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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 왜 지금 노무현인가
이장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5월
평점 :
5공이 끝난 후인 1988년 중앙일보는 지면에 <청와대 비서실>이란 기획을 연재하여 큰 인기를 끌었었는데 김진, 오병상 기자 등의 취재력, 필력 등에 힘입어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 받으며 당시에는 컨트리클럽에서 라운딩할 때 필수 화젯거리였다고도 전합니다. 지금 이 책도 중앙일보 지면, 온라인에 실제로 연재되었던 컨텐츠이며 그런 역사적 맥락까지 더해지니 더욱 흥미롭고 의미도 깊어지는 듯합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국 현대사는 군사정변, 대규모 시위, 끝없는 극한의 정치투쟁 등으로 점철되어 결코 가볍게 커버될 수 없는 성격의 연대기지만, 그래도 박정권, 전정권 등의 시기를 다룬 책을 볼 때에는 뭔가 억눌렸던 표현의 욕구가 분출된다거나, 절대 권력의 몰락, 퇴장 과정의 폭로를 구경하는 쾌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기를 다룬 기록을 읽을 때에는, p17에 나오는 대로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끔찍한 결말을 다 알기 때문에 뭔가 불편하고 무거워지는 마음입니다. 아무튼 저자들의 기획 의도대로, 역사의 밝은 면이건 그렇지 않은 부분이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기는 우리 사회의 권력이 근본에서부터 교체되는 시기였고, 이때 나라 일에 참여한 인사들 중 몇 사람은 지금 신정부에서도 (우여곡절을 거쳐) 중요 포스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p58에 나오는 강금실은 문재인 비서실장이 법무장관으로 추천한 사람이었는데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에서였으며 얼마 전까지 더불어민주당 대선 선대위에 소속해 있었습니다. p62를 보면 김진표(p294에 그와의 짧은 대담이 있습니다), 우원식 등 최근의 두 국회의장도 2004년 17대 총선 때 초선으로 원내에 입성했다고 나옵니다.
김진표씨는 그전부터 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였고 이헌재씨(p282)는 1998년부터 이미 중용되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 역할을 했던, 국민 대다수가 그 얼굴을 알던 인물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노무현 정부의 첫째, 둘째 경제부총리였습니다. 또 국무총리는 고건씨였는데 전북 출신, 엘리트 행정 관료로서 대한민국에 그만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 없었습니다. 1998년에는 서울시장에 출마도 했었는데 한나라당의 최병렬씨를 꺾고 여유 있게 당선되었습니다. p175를 보면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씨와 "미스터쓴소리" 조순형씨가 악수하는 사진이 있습니다(두 사람은 지금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위해 만난 것입니다).
p112에서는 SK 비자금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당시의 사진이 나오는데 아직 젊었던 시절의 한동훈 검사가 찍혀서 눈길을 끕니다. 그 사람인 줄은 알겠는데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하고 이 사람이 이때에도 중요 현장에 있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p126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알려진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사진이 나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인 시절에도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번거로운 일들을 손쉽게 처리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p138을 보면 그가 만든 이지원에 대한 회고가 있습니다.
한국이란 나라는 근검절약하는 풍조가 없고 어디에서건 거대 부실 요인이 잠복하여 거시경제를 위협한다는 게 어제오늘의 사정이 아닙니다. p215를 보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여파로 90조원 가까운 규모의 카드채가 부도 직전까지 갔던 2003년의 사정이 회고됩니다. 국가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이를 막으라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였는데, 이때 어설프게 방치했다가는 바로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상황 판단에서였습니다.
이라크전은 명분이 부족하여 미국 안에서도 반대가 많았지만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워낙 강력하게 요청하여 어쩔수없이 파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나옵니다(p298). p379에는 김경수, 김종민 등의 비서관들과 가진 짧은 인터뷰가 있는데, 이 두 사람은 지금 모두 거물로 성장했습니다. 자신을 던져 폐족 전체를 구한 과감한 승부사로 유인태씨(전 국회 사무총장)는 평가하는데 매우 울림이 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