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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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리 작가의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를 읽었다. 부제는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이다. 갓생, 배민맛, 방꾸미기, 랜선 사수, 중고 거래, 안읽씹, 사주 풀이, 데이트 앱, #좋아요, 이렇게 9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현대인이 중독된 주제들이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지금 시대의 가장 핫한 이슈들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이슈라는 것이 뉴스메인을 도배하는 그럴듯한 화제가 아니라 그냥 한 개인인 나에게 있어서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될 무엇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이 중에 어느 것에 중독되어 있나 따져보니 아예 한 번도 안해본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개인적인 감상을 표출하거나 격력한 공감을 표현하기 힘들었다. 요즘엔 “SNS를 하는 사람이 관종이 아니라, 안 하는 사람이 오히려 별종(202)” 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이렇게 많은 중독 주제 중에 내게 해당되는 내용이 없다는 게 어쩌면 나도 별종이거나 이미 상 꼰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페이스북, 유튜브, 틱톡 중에서 하나라도 하지 않는다면 술이나 커피나 담배 중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그 사람이 귀엽거나 예쁘거나 잘생겼거나 말발이 좋거나 직업이 특이하다면 대단한 금욕주의자처럼 보인다. ‘아, 아깝다. 저 정도면 팔로워 5만 명에 좋아요 100개쯤은 금방 땡길 텐데.’(202-203)”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별 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싸이월드 세대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그때에 관종이 되고자 하는 열정을 다 써버린 것인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렇게 시시한 일상을 드러내는 것이 점점 싫어지는 것인지? 50대 중반 이후의 어머니들 사진첩에는 온통 꽃 사진만 잔뜩이라고 하던데, 사람보다 자연이 더 예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에 다가오는 깨달음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뭔 자신감으로 그렇게 대놓고 셀카 사진도 올리고 그랬는지. 지금보면 쥐구멍이 들어가고 싶어지는 사진과 감성 오지게 터지는 글들을 보면 한 때 나도 이런 젊음을 드러내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더불어 피싱 같은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당시 나도 아직 2G폰을 쓰고 있던 터라 부모님이 스마트폰으로 변경한다는 얘기를 듣고 괜히 이상한 문자가 왔을 때 눌러서 사기 당하지 않게 그냥 구형 폰을 쓰는게 어떻겠냐고 퉁명스럽게 대꾸한 적이 있었다. 내딴에는 괜히 억울한 일을 당하실까 걱정되 한 말이었는데, 나의 대답이 얼마나 서운하셨는지 한동안 전화조차 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의 행동과 말이 참으로 어리석고 이기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한 살이라도 더 젊으실 때 새로운 것들을 보여드리고 잘 적응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할 텐데, 어찌보면 노년의 삶에 대한 무미건조함이 내 생각의 일부이지 않았나 싶다. 나의 어리석었던 행동에 질타를 가하는 일들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일어난다. 노약자석에 앉으신 어르신들이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고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뉴스 기사를 살펴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위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 번 손에 쥐었다 하면 쉽사리 놓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샤워할 때에도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 시청이 가능하도록 방수기능까지 강화되었으니, 이제 스마트폰을 떠나는 시간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인터넷 뱅킹은 PC로 하는 것이 더 수월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은행들이 모바일 버전의 보안을 강화해서 그런지 앱을 구동하면 몇 번 클릭으로 손쉽게 이체가 가능해졌다. 사실 가장 최신형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도 자주 사용하는 앱은 몇개 되지 않는다. 안읽씹의 내용에 나오는 것처럼 전국민이 사용하는 깨톡의 경우 앱 상당에 빨간 숫자가 써 있으면 뭔가 맘이 편치가 않다. 광고든 단톡방이든 어서 빨리 대화방을 열어서 그 숫자를 없애고만 싶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 숫자를 없애는 강박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앱에도 아직 읽지 않음을 표시하는 숫자가 표기되어 있으면 마치 남겨진 숙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앱에 떠 있는 숫자는 내게 딴짓하지 말고 어서 빨리 숙제를 하라고 다그치는 것만 같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생긴 이상한 증상이다. 


“임원이나 고용주에게 대체 불가 노동자란 결국 프리미엄이 붙은 부품일 것이기 때문이다. 부품으로서의 노동자는 마모(번아웃)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성능을 업그레이드해야 하지만, 임원과 고용주를 능가하는 순간 임원과 고용주의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인간이 비인간 존재를 볼 때, 그것과 인간 사이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호감도도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를 자극하게 될 것이다.(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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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총을 쏴라 - 제8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김경순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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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작가의 [장미총을 쏴라]를 읽었다. 제8회 황산벌청년문학사 수상작이다. 우리나라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다른 나라 소식은 아마도 미국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뉴스 보도 중에 마치 주기적으로 우리의 가슴을 철렁 내려 앉게 만드는 비극적인 소식은 총기난사이다. 사상자가 많은 사건만 보도되서 그렇지 실제로 거의 매일 총기사고가 난다고 한다. 도대체 그런 살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된 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막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룰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거의 대다수가 군복무 기간 중에 총기를 다뤄봤기 때문에 총이 가진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실탄이 지급되지 않는 평소에는 짐처럼 느껴지는 총기가 실사격시 얼마나 큰 긴장감을 조성하는지 모른다. 헐리우드 액션과 홍콩 르와르 영화처럼 자유자재로 총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생각보다 반동이 꽤 커서 제대로 견착하지 않으면 과녁을 맞추기는 커녕 엄한 곳에 발사될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어마무시한 총을 사람을 향해 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제정신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주인공 한옥인은 언론고시에 도전한 삼수조차 떨어지자 울며겨자먹기로 ‘건’이라는 잡지사에 지원하게 된다. 건강의 건도 건축의 건도 아닌 건은 ‘GUN’을 뜻한다는 것을 면접을 통해 알게 된 옥인은 석달 동안의 인턴 기간을 진명유와 함께 보내게 된다. 옥인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현은 재소자와의 면담을 통해 추리소설의 소재를 얻곤 했기에 옥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녀처럼 평범해 보이는 여자가 어떻게 두 명이나 총으로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인지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옥인은 자신이 두 명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으로 자해를 시도하기도 하고 현에게 사건의 정황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기도 한다. 현이 전해주는 옥인의 이야기는 옥인이 취준생으로 간신히 입사한 비밀스러운 잡지회사 건에서 사장과 부장과 차장의 은밀한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고 총기 밀매의 중개자로 이용당하고 종국에는 길 고양이를 목표물로 한 건 배틀에서 장미총을 겨두다 실수로 과녘 가까이에 다가온 사장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발사고가 났으며 그로 인해 차장이 옥인을 밀매한 신형 K2로 겨누자 정당방위로 차장에게 총을 발사하 것으로 이해한다. 


국선변호사 또한 옥인의 억울한 사정에 동감하며 백방으로 형량을 낮추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건 배틀 현장에 있었던 부장과 진명유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단독주택을 사무실로 사용한 건 잡지사도 하루아침에 개인 소유로 변경되었고, 특히나 건 잡지사 시절 지하창고에 도서관처럼 진열되어 있던 많은 자료들도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무엇보다도 옥인이 사장과 차장을 죽인 장미총이 발견되지 않아 옥인은 1심에서 20년 형을 언도 받는다. 현은 옥인이 고의로 사장과 차장을 죽이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고 국선변호사에게 옥인이 건 잡지사를 다녔던 흔적과 건 배틀이 열리기까지의 정황들을 보낸다. 재심에서 옥인은 정황증거가 채택되어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고 현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며 외국으로 떠난다. 


현은 옳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옥인이 남긴 기록을 살펴보다가 수년 전에 사용된 건 잡지사 영수증에 쓰인 필체와 옥인의 노트에 쓰인 필체가 같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현이 옥인의 필체를 확인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가 다리를 절다가 갑자기 똑바로 걷는 것과 '식스센스'의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유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에 견줄만큼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반전을 보여준다. 책의 띠지에 "우리 소설사는 강력한 반전(反戰) 소설과 정교한 반전(反轉)소설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라고 씌어 있는데, 옥인이 복수를 행하고도 무사히 풀려나기 위한 반전의 시나리오를 갖고 현을 비롯한 모든 이들을 속였다는 것과 우리나라 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총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강력한 무기 소유로 평화를 유지하려는 현대 사회의 딜레마를 적절히 융화시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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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22학번
구하비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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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비 님의 [하버드 22학번]을 읽었다. 지금은 공교육과 더불어 사교육 또한 합법적이다. 하지만 꽤 오래전에는 과외를 비롯한 사교육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 성적을 더 올리고 싶었던 있는 집 자식들은 몰래 과외를 받다가 걸려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놓고 드러내며 과외를 받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학원을 가지 않으면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고 하니, 이래저래 부모도 자녀들도 시간과 돈을 허비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모두가 학원을 가지 않는다면, 아니 입시를 위한 학원만 사라진다면 요즘 아이들도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흙장난을 하게 될까? 학원은 물론 요즘은 결석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예전에는 마치 헬스클럽에서 할인되는 몇 개월짜리 정기권을 끊어놓고도 일주일에 한 번 갈까말까 하는 곳이기도 했다. 부모 돈이 썩어나가는지도 모르고 학원 정기권을 끊어놓고 자유의 시간을 만끽한 이들이 꽤 많았고 그러다보니 학원 주위에는 공부를 하러 오는 애들 만큼이나 놀러오는 애들도 많았다. 학원비에 학원에서 요구하는 학습지에 저녁을 사먹고 중간에 간식도 먹어야 하니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예전에도 꽤나 큰 지출을 필요로 했다. 그래도 과거에 다행이었던 것은 학원을 다니지 않고 학교 정규과정만 밟아도 본인만 열심히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미 대다수의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해온 것을 학교 선생님들도 알고 있기도 하고 학교 공부만으로는 성적을 올리리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학벌지상주의의 만연과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아주 옛말이 되어버린 재물과 계급의 세습화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부터 어느 아파트에 사는 것을 구분할 정도로 팽배해졌다. 마치 경력직만을 요구하는 구인광고를 보고 초짜를 아무도 받아주지 않으면 대체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뒷배가 없다면 출세를 하고 가세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희망이 사라진 세대에게 성실함과 정직함은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고 어떻게든 불법에 해당되지 않는 방법으로라도 돈을 벌거나 성공하는 것이 진리가 되어버렸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란 노랫말이 담긴 유행가가 인기를 누릴 때 군생활을 했던 분들은 지금 군복무 중인 이들에게 자신들이 보낸 기간의 반밖에 안되는 기간과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월급을 받는 환경을 비교하며 ‘뭐가 힘드냐고’ 따지듯이 묻곤 한다. 이건 꼭 꼰대여서가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것과 지금을 비교하면 누구나 그런 얄팍한 보상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고 지금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지금의 세대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대에게는 과거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과 어려움이 존재한다. 월급을 아무리 많아 받아도 군복무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어도 생면부지의 남과 함께 의무적으로 보내는 기간은 힘들기는 매한가지이다. 끼니를 걱정하던 시대를 살던 분들은 지금처럼 배부른 시대의 젊은이들이 보이는 나태함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배부르게 밥을 먹을 수 있는데, 굶어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1차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지금은 배가 부르다고 행복하지 않는다. 집에서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가까운 친구가 SNS에 올린 인싸들이 다니는 카페에 가지 못해서 신경질이 난다. 또 신상백을 들고 해외의 멋진 휴양지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면 나만 불행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지금의 세대에게 이런 것들을 완전히 외면하고 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영향을 받고 싶지 않지만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를 만날 수 없는 것처럼 관종과 자기과시의 세계에서 벗어나면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류에 들지 못하면 그동안 내가 쌓아놓은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핵심적인 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알았으면 좋겠고 남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마치 적선하듯이 하나씩 알려줄 때 남모를 쾌감을 느낀다. 당연히 정보를 먼저 캐치하는 자는 권력자의 근방에 머물 수 있는 허가를 받았음을 으스대며 자신에게 줄 댈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러한 신계급사회에서 역시나 정직함과 성실함은 무기로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 약은 청지기처럼 제 때에 줄 것을 주고 속일 만큼 속이며 제 것을 챙기면 오히려 일을 잘한다고 인정을 받는다. 그로 인해 우직하게 한 길만 걷는 이가 외면 당할 때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가 일지만 되돌릴 길은 전무하다. 그냥 받아들이고 자신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혐오했던 모습을 뒤따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소설 속의 구하비가 자퇴서를 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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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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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편혜영 [포도밭 묘지], 김연수 [진주의 결말], 김애란 [홈 파티], 정한아 [일시적인 일탈], 문지혁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이렇게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번 수상집에도 근래에 읽었던 장편소설의 저자들이 많아서 반가웠고, 작가들의 개성이 듬뿍 담긴 다양한 필체의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짧은 단편들이 끝나면 저자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몇 페이지가 걸쳐 이어지고 소설을 읽는 동안에 이해되지 않거나 의문을 가졌던 부분들이 평론가들과 소설가들의 리뷰로 어느 정도 해소되며 뭔가 한과목의 어려운 과제를 마무리하는 것 같은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대상을 받은 [포도밭 묘지]는 상고를 졸업한 4명의 여고 동창들의 이야기이다. 한오라는 잘난 척, 아는 척 하는 친구의 이야기부터 시작되어 수영과 윤주 그리고 화자인 ‘나’까지 이렇게 4명이 대학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졸업하자마자 또는 졸업하기 전부터 각자의 직장생활을 하며 나중에 한오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봉안당을 방문하는 도중에 이미 시들어버린 포도밭을 지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지금의 청년 세대가 특히 취업을 앞둔 20대 여성이 읽는다면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 밖에 없는 불합리한 시대적 정황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래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지금이 더 그런 학력에 대한 차별이 존재해왔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제는 여자애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장녀라는 이유로 부모들이 대학진학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을 갈 수 없는 형편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고, 스스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몸을 갈아넣을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그 노력에 대한 응당한 박수를 받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소설 속의 한오처럼 말이다. 한오의 부단한 노력에도 오전 근무를 마치고 안 좋은 컨디션으로 견디다 못해 휴게실에서 쓰러진 것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죽음에 이른 장면이 근래에 꽃다운 나이로 노동 현장에서 비운의 생을 마감한 청년과 오버랩되어 못내 가슴이 아파온다. 


[진주의 결말]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다 기나긴 병간호와 전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인생에 회의감을 느낀 딸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설상가상으로 불까지 지른 유진주에 대한 방송국의 다큐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에 조언을 해주는 범죄심리학자와의 이야기이다. 이미 범죄자의 정황이 밝혀진 유진주에 대한 방송은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을 추가하기 위해 화자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미 경찰의 조사에 따라 범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밖에 없었던 ‘나’는 방송이후 유진주에게 메일을 받게 된다. 존경해온 그가 방송에서 유진주 자신을 언급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지만 ‘나’가 추정한 내용들은 틀릴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같은 달을 보더라도 달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가지 때문이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달에 가려고 선택한 길이 처음부터 틀렸기 때문에 이어지는 추정들도 틀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는 유진주가 자신의 범죄를 부정하기 위한 메일이라고 생각하며 방송국 PD가 유진주와의 제주에서의 만남을 거부하지만 얼마 후 경찰에서 밝힌 사건의 전개는 유진주의 범행이 아님이 드러난다. 


[홈 파티]는 연극배우 이연이 후배 성민의 제안으로 오대표의 집에 모이는 사적인 모임에 초대받아 식사하는 도중에 벌어지는 내용이다. 이미 사회적 성공과 부를 이룬 오대표, 서, 박, 김은 이름 없이 성으로만 불린다.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그들과 친분을 쌓은 성민은 실제로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의 낯부끄러운 일은 밝히지 않고 오대표를 비롯한 이들과의 사적인 모임이 자신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연과 성민은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지만, 오대표를 비롯한 모임의 다른 이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저자의 다른 소설에서 나온 표현들을 예로 든 리뷰에서 말하듯이 현대의 새로운 계급은 명품가방이나 옷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피부와 치아를 통해 드런난다는 것처럼 연극배우 이연 앞에서 박과 김은 아주 오래 전에 연극 동아리를 했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희곡 보이체크의 한 부분을 언급한다. 이연은 그들이 자신의 직업을 깍아내리지는 않지만 틀린 부분을 지적하지 못하며 애써 이사직의 역할을 연습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오대표가 고아원에서 만18세가 되어 시설에서 나갈 때 주어진 오백만원의 자립정착금으로 아이들이 명품가방을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연은 이사직을 맡은 역할을 내려놓고 이연과 성민과도 같은 입장의 이들을 대변하게 된다. 배고픈 거야 어디서든 혼자 대충 때우며 가난을 숨길 수 있겠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인 명품 가방으로나마 가장 쉽게 가난을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니었냐고 말이다. 


[일시적인 일탈]은 개구리 공포증이 있는 ‘나’가 K라는 준서 엄마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준서 엄마는 대학 강사이자 작가로서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다보니 준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고 ‘나’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화자는 준서 엄마의 작업실을 평일이 함께 쓸 수 있도록 제안 받고 캘리그래피를 연습하게 된다. 그곳에서 화자는 준서 엄마가 쓰다만 소설과 글을 읽게 되고 나중에는 그녀가 남긴 책들을 읽기 시작한다. 준서 엄마의 갑작스러우 죽음 이후 화자가 대출을 받아가면서까지 남편에게 캘리그래피 교실을 열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과연 준서 엄마라는 존재가 화자가 만들어낸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진다. 준서 엄마의 작업실은 화자가 빌린 곳이었고 그곳에서 화자는 개구리 공포증을 극복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화자인 ‘나’가 우연히 일본인 친구 아야를 만나면서 우연과 확률의 계산으로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며 나눈 대화와 소설과 논문을 소재인 성수대교 붕괴를 빗댄 이야기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의 역사를 안다면 더욱 재미가 느껴질 조지 워싱턴 브리지에 대한 내용과 화자와 아야와의 만남은 성수대교와 대조적인 재난 사건에 대한 아야의 언급으로 이어진다. 성수대교는 무너지고 난 후 8차선 도로로 확장되어 재건되었을 뿐 과거의 뼈아픈 역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자리는 없다. 그에 비해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진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그라운드 제로와 프리덤 타워가 갖는 격차는 화자가 준비하는 논문에서 준비한 제목이 아니라 지도교수로부터 제안받은 ‘균열은 어디에나 있다’는 제목으로 좁아진다. 아야를 만나지 않았다면 800페이지가 넘는 논문같은 소설을 조지 워싱턴 브리지 위에서 강 아래로 던져버릴 수 있었을까?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날 평소처럼 버스를 타지 않고 사람들이 많던 지하철을 타 지각을 하게 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야라는 일본 이름을 아플 때 내는 소리가 맞냐고 묻는 친구에게 한국어 강사답게 그건 모음의 첫 발음이라고 알려주는 화자는 재난의 주인공이 될 뻔했던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소설과 논문에 적절히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소설을 던져 버리지 않고 다리를 건넜기 때문에…


[아주 환한 날들]은 평생 억척스럽게 과일가게를 운영하다 남편의 사별 이후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는 ‘나’의 이야기이다. 평생교육원 매주 수요일 프로그램을 기계적으로 참석하며 일상을 이어하는 화자는 수필 쓰기 수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수강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오는 것을 보며 자신도 뭔가 써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미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위는 아이들을 위한 앵무새를 샀다가 갑자기 아이들이 앵무새를 무서워하게 되어 장모님께 한 달만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딸은 다른 핑계로 함께 오지 않고 사위만 덩그러니 혼자 온 것은 화자와 딸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지난 날의 과거를 통해 드러난다. 과일 배달을 하지만 가산을 늘리는데 무관심한 남편과는 달리 억척스럽게 장사를 해온 화자는 딸과의 몇 가지 사건으로 소원해지게 된다. 딸의 서운한 기억을 떠올리던 화자는 얼떨결에 앵무새를 맡아 키우게 되고, 집안을 더럽히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앵무새를 냉대하다가 기운이 없어진 상태를 보고 겁이나 동물병원의 조언을 청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앵무새를 돌보며 화자는 애정을 갖게 된다. 제목인 아주 환한 날들이 의미하듯이 어쩌면 과일가게를 접고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규칙적으로 해온 엄마인 화자는 딸과의 소원한 상태를 아쉬워했고, 손주들을 시어머니에게만 맡기는 딸에게 서운함마저 드러낼 수 없었다.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아쉬워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낙심했던 화자에게 앵무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은 그녀에게 다시금 환한 날들을 되돌려준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과 작가노트의 내용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띠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236)”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너무 무섭고 고통스럽다. 소설을 쓸 때마다 달아나고픈 충동에 휩싸이는 건 소설을 쓰는 일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옥미는 결국 해냈고 그걸 생각하면 아주 작은 불빛이 켜진 것처럼 내게도 용기가 생긴다. 그 용기를 등불 삼아 컴컴한 강물 속 물풀처럼 자라나 있는 슬픔과 고통, 시기심과 비겁함, 자기모순과 기만 따위를 헤치며 또다시 조금씩 앞으로 헤어쳐나간다. 그 길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어코 환한 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다.(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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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에서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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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의 [이국에서]를 읽었다. 보보민주공화국이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국은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 이름을 갖고 있지만, 소설 속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과 보보민주공화국에 대한 묘사는 터무니 없는 상상의 나래에서 비롯된 썰이 아니라 믿고 싶지 않지만 실제로 벌어진 과거와 현재진행형인 일들을 반영하고 있다. 주인공 황선호는 중견 기업의 대리로 일하다가 자신이 모시던 상사가 정치인이 되면서 캠프에 들어가게 된다. 회사원과 어느 정치인의 당선을 위한 캠프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비슷한 면도 있겠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향을 요구할 것이다. 소설에서 묘사하듯이 황선호는 캠프에 들어온 이후로 당선을 위해서라면 응당 해야 할 온갖 업무들을 접하게 된다. 누군가에 무엇을 주고 받거나 정보를 캐내거나 흘리거나 협박은 아니라도 회유와 설득을 오가는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어떤 것은 은밀하게 또 어떤 것은 은근히 드러나도록 설계된 마치 공장과도 같은 기린팀의 소속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정치판에서 진실을 중요한 것이 아닌게 되어버렸다. 불법비자금을 받았느냐 안받았느냐, 성추행이나 성희롱같은 언행이 있었느냐 아니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물타기라는 말이 속된 말로 변질된 것처럼 언론을 통해 분위기가 형성되고 민심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사건의 진위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선거가 마무리되고 당락이 결정되고 나면 선거 전에는 그렇게 피터지게 싸우던 찬반진위 논쟁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러들고 언론을 통해서도 결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소설의 황선호는 우리나라 정치계에서도 흔히 불거질 수 있는 시장 선거에서의 뇌물수수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하나의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그 자신이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될지 모르면서. 황선호가 제안한 시나리오의 핵심은 뇌물수수의 의혹이 되는 시장이 아닌 부하직원이 모든 책임을 안고 완벽하게 잠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완벽한 잠적의 공간으로 보보민주공화국을 제안한다. 


어디에 붙어있는지 지도를 보고도 찾기 힘든 낯선 이국인 보보민주공화국을 제안한 황선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나라를 "하늘은 투명하고 태양빛은 순수하다"는 말로 설명한다. 마치 그곳을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처럼, 하지만 은연중에 튀어나온 보보민주공화국에 대한 황선호의 설명은 그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누구가가 보낸 편지에 있던 구절이 떠오른 것이다.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기린팀의 준비로 황선호는 그가 제안한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되어 이국으로 떠나게 된다. 보보민주공화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황선호는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말을 되뇌인다. "네가 원하는 일인지 생각해라. 너를 위한 일인지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다. 남을 위해 일하더라도 네가 원하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38)" 


기린팀에 속했던 곳의 흔적을 지우고 보보민주공화국에 도착한 황선호는 호텔방에서 두문분출하며 술독에 빠져 괴로워한다. 선거가 남은 6개월 동안 완전한 잠적을 위해서 황선호의 보스와 그가 낯선 곳에 온 것을 아는 송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하지 않기로 약속 한 후, 황선호가 떠난 고국에서의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뻔히 예상되기에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자 술에 취한 무의식이 나날이 이어졌다. 호텔 매니저와 소설가를 꿈꾸는 직원 류에 의해서 생사를 확인받은 황선호는 병원에 실려가 체력을 회복하고 그가 도착한 이국의 땅을 거닐게 된다. 그리고 이국을 거닐며 그가 도피처로 왜 보보민주공화국을 선택했는지, 그곳은 황선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온 것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바로 엄마가 살아 있을 때 들었던 자전거로 전세계를 누비며 편지를 보낸 김선호라는 사람의 글이 자신을 부른 것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 유품을 정리하다 김선호의 편지 꾸러미를 발견하지만 자세히 읽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보보민주공화국을 떠나기 전에 그 편지들을 모두 읽고 그가 보보민주공화국에서 보낸 편지들에 나온 '친구들의 집'을 찾아 나선다. 호텔 직원 류를 통해 그 집의 소재를 묻다가 펍 주인 필을 만나게 되고 필을 통해 쟝을 알게 되고 비로소 김선호가 머물렀던 '친구들의 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강진이란 가명으로 이국에서 머물던 황선호는 불안정한 치안과 공화국 주변의 국가들이 빗장을 걸고 외부인의 입국을 막자 그들에게 다가온 불행과 가난과 혼란스러움의 모든 이유를 외부인에게 덧씌우게 된다. 황선호도 호텔에 숙박하며 공화국에 머물 체류허가증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쟝을 따라 동굴에 머무는 외부인들의 공동체를 알게 되고 그곳에서 오래전 친구들의 집이 사라지고 그곳에 머물렀던 공동체의 흔적을 쫓게 된다. 


'친구들의 집'은 자연발생적으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신체기관이 아주 서서히 변형되는 것처럼 보보민주공화국에 머물던 사람들이 구속되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리더도 없이 스스로의 의식주를 해결하며 공생하는 매우 이상적인 공동체의 형태를 띠게 된다. 마치 수도원처럼 하지만 어떤 규칙이나 위계질서에 의한 차이도 없이 그저 모두가 명상과 공부와 운동과 노동을 의무적 권고로 받아들이며 지내는 것이다.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게 된 자전거 여행자 김경호는 그곳에 매료되어 정주하게 되고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자연주의 개더링 그룹에게 모임을 할 장소를 소개하고 그들의 모임은 보보민주공화국의 위협이 될지 모른다는 의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살육의 현장이 되고 만다. 필은 김경호가 개더링에 모인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잊고 지냈던, 그가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묵은 상처의 덩어리가 통채로 튀어올라는 것을 느끼며 '친구들의 집'을 지키고자 한다. 


필의 이야기를 통해서 황선호는 자전거 여행자 김경호가 엄마에게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친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김경호가 엄마와 사랑했음에도 고국을 떠나 방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개더링의 현장에서 보았던 무고한 이들을 폭력으로 진압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이었다. 김경호는 친구들의 집에 머물며 이루려 했던 공동체의 삶을 통해서 고국에 머물 때에는 외부인이 아니었지만 외부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쓰라린 고통의 순간들을 치유받았고, 친구들의 집에 머물 때 그는 더 이상 보보민주공화국의 외부인이 아니라 그를 받아들이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황선호의 잠적은 결과적으로 필과 쟝과 동굴에 머물던 외부인들에게 다시금 '친구들의 집'과 같은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고, 외부인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은 과거의 친구들의 집 구성원들처럼 구속과 규정과 계급이 없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게 된다. 


소설 속의 유토피아 같은 '친구들의 집'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력적인 요소가 전무하기에 언제든 그들을 지켜보는 보보민주공화국의 부패한 정권에게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들이 마음 먹기만 한다면 친구들의 집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외부인들은 3일치의 양식만으로 바다에 던져진 채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를 상황이지만, 친구들의 집 구성원들은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아낸다. 마치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쉽게 부서질 수 있기에 감히 그런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것처럼, 작금의 현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킨다. 황선호가 떠난 우연치 않게 아버지 김경호의 흔적을 따라간 길은 비록 이국이지만 고국보다 자신을 외부인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국 우리의 인종, 피부 색깔, 문화, 경제적 차이는 서로를 배타적으로 만드는 외부적 요소일 뿐, 그것을 뛰어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이국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움은 그리워하는 상태가 해소되기를 원치 않는 이상한 감정이라고, 그리움이 성취되는 순간 그리워하는 상태가 해소되어버리므로, 그리움의 상태가 해소되면 그리워할 수 없으므로 계속 그리워하기 위해서는 그 성취를 미래의 상태로 남겨둬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몹시 쓸쓸해 보였다.(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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