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딜레마 - 초고령 쓰나미가 몰려온다
우봉식 지음 / (주)글통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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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가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됩니다.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기대여명은 늘어가고 있어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초고령사회가 당면할 문제는 숱하게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에 합당한 의료체계를 어떻게 마련할것인가가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도래할 초고령사회에서 예상되는 의료부문의 문제점과 해결방을 모색해보기 위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의료딜레마>라는 제목의 책자로 발간하였습니다.


이 책은 5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장에서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진 원인을 찾아보고, 초고령사회가 가져올 사회적 파급효과와 의료부문의 수요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전망했습니다. 2장에서는 현행 의료전달체계와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짚고, 초고령사회에서 공공의료가 감당해야 할 역할과 특히 노인요양시설 입소자의 건강관리를 강화할 방안을 모색하였습니다.


3장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일찍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을 비롯하여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 고령화사회를 미리 준비해온 보건의료선진국들의 제도와 정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일본의 경우 초고령사회를 대비하여 다양한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국과 프랑스의 치매관련 정책에 관한 내용에 관심이 갔습니다. 4장에서는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우리나라의 의료와 돌봄정책의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5장에서는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회의 역할을 살펴보았습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오래 전에 제가 연구조정실장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습니다. 보건의료분야의 문제점을 적기에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연구를 연구소 자체적으로 혹은 외부 전문가에 의뢰하여 수행하고, 그 결과물을 관계당국에 전하여 정책으로 반영토록 촉구하는 역할을 확대해오고 있습니다. ‘초고령 쓰나미가 몰려온다라는 부제가 달린 <의료 딜레마>도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마련한 중요한 연구성과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필자들은 통계자료를 비롯하여 표와 그림 등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쉽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치매환자의 통계자료 가운데 영국의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2019년 기준 영국의 치매환자는 885천여명에 달하는데 잉글랜드에 84.7%, 스코틀랜드에 7.5%, 웨일즈에 5.2% 그리고 북아일랜드에 2.5%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인구는 63,181,775명으로 잉글랜드가 83.9%, 스코틀랜드가 8.38%, 웨일즈가 4.85% 그리고 북아일랜드가 2.87%인을 고려한다면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인구대비 치매환자의 비율이 높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낮은 것입니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의 치매환자 통계에서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지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초고령화 시대의 보건의료문제는 복지와 비교하여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현행 보건복지부 체계에서 보건 분야를 떼어야 별도 조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15년전에 제가 연구소에 있을 때부터 주장했던 것인데 정부는 여전히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출산율이 떨어져가는 것과도 연관이 있지 않나 궁금해집니다.


초고령사회에서의 보건의료문제가 심각한 것은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를 보면 자명해집니다. 오래된 자료입니다만, 2011년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65세를 기준으로 생애의료비의 비중이 각각 절반씩 차지한다고 합니다. 즉 노인 연령이 되면 의료비를 많이 쓴다는 것입니다. 초고령사회에서 보건의료의 문제를 제대로 대비할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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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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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어 읽어보려고 오랫동안 벼르다가 결국은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1970년에 발표한 <모모>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데, 그의 1979년에 발표한 <끝없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모르고 지냈다는게 신기할 지경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소년이 책을 읽다가 책 속에 있는 이야기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는 작가의 저작 기획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야기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 못해 밖으로만 나도는 바스티안이라는 소년이 친구들의 놀림을 피해 들어선 서점에서 주인이 읽던 책을 훔치는데서 시작합니다. 학교에는 갔지만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창고의 다락에 숨어들어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 전개되는 바스티안의 현실적인 이야기는 밤색 글씨로 기록되었고, <끝없는 이야기> 속의 <끝없는 이야기>는 초록색 글씨로 기록됩니다. 이야기 속의 삽화는 환상의 세계 곳곳이 갑작스럽게 로 변하기 시작하는 이변이 생기게 됩니다. 동시에 환상의 세계를 다스리는 어린 여제가 이름모를 병에 걸리게 됩니다. 환상의 세계의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모여들었으나 어린 여제를 치료할 방도를 내놓지 못합니다.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는 방법은 어린 여제가 내놓습니다. 은산맥 뒤에 있는 풀의 바다에 사는 아트레유라는 젊은이에게 어린여제의 신표인 아우린을 전하고 어린여제를 치료할 방도를 찾아오라 전한 것입니다. 아트레유는 천신만고 끝에 인간세계에서 환상의 세계로 들어온 인간이 어린여제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면, 여제는 치료가 되고 환상의 세계를 무로 지우는 현상도 사라질거라는 것입니다.


삽화를 읽던 바스티안이 환상의 세계로 뛰어들어 아트레유와 조우하고 여제를 만나 달아이라는 새이름을 지어줍니다. 병이 나은어린 여제, 달아이는 바스티안에게 아우린을 전하면서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라고 합니다. 바스티안은 무로 뒤덮인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하지만 바스티안은 세가지 규칙을 지켜야합니다. 1. 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원해야한다, 2. 네 이야기에 속한 것만을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네가 진실로 원한 것만이 네 이야기에 속할 수 있다, 등입니다.


바스티안은 평소어 나약한 모습을 버리고 강해지게 되고, 아트레유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바스티안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면 자신의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스티안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호로크 성의 여주인 크사이데의 도전을 받습니다.


하지만 바스티안은 크사이데를 굴복시킵니다. 충성을 바치기로 한 크사이데는 바스티안과 아트레유를 이간시켜 서로 반목하게 됩니다. 결국 바스티안의 보물은 아트레유에게 넘어가고 바스티안은 현실로 돌아갈 수 없는 위기의 순간을 맞습니다.


이야기가 이 단계에 이르면서 바스티안에 앞서 환상의 세계에 들어왔다가 눌러 앉은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과연 바스티안도 그들의 전철을 밟게 될까요? 환상을 키워가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자칫 환상에 발목이 잡히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 이야기였습니다.


작가는 무에 뛰어들어야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는 창조의 힘을 일깨울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바로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더불어 새로운 것에 매몰되다 자칫 자신을 잃지 않아야 된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끝없는 이야기>의 도입부를 읽다보면 미하엘 엔데가 발굴했다는 랄프 이자우가 쓴 <비밀의 도서관>의 도입부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삽화에서 끊임없는 도전이 이어지는 점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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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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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독서회에서 11월에 읽기로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미리 읽었습니다. 412편이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를 1653쪽에 이르는 3책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오랫동안 읽지 못하던 책을 고전독서회 덕분에 읽게 된 셈입니다.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구성에 따라서 4부로 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4책으로 나누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1부에서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중년의 지주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의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두 명의 아내 사이에서 드미트리미챠, 이반, 알렉세이 등 세 아들을 얻었지만 아들이 장성하는 동안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표도르의 비사교적인 성품은 하인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와 그의 아내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 두 사람과 파벨 표도르비치 스메르자코프를 하인 겸 요리사로 함께 지내고 있지만 별채에서 지내도록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메르자코프는 마을의 떠돌이 백치여인 리자베타 스메르쟈쉬야의 아들로 표도르의 사생아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들들보다 오히려 사생아를 곁에 두고 신임하는 형국입니다. 두 아내도 일찍 세상을 떠나고 홀로 사는 표도르는 과거 삼소노프의 정부이자 사업가인 그루센카를 두고 큰 아들 드미트리미챠와 삼각관계를 이룰 만큼 비정한 호색한이기도 합니다. 이런 성품이 결국 목숨을 잃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드미트리미챠와 이반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베르호프체바라는 미모의 여성과 삼각관계를 이루기도 합니다. 부자들 사이에 두 여인까지 끼어서 복잡하게 엮이는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않습니다. 사생아를 포함하여 네 아들 가운데 수도사의 길을 걷다가 환속하는 알렉세이만이 유일하게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아마도 이들 사이에 얽힌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역할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작가는 모두에서 이 이야기의 구성을 설명합니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두 편의 소설로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소설을 13년 전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는데, 본편이라 할 두 번째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소설이라고까지 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첫 번째 소설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복잡하게 구성된 가족들, 특히 부자지간의 갈등이 결국 존속살인을 낳는 과정을 보면 19세기의 러시아 사회의 모습이 즉물적이고 충동적이기도 한 오늘날의 우리사회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면 드미트리미챠를 부친살해의 범인으로 몰아가는 법집행 구조는 미숙하기만 합니다. 드미트리미챠를 기호한 검찰은 사망한 표도르의 사체에 남은 상처를 엄밀하게 검증하였더라면 드미트리미챠의 혐의를 의심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인물들의 의식적인 혹은 분명치 않은 상황진술을 토대로 혐의를 입증하려 하였고, 재판부 역시 이를 인용하여 드미트리미챠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유력한 용의자인 스메르자코프가 자살한 만큼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과 사건 전후의 상황은 미주알고주알 설명되어 있지만 기승전결의 마지막 단계는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느낌입니다. 본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불거진 지엽적인 사건에 등장하는 소년 일류샤의 장례식이 대단원의 마지막 장면으로 삼은 이유는 그저 불화를 빚던 아이들이 화해과정을 거쳐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미래를 지향한다는 설정으로 보입니다만 부당하게 살인의 누명을 쓴 당사자와 오심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뒷이야기는 뒤편으로 밀려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렉세이를 중심으로 스승인 조시마 장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나 마지막부분에서 죽음을 맞는 일류샤와 아이들의 갈등을 시시콜콜하게 적은 것은 사족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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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아사다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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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의 소설 <지하철>을 읽었습니다. 요즈음 지하철과 전철로 통근을 하고 있어서거나 혹은 기차에 관한 자료를 찾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전철과 지하철 망도 외국의 어느 도시의 그것과 비교하여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은 도쿄의 지하철역에 있는 사무실을 근거로 의류와 잡화를 다루는 직장에 다니는 남자가 겪는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신지 사키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어낸 고누마 사키치의 둘째 아들입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형은 중학교 2학년에 가출한 뒤에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신지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가출하여 독립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인연으로 만난 오카무라 사장 밑에서 중년이 되도록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동창회에 갔다가 만취하게 된 신지는 지하철을 타게 되는데, 중간에 사고가 나는 바람에 빙 돌아서 집에 가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여 내린 지하철에서 나와 보니 삼십 년 전의 시점으로 거슬러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음날 출근하여 아카무라 사장과 연인관계인 디자이너 미치코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신지의 시간여행을 이해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미치코의 경우는 신지와 같은 꿈을 통하여 과거로의 여행을 함께하게 됩니다.


시간여행에서는 현재로부터 다른 시간으로 가는 출입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지하철>에서는 바로 지하철의 특정한 구역이 그런 출입구가 되는 셈입니다. 신지가 과거로 돌아가 처음 시도한 일은 형의 죽음을 막으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 돌아왔을 때 변한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신지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던가 봅이다. 그 이유는 뒤에 설명이 됩니다.


신지와 미치코의 시간여행은 같은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아버지를 둔 배다른 형제였던 것입니다. 흔히 시간여행의 금기사항으로 방문한 곳에서 역사를 바꾸어놓을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지가 형의 죽음을 막으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미치코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부터는 지하철이나 전철의 승강장을 폐쇄하는 구조를 갖추었습니다. 아마도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철로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마련된 대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일본에서 열린 학회에 간 적이 있는 데 학회장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전철역으로 향하다가 승강장에서 철로로 떨어진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신지의 형이 택한 자살 방식이 일본에서는 흔한 일이었던가 봅니다.


신지의 시간여행은 지하철을 타는 것 말고도 꿈을 통하여 과거로 거슬러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지하철을 통하여 갈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고, 나중에는 고누마 사키치가 출전한 만주로 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만든 장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누마 사키치가 징집되어 입대하는 장면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지하철역까지 나가 환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을 뽑아 전선에 내보낼 때도 같은 행사를 벌였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풍습은 해방 이후에도 꽤 오래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자식이나 친구가 입대할 때는 역에까지 나가 환송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훈련소에까지 따라가기도 했던 것입니다. 요즘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어지는 시간여행에서 만나는 젊은이가 바로 독선과 고집 그리고 폭력으로 일관하는 냉혈한으로 각인된 아버지의 젊었을 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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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불멸의 역사 - 연금술사에서 사이보그까지, 인류는 어떻게 불멸에 도전하는가 한빛비즈 교양툰 19
브누아 시마 지음, 필리프 베르코비치 그림, 김모 옮김, 홍성욱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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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건의료 누리망신문 라포르시안에서 <양기화의 BOOK소리>라는 인문학 분야의 독후감을 연재할 무렵 <찬란하고 쓸쓸하도깨비>라는 연속극을 방영하였습니다. 요즘에도 재방송을 하면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고려 말 장군으로 환관의 음모에 걸려 죽음을 당하고 935년 동안 도깨비라는 불멸의 존재로 살다가 무()로 돌아갑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멸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생을 꿈꾸었던 대표적인 인간으로 진시황을 떠올리는 것은 그가 영생의 묘약을 찾기 위하여 동방으로 사람을 보냈고, 그 동방이 바로 조선이었다고 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진시황 말고도 영생을 꿈꾼 사람이 또 있었을까요? 그런 의문을 가진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 있습니다. 그것도 만화입니다.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수필가인 브누아 시마가 글을 쓰고 역시 프랑스의 창작 만화가 필리프 베르코비치가 그림을 그린 <만화로 배우는 불멸의 역사>입니다. 한빛비즈의 과학분야 교양툰으로는 여덟 번째로 나온 작품입니다. 만화에서 불멸의 역사를 설명하는 화자는 영국의 수학자이며 컴퓨터과학의 선구자인 엘런 튜링입니다. 화자는 과학기술을 통하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지적 운동을 트랜스휴머니즘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불멸의 존재를 꿈꾸는 것이 대표적인 트랜스휴머니즘의 예입니다.


화자는 불멸을 꿈꾼 사람들의 뿌리를 찾아 기원후 2세기 무렵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바로 초기 기독교의 첫 번째 이단인 그노시스파입니다. 물질세계는 허구이며 정신세계야말로 신이 창조한 올바른 세계라고 믿었습니다. 불완전한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사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이단으로 몰렸지만 그노시스파의 이원론은 후대의 사상과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독교에서 영생을 노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시작된 불멸을 이루기 위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연금술이 탄생하였습니다. 연금술을 3세기 무렵 역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연금술이 발전하면서 과학적인 발견이 이어졌습니다. 15세기 무렵에는 기계인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로봇과 같은 것이겠지요.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인공생식을 통하여 인간을 발생시킨댜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산과 정보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탄생했고, 기계공학의 발전으로 로봇이 정교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도 등장했습니다. 세상이 이렇듯 변화하면서 인간이 불멸을 이루는 것이 꿈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영혼의 영생을 얻어 부활할 것이라는 개념이, 살아오면서 얻은 모든 기억을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 옮기면 불멸을 이루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모든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멸의 존재를 꿈꾸고 있지는 않습니다. 필멸의 존재는 죽음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생명체는 죽음을 맞기 때문에 그의 일생이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불멸으 존재가 되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생활을 반복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불멸의 역사를 짚어보고, 앞으로 전개될지도 모르는 불멸의 세계를 예견하면서 과연 그런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책읽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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