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599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사하다. 이런 좋은 구절들...
직조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치사해 치치치.

- 오른쪽 주먹을 펼치면 꽃들이 피어오른다.
일생을 화사하게 덮어버리지.
하지만 왼손에는 차가운 돌멩이
외로움조차 사라진 마음 - 왼손에 돌멩이 중

- 시간이 개울처럼 흘러가는 동안에도 나는
졸졸 흘러서 이윽고 망망대해에 닿는 동안에도 나는
내 부드러운 배를 갈라 자꾸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컴컴하고 축축한 그곳을 향해 간절하게
간절하게 손을 뻗었다. 마치 그곳에
깊고 무서운 사랑이
갇혀 있다는 듯이 - 내 생물 공부의 역사 중

- 친척은 법원에 근무하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곧 청춘이 갈 것이고 사랑은 떠날 것이고 죽음이 올 것이며 그 이후에도 세상의 풍력발전기들은 빙빙빙 돌아가는 것이라고 - 친척과 풍력발전기 중

- 꿈속에서 두 손을 모아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래도 외롭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해서
이것은 저주입니까
구원입니까
하고 질문을 했다. - 기도의 탄생 중

-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사소하다. - 용서하기는 불가능 중

2024. apr.

#음악집 #이장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짜 이야기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5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허현숙 옮김 / 민음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이지만, 이런 시와 그런 소설들을 쓴 이 사람이 몹시 궁금해진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디테일을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이런 궁금한 마음이 사그러 들기도 했었기에.
물론 마거릿 애트우드는 찾아보고 말고 할 것 없이 이미 너무 나의 최애 작가이긴 하지만.

시는 처음이라 조금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번역된 시는 조금 어렵다는 느낌도 있고.

어쨌든, 소설처럼, 강렬한 말을 전하는 시들.

- 하지만 충분히 오래 들여다보면,
결국
나를 볼 수 있을 거예요. - 이게 내 사진이에요 중

- 점점 더 자주 나를 품은 모서리는
해체되어, 나는, 가능하면
멋진 식물이 껍질을 뚫고 산소로 마술 부리듯
너를 포함한, 세상을 이해하고,
그래서 해롭지 않은 불타는 초록으로
살고 싶어라.
나는 너를
소진하지도, 결코
끝장내지도 않을 것이니, 너는 가만히
그곳에 있어도 좋을 것이라, 나를 에워싸고,
공기처럼 완벽하게. - 점점 더 중

- 우리는 서로의
숨결, 온기가 필요하다, 살아남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싸움, 머무르라 - 적대적인 국가들 중

- 피하지 말고, 당신이 그 모든 것을 결국 떠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지 말라.
당신은 이야기에서 떠나고 이야기는 무자비하다. - 키르케/진흙시 중

- 진짜 이야기를 청하지 마라.
왜 그게 필요한가?
그것은 내가 펼치는 것이거나
내가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항해하며 지니는 것,
칼, 푸른 불, 행운, 여전히 통하는
몇 마디의 선한 말, 그리고 물결. - 진짜 이야기 중

2024.jun.

#진짜이야기 #마거릿애트우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라서 몹시 반가웠다. 오랜만에 새롭게 애정을 가질 작가를 찾았다.

캐릭터들을 따라가며 읽었는데, 책을 덮는 순간 내가 조용한 응원을 받은 기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보편교양>이 가장 좋았다.
아니 그냥 수록작 다 좋다.

- 일렉트릭기타 멜로디가 뇌리를 파고들었고 그녀는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 그때 세상은 더 따뜻하고 친절했으며 나도 세상에게 그러했지. 아니, 미화하지 말자. 세상은 고약했어. 그녀는 모순적인 기억들을 뭉쳐 눈밭에 굴렸다. - 44, 롤링 선더 러브

-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 76, 롤링 선더 러브

- 잠들지도 않고 이야기하지도 않고 그저 누운 채로 숨을 쉬다 보면 방안으로 노을이 스며들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사라진 뒤 조용히 일렁거리는 커튼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남 얘기 같았다. 예쁘고 멋있고 촉감 좋은 물건들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자아실현 같은 건 모르겠지만 견딜 만한 일을 하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삶. 가끔은 나란히 누워서 햇볕을 쬘 사람이 있는 삶. 이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어두운 골목을 걸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불안해졌다. 어느 날 흰 봉투가 날아와 계약 종료 통지서나 처음 들어보는 병명의 진단서를 덜컥 내놓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 133,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 143,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2024. jun.

#두사람의인터내셔널 #김기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4-07-04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이메요?!!! 선뜻 손이 안갔는데 찜하겠습니다.

hellas 2024-07-04 12:35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 이예요
 
밤에 생긴 상처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3
허연 지음 / 민음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나비라는 생각>, <내 사랑은>, <들뜬 혈통>,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쿵하며 다가온 시들.

-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 칠월 중

- 몰락은 사족 없이도 눈부시다. 내밀한 서사가 창자 밀려나오듯 밀려 나와 있는 몰락은 눈부시다. 미리 약속하지 않았으므로 몰락은 눈부시다. 그리고 그 몰락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짝짓기란. - 몰락의 아름다움 중

- 지금에 와서 나를 울린 건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었을 뿐.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를 피해 은하열차처럼 환한 전철 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바짓단이 다 젖도록 거리에 서 있었다. - 후회에 대해 적다 중

-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중

2024. jun.

#밤에생긴상처 #허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데모 - 데모하러 간다 아무튼 시리즈 63
정보라 지음 / 위고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만큼이나 행동하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간 읽은 소설에서도 작가의 그런 거침없는 태도가 느껴지긴 했지만...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를 읽고 작가가 더욱 궁금해져서 읽게 된 책이다.

처음엔 다양한 성격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작가가 대단하다 느껴졌는데,
읽고 나니 그렇게 다양한 성격의 현장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막연한 공포가 밀려왔다.
투쟁의 장소가 아닌 곳이 없는 것만 같았다. 세상이 이래도 되나.... 하는 허무함.

그렇지만 이 모든 곳에 연대하고 응원하고 작은 손이라도 보태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기적 같다.

세상... 이래도 되냐고... 계속 생각은 들지만.

아무튼 시리즈 좋은 이야기가 많아 자주 찾아 읽게 된다.
정보라 작가도 더더더 좋아졌다.

- 2014년 7월 18일경, 광화문에 세월호 농성장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서명대에 찾아왔던 말레이시아인 부부를 기억한다. 부인 쪽이 원해서 남편과 함께 서명대에 찾아온 것 같았다. 푸른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부인에게 내가 상황을 설명하려 하자 젊은 부인이 내 말을 막았다. 
"Our plane fell. We know."(우리는 비행기가 추락했다. 우리도 안다.)
(...)
일반 시민 수백 명을 태운 대형 교통수단이 사라졌는데 정부가 진상 규명도 생존자 수색도 사망자 수습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쉬쉬하는 상황...을 2014년 7월의 말레이시아 사람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날 푸른 옷을 입은 젊은 말레이시아인 여성의 "우리도 안다"는 짤은 발, 그 목소리와 표정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너무 고맙고, 너무 참담하고, 너무 슬프고 원통했다. 그 부부는 세월호 서명대에 와서 서명을 해주었는데, 나는 MH17편 피해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잊지 않기로 했다.
(...)
나중에 2022년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조지타운 문학축제에 갔을 때 나는 그 "우리도 안다"는 한마디가 얼마나 참담하고 슬프고 고마웠는지 이야기하고 말레이시아 청중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 37

- 이덕인 열사에 대해서는 2015년 전장연이 진행한 이덕인 열사 20주기 추모 집회에서 처음 알았다. "서울 거리에 턱을 없애주시오"라고 외친 김순석 열사에 대해서도 전장연 집회에서 처음 배웠다. 바퀴 달린 가방을 끌며 보도에서 턱이 없는 곳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나는 턱 없는 거리를 위해 누군가 목숨을 바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살아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당했던 분들은 그토록 온몸을 던져 사회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애쓰고 노력했건만 죽어서도 장애인이라서 그냥 묻히거나 지워졌다. - 47

- 1인 가구 비율이 대한민국 전체 가구 수의 40퍼센트를 넘어선 지금, 혼자 살다 혼자 아프고 혼자 죽는 삶도 또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는 제도적 관점과 대응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혈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독립된 개인 당사자끼리 신뢰해서 합의하면 당사자의 여러 가지 결정을 대리할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남자'와 '여자'가 혼인해서 2.1명 혹은 1.8명의 비장애인 아이만 낳아 키우고 노후에는 자식과 손자들, 즉 사회제도의 지원 없는 가족 안의 (주로 여성의 무급 노동에 의지한) 돌봄으로 노년의 돌봄 수요를 해결하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만한 연령대에 적당히 사망해주기를 기대하던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다양한 삶이 이미 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지금,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동성혼 법제화는 현실적인 요구이다. 다시 말하지만, 삶은 형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 68

-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것 같다. 드디어 또다시 "어제가 제일 좋은 날"이었던 시기가 돌아온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니까 나는 데모한다. - 165

2024. jun.

#아무튼데모 #정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