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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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데이비드 빈센트의 <낭만적 은둔의 역사; >에서 언급되어서 읽게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민음사의 <자기만의 방>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수필 자기만의 방‘3기니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가운데 <델러웨이 부인><등대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수필은 처음입니다. <자기만의 방>은 여성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어 이 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한 강연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주제와 관련하여 울프는 1. 여성과, 여성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의미할 수도 있고, 2, 여성과, 여성이 쓴 픽션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3. 여성과, 여성에 관해 쓰인 픽션을 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세 가지 주제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강연을 통하여 몹시 풀이 죽어 보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었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만의 방은 모두 6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먼저 대학이 상징하는 특권에 여성들을 철저하게 소외시켜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케임브리지에 거턴(1869)과 뉴넘(1871) 등의 여자대학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울프가 이 수필을 쓸 당시에는 여성들에게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이미 열려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굳이 짚어낸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모든 남성들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았던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역사적으로 남성들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치부함으로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활동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셰익스피어에게 주디라는 누이가 있었더라면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까를 상정하였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재능을 썩혔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레즈비언 소설을 바탕으로, 메리 카마이클의 <생의 모험>이라는 소설을 상상으로 재구성하여 논의하기에 이릅니다. 결과적으로 자기만의 방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한 영국사회가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남성들이 독점한 기득권을 나누어주려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기니는 전쟁을 방지하고 문화와 지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방법을 문의한 변호사의 편지와 여자대학 재건 기금을 요청하는 편지, 그리고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원조하려는 협회의 기금 요청 편지에 대하여 쓴 답장이라는 형식을 갖춘 수필입니다. 연관이 없어보이는 세 가지 사안이 사실을 평화의 증진이라는 대의와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세 단체에 각각 1기니의 기금을 보내겠다는 결론에 이르는 내용입니다.


자기만의 방에서도 지적을 한 것처럼 대학은 남성들을 교육시키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주면서도 여성들에게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아왔음을 지적합니다. 즉 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아들들을 교육시켜왔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별로 오래지 않은 과거에 우리사회에서도 같은 일이 적지 않게 있었다고 합니다.


여성들에게도 대학교육을 받고 전문직으로 일할 기회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급여수준에서 차이가 있어서 여성들은 여전히 가난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고용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여 여성들에게 부여된 권리가 남성과 동등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남성과 여성이 대치하는 그런 상황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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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은둔의 역사 -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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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혼자만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책을 읽고 뭔가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일은 누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썩 좋은 취미활동이라는 생각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정리한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다양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국의 왕립 역사학회와 왕립 예술학회의 회원인 데이비드 빈센트교수는 계급과 문화, 비밀, 사생활, 정치 등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왔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산책, 여가활동, 독방(여기에서는 수도원과 감옥의 예를 들었습니다), 취미(DIY, 산책, 낚시, 정원 가꾸기 등) 등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에서의 혼자 있기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회복, 외로움, 당신 등의 주제는 혼자만의 시간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논한다는 전체의 목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입니다.


저자는 시간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1791년 영국에서 출간된 스위스 철학자 요한 게오르그 치머만의 <고독에 관하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독에 관하여>가 지난 400여년 동안 혼자 있기를 경험한 사람들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해서 시간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딱히 혼자 있기가 아니더라도 어떤 주제에 관해 역사적 자취를 살펴보는 내용이라면 붙일 수 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입니다.


몽테뉴는 공직에서 물러나 자신의 성에 은둔하면서 방대한 분량의 <수상록>을 집필했습니다. 근대 유럽에서는 자기만의 공간으로 물러나는 은둔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의 예를 보더라도 은둔을 생산적으로 활용한 사례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사회적으로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치매의 경우도 타인과의 교류가 치매를 예방하고 병증의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의 문인 존 이블린이 활동적인 일과 삶이 고독보다 나은 이유라는 글에서 장담컨대 가장 현명한 이들은 서가가 잔뜩 있는 골방과 벽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활발한 대화에서 나온다라고 한 것을 보면, 은둔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일찍 간파한 선각자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들로 채우고 누리망도 잘 쓸 수 있도록 한 집필실에 칩거하면서 책을 써보는 꿈을 키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읽었는데,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고, 산책과 여행도 혼자 있기의 대표적 사례로 다루고 있어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책을 쓴 많은 작가들이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여행상품으로 하는 여행은 가치를 논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여행에서도 현지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기회가 있고, 그들이 쌓아온 문명들을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시차 탓에 잠에서 깨어난 이른 새벽, 차로 이동하는 시간 등 넘쳐나는 여유시간은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생각하고 기록하기에 충분합니다. 단체 속에서 은둔을 즐길 수 있다고 할까요? 교통과 숙소 그리고 볼거리를 예매하는데 드는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은둔이 꼭 낭만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리 속에서도 고독을 느낀다면 이 또한 은둔이라 할 것이고, 이런 은둔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은둔 과정에서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은둔에서 나와 타인과의 소통하고 교감하는 일로 복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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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예쁜 말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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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핀천, 돈 드릴로, 필립 로스와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미국 소설가 네 명 가운데 하나인 코맥 맥카시의 대표작 <모두 다 예쁜 말들>을 읽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해서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까지 국경연작을 완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첫 작품을 가장 늦게 읽고 말았습니다. 특히 <평원의 도시들>에서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의 어린 시절을 모르고 읽었기 때문에 성격을 파악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존 그래디가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집을 떠나 샌앤토니오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어머니는 목장을 팔기로 합니다. 소년은 친구 롤린스와 함께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열여섯 살이라는데 벌써 말을 다루는 솜씨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목장 주인은 그래디의 말 다루는 솜씨에 반하여 목부로 일하면서 야생마를 길들이고 종마와 교배하여 혈통이 좋은 말을 얻기로 합니다.


제목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이 책의 중요한 화두는 말입니다. 그래디가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와 똑 같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피가 있고 피에는 열기가 있다. 그의 모든 존경과 모든 사랑과 모든 취향은 뜨거운 심장을 향한 것이었고, 그것은 영원히 변함없을 것이었다.(13)” 그래디와 롤린스의 삶을 꼬이게 만든 것도 말입니다. 멕시코로 향하는 길에 합류한 블레빈스가 타고온 좋은 말을 악천후에 잃었는데 그 말을 멕시코 사람에 차지한 것을 되찾는 과정에서 불상사가 생긴 것입니다.


그 사건이 화근이 되어 그래디와 롤린스는 감옥에 갇히고 죽음의 일보 전까지 가게 되지만 구사일생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경찰에 잡혀가게 된 배경에는 그래디를 고용한 목장주가 있었습니다. 그래디가 목장 주의 딸 알레한드라와 사귀게 된 것이 들통이 난 것입니다. 결국 알레한드라는 그래디와 헤어지겠다고 하면서 그래디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그래디는 알레한드라와 마지막으로 만난 뒤에 목장으로 가서 정리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고향으로 가기 전에 자신과, 롤린스 그리고 블레빈스의 말을 되찾고야 말았습니다.


그래디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집안일을 도와주던 아부엘라도 죽어서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뒤 그래디는 다시 고향을 등지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기다란 검은 그림자는 마치 세상에 유일한 존재의 그림자인 양 말을 바싹 뒤따랐다. 그러다 어두워지는 땅속으로, 다가올 세상 속으로 점점 사라져 갔다.(412)” 그래디의 이야기는 <평원의 도시들>로 이어지게 됩니다만, 작가는 초원에서 생활하는 사나이들의 거친 삶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와 멕시코 사이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전형적인 서부의 풍경과 서부 사나이의 삶을 마치 손에 잡힐 듯이 읽힙니다. 평원을 달리는 기차의 모습을 그린 다음 장면이 좋은 예입니다. “곧 떠오를 태양을 맴도는 상스러운 위성인 양 기차는 머리 동쪽에서부터 요란하게 짖으며 달려오고, 얽히고설킨 메스키트 덤불을 가로지는 전조등의 기다란 불빛은 지독히도 곧은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울타리를 어둠 속에서 드러내는가 하면 줄줄이 늘어선 철조망과 기둥을 다시 후르르 집어삼켜 어둠 속을 보냈다. 희미하게 드러나는 수평선 위로 기차 연기가 서서히 흩어지며 어둠을 뒤쫓았고, 소리도 느릿느릿 연기를 뒤따랐다.(10)”


말을 타고 먼길을 가던 중에 야영을 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그들이 땅이 봉긋 솟은 곳에서 잠잘 준비를 마치자 바람에 갈기갈기 찢긴 모닥불이 어둠을 톱질해댔다.(157)”


옮긴이는 이 책을 꿈을 찾아 용감하게 집을 떠나 온갖 위험 속에서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리며 어른이 되어가는 한 소년의 슬프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라고 요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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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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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을 읽었습니다. 2016년에 폴란드를 여행한 탓에 폴란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낮의 집, 밤의 집>이라는 제목에서 집이라는 대상을 낮과 밤으로 구분해놓은 것을 보면 집으로 나타낸 무엇의 이중성을 담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목차에 무려 102개나 되는 제목을 담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그 제목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다양하고, 등장인물에 따라 이야기들이 단속적으로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방랑자들>에서 보였던 서술방식을 차용하고 있는데, 이런 서술방식을 별자리 소설이라고 한답니다.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단문이나 짤막한 삽화들을 였어 하나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토카르추크의 독특한 서술방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삽화들은 서로의 주제들이 결합하면서 작가가 의도하는 통합된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별 들이 모여서 성좌를 이루듯 말입니다.


삽화가 무려 102개나 되다보니 폴란드를 중심으로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등 이웃나라와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들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체코와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크워츠코 계곡에 있는 피에트노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역사, 독일 정착민들에 관한 이야기, 등장인물들의 꿈,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 등을 촘촘히 짜 넣고 있습니다.


삽화들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꿈과 집입니다. 첫 번째 삽화 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첫날 밤에 나는 움직이지 않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몸도 이름도 없는 순수한 시선이다. 나는 모든 것 또는 거의 모든 것이 보이는 애매한 지점의 계곡 위 높은 곳에 매달려 있다. 나는 그 시선 안에서 움직일 수 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11)” 나는 나이면서도 나 같은 것은 없다고도 합니다.


화자가 이웃인 마르타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집의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아마도 실재하는 집은 낮의 집, 실체가 분명치 않은 집은 밤의 집인 듯합니다. 이런 설명을 읽으면서 다중우주의 개념을 차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대가 국경마을인 까닭인지 국경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도 있습니다. 여늬 국경마을이 그렇듯 화자의 집에서 체코 공화국의 땅이 보이고, 여름에는 체코 쪽에서 개 짖는 소리, 수탉이 우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고 가깝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경은 수 세기 전부터 두 나라를 서로 다른 나라로 분리해놓았다는 것입니다. 나무들은 자신의 자리 밖으로 넘어가지 않고 국경을 중요하게 여긴 반면, 동물들은 어리석게도 그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국경을 두고 묘한 행동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독일사람 페터 디에터는 오래 전에 폴란드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옛날 살던 곳을 구경하기 위하여 국경을 찾았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내 에리카는 남편을 배려하여 동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페터의 주검을 체코의 국경수비대가 발견하였는데 경계선에 누워있는 페터의 몸을 폴란드 쪽으로 밀어냅니다. 그런가 하면 30분 뒤에 나타난 폴란듸 국경 수비대원 역시 페터의 몸을 체코 쪽으로 옮겨 놓습니다.


폴란드의 국경수비대원은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을 하는데, 가끔은 넋을 잃고 자기 앞에 펼쳐진 세상을 마치 그림처럼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늑대와 조우한 그는 늑대여 국경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라고 말합니다.

폰 괴첸 가문 사람들의 죽음도 인상적입니다. ‘죽음은 그들에게 안개처럼, 갑작스럽게 전기가 끊기듯이 다가왔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지고, 그들의 호흡이 느려지고,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사망했다.(309-310)’ 행복한 죽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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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작품집 1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634
필론 지음, 문우일 옮김 / 아카넷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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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 종교의 교리를 담은 성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화제가 단편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전하는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작품집I>은 창세기의 내용을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재해석하였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필론(그리스어; Φίλων ὁ Ἀλεξανδρεύς, 라틴어; Philo Judaeus)은 기원전 30년경에 태어나 기원후 45년까지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주 유대인 사회의 지도자였으며 철학자입니다. 특히 <구약성서>의 창세기편을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바탕으로 재해석하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구약성서-창세기>의 내용을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논설한 데미우르고스(造物神)과 이데아의 관계와 연관지었으며, 신이 창조한 인간이 저지른 죄와 정화 과정으로 설명하였다고 합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신의 초월성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의하여 이론적으로 뒷받침되었다는 것입니다. 필론의 저술은 후대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필론은 성경 주석서, 호교론역사적 논고 그리고 철학적 논고 등의 범주에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유실된 저술도 있으나 현존하는 것들이 일곱 편의 작품집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작품집I>은 첫 번째 작품집의 내용으로 7편의 작품들이 담겨있습니다. 1부는 세상 창조에 대하여는 창세기 1~2장을 그리스 철학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2알레고리 해석 1은 창세기 21~17, 3알레고리 해석 2는 창세기 218절부터 31, 4알레고리 해석 3은 창세기 37~19, 5케루빔에 대하여는 창세기 324절과 41, 6아벨과 가인의 제사에 대하여는 창세기 42~4, 7나쁜 자들이 더 나은 자들을 공격함은 창세기 48~16절에 대한 알레고리 해석입니다


옮긴이가 나무랄 데 없으나 장황한 그리스어와 철학으로 모세오경을 주해하였다고 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구약에서 추출한 사례에 대하여 그리스철학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바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어 그리스 철학의 바탕이 부족한 저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세상 창조에 대하여를 시작하는 문장은 새겨볼 만하였습니다. “(모세 이외의) 다른 입법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열거했으나, 어떤 이들은 자기 사상들을 과도하게 가미하고 신화적 심상들로 진리를 가림으로써 대중을 기만했다. 그러나 모세는 그 둘을 모두 넘어섰으니, 전자는 사유하지 않아서 경박하고 철학적이지 않기 때문이고, 후자는 그럴싸한 거짓을 담아 사기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61)”


필론 이전까지 구약의 선지자들이 남긴 예언들은 뜻이 두루뭉술하고 포괄적이었기 때문에 듣는 이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것을 후대 사람들이 이를 재해석하여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낸 것이 성경의 형태로 자리 잡아간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세기에는 천지창조가 6일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첫째 날에는 빛을 만들어내 밤과 낮을 만들었고, 둘째 날에는 하늘과 땅을 만들었으며, 셋째 날에는 채소와 나무를 만들었고, 넷째 날에는 태양과 달을 만들어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날에는 짐승들을 만들고 여섯째 날에는 인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지구의 자전으로 밤과 낮이 구분이 되는 것을 초등학생도 알고 있습니다만, 하루의 길이는 어떻게 계량하였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창세기의 내용부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여전히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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