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쉬운 주가 차트 실전 노트 : 데이 트레이딩 편
사가라 후미아키 지음, 김진수 옮김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에서 데이트레이딩, 단타 매매로 유명한, 학원 강사 출신의 셀럽 사가라 후미야키의 책입니다. 이분 이름은 (책 앞날개에 나오듯이) 한자로는 相良文昭(상량문소)라고 쓰며, 원서는 <世界一わかりやすい!株価チャート実践帳>입니다. 번역하면, "세계에서 가장 이해하기 쉽다! 주가차트와 실천기록" 정도 되겠습니다. 의외로 아직 이분이 유튜브 방송을 안 하고 있는데, 말솜씨도 좋아서 일단 시작하면 구독자가 꽤 생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초보자들에게 무엇이 실 거래이며 무엇이 허수주문인지 구별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허수 주문이 없는 날은 찾아보기 힘듭니다.(p66)" 구체적으로, 저자 자신이 매매한(또는 관찰한) 기록을 차트, 호가창 캡처를 통해 보여 주는데, 9시 48분 시점(이 책에 나오는 기록 중의 시각입니다)에서 나오는 호가가 매우 부자연스럽다고 짚어냅니다. 20만주 매수호가 중 7만 5천 주만 체결되었는데, 저자는 이걸 부자연스럽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37.5% 이하의 체결률은 다 허수호가의 개입이라는 게 아니라, 주변 정황까지 모두 체크한 후 이런 작전에는 말려들어가지 않아야겠다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p68 이후에 현황의 변화가 그래픽으로 잘 나오니 전체적으로 잘 살피고 저자의 주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p93에서는 공개매수(take-over bid)가 설명되는데 한국에서 지금도 진행 중인 고려아연 사태에서도 이 비슷한 걸 볼 수 있습니다. 전형적으로는, 2023년에 벌어졌던 하이브와 카카오 사이의 전쟁을 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일본 저자가 쓴 이 책에 뭐 이런 말이 나오지는 않고, 사례 포섭은 독자인 저 개인의 판단입니다). 저자는 TOB에 대해 두 경우를 짚는데 첫째 M&A, 둘째 모회사가 자회사를 완전자회사화(100%에 가까운 지분 취득)할 때 쓰인다고 합니다. 두 경우 모두 한국 증시에서도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요즘 "공포에 산다"는 오랜 주식 격언이 자주 들리는데 박살났던 미장도 슬슬 원복되고 작년말에 죽을 쒔던 한국증시가 3월부터 회복세가 완연하기 때문입니다. 저점을 어느 정도 다졌다 싶으면 과감하게 대형우량주, 또는 지수성 상품에 들어가는 게 현명한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추세 매매, 즉 하락 중인 주식을 매수하는 기법에 대해 p105 이하에 설명이 나옵니다. 어디에서나 통하는 진리가, "갭은 반드시 메워진다(p105)"입니다. "연일 저가 마감이 이어지는데, 주관적으로 곧 하락이 멈추겠지 짐작하여 시장가에 매수하는 건 위험합니다."라는 말이 책에 나옵니다. 그럼 언제 들어가야 하는가? 거래량을 주목하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상승 후 계속 하락하다 그전 구간의 저항대까지 또 내려왔다면 이 역시도 반등 신호일 수 있다고도 합니다.

2단 하락까지 왔다면 조급한 투자자들은 이미 물량을 다 털어버린 후이므로 이때부터는 확실한 상승이 올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증시에서는 이런 패턴도 자주 깨지므로, 뭐 하나를 시그널이라고 지나치게 믿고 들어가기보다는 시장 전체 상황을 신중하게 더 살필 필요도 있겠습니다.

종목이 오랜 기간 횡보하면 사람들이 지치고 지루해하므로 시선에서 벗어나는데 저자는 이런 종목들에서도 적잖은 재미를 본 적 있었나 봅니다. 책에 나오는 예가 적절한데 하나는 하락 후 장기횡보, 다른 하나는 반대로 상승 후에 장기횡보하는 종목입니다. 전자의 예로 나오는 종목은 東京取引所(일본어로, 취인이 곧 한국말의 去來입니다)의 7267번 本田技硏, 혼다기켄입니다. 이 책은 한국에서 나오는 비슷한 책들과 다르게, 차트 예를 들어 놓고 마치 문제를 내듯 독자에게 어떤 전략으로 임할지 생각해 보게 시킨 후 답을 책 뒤에다 몰아 두었습니다. 아무리 책을 열심히 읽어도 자기 힘으로 다시 아이디어를 재구성해 보고, 실전 매매를 MTS 등에서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실력이 매번 제자리걸음인데, 그런 이유에서 저자의 이런 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르미 공작소의 띠부띠부 꾸미기 놀이 - 내 마음대로 꾸미는 나만의 띠부띠부책
아르미 박사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튜브 인기 채널 중에 아르미(@armiicraft) 공작소라는 곳이 있습니다. 포털에서 찾아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바로 이 책의 표지를 담은, 이 책에 대해 소개하는 영상의 썸네일입니다. 학부형이 아니면, 또 남성이라면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요즘은 띠부씰이라는 게 꽤 인기이며 이게 떼었다붙였다 할 수 있는 씰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띠부씰도 여러 테마나 굿즈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오기 때문에, 혹시 주식 투자하는 분들이라면 어쩌다 들어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예를 들어, 티o핑 컨텐츠 테마가 요즘 뜨는데, 그 띠부씰 만드는 회사가 어디라더라 등). 아무튼 이 아르미 공작소라는 채널이 애들한테 꽤 인기라서, 아예 이런 책까지 나온 걸 보면 세상이 참 빠르게 변화한다는 점 실감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뭐 저도 어렸을 때 이런저런 오려붙이기, 평면도를 잘라 입체로 도안하기 같은 건 해 보고 자란 세대라서, 예컨대 p16 이하에 나오는 대로 먼저 가위, 손코팅지, 투명 박스 테입, 양면 테입(요즘 문방구나 다이소에 이걸 왜 이렇게 갖다놓나 했더니 이런 이유도 있었네요), 보드마커, 커팅매트 등을 준비물로 가르쳐 주는 파트를 보니 처음 느꼈던 이질감이 그나마 줄어드는 듯합니다. 이런 책을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실선, 붉은선 등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아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책의 구조가 처음에 어떤 주제에 대해 뭘 설정하고 어떤 패턴에 따라 내용이 설명되는지 찬찬히 따라가면서, 지식도 체득하고, 내가 궁금했던 걸 이런 식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구나 라며 쾌감도 느끼고 지능도 발달하는 것입니다. 어떤 띠부씰이라는 결과물을 손에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의 지시를 따라 무엇을 만들어가고, 다소 서투르더라도 내 손으로 작품을 제작한다는 긍지를 심어 주는 게 교육젹으로는 훨씬 가치가 높습니다.

저는 예전에 컬러링북을 리뷰할 때도 그 점을 지적했는데, 이런 책에서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도했던 대로 다 완성하고 나면 정확하게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한눈에 보여 주는 것도 증요하다고 봅니다. 이 책 p21을 보면 도안 11개가 제시되는데, 표지, 배경1, 소품 페이지 1~6, 버클 & 주머니 파츠 등이 보기 좋게 나열됩니다. 내가 책의 지시대로 모든 과정을 따라하고 나면 뭐가 나오는지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보여 줘야 아이들한테 더 강한 동기가 부여됩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는 대리석만 봐도 그걸로 빚어야 할 모세의 모습이 같이 보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처음에 버클 파츠, 소품 파츠라고 할 때 파츠가 뭔지 몰랐는데 물어 보니까 그냥 parts라고 해서 맥이 쫙 풀렸습니다. 아무튼 이 아르미공작소에서 쓰는 말, 분위기에 제가 알아서 익숙해져야 하겠지요. p47에도 어항꾸미기에 필요한 도안 14개가 미리 제시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 마리모 키우기하고, p65의 헤어 파츠가 좀 어려웠습니다. 만약에, 아이가 커서 네일아트를 하고 싶다면(아니라도 물론 상관없지만) p78 이하에서 보여 주는 네일아트의 온갖 재미있는 파츠들 만들기가 특히 유익할 듯합니다.

책이 크기도 크고 두껍기도 꽤 두껍습니다. 그런데 p89까지가, 10개 유형의 파츠들을 실제 만들게 돕고 가르치는 내용이며, p90부터는 만들기 도안입니다. 이 3부는 목차가 따로 없어서 제가 이 리뷰에다 좀 정리해 보자면, 미니어처 하우스 꾸미기, 햄스터하우스, 꽃다발, 파르페, 어항, 책상, 헤어, 메이크업, 네일아트 순입니다. 그러면 제2부하고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사실 3부의 도안은 앞 2부에 없던 것들도 몇 개 있어서 더 알찼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는 책 리뷰를 쓰기 위해 급히 해당 유튜브 페이지에 찾아가 영상도 시청하고 어린 구독자의 설명도 들었던 거라서 정작 핵심인 캐릭터들하고 나중에 친해졌는데 p10 이하에 설명이 아주 자세해서 늦게나마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르미공작소 팬들에게 너무나도 좋은 선물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액트프러너 - 실행을 성공으로 바꾼 창업가들
언더독스.김지윤 지음 / 찌판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9에 설명이 나오듯이 액트프러너라는 말은, 행동을 의미하는 act와, entrepreneur(창업가)의 합성어입니다. 또, p15의 설명대로, 이 책 공저명의 중 하나인 언더독스의 활동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창업가 후원이라는 의미에서의 entrepreneurship promotion이 그 의미 요소로 들어갑니다. 한국처럼 부존 자원이 적고 국토도 좁은 나라는 오로지 우수한 인재가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야 나라의 앞길이 트이는데, 공부 잘한다는 애들은 죄다 메디컬 갈 생각만 하니 문제입니다. 물론 중국처럼 국가 차원에서 인재 양성 배려 정책을 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크게 부족한 게 현실이긴 하나,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도 크게 아쉽습니다. 이 책은, 젊은 나도 도약하고, 공동체에도 전에 없던 혁신의 과실을 안겨 줄 창업에의 길이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잘 가르쳐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예전에 故 크리스텐슨 교수도 파괴적 혁신을 논하면서 기업가는 결코 과거의 잘되던 방식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까지 했습니다. p66을 보면 언더독스는 로컬라이즈 군산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이들에 대한 창업교육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는데 수도권에는 이런 행사가 많습니다만 전북 군산은 먼 지방에 자리한 작은 도시입니다(과거에는 번성했지만). 이런 곳에서 SK이노베이션과 함께 뜻깊은 행사를 주관했다는 자체가 매우 뜻깊은 시도라고 하겠네요. 여튼 이 과정에서 언더독스는 ESG 교육의 내용을, 수시로 변화하는 정부 기조 때문에 세심하게 디테일을 조정해야만 했다고 나옵니다. 원래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고 해도, 종전의 틀에 안주하다가는 목표를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저 파괴적 혁신의 가르침은 여기에서도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특정 커뮤니티에 모였다고 모두 성향이 비슷하겠거니 지레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전통적인 인구분류표를 보고 결론을 성급하게 이끌어내어서는 안 됩니다. 창업가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p95)는 게 책의 주장인데,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보고 그 기호, 성향 등을 테스트해 보면 사전에 예상했던 바와 크게 다른 결론이 도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책에는 여러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한 후, "같은 커뮤라고 해도 요즘은 국경을 넘어 한 군데로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한다"며, 과연 이 사람들이 같은 커뮤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스타일이나 니즈가 같겠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은 예전부터 실수라는 게 용납이 안 되는 사회였습니다. 이게 좋은 점도 분명 있어서, 사회에서는 딱 각잡고 빠릿빠릿하게 굴어야지 정신줄 놓고 있다가는 큰일난다는 경각심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여기까지 온 것인데, 문제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정말로 파괴적 혁신의 시대라서, 과거의 패턴에 더이상 기댈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두루 거쳐야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는데, 한국에서처럼 한 번 실수가 그대로 끝을 의미하는 사회에서는 이게 안된다는 게 문제죠. p96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만 청년의 실수에 대해서는 사회가 좀 관대해져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용착(容錯. 롱추어)이라고 해서 이렇게 청년의 시행착오를 적극 장려하고 크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법적 책임을 안 묻는다는 게 아니라, 경력상의 과오로 깐깐하게 보지 않는다는 뜻). 원래 이 말이 중국에서는 널리 쓰였는데 한국에서는 저 중국산 AI 딥시크의 성공 때문에 근래에서야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여수와"는 로컬 여행사이며(p151) 여수는 예로부터 관광지로 이름 높았기 때문에 창업이 그리 용이한 상황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창업자 하지수 대표는 17년 동안이나 현지에서 교사로 근무하시던 분인데, 여행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다가 마침내 창업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만 교사란 특히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장래의 올바른 비전을 심어 줘야 하는데, 아이들이 마주해야 할 현실이 자신의 가르침과 불일치하면 그만큼 난감한 경우가 또 없습니다. 이런 현실 인식 끝에 창업하게 된 게 여수와인데, 이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이처럼 창업의 구체적인 사례, 또 성공한 창업가들의 "행동력"이 돋보이는 설명이 많아서 대단히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을 건너는 집 특서 청소년문학 44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년 12월, 김하연 작가님 출세작이기도 했던 그 초판을 읽고 리뷰도 등록했었습니다. 여러 힘든 사연을 안고 살던 아이들이 우연히 어떤 운동화를 신게 되고, 그 운동화를 신은 이들에게만 보이는 "타임하우스"에 모여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어른 독자가 읽어도 재미있었으며 바쁜 일상 속에 잊기 쉬운 인생의 참된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도 되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42에 이 초자연적인 집에 얽힌 규칙들이 나옵니다. 첫째 집 자체가 그 신비의 운동화(겉으로 보기엔 아주 평범)를 신은 사람에게만 보인다. 둘째 과거/현재/미래의 문 중 무엇이라도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셋째 이 멤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외부에 이 사실을 발설하면 모두에게 주어졌던 특권은 그때부터 사라진다. 넷째 평행우주 어디에서 나의 다른 삶이 있더라도 여튼 이 세계의 나는 그에 대해 알 수 없다 등입니다. 일종의 연대책임을 지며 단 한 사람의 잘못이라도 모두의 마법을 해제한다는 규칙이, 현대에는 잊기 쉬운 공동체정신이랄까 우애, 협동의 미덕을 일깨우는 듯합니다.

5년 전에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지만 역시 있는 집 애들이 뭔가 모든 면에서 여유라는 게 있습니다. p25, p39를 보면 김강민은 스스로 대치동 소재 효문고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물론 얘네들이 사는 우주에서나 그렇겠고 독자인 우리네 우주의 현실 강남 대치동에는 그런 학교가 없습니다. 강민이는 "우리"라는 대명사를 거리낌없이 쓰는데 이수는 바로 냉소, 거부의 반응을 표시합니다. 역시 자칭타칭 사이코패스다운 언행이며, 이런 애 곁에서 말을 주고받는 다른 아이들한테도 걱정하는 눈길이 쏠리는 게 당연합니다. 한 팀 안에 이런 멤버가 끼었으니 과연 어떻게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에휴.

2020년 주식시장에는 이른바 3세대 항암제 테마가 인기를 끌어서 어떤 회사는 3상까지 다 되었다더라, 어떤 회사는 미 FDA에서 승인이 다 떨어졌다더라, 이번 미 암학회에서 대호평을 받았다더라 등 별의별 루머가 다 돌았습니다. 하루빨리 3세대(면역), 4세대 항암제(대사)가 상용화하면 p70 이하에 나오듯 선미 엄마 같은 분이 화학치료를 받느라고 저리 고생을 할 이유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나 몸 곳곳에 붙은 살들이 빠지질 않아서 컴플렉스였는데 항암 치료를 받다 보니 몸에 남아나는 살이 없더라, 이게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고백입니까. 선미의 성적도 엄마의 암 선고와 더불어 뚝뚝 떨어지더라는 말이 슬프게 읽힙니다. 이 와중에 할머니는 아빠더러 새장가 들라고 성화(p142)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어린 독자들이 가장 주목할 만한 캐릭터는 제 생각에 자영이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무서운 공포는 학폭인데, 폭력 자체의 강도가 세어서라기보다, 또래들한테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참하게 밀려났다는 사실이 아이들한테 큰 좌절감을 주고, 그 모든 피해가 본인 잘못에 기인했다는 자책감이 치명적이라서입니다. 자영이가 이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고 자존감을 찾을지, 주변에서 도움은 누가 주는지도 잘 지켜봐야 하는 포인트입니다. p121을 보면 진한 화장을 하고 집으로 찾아온 담임이란 분은 그저 자신의 처지만 생각할 뿐 자영이를 진심으로 돕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이 사람의 처지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p206에는 자영에 대해 강민이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는 이수의 평가가 나오는데 앞에서 강민이가 자영이 말도 들어주고 좋은 조언도 해 줬기 때문입니다. p139를 보면 매번 틱틱거리는 것 같아도 처음으로 살짝 마음을 열고 강민을 신이수가 형이라고 부르는 대목이 있습니다. 여튼 얘는 기어이 검거되어 신문 기사에까지 나는데 나머지 멤버들은 공동미션 완수 여부보다도 과연 얘 운명이 어떻게될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이 단계에서 아이들 사이에는 공동운명체 인식이 생겼고 독자는 벌써 일이 잘되어간다는 좋은 예감도 듭니다(특서 책은 대부분 해피엔딩이니 믿고 읽죠). 수수께끼의 아저씨는 자영한테만 특별히 하나의 예외를 허락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지 독자가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도 뜻깊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바나의 우리 사람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4년 전 리뷰를 남겼던 <브라이튼 록>에서 잘 드러나듯, 그레이엄 그린은 20세기 쇠락해 가는 대영제국의 안뜰과 뒤뜰을 소설에 자주 담았던 편인 작가입니다. 이 <아바나의 우리 사람>은 배경이 바티스타 정권 하의 쿠바인데, 주인공 제임스 워몰드는 지난 세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임을 뽐내던 영국의 초라한 상황을 상징하듯 매우 어려운 형편에 놓인 자영업자입니다. 말 안 듣는 딸 밀리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사춘기 딸 키우기가 이렇게 어렵겠구나 싶은데, 나치에 타격당하고 거의 질 뻔한 전쟁을 간신히마무리지었건만 야당인 노동당에게 정권을 줘 버린 자국민들을 보던 당시 보수당 정치인들의 심경도 이 대목에서 풍자된다는 생각도 저는 들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워몰드가 먼 대서양 카리브해(p74) 지역에 왜 머물러서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느냐면, 그건 대서양 일대 구 유럽 식민지의 형편이 다 그러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물론 쿠바는 영국 세력권이었던 적이 없었지만 인근에 바하마라든가 도미니카연방 같은 곳들도 다 비슷한 경기였고 상황이었으니 말입니다. 현지인들에게 우월적 지위로 뭘 해먹던 게 이제 예전같지 않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식민인들이 기민하게 정세 변화에 대응한 것도 아니고 본국으로 귀환해 봐야 더 상황이 나빠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바나의 정정은 매우 혼란스럽고, 이는 집권자 바티스타의 무능함과 부패가 한몫해서인데 소설 곳곳에서 이 점이 지나가듯 암시됩니다.

1960년대 영화 007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관객 눈에 당혹스러운 게 있습니다. 영국은 2차 대전 후 급저그런 나라로 전락했는데 뭐하러 저렇게 세계의 (비밀) 경찰 노릇을 하려 애쓰며, 그럴 여력이나 있었던가? 이 1958년작 소설을 보면 그 씁쓸한 이면이 묘사됩니다. 첩보 당국은 뭔가 과거의 환상을 붙들고 그들의 사무를 처리하는데, 진지하고 열심이긴 하지만 아무한테도 크레딧 받지 못하는 그 노력이 뭔가 안쓰럽고 우스꽝스럽까지 합니다. 워몰드의 개인적 무능과 당국의 기묘한 무기력이 겹쳐 보여 소설의 코믹한 상황이 아이러니를 더합니다.

시니컬하고 열의가 없는 워몰드에게 슬로피 조의 이방인 손님은 말합니다. "1939년처럼 뒤통수를 맞진 말아야죠.(p47)" 여기서 영어원문은 Ribbentrop Pact라고 표현하는데 이게 (이 번역본에서처럼) 독소불가침조약입니다. 리벤트롭이라고 당시 독일 외무장관 이름을 대면 더 의외의 타격감이 아프게 다가오죠(이 역본에서는 뒤통수 맞음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이것만 봐도 당시 영국은 나치 독일이 아니라 공산주의 소련을 더 큰 주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은 MI6에 복무한 적도 있었기에 이 분위기를 잘 알았으리라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

캡틴 세구라는 그전부터 워몰드에게 매우 신경쓰이는 작자였습니다. 대체 왜 저런 남성들은 한참 어린 아이들에게 이처럼 구칙칙한 눈길을 보내곤 하는 걸까요? 또, 딸 밀리라도 선명한 처신을 하면 좋으련만 아빠 애를 먹이려고 무슨 작정이라도 했는지 얘마저도 희한한 언행으로 문제를 악화시킵니다(물론 두 번이나, 캡틴 세구라에게 '이 파티는 당신이 아니라 아빠의 것'이라고 못 박긴 했습니다). p141:4의 원문은 "He was hurt that anyone so pretty should look at him with such contempt."인데 여기서 왜 워몰드가 anyone이란 표현을 썼는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고, 책의 번역문은 그걸 더 타자화하여 효과를 높입니다. 여기서 세구라가 내뱉는 욕설 원어는 스페인어 Coño입니다.

p239를 보면 영국 첩보당국이 이제 패권을 미국에 뺏기고 얼마나 허탈해하는지 국장의 푸념을 통해 그 심기가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미국에서는 checkers라고 하고 영국에서는 draughts라고 하죠(p141). 이중 첩자라는 게 화제에 오르는데 사실 작가 그레이엄 그린도 이쪽 일에 대해 잘 알 만한 경력을 가친 인물이라서 이 언급은 뭔가 심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바티스타 정권이 망하기 직전 긴박한 아바나의 모습은 영화 <대부 2>에도 몇 컷이 잘 나오죠. 

캡틴 세구라는 밀리의 아빠 워몰드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는 등 거침이 없고(p299), 워몰드 씨는 사태의 전개가 자신의 뜻과 하나도 맞지 않아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워몰드의 거주 자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세구라는 갑의 위치이고, 여기에 닥터 하셀바허(저 앞 p109에서는 갑자기 여자가 된ㅋ)의 죽음과 장례까지 겹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꼬입니다. p345에서 언급되는 페르시아만의 바스라는 이라크 소재인데 이때만 해도 이라크는 대단히 세속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쿠바 역시 공산혁명 전이라 미국인들이 제 안방처럼 드나들며 영향력과 이권을 키워 나갔는데, 이 코믹한 소설은 한 시대 구간에 찍힌 마지막 기념사진처럼 묘한 풍속도 노릇을 합니다. 영화로도 바로 만들어졌었는데 <닥터 지바고>나 <콰이 강의 다리>에 나왔던 알렉 기네스가 워몰드 역입니다. 사실은 이 워몰드 역이 알렉 기네스 연기의 가장 특징적인 면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