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명과 과학적 사유
최화 외 지음 / 문사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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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명과 과학적 사유는 철학자들의 사유를 모은 책이다. 근대과학이란 물리학의 발달로부터 출발했다. 갈릴레오가 현실적 사물에 수학을 적용하려 했을 때 그가 완전히 독창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천문학에서는 그보다 먼저 천체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었고 그런 시도의 원조를 따지자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플라톤은 수학적 법칙을 천상의 세계에 대해서만 적용했고 갈릴레오는 그것을 지상의 세계에도 적용했다. 천상에만 질서가 있다는 고대의 생각을 뿌리치고(?) 지상에서 질서를 찾으려 한 것이다.(16 페이지) 베르그손은 자유는 우리가 매순간 느끼는 자유의 감정 그 자체이며 어느 정도 자유로운가는 우리 내면의 어느 정도의 깊이에서 나온 행동인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전통 형이상학이건 근대 물리학이건 모두 물질을 이용하려는 지성의 힘에 기반을 두고 세계를 설명한 시도였다면 베르그손은 새롭게 우리의 인식능력은 지성을 넘어서는 측면, 생명의 입장에서 지성의 자리를 한계지을 수 있는 측면을 지닌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철학은 이제 전통 형이상학을 완전히 뒤집어 정지체에서 운동으로, 본질에서 기능으로, 형상에서 지속으로, 공간에서 시간으로의 역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닫힌 우주에서 열린 우주로, 형태 중심에서 유전 중심으로, 성년 중심에서 연속성의 담지자인 씨앗 중심으로, 개체에서 종으로, 도덕률에서 상황으로, 무감동에서 참여로 등의 변혁이 베르그손에게서 일어난 것이다. 정지가 존재에서 운동이 존재라는 말로 바뀐 것이다. 생물은 운동하지만 자신임을 잃지 않는다. 자발적 운동은 말하자면 모순적 운동인데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운동이 베르그손이 말한 지속(持續)이며, 지속이야말로 진정한 존재라는 것이 바로 운동이 존재라는 말의 의미다


운동이 존재라는 말은 진정한 존재는 운동이라는 의미다. 운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단(不斷)히 타자화되는 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운동했음에도 타자화되지 않고 자기동일성을 잃지 않는 운동이다. 기억이 지속의 자기동일성을 확보해준다. 그러한 생명의 존재방식은 지성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베르그손은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초()지성주의다. 지성은 주어진 것들의 배열을 달리할 수 있을 뿐이지만 창조는 배열 정도가 아니라 주어진 것 자체를 즉 없던 것을 새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 이성은 자연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근세에 와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과학은 인간 이성이 이룩한 위대한 결과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맞추어 인간 이성을 다소 제한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도 생겨났다. 이른바 수학적, 과학적 이성 또는 과학적 합리성의 틀에 따라 이성이 마치 오성과 같이 규정되는 것이다. 근대의 과학적 합리성의 토대를 이룬 것은 바로 근대 물리학을 가능하게 한 수학(기하학)이다.(85 페이지


아인슈타인은 많은 철학책들을 읽고 철학에 대해 많이 알고 생각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철학적 배경이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내는데 긴요한 기여를 했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자신이 만든 상대성 이론이 가지는 철학적, 물리학적 함의를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반대로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은 철학적인 문제로 간주되는 시간, 공간에 대한 물리학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144 페이지) 제네시스를 쓴 이탈리아 물리학자 귀도 토넬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등을 쓴 카를로 로벨리는 어떤가


동양과학의 발화는 주의를 끈다. 조셉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전개된 논지는 중국에도 과학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는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인과율에 의한 과학은 없었다. 동양과학문화에서 인과는 중요 담론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니덤은 중국과학이란 말은 자유롭게 썼다. 미국인 중국학자 나탄 시빈(Nathan Sivin)은 니덤의 생각을 비판했다. 중국인들이 자연을 정리하는 방식은 유별(類別; classification)이었다. 그들은 인과 대신 유별을 이론적으로 다듬어 나갔다


유별은 서양에도 있었지만 중국의 유별은 독특했다. 미셸 푸코는 중국의 유별을 접한 후 충격에서 비롯된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썼다. 그것이 그가 말과 사물이라는 지식의 분류학에 관한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였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황제에 속하는 동물,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처리된 동물, 사육동물, 젖을 빠는 돼지, 인어, 전설상의 동물, 주인 없는 개, 광폭한 동물, 셀 수 없는 동물,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등등.. 


조선조 회화에 대한 인식은 시대적 정치적 배경에 따라 변화했다. 조선초기에는 조선왕조 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따라 대체로 회화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국가의 기틀을 잡고 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며 왕조를 안정시키는 것이 시대적으로 당면한 과제였다. 문인사대부의 역할 또한 유교이념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며 국가안정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이는 시(), (), ()를 비롯한 예술일반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초기에는 개국에 따라 국가의 기틀을 잡고 공고히 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기 때문에 여기적 활동인 예술 활동에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림 그리고 글씨를 쓰며 즐기는 일은 여기(餘技), 소도(小道), 천기(賤技), 말기(末技), 잡기(雜技)로 인식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도본말예(道本末藝), 완물상지(玩物喪志)로 대표된다. 조선 전기의 문인인 강희안(姜希顏; 강희맹의 형)은 당대 최고라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 보았다


성종실록에도 회화는 잡기(雜技)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비록 회화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해도 이런 인식이 그림을 비롯한 예술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았다. 완물상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작품 활동에만 매달려 도를 구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회화에 대한 인식은 조선후기에 두드러진다. 조선후기는 양란을 거치며 국가적 위기상황이 있었지만 왕조가 안정되었으며 도시가 발달하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하여 문화적 욕구가 상승한 시기다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적 수준이 높아졌으며 그 결과 조선초기의 회화인식과는 달리 회화할동을 공공연한 문인의 활동으로 내세울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미수 허목, 표암 강세황, 추사 김정희 등에서 회화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수 허목은 무릇 기예의 오묘한 경지란 전념하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다며 그림도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노력과 지속적인 탐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문을 하는 태도로 회화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회화가 더 이상 완물상지로 폄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그림에 속기가 없고 고상하며 글씨 또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평한 강세황은 영조의 말에 따라 절필(絶筆; 그림 그리는 것 그만 둠)했던 인물로 문인화의 기본 개념으로 속()과 아()를 들었다. 조선후기 문인화론의 완성은 김정희에서 이루어졌다. 김정희는 강세황을 비판했다. 사실 그대로 그리는 것을 지양(止揚)한 것이다. 동기창(董其昌)은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란 말을 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의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다. 김정희도 가슴 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는 김정희가 처음 쓴 말로 서권기의 핵심은 다독(多讀)이다. ()을 칠 때 서권기가 필요했다. 조선에는 난이 서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을 직접적으로 관찰하고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중국의 화첩(畫帖)을 보고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사난(寫蘭)의 어려움이 제기되었으며 난은 특히 사의를 드러내는 화목으로 여겨졌다. 이런 배경에서 난초의 사의성은 학식과 문자적 의미와 연관을 갖게 된다. 서권기는 자신의 뜻을 잃지 않고 지켜나간다는 의미로도 쓰였다


김정희가 말하는 문자향 서권기란 문인화가 갖추어야 하는 학식 인품 등 여러 덕목을 통합적으로 포함하는 다의적 용어로 쓰였다. 김정희는 회화에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적용하여 논하며 회화를 도의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게 하며 학문과 동등한 지위를 갖추게 했다. 격물치지는 사물에 가까이 이르러 그 사물의 이치<; >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회화를 격물치지의 수준에서 논의하면 그림은 더 이상 잡기가 아니며 그림에서도 도를 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뛰어난 학문과 예술의 경지는 단지 실사구시의 방법을 따르고 격물치지적 태도를 취하는 것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학습을 통한 깨달음을 내면화하고 실천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한 내적 성숙이 필요하다김정희는 그림 그리는 자에게는 무자기(毋自欺) 즉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종종 말에 속는다. 말들은 우리가 무심코 창 밖을 바라볼 때 거기에 있는 창문 유리창처럼 결코 투명한 매체가 아니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지도는 영토가 아니고 개란 관념은 짖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박하게도 저 창문처럼 말들을 투명한 것으로 믿기를 좋아한다. 그런 말들은 투명한 듯 보이지만 이미 상당한 두께를 가진 색유리와 같다. 나아가 그것은 심지어 우리의 유용성과 행위의 관점에서 실재를 조각내고 절단해 명사, 형용사, 동사로 굴절시킨다. 물론 이러한 굴절은 그 자체 오류는 아니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이 또한 실재의 일부이며 우리 지성의 결과인 과학이 파악한 세계는 실재의 반을 표현한다


단 이것으로 나머지 반을 모두 설명하고자 할 때 문제와 오류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물리 화학적 체계로, 유기체현상으로 모두 설명을 하고자 할 때가 그렇다. 베르그손은 햄릿이라는 걸작은 사실상 전혀 예측불가능한 창조적인 작업(지속, 직관, 생명이 갖는 본질적인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햄릿이 나오고 난 이후에야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쓸 가능성을 갖고 있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햄릿과 동시에 또는 이후에 성립되는 가능성을 과거로 역투사한 것이며 착각에 불과하다. 즉 회고적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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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서관에도, 남산도서관에도, 종로도서관에도, 파주도서관에도, 연천도서관에도, 양주에서 가장 큰 옥정호수도서관에도 없는 동서양 문명과 과학적 사유(2015년 출간)를 양주 옥계도서관에 가서 빌려와 읽는다. 
최화의 글을 통해 베르그손의 지속(持續) 개념에 대해 일보 진전한 인식을 얻게 되었다. 배니나의 추사 김정희의 유교적 특성도 읽을 만하다. 
필자 배니나는 당시 경희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 과정이었다. 그의 단독작이 없을까 하고 검색해보니 2024년 1월 제이슨 브레넌의 정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다른 한 번역자와 함께 번역했다. 
이력란에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경희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나온다. 
2021년 등록된 한 사이트에는 경희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나온다. 단독작이 언제 나오려는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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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철학자 신승철(申承澈; 1971 - 2023)의 저작은 다섯 권이다. 1) 구성주의와 자율성, 2) 에코소피, 3) 지구 살림 철학에게 길을 묻다, 4)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5) 눈물 닦고 스피노자 등이다. 잠이 부족했고, 2시간 30분이 걸린 치과 치료를 받아 지친 몸과 마음으로 일산(예배), 파주(‘양식; 糧食‘ 구입)를 지나 집에 와 쉬었다. 이런 저런 생각 속에 불안감이 끼어 드는 듯 해 신승철 님의 지구 살림 철학에게 길을 묻다를 들춰보았다.


정서(情緖)와 정동(情動)을 설명한 글에 눈이 멈췄다. 그 글에 의하면 정서는 감정이 발생할 수 있는 근원이고, 정동은 그 저변에 흐르는 힘과 에너지다.(85 페이지) 움직이지 않을 때의 정서 표현 양식이 감정이라면 움직일 때의 마음이 정동이라 할 수 있다. 확실히 아무 것도 안 할 때 생각이 복잡하다면 무언가 할 때는 그렇지 않다. 이럴 때 읽기와 쓰기가 약이 된다.


얼마전 오랜만에 다시 펼쳐든 조주연의 현대미술 강의 중 에필로그에서 다음의 구절을 만났다. “책을 쓴다는 것은, 알고 보니, 내가 아직도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제법 알게 되었다는 어줍짢은 자족, 그 뒤에 숨어 있던 앎의 공백들, 내가 모르는 줄도 몰랐던 앎의 공백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글을 쓰다가 딱 막혔던 순간들이다.“


공백을 메울 수 있게 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더구나 자신이 모르는 줄도 몰랐던 것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다니 얼마나 좋은가. 앎의 공백을 마주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막막한 경험이겠지만 반전(反轉)의 기회를 잡는 행운이기도 하리라.


로버트 헤이즌의 지구 이야기도 말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도널드 프로세로의 화석은 말한다에 마셜 케이 이야기가 나온다면 로버트 헤이즌의 지구 이야기에는 알프레드 베개너 이야기가 나온다. 로버트 헤이즌의 지구 이야기, 로버트 맥팔레인의 언더 랜드, 가와카미 신이치의 한 권으로 충분한 지구사(地球史), 김정률의 지질학의 역사, 앤드루 놀의 지구의 짧은 역사, 팀 콜슨의 존재의 역사 등으로 내 앎의 공백을 메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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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딸이
딸에게 엄마가
이는 오늘 전곡도서관에서 진행된 이인석 미술 전문가가 현대미술과 고미술의 이해 강좌에서 필독 자료로 추천한 미술 서적들 중 한 권으로 포함된 조주연의 ‘현대미술 강의‘ 머리말에 들어 있는 표현이다. 인상적이어서 기억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2017년 알라딘 서평단 과제 도서로 받은 덕이다. 저자는 2002년 미학과 박사가 된 분이다. 나는 오늘 강의를 들으며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강사가 그렇게 하도록 했다)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 등에 보이는 그림은 왜 그려졌다고 생각하는지?도 그 중 하나다.
강사는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것은 어려운 일이라 답했다.(현대미술 강의 390 페이지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 사냥설, 유희설, 모방설, 파괴설 등 다양한 설이 제기된 상황이다.
조주연은 남아공의 인지고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 윌리엄스의 가설을 소개했다. 그의 가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왜' 이전에 '어떻게'를 물었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루이스 윌리엄스의 말마따나 동굴벽화 최대의 미스터리는 그림의 용도 이전에 그림 자체의 출현이다.
“깊고 어두운 동굴 벽에 오록스(소의 조상격인 거대한 솟과 동물)를 피카소마저 놀랄 정도로 실감나게 그려놓은 인류 최초의 화가는 그림을 본 적도, 그림이 무엇인지도 배운 적도 없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단 말인가?“(저자는 오로크스라고 썼다.)
빛이 전혀 없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 눈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가 환각이다. 데이비드 루이스 윌리엄스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동굴 속의 어둠에 대응하기 위하여 뇌가 일으킨 단순 환각을 벽에 옮긴 것이 동굴 벽화에 산재하는 추상적인 문양들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책을 쓰는 것은 알고 보니 자신이 아직도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루이스 윌리엄스의 가설은 장 클로트의 ’선사 예술 이야기’(2022년 2월 열화당 출간)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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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산책, 자연과학의 변주곡
교양과학연구회 지음 / 청아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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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산책, 자연과학의 변주곡‘은 지구과학을 특별한 학문으로 분류한다. 하늘과 땅, 해양을 망라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지구과학은 고체 지구, 대기와 해양, 우주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은 체계가 잘 잡혀 있었으나 정성적인 설명만 있었고 갈릴레이는 정량적 질문을 통해 새로운 계기를 만들었다. 창조과학은 대표적 유사과학이다. 실증적 검증을 통하지 않았거나 반증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규칙성, 원인과 효과, 규모와 비례, 시스템과 시스템의 모형, 에너지와 물질, 안정성과 변화 등은 여러 분야의 과학이 공유하는 공통 개념이다. 


평형은 상태가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외부에서 살짝 건드렸을 때 평형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안정 평형과 불안정 평형으로 나뉜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는 섞기만 하면 일어나는 화학 변화처럼 빠른 것부터 종의 진화, 우주의 팽창 같이 매우 느린 것까지 다양하다. 세포 내의 대사 작용부터 지층의 형성, 은하의 충돌까지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물리학과 화학의 기본 법칙을 따른다. 짧은 시간에는 안정한 상태로 보이지만 긴 시간에 걸쳐 변화할 수도 있다. 생명체는 매일 같은 상태로 보이지만 긴 시간에서 보면 자라고 나이를 먹는다. 


탄소순환은 산업혁명 이전까지 동적 평형을 유지했으나 그 이후 평형 상태가 변해 지구 온난화를 일으켰다. 과학적 소양을 갖추려면 평소 사실에 근거한 논리적 분석으로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는 두 가지 이유로 해수면을 높인다. 첫째는 육지 위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이고, 둘째는 바닷물이 온도 상승으로  인해 팽창하는 것이다. 물체의 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을 기록으로 남긴 첫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반복되는 천상의 운동과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지상의 운동을 구분했다. 지상 물체의 운동도 원인이 없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운동과 원인이 있는 격한 운동으로 구분했다. 


그의 운동 이론은 스승인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관찰에만 의존한 것이었고 대개 추론에 의지한 정성적 설명이었다. 갈릴레이는 실험을 통해 수직 방향으로 운동하는 물체는 모두 같은 속력으로 낙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평 방향의 운동에 대해서도 실험과 추론을 통해 물체의 자연스러운 상태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갈릴레이의 발견을 바탕으로 뉴턴은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을 힘이라 부르고 힘을 받은 물체의 운동은 가속된다는 운동 법칙을 가정했다. 


물리학의 네 가지 힘 가운데 중력은 우주를 지배하는 힘이다. 전자기력은 지상을 지배하는 힘이다. 원자 안의 핵과 전자들을 꽁꽁 묶어 주는 힘이 전자기력이다. 원자핵을 묶는 힘을 강력이라 한다. 약력은 양성자를 중성자로, 중성자를 양성자로 만드는 힘이다. 양자역학의 가장 큰 성과는 원자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解)를 파동 함수 또는 오비탈이라 한다. 전자들은 에너지가 낮은 오비탈부터 채운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양자 상태에는 하나의 전자만 있을 수 있다는 파울리의 배타원리가 작용하고 100여 종의 원소가 보이는 화학적 성질을 집약한 주기율표를 설명할 수 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관성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성립하는 이론이기 때문에 특수한 경우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를 확장하기 위해 중력을 도입했다. 


철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은 무거운 별이 죽으면서 폭발하는 초신성에서 생겨났다. 초신성 폭발로 핵분열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원소(방사능을 가진 원소)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원소가 중성자를 획득하면서 새로운 원소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리처드 파인만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 사라질 때 단 하나만을 남길 수 있다면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물은 원소가 아니라 수소와 산소라는 두 가지 원소의 화합물이고 공기는 질소와 산소의 혼합물이다. 혼합물은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각각의 성질을 잃지 않고 물리적으로 단순히 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탄수화물은 탄소, 수소, 산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단백질은 수소, 산소, 탄소, 질소, 황 등 다섯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수소, 산소, 탄소는 단백질, 탄수화물에 모두 들어 있고 질소, 황 등은 단백질에만 들어 있다. 물질이 원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마지막 단계가 분자다. 한 모금의 물도 나누다 보면 H₂O라는 하나의 분자에 도달하고 물 분자를 분해하면 물과는 성질이 다른 수소와 탄소를 얻는다. 우주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화학 반응은 수소 분자를 만드는 반응이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인데다 수소 원자는 전자가 한 개 밖에 없어서 불안정하다. 이처럼 쌍을 이루지 않는 홑전자를 가진 수소 원자는 수소 라디칼이라 불린다. 과격하다고 할 정도로 반응성이 높다는 의미다. 


수소 라디칼 둘이 만나면 순간적으로 전자를 공유하면서 수소 분자를 만들기 때문에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공간의 모든 수소가 분자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소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넓은 우주 공간에서 수소 원자 둘이 충돌할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에는 지구 탄생기의 물질이 남아 있지 않지만 태양계를 떠도는 운석 중에는 지구가 태어날 당시의 것도 있다. 이런 측정 결과들을 종합하여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가 지금으로부터 약 45억 7천만년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지름이 현재의 절반 정도였던 원시 지구에 1년에 1천 개 이상의 미행성이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격렬한 충돌로 지구의 지표가 뜨거워졌다. 미행성과 원시 지구 속에 있던 가스 성분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와 두껍고 진한 가스가 원시 지구의 표면을 덮었다. 대기는 열의 방출을 막기 때문에 지표 온도는 암석이 녹을 정도로 높아졌고 지표는 마그마로 덮였다. 우주에서 바라보았다면 지구는 시뻘건 지옥의 불구덩이와도 같았을 것이다. 원시 지구의 반지름이 현재의 20%에 이르렀을 때 미행성의 가스 성분들이 대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반지름이 현재의 45% 정도 되었을 때 지표 온도가 올라 암석이 녹아 마그마 오션을 형성했고 대기압의 증가는 절정에 올라 대기압이 100기압에 이르렀다. 


철과 니켈 같이 무거운 금속은 가라앉으며 점차 중심쪽으로 낙하하여 금속 핵을 만들었다. 원시 대기, 마그마 오션, 핵으로 분리된 것이다. 지표가 매우 뜨거워서 원시 대기층에는 격렬한 대류 운동이 일어났다. 원시 지구를 덮은 수백 킬로미터의 수증기 구름 상층부에서는 태양의 강한 자외선에 노출된 수증기가 수소와 산소로 분리되고 가벼운 수소는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상층부는 저온의 우주 공간에 연결되므로 수증기와 이산화탄소 성분의 대기는 급랭하고 비가 내렸다. 그러나 비가 지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고온의 마그마 오션 때문에 다시 기화되어 버렸다. 지표가 더 식으면서 300℃에 가까운 고온의 비가 드디어 지표에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 비는 지표 온도를 급속히 낮췄고 더 많은 비가 내리면서 굳어진 마그마 오션 위로 150℃ 정도의 원시 해양이 모든 지표를 덮었다. 


바다가 만들어지고 대기 온도가 100℃ 이하가 되면서 수증기가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가 되었는데 이마저도 바다에 녹아 들어가면서 대기량이 크게 줄었다. 바다에 녹은 이산화탄소가 석회암 형태로 퇴적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압력이 60기압에서 10기압으로 떨어졌다. 이제 지구의 주성분은 질소로 바뀌었고 드디어 지구가 푸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표에는 딱딱한 암석질의 현무암 지각(地殼; earth crust)이 생겼다. 이 현무암은 지하 깊은 곳에서는 다시 녹으며 화강암을 만드는 마그마가 되었다. 다른 행성에는 화강암의 지각이 없다. 화강암은 지구만의 특징이다. 


지각의 암석들은 더 단단해지며 지표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판(板; plate)을 이루었다. 원시 지구가 탄생하고 5~6억년 안에 대기와 해양, 지각, 맨틀, 핵의 지구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아직은 무르지만 지구의 껍질과 속살이 완성된 것이다. 과거의 공기 중 산소 함유량을 아는 방법은 당시의 공기를 조사하는 것이다. 당시의 공기가 보존된 곳이 있다. 수십만년 전의 시기는 남극이나 북극의 얼음에 갇힌 공기를 분석해 알아낸다. 더 오래된 시기는 광물을 이용한다. 광물은 다양한 형태의 결정을 만드는데 작은 공간이 남는 경우가 있고 그 안에는 결정이 만들어질 당시의 공기가 들어 있다. 이 공기 방울은 광물과 함께 수십억년을 지낸다. 이 공기의 양은 아주 적지만 성분을 분석하기에는 충분하다. 


광물 안에 들어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광물이 만들어진 시기를 알 수 있다. 약 25억년 전 바닷속 산소의 양이 급증했고 산소는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금속 원소를 산화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바닷물에는 여러 가지 금속 원소가 녹아 있었는데 철이 가장 많았고 산소와 결합한 철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층층이 쌓여 호상철광층이 되었다. 이 철광층은 현대 인류에게 철을 제공하는 주요 자원이다. 그 형성에 생물의 진화가 관여한 것이다. 딱딱한 지각 아래는 고체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 조금씩 움직이는 맨틀이 있다. 


내부의 핵에서 전달하는 열에너지는 맨틀을 움직이며 살아 있는 지구를 만든다. 짧은 시간 동안 사는 우리가 그 변화를 직접 볼 수 있는 현상은 화산과 지진 정도이지만 지구는 대륙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구 내부는 화학적 조성과 물리적 상태에 따라 지각, 상부 맨틀, 하부 맨틀, 외핵, 내핵으로 구성되었다. 지각의 판은 중앙 해령(海嶺)에서 태어나 수평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해구(海溝)에서 상부 맨틀 속으로 섭입한다. 이를 슬랩이라 한다. 하부 맨틀로 들어가지 못하는 슬랩은 계속 모여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고 덩어리가 충분히 커지면 하부 맨틀로 진입한다. 


하부 맨틀로 이동한 저온의 상부 맨틀은 계속 아래로 내려가 위에까지 도달한다. 이를 차가운 플룸이라 한다. 상부 맨틀로 이동한 고온의 하부 맨틀 물질은 압력이 낮아져서 녹는 점도 내려가고 부분적으로 녹아 마그마로 변한다. 녹아서 가벼워진 마그마는 계속 올라가는데 이를 뜨거운 플룸이라 한다. 약 27억 년 전 이런 일이 시작되면서 상부와 하부 맨틀 각각에서 일어나던 대류가 맨틀 전체에서 일어나는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플름은 독립적으로 발생하지만 서로 근접하는 여러 개의 플룸이 합쳐져 19억 년 전부터는 거대한 수퍼플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플룸은 주로 맨틀에서 활동하지만 지구 표층의 판구조론과 핵 운동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1980년대 인체 단층촬영의 원리와 비슷한 지진파 토모그래피가 실용화되어 초거대 플룸과 해구에서 가라앉은 슬랩 덩어리가 촬영되면서 플룸의 존재가 밝혀졌다. 판구조론 이후 살아 있는 지구를 이해하는 플룸 구조론이 탄생한 것이다. 지구는 거대한 공간으로 뻗어나가는 자기장을 가진다. 이 자기 장은 지구를 향해 날아와 생명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우주선(宇宙線)을 밴앨런대에 가두어 막아준다. 이 고마운 자기장이 생긴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유력한 이론은 플름 구조론이 설명하는 외핵의 다이나모 이론이다. 


지구 자기장은 가끔 남북이 바뀌었으니 지구 중심에 고정된 거대한 영구 자석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지구 반지름의 절반을 차지하는 핵은 외핵과 내핵으로 구성된다. 지진파 연구에 따르면 외핵은 횡파가 전달되지 않지만 내핵에서는 전달된다. 횡파는 고체에서만 전달되므로 외핵은 액체이고 내핵은 고체다. 내핵과 외핵의 주성분은 철과 니켈이다. 무거운 철과 니켈로 이루어진 핵은 맨틀보다 밀도가 커서 핵과 맨틀 사이에는 물질의 교환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플룸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외핵의 경계에 도달한 낮은 온도의 슬랩이 높은 온도의 외핵에 도달하면 외핵 일부가 냉각된다. 차가워진 곳은 밀도가 높아져서 더 아래로 내려가고 이에 밀려난 내부의 뜨거운 곳은 위로 올라간다. 


다이나모 이론은 이 대류 운동이 플룸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액체 상태인 외핵에서 이러한 교란이 일어나면 외핵에는 격렬한 흐름이 생길 것이다. 이 흐름에 이온화된 원자들이 있다면 커다란 전류를 일으킬 것이고 그 전류가 지구의 자기장을 만든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지구 자기장 기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약 35억 년 전에 생긴 자기장은 강도가 매우 낮았지만 약 27억 년 전 플룸이 생긴 이후 급속도로 강해져 현재의 값과 가까워졌다. 지구가 식어가면서 고체 상태의 지각이 만들어졌지만 초기에는 육지가 없었다. 지구 내부의 용암이 약한 지각을 뚫고 위로 올라와 다른 곳보다 높은 곳을 만들면서 육지와 대륙이 나타났다. 


대륙이 천천히 이동한다는 대륙이동설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독일의 알프레트 베개너였다. 그는 여러 대륙에 분포하는 양치식물의 화석, 남북 대륙에서 발견된 석탄, 인도와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아에서 발견된 진화에 의한 침식 지형,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해안의 일치와 같은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1915년에 출간한 ’대륙과 해양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대륙이 이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륙의 이동을 포함한 지각의 지질학적 현상을 10여 개의 판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판구조론이다. 판구조론은 지질학 연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이론은 화산, 대양 중심의 중앙 해령, 심해 해구와 같은 지형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실마리를 제공했다. 거대한 대륙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대륙의 이동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 지진과 화산, 대양, 해저 지반의 변화, 암석에 기록된 지자기의 방향 분포, 대륙간 거리의 미세한 변화 등을 관측하면 답을 알 수 있다. 맨틀의 주성분은 암석인데 상부 맨틀 맨 위쪽의 얇은 층은 지각과 온도도 비슷하고 매우 단단하다. 이 얇은 층과 지각을 합쳐 암석권이라 하고 그 아래 하부 맨틀까지는 부드러운 연약권이라 한다. 


맨틀은 기본적으로 지진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체지만 연약권은 긴 시간에 걸쳐 대류가 일어나는 유체의 성질도 있다. 연약권에서는 높은 온도의 물질은 위로 올라가고 낮은 온도의 물질은 아래로 내려가는 대류가 서서히 일어난다. 상하로 움직이는 대류는 수평의 움직임도 수반하는데 이 수평 운동이 암석권을 옆으로 밀어 지각의 판을 움직인다. 판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면 판이 멀어지는 곳도 있고 가까워지는 곳도 있고 옆으로 밀리는 것도 생긴다. 이러한 판의 경계에서는 다양한 지질 현상이 일어난다. 암석권의 아래에 있는 연약권의 수평 방향 움직임이 암석권을 움직이는 것은 확실하지만 큰 규모에서 어떤 작용이 있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플룸 구조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핵으로 섭입한 슬랩이 하부 맨틀로 하강하는 차가운 플룸은 주변의 다른 플룸과 결합하면서 하부 맨틀 전체에 몇 개의 커다란 하강류를 만들어낸다. 이런 거대한 하강류에는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힘이 생기고 그 상부에 있던 맨틀은 한 장소로 모이게 된다. 현재 지구에는 세 개의 수퍼 플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뜨거운 수퍼 플룸은 남태평양과 아프리카의 아래에 있고 차가운 수퍼 플룸은 아시아 아래에 있다. 뜨거운 수퍼 플룸은 주변 일대에 마그마를 공급한다. 남태평양 아래의 뜨거운 수퍼 플룸은 거대한 태평양판을 서쪽으로 밀고 화산섬으로 연결된 하와이 열도 생성에도 관계한다. 


아프리카 아래의 뜨거운 수퍼 플룸은 동아프리카 열곡대(裂谷帶)라는 거대한 계곡을 만들며 장래에 아프리카의 동쪽을 대륙에서 떼어낼 것이다. 아시아 아래의 차가운 수퍼 플룸은 주변 대륙을 끌어당기며 4~5억년 이내에 지구의 모든 대륙을 끌어와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 내부의 수퍼 플룸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 표면을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해석된다. 화석 연구의 권위자였던 프랑스의 박물학자 조르주 퀴비에는 지질층별로 다른 화석 구조를 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물이 멸종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지층별로 다른 생물들이 있는 이유는 커다란 천변지이(天變地異)에 따른 결과라는 격변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퇴적암층이 형성된다는 사실과 함께 방사성 동위 원소의 사용으로 지층과 화석의 연대 측정이 가능해지면서 화석에 대한 다른 해석이 제기되었다. 최근 지층의 생물들이 이전 지층의 생물들보다 현존하는 생물들과 더 비슷한 점, 화석들의 변화 정도, 비슷한 종류의 생물들이 비교적 일정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점 등을 포함한 많은 관찰결과가 격변보다는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주장을 더 뒷받침한다. 


책 말미(末尾)의 표현을 음미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의미있게 여겨진다. “질적으로 다양한 정보들 사이의 정합성과 논쟁점을 찾아내고 신뢰할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판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의미로 이해된 과학 리터러시가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것이다.” 본문을 읽으며,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지질공원 해설사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은 물론 발전된 덕목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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