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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생명사 - 38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은 항상 패자였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 장수철 감수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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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상담 치료받은 누군가 소개해, 50대 중반 사람이 찾아왔다. 기쁘든 슬프든 도대체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잘하든 못하든 도대체 하고 싶은 일이 없다, 이런 호소가 고갱이인 얘기를 시큰둥하게 말한다. 아버지에서 비롯된 원 가정사도 복잡한데, 성인 이후 본인이 엮어낸 가정사는 훨씬 더 풍파투성이다. 세 번 결혼했고, 세 번 이혼했으며, 그 뒤에 찾아온 여러 연애 기회마다 단기간에 파국을 맞았다. 이따금 찔끔 눈물을 보이기는 했지만, 대체로 이웃집 대추나무에 대추 열린 이야기 하듯이 한다.

 

묵묵히 듣다가 어느 순간 내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에든 그렇게 설렁설렁 지나가나요?” 처음으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 말인데 여전히 심드렁하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는 부연한다. “결혼, 이혼, 그렇게 쉬운 일 아닙니다. 중차대한 인생사지요. 그런데 세 번이 한 번처럼, 아니 남 일처럼 지나갔군요.” 그 인생 어디에도 각각 다른 사건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울증 원인이자 결과며, 또 그 증거다.

 

내가 곡진하게 한답시고 공부하는 동안 결코 그래서는 안 될 이름들을 잃은 몇 가지 사례가 이번 독서와 리뷰를 통해 드러났다. 초행길에서 맞닥뜨리기 마련인 예상 밖 풍경이 나는 놀랍고 고맙고 부끄러웠다. 다른 무엇보다 돋을새김 된 세 가지를 최종 요약한다.


  1. 소뇌 재발견: 대뇌 제국주의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제국을 해체해 평등한 연방을 만들 때가 차오르고 있다. 그 혁명 선두에 소뇌가 있다. 유물론과 유심론 모두를 주도했던 대뇌는 일극 집중 양극단에 빠져 인류와 지구생태계 모두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마음은 뇌가 아니며, 몸은 신체가 아니라는 진실을 대뇌보다 정확하고 민첩하고 섬밀하게 알고 실천하는 소뇌가 연방, 그러니까 평등 네트워킹 혁명을 개척하고 더불어 향수하게 한 다음 표표히 회향하리라. 만방 생명이여, 기립하라.

 

  2. 패자 재발견: 공동체 형성은 약자 생존전략이다.

 

네트워킹은 원리 문제가 아니다. 생사 가를 전장에 출몰하는 피땀 어린 수리 문제다. 약자이기에 패하고, 패하기에 살아남으려 무리 짓는다. 군집 생명은 낱 생명이 온 생명을 이루기 위해 한 생명으로 움직인다. 한 생명으로 움직이려면 패자 정체성이 필수다. 인간이 유구하게 집착해온 승자 정체성이 결과한 이제 여기를 보라. 승자 필멸 운명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인류는 오늘 져야만 살아남는 마지막 전선에 섰다.

 

  3. 나무 재발견: 인간 직립보행은 나무 본성에서 왔다.

 

사실 그동안 나는 나무에 누구보다도 진심이었다. 나무가 인간 생명의 근원이라는 인식에까지 도달했음에도 기이하게 직립보행이 그 본성에서 직접 발원했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패자의 생명사니치 대목 가운데 손 이야기를 듣는 순간 번쩍하는 느낌이 들이닥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꽝 하는 한 문장이 터져 나왔다: 인간 직립보행은 나무 본성에서 왔다. 앞 두 이야기면 몰라도 대부분 이 말은 수긍하지 못하리라. 나는 시방 혼돈을 계획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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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세계 - 뇌과학자가 전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의 경이로움
셰인 오마라 지음, 구희성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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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보행은 곧추서서 옮겨가는 일이다. 곧추서기와 옮겨가기 가운데 무엇이 핵심일까? 곧추서기다. 다른 모든 동물도 옮겨가지만 내내 곧추서서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곧추서기는 인간 조상이 수관을 니치niche로 삼은 데서 출발한다. 인간이 곧추서는 일에서 나무는 단순한 조건이나 수단이 아니다. 나무야말로 곧추서기 DNA 발원지 아닌가. 더군다나 심지어 나무는 옮겨가기까지 한다. 인간 직립보행은 나무 본성에서 왔다고 차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걷기는 우리 유구한 진화사적 과거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 미래이기도 하다.”(241)


저자가 여기에서도 끝내 걷기를 도구 차원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는 그 생각에 반대하기보다 관통하기로 한다. 걷기는 인간 목적이며 목표로서 미래다. 그 미래는 무리 짓기, 그러니까 공동체 네트워킹이다. 공동체 네트워킹은 식물 방식이다. 식물 방식은 패자 윤리학이다. 패자 윤리학은 평범하고 평등한 생명이 상호소통함으로써 공존공영하는 화쟁 존재론을 구현한다. 화쟁 존재는 혹시 우주가 소멸한다면 그 뒤에도 잔향으로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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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방식 - 서로 기여하고 번영하는 삶에 관하여
베론다 L. 몽고메리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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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변화시키는 잠재력을 지닌 식물 사이에서 보이는 협력 행동 가운데 군집swarming 현상이 있다. 군집은 별개 개체 간 상호작용에 기반한 공동체 행동 형태로서 작은 상호작용을 통해 복잡한 패턴을 형성하는 비상 전략이다. 이 현상은 다수 개체가 모두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간에 같은 방향으로 더불어 움직일 때 발생하는데, 능동 군집은 외부 힘 탓이 아니라 스스로 형성된다.......

  누구도 식물에서 무리 짓는 행동을 발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식물은 실제로 움직인다. 2012년 생장하는 식물 뿌리가 활발하게 군집을 이룬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뿌리가 무리 짓는 일은 공동체 새로운 전략으로서 영양소를 분해하거나 곰팡이, 박테리아 같은 다른 생명체와 공생할 때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도 참여한다. (113~115)

 

  인간 생태에 변화를 촉진하려면 식물이 생태계 천이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은 능력 필요하다. 인간 제도, 즉 생태계에서 문화적 변화를 이끄는 유능한 초기 리더는 선구자로서 기능한다.......

  선구자가 꾀하는 변화 목표는 많은 경우 초기에 혼돈 시기를 거쳐야 한다. 특정 생태계를 관리하기 위해 계획한 불놓기가 필요하듯, 고착된 패턴이나 현상 유지 행동을 잘라내고 변화된 결실을 향해 의도적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계획한 혼돈이 인간 생태계에도 필요할 수 있다. (116~117)

 

누군가 이제 인류에게 공동체는 사라지고 사회만 남았다고 말했다. 사회는 있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할 때, 그 사회가 다만 개인 집합이 아닌 한, 사회도 껍데기뿐인 상황이 아닌지. 자본이 신자유주의 람보르기니 타고 달리는 세상에서 각자도생으로 내몰리는 절대다수 인민에게 이미 사회라는 말조차 허구가 아닌지. 공동체 또는 사회를 가장한 인간 집단, 정확히는 극소수 과두 집단이 인류는 물론 지구생태계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상황이므로 공동체 내러티브를 재창조해야 할 역설 카이로스가 아닌지.

 

오늘 여기서도 승자 필멸 패자 필생이라는 역사적 진실은 가차 없이 진리다. 승자는 강해서 무리 짓지 않으므로 사라지고, 패자는 약해서 무리 지으므로 살아남는다. 사라질 승자가 접어버린 공동체를 다시 펴면 저들의 물귀신 전략에 당하지 않고 패자는 살아남는다. 공동체 재건은 비상 전략이다. 매끈한 본성 문제로 인식할 일이 아니다. 사회·역사적 책무, 그러니까 오늘 여기서 직면한 자가 천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다. “고착된 패턴이나 현상 유지 행동을 잘라내고 변화된 결실을 향해 의도적으로 옮겨가기를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혼돈이라는 외길을 걸어 들어온다. “의도적변화는 계획한혼돈이라는 외길을 걸어 들어온다. 현재 고착된 패턴이나 현상 유지 행동을 그대로 놔두면 인류와 지구생태계가 겪을 혼돈이 너무나 커서 대 멸절은 필연이다. 그 파국을 막기 위해 혼돈을 계획한다. 계획한 혼돈은 파국보다 한발 앞서 군집 지성을 깨운다. 깨어난 군집 지성이 바로 개체 사이에서 온전하게 일어나는 네트워킹이다. 이 네트워킹 원리와 능력을 구현하는 DNA가 발원한 곳이 다름 아닌 숲이다. 숲이 아득한 옛날부터 실행해온 천이가 모름지기 그 본진이다.

 

천이를 선두에서 이끄는 낭·풀을 선구자 또는 개척자pioneer라 한다. 버드나무나 콩과식물이 대표적인 선구자다. 선구자는 곰팡이 같은 다른 생명과 공생하여 토양 생태계 전체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다른 낭·풀이 들어와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게 한다. 그리고 표표히 떠난다. 개척, 공존, 희생(방하放下)이 선구자 낭·풀 본성이다. 이 선구자 본성을 생명 본성으로 삼아 마지막 삶 풍경을 그려 나아가고자 내가 지은 알라딘 서재 이름이 싸리·버들 글숲이다. 내가 계획한 혼돈을 기꺼이 겪을 인연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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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21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하루만에 매미가 저렇게 되는건가요? 안 그래도 요즘 창만 열면 말매미 소리가 어찌나 시끄러운지....예전의 참매미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ㅠㅠ

bari_che 2022-07-22 08:50   좋아요 1 | URL
애벌레가 땅속에서 나와 허물 벗고 날개 달린 성체가 되기까지 대략 12~13시간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포식자 눈에 띄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주위 조건에 상응해야 하니까 위 사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절묘한 모습을 취합니다. 그러나 아래 사진처럼 탈피각은 이제 그럴 필요가 없지요. 선명한 대조로 눈에 잘 띄어도 이미 과거지사니까요.^^

아, 바람돌이 님 살고 게신 곳은 그런가요? 제 한의원 있는 동네는 아침에 참매미 소리부터 들립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