전에 마음속 깊이 새겨놓는다. 그게 나 자신일 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때도. 형편없이 눅눅해질 미래의 어떤 날에도 우리의 최선은 거기 남아 변함없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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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숲의 아이들
손보미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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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사라진 숲의 아이들]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탐정, 형사 추리물과 같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난폭함, 긴장감, 잔인함 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일반적이지 않은 기괴한 패턴을 가진 행동들이 가진 의미를 묘사한 부분들이 극의 긴장감을 가속시켰다. 또한 베트남 전쟁 때에 월남으로 파병갔던 군인들만이 아니라 파월노동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노동자와 군인으로 목숨을 건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자 당시 그들을 월남으로 보냈던 회사에 불을 지르고 저항하다 주동자들이 구속된 일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분명 뉴스와 신문 기사에 오르내리며 주목을 받았겠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얼마든지 언론은 조작될 수 있었고 상당수의 시민들은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결국은 그렇게 억울함을 폭력으로 표현한 이들은 불운한 삶을 보내게 되었고 소설 속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들 중 보상을 받은 이들은 아무도 없으며, 불을 지른 이들을 감옥에 보낸 회사는 그 주변의 땅을 야금야금 사들이고 그곳에서 살던 이들을 내쫓아 서울의 랜드마크라는 건물까지 올리게 되었다. 소설 속의 표현처럼 그렇게 올린 건물에서 문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벌이며 즐기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아서 그런지 읽는 내내 어디선가 그런 억울함을 안고 한 평생 남을 원망하거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가족들에게 화풀이와 폭력을 행사하며 스러져간 이들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떠올려본다. 소설의 주인공 채유형과 진경언 형사와의 만남은 마치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 그러한 선택 말고도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사랑은 자기들을 망가뜨린 이들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사랑일 거라고도 말해주는 것 같다. 사회부적응자인 채유형은 지방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붙지 못했으며그 이후에 들어간 어느 회사에서도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마지막은 항상 해서는 안될 말까지 내뱉으며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외톨이처럼 지내왔다. 하지만 유형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회적으로도 유명한 성공한 이들이었고 이들은 유형을 채근하지도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에게 그렇게 거리감을 갖고 대하는 이유가 자신이 입양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6살 때 입양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고등학생 무렵 3년 동안 이어진 의문의 우편물은 유형의 친부가 파월 군이이었고 그가 어느 건물에 불을 질러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었다. 


어쩌면 유형이 자신을 학대하며 벌을 주기 시작한 것은 이렇게 간과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자의 피가 흐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유형에게 어느날 학교 후배라는 윤종에게 연락이 오고 외주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의 피디로 입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유형은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의 만드는 팀에 들어가게 되고 최피디를 만나게 된다. 회사의 젊은 사장이 부임하면서 최피디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종용당하고 유형은 최피디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윤종과 함께 살인죄로 재판을 앞둔 10대 학생 심효전을 만나게 된다. 소설의 제목인 [사라진 숲의 아이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심효전은 동갑인 여학생과 그 여학생이 만난 2살 위의 남자를 죽이게 된다. 여기까지는 막나가는 10대의 극단적인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형이 새로운 사건을 찾다가 부루퉁한 얼굴의 진형사를 만나면서 심효전의 사건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진형사는 바쁘고 정신없는 동료 형사들과는 다르게 평온하게 책상에 앉아 새로운 빵집과 맛있는 빵의 레시피를 끄적거리며 유형을 차갑게 대한다. 유형은 진형사에게 뭐라고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진형사에게 빵과 커피를 사다주게 되고, 진형사는 그때부터 유형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진형사가 경찰서에서 그렇게 무인도에 있는 사람처럼 지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서서히 실마리가 드러나게 된다. 채유형과 진형사 그리고 최피디와 윤종 등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락하고 통화하거나 또는 연락을 외면하는 수단으로 휴대폰이 자주 등장한다. 마치 현대 사회는 언제 어디서든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막상 상대방이 자취를 감취려고 잠적하게 되면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상대방과 연결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언제 끝날지 모를 막연함을 가진채 인내심을 갖고 내 연락을 받길 바라며 지속적으로 연결시도를 해야만 한다. 채유형과 진형사가 서로 모진 말을 내뱉으며 상처를 주고 서로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이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나가고 서로가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결국 유형에게는 진형사가, 진형사에게는 유형이 구원자가 되어준다. 이는 유형이 처음으로 연락하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본가를 찾아간 것과 진형사가 자살한 후배 형사가 선물로 준 변압기가 필요한 커피 머신을 치워버리는 일로 상처가 극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빌딩숲이 가득한 서울 한복판에 아무도 살거나 일하지 않는 멀쩡한 빌딩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곳이 꽃이 피는 숲으로 모든 것을 다 갖고 누리고 있으면서도 불만한 가득한 아이들과 그 정반대로 아무것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순간적인 일탈을 벌이는 장소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사회의 각박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마치 그 두 부류의 아이들이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일탈의 행동을 할 때에는 가까워진듯 해도 결국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고 말 것이라는 소설속 아이들의 외침은 단지 소설 속의 가정된 이야기만이 아니라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이제는 전설 속의 말로 사라졌다는 슬픈 자화상을 확인시켜주는 것만 같다. 어디선가 이 세상은 쓰레기이고 자신들도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만드는 것들이 사라지고 진짜로 자기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어른이 나타나기를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을 지나가는 그 가냘픈 통증의 정체가 수치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끄러움, 무자비하게 자신을 덮치는 참혹한 부끄러움.(119)"


"넌 어때?

이 세 글자를 볼 때마다, 아니, 이 세 글자를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녀는 그 의미를 생각해보곤 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바뀌곤 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남자의 딸로서 살아가는 게 넌 어때? 부모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넌 어때? 다른 사람들과 평범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게 넌 어때?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게 넌 어때? 거칠게 바닥에 펼쳐져 있는 기사와 사진들을 다시 가방에 넣은 후 옷장 안 깊숙이 숨겨두었다.(193)"


"비교 우위를 점하는 것. 객관적 관찰자가 되어서 사태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건 기만적인 태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때로는 사태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통해, 기만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통해서만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삶이 존재했다. 그런 식으로만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게 되는 삶이 존재했다.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진실이 있다.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바로 여기에.(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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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쓰기그림그리기 2022-08-1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는데 이렇게 같은 책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고 갑니다!
 
멕시칸 푸드 : 난 슬플 때 타코를 먹어 띵 시리즈 19
이수희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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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희 작가의 [멕시칸 푸드: 난 슬플 때 타코를 먹어]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19번째 책이다. 타코, 브리또, 케사디야 등 멕시코 음식을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호기심으로 멕시코 음식점을 몇 번 간 적이 있어서 흥미롭게 또띠야에 부재료를 넣고 살사를 바르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 아니 또 누군가가 강력한 제의를 한다면 모를까 저자처럼 내일 또 타코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으며 마리 데 키친이라는 멕시코 음식점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너무나도 감사한 정보와 더불어 포솔레라는 처음 듣는 멕시코 전통 스튜를 맛보고 싶어졌다. 특히나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면 한 여름이라도 뜨끈한 국물 한 모금에 눅눅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리니까 말이다. 


글에는 냄새도 침샘을 자극하는 사진도 없지만 묘사된 내용을 상상하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을 유발한다. 아니 오히려 후각과 시간을 자극하는 각인된 대상이 없기에 무한한 상상을 증폭시켜 언젠가 맛볼 음식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게 된다. 그래도 저자가 소개하는 음식들이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란 궁금증을 물리칠 수 없어 검색사이트를 열게 된다. 남미에 가본 적이 없지만 베로나에서 머물 때 가끔 멕시코 음식점을 가곤 했다. 파스타에 물리고 지친 날 우리 음식처럼 매콤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자극적인 맛을 기대하며 타코를 주문하곤 했다. 우리가 흔히 멕시코의 술 하면 테킬라라고 생각하지만 더 전통적인 술은 메스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스칼이란 용설란(agave)의 수액을 발효시켜 만드는 멕시코의 증류주다. 용설란 표면에 붙어 사는 나방 유충을 아가베 웜이라 부른다.(119)" 


베로나의 멕시코 음식점에서 메스칼을 마셔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에 테킬라 붐붐 이라는 일종의 술 장난을 알게 되었다. 실제 메뉴 판에도 테킬라 스트레이트 한 잔, 테킬라 붐붐 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이건 뭘 말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처음 같이 갔던 지인이 그날따라 술이 땡겨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며 테킬라 붐붐을 주문했다. 곧이어 테킬라 석 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지고 술을 가져다 준 분은 갑자기 호르라기를 입에 물었다. 지인이 한 잔을 들어 마시기 시작하자 호르라기는 쉴 세 없이 큰 소리를 내며 식당의 모든 사람을 주목시켰다. 난데없는 호르라기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이게 하나의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웨이터는 호르라기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곧이어 지인이 두 번째 잔을 원샷하고 마지막 잔까지 다 비우고 나서야 호르라기 소리는 멈추었다. 조금은 어이없는 퍼포먼스가 끝나자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아 이게 테킬라 붐붐이구나 진짜 섣부르게 주문했다가는 바로 뻗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걸 누구한테 써먹지라는 얍삽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후에 후배가 방학을 맞이해 장시간 기차를 타고 온 터라 그 멕시코 음식점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필살기 테킬라 붐붐을 한 번 시켜보라고 제안했다. 후배는 의아해하며 순순히 내 말을 따랐고 그 이후는 뭐 말하지 않아도...


저자의 멕시코 음식에 대한 사랑은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현지를 방문해서 타코 음식 거리를 거닐게 만들었고 스타벅스의 오르차타는 실제로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맛을 재현하는 주문 방식으로 맛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한 푸올이라는 고급 멕시코 레스토랑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저자의 멕시코 음식에 대한 열정에 보답한 타고신의 아량처럼 여겨진다.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만 가능한 다이닝 코스를 마치 저자를 위해 빈 자리가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여행 기간에 그곳을 방문할 수 있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숭고한 마음으로 타코와 브리또와 케사디야를 만들어 먹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 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SNS에 범람하는 유사한 화려함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을 향해 투신할 수 있는 이들의 애정이 부럽고 또한 그 뜨거움을 이렇게 책으로나마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일은 뭘까? 나는 '결핍'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 나에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을 구경하는 일이 가장 재밌다. 옷을 사고 싶을 때는 눈이 빨개지도록 쇼핑몰을 구경하고, 여행이 가고 싶을 때는 온갖 여행 후기를 읽는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현대 기술과 마케팅은 개개인의 결핍을 판별하고 욕망을 제안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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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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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작가의 [가장 나쁜 일]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7번째 작품이다. 그동안 읽었던 젊은 작가 시리즈 중에 가장 분량이 많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는데, 다양한 인물의 등장과 더불어 촘촘하게 얽힌 사건들을 전개하고 마무리되기까지 쉴틈없는 서사에 흠뻑 빠져들었다. 제목에 담긴 의미처럼 ‘가장 나쁜 일’, 살아가면서 내가 겪은 가장 나쁜 일은 무엇이었을까 돌아보게 만든다. 혹자에게는 한 평생 열심히 모든 돈을 사기를 당한다거나, 믿었던 지인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전재산을 날리는 일을 겪는다던지,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다가 중병을 앓게 된다던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처절히 배신당한단던지, 큰 사고를 당해서 몸을 다치게 된다던지 하는 일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나쁜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남의 불행을 보고 순간적인 위로를 받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때때로 가까운 사람들의 불행한 소식을 들을 때면 나약하게도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정희는 3년 전에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냈다. 아들의 갑작스런 발병에 남편 성훈과 발버둥치며 심장이식을 받으려 노력하지만 첫 번째 이식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기적적으로 잡은 두 번째 이식은 수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만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견줄 수 없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정희의 눈 앞에서 남편 성훈과 어떤 여자가 함께 사라지고 성훈과는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성훈과 정희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앞서 한강 다리 위에서 어떤 여자와 남자가 투신을 하고 여자는 죽고 남자만 살아서 나오게 된다. 그 여자와 남자는 누구일까 라는 궁금증을 갖고 정희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정희는 아들의 죽음 이후 우울증과 심한 신경증을 겪으며 남편과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잡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나오며 남편 성훈과 전화통화를 하지만 성훈은 어디선가 본듯한 여자와 사라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성훈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 지애의 남편이 찾아오면서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어딘가 계획된 듯한 이미지를 풍기는 지애의 남편 김영호는 정희를 찾아와 아내 지애의 행방을 수소문 한다. 지애의 남편을 처음 본 정희는 의구심을 품지만 영호의 지략으로 정희는 더 이상 의심을 품지 않게 된다. 성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여기에 표철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성훈과 함께 투신했던 성록혜의 남편이다. 철식은 성훈이 아내 록혜를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성훈을 납치, 감금, 폭행하며 진실을 토로하게 만드는데, 이 모든 것은 영호가 탈북자 서점례와 계획해서 만든 일이었다. 영호는 철식이 성훈을 죽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철식은 성훈이 진실을 털어놓자 그냥 놔주게 된다. 계획이 틀어진 영호는 성훈을 자신이 바지원장을 내세워 실제 주인이 된 병원으로 끌어들여 마치 투신 자살을 한 것처럼 꾸민다. 성훈이 투신 자살을 한 것처럼 병원 9층에서 떨어질 때 때마침 마당에 서 있던 치매를 앓던 노인과 부딪혀 죽게 되고 성훈도 얼마 후 죽게 된다.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정희는 남편의 죽음에 몸부림치지만 장례식장에서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 경찰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남편이 내연녀와 불륜관계를 이어오다 변심한 내연녀를 죽이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투신 자살을 했다는 말이다. 정희는 자신의 남편이 그럴리 없다고 도리질하지만 영호의 계획은 차근차근 이루어져갔다. 슬픔과 좌절 속에서도 정희는 철식과 관련된 단서를 알아내고 철식의 집을 찾아가 전모의 발달을 얻게 된다. 만일 철식이 서점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아내 성록혜에게 또 다른 탈북 남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더라면 정희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철식은 정희와 마찬가지로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으로 영호의 계획에 차질을 빗게 만든다. 정희가 영호의 병원을 찾아가 다시 납치되고 그곳에서 탈출하며 혹시나 모를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최형사에게 예약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은 흡사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졌고 악마와도 같은 영호의 최후의 순간은 무척이나 비참했지만 그가 계획했던 모든 일의 가장 나쁜 순간은 다행히 이어지지 않았다. 


등장 인물들의 다양한 서사와 배경은 한 인간의 삶이 이토록 저주스러울 정도로 불행할 수 있을까란 안타까움과 더불어 탈북자들의 불안한 일상이 그려져 씁쓸한 마음은 배가 되었다. 영호가 이토록 잔악한 수법으로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이유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우연한 선행이 엄청난 보험 보상금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착잡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인간이 존엄성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마치 그 어떤 순간에도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에게 가장 나쁜 일은 죄를 지어 누군가를 미궁에 빠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나쁜 일이 성공하지 못해 다시금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서늘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희망이 없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상황이 어떤 식으로 치달아 갈지 역시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가슴이 조여왔다. 정희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조용히 흐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도 이것은 끝이 아니며 가장 나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걸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207)”


“칼바람이 부는 벌판을 홑껍데기만 걸치고 걸어야 했을 때, 사방에서 안광을 번뜩이며 두 사람을 노리는 산짐승들을 피해 기어서 산을 너머야 했을 때…. 의식은 흐려지고, 의지는 산산이 흩어지고, 희망은 전부 바닥에 떨어져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철식이 록혜에게 말했었다. 마음속에 못 하나만 박아. 그럼 다시 하나, 둘 걸 수 있다. 떨어진것을 먼저, 흩어진 것을 그다음에, 나중에는 흐려진 것도 붙잡아 걸 수 있게 된다고…(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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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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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연 작가의 [하쿠다 사진관]을 읽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여운 때문인지 읽는 내내 후속편을 보는 듯한 감상에 빠져버렸다. 우리나라 어느 지방 사투리도 자세히 들으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충 알아들 수 있지만, 제주 방언만은 마치 해독기와 번역이 필요한 외국어처럼 들린다. 대체 같은 나라에서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큰 땅덩어리도 아닌데, 단지 바다 건너에 있는 섬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큰 격차가 느껴지는 방언이 생겨난 것일까 항상 신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 사투리는 다른 어느 지방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3년째 견디는 중에 제주에 갈때마다 우리나라에 제주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매번 감사의 마음을 갖곤 했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해녀들의 이야기가 나와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해녀들의 물질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고, 올해 제주로 연수를 갔다가 우도로 가는 선착장 근처에 있는 오래된 해녀 탈의실을 개조하여 공연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해녀의 부엌’이라는 프로그램을 관람할 수 있었다. 연극하는 청년들이 현지의 해녀분들과 함께 해녀들의 삶을 그린 연극을 공연하고 이후에 해녀분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직접 맛볼 수 있는 특색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연극 배우들은 실제 상군해녀가 겪은 슬픈 이야기를 형상화했고, 연극이 끝나고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인 80세가 넘은 고령의 해녀 분의 인터뷰 시간이 이어졌다. 지금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해녀복은 고무로 된 전신슈트이지만, 70년대 이전에는 박물관에서 본 듯한 하얀 저고리와 검은 반바지를 입고 차가운 바닷물에 입수를 했다고 한다. 소설에서도 주인공 제비가 한 겨울에 대왕물꾸럭마을 축제의 사자가 되어 고무슈트가 아닌 옛날 해녀복을 알몸에 입고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야 하다는 사실에 기겁을 하지만, 목포 할망의 말처럼 생존을 위해서 해녀들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물질을 해야만 했다. 


사실 도시에서는 신선하고 맛이 좋은 문어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 값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잘못하면 질긴 문어를 먹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에 가면 돌문어와 대왕문어를 맛볼 수 있다. 심지어 문어가 들어간 해물라면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도 있다. ‘해녀의 부엌’에서 해녀들이 바로 채취한 뿔소라 회를 먹노라니 아무런 잠수장비 없이 그저 숙련된 다이빙으로 전복하나, 소라하나 이렇게 거둬들여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다는 할머니 해녀의 말씀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프리 다이빙 실력은 숙련된 다이버들도 흉내낼 수 없는 숨비소리를 만들어냈고 그러한 독특한 호흡법으로 오랜 시간 물 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제비는 나중에 그의 슬픈 사연이 드러나지만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긴 상처를 갖고 있다. 기댈 가족조차 없이 새로운 삶을 기약하기 위해 떠나온 제주 여행을 끝마치는 날 바닷가에서 핸드폰을 물에 떨어뜨려 길을 헤매다 ‘하쿠다 사진관’에까지 이르게 된다. 제비가 사진관 주인 석영과 만나 그곳에서 직원으로 채용되어 목포 할망의 집에 하숙하게 되는 과정은 조금은 작위적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플롯이라고 가정한다면 실제로도 그러한 우연이 우리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 않을까 동의하게 된다. 하쿠다 사진관을 중심으로 연제비, 이석영, 고양희 그리고 양희의 아들 효재, 목포 할망과 대왕물꾸럭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가 쉽게 말하지 못할 내면의 상처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단언을 실천하는 것처럼 가슴속에 묻어둔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등장인물 모두가 씩씩하게 주어진 운명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다. 


제비가 석영의 사진관에서 일하며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해서 조금씩 고객들이 늘어나고 사진관을 방문한 이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며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특히나 제비와 석영이 콤비를 이루어 의뢰자들이 원하는 컨셉으로 하루종일 사진을 찍고 사진관에서 식사를 하며 그날 찍은 사진을 관람하는 코스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그리고 여행지에서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닐까. 소설의 말미에 대왕물꾸러마을의 평안을 위해 사자의 역할을 맡게된 제비가 물숨을 들어마시는 고통을 감내하며 대왕물꾸럭을 바다속으로 인도하는 장면은 입양보낸 밤톨이를 위한 극한의 인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기에 무척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사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한 제비에게 목포 할망이 건네 한 마디, “기여. 혼 번 사자는 영원한 괸당이주. 이녁은 앞으로 어떵살코저들지 말라.(그래. 한 번 사자는 영원한 괸당이야.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걱정하지 마.)” 기댈 가족 하나 없는 제비에게 이 말처럼 든든한 말이 또 있을까? 괸당이라는 혈연과 지연으로 얽히지 않은 이들을 매몰차게 외면하는 배타적인 공동체의 모습에서 나온 것 같지만, 목포 할망의 말에서 인간이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과 마음이 통할 때 세상의 모든 장애물이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비야, 어떤 사람들은 돈과 예술이 별개라고 생각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돈과 바꿀 수 있는 것만 진짜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게 돈이니까. 그런 돈하고 바꿀 가치가 있어야만 예술이 되는거야. 비쌀수록 더 가치가 있는 거고.(142)”


“만일 물꾸럭 신이 있어 사람에게 길흉을 가져온다면, 그리고 네가 잠수에 실패해 액운을 당한다면, 그때 너는 후회할 거야. ‘아 물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어야 했는데,’ 그런 다음 울겠지. 지금처럼 서럽게. 하지만 네가 잠수에 성공한다면, 언젠가 네게 액운이 닥쳐도 후회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수영을 배워. 살아보니 그렇더라. 뭔가를 위해 무슨 일을 하다 보면, 계속 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 너를 구하는 거야.(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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