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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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자랑은 반역자 전경을 실팍하게 그려내 준다는 데 있다. 반역자란 제국주의 또는 (특히 정착형) 식민주의 본진을 의미한다. 풍경화 들머리를 장식한 네덜란드를 비롯해 영국, 그 영국을 이은 미국, 스페인, 포르투갈을 포함한 유럽 백인 가운데 직접·능동·적극적으로 살상과 착취를 저지른 자들 말이다.

 

반역이라는 표현이 지닌 가장 넓은 의미는 지구생태계 네트워킹 파괴 행위다. 개별화하면 국가, 부족 공동체에 가하는 살상·착취 행위다. 물론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라는 표현과 함의가 같지만, 부역이라는 표현과 짝하여 써서 살상·착취를 당하는 존재 관지를 더 잘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기계적 구분은 아니더라도 부역이 대개 살상·착취를 당하는 존재에게서 발생하므로 침략 중첩구조를 암시해준다.

 

프리모 레비가 증언한 대로 침략 중첩구조는 실로 중대한 문제다. 다시 인용한다.

 

현실에 맞닥뜨린 최초의 충격은 예견하지 못하고 이해도 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공격이었는데, 관리자 포로라는 새롭고 이상한 적으로부터 시작됐다.

 

관리자 포로가 바로 살상·착취를 당하는 존재에게서 발생한 특권층 부역자다. 직접·능동·적극적으로 제국주의에 동조·가담한 식민지 출신 지배집단이다. 이들 존재는 제국주의 침략을 경험한 사회를 해석하고 변혁하는 데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육두구의 저주에는 이들 이야기가 거의 없다. 이해할 만하다. 그 이야기가 제국 침략 구조 서사를 평평하고 납작하게 만드는 구실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이 문제를 반드시 넓고도 깊은 서사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 글을 쓰는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여전히 그 후기 구조 아래 놓인 이 나라에서 태어나 68년째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부역 스펙트럼과 그 생태 서사에 깊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고백하건대 그러나 내 공부는 옹글지 못했으며, 다른 사람 공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특권층 부역자들은 그렇다 치고 이른바 진보 좌파를 자처하는 자들도 부역 프레임으로 우리 사회를 해석하고 변혁하는 공부가 거의 전혀 되어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과거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이른바 NL: PD 뭐 이런 정도로는 어림없다. 물론 그 이후 진전된 공부도 없는 듯 보이니 나는 그냥 내 방식으로 학문적 연구 따위를 떠나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이야기를 곡진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제국 침략 구조와 역학을 알아야 한다. 서구 제국주의가 발호하기 시작한 이래 지구 전역에서 벌어진 잔혹한 살상·착취를 모두 알기는 어렵다. 중요한 여러 이야기가 빠지긴 했지만 육두구의 저주만으로도 우리는 생생하게 반역자 전경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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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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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디 아파서 책장을 수없이 여닫으며 읽은 세 번째 책이다. 첫 번째는 프리모 레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 두 번째는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쓴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인간에 대해 형언하기 어려운 의구심이 들 때마다 책장을 닫았다. 살육당한 존재가 발하는 말 아닌 말을 들으려고 살아남은 자 행렬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책장을 열었다. 여닫음이 분명 상반된 행위건만 같은 질문 하나만 솟아오른다: 이대로 여생을 살아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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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년 동안 사실상 절독 절필한 가장 큰 이유는 타인, 특히 제국 지식인이 쓴 글을 더 이상 소비하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거기에 주해를 붙이기 싫었다는 데 있다. 지난 60여 년 동안 내 삶을 이끈 앎과 힘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뼈아프게 성찰한 결과였다. 앞으로 절대 제국 서적을 읽지 않겠다거나, 주해 리뷰 따위를 하지 않겠다는 결벽증으로 미끄러지지 않았음은 물론이지만, 저들을 대하는 내 눈빛이 사납게 깊어졌음 또한 물론이다. 제국 유학파 국내 지식인들이 그려내는 부역 풍경에 대해서는 심지어 이슥한 자비까지 베풀 용의가 있다. 왜냐하면 저들은 모르고 나는 아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생이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던 어느 날 숲은 그 진실을 무섭고 아프게 알려주었다. 느닷없이 돋을새김 된 각성 앞에, 그리고 홀연히 그가 나타났다: 아미타브 고시. 그가 내게 건넨 이야기는 육두구의 저주였다. 긴 세월 동안 개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제국주의 전경을 이 책은 도도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탁월함이 단순히 자연인 역량에서 나왔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그는 제국주의 원조인 영국이 오랫동안 지배했던 인디아 콜카타 출신으로 이집트를 거쳐 영국, 마침내 현대 제국주의 일극 본진인 미국까지 흘러가며 살아온 경계인,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부역자기 때문이다.


ulfandersen.photoshelter.com


Basso Cannarsa/Opale

 

실제로 그가 프리모 레비와 본질이 같은 인식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 눈동자를 본 순간 프리모 레비가 떠올랐다. 같은 타래 인간임을 직감했다. 결이야 서로 다를 수밖에 없지만, 제국 변방에서 최대한 증언했고 끝내 증언을 멈추지 못할 발걸음으로 생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서로 같다. 부역자가 아니라면 이들은 결코 증언할 수 없다. 증언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스스로 부역자라는 진실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반역자 코스프레를 하는 능동 적극 부역자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수동 소극 부역자까지 영이 결딴난 자들은 증언 자체를 알지 못한다. 증언하는 부역자는 그러므로 나나보조다.

 

나나보조는 (포타와토미족이 거북섬이라 부르는) 북미 대륙 토착민 아니시나베족 전승에 등장하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마니도(영적 존재)trickster. 창조·균형·겸손과 파괴·불균형·오만을 구현하는 쌍둥이 중에서 전자를 향도하는 존재다. 제국주의 치하 식민지 문맥에서 보면 각성한 부역자다. 하필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를 나나보조에 의탁하는 까닭은 영·미 제국 정착형 식민주의가 가장 참혹하게 도륙한 토착민이 빚어낸 절묘한 불순물캐릭터를 향해 오마주로 바치고 싶어서다. 일제와 미제에 부역한 내게는 차마 이름도 없다. 이제부터 그려내는 나나보조 지라시 서사 전체를 내 이름에 갈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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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 계곡 사건은 천하 죽비로 나를 내려쳤다: ! ! !

 

여태까지 공공연하게 순물질의인 행세를 하며 살아왔다. 항일무장투쟁 전사였던 증조부, 매판 부역 세력에 맞서는 행진을 따라갔던 나, 그 두 단순화한 이미지 서사로 현실 모순을 은폐한 채 매판 부역 지배층에 퍼부은 날카로운 시선 덕 보며 살아왔다. 내가 저들에게 퍼부은 시선 밑천은 어디서 왔는가? 많은 부분이 반역자와 저명 부역자에게서 왔다. 그 발자국을 따라 여기까지 왔으니 돌연 사라지고 말 수밖에 없다: 자가당착. 이제 냉정 정확한 나나보조(Nanabozho(북미 선주민 신화에 나오는 trickster))길을 가야 한다. 불현듯 프리모 레비를 떠올린다. 그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권층 포로들을 보자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지고 또한 더 중요해지는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여기에서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우리가 인간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또는 유사한 시련이 다시 닥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을 방어하고 싶다면,·······이 인물들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권층 포로는 라거의 전체 인구에서 소수였지만 생존자들 가운데서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말로 한 이야기든 글로 쓴 것이든 생환자들의 기억 중 대부분이 이렇게 시작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 수용소의 현실에 맞닥뜨린 최초의 충격은 예견하지 못하고 이해도 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공격이었는데, 관리자 포로라는 새롭고 이상한 적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자신은 잃어버렸지만, 상대는 아마도 아직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을 존엄의 불씨를 꺼뜨리고자 했다.

 

라거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사회에서 특권층의 부상은 걱정스럽지만,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권층은 유토피아에서만 없다. 모든 부당한 특권에 대항해 전쟁을 하는 것은 의로운 인간의 과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수 또는 한 사람이 다수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곳에서 특권은 태어나고, 권력 자체의 의지에 반하면서도 특권은 증식한다. 그러나 한편, 권력이 특권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관리자 포로라는 혼성 계층은 수용소의 골격을 형성하며, 동시에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주인과 하인의 두 영역을 나누는 동시에 연결하는, 경계가 불분명한 회색지대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판단 욕구를 교란하기에 충분한 무엇을 그 안에 품고 있다.”(44~46)

 

실로 통절한 지적이다. 특권층 포로, 그러니까 부역자에게서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인간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또는 유사한 시련이 다시 닥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을 방어하고 싶다면,·······이 인물들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함에도 나는, 우리는 딴짓하느라 유구하게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늦었지만 바야흐로 부역 생태 서사 기치를 올릴 때다. 누가 그 기치를 올리는가?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 있는 사람 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을 찬찬히 검토하고, 자신의 기억을 모두 되살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또 그 기억 중 무엇도 가면을 쓰고 있거나 위장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점검해본다. 그런데 아니다. 명백한 범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누구의 자리를 빼앗은 적도 없고, 누구를 구타한 적도 없으며·······, 어떤 임무를 받아들인 적도 없고·······, 그 누구의 빵도 훔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각자가 자기 형제의 카인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자기 옆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그 사람 대신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상상, 아니 의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상이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자신들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용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증언했다.·······아직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증언이 생존의 특권, 그리고 큰 문제 없이 여러 해를 사는 특권을 내게 가져다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를 괴롭힌다. 왜냐하면 특권에 걸맞은 결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말문이 막힌 상태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고, 자신들의 증언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다.”(95~99)

 

실로 통렬한 고백이다. 최악의 사람, 예외, 그러니까 부역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만이 부역 생태 서사 기치를 올릴 수 있다. 이 부역 생태 서사야말로 수용소 사회, 수용소 국가, 수용소 지구를 해석·변혁할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다. 0.1% 반역자는 영혼이 죽었으므로, 0.1% 최고의 사람은 육신이 죽었으므로, 99.9% 부역자 가운데 제 오장육부를 드러내는 사람이 부끄러운 만큼 찰지게 반역과 부역과 희생 증언을 구성한다.

 

부역자임을 자인하는 나나보조라야 온전히 증언할 수 있다. 내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나보조 불순물 생명이라야 영적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 나나보조가 경계를 가로질러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을 깨뜨릴 수 있다. 그 나나보조가 최고의 사람이 침묵으로 들려주는 진실을 부단히 웅얼거릴 수 있다. 그 나나보조가 반역자들을 꿰뚫어 보는 위치에 서서 스스로 부역자임을 알지 못하는 부역자들이 가닿기 어려운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0.9% 나나보조가 세계를 망치는 행동대원인 99% 부역자 중 2.6%만 깨우면 인류에게 희망을 남길 수 있다. 2.6% 부역자는 나나보조 시야 안에서 무심코 부유한다.

 

부유하는 부역자를 깨우기 위해서는 부역 생태 서사가 필수적이다. 부역 생태 서사는 반역자에 빌붙어 자신과 다른 생명 간 네트워킹을 파괴한 부역자 내부 고발이다. 내부 고발은 곡진한 참회록이며, 옹골찬 격문이며, 제국 프레임을 부수는 학문이며, 순수주의 가면을 벗기는 문학이며, 최고의 사람을 위한 해원 굿이며, 네트워킹 재건을 향한 기도다. 네트워킹은 인류 너머 저 미소 생명, 더 멀리 바이러스, 심지어 비생명까지 잇는 우람하고도 섬세한 화쟁 운동이다. 화쟁 운동이 실패하면 지구생태계에 장차 인간이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역 생태 서사는 묵시록이다. 내가 쓰는 이 부역 생태 서사는 내 증언(testamentum)이자 약속(testamentum)이자 유서(testamen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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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오전 느지막이 출발해 도봉산으로 향했다. 서울 5대 산 두 번씩 드나들기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회룡천이 흐르는 계곡으로 올라가 도봉천이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올라가는 쪽은 눈이 있어도 괜찮고 내려가는 쪽은 눈이 있으면 위험하므로 북한산국립공원 도봉분소에 전화해 남쪽 사면 눈이 다 녹았는지 문의했다. 직원 입에서 아이젠이라는 단어가 나오긴 했으나 그리 심각하지 않게 들려 회룡천을 따라 눈 덮인 골짜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룡천이 갈라지면서 생긴 두 계곡 분기점을 확인하고 지도로 살펴본 코스로 접어든다. 그런데 스마트폰 위치 표시가 본디 가려고 했던 길과 다른 길 위에 내가 서 있다고 가리킨다. 마침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내가 본디 가려던 길은 등산로가 아니란다. 그가 알려준 곳에 가보니 과연 입구가 폐쇄돼 있다. 잠시 망설이는 동안 내 발은 이미 막아 놓은 밧줄 너머에 가 닿는다. 애당초 그 길로 가려던 이유가 다른 지류보다 길게 계곡을 이루기 때문이니 당연하다 여긴다. 눈이 녹지 않아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순간, 한 사람이 낸 발자국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예상보다 평소보다 더 어려움을 감지면서도 홀린 듯 그 발자국을 따라간다. 이제 내려갈 수는 없다 싶은 산등성이에 이르렀을 때 홀연 발자국이 사라진다. 순간 날카로운 당혹감이 들이닥친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제야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살핀다. , 이런! 발자국 따라오느라 방향을 확인하지 못한 사이 예정된 방향과 한참 틀어져, 계곡 좌측 능선 지점에 얹혀 있다. 본디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바위가 가로막으며 시시각각 시선을 가차 없이 꺾어댄다. 바위 모서리, 관목 줄기, 교목 뿌리를 의지해 오르고 오르는데 온몸이 후들거린다. 아침 대충 때우고, 점심 굶고 온 터라 저혈당 상태가 된 탓이다. 가슴 터질 듯한 거친 호흡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더 문제는 해가 이미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다.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오도 가도 하지 못하고 구조를 요청하거나 헤매다가 다치든 죽든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판이다. 회룡천 쪽으로 되돌아 내려가는 일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그 찰나 아득함이 밀려오고 뒤이어 절망감이 휘감겨오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다. 무조건 아래를 향해 미끄러지고 구르며 가기 시작한다. 눈 덮인 얼음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실낱 같이 들려오는 계곡까지 내려온다. 군대처럼 달려드는 크고 작은 바위 때문에 물길을 행로로 잡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다시 능선으로 향한다. 절벽에 가까우나 가장 짧은 코스를 택해 필사적으로 기어오른다. 굴러떨어질 위기를 서너 번 겪으며 겨우겨우 능선에 올라선다. 한숨 돌리며 살펴보니 이미 장갑은 너덜거리고, 운동화 속은 눈이 들어가 녹은 물로 질벅거리며, 손과 팔다리는 상처투성이다. 상처를 살피다 문득 저만치 보니, , 또 한 사람 발자국이 눈에 총탄처럼 날아든다. 올라올 때 겪은 일은 까마득히 잊고 또 홀린 듯 발자국을 따라간다. 점점 얇아지는 햇빛을 의식하며 정신없이 걸어 이젠 안심해도 괜찮겠구나 싶은 지점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본다. 아뿔싸! 다시 발자국이 사라지고 없다. 그 찰나 소름이 돋는다. 감전 상태로 꼼짝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못 박힌다. 으스스 전신을 휘감는 추위에 문득 놀라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이리저리 더듬어 길을 찾는다. 몇 차례 가던 길 되돌아오기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평평한 물가 길을 발견한다. 얼마 뒤 낯설지 않은 작은 둔덕을 보고 올라가니 바로 거기가 그 처음 자리, 폐쇄된 입구다. 그래서 여기 이름은 '용이 돌아오다回'.

 

돌아오는 길 회룡폭포를 막 지날 무렵 어떤 풍경 하나가 벼락같이 떠오른다. 황석공이 한 번은 한 짝, 또 한 번은 두 짝, 신발을 벗어 던지고 그것을 주워 신기도록 해서 장량으로 하여금 병법 깊은 뜻을 깨닫게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숲을 떠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하루가 지나자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은 더욱 아프다. 얼굴을 뺀 모든 근육이 두들겨 맞은 듯하다. 깨달음은 그렇게 숲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왔던 내 몸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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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3-01-25 0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안전한 산행 하시길 바래요. 글 읽다 놀라 댓글 남깁니다. 안녕하세요?

초원 2023-01-25 09:58   좋아요 2 | URL
다시 생각을 뒤돌아 보니, 그 와중에 사진을 남기시고 여유가 있으십니다. 군대처럼 달려드는 바위는 또 어떤 바위인가요?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용이 돌아오는 점이기도 하고, 용의 반환점이기도 하겠습니다. 놀라고 재미있게 읽다 갑니다.
몸살로 고생하시겠네요. 쾌차하세요.

bari_che 2023-01-26 10:19   좋아요 0 | URL
눈 덮인 산에서 헤맨 그 네댓 시간을 오래토록 기억할 듯합니다. 어쩌자고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그리 무모한 지경으로 끼어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산령의 신년 기획 같습니다. ㅎㅎ

군대처럼 달려드는 바위란 가도 가도 끊임없이 줄지어 튀어나와 길을 막아서는 바위들 풍경을 촌스럽게 묘사한 것입니다. ㅋㅋ

걱정해주신 덕분에 전신 근육통이 많이 풀렸습니다. 무엇보다 대퇴 근육이 부드러워져 걸을 만하니 편합니다. 고맙습니다. ^^

얄라알라 2023-05-21 15:20   좋아요 1 | URL
제가 알라딘 유유자적하면서 활자로 만나게 된 많은 멋진 분들 중에,
초원님과 bari_che님 사이, 콕 집어 단어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공통분모가 있는데

이곳에서 두분의 대화를 엿보게(?) 되니, 미소가 절로 올라옵니다^^

바람돌이 2023-01-25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휴 큰일날뻔 하셨네요. 모쪼록 안전한 산행 하시고 몸도 빨리 나으시길요.

bari_che 2023-01-26 10:27   좋아요 2 | URL
산에 아무도 없었기 망정이지 누가 봤더라면 적잖이 민망할 뻔했습니다. 수염 허연 늙은이가 평상복 차림으로 눈 덮인 산을 헤매고 다녔으니...ㅉㅉ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경험 같습니다. 머리로 알았던 진실을 몸으로 느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