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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아닌 작품을 읽고 쓴 이야기래서 또다른 서평 느낌의 책일까 싶어서(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흥미가 반감되었는데
좀더 자세한 속사정을 접하고 나니 아니 이 책은 꼭 읽어야겠는데? 라는 생각으로 급반전되었다.
이 책을 쓴 루스 윌슨은 어릴 때 인상적으로 읽은 제인 오스틴의 여섯 작품을 60 넘어서 다시 탐독하게 되었고
70세에 졸혼하고 시골집에 칩거하면서 88세에 박사학위를 딴 90세의 독서광 여성이었다.
며칠전 팔순을 치르신 아버지께서도 책을 무척 좋아하시긴 하지만 지금 이 좋아하는 책으로 무언가를 새로이 해본다라는 생각은 아버지도, 딸인 나도 못할 생각이 아닌가 싶었는데 (사실 아직 40대인 나도 지금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새로 배우고 한다는 것은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88세에 박사학위라니, 정말 저자의 열정이 놀랍기만 하였다. 그리고 그 시작이 제인 오스틴의 문학작품을 기반으로 하였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고.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읽고, 조금더 서평을 쓰고 있다 생각하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책을 수백, 수천권을 읽고 책을 써봐야겠다라던지, 새로운 학업이나 사업을 시작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못하고 책은 그저 내게 취미생활에 지나지 않았다.
루스 윌슨 작가님은 달랐다.
60에 갑자기 찾아온 메니에르 증후군이 그녀를 힘들게 하고, 가족과 친구들의 생소했던 가면 파티 생일파티가 감동이라기보다 일종의 거부감처럼 다가왔던 날. 갑자기 안온해보이는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느끼고, 시골집으로 도피하고 졸혼을 하고 자신만의 생활을 시작한다.
가족과 일
루스 윌슨님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가정을 꾸리고 육아를 하면서 자기 자신보다는 가족을 더 우선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동서양의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더라도 루스 윌슨님의 경우 그런 가부장적인 의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세대였을 것이다.
그런 삶에서 갑자기 벗어나 남들은 너무 늦었다 생각했을 노년의 나이에 그녀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돌아보는데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가족과 일 외에 너무나 좋아했던 독서로 돌아와서 그 중에서도 제인 오스틴에 주목하게 된 것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 그리고 많은 책이 아닌 몇권의 그 책에 집중하고 자신의 인생을 비춰보며 단순 독서에서 벗어나 독서 생활의 맥락 안에서 지나온 삶을 복기하는 작업을 시작하기로 한다.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일. 나이 일흔에 시작한 오스틴 다시 읽기가 자신을 위로하다못해 인생의 화양연화로 이끌게 되었다고 한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루스 윌슨님의 서사로 그녀의 인생과 맞물려 접하게 되니 정말 새로운 시선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접하는데 또다른 새로운 작품처럼, 그저 서평이 아닌 정말 새로운 느낌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읽혔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자서전을 집필하듯 글을 쓰고 싶지만, 막상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함이 앞서는 경우가 많은데 루스 윌슨님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선으로 이야기를 서술하다보니 읽는 독자에게도 그렇게 몰입하는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읽으면서 부모님 생각도 났다. 특히 우리 엄마.
70 넘는 세월을 그저 양가와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살아오셨는데 지금은 여기저기 나이드셔서 아프신데가 많이 생기시고 예전에 힘들었던 일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우울증이 생길 정도로 힘들어하시는 일이 많았다. 마치 저자 분처럼, 그런 느낌
아니 지금 다 괜찮은데 왜 자꾸 예전 일로 힘들어하실까? 지금의 행복을 그냥 누리시면 되지 않을까? 몸이 아프신것만 치료를 하시고 좋은 생각만 하시며 행복하게 사시면 안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엄마의 일생을 너무 존중하지 않은 부분이었나 싶었다.
루스 윌슨 할머니는 과감히 평범한 일생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주목하는 선택을 하였다.
우리 엄마도 그런 선택을 하신다 하면, 나는 또 섭섭하다고 하는 못된 딸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엄마가 엄마 인생을 위해 행복한 삶을 사실 수 있게 서운하신 부분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푸시고, 마음의 응어리짐이 없어지면 좋겠다 싶어졌다.
작가분이 제인 오스틴의 책으로 자신을 치유한 것처럼 엄마도 엄마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나셨으면 좋겠다 싶었다.
나이들어 제일 하고 싶은 일이나 나는 그렇게 나이들었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 중에 나이 들어서도 지금처럼 재미있는 책을 꾸준히 읽고 좋아하는 영화도 계속 보면서 즐겁게 지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최근 들어 노안이 오기 시작하는건지 (슬프게도)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나이들어서는 젊었을때처럼 그렇게 마음먹은것처럼 쉽게 읽히는게 아님을 알고 갑자기 급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연세 드신 아버지께서도 책을 여전히 좋아하시기에 나이들어서도 지금처럼 책 읽는게 가능하겠지 했는데 막상 조금의 노화만 있어도 이렇게 책 보는게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소중한 눈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90이 될때까지도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88세에 책으로 박사학위를 따는 작가님을 접하고 나니 와, 정말 나는 너무 소심하고 너무 일찍 꿈을 접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스 윌슨님의 글은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는 분의 글이라 그런지 글의 깊이가 남다르다.
표현 방식도 섬세하고, 책을 아주 많이 써본 작가님처럼 글이 편안하게 읽힌다.
이 분 앞에서는 정말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100세 약사, 90세 박사, 최근에 이런 분들의 존재를 접하고 나니 나이들수록 할 수 없는게 많아지고 그저 물러나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 여전히 노력하고 여전히 발전하는 분들이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작가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시만, 이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나와 내 가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재미나고도 인상적이었던 이 글 덕분에 제인 오스틴의 못 읽어본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읽어보고픈 욕구가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독자인 저도 제인 오스틴을 처방 받았습니다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