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달에 읽었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s://blog.naver.com/neuro412/222626673569>의 에이머스 데커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전작에서는 아내와 딸 그리고 처남이 끔찍하게 살해된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폐인이 되었던 데커에게 도전해온 범인을 밝혀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또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함께 했던 연방정보부의 특수요원 로스 보거트는 데커와 알렉산드라 제미슨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의합니다. 미제사건을 들춰내 해결하는 별동조직을 만든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활해온 오하이오주를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버지니아주 콴티코 기지로 가는 길에 데커는 라디오에서 극적으로 형의 집행이 정지된 사형수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멜빈 마스라고 하는 사형수는 데커가 대학시절 미식축구 경기에서 손쓸 수 없이 패배하게 만든 선수였습니다. 하이즈만 트로피의 유력한 수상후보였던 마스는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되었던 것인데 무슨 영문인지 형집행 예정일에 그 사건의 진범이 사건에 대하여 자백하는 바람에 집행이 정지된 것입니다.


데커가 마스에 대한 소식을 접한 것은 데커 자신에게나 마스에게나 운명적인 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데커가 콴티코에 도착하면서 보거트의 별동대의 대원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사람에 더하여 임상심리학자 리사 대븐포트 그리고 현장요원인 토드 밀리건 등 다섯 사람입니다. 이들이 모여 첫 번째 수사에 착수할 사건을 골랐는데, 데커는 마스의 사건을 제안하고,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이야기 초반에는 마스가 수감되어 있던 텍사스의 교도소 분위기를 소개합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수감자들의 인권은 고려되지 않는 끔찍한 분위기였습니다.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음식에 대하여, “여기에서 식사랍시고 주는 쓰레기를 매일 먹는데도 그랬다. 거대한 공장에서 가공되는, 콘크리트에서 카펫까지 온갖 것을 만드는 데 쓰이는 화학물질과 지방과 나트륨을 들이부은 그런 쓰레기를 먹고도.(8)” 그리고 미국의 사법제도의 허점도 있습니다. 무고한데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미국에서도 남부지역은 사형집행 건수가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형수들은 전기의자 혹은 독극물 주사 가운데 형 집행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스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한 찰스 몽고메리는 독극물 주사를 선택하는 다른 사형수들과 달리 전기의자를 선택하였습니다. 특이하게도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을 사형수의 가족들과 피해자 유족들이 참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상세하게 소개되는 형 집행과정은 떠올리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데커가 마스의 사건을 첫 번째 수사대상으로 제안한 것은 아마도 자신의 사건과 닮은 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모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언도받은 마스가 형 집행을 앞두고 범인이 스스로 자백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데커가 아는 마스는 부모를 살해할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판단도 더해졌을 것입니다. 미식축구라는 운동을 고리로 통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은 텍사스, 앨라배마, 미시시피 주 등 미국 남부의 광대한 지역을 넘나들면서 진행됩니다. 마스의 부모가 살해된 사건은 20년 전의 일이라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치매 등으로 사건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얻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데커의 뛰어난 기억력과 현장 파악 능력 등으로 사건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게 됩니다. 하퍼 리의 대표작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서 만날 수 있었던 미국 남부지역의 인종차별주의 정황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스의 어머니가 교모세포종 4기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교모세포종은 대부분 어린이에서 생기는 종양이라서 설정이 적절치가 않아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소해 보이는 밑밥들을 적소에 배치하고 이 밑밥들이 사건해결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작가의 글 솜씨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지음, 현정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간은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새로 구입한 까닭에 눈에 띄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칼 세이건의 책으로는 처음 읽은 책입니다. 1994년에 발표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주장, 즉 우리 지구와 인간은 유일하며 심지어 우주의 작동 목적에 대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탐사계획의 발자취와 발견에 따라 태양계를 두루 살펴보고, 이어서 인간의 외계탐사 여행에 대해서 흔히 소개되는 목적을 평가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외계공간의 장기 장래계획이 어떻게 수행될 것인가에 관해서 내 상상의 테두리를 그려볼 터라고 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창백한 푸른 점19902월 태양계의 외곽에 도달한 우주탐사선 보이저1호의 카메라가 포착한 지구의 모습을 말합니다. 1장의 모두를 장식한 그 사진에 저자는 조그맣게 네모진 칸으로 표시해두고 우리는 여기에 있다라고 적어두었습니다. 그 칸 안에 있는 작은 점은 핀으로 콕 찍어놓은 듯 가물가물해서 시력이 나쁜 사람은 알아보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온 우주에서 유일한 생명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광대한 우주 속에서 그야말로 하찮은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가 봅니다. “우리의 거만함, 스스로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의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이 광막한 우주공간 속에서 우리의 미천함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데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어올 징조는 하나도 없다.(27)”라고 적었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우주와 인간의 생성에 관하여 앞선 사람들의 철학적, 신학적, 과학적 관점에서의 생각들을 정리합니다. 결국 우주에는 신의 설계처럼 보이는 것들이 많지만 우주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그래도 우주의 목적을 갈망한다면, 우리 스스로 보람 있는 목적을 찾아나서자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책이 나올 무렵까지 인류가 이룩한 지구와 우주에 관한 과학적 성과들을 다양한 사진자료와 함께 소개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1996년에 저자가 골수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저자가 더 살았더라면 더 많은 성과와 자료가 보완된 내용을 읽을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14다른 천체들을 탐사하여 지구를 보호한다에 이르면 앞서 말씀드린 보람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행성과학은 다가오는 이런 큰 환경 재해를 발견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는 넓은 관점을 육성한다.(245)”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지구 밖에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즉 지구를 대체할 수 있는 천체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지구라는 소중하고도 제한된 자원을 낭비하고 훼손해왔습니다. 지구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 혹은 지구의 멸망을 목전에 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류를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미국과 소련은 전략적인 목적으로 우주개발에 열을 올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각이 사라진 요즈음에는 우주에 대한 정책당국의 관심이 식은 탓인지 투자가 시원치 않은 모양입니다. 저자는 그런 점에 대하여도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천문학 이외에도 철학, 신학, 역사, 문학 등의 영역에서도 저자의 방대한 앎에 놀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저자의 심오한 사유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는 왜 사라졌는가 - 도시 멸망 탐사 르포르타주
애널리 뉴위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왕국도 흥망성쇠의 과정을 밟는 것처럼 도시 역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기 때문에 흥망성쇠를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흥청대던 도시도 어느 순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언론인 애널리 뉴위츠는 그렇게 사라진 도시들 가운데 네 개의 도시를 골라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쇠퇴한 이유를 추론하여 이 책에 담았습니다. 터키의 차탈회윅, 이탈리아의 폼페이, 캄보디아의 앙코르 그리고 미국의 카호키아 등입니다. 네 개의 도시가 쇠퇴한 이유는 제각각입니다. 저자는 연대순에 따라 이들 도시의 흥망성쇠를 추적합니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에 있는 두 개의 낮은 구릉 사이에 묻혀있던 차탈회윅은 대략 9천년 전 신석기 시대에 건설된 마을이었습니다. 수십만 년 동안 유목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농경생활을 시작할 즈음으로 인구규모는 5천명에서 2만 명 정도였습니다. 서기전 6천년 즈음에 이곳 사람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났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심한 가뭄에 사회구조 혹은 도시구조에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고 합니다. 이곳은 신화로 남아 전해졌던 것입니다.


두 번째 도시는 폼페이입니다. 폼페이는 저도 가보았던 곳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서기 79년 마을 북쪽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분출하면서 쏟아낸 화쇄암이 도시를 덮쳤 순식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연재해였던 것인데, 이곳 사람들은 예고하듯 있었던 지진에도 무심하게 일상을 지내다가 갑작스러운 분화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폼페이의 사회적 분위기를 상세하게 전하고 있어서 폼페이 현장에서 보았던 것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폼페이가 화쇄암으로 뒤덮인 뒤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던 것인데, 당시 로마황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앙코르는 11세기 무렵 크메르 왕조의 수리야바르만1세 치세에 인구가 무려 1백만에 달하는 엄청난 도시였습니다. 톤레삽 호수와 연결된 복잡한 수리체계를 갖추어 번영을 구가하던 앙코르는 15세기 들어 가뭄에 홍수가 엇갈리면서 도시의 수리체계가 무너지면서 도시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왕조는 프놈펜으로 천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앙코르 역시 가보았는데, 그때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떠났다고 하고,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19세기에 앙코르를 재발견했다는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가 꾸며낸 이야기에 유럽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생긴 오해라고 합니다. 왕조가 프놈펜으로 떠난 뒤에도 앙코르에는 승려들이 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앙코르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도시는 미국의 세인트루이스를 관통하는 미시시피강의 동안에 있는 카호키아입니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카오키아는 900년에서 1300년 사이의 전성기에 인구 3만에 이르는 번영을 구가했다고 합니다. 제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던 것이 1992년이었는데, 그때는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 1982년이었다고 하는데, 과문했던 탓 같습니다. 이곳에는 길이 316m 241m의 정사각형으로 높이 30.5m에 달하는 피라미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규모로 보아 이집트 피라미드나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의 태양의 피라미드를 웃도는 크기라고 합니다. 카오키아는 1450년 무렵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인구과밀과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흩어졌다고 추정됩니다. 이곳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원주민들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자가 <도시는 왜 사라졌는가>를 기획한 것은 이들 도시의 흥망성쇠가 그저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대 인류가 당면해야 할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요일의 여행 (1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한폐렴사태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게 된 것이 벌써 3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잠시 풀리는 듯했지만, 델타변이에 이어서 오미크론 변이까지 나오면서 어디고 안심하고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여행에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해외에서 감염되어 들여온 변이 바이러스가 국내에 확산되는 것에 대한 책임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불요불급한 여행을 자제해야 하겠고, 방역당국도 나가는 것은 막지 못하더라고 그런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입국을 차단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늦게 시작한 해외여행을 겨우 6년 채우고는 2년을 허송세월하고 있어서 억울한 느낌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에 다녀온 여행기를 다시 읽어보거나 다른 이들이 쓴 여행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게 됩니다.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여행>도 그래서 읽게 되었습니다. 광고문안가로 활동하는 작가는 업무와 관련해서 혹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외국의 다양한 곳을 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문에 보면, ‘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보니 생각거리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수많은 여행 끝에 내린 작가의 결론은 각자의 여행엔 각자의 빛이 스며들 뿐이다.(11)”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만의 빛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어떤 여행기도 여행보다 위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여행에 대하여 말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서문만을 읽어도 광고문안가로서의 내공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모두 스물세꼭지의 글은 작가가 결혼 전에 혼자서 했던 여행과 결혼하고서 남편과 함께 한 여행에서 찾아낸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숙소, 고향, , 단골집, 술 등이 그것입니다. 제목은 <모든 요일의 여행>입니다만, 여행 자체나 이 책에 담긴 여행들이 요일과는 전혀 무관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는 전작에서 따온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책을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10년 전에 읽은 책에서 소개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시골 판자노에 있는 정육점에서 열리는 스테이크 파티에 참석한 이야기입니다. 열댓명이 모여서 엄청 쌓여있는 고기와 술을 마시는데 작가 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하신 여행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곁들여진 사진들은 이야기의 내용과 부합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잘 정리해두셨던 모양입니다. 갈무리해둔 사진들을 뒤적이면서 주제를 떠올리고 이야기를 엮어낸 것은 아닌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등장하는 사진도 적지 않습니다. 이야기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모르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꼭 찍고 싶은 장면에서 사람들이 비켜주지 않아 배경으로 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이 책의 작가는 붙임성이 좋은 편인가 봅니다. 외국에 나가서도 사람들하고 쉽게 어울리고, 또 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하여 다시 그곳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니 말입니다.


이야기 사이에는 모두 20편의 모든 요일의 여행이라는 제목 없는 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을 옮겨봅니다. “집 나가면 / 몸이 고생이다. // 하지만 / 집을 나가지 않으면 / 마음이 고생이다. // 적당한 방황과 / 적당한 고생과 / 적당한 낯섦이 그리워 / 수시로 끙끙 앓는 / 마음을 가졌다. // 어쩌다 보니 / 여행자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69)” 작가는 천생 여행가인 듯합니다. 작가의 여행이야기에는 외국여행 뿐 아니라 국내 여행, 심지어는 동네 이야기까지도 동원됩니다. 작가에게 여행은 일상인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 메이븐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불치의 병을 앓는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 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 임종환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희망 속에서 가능한 한 편안한 삶을 살도록 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합니다. ‘호스피스(hospice)’병원(hospital)’은 환대(hospitality)와 마찬가지로 호스페스(hospe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는데, 호스페스에는 집주인손님혹은 낯선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영국의 공중보건의사이자 완화의료전문가인 레이첼 클라크가 완화의료현장에서 다양한 말기환자들의 임종과정을 돌본 경험과 특히 암에 걸린 아버지와의 작별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기록한 완화의료의 교과서 같은 책입니다. 작가는 영국의 시골마을 윌트셔에서 지역보건 전문의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진료소에서 환자의 입장을 고려하며 진료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자랐습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하고는 시사 기록물을 제작하는 기자로 일하면서 알카에다, 콩고내전 등을 취ㅐ하였습니다. 1999년 런던에서 일어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폭발사건에서 구사일생 목숨을 건지는 사고를 겪으면서 뒤늦게 의학의 길에 투신합니다.


의사가 된 다음에는 응급실 근무를 거쳐 완화의학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중요하며, 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평온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때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여 돕겠습니다.(214)”라는 완화의료 운동의 창시자인 데일 시슬러 손더스의 말을 인용하는 등, 완화의료의 정수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저자는 호스피스에는 용기와 연민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한다.(230)”라고도 말합니다.


외투를 입히다. 덮어 감추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펠리에어(palliare)에서 유래한 완화의료(palliative medicine)1차 목표는 죽음의 증상을 숨기는 데 있음을 암시한다고도 하였습니다. 저자가 완화의료 전문가가 된 것은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환자중심의 진료를 해온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대장암에 걸려 죽음을 맞게 됩니다. 간호사인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임종을 돌보기까지의 과정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저자는 아버지가 건강하였을 때 죽음 조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의사가 되어 모르핀을 처방할 권한을 가지게 되었을 때 혹시 아버지가 불치의 병에라도 걸리면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즉 조력자살을 당부한 셈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는 두 사람 모두 죽음 조약보다는 완화의료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생긴 불안감에서 죽음조약을 맺었지만, 대장암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고서 죽음을 받아들인 덕분에 남은 순간을 음미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죽는 것이 두렵냐는 저자의 질문에 아니다. 증상은 두려울 수 있지만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손주들이 자라는 모습을 더 지켜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 사는 데는 더 미련이 없단다. 이만하면 잘 살았으니까.(344)”라고 답합니다.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여 초연하게 죽음을 맞는 경지에 도달한 것을 보면 저자의 아버지는 득도를 한 셈입니다. 저도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책과 영화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책들을 읽어볼 요량입니다. 저자가 의학을 공부하면서 경험한 것들은 아버지가 공부하던 시절과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만, 저자의 아버지의 경험은 저와 비슷한 점이 있어 저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산부인과를 전공하는 작은 아이에게도 추천할 계획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