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종말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3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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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타파하고 지구를 지킵시다 라는 사인을 남기는 멋진 사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문명이 전의 야만이라고 일컫던 시절에 대해, 편향된 사고로 망가져 가는 사람에 대해, 첨단을 걷는 시대에 상실되어가는 인간성에 대해, 상처로 점철된 역사의 단면들을 기억하는 일에 대해, 문화 예술 지원 예산 삭감으로 점점 뒤편으로 밀려나는 책의 세계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간과되고 있는 범죄들에 대해....

세상의 부조리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일들이 빼곡하게 이야기로 등장한다.

이 작은 종말들을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단편들.

지향, 무르무란, 증언 이 가장 좋았다.

- 나와 강은 같이 데모하는 사이다. 이것이 우리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규정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같이 데모하고 같이 행진한다. - 지향, 10

- 장애인권 활동가들 덕분에 보도에 턱이 없어졌고 장애인권 활동가들 덕분에 건물에 경사로가 생겼고 장애인권 활동가들 덕분에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고 장애인권 활동가들 덕분에 거리에 저상버스가 도입되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제치고 언제나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버스에 오르면서 아무도 장애인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장애인권 활동가들은 욕먹고 비난받고 얻어맞고 갇히고 벌금을 뒤집어쓰면서도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운동을 계속한다. 나는 빛나는 동료 인간들을 보며 경탄한다. 장애인권 활동가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멋지다. 나는 마음속으로 혼자서만 그들을 동지로 여긴다. 언젠가 나도 그들의 동지로 여겨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 지향, 22

- 비성소수자는 자신이 세상의 표준인 데 지나치게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존재의 상태가 세상에 다양하고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이 더 이상 표준이 아니라는 사실에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서 동성애는 죄라고 외친다. 그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았을 때 우리는 광장에 갇혀 행진하러 나아가지 못한다. 그들의 주장이 지나치게 강해서 축제의 광장을 빼앗기기도 한다.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녀의 결혼, 재생산을 위한 성교, 임신, 출산, 양육,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정된 성 역할 강화와 체계적 성차별, 제도적 억압을 그들은 신의 뜻이라 주장한다. 만약 정말로 신이 있다면, 인간이 모든 색채를 가지고 모든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진 것이야말로 신의 뜻일 것이다. 죄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않는다. - 지향, 25 

- 우리는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강이 지향했던 세상을 지향한다. 그것은 '지속성, 안정성, 확정된 의미를 약속하지 않는' 혹은 약속할 필요가 없는 미래이다. 아무런 약속이 없어도 강이 세상에 존재했던 시간은 의미를 가진다. 나는 그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강이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은 지속하지 않고 미래가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약속도 가질 수 없는 모든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할 수 있기를 나는 원한다. 그것이 강이 원한 세계이다. 그래서 나는 강의 시간 안에 맴돌고 언제나 강을 향해 돌아간다. 투쟁하러 간 곳에 언제나 강이 있다. 나의 시간은 강을 중심으로 순환한다. 강을 만나기 이전의 시간이 있고, 강을 만나 함께한 시간이 있다. 그 외에는 없다. - 지향, 33

2024. jun.

#작은종말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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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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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피어의 새로운 시리즈 복간할 결심.

이런 식의 분류로 시리즈 딱 열권이라는 기획의도가 참신하다.
활자 잔혹극은 몇 년 전이었던가 모 교양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되어 관심이 갔었지만, 절판된 책이라는 아쉬움으로 묻어두었던 책이다. 
복간이 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이런 복간할 만한 책들이 9권 더 나온다는 반가움도.

계급의식에 사로잡힌 고용주와 문맹이면서 인간성 부재의 고용인 사이의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불안을 자극한다.

유니스가 받은 유일한 가르침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그의 어머니는 말하곤 했지만, 정작 유니스는 나쁜 일을 할 기회만 되면 일을 저질렀고,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이다. 
이것이 문맹이라는 상황이 빚어내는 결과인지, 그의 어찌할 수 없는 성품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세계와 소통하는 수단 중 하나를 잃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의 막연한 공포와 피해의식이 어느 정도는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여되고 있을 것이다. 

유니스 파치먼이라는 황무지에 조앤 스미스라는 광기는 불과 기름이 아닐지.

커버데일 가족들 역시 선량한 인간과는 거리가 있고, 그것은 세상의 정의와 선의에 대한 이치를 깨닫게 되기 전 까지의 지식만을 소유한 때문이 아닐까.
주어진 지위와 부로 인해 시야가 차단된 편협한 인간들일 뿐이어서. 유니스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했고, 사실 타인의 본질에 관심도 없었을 테니까.

몰이해와 몰상식이 빚어내는 잔혹극이다.


-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 7

-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문명의 초석이다. 문맹은 기형으로 취급된다. 육체적으로 기형인 사람들을 겨냥하던 조롱의 방향이 문맹인 사람들 쪽으로 점차 바뀌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만일 문맹자가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레 살아가려 한다면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눈이 나쁜 사람들의 나라에서 장님이 배척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처럼. 유니스를 고용해서 그녀를 아홉 달 동안 집에 둔 사람들이 유별나게 많이 배운 축에 속했다는 사실은 유니스에게나 그들에게나 불운이었다. 만일 이 가족이 교양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현재까지 살아 있었을 테고, 유니스는 활자가 완전히 부재한, 그녀 자신의 감각과 본능으로 구성된 비밀스러운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갔으리라. - 7

-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동정심을 앗아갔고 상상력을 위축시켰다. 심리학자들이 애정이라고 부르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그녀의 기질 안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 74

- 재클린은 자신이 유니스를 보면 움츠러드는 것보다, 그녀가 자신을 훨씬 더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커버데일 회사의 서류 사건은 유니스를 껍질 속에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녀는 커버데일 가족들에게 말을 걸거나 그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도록 내버려 둔다면, 가장 큰 적인 활자가 들고 일어나 자신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했다. 라디에이터 옆에 안락의자를 끌고 와 책을 읽는 모습이, 유니스의 비위를 맞추면서 그녀를 피하려 무언가를 읽는 모습이 무엇보다 그녀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재클린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 197


2024. jun.

#활자잔혹극 #루스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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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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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박지리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읽고 다른 작품 궁금해서 사두고 잊었었던 책인가 보다.

청소년 소설의 공식 그대로인 쌍둥이 형제 오합 과 오체의 이야기다.

딱히 흥미로운 부분은 없고, 그럭저럭 읽혔다.

- 아버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합, 체, 니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노는 이런 공 말고, 너희들의 공을 찾아야 해. 너희만의 진짜 공." - 40

2024. jul.

#합체 #박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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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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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박지리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읽고 다른 작품 궁금해서 사두고 잊었었던 책인가 보다.

청소년 소설의 공식 그대로인 쌍둥이 형제 오합 과 오체의 이야기다.

딱히 흥미로운 부분은 없고, 그럭저럭 읽혔다.

- 아버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합, 체, 니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노는 이런 공 말고, 너희들의 공을 찾아야 해. 너희만의 진짜 공." - 40

2024. jul.

#합체 #박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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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의 폴짝 - 정은숙 인터뷰집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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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김금희, 김소연, 김숨, 김연수, 김용택, 김중혁, 백선희, 백수린, 손보미, 신형철, 이기호, 이승우, 이해인, 임경선, 정이현, 조경란, 하성란, 호원숙, 황인숙 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가 만난 사람들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 인터뷰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스무 해를 맞이하는 마음산책을 새롭게 되돌아보고 새로운 날들을 기약하는.

문학에 대해, 한국 사회에 대해, 출판계에 대해, 각자의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결이 다들 비슷하달까. 약간 루즈해지는... 그런 느낌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에 대한 애정으로 구입했던 책.

2024. jul.

#스무해의폴짝 #정은숙 #인터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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