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 아우렐리우스편 세계철학전집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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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세계철학전집 아우렐리우스편 -

이따금 찾아오는 삶의 공허함과

답을 내릴 수 없는 모호한 문제들을 안고 있을 때면

철학서를 기웃거리며 살펴보게 된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고뇌와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상가들의 생각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새로운 지침과 방향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우렐리우스편으로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단단한 문장들로

독자들에게 많은 물음에 답을 건낸다.




"외부의 일로 인해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고통은 그 일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당신이 언제든지 거둘 수 있다." 처음엔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를 괴롭힌 말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서 왔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말이 옳고 안 옳고의 문제보다, 내가 그 단순한 말에 어떤 문게를 부여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말은 그저 말일 뿐이다.

내가 받지 않으면, 어떤 말이든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p17

사실 알고보면 문제를 받아들이는 마음 가짐에서

파생되어지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괴롭던 일들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내 몫이 된다.

더 큰 일로 부풀려 생각할 수도,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거를 수 있는 말을 내 선에서 잘라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말 속에 생각이 갇혀 지낼 때가 많다.

그래서 더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며

나 스스로가 씨름하면서 더 괴롭다.

받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굉장히 간단 명료해보이지만

명쾌한 해답 같다.

말을 말로 더 의미를 부여하지 말것을 다짐하게 만든다.

아우렐리우스는 "삶은 짧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

네 삶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 능력도 먼저 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하라."며

지금 이 순간을 이성적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p135

삶의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짧아져가는 시간을 생각지 못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별 것 아닌 것에 목숨 걸며 사는지 모르겠다.

닿을 수 없는 미래에 전전긍긍하며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의 못난 모습을 보며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현재를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생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싸움은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나를 지켜내느냐'이다. 이기적인 삶이나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은

언젠가 허물어지고, 그렇게 얻은 성공은 마음속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한다.

진짜 성공이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결과가 다가 아니다.

내가 나를 잃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 삶이라면, 비록 느리더라도 그것은 결코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p180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어떤 행위조차도 타인에 비칠 내 모습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더 나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며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짜 나는 없는 껍데기뿐인 인생이 얼마나 공허한가.

그것을 알면서도 이같은 오류를 범하고 사는 건

여전히도 타인의 시선을 살피고 살아가는 인생이라 더 할 말이 없어진다.

결국 끝에 가서 남는 건 나 하나일텐데

내가 나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못하고 산다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고 있는게 아닐까.

문득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 많아서

제대로 방향을 잡고 싶은데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내가 눈에 밟혀서

쏟아지는 정보의 호수 속에서

조용한 사색을 일부러 찾아 시간을 가지려 애쓴다.

그런 마음의 정렬을 돕는 친절한 철학서가

나에겐 지금의 시점에 또 다른 지표가 되기도 하고

걸어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앞으로의 삶에서 여러 갈래의 고민들을

좋은 명상과 철학의 위로를 지침 삼아

변덕스러운 삶에 갈피를 잡고 걸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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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살아 내는 게 엉망이어도 괜찮아 - 다시금 행복을 애쓰고 있는 당신에게
윤글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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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가 많은 인생이라 좋다가도 금새 짜증나고 화가 나는 일들이

불쑥불쑥 생기는 변덕스러운 매일을 경험하며 산다.

그런 경험치가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도 불완전해서 좋은 말과 글로 맘을 다잡고자 한다.

나에겐 이 시간이 삶의 짓눌린 무게를

덜어내고 더하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듣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내 맘을 이해해 줄 그 형태의 무엇을 찾지 못하다

역시나 책의 문장에 기대어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책이고, 또 나를 더 단단하게 서게 만드는 고마운 책이다.




당신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지나가고 나면 당신의 마음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단단해질 테니 그 아픔은 성장통인 거다. 숱한 생각들 속에서 몸부림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의 자생력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응원을 믿자. 든든한 많은 힘들이 당신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나치게 염려하지 말자. 진부한 말이지만 전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다. 그게 자명한 사실인데 어떡하겠어.

p84

염려와 걱정이 너무 많은 나라서 가끔 혼자 우울 모드로 전환될 때가 종종 있다.

뭔가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처럼

둥둥 떠다니는 형체없는 고민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면

불면의 밤이 더 심해지고 몸도 맘도 슬슬 지쳐간다.

이런 미련한 짓을 끊어내고자해도 참 지독하게도 잘 벗어나기 힘들다.

결국은 이 과정을 반복하고 마주하게 되는 결과의 안도에

지나친 염려와 걱정이 쓸모없음을 또 한번 경험하게 된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에게 더 많이 더 자주 새기듯 이야기 해주며 살아가야함을 이 순간 또 자백하게 된다.

사람은 좋아하는 게 있어야 한다. 누가 물어보면 신나서 대답할 수 있는 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몰입할 수 있는 거.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먼저 원해서 하는 거. 그런 게 최소한 하나쯤은 있어야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

p216

나에겐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행복이 굉장히 큰 기쁨이다.

가장 오랫동안 내 삶에 함께 가야 할 좋은 친구이지 싶다.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지독하게 붙어다니는 책과 지겹도록 함께 할 걸 생각하면 그저 행복하다.

기분 전환에 이만한게 없고, 반려 취미로 이만한 가성비가 없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하며 산다.

그렇게 영영 책을 벗어나서 살지 못할 듯 싶다.

세상을 살아 내는 게 순조롭지 않을 때는 이렇게 생각하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래 봤자 지구 안이고 우리는 우주 먼지야’라고.

p257

이 말이 가장 빠르게 나에게 와닿던 말이다.

그래 봤자, 우린 우주 먼지인데

뭘 그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하면서 살아가는지 말이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대부분이라는 거.

애쓰고 살던 나에게 힘 좀 빼고 살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무리할 필요 없다고,

지금도 꽤 괜찮은 나로 살고 있다는 걸 다정하게 얘기해준다.

그런 위로를 가만히 들려주는 이 책으로

오늘의 행복을 내 것으로 취사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

지금도 앞으로도 행복할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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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다섯 번의 화요일
릴리 킹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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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인간사만큼이나 다채로운 사랑이야기 안에서

상실과 성장, 욕망과 꿈, 동경과 기대를 느낄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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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다섯 번의 화요일
릴리 킹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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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의 사랑의 형태가 다채롭게 그려진

호흡이 짧은 10편의 단편 소설을 만나보게 되었다.

릴리 킹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실타래를 묘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나 표제작 <어느 겨울 다섯 번의 화요일>과 <북해>가 개인적으로 좋았다.

모든 작품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의 사랑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되어가는 사랑의 속성은 어쩔 수 없나보다.

달콤하고 가슴 설레이는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건 아니지만

슬픔과 상처를 성장과 기대로 꿈꾸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숨겨있다.




케이트에게 키스하고 싶은 것은 폴라의 대학 학자금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저축하고 싶은 것이나 우편 주문에 사용할 정확한 디지털 저울을 갖고 싶은 것과 별다르지 않았다. 지속적이고, 귀찮고, 쓸모없는 욕망이었다.

p67

이제 와서 그가 달라지거나 누군가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는 같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과거의 자신을 마치 전에 알던 지인처럼 애틋하게 회상하는 책 속의 인물들이 그는 놀라웠다. 미첼은 지금의 그 자신 외에 다른 누군가가 되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p89

혼자 딸을 키우며 서점을 운영하는 미첼은 서점 직원 케이트를 마음에 품게 된다.

아내와의 이혼으로 실패를 경험한 그는

혼자가 아닌 양육자로서의 현실적 고민과 고충,

이전 사랑의 뼈아픈 고배안에 갇혀

지독하게 현실과 타협해 나가는 복잡한 마음들이 얽혀있다.

그럼에도 화요일을 기다리게 되는 그를 보면

은은한 끌림이라는 사랑의 속성을 무시할 수 없어보인다.

보장할 수 없는 행복의 불확실성을 맛보고서

잔뜩 겁이 난 머리 큰 어른의 현실적 사랑이 보이면서도

욕망과 꿈은 여전히 그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공감할 수 있다.

어른들은 고통과 두려움, 실패를 감추지만, 사춘기의 아이들은 행복을 감춘다. 보여주면 사라질 어떤 것처럼.

p158

“몰라. 엄마가 나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특별한 걸 듣자는 게 아니야. 그저 침묵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야. 엄마가 자랄 때는 부모님이 정말 중요한 일이나 힘든 일은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거든.”

“전쟁 말이야?”

“그래, 전쟁도 그중 하나였지.”

“그러니까 아빠의 죽음은 전쟁 같은 거고, 내가 그 얘기를 하지 않으려는 나치처럼 군다는 거네?”

“한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 나중에 네가 커서 엄마를 대화할 수 없던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엄마는 대화하고 싶으니까.”

p160

사고로 남편을 잃은 두 모녀의 상실감을 다룬 <북해>는

서로간의 긴 침묵을 깨고자하는 강한 울림이 있는 소설이다.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다소 어둡고 무거운 짐을

두 모녀가 긴 시간동안 꺼내어 이야기 나누지 못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특히 딸 한네의 꺼내지 못하고 털어놓지 못한 묵은 감정을

지켜보는 독자로서는 안타깝기도 하면서

엄마 오다가 딸과 함께 떠난 여행을 시작으로

대화의 물고를 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 모녀가 해소해야 했던 숨겨둔 진실을 하나씩 꺼내어

조심스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사랑의 씁쓸하고 따뜻함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길 기대하며 읽었던 소설이었다.

복잡한 인간사만큼이나 다채로운 사랑이야기 안에서

상실과 성장, 욕망과 꿈, 동경과 기대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작가 스스로가 어느 겨울이란 쓸쓸하고 깊은 슬픔이 잠든 배경의 개인사를

작품속에 내비춰 보이며, 사랑의 결핍과 아픔이 주는

그 형태가 그리 모가 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인간의 한없이 취약하고 연약한 모습마저

그대로 드러내고 이야기하고 있는 일상이

독자들로 하여금 담을 허물고 더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했으니 말이다.

낭만적이지만은 않지만 슬픔 속에 깃든 다양한 경계의 사랑을

책 속에서 다채롭게 느낄 수 있어서 꽤 좋았던 책으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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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안녕
유월 지음 / 서사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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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을 다 내놓지 못할 때가 많다.

어쩌면 내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정도치를 스스로의 기준에 두고서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을 버겁게 짊어질 때가 나에겐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연결된 관계 안에서도 감정의 공유가

모두 오픈 되지 않기에 적당히 선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는 법이라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 속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선택의 결과를

남은 사람들이 책임져 살아가야 함은 굉장히 큰 무게로 남는다는 것.

이들의 그 아픔은 또 다른 관계의 치유 속에서 일어나고

완전히 무너진 마음은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게 되서야

풀어갈 해답을 찾게 되는 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로를 헤메이는 것처럼 암울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주인공 도연.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가족들에겐 큰 고통과 아픔이었다.

이로인한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고, ‘가사조사관’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상처 속에 살아가는 이가

타인의 어려움을 대면해야 하는 매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짐작만으로도 힘겹다.

그러나 도연은 아픔 속에 매몰되지 않는다.

스스로 그 길 위로 깨어나오는 여정을 타인의 삶에서 비춰 발견하게 된다.




“나는 진짜 대충 살 거거든요. 절대로 열심히 살지 않을 거거든요. 이상한 사람들 말 듣지 않을 거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살지 않으려면 매일 이렇게 다짐해야 해요. 자꾸자꾸 나에게 말해줘야 해요. 잊어버리지 않게. 그래서 열심히 살지 않는 게 너무 힘들다.”

p54

강박적으로 열심히 살아왔던 성실성이 나에게 해가 되었던 적을 떠올려보게 된다.

엄마로서 살아온 세월이 나로 살아온 세월을 추월해 나갈 때

묘하게 두렵기도 공허하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희생 덕에 가족들은 안심하고 안전할 수 있었지만

나를 빠르게 잃어버리는 쪽을 선택한 책임으로 남은 나의 공허는

나이 든 나의 세월에 떠밀려 와있다.

좀 대충 살아도 괜찮았는데,

나를 지키는 법에 좀 무심했던 나날이 떠오른다.

구석구석 숨겨져 있던, 도연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내밀한 것들이 투명하게 보였다.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숨어 들어가던 시간들, 그 시간 안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던 자신과 도연의 취약함을 이용하던 지원의 방식 같은 것들이. 도연은 발가벗고 있는 듯 부끄러웠지만 숨을 곳이 없었다. 몸과 마음이 함부로 비집고 들어온 침입자에게 짓밟힌 것 같았다. 선명하게 남겨진 구둣발은 어떻게 해도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았다. 도연은 내팽개쳐진 자신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해진 마음을 끌어안으며 다짐했다. 누군가의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일로 만난 사람에게 마음 따위 주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어떤 것도 맡기지 않겠다고, 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참지 않겠다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겠다고.

p119

늘 배려하며서 챙기는게 언니의 보람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켜켜이 쌓인 무게감이 언니를 납작하게 눌러 언니는 산산이 부서졌다. 언니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힘들다는 말을 참으면서까지 언니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중했던 건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는데. 언니에게 가장 소중한 건 자기 자신이어야 했다는 것도 몰랐으니 어쩌면 언니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러다 결국 다 의미가 없어져 버린 건 아닐까.

p197

묻어둔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 볼 용기가 날 때

그 시점부터 삶이 다시 재생되는 듯하다.

예상치 못한 삶의 변수들이 참 많은 인생이지만

주인공 도연을 보면서 타인의 어려움을 대면해야하는 매일의 삶이 버겁지만

그 안에서 본인의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참 아름답다.

작가의 섬세한 감정묘사를 가만히 따라가다보니

연결된 감정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우린 따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된 연대 속에서 상처와 아픔, 치유와 회복을 반복한다.

비로소 안녕이라 말할 수 있는 완전한 회복을 찾아가는

조용한 여정을 이 책 속에서 찾아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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