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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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로 치닫는 제국이라는 부제가 달린 <로마인 이야기12>는 서기 211년부터 284년까지의 기간을 다루었습니다. 11권까지의 로마인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황제들의 재위기간별로 나누어 놓았던 것과는 달리 제1부 로마제국3세기 전반, 2부 로마제국3세기 후반, 3부 로마제국과 기독교 등으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2세기에도 황제들이 난립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만, 3세기에는 73년의 기간 동안 무려 22명의 황제가 제위에 올랐기 때문인데 그 가운데는 고르디아누스1세는 보름 만에 자살로 끝났을 뿐 아니라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갈리에누스 황제는 재위 15년이 되던 해에 암살당했습니다. 헤아려보니 22명의 황제들 가운데 14명이 암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3부에서 기독교 문제를 별도로 적은 것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쇠퇴와 연관이 있기 때문으로 본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이 위기상황에 들어서는 단초는 카라칼라 황제가 로마제국의 속주민들에게도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카라칼라 황제 이전에는 속주민들은 제국에 기여한 바가 있어야 시민권을 부여받았을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취득권이었던 시민권이 이제는 기득권이 된 것입니다. 저자는 로마제국의 시민권이 기득권화가 불러온 파장으로 1. 시민권자들의 기개와 긍지가 사라졌고, 2. 속주민들의 향상심과 경쟁심이 사라졌으며, 3. 공짜로 시민권을 취득한 속주민들은 제국에 대한 충성심도 사라졌다고 보았습니다. 로마가 로마인 이유를 잃어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3세기 이전에도 로마군단을 이끌던 군단장을 경험한 황제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원로원의 인정이 전제가 되었습니다만, 알렉산드로 세베루스 황제가 암살된 뒤로 50년간은 원로원의 의향 따위는 완전히 무사하고 군단이 사령관을 황제로 추대하는 군인황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앞서도 이 시기의 황제 22명 가운데 14명이 암살을 당했다고 했습니다만 암살의 사연도 가지가지였습니다. 물론 암살을 주도한 자들은 황제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이렇듯 최측근에 의하여 암살된 황제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황제가 된 장군들은 하나 같이 신변보호를 강화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의문입니다.


광활한 영토를 경영하던 로마제국은 특히 도나우 강을 국경으로 마주한 게르만족과 유프라데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경계로 삼았던 페르시아 제국과의 국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황제는 군단을 경영한 군인으로서의 자질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제국 경영의 중심이 되는 원로원이나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군단을 총괄하는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겸해야 했습니다만, 군인 황제의 경우는 전장을 누비다보니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입니다.


제국을 둘러싼 이민족들의 세력이 커졌던 것도 로마제국이 위기로 치닫게 되는 가장 큰 이유였을 것입니다. 우선 야만족으로 치부되었던 도나우 강 건너 게르만족도 로마와의 교류를 통하여 수준이 향상되었으며, 전투와 외교로 유지되던 파르티아 왕국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사산조 페르시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멸망한 페르시아의 부흥을 앞세우고 로마제국이 차지한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기치를 드높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3세기 들어 그리스도교가 확산된 것도 로마제국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충성을 다하지 않은 것은 여러 신을 섬긴 로마제국에서는 황제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이외의 신을 배격하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흔히 로마제국에 기독교가 스며드는 과정에서 많은 박해가 있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일시적이었으며 박해의 대상도 그리스도교의 지도자에 국한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가 철저하게 탄압받은 것은 4세기 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시기라고 합니다. <로마인 이야기13>에서 탄압의 실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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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수요일의 편지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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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구마모토 현의 남쪽 해안에는 주민이 5천 명 정도 되는 츠나기 마을이 있습니다. 1984년부터 진행해온 녹지와 조각이 있는 도시 개발이라는 흐름에 따라 2001년 츠나기 미술관이 개관하였습니다. 츠나기 마을에는 바다 위의 초등학교로 알려진 아카사키 초등학교가 내진 문제 등으로 3년전 폐교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2013619, 미술관은 아카사키 초등학교에 아카사키 수요일 우체국(赤崎水曜日郵便局)을 개설하였습니다. 이 마을에서 영화를 촬영한 적이 있는 토야마 쇼지 감독을 우체국장으로 초빙하고, 예술가 등 실행위원이 우체국 운영에 참여하였습니다. 우체국은 전국 곳곳에 사는 사람들이 수요일에 쓴 편지를 이곳으로 보내면 우체국의 실행위원들이 나누어 읽고 편지를 보낸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준다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우체국이 개설되고 3년 동안에 5천 여 통의 편지를 우체국에서 처리했다고 합니다.


<치유를 파는 찻집>으로 알게 된 모리사와 아키오 작가는 수요일 우체국을 연결고리로 한 소설 <수요일의 편지>를 발표하였습니다. 출판사의 요약에 따르면 바쁜 일상을 보내며 저마다의 이유들로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수요일에 편지를 써서 우체국으로 보내면 낯선 누군가의 일상을 담은 편지가 온다는 것입니다.


<수요일의 편지>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수요일의 우체국에 편지를 보낸 두 사람과 우체국의 실행위원 한 분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부 이무라 나오미는 직장과 시부모와의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직장생활을 하는 이마이 히로키는 인생행로를 바로 잡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체국의 실행위원 미쓰이 겐지로 삶을 의지하던 딸이 꿈을 이루기 위해 도시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어 고민입니다.


나오미씨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일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날그날 가슴속에 생긴 마음의 독을 일기에 솔직하게 적어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오미에게 일기를 쓰는 행위는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저 역시 중학교 때 시작한 일기를 대학까지 썼다가 버렸습니다만, 최근에 수술을 받게 되면서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날그날 한 일들과 생각을 조금씩 적어두고 있습니다. 벌써 20개월이 되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친구 이오리가 건네는 기억해둘만한 좋은 말 세 가지가 눈길을 붙잡았습니다. 1.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2.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저 없이 한다, 3. 남을 기쁘게 하면 자기도 기쁘다 등입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자신이 꿈꾸었던 하루를 써서 수요일 우체국에 보냈습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이마이 히로키는 그림책 작가를 꿈꾸었지만 회사에 매여 그만두지 못하는 봉급쟁이입니다. 히로키는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써서 우체국에 보냈습니다.


세 번째 등장하는 미쓰이 겐지로는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쓰나미가 몰려와 어선과 멍게 양식장을 쓸어간 것도 부족해서 아내 사오리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 리오가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면서 진로를 고민하는 것을 전해 듣고 딸의 미래에 걸림돌이 될까 걱정합니다. 그런 겐지로는 우체국에 도착한 수요일의 편지 가운데 나오미와 히로키의 편지를 서로 교환하여 보내줍니다.


서로의 편지를 교환하여 읽은 나오미와 히로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읽고 용기를 내어 꿈꾸었던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나오미는 빵을 만들게 되고 히로키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는 않습니다. 나오미는 남편이 먼저 하고 있는 일을 접고 꿈꾸던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면서 남편의 꿈을 지원하게 되지만, 히로키는 회사를 그만두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런가 하면 젠지로는 딸의 미래를 위해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게 됩니다.


모리사와 아키오의 작품을 읽다보면 연결되는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요일의 편지>에서는 <치유를 파는 찻집>에 등장했던 카키가 히로키의 부인으로 등장하고, 바닷가 찾집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주인공은 앞서 적은 중요한 일 세 가지에 충실하여 좋은 결과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세 가지 중요한 일을 따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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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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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분명치 않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인용되었을 것이나 따로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조셉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인간 경험의 한계와 제국주의의 악몽 같은 진실을 탐구하는 문제적 소설이다. 주인공 말로의 탐험은 문명과 야만,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의 진실과 마주하는 탐험이라 할 수 있으며, 커츠가 원주민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에서 콘래드는 인간 본성과 서구의 문명화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출판사의 자료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독일 작가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화자가 주인공 아우스터리츠를 만나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는 형식이었는데,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도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여러 회사의 중역을 맡고 있는 사람이 변호사, 회계사, 말로, 그리고 화자 등 4명을 초대하여 템즈 강에서 배를 타는 중에 말로가 선장이 되어 아프리카에서 배를 몰았던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해질 무렵의 템즈 강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내 강물에도 변화가 찾아와 그 평온함은 차츰 빛을 일으며 점점 더 심오해졌다. 이 세상의 가장 먼 곳까지 통하는 수로의 고요한 위험을 보이며 펼쳐져 있던 넓은 옛 강은 여러 시대에 걸쳐 양쪽 둑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위해 훌륭하게 봉사한 후 이제 저무는 날을 맞으 아무런 동요 없이 휴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존엄한 강물이 한 번씩 찾아왔다가 영영 사라지고 마는 짧은 하루의 그 생생한 열기 속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기억이라고 하는 장엄한 빛 속에 잠겨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9)”


어둠이 내리자 말로는 그런데 이 땅도 한때는 이 지구의 어두운 구석 중의 하나였겠지라고 운을 떼더니 로마 사람들이 영국을 지배하던 시절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이 로마인들은 참으로 변변찮은 사람들이었어. 그들은 식민지 개척자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그들의 통치는 착취 행위에 불과했고,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그들은 정복자들이었어.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못 되지.() 그들은 단순히 획득이라는 목적을 위해 획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움켜 받았을 뿐이야. 그것은 폭력을 쓰는 강도 행위요, 대규모로 자행되는 흉측한 살인 행위에 불과했는데,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 행위에 덤벼들었던 거야. 그것은 암흑세계를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합한 행위이지.(15)


로마가 영국을 식민통치했던 일을 끌어온 이유는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통치하고 있던 19세기의 분위기를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말로는 인도양, 태평양 그리고 중국해 등을 6년여에 걸쳐 떠돌아다니다가 귀국하였던 것인데,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뭍에서의 휴식에 진력이 나서 다시 바다로 나갈 궁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숙모 한 분이 힘을 써준 덕에 벨기에의 식민지인 아프리카의 강을 운항하는 배의 선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두 마리의 검정 암탉 때문에 원주민들과 싸우다가 살해된 선장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뤼셀로 가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검진을 담당한 의사는 열대 지방에 가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냉정을 지키는 일이지요. 냉정을 잃지 않도록 하세요.(27)“라고 당부합니다.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프랑스 선적의 배를 타고 아프리카 해안을 항해하면서 바라보는 해안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0일을 항해한 끝에 배는 강의 어귀에 있는 주재소에 도착했고, 주재소로부터 다시 유로로 200마일을 올라가 면 상아를 수집하는 교역소에서 일하고 있는 커츠씨를 데려오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말로가 향한 곳은 암흑의 세계였습니다. 내륙 주재소에 도착한 다음에는 고장난 배를 고쳐서 강을 따라 올라가 커츠씨가 머물고 있는 교역소까지 배를 몰아갔습니다. 강을 거슬러 오르다보면 밀림이 천천히 강을 가로 건너 우리의 돌아갈 길을 막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고 적었습니다. 교역소가 가까워지면서 강폭이 좁아지고 강물도 얕아져서 배를 모는 일이 쉽지가 않았는데, 게다가 밀림 속으로부터 화살 세례를 받기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교역소에 도착해서 커츠씨를 배에 태우고 하류로 향하게 되었지만 커츠씨는 배가 하류로 운항하는 도중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사실 커츠씨는 교역소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원주민 위에 군림하고 있어 원주민들의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상아를 수집하는 일에서는 누구와도 타협을 하지 않는 폭군이었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암흑의 핵심은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닿게 되는 미지의 장소라는 의미도 있겠고, 원주민을 지배하는 커츠와 같은 무리를 말하는 것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암흑의 핵심>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식민지를 경영하는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고압적 식민지 정책에 대한 언급은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커츠씨와 같이 개인의 일탈적인 행위만이 강조된 것은 아닌가 싶기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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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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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 밀리의 서재에서 고른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신호등도 없이 호젓한 길이 2km정도 되는데 지형도 익숙하기 때문에 휴대전화에 몰입해도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입니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읽기였습니다. 하는 일마다 꼬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명주와 준성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혼을 하고 먹고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화상을 입는 바람에 변변한 직장을 구할 수 없게 된 명주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됩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는데 있어 관련 단체나 보건소와 같은 곳에서 지원을 구할 생각도 없이 혼자서 감당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명주네 이웃에 사는 준성은 알코올성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겨우 먹고 사는 형편입니다. 그런데도 준성의 아버지는 아들 몰래 술을 마시곤 합니다. 술에 관해서는 제어가 안 되는 그런 분인데, 나이가 들어서는 아예 술을 마실 기회가 줄어서 그렇습니다만, 저도 젊어서는 술을 제어하지 못하는 그런 부류였습니다. 알코올성 치매를 술을 끊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치매 증상이 좋아진다고 합니다만, 준성의 아버지의 치매를 현재 진행형인 셈입니다.


사단은 명주한테 먼저 생겼습니다. 어머니와 한바탕하고서 홧김에 집을 나와 방황을 하다가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숨져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장례를 치러야 했겠지만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이 명주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결국 돌아가신 어머니를 관에 넣어 작은 방에 모시고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연금으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신경을 써야 할 일도 많이 생깁니다. 어머니 생전에 알고 지내던 분들로부터 연락이 오고, 이혼한 남편이 데리고 간 딸도 불쑥 찾아오기도 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감추는 일이 아슬아슬하기만 합니다. 사실 명주가 선택한 길을 심각한 범죄행위에 해당합니다.


이웃에 사는 준성 역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힘든 일이 이어집니다. 외출할 때 마다 집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불을 사용하지 말고 전자렌지에 덥혀 식사를 하라고 단단히 일렀음에도 불구하고 가스렌지를 사용하다가 불을 내는 바람에 화상을 입어 오래 병원신세를 지다가 그마저도 어려워 집에서 모시게 됩니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를 화장실에 모시려다가 미끄러지면서 상처를 입고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준성은 아버지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당황하게 됩니다. 이때 명주가 나서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어머니가 고향에 사둔 집으로 두 분을 모시기로 합니다.


사실 명주와 준성의 결정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만 두 사람의 처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지방자치단체나 보건소의 도움을 얻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명주가 어머니의 죽음을 발견했을 당시에 통상적인 절차를 밟았더라면 일이 이렇게 꼬여들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명주가 딸 은진의 수에 말려드는 것도 답답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자녀라고 해도 되는 일과 되지 않는 일을 분명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명주와 준성에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부모를 매장하는 길을 선택한 것을 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을 읽은 소설가와 평론가들은 하나 같이 작가가 선택한 길에 우호적인 듯하여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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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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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읽고 있는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띈 고골의 <뻬제르부르그 이야기>를 먼저 읽었습니다.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1809~1852)은 요즈음 전란에 휩싸여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1935년부터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우크라이나의 민담에 등장하는 다양한 귀신과 정령에 관한 이야기를 작품에 녹여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골은 러시아제국의 농노제도를 비롯하여 부패하고 타락한 관료제도를 비판하는 작품을 썼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고골의 <외투>를 읽고 러시아 작가들은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후배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야기한 <외투>를 비롯하여 <>, <광인 일기>, <초상화> 그리고 <네프스키 거리> 등 다섯 작품이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 실려 있습니다. 책 이름을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라고 한 까닭은 책에 실려 있는 다섯 작품이 모두 뻬제르부르그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뻬제르부르그는 당시 러시아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지금은 상트 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이야기>와 흡사한 구조입니다.


안타깝게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아직 가보지 않아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소나 건물 등이 낯설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 배경이 되는 장소가 가본 곳일 경우에는 책을 읽을 때 집중도 잘 되고 이해도 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섯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에서는 8급 관리 꼬발표프 소령이 코가 자고났더니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가 아침식사로 먹으려는 빵에 끼워져 있다거나, 코가 아예 사람처럼 행세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우리 몸에서 어느 한 부위가 사라지면 모양새가 우스워지게 됩니다. 특히 코는 얼굴을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코가 사라지게 되면 크게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한 모습을 하게 됩니다. 코가 없는 대표적 인물로는 조앤 롤링의 <해포터> 연작에 등장하는 볼드모트가 코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작품 <외투>는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고골의 작품 가운데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낡은 외투로 겨울을 나야하는 처지인 아까끼는 우여곡절 끝에 새 외투를 장만하게 됩니다. 새외투를 장만한 뒤에 초대받은 만찬에 참석했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게 됩니다. 억울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도 하고, 경찰이 무관심하자 서장, 그리고 고위층에 외투를 찾아달라고 청탁을 넣어보지만 무시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정신착란 상태에 빠진 아까끼는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한이 맺힌 아까끼는 유령이 되어 거리를 배회하다가 사람들의 외투를 강탈하게 됩니다.


세 번째 이야기 <광인 일기>9급 관리인 뽀쁘시리친이 국장의 딸을 연모하다가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자신이 스페인 국왕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모두 20편의 일기를 통하여 뽀쁘시리친의 정신상태가 무너지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앞의 두 작품에서처럼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입니다.


네 번째 이야기 <초상화>는 가난한 화가 차르뜨꼬프가 미술상에서 사들인 노인의 초상화로 인하여 궁핍한 생활에서 탈출하게 되지만 화가로서의 재능이 따라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초상화에 깃들인 악마성이 여러 사람의 운명을 뒤바꾸어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이야기 <네프스끼 거리><뻬쩨르부르그 이야기>의 종합완결편이라고 하겠습니다19세기 말 러시아제국의 수도 뻬쩨르부르그에 살고 있던 보통 사람들의 삶을 무겁지 않게 보여주었습니다<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서 고골은 무너져가는 러시아제국의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도 가볼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풍경은 아마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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