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에 심취해 있는 내게 아내가 묻는다. "버섯이 정말 예뻐 보여?" 아내는 도통 이해 불가라는 표정을 짓는다. 오늘 아침 어제 찍은 이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그제야 과연 그렇다고 공감한다.

버섯은 곰팡이 꽃, 또는 열매, 정확히는 생식 기관이다. 통속적으로 식물로 여기지만 진화학적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동물에 더 가깝다. 먹을 때 느끼는 감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버섯을 빚어내는 곰팡이는 생태계 네트워킹 설계자며 시공자다. 식물이 크게 흥륭시켰지만 식물 90% 이상이 곰팡이와 공생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계 기축은 곰팡이다.

식물 공부가 필연으로 불러 곰팡이에 심취하는 요즘 내 관지에서 버섯이 지닌 미학은 꽃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태고, 그 고졸함, 현란을 금한 원색이 나를 겸허로 이끈다. 이 아침도 넙죽 엎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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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생명사 - 38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은 항상 패자였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 장수철 감수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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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책 세 권을 연거푸 읽었다. 셰인 오마라 걷기의 세계, 이나가키 히데히로 패자의 생명사, 베론다 몽고메리 식물의 방식이 바로 그들이다. 같은 목적이나 주제를 가진 책들이 아님은 물론이고, 나 또한 그렇게 읽지 않았다. 다 읽어갈 무렵 딱 한군데로 사색이 수렴되더니, 거꾸로 거기서 모든 사색이 발산해 나아가는 전에 없던 경험을 했다. 이상한 느낌에 이끌려 몇 날 며칠을 되작거리고 집적거리고 끼적거리고 덤볐다. 아직 사색이 온전하지는 않으나 일단 쓰기 시작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논리가 생기고 창발이 일어나리라는 네트워킹 신뢰에 턱 하니 맡긴다.

 

셰인 오마라 걷기의 세계는 뇌과학자인 저자가 걷기를 예찬하는IN PRAISE OF WALKING의미로 쓴 책이다. 도구적 의미 넘어 걷기를 중시해온 나로서는 당연히 반가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좋은 책이지만 내게는 썩 좋지만은 않았다. 뭔가 묵직한 메시지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그러나 여태까지 걷기를 정색하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한테라면 매우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패자의 생명사를 쓴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다른 책을 통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식물학자다. 싸우는 식물, 전략가, 잡초와 더불어 생존전략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책은 통속한 상식을 뒤집는 시선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흥미롭고 쉬운데다가 짧기까지 한 글들로 구성되어 여름 독서용으로 아주 알맞다. 그렇다고 결코 가벼운 이야기이지만은 않다.

 

베론다 몽고메리 식물의 방식은 그 내용에 우선한 다른 특별함을 지닌 책이다. 실제 분량이 160여 쪽인데, 미주가 47쪽이나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글쓰기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한 공부가 얼마나 옹근가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이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몇 가지 빼면 모두 익히 아는 내용이고 내 관지에서는 불철저하기도 하지만, 이 책 또한 식물을 정색하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한테라면 매우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들을 한꺼번에 놓고 한 가지를 사색하도록 이끈 부분은 패자의 생명사에 나오는 니치niche 이야기다. 나는 여기서 니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생태학적 위치인 니치는 생존하기에 꼭 맞는 자기 자리다. 인간 조상인 어떤 유인원이 tree crown에 처음 자리 잡았다. 여기서부터 인류 영욕 역사가 시작된다. 내가 곡진히 관심 둔 부분이 바로 여기인 만큼, 이야기는 이전과 사뭇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리뷰 형식도 그렇고, 이야기 내용도 그렇고, 나 스스로 기약한 바가 없다. 종착지를 정하지 않고 떠나는 여정이므로 그냥 가는 대로 한번 가본다. 그래, 발맘발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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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안 산과 바깥 산이 네 개씩 있다. 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이 네 개 안 산이고, 북한산, 용마산, 관악산, 덕양산이 네 개 바깥 산이다. 이때 안과 바깥은 물론 한양도성을 중심 삼은 풍수 표현이다. 유난히 낯선 이름이 바로 덕양산이다. 사실 나만 해도 30년 전에 행주산성 가본 적이 있으면서 그 성을 품은 산이 덕양산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덕양산(124.8m)은 작은 산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미 위례 백제 때부터 여기에 성을 쌓았다. 물론 고려 때도 사용했다. 마침내 조선 때 임진왜란에 이르러 행주대첩 근거지로서 큰 산이 되었다. 지금은 비록 일부만 남아 있지만, 산성이 모조리 없어진다 해도 덕양산은 다만 동네 뒷산으로 퇴락하지는 않으리라. 늘 그러하듯 느닷없이 깊어지는 숲에 놀라며 천천히 오른다.

 

정상에는 행주대첩비가 우뚝 서 있다. 주민이 먼저 자발적으로 세웠는데 나중에 정부가 들어 뜨르르하게 각을 잡았다. 그런 토건 벌여 매판 정체성을 호도한 박정희가 글씨도 써주었다. 그 풍경을 차마 기릴 수는 없다. 다행히 비 뒷면에 돌덩이를 들어 나르는 민중 모습이 있어 마음에 눌러 담는다.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가 뚫리면 한양도성은 한 걸음이겠구나, 와닿는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폭염주의보에 아랑곳하지 않고 땀범벅인 채 오르내린다. 버섯 보고 길 벗어나기를 반복하면서 틈틈이 열려 하늘 아래 펼쳐지는 한강 주변 풍경을 이슥히 내려다본다. 역시 인간에게 작은 산이란 없다. 언제 다시 이 큰 산에 들지 모른다. 그럴 일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일 없어도 덕양산과 한 숨결 나누었으니 서운하지는 않다.

 

숲에서 나와, 도시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한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 자리는 모두 인맥이 결정하는데 나는 왜 맥만 쌓을까? 나는 인간을 사랑해 인간이 되었으나 인간에게 절망해 되돌아가려 하염없이 숲으로 향하는 나무일까? 할 수만 있다면 뇌 포함 내 모든 기관을 해체해 온 생명 네트워킹 만드는 제물 삼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사실이다.

 


아스라히 보이는 북한산과 용마산 모습




구름보다 더 멀리 펼쳐져 있는 관악 능선




돌덩이를 들어 나르는 민중




숲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강 풍경




영지버섯이 자라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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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4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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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4 15: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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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다가 다시 시작된 치과 치료를 마치고 안양과 과천 경계를 넘나들며 난 길을 따라 관악산으로 들어갔다. 국기봉(525m)을 넘고 국사봉을 지난 뒤 연주대 직전에서 서울 관악구로 접어들어 서울대학교 쪽으로 내려갔다. 잠시 캠퍼스를 경유하다 다시 계곡으로 들어가 관악산 공원 입구로 나왔다. 4시간 30분에 걸쳐 산을 넘었더니 건강 앱에 17km가 떴다.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한의대 후배들한테 강의한 뒤 함께 식사했는데 그다음 날부터 컨디션이 급작스레 나빠졌다. 그래서 더욱 산을 향했다. 게다가 몸 탓으로 위축되는 마음 상태라면 지난번 문수봉-비봉 경험 결과를 확인할 절호 기회라 여겼다. 거의 매일 사고가 나는 이른바 악산이라는데 출퇴근 복장으로 들어가 어찌 적응하는지 두고 볼 일이었다.

 

조망 관점이 이뤄지는 곳까지 올라가서 봐도 관악 정상 기후관측소와 송신탑 무리는 아스라할 따름이다. 다행히도 나는 등산하지 않고 숲 요정을 찾아다니므로 매 순간 집중과 확산이 뒤섞이면서 빚어내는 압축 시간 덕분에 본디 짐작보다 이르게 연주대(629m) 가까이 이르른다. 눈앞에 나무나 바위 아닌 물체들이 수직으로 들이닥치고야 황급히 정복길을 거둔다.

 

북한산 못지않게 바윗길이 많고 위험하지만, 문수봉-비봉을 떠올리면 단박에 표정이 풀린다. 정색하고 낭떠러지 끝에 서본다. 고요하다. “됐다.”가 확실하게 됐다고 한다. 치료하는 일에 그다지 문제 삼을 일이 아니어서 그동안 놔두었던 내 마지막 공포가 마침내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로써 또 한 걸음 온전함에 다가선다. 물론 누구도 온전할 수는 없지만.

 

인간에 비하면 관악산은 온전히 아름답다. 경기 오악에 속하며 금강산과 견주어 西금강이라 했다니 과연 그럴 만하다. 빼어난 바위 자태가 분명 북한산을 압도한다. 더구나 내가 ’ ‘애정하는 함박꽃나무를 산에서 보기는 여기가 처음이다. 숲을 나서는 마지막 순간, 목이 잔치까지 벌여준다. 우리 집 거실 정남향에 바로 이 관악이 장엄히 앉아 계시니 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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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평택 사는 50년 지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밤늦게까지 마신 술이 살짝 덜 깬 채, 일요일 아침 일찍 서울로 왔다. 그냥 귀가하기는 아쉬운 시간대라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잠시 생각한 끝에 독립문역에서 내려 인왕산 숲으로 향했다. 인왕산에도 둘레길이 있었다. 창의문 근처까지 걸으면 얼추 점심시간이 될 듯했다.

 

다른 숲에서와 마찬가지로 버섯과 돌꽃을 찾으면서 천천히 걸었다. 늘 그렇듯 숲은 언제나 예상 밖이다. 연방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며 눈에 담고 사진에 남긴다. 바로 길가지만 정색하고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관목 덤불 뒤에서 발견한 영지 군락이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다. 군데군데 열린 공간을 통해 대도시 풍경이 달려들곤 하지만 숲은 느닷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얼마쯤 걷는데 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도시 인근 낮은 산 숲이 깊으면 얼마나 깊겠냐며 데면데면하게 지나간다. 나는 웃으며 방금 거둔 영지를 보여주었다. 숲은 그들이나 나한테 충분하게 깊다.


숲에서 나와 효자동을 지나는데 관광버스가 줄줄이 서 있다. 청와대 구경 온 황국신민 나르는 차량이다. 높은 진동수 신라어를 구사하는 어떤 사내가 의기양양 떠든다. 대통령 떠바리가 마 그쯤은 돼야 하능 거 아잉교? 그래요, 당신들은 그렇게 얕게 살다 가세요. 깊은 숲에서 배운 깊은숨 한 번 쉬고 나는 국시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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