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등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2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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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전망뿐인 미래의 어느 시절.
파괴된 환경 때문에 새로운 세대들의 면역이 무너지고, 오히려 노년의 세대들이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설정.

할아버지와 증손자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상황인데,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희망은 놓치고 있지 않아 우울감이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리고 일단 이 디스토피아의 진짜 비극은 방사능 오염, 인간 생체시계의 혼돈이 전면에 있지만,
사실 정부의 민영화, 정보의 폐쇄성에서 두드러진다.
믿을 수 있는 정보의 부재로 지역사회의 관계 속에서 눈치껏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이 미래의 전망을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연령대의 역할이 반전되면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나니, 애잔한 어린 세대들은 오히려 철이 들게 되는 걸까.
그들의 죽음이 대수롭지 않게 된 비극의 세상이지만 그다지 살풍경하게 그려지지 않는 것은 작가의 긍정이 반영된 것일지 모르겠다.

가치가 역전된 오키나와. 이야기 밖 현실의 오키나와는 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가진 지역인데,
디스토피아가 된 세상에서는 선망하는 지역이 된 것이 흥미롭기도 하다.
<빨리 달려 끝없이>의 언어유희는, 일본어 사용자가 아니므로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점이 있어 흥미가 떨어지지만,
<피안>에 등장하는 극우 정치인의 묘사는 남의 얘기가 아니구나 싶은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 요시로는 무메이의 장래에 어떤 운명이 기다릴지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적어도 발밑에 있는 현재라는 시간이 무너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 36, 헌등사

- 물론 아픔을 느끼지만 요시로가 아는, "왜 나만 이리 괴로워야 하지."같은 우는소리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고통이었다. 그것이 무메이 세대가 부여받은 보물일지도 몰랐다. 무메이는 스스로 불쌍하다고 여기는 기분을 모른다. - 41, 헌등사

- "왜 증조할아버지는 마시지 않아요?" 하고 무메이가 물어서 "한 개밖에 사지 못했다. 어린이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하니 뭐든지 어린이 우선 아니겠느냐."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어른은 어린이가 죽어도 살 수 있는데, 어른이 죽으면 아이는 못 살아요." 하고 노래하듯이 무메이가 말하자 요시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자신이 죽은 뒤에 무메이가 살아갈 시간을 상상하면 늘 벽에 부딪친다. 자기가 죽은 뒤의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을 수 없는 몸을 부여받은 우리 노인들은 증손자를 앞세워야 하는 무서운 운명을 짊어졌다.
어쩌면 무메이 같은 이들이 새 문명을 지어서 후세에 남겨줄지도 모른다. 무메이는 태어날 때부터 기묘한 지혜를 가진 듯 보였다. 지금까지 보아 온 어린이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지혜다. - 44, 헌등사

- 호모 사피엔스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은 편이 낫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 확실히 인간은 지구에게 암세포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라. 그래도 인간이 그립다.
두 발의 독재가 끝나서 모두 숨을 돌렸는데. 과거를 미화할 작정이야? 동물 윤리는 어디로 갔어?
윤리도 인간, 즉 독재자가 생각해 낸 거야. 포유류의 감정은 윤리로 관리할 수 없어. - 209, 동물들의 바벨

2025. mar.

#다와다요코 #헌등사
#민음사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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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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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냉혹함에 심신이 지친 주인공 손열매.
이런저런 사연으로 찾아간 완주에서 힐링한다...는 좀 뻔한 스토리랄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속 시끄러운 사연들의 이야기가 있다.

완주의 주민들이 겪는 사건들은 그다지 유쾌할 것 없는 종류의 것이고, 닳고 닳은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삶이, 일상이 치러지는 과정은 '시간이 흐른다'라는 말을 그대로 그려내는 듯.

수미를 찾아 도달한 완주에서 그 목적을 잊은 채 한 계절을 완주하는 열매의 이야기는,
죽음과 생의 교차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 세상의 이야기다.
해피, 새드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엔딩'이라는 사실.
그 모든 이야기 속에 작가의 다정함이 그득해서 읽는 내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김금희 작가, 거부할 수없이 좋은 작가. 이런 편애의 기분을 또 한 번 느낀다.

출판사 무제의 Rec. 시리즈는 앞으로도 무척 기대가 된다.
오디오 북도 들어보고 싶은데 윌라?인지 사용을 안 하니.. 조금 귀찮네. 큐알코드라도 링크했으면 좋았겠다.
여러 배우들의 참여가 궁금하다.

- 그런데 이상하지. 서울로 오고 나서는 여름이랑 비를 기다린다. 비가 처마에서 떨어질 때, 우드드 우드드 우산을 뜯듯이 빗방울이 쏟아질 때, 그럴 때 나는 겨우 숨을 쉬어. 여기도 별다른 곳이 아니구나, 여기도 비 오는 곳이구나, 여기도 별 수 없구나 생각하는 거지.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안도감인지 다른 사람들은 알까? - 29

- 그 말을 들은 손열매는 마음이 누그러졌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열매도 태풍으로 집 벽이 날아가 버린 동화 속 돼지 삼 형제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한동안 요양 병원에서 지내느라 자주 만날 수 없었는데도 '어딘가에' 할아버지가 있는 것과 '어디를 가도' 없는 것은 너무 달랐다. 항상 허전했다. - 57

- 진실은 누가 판단 내리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역시 흑담즙 철학자답네. 그럼요?
그냥 그 순간 경험하는 거지. - 151

- 이런 말 무력하게 느껴져서 그렇지만 힘내시기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몫을 또 완주해야 하니까요. - 169

- 거짓 없는 사실, 완전한 올바름, 그것은 때로 삶을 수렴하기에 너무 옹색하다. 그보다는 더 수용적이고 오래고 성긴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서로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 여름의 방문 같은 것. - 작가의 말 중

2025. may.

#첫여름완주 #김금희 #듣는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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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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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까지만 해도 정돈되지 않은 일기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여러 시점의 여러 인물들의 삶의 편린들이 무척 흥미롭다.
루시아 벌린의 단편을 읽으면서 자꾸 떠오르는 작가가 레이먼드 카버였다는 건... 나만 느낀 지점은 아닌 게 역자 후기에도 등장한다.
아무래도 뉴트럴 한 건조한 느낌의 묘사와 술과 관련된 것. 그런 지점에서 유사점이 느껴졌던 것 같고.
루시아 벌린이라는 사람을 여러 캐릭터로 분열시켜 인생을 묘사한다고 느꼈다.

경제적인 정상 범주에서 가까스로 벗어나지 않은 이들, 약물이나 알코올에 무심하게 노출되어 있는 이들의 언제 무너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삶들이 조금은 아득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중독의 문제에 심각하게 절여져 있다는 점이 이 엄청난 분량의 단편들을 읽는데 피로감을 준다.

그럼에도 따스하고 찬란한 순간들이 존재하고, 세상의 뜻대로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느껴지고... 뭐 그랬다.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는 게 보편이 된 것이 불과 반세기 전쯤 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생활환경에 심각하게 두려운 감정이 생겨난 것, 아무래도 그게 현대 시민의 모든 고민의 시작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인상적이던 단편은 <애도>였는데,
유족과 죽은 이의 공간에서 살림을 정리하고 고인을 유추해 보고, 추억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따지고 보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유품들 속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 때문에 더 감정적으로 와닿았던 것 같고.
묘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 잠깐, 내가 해명할게요......
나는 평생 이런 말을 하는 상황에 처했다. - 별과 성인, 32

- 언덕 정상에 오른 나는 휠체어에 브레이크를 걸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불쾌한 웃음이었다.
"사는 게 끔찍하죠, 아버지?"
"암, 그렇다마다."
아버지가 브레이크를 풀었다. 휠체어가 벽돌 길을 따라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냥 바라보며 주저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던져버리고 본격적으로 굴러내려가려던 휠체어를 얼른 붙잡았다. - 환상 통증, 109

- 두려움과 가난, 알코올중독, 외로움은 모두 불치병이다. 사실 위급한 상황들이다. - 응급실 비망록, 146

- 그녀는 혁명을 하고 모든 걸 공유할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 한다고 했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여기에 살고 있다는 걸 바깥세상의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어. 우리는 저들에게 세상이 곧 바뀔 거라고 말해주지. 희망. 그건 희망의 문제야." - 선과 악, 198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죽음은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죽음은 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외롭게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 애도, 363

- 별이 빛나는 밤, 흰 눈이 매우 환했는데. 집에 오면 아빠는 엄마가 잠들 때까지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었지. 정말 좋은 이야기일 때는 엄마가 울 때도 있었어. 슬퍼서가 아니라 이야기는 너무 아름다운데, 그 외의 세상 모든 것이 저속해서ㅓ 그랬던 거지. - 돌로레스 공동묘지, 372

- 누군가 죽으면 시간이 멈춘다. 물론 죽은 자에게는 그렇다, 어쩌면. 하지만 애도하는 자에게는 시간이 행패를 부린다. 죽음은 너무 빨리 찾아온다. 계절을 잊고, 해가 길어지고 짧아지는 것을 잊고, 달을 잊는다. 죽음은 달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우리는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거나 전철을 타고 있거나 자식들에게 저녁상을 차려주고 있지 않고 수술 대기실에서 <피플>을 읽고 있다. 아니면 밤새도록 발코니에 나가 담배를 피우며 몸을 떤다. 책상 위에 지구본이 있는 어린 시절의 침실에 앉아 허공을 응시한다. 페르시아, 벨기에령 콩고. 죽음을 겪고 난 뒤의 안 좋은 점은 우리가 일상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 그 모든 일과와 그날 그날의 특색이 무의미한 거짓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우리를 진정시키고 달래서, 평온하고 무정한 시간 속으로 우리를 다시 들이는 속임수인 것이다. - 잠깐만, 574

- 까다로운 소재를 다루는 문제에 관해서 벌린은 이렇게 말한다. "어쩌다 보면 현실을 극히 미세하게 변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변환이지 진실의 왜곡이 아니다. 이야기 자체는 작가는 물론 독자에게도 진실이 된다. 어떤 훌륭한 글에서든 감동의 원천은 어떤 상황을 식별하는 데 있지 않고 진실을 알아보는 데 있다."
진실의 왜곡이 아닌 변환.

2025. may.

#루시아벌린 #청소부매뉴얼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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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하는 용서 창비시선 487
여세실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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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풀리지 않는 분노, 서러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집을 묶을 때 그 감정들에 맞서보기도 하고, 무너져보기도 하고, 곱씹어 보기도 하고, 그 감정을 가지고 놀아보기도 하는 마음으로 시집을 꾸렸어요."
라는 시인의 말. 그게 나에게도 와닿았나 하면... 그러진 못한 것 같다.

소소하고 세밀한 일상의 감정들이 너무 광범위한 일상을 말하고 있어서 집중력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그래도 다정한 시였다.

- 눈이 쌓이고 난 후의 흰빛이 음악이 된다고 믿었다 눈은 내리고 오래지 않아 더러워 보였다 나는 거기까지를 눈이라고 불렀다 - 후숙 중

- 나를 대체할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나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므로, 의로운 사람의 평화 깨뜨릴 수 있는 사람 언제든 나타날 수 있으나 그 평화 거머쥘 사람 오로지 그뿐이므로, - 당도 중

- 마모될 걸까
나 이전의 나를 헤아려보겨로 한건
망설이고 있어 달싹이고 있지
흔들려보기로 한 거야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선택 앞에 - 끝났다고 생각할 때 시작되는 중

- 낭랑하다, 너는 그 말 뜻 중에 어떤 것이 제일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눈물이 거침없이 흐르다, 나는 그게 좋다고 했다 거침없는 슬픔이나 막힘없는 서러움, 그게 제일 좋겠다고 했다 - 오늘은 다른 길로 가보자 중

- 여름엔 겨울을, 겨울엔 여름을 생각하며
거의 다 왔다고 믿었던 적 있다 - 부정할 수 없는 여름 중

- 구겨졌다고 말하기에는
돌은
너무 많은 모서리를 끌어안은 채
둥글다 - 경유 중

- 일그러진 최선. 일그러진 채로도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눈을 감는 최선. 하루에 십오분은 자리에 앉아서 소리 내어 책을 읽고, 삼십분씩 햇볕을 쬐며 빠르게 걷고, 플라스틱 용기에 묻은 국물 자국을 씻어 분리수거를 했다. 집에 있는 눈썹 칼을 치웠다. 종이에 손이 베였다. 손을 들고 손바닥을 앞뒤로 흔들었다. 조카가 와서 같이 손바닥을 흔들었다. 반짝 반짝. 포기하고 나서야, 도망치고 나서야 마주 보고 울었다. 아주 큰 소리로. - 생시와 날일 중

2025. jan.

#휴일에하는용서 #여세실 #창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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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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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4년 12월 11일에 다 읽었다.
지금까지 리뷰를 남기지 못한 것은 계엄 사태와 상관이 영 없지는 않다.
이 정도로 독재적으로 군림하는 정부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심심찮게 받는데, 
현실에서 계엄...이라니 계엄이라니!!! 하고 있는 와중이어서 더욱 그랬다.

해외 문학상 중 가장 취향에 맞고 좋아하는 상이 부커상인데, 그만큼의 기대를 가지고 읽어도 거의 대부분 좋았다. 
이 책도 현실만 아니었으면 좋았다.로 끝나는 감상을 남겼을 것이다.

노동조합 탄압을 시작으로 음모와 음해, 견제와 감시의 분위기로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무너지는 가족을 어떻게든 유지해 보려는 아일리시의 노력이 도저히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암담함.
노동조합 때문에 연행된 남편, 돌봄과 치료가 필요한 치매 아버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속에서 징집 명령을 받은 아들, 아직 어리고 미성숙한 막내.....
국외에 거주하는 여동생의 도움만이 유일한 희망 같아 보이지만,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상황을 온전히 전달할 수도 없는 아일리시의 상황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지배하려는 자들은 항상 비슷한 결로 세상을 망치는데,
세상의 정의, 선의, 상식이 제대로 믿음대로 작동하리라는 생각은 언제부턴가 망상의 일종으로 전락되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슬픈 체념이 생긴다.

이 책을 읽던 24년 12월이... 더욱 그랬기에, 유쾌할 수 없는 뒷맛이 남았다.

- 제가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군요, 그가 말한다, 제 행동이 반란이 아님을 증명하라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스택 씨. 하지만 노동조합원으로서 내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헌법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는 건데 어떻게 반란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지요? - 21

- 사과나무에서 오렌지가 떨어질 수도 있고 벤은 확실히 자기 나름의 남자가 될 것이다. 그래도 아일리시는 아이 안에서 래리와 닮은 점을 찾으면서 아버지에 버금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모든 남자아이는 자라서 집을 떠나고, 세상을 만드는 척하면서 해체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 37

- 마이클, 그녀가 말한다, 당신이 래리를 만날 수 없다는 거 말이에요,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그거예요, 제가 법을 다 찾아봤어요, 협정도요, 이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에요, 그러니까 말해봐요, 왜 저 사람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되는 거죠, 왜 아무도 그만두라고 소리치지 않죠? - 50

- 그가 연설하며 사람들의 박수와 미소를 통해 지지자를 골라내는 동안 그녀는 회의실을 둘러보며 그들 사이에 있는 야수를 본다, 야수가 은폐와 위선을 어떻게 내던지는지, 이제 어떻게 드러내놓고 돌아다니는지 바라본다. - 90

- 넌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가만히 서서 네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기다린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지금 우리 가족이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는거야, 왜냐면 바로 지금 우리를 떼어놓으려고만 하는 세상에서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니까, 가끔은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이 네가 원하는 걸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가끔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돼,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서 시간을 더 들여 옷 색깔을 골라야 하는 거야. - 96

- 마크가 양손을 펼치고 시선을 피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 때 결의가 느껴진다, 목소리가 돌처럼 단단하고 차분하다, 세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엄마, 마크가 말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세상이 다 봤어요, 공안부대가 평화 시위대한테 실탄을 쏘고 우리를 쫓아왔어요,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모르시겠어요? 이제 돌아갈 수 없어요. - 124

- 아일리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들을 마주하면서 남편에다가 아들까지, 그리고 또 얼마나 더 많이 잃어야 할까 생각한다, 슬픔 위에 슬픔이, 또 슬픔이 쌓인다, 시간 속에 멈춘 듯한 아들을 보며 그 모습을 기억에 새긴다, 마크가 케이크 쪽으로 가 세 번째 조각을 자른다. - 139

- 우리는 이미 터널에 들어왔고 돌아 나갈 수는 없어, 아일리시가 말한다, 반대편 빛이 보일 때까지 그냥 계속, 계속 앞으로 가야 해. - 234

- 왜 여기 남는 것을 선택하셨죠? 그가 말한다, 여기 당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요, 당신은요? 아일리시가 말한다, 당신은 왜 여기 있죠? 난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가 말한다, 나는 그 일이 끝나거나 관짝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여길 떠나지 않을 겁니다. - 300

-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제 전하고 싶은 것을 표현 할 말이 없다, 하늘을 봐도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일리시는 자신이 줄곧 이 어둠과 하나였음을 안다, 여기 남는 것은 이 어둠 속에 남는 것이지만 그녀는 아이들이 계속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일리시는 아들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몰리의 양손을 잡고서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힘을 준다, 그런 다음 말한다, 바다로, 우리는 바다로 가야 해, 바다가 삶이야. - 360

2024. dec.

#예언자의노래 #폴린치 #2023부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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