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 정치학 / 시학 동서문화사 월드북 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손명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강현님의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http://blog.yes24.com/document/15617533>에서 추천한 철학책들을 따라 읽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그리고 시학을 한권에 묶어놓은 동서문화사 판을 골랐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세운 학당 리케이온에서 한 강의원고들이라고 합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정리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은 향락적 생활, 정치적 생활 혹은 관조적 생활 가운데 어느 하나의 형태로 살아가지만, 모든 인간은 선()을 추구한다고 보았습니다. 선 가운데 최고의 것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최고의 선을 정의하고자 하였습니다. 먼저 헤시오도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합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깨우치는 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고, 남의 옳은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이도 훌륭한 사람이지만, 스스로 깨우치지도 못하고, 남의 지혜에 귀를 기울일 줄도 모르는 이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다.(15)”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에서 제3권의 5장까지는 원리론을 논하였고, 36장부터 끝까지는 덕의 현상론을 다루었습니다. 최고의 선은 덕에 기반한 활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덕은 사고능력과 관련된 것과 인품과 관련된 것으로 나뉜다고 하였고, 첫 번째 덕은 교육을 통하여 길러지고, 두 번째 덕은 습관을 통하여 길러진다고 하였습니다. 덕에 대하여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배운 덕이 몸에 배여 습관이 되도록 실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덕에 관한 사항을 실천함에 있어 중요한 점은 바로 중용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어떤 생활을 하는가를 정의하였다면, <정치학>은 국가(폴리스)가 추구하는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길을 논하였습니다. <정치학>에서 다룰 내용을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말미에 요약해두었습니다. 첫째, 국가체계와 철학적 완성의 세부 주제에 관련하여 앞선 사람들이 남긴 해설이나 비평 가운데 유용한 것을 알아보고, 둘째, 우리가 수집한 국가체계의 유형을 연구하여, 국가의 보전과 명망, 또 바람직한 통치와 타산지석이 되는 지배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연구하여 최선의 국가체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는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공동체로서 가정이나 마을보다 우수한 사회적 삶의 가장 수준 높은 형식으로 보았습니다. 다만 개인보다는 가정이 우선이며, 가정보다는 국가가 우선한다는 것으로, <대학>8조목에 나오는 수신제가평천하(修身濟家平天下)한다는 개념과는 다소 다른 듯합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내세운 중용(中庸)이 동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과는 차별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동양의 경우는 규모가 큰 왕국의 형태를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에서는 규모가 작은 도시국가의 형태로 발전해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사회구조를 보면 노예제로를 인정하고 자유시민의 자격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어 인간의 보편적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다소 개념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학>은 서양 최초의 문예비평서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시학은 모두 2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비극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희극을 다룬 2부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의 비평사를 연구한 연세대학교의 이상섭 교수가 주석을 단 <시학; http://blog.yes24.com/document/7432094>을 읽은 바가 있어 두 번째 읽는 셈입니다만, 여전히 어렵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쓴 이유는 사람의 감정을 북돋운다는 이유로 문학의 유해성을 주장한 플라톤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은 감정을 정화하고 조절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야기, 성격, 문체, 사상, 시각효과, 작곡 등 6사지 요소가 비극을 구성하는 요소라 하여 설명하면서 이상적인 비극 행태를 제시하였습니다. <오이디푸스왕>을 여러번 인용하고 있어서 <오이드푸스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천재 시계사와 다섯 개의 사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억의 시()를 수리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추억의 시간을 수리한다면 망각 속으로 사라진 추억을 되살리거나, 아니면 왜곡된 추억의 시간을 바로 잡는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환상소설 연작으로 인기작가의 대열에 오른 다미 미즈에(谷 瑞惠) 작가의 소설인 만큼 환상적인 요소가 있을 듯합니다.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의 화자인 아카리는 사내연애에 실패하고는 자기만의 세계로 숨어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여름방학 때 잠시 머물던 할머니가 살던 집인데 1층은 미용실이고 살림집은 2층입니다. 이발사이던 할아버지와 미용사이던 할머니가 운영하던 가게였습니다.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던지 아키리 역시 미용업계에서 일하던 참입니다. 동료 미용사였던 사랑이 떠난 뒤로 다시 미용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은 아카리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려 합니다.


할머니의 미용실이 있던 거리는 왕년의 활기가 모두 사라지고 문닫은 가게들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어있던 할머니의 집에 세를 얻은 아카리가 도착하던 날 맞은 편 시계가게의 진열대에 있는 추억의 시()를 수리합니다.’라는 광고문구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 시계포의 주인은 이다 슈지입니다. 고장난 시계를 수리해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시계제작을 공부한 실력파라고 했습니다.


활기가 사라진 상가골목이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한 때 이곳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 얽혀있는 기묘한 사연들이 무려 다섯 꼭지나 펼쳐집니다. 아카리와 슈지 사이에도 얽혀있는 사연이 있지만, 등장인물 들 가운데는 생사가 분명치 않은 존재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사연이 여기 상가골목과 연관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 사이에 얽혀있는 사연들을 풀어내는 역할은 아카리와 슈지, 그리고 골목에 있는 쓰쿠모 신사에서 살고 있는 다이치입니다. 기묘한 사건과 사연들을 풀어내다보니 아키리와 슈지 사이에 숨겨진 과거사가 드러나고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の とき 修理します)>입니다. 시계방 진열대에 있던 장식에는 원래 시계(時計)’라고 적혀있던 것인데, 누군가 ()’자를 집어가는 바람에 시()만 남은 상태였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시()를 시간(時間)으로 해석하게 된 모양입니다. 가게를 열었던 슈지의 할아버지조차도 시계는 오래 사용할수록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가 된다(191)’라면서 그대로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오래된 시계들은 대부분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 고장 난 시계를 고친다는 것은 잊힌 혹은 왜곡된 추억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아카리와 슈지 사이에 얽혀있는 사연도 그런 경우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옮긴이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지 달아난 자를 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옮긴이의 설명 가운데 기억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랜 세월 곁에 두고 손때 묻혀온 것들은 나름의 생명을 가진다. 물론 그것 자체의 생명력이라기보다 우리가, 인간이 불어넣은 생명력이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마치 그것은 그것 스스로 살아 숨 쉬듯 우리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애당초 살아있던, 살아 숨 쉬고 있던 우리의 정신, 우리의 추억은 우리가 잠시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망각이라는 저 너머 세상에서 영영 우리와 인연을 끊고 만다. 슬픔은 기쁨이 되고, 기쁨이 슬픔이 되는 감정의 굴곡 속에서 일희일비하며 삶에 새살을 덧대어가는 우리에게 꼭 기억해야 할, 잊어서는 안될 추억이란 매우 소중한 통과의례일 터. 망각 속의 추억을 복원하는 일은 그래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된다.(328)’라고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이곳에 왔던 아카리의 기억에 골목길을 북적였고, 온갖 색깔의 간판과 조화장식이 넘쳤던 것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찾은 골목길은 쓸쓸하게 변해있었습니다. 하지만 상처만 남은 아카리의 입장에서는 옛날 모습이 사라진 골목길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 하였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카리의 이런 기대는 슈지 때문에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미용실을 하던 헤어살롱 유이의 손녀딸이라고 말입니다.


상가의 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슈지는 골목길의 상권이 죽어있는 것조차 즐기는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문을 닫은 가게는 사실 잠자고 있을 뿐이야. 가끔은 졸다가 깨어나는, 그런 상가도 나쁘지 않잖아?(31)”라면서 말입니다. 아주 낙천적인 성격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슈지 역시 아픈 연애사를 안고 있습니다. 슈지는 아카리의 잊힌 추억을 되살려내는 추억을 복원하는 시계사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변사사건, 특히 범죄의 희생물인 사체를 두고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일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방에서 근무할 적에는 변사체를 부검하여 범행현장을 재구성하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죽은 이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흔적을 반드시 남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아내기 위하여 애를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흔적들을 토대로 죽음의 순간을 재구성하고 범인을 특정함으로써 수사에 도움을 주는 그런 사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는 식물학을 전공하는 저자가 자신의 전공분야인 식물학을 토대로 하여 살인의 마지막 순간을 증거하는 작업을 소개합니다. 수사관들과 함께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여 증거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저자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식물표본실의 학예사입니다.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저자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심하게 부패된 남성의 시체가 강가에서 발견되었는데, 식물들에 덮인 사체가 그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확인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도 익사로 추정되는 사체를 부검한 적이 있습니다만, 익사 후 시간이 많이 경과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부패가 시작된 사체로부터 나오는 냄새가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연에 방치된 사체는 동물을 물론 식물 그리고 미생물까지 간여하여 훼손이 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인은 물론 사망 시각을 추정하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테너시에는 사체를 다양한 조건으로 자연에 방치하여 사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시간대별로 관찰한다고 합니다. 법의학 분야의 전문적인 자료를 얻기 위하여 사후 신체를 기증하신 분들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한때 법의부검을 해보았던 터라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가 관심을 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계기로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법의 식물학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생겨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법의 식물학이 자리를 잡으려면 우리나라 자연에 존재하는 토종 식물은 물론 도래종 식물에 관한 많은 사실들이 체계적으로 수집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료들이 법의학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들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대부분 영국의 자생종이거나 도래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를 읽다보면 사체가 발견된 장소에 있는 식물들과 사체와의 관계를 보면 사체가 그 장소에 위치한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체가 발견된 장소의 식생들을 고려한다면 범인이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그 장소에만 있는 나무의 잎이라거나 꽃가루, 심지어는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털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인용한 사건들 가운데는 아직도 미해결인 사건들이 있어서 사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담아낼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법의식물학자로서 자신이 자문을 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이 식물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도 적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식물에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굳이 적었어야 하나 싶습니다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도 감추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분의 일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속되는 이야기
세스 노터봄 지음, 김영중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종 순간 살아온 날들이 거슬러 오르는 방향으로 빠르게 지나가더라고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추락사고로 뇌출혈이 생긴 87세 노인의 임종순간을 찍은 뇌영상이 이를 뒷받침하는 소견을 보였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글 잘 쓰는 문제아라는 별명을 얻었던 네덜란드의 대표작가 세스 노터봄의 소설 <계속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런 일이 나에게도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암스테르담의 고등학교에서 고전어를 가르치는 헤르만 뮈서르트입니다. 소크라테스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동료인 생물학교사 마리아 세인스트라, 국어교사인 아런트 헤르프스트 그리고 이들의 학생인 리사 딘디아와의 사각관계로 엮였다가 해직되어 스트라보라는 필명으로 여행안내서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1,2부로 구성된 <계속되는 이야기>1부는 뮈서르트가 리스본에 있는 한 호텔방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분명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리스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아마도 죽음을 맞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가 눈을 뜬 호텔방은 20년전 마리아 세인스트라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장소였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뮈서르트는 당시 마리아와 함께 다녔던 리스본의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20년 전의 사건을 회상합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 날 아침에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깨어날 것을 기대했지만,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자 여전히 리스본의 호텔이었습니다.


어찌보면 그가 마치 현실인 듯 경험하는 하루는 꿈속에서 겪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죽음의 순간에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2부를 읽다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부에서는 뮈서르트는 리스본의 벨렝을 출발하여 브라질의 벨렝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여섯명의 승객과 함께 탑승하고 신비로운 여행을 합니다. 대서양을 항해하는 배는 초시간 상태에 들어섭니다. 동승한 여행자들과 함께 별을 구경하면서 시간과 신화 그리고 문학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여행의 목적이 분명치가 않습니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은 같이 여행하는 신비로운 여인으로부터 자신만이 아는 얼굴을 발견할 때까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사람은 사라지고 마는데 신비로운 여인은 이제 뮈서르트만이 남았다고 신호합니다. 뮈서르트에게 신비로운 여인은 리사 딘디아였습니다.


뮈서르트가 고등학교를 그만두기 전에 했던 마지막 수업의 주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습니다. 뮈서르트는 유일하게 자신의 수업을 이해하는 딘디아에게 마음이 쏠렸던 것이지만, 스승과 제자라는 사이를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다만 남편 헤르프스트가 딘디아와의 관계를 의심한 세인스트라가 뮈서르트를 유혹하여 20년 전에 일탈을 꾀했던 것입니다. 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학교에서는 교사 3명을 해직하면서 뮈서르트와 딘디아의 관계도 끝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이야기>에서는 뮈서르트가 딘디아라고 생각하는 신비로운 여인에게 헤어진 뒤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라는 암시로 끝을 맺습니다. 3부가 있었다면 계속되는 이야기가 무슨 내용인지 알려주게 될까요?


뮈서르트가 리스본에서 갔던 술집의 벽시계는 숫자판이 거꾸로 적혀있습니다. 거울에 비치면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숫자판입니다. 그래서 리스본의 뮈서르트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르는 셈입니다. 현재의 시간과 뒤집힌 시간입니다. 현재의 시간이라는 개념은 제어하는 고삐가 없고 측량할 수 없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부여하기 위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반면 뒤집힌 시간은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겹겹이 쌓여온 기억들입니다. 생물교사인 세인스트라는 과학의 시간과 영혼의 시간을 구분하지 못하면 혼란과 혼돈만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순간이 되면 현재의 시간에서 시간의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이라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다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기왕 그럴거면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 전에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 과학의 모든 역사 -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 시도들
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의 발전은 인체의 신비를 많이 밝혀냈습니다. 하지만 인체를 구성하는 여러 기관을 조율하는 뇌는 여전히 비밀에 싸여있는 바가 많습니다. <뇌과학의 모든 역사>는 뇌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알아낸 뇌에 관한 것들을 잘 정리해냈습니다. 저 역시 뇌과학의 응용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만,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이 많은 까닭에 기억에 관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뇌해부학이나 뇌생리학, 의식이나 심리학 등의 개별적인 뇌과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뇌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둘러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다양한 생각들을 실험적 근거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등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2현재에서는 우리가 뇌에 관하여 알아가는 일이 교착상태에 빠져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는 뇌과학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략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연구방법이 나타나서 뇌의 신비를 밝히는 일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가끔 인간의 뇌를 우주와 비교하곤 합니다만, 천문학자 마틴 리즈는 별 한 개보다 곤충 한 마리가 더 난해하다고 했으며, 찰스 다윈 역시 매우 작은 크기임에도 다양한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개미 한 마리의 뇌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물질 중의 하나요, 어쩌면 인간의 뇌보다도 더욱 신비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의 근원이 심장에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선사시대로부터 뇌과학이 태동하던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동안 그랬습니다. 물론 심장 중심의 관점에 의문을 표했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현대적인 사유의 틀을 만들어냈던 그리스의 철학자들입니다. <형이상학>에서 감각을 화두로 인간의 실체를 논한 아리스토텔레스였지만, 뇌가 아닌 심장이 생명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철학자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는 뇌와 신경계에 대한 중요한 발견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갈레노스에 이르러 뇌가 행동과 사고의 기본이 되는 기관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 3막에서 말해주세요. 사랑은 어디에서 태어나나요? 심장인가요 아니면 머리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17세기의 유럽에서는 뇌가 중요한 기관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험적으로 확실한 근거가 마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664년 캐번디시는 감각적이고 이성적인 물질이 () 뇌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사고, 개념, 상상, 공상, 이해, 기억, 추억 그리고 그밖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다시 말해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만들어낸다.(72)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뇌과학의 과거는 1950년대까지입니다. 528쪽이나 되는 이 책의 분량 가운데 245쪽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기억, 회로, 컴퓨터, 화학, 국재화 그리고 의식에 이르기까지 뇌과학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는 현재는 217쪽을 차지합니다. 가 기대했던 기억에 관한 연구성과 혹은 역사적 발전과정은 소략하게 정리되어 있어 실망이었습니다. 기억이 형성되고 저장되어 필요할 때 이를 불러내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여전히 미지의 장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뇌에 어떻게 전달되고 이에 대한 반응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전해지는가에 관한 연구들이 소개되었습니다.


뇌과학의 미래에 관한 내용은 33쪽에 불과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오리무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