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더 비전 2030 - AI부터 생명공학까지, 오픈AI가 설계하는 미래
이재훈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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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여행기를 쓰고 있는 저는 누리망을 통하여 자료를 검색하고, 검색한 내용들을 적당한 수준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정리하는 가운에 저의 생각도 섞여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가까운 친구들은 최근에 챗GPT를 사용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고 합니다. 굳이 누리망을 뒤져 글을 써낼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챗GPT를 사용하여 글을 써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글쓰기도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챗GPT는 물론 AI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있습니다. <샘 올트먼, 더 비전 2030>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기술과 사람을 잇는 IT 커뮤니케이터이자 테크 칼럼니스트라고 소개되는 이재훈이 쓴 책입니다. “AI 스타트업에서 사업 개발, 국내 금융사에서 DT·AX 전략 업무를 수행하며 기술과 비즈니스가 만나는 최전선에서 변화의 흐름을 직접 마주해왔다.”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사실 정보산업 분야에서는 외래어와 약어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여기 소개된 글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연식이 조금 된 탓에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이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앎이 없는 탓입니다. 제가 쓰는 글에서는 최대한 외래어를 우리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노력은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제 글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챗GPT를 개발한 오픈 AI의 대표 샘 올트먼의 행적과 철학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정리해냈습니다. 샘 올트먼은 AI의 성공을 기반으로 핵융합, 생명과학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사업의 다각화 전략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하나의 철학적 기획이라는 것입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이 발전해온 것은 대단한 천재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인간의 삶을 논하는 학문인 철학 역시 한 사람의 위대한 철학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모든 영역에서의 인류의 발전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이루어져 왔던 것입니다. 뛰어난 인간이 등장하여 놀라운 것을 만들어내도, 또 다른 놀라운 사람이 등장하여 그것을 폐기하거나 수정하여 다른 방향으로 발전을 이끌어 내기도 해온 것입니다.


샘 올트먼이 개발한 AI 기술은 인간이 해오던 일을 대체할 인조인간을 개발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기계로 하여금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만든 것은 그 일을 하는 인간을 다루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왔던 것도 이유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샘 올트먼은 기계의 도입으로 인하여 개발자는 엄청난 부를 쌓는 반면, 기계로 인하여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는 기본소득을 나누어주어 소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야당 시절부터 주장하던 것인데 과연 기획한 사람의 뜻대로 세상이 흘러갈까요? 기본소득이라는 제도는 공산주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는 느낌입니다. 이미 실패한 철학을 다시 끌어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샘 올트먼이 내세운 미래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그런 미래가 과연 모든 인간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일까요? 모든 인간이 꼭같은 삶을 즐기는 사회가 과연 정답일까요? 누구나 자신이 철학에 따라 독창적인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할 것입니다. 누군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행복한 일인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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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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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선가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입니다. <산책자>20세기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스위스의 국민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이라는 것도 독후감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대 작가 카프카와 헤세가 그의 열렬한 애독자였고 후대 W. G. 제발트, 페터 한트케, 마르틴 발저, J. M. 쿠체 등이 그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산책자>에는 42편의 산문이 실려 있습니다. 발저가 남긴 수백 편의 작품들 가운데 대표적인 중단편 42편을 엄선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1917년에 쓴 <산책(Der Spaziergang)>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의 생애 동안 유일하게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산책자>에 실려 있는 글을 읽어가면서 산책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커져갔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산문 산책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생전에 혼자서 긴 산책을 즐겼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밤산책도 즐겼다고 합니다. 그의 산책은 그저 사색하기 위한 산책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볼일을 보기 위하여 외출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인데, ‘산책에서는 그와 같은 산책에서 볼일을 처리해낸 과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볼일 가운데는 과다하게 부과된 세금을 조정해달라는 청을 하기 위해 찾아간 세무관에게 자신의 수입을 소명하는 가운데 하지만 당신은 매일 산책이나 다니고 있잖아요!”라고 잘라 말하는 데 대하여 산책은 나에게 무조건 필요한 겁니다. 나를 살게 하고, 나에게 살아 있는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이니까요.”라면서 산책을 통하여 얻은 사유의 결과를 글로 써서 먹고 산다고 주장합니다. “내게 산책은 기분 좋고 건강한 습관을 넘어서 직업상 유익하고도 필수적인 일과입니다. 산책은 내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개인적으로는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산책은 보고 느낄 만한 중요한 현상들이 늘 가득한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산책자는 아무로 사소하고 작은 생명체라도 () 모두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최대한의 사랑과 주의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감정에 겨운 나르시시즘이나 너무 민감하게 상처받는 성향을 지녀서는 안되며, 사적인 이익을 쫓는 이기심을 버리고, 세심한 시선으로 사방 모든 곳을 둘러보고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하여 사물을 오직 바라보고 응시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을 잊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산책을 읽고서 지금은 잊고 있는 산책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오래 전에 집근처를 산책하면서, 서울의 도심과 근교를 산책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기억해냈습니다. ‘산책이전에 읽었던 41편의 산문들이 그가 산책을 하면서 얻은 사유의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산문들 가운데는 그가 화자인 듯한 내용도 있고, 그가 창조한 화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툰의 크라이스트에서는 그는 산책을 한다. ,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할 일이 없고 충돌할 사람도 없고 집어 던질 것도 없는 이가 하필이면 그 자신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습기와 힘이 조용히 통곡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영혼은 육체를 혹사하고 싶은 갈망으로 떨린다.(190)”는 대목입니다.


읽다 보면 깜짝 놀랄만한 대목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 그것은 항상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버리지만 그런 빠름 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구부러지며 끊어지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이 생긴다.(34)”라는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크게 성장하려고 노력했던 부엉이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차분하게 견뎌내면서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으로 현존하는 법을 안다.(172)”라는 대목과 연관지어 보면 좋겠습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작가들, 시인들, 희곡작가들은 자신의 수학적이고 철학적인 방에 난방을 거의하지 않는다. ‘사람은 여름에 땀을 흘리니 겨울에는 반대로 약간은 떨어야 균형이 맞는 법이지.’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아주 뛰어난 적응력으로 열기와 냉기를 이겨낸다.(98)”라는 대목은 지금 쓰고 있는 일본여행기에서 인용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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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광인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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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Q정전광인일기>는 펀트래블에서 10월에 떠나는 중국근대문학에 참가해볼 생각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루쉰(鲁迅, 1881-1936)의 본명은 저우수런(周树人)으로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로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어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습니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습니다.


군사학교인 수사학당과 광무철로학당 등에서 공부하였고, 졸업후 관비로 일본에 유학하여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이 무렵 반만주족 단체인 광복회에 가입하였습니다. 수업 중에 간첩혐의로 체포된 중국인이 사형당한 사건에 대한 학우들의 무관심에 실망하여 의학수업을 중단하였습니다. 루쉰이 의학수업을 받았던 경험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시 친구인 첸시엔동(錢玄同), 즉 진신이(金心異)에게 고국을 철로 밀폐된 방으로, 중국인들을 그 안에 질식해 죽어갈 운명이니 가망이 없는 희망을 담은 소설을 굳이 써야 할까라는 의문을 던졌고, 진신이는 그래도 눈을 뜬 몇 사람이라도 있다면 철로 된 방을 때려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하는 답을 듣고 첫 소설 광인 일기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9년 귀국하여 교원으로 일하면서 외국소설의 번역과 중국 고전을 연구하다가, 1012년 신해혁명이 일러나자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원으로 참가했습니다. 이후 베이징 대학 강사로 일하면서 공산주의 혁명의 청년인력을 양성하였습니다. 그 무렵 중국사회의 현실과 민중정신을 담은 Q정전을 발표했습니다.


문예출판사에서 2001년에 번역하여 소개한 Q정전광인일기에는 표제작인 아Q정전, 광인일기을 비롯하여 콩이지, , 내일, 작은 사건, 두발 이야기, 풍파, 고향, 백광, 그리고 토끼와 고양이 등 11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Q정전아퀘이, 줄여서 Q라는 인물의 인생을 그린 단편소설입니다. 루쉰이 조씨 일가의 아들이었던 슈차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다고 합니다. 주인공 Q는 성 밖의 낡은 절간에서 얹혀 사는데, 마을에서 날품팔이를 하고 번 돈을 술과 도박에 탕진하는 인물이다. 툭하면 깡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Q가 신해혁명에 숟가락을 얹으려다가 강도사건에 연루되어 하지도 않은 강도짓을 했다고 거짓 자백하면서 사형당하는 결말입니다. 결국 Q는 짜오가를 털어간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희생양으로 지목된 것이니,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볍게 보였던 것이 치명적인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루쉰이 중국 인민들을 계몽하기 위해 쓴 작품입니다. 주인공 아Q는 당시 중국인의 패배 근성, 노예근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서구 열강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천조라는 허명에 매몰되어 근대화를 거부하는 청나라의 실태를 비판합니다.

광인 일기피해망상증을 앓고 있는 화자의 일기를 통하여 주위 사람이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관념을 이야기합니다. 구미열강이 몰려들던 청나라 말기의 중국 봉건제도, 사회가족제도, 유교의 위선 등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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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탐미주의 단편소설선집
무로우 사이세이 외 지음, 박현석 옮김 / 현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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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1월에 여행사 펀트래블에서 기획한 일본근대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일본근대문학작품을 읽고 있습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시작과 흐름을 정리해보았는데, 일본의 근대문학은 메이지유신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주의로 시작한 일본의 근대문학은 의고전주의와 자연주의 문학으로 발전하였고, 자연주의문학사조에 반발한 젊은 작가들은 예술지상적인 분위기를 문단에 조성하여 탐미파(眈美派), 여유파(余裕派), 고답파(高踏派), 백화파(白樺派), 신현실주의(新現實主義) 등으로 다채롭게 발전해갔다는 것입니다.


유미주의 혹은 심미주의와 같은 맥락의 탐미주의는 에피쿠로스에서 유래하는 철학적 개념입니다. 미적 향수 및 형성에 최고의 가치를 둔 세계관 혹은 인생관을 추구합니다. 문학에서의 탐미주의는 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 즉 예술지상주의를 따른 문학에서의 탐미주의는 교훈적·공리적 의미를 배제한 순수화 경향을 존중하는 문예사조를 이릅니다.


일본의 탐미주의 문학은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에서 시작한 자연주의가 정점에 달했던 1909년 무렵 시작했습니다. 일본 탐미주의문학에 이론적 기초를 다진 것은 우에다 빈과 나가이 가후였다고 합니다. 탐미파의 대두를 두드러지게 한 것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였으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등이 그 흐름을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일본 탐미주의 단편소설선집>에서는 일본 탐미주의 소설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로우 사이세이의 꿀의 정취, 오카모토 가노코의 -2개의 연작, 나가이 가후의 오솔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게사와 모리토오, 에도가와 란포의 인간의자, 호리 다쓰오의 밀짚모자, 가지이 모토지로의 K의 승천-혹은 K의 익사 등입니다.


첫 작품인 무로우 사이세이의 꿀의 정취는 붉은 금붕어를 의인화한 작품으로 작가를 제외하고는 등장인물이 실체가 분명치 않습니다. 문체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노년의 성에 관한 이야기도 있어 쾌락주의적인 면도 있어 탐미주의적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에 실려있는 작품들 가운데가 가장 긴 중편소설입니다.


나가이 가후(永井 荷風)오솔길역시 문체와 이야기 흐름이 탐미주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가이 가후는 15살이 되던해 질병으로 학업을 중단하면서 통속소설을 탐독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8살에 히로쓰 류로(津 柳浪)의 문하생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이와야 사자나미(巖谷小波)의 가르침을 받으며 에밀 졸라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24살에서 28살까지는 미국에서 살았으며 이어서 프랑스로 건너가 10개월 정도 머물렀습니다. 귀국하고서 2년 뒤에 모리 오가이와 우에다 사토시의 추천으로 기주쿠 대학 문학부의 주임교수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게이샤와의 불륜,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사생활은 복잡했습니다. 대학을 그만두고 신주쿠의 요초마치(余丁町)로 이사한 그는 자기 집을 단초테이(断腸亭)라고 했습니다. 19179월부터 단초테이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1959년까지 40년 이상 이어가, 가후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오솔길은 치바현 이치카와(市川) 시의 한적한 오솔길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화자의 친구가 겪을 일을 빌어오는 형식입니다. ‘솔숲에 덮힌 한 줄기 언덕이 이어져 있다. 언덕을 따라서는 널따란 평야가 혹은 높게, 혹은 낮게, 완만한 기복을 이루어 단조로운 조망 곳곳에 화폭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209)라고 적은 것을 보면 명소라 할 것도 없다고 했다지만 평화로운 오솔길 풍경을 잘 그려낸 느낌입니다. 화자가 이 오솔길을 산책하는 맛을 지인에게 알리자, 그도 이 오솔길을 잘 알고 있다면서 오솔길 부근에 있는 경마장에서 겪을 일을 알려왔습니다. 경마를 좋아하고 도쿄를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경마장에 갔던 지인은 아내가 다른 이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경마장을 빠져나왔는데, 그와 같은 사정으로 경마장을 빠져나온 젊은 여성과 하룻밤을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아내와 헤어지고 그녀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년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하겠습니다. 화자인 하기하라 에이(萩原栄)가 동급생인 하나와 신이치(塙信一)와 그의누나 미쓰코(光子), 그리고 센키치(仙吉) , 넷이서 부자인 신이치의 집에서 놀이를 즐기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하녀의 돌봄을 받는 학교에서는 소극적인 신이치는 자기 집에서는 만사를 마음대로 정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학교에서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센키치도 신이치에게는 꼼짝을 못합니다. 네 사람은 도둑놈 놀이나, 늑대와 나그네 놀이 등 소년들이 흔히 생각해낼 수 있는 역할극을 즐기는데 처음에는 신이치가 주인공 노릇을 하다가 어느새 주도권이 미쓰코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 부분에 대하여 작가는 미쓰코는 점차 거만해져서 세 사람을 노예처럼 부렸는데,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손발톱을 깍게 하기도 하고, 콧구멍 청소를 시키기도 하고, 오줌을 마시게 하기도 하는 등 우리를 늘 옆에 두고 오래도록 그 나라의 여왕이 되었다.(271)”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도 많고 여자 아이라서 남자 아이들이 당해내기가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니혼바시(日本橋) 인근에서 상점을 하는 집안에서 출생한 소위 도쿄 토박이입니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서생을 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도쿄제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지만 학비를 댈 길이 없어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나가이 가후의 작풍을 이어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가후의 작품에서 볼 수 있던 인격적인 면을 줄이고, 전적으로 예술 중심의 탐미적 요소를 천착한 점이 특징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게사와 모리토오(袈裟盛遠)는 한때 사랑했다가 헤어진 게사와 모리토오가 다시 만나 정을 통한 뒤에 생기는 상황을 각자의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진정한 것이었는지 의문입니다. 어떻든 다시 만났을 때 게사를 유혹하여 정을 통한 모리토오는 분명치 않은 이유로 게사의 남편 와타루 사에몬노조(渡左衛門尉)를 살해하기로 정하고 게사의 승낙까지 받아냅니다. 게다는 자신에게 헌신적인 남편을 살해하겠다는 모리토오의 생각에 동조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모리토오와 정을 통한 자신이 부정하다는 생각으로 남편 대신 자신이 죽기로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각각의 심리상태를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도쿄에서 우유판매업을 하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손위 누이의 죽음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어 양육이 어려워 외가에 맡겨졌다가 11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죽으면서 외삼촌 아쿠카타와 미치아키(芥川道章)에게 양자로 입양되었습니다. 에도시대의 사족이었던 외가 덕에 학업을 이어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사에 취직하여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왕조 시대, 근대 초기의 기독교 문학, 에도시대의 인물과 사건, 메이지 시대의 개화기 등 여러 시대의 문헌에서 소재를 얻었고, 양식과 문체를 달리하여 재기 넘치는 단편소설로 구성하였습니다. 만년에는 자전적 소재가 많아지면서 작품의 분위기가 무거워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도가와 란포의 인간의자입니다. 여류작가 요시코(佳子)가 우편으로 받은 이야기입니다. 용모가 추하고 가난한 의자 장인이 외국인 호텔에서 주문을 받은 커다란 안락의자를 만들게 되었는데, 의자에 사람이 들어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잘 만든 의자를 남에게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벌인 일입니다. 밖에서는 전혀 눈치챌 수 없는 공간에는 몸을 감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그만 선반을 넣어 무언가를 보관할 수도 있게 하였습니다. 바닥에 만들어 놓은 출입구의 뚜껑을 열고 의자 안으로 몸을 감추면, 숨막힐 정도로 새카만 어둠이 마치 무덤 속에 들어앉은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투명망토라도 두른 것처럼 인간 셋ㅇ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셈이라고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락의자에서 나와 호텔 안에서 도둑질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의자에 앉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앉는 경우 가죽 너머로 안는 시늉을 한다거나, 날카로운 칼로 심장을 찌르는 상상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간이 지나면서 호텔이 타인에게 양도되면서 안락의자도 경매를 통하여 개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새 주인이 바로 관리의 아내이자 여류소설가인 요시코였던 것입니다. 화자는 요시코를 연모하게 되었고, 한번 만나달라는 청과 함께 그동안의 긴 사연을 보내온 것입니다. 물론 개연성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착상은 대단히 기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요시코는 화자를 만나게 될까요?


에도가와 란포는 1894년 미에(三重)현의 군청 서기 히라이 시게오(平井 繁男)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히라이 가문은 사무라이 가문으로 조상은 이토(伊東) 이즈(伊豆)의 사무라이였습니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읽어준 기쿠치 유요시(地市子市) 번역의 히츄노히(秘中)가 처음 접한 탐정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기자로 활동한 윌리엄 르 큐(William Le Queux)1903년에 발표한 티켄코트의 보물: 침묵의 남자, 봉인된 스크립트 및 단 하나의 비밀 이야기(The Tickencote Treasure: Being the Story of A Silent Man, A Sealed Script and A Singular Secret)가 원전입니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상사, 중고 서점, 소바 가게, 도바 조선소 등을 전전하다가 29살이 되던 해 니센도우카(二銭銅貨, 2전짜리 동전)으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필명을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차용할 정도로 추리 탐정소설에 매몰되었던 그는 기발한 속임수를 적용하여 사건을 구성하거나 대물애욕증(fetishism), 기괴하고 잔인한 이야기의 전개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일본탐정작가클럽(일본추리작가협회로 변경)을 창설해 초대이사장을 지냈습니다. 추리 작가의 등용문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에도가와 란포상을 제정하는 등 탐정, 추리소설의 발전과 대중화에 힘써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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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야스시의 여행 이야기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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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일본 작가의 어느 책에선가 발견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1907년에 태어난 이노우에 야스시는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중요 문학상이란 문학상은 거의 다 수상한 일본의 국민 작가오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오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마이니치 신문사에 입사하여 종교, 미술, 출판분야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44살에 퇴사하여 여행을 하는 한편 저술활동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그는 여행에서 취재한 것들을 바탕으로 둔황, 오로시야국 취몽담, 공자등의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네 권의 기행문집 가운데, 유럽 국가들과 미국으로의 여행을 다룬 마지막 편 북에서 유럽으로를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친 러시아 여행, 로마올림픽 관람기,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뉴올리언스, 시애틀 등의 미국 기행문이 포함되었습니다.


여행 이야기를 읽다보면 종교와 미술 등 기자시절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여행일정을 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도시는 물론 작은 마을에 있는 조그만 성당과 그곳에서 감상한 그림에 대해서도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정은 물론 구경의 대상에 대한 사실확인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날과는 달리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이 부족했을 당시의 사정으로 인한 한계였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예를 들면 베네치아는 바다에 떠 있는 도시이므로 운하나 수로 역시 바닷물이 채워져 있기 때문에 홍수를 만난 도시라고 비유하는 것이 적절치 않나 싶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경에 만들어졌다는 파도바에 있는 식물원이 관상용으로는 유럽 최초의 식물원이라고 적은 부분도 사실과 다른 점이 있어 보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는 1545년에 파도바(Padua, Padova)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식물원이다.’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구글의 인공지능검색을 해보면, 유럽 최초의 식물원으로 1545년에 설립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 중의 하나로 꼽히며, 과학 연구와 교육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나옵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피사의 식물원과 유럽 최초의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다고 합니다.


플라멩고춤에 관해서도 원래 아랍인들이 긴 창과 방패, ‘위대한 알라선에 드리는 기도와 함께 스페인으로 갖고 들어온 춤이다.(133)”라고 소개하지만, 나무위키에 따르면 “(플라멩고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한 춤(Baile), 노래(Cante)와 기타(Guitarra) 세 파트로 구성된 민속예술이다. 플라멩코의 노래는 16세기경 집시, 무어인, 유대인, 토착 안달루시아인들의 문화가 융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찾아간 지역과 구경거리에 대한 두루뭉술한 설명과 함께 감상한 소감이 곁들여지는데, 일본의 것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는 듯했습니다. 그의 감상 소감이 독특하다고 느껴졌던 부분은 파리의 거리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추위가 닥치자 파리의 거리는 아름다워졌다. () 잎사귀가 없어진 가로수가 아름다워졌다. 파리의, 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파리를 메우고 있는 나무숲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15-116)”라고 했습니다. 파리의 가로수들은 끔찍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잘라져 있는데 그것도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몽파르나스 극장에서 아누이의 <베켓>을 봤지만 재미없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오페라 극장에서 본 <카르멘>.”이라는 대목이나 베를린의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나비부인>을 보고서 나는 베를린의 남녀가, 머나먼 이국의 게다가 시대도 다른 동양의 한 창부의 처지를 동정해 우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그러나 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극히 자연스럽게도 느껴졌다.(166)”라는 대목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초의 여행자의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었던 것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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