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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 ㅣ 스투디움 총서 9
윤미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오래 벼르다 읽은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집 『마주보기』에서 「사촌의 구석 창문」이라는 시의 주석을 따라가다가 도시산책자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윤미래교수의 <발터 벤야민의 도시산책자와 사유>를 읽게 된 이유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벤야민의 산책자의 사유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대부분 글이 도시관상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일방통행로』,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베를린 연대기』, 『파사젠베르크』 등이 산책자의 사유 모델에 따른 작업이었다고 했습니다.
벤야민은 프란츠 헤셀과 지크프리트 크라카워로부터 도시 산책의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했습니다. 프란츠 헤셀은 『베를린 산책』을 통하여 산책이 도시의 현재에 대한 관찰을 넘어 도시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불러오는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크라카워는 도시의 문화사보다는 도시의 현재가 제공하는 공간상에 더 집중하고, 그러한 공간상의 사회학적 심리학적 역사철학적 의미를 해독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벤야민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산책자는 시적 영감의 원천을 파리의 산책에서 얻은 샤를 보들레르였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와 브르통의 『나자』도 파리 산책에서 얻은 도취의 힘을 증거하는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로부터 『파사젠베르크』에 이르기까지 여섯 장을 통하여 도시산책하면서 얻은 사유의 결과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적었습니다. 그리고 더하여 헤셀의 『베를린 산책』과 크라카워의 도시 몽타주에 관하여 설명했습니다. 즉, “산책자의 사유라는 관점에서 벤야민의 사상적 특징을 주요 텍스트를 중심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보충설명이 필요한 지점에서 벤야민의 핵심적인 이론 및 범주를 설명하는 구성방식을 취한다.(13쪽)”고 했습니다.
벤야민은 거리에서 마주친 간판, 벽보 등을 통해 자신이 꾸었던 꿈을 연상하여 「멕시코 대사관」 등의 작품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수집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벤야민의 글은, 한편으로는 수집의 역사적 행태에 대한 서술을,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한 수집가에 대한 성찰을 포함한다.(67쪽)”고 했습니다.
보들레르에 관한 글에서는 “표면적으로 보들레르 시는 대도시나 군중과 그다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지 않는다. 물론 『악의 꽃』 2부는 ‘파리 풍경’이라는 제목 아래 파리 거리를 배경으로 하는 시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카루젤광장이 언급되는 「백조」, 파리 거리를 가로질러가는 노파를 묘사한 「가여운 노파들」 등이 있다. 또한 군중 속에서 등장해서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여인을 묘사한 지「나가는 여인에게」라는 시도 있다.(82쪽)”라고 했습니다. 보들레르가 산책을 통하여 파리의 거리를 관찰한 것은 “일시성과 우연성에 지배되는 현대 대도시의 변화를 시적 영감을 주는 새로운 체험으로 받아들였다.(86쪽)”는 것입니다.
벤야민은 보들레르를 통하여 “거리산책자가 탐닉하는 도취, 그것은 고객의 물결에 부딪히는 상품의 그것이다.(「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91쪽)”, 그래서 “새로운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사람은 거리산책자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벤야민은 모스크바, 파리, 나폴리, 리가, 마르세유, 피렌체 등 크고 작은 도시를 많이 여행했는데, 이는 세계여행을 자주했던 외할머니가 여행지에서 보내온 사진엽서를 통하여 여행벽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를 여행지가 원본이라면 여행지 사진은 복제품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가본 여행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어떤 마을이나 도시를 처음 볼 때 그 모습이 형언할 수 없고 재현 불가능하게 보이는 까닭은, 그 풍경 속에 멂이 가까움과 아주 희한하게 결합하여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습관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일방통행로』에 적었습니다.
영화가 등장하면서 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도시에 진입하는 경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차역에서 내리는 승객에게는 낯선 도시 풍경이 갑자기 나타난다. 반면 도시의 입구, 즉 도시의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자동차 운전자에게 도시 풍경은 파노라마처럼 서서히 펼쳐진다.(181쪽)”라고 했습니다. 벤야민이 최근에 등장한 드론이 찍은 도시의 영상을 보면 어떻게 이야기할까 궁금해집니다.
헤셀은 『베를린산책』에서 “거리산책은 도시가 어떻게 집단적 기억을 환기시키는 매체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거리산책자가 종종 의도치 않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흔적들과 마주치기 때문이다.(235쪽)”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거리산책자의 사적 과거에 대한 기억보다는 베를린의 특정 장소와 연관된 역사적 일화의 비중이 더 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크라카워는 대도시를 해독되어야 할 텍스트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헤셀, 벤야민과 유사한 문제의힉을 지닌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도시의 현재가 아닌 과거이 파편들을 해독의 대상으로 삼았던 벤야민과 달리, 크라카워는 생생한 도시의 현재가 제공하는 공간상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시대의 현실 안으로, 대도시의 ‘미지의 영역’ 안으로 전입했다고 할 수 있다.(241-242쪽)”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가에서 바라본 풍경에서 크라카워는 도시의 공간상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도시의 대표적인 건축물처럼 의도적 계획적으로 형성된 공간상이고, 다른 하나는 우연하게 형성되어 ‘한 번도 어떤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없던 도시상’이다.(245쪽)”라는 대목을 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