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제국대학과 그 연장선인 서울대학교 인맥이 말글 부역에서 근본적 장악력을 행사한다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서사를 교육기관, 교육자, 그 이전 교육 문제로 소급해가며 전개하도록 안내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문 다음에 기본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교육이므로 여기가 이야기할 바른 자리다. 교육기관 문제는 서울대학교를 필두로, 사립대학교, 중고등학교, 초등학교, 유치원까지 사학 집단을 이야기한다. 교육자 문제는 그 교육기관을 형성하고 소유하며 교육행위를 하는 부역자를 이야기한다. 교육 문제는 식민지 시절과 그 이후 부역자가 받은 제국 교육, 그리고 그들이 주도하는 현재 대한민국 교육 내용을 이야기한다.

 

1. 경성제국대학은 태생부터 음모였다. 큰 취지는 물론 세부 구성까지 식민지 교육에 적합하도록 기획한 교육 조직이다. 법문학부와 의학부만으로 출범하고 조선인 입학을 제한한 사실이 그 증거다. 전쟁에 유용하다고 판단해 뒤늦게 이공학부를 개설했으나 조선인 입학은 더욱 엄격히 제한했다. 일제가 패망하자 미군정이 이양해 경성대학으로 바꿨다가 1946년 서울대학교를 설립하면서 통합했다. 바로 이 대목이 결정적 문제다. 일제 부역자를 청산하기는커녕 그대로 흡수해 오늘날 서울대학교를 이 꼴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가 명실상부한 국립대학교이기 위해서는 경성제국대학교와 연을 끊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이런 논쟁이 일어나듯, 경성제국대학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부역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험한 시절 대체 누가 무슨 능력-재력, 일본어 입시에 합격할 학습력-으로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실한 부역자 자녀 아니면 입학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하는 말도 사실이어야 한다. 20년 남짓 시간에 배출한 810여 명 졸업자가 고급 엘리트로서 그 뒤 어떤 지위를 누리며 살았고, 그 후손은 현재 어떠한지,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역자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저들 대부분을 부역 서사에서 제외할 이유란 없다고 본다.

 

오늘 여기서 서울대학교를 생각해본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이 나라를 통치할 무렵 육서당이란 말이 널리 떠돌았다.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 출신들이 나라를 쥐고 흔든다는 일차적 의미 뒤에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지금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없이 서울대학교, 특히 법대 출신만으로 두 의미 모두를 충족하고도 남는다. 저들은 경성제국대학 나와 부역하던 부조 또는 선배와 똑같은 의식 속에 있다. 저들은 정치적 보수 또는 극우 세력이 아니라 그냥 단세포적 부역 세력일 뿐이다. 단세포적 지식분자는 미망이다. 서울대학교 세계 순위(56)가 싱가포르국립대학(19)에도 미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제 사회 각 분야 이야기로 넘어간다. 사실 이 이야기만큼 중요한 무엇은 없다. 우리가 선 땅을 온전히 한 바퀴 돌면서 지평선을 응시해 눈앞에 어떻게 부역 온 풍경이 낱낱이 그 얼굴을 드러내는지 봐야만 한다. 여기에 관한 연구 또한 기대만큼 잘돼 있지 않다. 역사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특권층 부역자들이 많은 진실을 은폐했고, 그 증거를 인멸했기 때문이다. 분야마다 공부 질이나 양이 다르기도 하고, 내가 모르기도 하니 그 한계 안에서 체계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최소한 기본적인 손대기나마 진행한다.

 

말글(어문) 분야 이야기로 시작한다. 말글 분야는 국어학이라는 학문 문제를 다룰 때 하면 되지만, 그 어떤 분야보다도 우선해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가장 먼저 입 댄다. 말글 부역 풍경이야말로 모든 부역 풍경의 출발이다. 인간은 결국 말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진실을 간파한 제국주의는 식민지 토착어를 말살하는 전략부터 구사했다. 일제라고 어찌 예외였겠는가. 특권층 부역자도 여기부터 첨병 노릇을 시작했다. 물론 오늘날까지 저들은 그 짓을 지속·강화하고 있다. 그 속살을 살펴본다.

 

우리는 이미 오랜 세월 한자 식민지로 살아왔다. 우리 글이 없었던 탓으로 말하자면 불가피한 일이니, 식민지라 표현하는 일은 과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에도 5백 년 동안 한자가 공식 문자였다는 사실과 마주하면 유구한 특권층 부역 세력이 만들어 놓은 기득권 시스템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글이 공식 문자인 현재도 여전히 한자-어는 한글-말과 상하관계를 유지하며 세력을 떨치고 있다. 이 바탕 위에 한자 의존도가 훨씬 높은 일본어가 들어와 식민 그늘은 더 어두워졌다.

 

일본어 식 말하기와 글쓰기가 깊숙이 자리 잡았고, 일본식 한자어가 우리식 한자어를 대체했으며, 일본 어휘를 우리 어휘인 양 쓴다. 일반 대중이 이런 오류에 휩싸여 있는 일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국어학자, 교육자, 전문적 글쓰기를 하는 지식인, 문학인, 언론·방송인 입에서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일은 실로 참담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도리어 언어 대중을 호도하니 말이다. 설상가상 미군정 이후 영어가 또 다른 지배 언어로 등극했다. 영어식 훼손은 더욱 큰 위력으로 우리 말글 목을 조른다.

 

말글 부역 본진은 물론 특권층 부역 집단이다. 저들 내부 공식 언어는 당연히 일본어와 미국식 영어다. 유학을 통해 습득한 저들 종주국, 아니 조국 언어는 의당 다른 근본 없는” “들 언어와 결별해야 했다. 그리고 근본 없는 것들은, 일본어·영어식 한국어쓰게 하면 감지덕지할 일이라고 여겨 만든 조직이 다름 아닌 국립국어원이다. 공식적으로 표방한 목적과 일반인이 기대하는 바와는 달리 국립국어원은 어지러운 국어 상태를 고의로 방치 심지어 유도하고 있다. 그 결정적 증거가 표준국어대사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한글학회가 펴낸 우리말큰사전이 널리 쓰이는 길을 원천 봉쇄해버렸다. 이는 조만식을 위시한 자주 인사들이 민립대학 운동을 벌이자 이를 무력화하려고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던 사건과 그 맥이 닿아 있다. 실제로 그 경성제국대학 부역 인맥이 국립국어원을 장악했고, 지금까지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출신 철밥통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아베 노부유키가 말한 전형적인 좋은 정책이다. 좋은 정책을 통해 식민지 말글살이는 제국 입맛에 맞게 발전하리라 굳게 믿는다.

 

221은 국제 모국어의 날이다. 개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구성 요소이자, 공동체 생명·문화 구성을 담당하는 언어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다양성을 수호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정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 약 6,000종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으며, 실제로 2주마다 1개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영어 지배 구도가 굳어지고 있어서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이에 맞서 프랑스·독일·러시아는 자국어 보호를 천명하고 나섰는데 우리는 이 지경이다. 아베의 축원은 과연 영검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용문산 제일봉은 백운(白雲)이다. 높이로만 따지면 가섭(1157m)이지만 자태나 전망을 고려해서 이렇게 평하는 다산 선생 이외 여러 사람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2023430일 나는 사나사(舍那寺) 계곡으로 들어가 백운봉 아미(蛾眉)을 스치고 연수리 계곡으로 나와 그 으뜸 생태에 극적으로 휘감겨보았다.



경의·중앙선 오빈역에서 내려 마을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고 작은 재를 두 개 넘어 크게 헤매지 않고 사나사에 도착한다. 스마트폰 지도에 그려진 길이 정확하지 않아 계곡 길로 진입하는 입구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여러 번 그랬듯 방향만을 정확히 잡고 없는 길을 만들며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동안 여러 번 되풀이해온 행동이지만 사실 그때마다 무섭다. 아무리 낮아도 산은 언제 어디서나 치명적일 수 있다. 아득함과 싸우며 헤매는 와중에도 스마트폰 보고 방향 확인하는 일을 수시로 해 큰 동선을 만들어가던 한 순간, 계곡 물소리 낭자한 어느 지점 건너편에 길처럼 보이는 풍경이 와락 다가든다. 정신 바짝 차리고 개울을 건너니, ! 본디 가려던 그 길. 한 시간 이상 가파르고 험한 산비탈을 헤매고야 만나다니. 그다음, 길 따라 올라가는 일이지만 여간 어렵지 않다. 경사가 심한데다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인적 전혀 없는 산을 오르자니 더욱 위험하게 느껴진다. 마침내 도달한 능선 구름재. 거기서 다시 백운봉을 향한다. 능선길 또한 무섭다. 발 디디는 곳 너비가 30cm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절벽 수준인 좌우 골짜기로 굴러떨어질 판이다. 숙의 치료할 때 내담자에게 해주는 말, 그러니까 감정 상태를 평가 없이 그대로 인정해 소리 내어 말해주라는 말을 그대로 내게 한다: “무섭다.” 연수리 계곡과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러 겨우 물 한 모금 마신다. 정상을 밟지 않는다는 내 식 예절에 따라 이내 내려가기 시작한다. 어렵긴 마찬가지다. 밧줄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간이 제법 된다. 길 잃을 위험은 없지만, 바닥에 온갖 모양으로 나뒹구는 돌덩어리가 잠시도 방심하지 못하게 한다. 너무나 배가 고파 뭘 좀 먹어야겠다 싶은데 아연 길이 편해지기 시작한다. 그 뒤로는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고요히 숲을 나온다. 길게 이어지는 연수리 마을 길을 따라 걷고 걸어 용문역에 도착하니, 출발한 지 꼬박 여섯 시간이 지난 오후 440분이다.

 

용문산은 높이에 비해 품이 너른 큰 산이다. 골골이 뭇 인간이 깃들어 살아간다.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인간이 어떻게 그 관대함을 악용해 깃듦 너머 파고듦으로까지 나아갔는지 아프게 확인할 수 있었다. 도처에 전원주택, 웰빙 또는 테마 빌리지, 별장이 어떻게 숲에 쌩 까는살풍경을 그려내며 번져가는지 숲은 인간 귀로는 듣지 못하는 신음과 울음소리로 토해내고 있었다.



여느 때는 숲에 들어가기 전과 숲에서 나올 때 감정 상태가 사뭇 달랐다. 용문산 백운봉 숲은 그렇지 않았다. 앞뒤로 기나긴 테라포밍, 저 악명 높은 자국 정착형 식민주의 행진을 똑같이 목격했기 때문일 테다. 어떻게 이리 속살까지 파고들며 자기 나라를 스스로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을까? 그 장애 상태 정신과 역동은 어디서 왔을까?

 

문재인 정부 초반, 전 일본 총리대신 아베 신조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무역 침략을 도발한 적이 있다. 이 무렵 다시 온라인을 떠돌던 <아베 총독의 저주>라는 짤막한 글이 있었다. 심지어 일본어 원문까지 인용했다. 물론 이 글은 가짜다. 이 아베가 그 아베의 외조부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친일파가 여전히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는 와중에 일본 총리대신이 벌인 악의적 도발이라 비분강개한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어떤 시민이 과장되게 부연하고 새로이 만들어서 유포했으리라.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일은 물론 옳지 않다. 그러나 <아베 총독의 저주>는 마냥 날조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맥아더 사령부가 194512월 도쿄에서 행한 심문에서 일본이 점령한 35년 동안 한국은 상당히 발전했다.”, “일본은 한국에 아주 좋은 정책을 취했다.”라고 답변했다. (영문 <아베 노부유키 심문서>)

 

식민지를 다스린 제국 관료와 부역자가 지닌 생각을 그대로 드러낸 발언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아베 노부유키 발언은 식민 정책이 과거에는 축복이었고 미래에는 축원이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 즉 앞으로도 일제가 취한 아주 좋은 정책대로 하면 계속 발전하리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일제 패망과 더불어 등장한 미군정이 체계는 물론 인물까지 식민지 관료와 부역자로 채운 대한민국 기초 구조가 아베 노부유키 정책 연장선에 있었다고 판단하는 데 무리는 전혀 없다. 그렇다. 내가 용문산 백운봉을 드나들며 목격한 저 참담한 테라포밍은 다름 아닌 일제 좋은 정책”, 그러니까 아베의 축원에서 발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 번째 대답은 2009년 신학림이란 분이 <프레시안>에 실은 글을 부분(발췌) 인용함으로써 갈음한다.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가공할 혼맥 속을 들여다보자. 이른바 '수구반동복합체(守舊反動複合體)'. 결속력, 영향력, 지배력 등에서···미국의 군산복합체나 5대 미디어 재벌, 그리고 일본의 의회 세습 권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공(可恐)스럽다.

 

이미 입법, 행정, 사법권, 언론(4) 등으로부터 어떤 견제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재벌과 그 대주주들, 족벌언론 사주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국무총리, 여당의 핵심 관계자를 포함하는 정치가와 정치권력자 등으로 구성돼있는 복합체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친일 부역 세력,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독재정권 세력이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1. 이명박 혼맥

 

(1) 이명박 대통령의 3녀인 이수연 씨의 남편이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22녀 중 차남). 조현범 부사장의 큰 누나인 조희경 씨의 남편이 노정호 연세대 법대 교수로 노재원 전 중국 주재 대사의 아들.

 

(2) 이상득 의원의 장녀 이성은 씨의 남편은 구본천 씨(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의 아들).

 

(3) 이상득 의원의 차녀 이지은 씨의 남편이 오정석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처장관과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오명씨의 아들). 오정석은 최근 현대제철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것으로 알려짐.

 

  2. 송인상 혼맥

 

(1) 장녀 송원자 씨 남편이 이봉서 전 동자부장관. 이봉서의 3(이혜영)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큰며느리(장남 이정연씨의 부인).

 

(2) 2녀 송길자 씨와 남편 신명수 전 동방유량 회장의 장녀(신정화)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며느리 (노재헌 씨의 부인).

 

(3) 3녀 송광자 씨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의 부인.

 

(4) 4녀 송진주 씨 남편이 주관엽 씨(로우전자 실소유주).

 

  3. 한승수 혼맥

 

(1) 한승수 국무총리(전 김앤장의 고문, S&T 모터스의 사외이사)의 사위는 김세연 한나라당 국회의원(부산 금정구. 고 김진재 전 한나라당 부총재의 아들. 동일고무벨트 대주주이자 대표이사).

 

(2) 한승수 총리의 며느리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인 이수영 동양제철화학(최근 회사 이름을 OCI로 바꿈) 회장의 조카 딸(이수영 회장의 둘째 동생인 이화영씨의 딸).

 

  4. 이맹희 혼맥

 

이맹희 씨의 아들이자 CJ 그룹의 회장인 이재현 씨의 어머니인 손복남 씨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최근 연임)이자 CJ 그룹의 대외담당 회장인 손경식 씨의 누나.

 

  5. 중앙일보 홍석현 혼맥

 

(1) 일제 때 법관을 지내다가 이승만 정부 때 법무부 장관, 내무장관을 차례로 역임한 홍진기의 장녀 홍라희가 이건희 회장의 부인.

 

(2) 장남 홍석현 회장의 부인(신연균)은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역임)의 딸.

 

(3) 차남 홍석조(현 보광훼밀리마트 회장)의 부인은 양경희 씨로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조카딸(양택식의 동생인 양기식씨의 딸).

 

(4) 2녀이자 막내딸인 홍라영씨의 남편이 노신영 전 국무총리(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의 둘째 아들인 노철수 씨. 노신영 국무총리의 장남 노경수(서울대 교수) 씨의 부인(정숙영)이 고 정주영 회장의 동생이자 '포니 정'으로 더 잘 알려진 현대자동차 회장이었던 고 정세영 씨의 장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3남 노동수 씨는 재벌 3세들의 주가조작 혐의와 관련 검찰의 수사를 받은 바 있음. 노신영 전 총리의 외동딸은 방위산업체인 풍산그룹 류진 회장의 부인임.

 

  ​6. 조선일보 방상훈 혼맥

(1) 방상훈 사장의 장남은 방준오 씨로 조선일보사에 기자로 입사한 뒤 현재는 방송 진출 등을 모색하는 전략기획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그의 부인이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녀인 허유정 씨. 허광수 회장의 아들이 홍석현 회장의 외동딸인 홍정현 씨의 남편. 방상훈과 홍석현은 허광수의 아들, 딸을 매개로 직접 사돈이 됨.

 

(2) 방상훈 사장의 작은 아버지인 방우영(1928- )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첫째 사위가 서영배 태평양 그룹 회장(서성환 창업주의 장남), 셋째 사위가 정재문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국회 외무위원장 역임)의 아들 정연욱 씨임. 정재문 전 의원의 부친은 구 신민당 최고위원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고 정해영 최고위원.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31남 중 외동아들인 방성훈은 현재 스포츠조선의 대표이사 부사장임.

 

  7. 동아일보 김재호 혼맥

 

(1)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의 장인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

 

(2) 김재호 씨의 동생 김재열씨는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이서현씨의 남편)로 삼성 계열사인 제일모직 상무로 일하고 있음.

 

  8. 정몽준 혼맥

 

(1)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2녀 김영숙 씨의 남편이 손명원 씨(스카이웍스솔루션코리아 고문으로 현대미포 사장, 쌍용자동차 사장 등을 역임. 부친이 손원일 전 국방부 장관. 차녀 손정희의 남편이 홍정욱 의원.)

 

(2) 3녀 김영자의 남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 이 부부 장녀 허유정 씨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장남 방준오씨의 부인. 허광수의 부친은 허정구 전 삼양통상 회장. 홍정욱 의원과 방준오씨는 4촌 동서인 셈.

 

(3) 4녀 김영명씨의 남편이 정몽준 의원. 따라서 홍정욱 의원과 조선일보 방준오씨에게는 정몽준 의원이 처 이모부가 되는 셈.

 

  9. 이임룡 혼맥

 

(1) 태광그룹 창업주인 고 이임룡 회장의 부인이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약칭 평통)의 수석부의장의 큰 누나. 이기택 부의장(전 민주당 총재)의 형인 이기하씨는 태광그룹 회장을 지내기도 했음.

 

(2)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큰 매형이 허승조 GS리테일 대표이고, 둘째 매형이 양원용 경희대 의대 교수로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이 글을 인용하고 <그들만의 세계, 정재계 '혼맥' 대한민국 장악>이란 글을 쓴 자유기고가 Edward Lee 씨는 그 글 부제를 이렇게 달았다: 혼맥으로 얽히고설킨 특권 계급은 친일 부역 세력에서 시작됐다. 그렇다. 그렇게 우리 현대사 100년은 부역 세력의, 부역 세력에 의한, 부역 세력을 위한 여정이었다. 독립 국가라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식민지에 불과한 허울 대한민국을 깔고 앉아서 김춘추 이래 최고 호황기를 맞은 부역 세력 면모를 빙산 일각밖에 들여다보지 못하고도 가슴 치며 우는 내 꼬락서니가 한심 무쌍하다. 여기 명단에 오르지도 못한 부역 권력자가 제국에 130조 퍼주고 8조 받았다고 자랑하는 판에 말이다.


이즈음에서 통시적 얼개 이야기-김춘추의 저주 이야기를 접는다. 물론 이 이야기를 다 풀면 대하소설이다. 그 내막을 모조리 아는 일이 중하지 않다. 전복할 기운을 얻는 일이 중하다. 악을 이기는 기운은 더 큰 악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3. 식민지 시대 준동했던 특권층 부역자들이 대한민국 수립 이후 어떻게 가족, 친인척, 나아가 더 큰 패거리로 번성해 갔으며, 그 인맥 간 합종연횡, 그리고 일본 지원으로 사회 각 분야를 어떻게 석권했는가, 하는 역사 이야기를 지금 내가 원하는 수준만큼은 할 수 없다. 슬프고 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아니 그럴수록, 전경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체계는 마련되지 않았더라도 이미 나와 있는 각각 정보를 정리해 공유하는 일이 절실하다.

 

자료들을 통해 특권층 부역 집단 실체가 상상 이상으로 전방위·전천후 거대 괴물임을 확인했을 때 나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우리 공동체가 어찌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가 있었을까. 아니. 이 정도면 벌써 공동체라고 말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그동안 지엽적으로 피상적으로 비판하고 조롱하는 일에 갇혀 긴 세월을 허비한 자신이 용서되지 않는다. 알량한 글쓰기로나마 참회와 공부 앞에 무릎 꿇어야겠다.

 

오래된 경험담 하나에서 시작한다. 1988년이라고 기억한다. 인사동 한 카페에서 작은 공부 모임을 끝낸 뒤 술 한잔하고 있었다. 주인장이 합석해도 되느냐 물으면서 젊은 여자 사람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그는 초면임에도 자기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내용인즉: 나는 모그룹 창업자 손녀다. 방금 제주도에서 올라왔다. 제주도는 매년 한 번씩 큰 모임이 있어서 간다. 그 모임은 정·재계 VIP 2·3세들 400여 명으로 이루어진다. ·야 구분 없다. 이를테면 공개 미팅 비슷하다. 혼맥을 형성하는 교두보인 셈이다.

 

카페 주인장을 포함해 모두가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매우 놀랐다. 이야기가 자유롭게 이리저리 흘러가다가 내가 검사 아무개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취한 상태인데도 안색이 변하더니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나중에 카페 주인장한테 단골손님이었는데 그 뒤로는 발길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술 취해 발그스레하던 그 얼굴과 비틀거리며 사라지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뜨르르한 저명인사다.

 

젊은 날 나는 그 이야기를 그리 오래 의식 표면에 남겨두지 않았다. 지배층이 다 그렇지 뭐, 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리라. 요사이 특권층 부역 집단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받은 충격이 아마도 그 기억을 깨운 듯하다. 그 기억에서 두 가지 질문을 꺼낸다: 특권층 부역자 후손은 대한민국에서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혼맥으로 얽히고설켜 대한민국을 부역 제후국으로 만들고 있는가? 앞 질문에 대한 답은 자발적 한량이라는 필명으로 <토털로그>를 운영하는 분이 2015년에 조사해 밝힌 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올린다.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김연수

호남지방 대지주로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 기업인. 삼양그룹 창업주. 1961년 전경련 전신인 전경협 회장 역임.

-자 김상준 (삼양염업 명예회장)

-자 김상협 (16대 국무총리)

-자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

-자 김상하 (삼양사 회장)

-손자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손자 김량 (삼양홀딩스 부회장)

-손자 김원 (삼양사 부회장)

-손자 김정 (삼양사 사장)

 

김성수

김연수의 형. 2대 부통령. 일제강점기 말 친일로 변질, 친일 단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과 이사를 지냄. 그 외에도 국방헌금을 헌납하고 징병제를 찬양하는 글을 기고한 전력 있음.

-자 김상만 (동아일보 회장)

-자 김 남 (윤보선 대통령 비서)

-자 김상흠 (민정당 국회의원)

-자 김상종 (우진토건 회장)

-손자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한국신문협회 회장)

-손자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

-증손 김재호 (동아일보 회장, 채널A 회장,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문명기

제지업, 수산업, 금광개발로 부 축적. 조선국방비행기헌납회를 조직, 막대한 양의 국방헌금 납부, 중추원 참의 역임.

-손자 문태준 (7~10대 국회의원, 대한의사협회 회장, 보건복지부 장관)

 

민병석

경술국적.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 작위 받음. 총독부 중추원 고문 다섯 차례 역임. 이완용과 처내종 간이자 절친한 친구.

-자 민홍기 (자작 작위 승계)

-자 민복기 (일제 사법부 근무,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손자 민경성 (유니콘재팬 사장)

-손자 민경택 (서울지법 판사, 서울지검 검사)

-손자 민경삼 (한합산업(현 심팩 에이앤씨) 사장)

 

민영휘

명성황후의 먼 친척. 한일합병을 지지하여 자작 작위를 받고 매국공채 5만 원을 사들임. 조선 최대 갑부 반열에 오른 권력형 부정 축재가.

-손자 민병도 (그랜드하얏트호텔 회장, 휘문고교 이사장, 제일은행 총재, 한국은행 총재, 현대미술관 회장, 남이섬 설립자)

-증손자 민덕기 (풍문여고 설립)

-증손자 민인기 (휘문고교 이사장)

-증손자 민웅기 (남이섬 소유)

-고손자 민경현 (풍문여고 이사장)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졸업, 만주군 장교로 근무. 창씨명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 유신독재.

-녀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

-녀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자 박지만 (EG회장)

 

박제순

을사오적.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 작위 받음. 중추원 고문 역임.

-자 박부양 (중추원 서기관)

-손자 박승유 (독립운동가, 강원대 음대 성악과 교수)

 

송병준

을사오적. 일진회 총재. 한일합병 공로로 백작 작위 받음.

-자 송종헌 (작위 및 재산 승계, 중추원 참의, 조선농업주식회사 설립)

-서 구연수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 안내 및 명성황후 시체 소각 감독. 중추원 참의)

-손자 송재구 (홋카이도에서 조선목장 경영)

-외손자 구용서 (한국은행 초대 총재, 대한석탄공사 총재, 상공부 장관)

-증손자 송돈호 (역삼동 건설회사 운영, 송병준 명의 토지 상속소송 주도. 사기 혐의로 구속. 친일 재산 특별법 위헌소송 냈으나 기각)

 

이근택

을사오적. 형 이근호, 동생 이근상 등 총 6명의 일제 귀족을 배출한 대표적 친일 집안.

자 이창훈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 조선귀족회 이사)

증손자 이상우 (전 공주대 총장)

증손자 이춘우 (공주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2005년까지 선대의 친일 재산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총 9건의 소송)

 

이명세

일제강점기 기업가.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이사 경학원(성균관) 사성.

-손녀 이인호 (고려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주핀란드 대사, 주러시아 대사, KBS 이사장)

 

이병무

정미칠적. 해산된 군대가 일으킨 의병 진압.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 작위 수여 받음.

-자 이홍묵 (자작 작위 승계)

-증손자 이진 (12대 국회의원, 국무총리 비서실장, 환경부 차관, 공주영상정보대학 학장, 웅진그룹 부회장)

 

이완용

을사오적. 한일합병 공로로 백작 작위 및 은사금 15만 원 하사.

-자 이항구 (이왕직 장관)

-손자 이병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 한국 전쟁 중 실종)

-손자 이병주 (1962년 일본 밀항, 일본 정부가 귀화시키고 환대)

-증손자 이윤형 (대한사격연맹 사무국장, 땅찾기 소송 승소)

-증손자 이석형 (1979년 이완용 부부 묘를 파내어 화장)

 

이해승

조선 왕족 종친. 한일합병 공로로 후작 작위 및 매국공채 162천 원 받음.

-손자 이우영 (그랜드 힐튼 서울 호텔 회장, 동원INC 회장)

 

최남선

3.1 운동 후 변절. 어용단체 조선사편수회 참여. 중추원 참의.

-자 최한웅 (서울대 의대 소아감염학 권위자)

-손자 최국주 (피부과 전문의)

-손자 최득주 (경기대 경영학부 교수)

 

최준집

강릉 갑부. 중추원 참의 역임. 37년 중일전쟁 발발하자 회갑연 취소 후 국방헌금 1,000원 납부.

-자 최돈웅 (8, 14, 16대 국회의원. 2000년 당시 부동산 소유 110. 새누리당 상임고문)

 

현준호

민족주의적 계몽 활동 중 변절, 중추원 참의.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수록.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자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

-자 현영국 (고우건업 대표)

-손자 현양래 (현우실업 대표)

-손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증손자 현병철 (한양대학교 교수, 국가인권위원장)

-외증손녀 정지이 (현대 유엔아이 전무)

 

홍진기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김신석의 사위로 일제 판사 재직. 해방 후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역임. 중앙일보 회장 역임.

-녀 홍라희 (중앙일보 상무이사, 호암미술관 관장,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예술의전당 비상임이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자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전 주미대사)

-자 홍석조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보광훼미리마트 회장, 국립중앙박물관회 부회장, BGF리테일 회장)

-자 홍석준 (삼성 SDI 경영기획실 부사장, 보광창업투자 회장)

-자 홍석규 (보광 회장,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회장)

-녀 홍라영 (삼성문화재단 상무, 삼성미술관 리움 총괄부관장)

 

방응모

일어 상용운동 주창, 일제 찬양 시국 강연 참여, 조선임전보국단,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회원. 조선일보 사주.

-자 방재선 (계초 방응모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부친 방응모 친일 행위에 대한 공식 사과)

-양손자 방일영 (조선일보 회장. 아시아신문재단 이사장, 별칭 '밤의 대통령' '밤의 황제')

-양손자 방우영 (연세대학교 이사장, 조선일보 회장)

-양증손자 방상훈 (조선일보 회장, 한국신문협회 회장. 부인은 친일파 윤치호의 증손녀인 윤순명)

-양증손자 방성훈 (스포츠조선 부사장)

-양현손자 방준오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이사대우.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녀 허유정과 혼인)

-양현손자 방정오 (TV조선 상무)

 

이병도

중추원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한 친일 사학자로 한국 고대사 연구의 권위자. 해방 후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진단학회 이사장, 국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 장관 역임. 윤보선 대통령과 사돈 관계.

-자 이기령 (한국생화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

-자 이춘녕 (한국농화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농대 교수)

-자 이태령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명예회장,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수)

-자 이동녕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자 이본녕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의대 교수)

-서 장욱진 (서울대학교 미대 교수)

-서 민헌기 (친일파 민영휘의 증손자이자 풍문여고 설립자 민덕기의 동생.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

-녀 이운경 (이운경내과의원 원장)

-손자 이웅무 (아주대학교 화학과 교수)

-손자 이장무 (산업기술평가원 이사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서울대학교 총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손자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용인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한국고고학회장, 문화재청 청장)

 

백붕제

경상북도 군위군수, 경상북도 산업부 이사관 등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 형 백인제와 함께 백병원 설립 후 납북.

-자 백낙환 (백병원·인제대학교 이사장, 서재필기념회 이사장,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회장)

-자 백낙청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개헌 청원 지지 문인 61인 선언 참여, 해직교수협의회 부회장, 창작과비평 발행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위원장)

-자 백낙서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윤치영

윤치호의 사촌 동생. 독립운동가였지만 후에 변절해 임전대책협의회 채권가두유격대 참가, 동양지광사 주최의 미·영 타도 대좌담회 연사로 참가하는 등 친일로 돌아섬. 초대 내무부 장관, 13대 서울특별시장, 1·2·3·7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역임. 안중근 의사 숭모회 초대 이사장.

-녀 윤성선 (숙명여대 교수)

-자 윤인선 (서울 백제병원 기획실장, 국회사무처 서기관)

-질 윤보선 (대통령)

-손자 윤인구 (KBS 아나운서)

 

남정철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될 때 조약 체결에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남작 작위 받음.

-자 남평우 (경남여객 대표, 민자당·신한국당 국회의원)

-손자 남경필 (새누리당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손자 남경훈 (경남여객 대표)

 

박승직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수록. 일본의 대기업 이토추상사와의 협업. 두산그룹 창립자.

-자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자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손자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KBO 총재)

-손자 박용성 (한국상업은행 회장,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IOC 위원, 국제상업회의소 회장, 중앙대학교 이사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국제유도연맹 회장)

-손자 박용현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장,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전경련 부회장, 서울대학교 이사장, 예술의전당 이사장)

-손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이화여대 경영대학 겸임교수)

-손자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

 

김순흥

일제강점기 대지주. 각종 국방헌금 헌납, 조선유도연합회 참사. 해방 이후 한국민주당 발기인 참여. 이화여대 이사.

-손녀 이지아 (본명 김상은. 탤런트)

 

이홍규

조선총독부 산하 지방법원에서 검찰 서기로 근무. 해방 이후 광주지검장 역임.

-자 이회창 (대법원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자유선진당 대표)

 

김영한

중추원 찬의.

-녀 김옥숙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일환

만주군 장교. 해방 후 육군 중장 전역. 상공부·내무부·교통부 장관 역임. 한국관광공사 총재, 재향군인회 회장, 한국전력 사장, 한진관광 사장.

-자 김의광 (장원산업 대표이사 사장)

-자 김의덕 (리젠트보험 이사대우)

-자 김의순 (외과 의사)

-녀 김의정 (한양여대 교수)

 

박희준

일본 사법 경찰

-자 박관용 (국회의장)

 

백선엽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특설대 중위(생존)

-제 백인엽 (육군 중장. 선인학원 이사장)

 

신상묵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탄압한 유명한 일본군 헌병 오장. 부사관 중 가장 높은 계급인 군조까지 진급. 해방 후 제주도 경찰국장 역임.

-자 신기남(해군대학 교수, 열린우리당 의장,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장지량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만주보민회 활동. 해방 후 대한민국 공군 창설 주도. 9대 공군참모총장, 10대 국회의원.

-자 장대환(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 회장)

 

김명수

일본 신문사의 기자와 전무를 지냈고, 귀국 후 10년간 합천 용주면의 물자공출이나 지원병, 정신대 등 인력 동원을 현장에서 처리하는 역할인 면장과 17년간 금융조합장을 지냄. 해방 후 합천을과 부산 동래에서 국회의원을 지냄.

-자 김용균(한나라당 국회의원·변호사)

 

송금선

조선부인문제연구회에 가입해 순회 강연을 다녔고, 조선총독부 방송선전협의회에서 친일 강좌를 하는 한편 조선 귀족 부인들·여성계 친일 인사들과 애국금차회 가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활동. 덕성여대 초대 학장.

-자 박원국 (덕성여대 이사장)

 

박흥식

대표적 기업인.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는 군수 업체로서 조선총독부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았다. 공장의 인력은 강제 징용된 노동자로 채워졌다. 화신백화점 화신산업 대표. 경희대학교 음대 피아노 교수를 지낸 피아니스트 한인하와 재혼.

-자 박병석 (광신 중··정보산업고 이사장)

-녀 박봉숙 (이화여대 교수)

 

박인덕

인덕대학 설립자. 친일 단체 녹기연맹의 지원을 받음. 자발적 황민화 운동.

-녀 김혜란 (인덕대학교 이사장)

 

윤종화

경찰부 보안과장으로 임명되어 항일 운동을 탄압하는 업무. 조선인 최초 경찰부장.

-자 윤석순 (중앙정보부 총무국장. 민정당 국회의원)

-질 윤광순 (한국투자신탁 사장)

-종손 윤상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현상윤

일제강점기 문학박사. 고려대 총장

-자 현인섭 (이화여대 의대 교수)

-손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