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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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 때리기 좋은 날씨다. 사실 환절기 비염으로 알레르기약을 달고 살다 보니 항히스타민제의 여파로 졸음에 취해 있는 게 현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러 매체들을 통해 들려오는 복잡한 뉴스들과 SNS를 타고 비춰 보이는 타인들의 잘사는 이야기와 달리 머리 속에 그려지는 상상의 세계들은 현실과는 참 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쫄쫄이를 입은 초인적인 누군가, 우주를 날고 물 속에 들어가도 산소 없이 살 수 있는 누군가하지만 나를 가장 크게 매혹시켰던 주인공들은 늘 이 세계의 것들은 아니었다. 죽음, 저승, 명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들그래서 늦서리가 내리던 날 출판사에서 리스트를 보내왔을 때 가장 먼저 선택했던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범유진 작가의 #장편소설 #호랑골동품점 이었다.

 

 작가 범유진은 틈새에 앉아 밖을 보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나처럼 구석지를 사랑하는 사람인가보다. 구석지에서 명계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 참 마음에 든다.

 글은 눈병을 앓던 산의 왕 호랑이를 치료해주면서 그의 눈썹을 얻으며 기이한 힘을 갖게 된 호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호미(虎尾), 호랑이의 눈썹이라는 뜻이다. 기묘하게 흰 눈썹을 가진 이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흐름과 호흡은 빠른 편이다. 마치 내가 어릴 적부터 애정 하며 꾸준히 보았던 무수한 저 세계를 주제로 하는 작품들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백귀야행, 펫숍오브호러즈, 음양사, 호오즈키의 냉철 등 사진 첨부)

 

 N대 호미로부터 선택(또는 구조)받아 후미진 시장 뒷골목의 골동품 가게인 호랑골동품점에 후계자로 살게 된 이유요는 왕의 심부름꾼이자 산의 정령, 지금은 삽살개의 몸을 빌려 살고 있는 동이와 함께 6편의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각각의 이야기는 마치 이 사회의 복잡하고 어두운 면들을 꼬집어 보여주는 듯하다. 그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인물과 상징적인 골동품을 하나하나 간단하게 소개해본다.

 

1.     Bryant & May 성냥갑 콜센터 직원인 김규리의 이야기. 콜센터에 들어오기 전 규리의 취업 고난기와 함께 하청과 원청이라는 구조적 한계, 그리고 직장 내 따돌림/태움 등을 엿볼 수 있다.


2.     그림자 인형 와양콜릿 매력적인 캐릭터 여인 화의 등장! 소녀 소하연은 누구인가!

가정폭력, 노인과 관련된 사회문제(고독사, 빈곤, 기타 범죄 등)…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아들이 아니면 낙태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것들이 모티브가 되어서 꽤 히트를 쳤던 M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 음악도 무서웠어~!)

 

<말을 듣지 않는 개는 쳐 죽이면 그만이다. 폭력은 모든 것을 길들인다.>


개인적으로 이 두 번째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았는데 주인공인 65세 김택구가 자신의 일기를 통해서 누가 봐도 극악무도하기만한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는 내용들이 너무 어처구니없었고, 이 때문에 이 글의 끝을 더욱 속 시원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3.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 배우 정지운과 세상을 떠난 그의 친구들 박서현, 이다은의 이야기. (토이TOY 유희열 노래 가사 같은 우정 우정 우정!ㅎㅎㅎ)


4.     럭키래빗스풋 대학교 다크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3명 심길용, 문정열, 권병욱의 이야기. 학원 폭력, 동물 학대 등의 이야기도 있고, ‘노력은 최소화하면서 벌이는 최대로 하려는 요즘 태세를 잘 보여주기도 하여서 씁쓸했음


5.     짚인형 제웅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된 기러기 엄마 채주연의 이야기. “성공적인 입양이 무엇인가?”ㅎㅎㅎ 짚인형 제웅은 저주만을 상징하지 않았다.


6.     콩주머니 이 이야기의 끝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김택구의 마수에서 빠져나왔던 소하연은 호랑골동품점과 어떤 인연을 맺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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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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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물을 건너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마트에 가보니 이국적인 과일들이 꽤 많아 보인다. 남편과 이것저것 눈으로 휘적거리다 파파야 멜론이 이젠 한국에서도 나오나 봐?”했다. 지구가 어지간히 따뜻해지긴 했나 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겨우 사먹을까 하던 과일이 3월에도 눈발이 거세게 날리는 이 곳에도 판다. 이 코너를 돌고 저 코너를 살펴보니 해외에서만 볼 수 있던 간식들도 매대에 꽤 많이 진열되어 있다. 굳이 비싼 비행기표를 살 필요가 있나,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싶으면 이 곳에서도 팔고 있다.


 내가 읽은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는 식민지 시대 조선의 수도, 경성 땅에서 유행하던 간식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단순히 이게 있다, 저게 있었다.”라는 내용보다 더 심층적으로 그 시대에 유행했던 음식 하나하나를 챕터로 나눠서 그 시대에 연재된 문학작품이나 신문 사설, 그리고 현대에 들어 출판된 연대기 등을 통해 어느 곳에서 어떻게, 누구를 통해 판매되었는지, 그 식문화를 자세히 보여준다.


 나는 오늘 글을 쓰기 앞서 출판사의 서포터즈라면 어떤 글이든 쓸 터이니 나는 내 기억과 방식에 맞는 글을 써 봐야겠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이 음식의 기억을 훑는 것이니 나도 이 책 속의 음식 중 나의 기억에 생생한 한가지 음식에 대하여 책의 내용과 함께 정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두를 멜론으로 열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멜론은 귀한 과일이었다. 수박도 아닌 것이, 참외도 아닌 것이, 가격은 또 어찌나 비싼 지 선물이라고 해서 들어와야만 한 번 먹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말주변 없이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언제 성질을 부릴지 모르는 내 아버지도 멜론 앞에서는 메롱, 메롱, 이름도 재밌다.”하며 나름의 개그를 날려 어린 나와 동생들을 웃게 만들었으니 멜론은 여러모로 귀한 과일이 분명하긴 했다. 우리집에 멜론이 온 것은 아버지의 거래처에서 선물로 갖다 준 것이 계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니면 병환 중이던 엄마의 문환 차 선물로 가져온 바구니 속 물건 중 하나일지도...)


 그 귀한 멜론은 모던보이의 선두주자였던 소설가이자 시인 이상이 죽기 직전 자신의 아내인 변동림에게 죽기 직전 먹고 싶다고 했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나는 철없이 센비키야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이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서 깎아서 대접했지만 이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 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106)


 1930년대 문학작품 속에서도 자신의 집 가정교사로 들어온 정순에게 흑심을 품은 조 두취가 미스코시백화점 4층 식당에서 무엇이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시키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그 당시 그들이 시킨 것은 매른”, 즉 멜론이었다. 요즘 날씨가 더워지면 멜론을 통째로 썰어서 빙수로 파는 것이 한 2~3만원 정도로, 꽤나 비싼 간식이라 할 수 있겠는데 당시에도 가장 인기가 있고 비싼 것이 멜론이었다고 하니 과류의 왕이라 불렀던 당시의 명성이 꽤나 대단하다 하겠다. 당대에 전라남도 지역에서 온실재배를 했다는 것도 신선한 정보였다. 어떻게 길러졌는지도 신기하지만 맛이 좋아서 일본에도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식민지였으니 수출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씁쓸하다.)


 경성의 유행은 일본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으니 책에서는 일본에서 어떻게 해당 식품들이 유행했는지 흐름도 잘 보여준다. 첫 장에 소개된 커피의 경우 끽다점과 순끽다점을 나눠 홍보하였다 하는데 이는 일본에서 여종업원의 에로틱한(!) 서비스가 있으냐 마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니커피 한 잔에도 성()이 연결된다는 것이 참 성진국스럽다 싶었다.


 책은 총 8장에 걸쳐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는 맛이 무섭다, 읽는 내내 침이 고여 힘들었다. 이 책을 쓴 작가의 <경성 맛집 산책> 역시 읽었고, 그 이후에도 책 속에 있고 아직도 서울에서 운영 중인 설렁탕집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시대를 거슬러올라 그 당시 식문화를 주제에 맞게 잘 설명한 작가의 필력이 이번 책에서도 잘 그려져서 읽는 내내 복잡한 생각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요 몇 달 간 대내외 정치뉴스로 얼마나 머리가 아팠던가, 이럴 땐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를 즐기는 것이 참 좋은 것 같다.


요 몇 주 전에 일본에 사는 동생네 집에 다녀왔는데 라무네 한 병을 사먹고 싶다 했더니 왜 그 맛없는 걸 먹고 싶어 하냐고 타박을 하여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가 5장 속 라무네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사무쳤다. 딸강딸강 병 속의 구슬과 푸른 청량함이 자꾸 생각나기까지 하니 내일은 마트에 가서 라무네를 하나 사 먹어야겠다.

"나는 철없이 센비키야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이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서 깎아서 대접했지만 이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 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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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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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1주간 내가 사는 강원도는 영하 15도를 찍는 한파가 지속되었다. 추위 탓인가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고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은 두꺼운 자켓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 펭귄처럼 걸어 다닌다. 정말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린다 할 정도로 지겹게 눈이 오는 이번 휴일은 유난히 남극스러웠다’. 비록 나는 남극에 가보진 않았지만 모든 것이 ..()’하고 춥고 펭귄이 주인인 그곳.

 이런 날 남극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인 김금희 작가의 산문집 <나의 폴라일지>를 읽게 되었다.


 책은 총 4 - <, 커리어 그리고 천사들>, <작은 눈사람들의 세상>, <대기의 강>, 그리고 <명명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한겨레의 기자로서 약 한 달 간 남극 세종 기지에서 체류하며 그곳에서 직접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취재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2부의 <식물수업> 부분에서 작가가 식생팀에 합류하여 생소한 식물/이끼류들의 이름과 함께 그 모양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에 반해 시각적 자료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보니 2024 #한겨레S 에 실린 글이 뜬다. 그 글에는 글과 함께 사진들이 실려 있어 내가 다시 식물을 검색하는 번거로움(!)이 조금은 줄어든다 (ㅎㅎㅎ) 그리고! 책의 부록에 사진일지가 실려있다. 놓치지 말 것!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남극에 갑니다.”

그러면 여행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작가는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그것이 만들어낸 문명이 없는 자연 속에서 나는 압도적인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14)”라고 말하며 극지연구소 취재차 그곳에 간다. 해상생존교육과 기초안전교육을 시작으로 인간이 거의없는 땅으로 향하는 준비가 시작된다. 길고 긴 여정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작가는 아주 완전한 행복감에 빠졌다. (44)”.


  남극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그곳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체류자들, 경험모든 것들이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읽으며 가슴 한 켠을 콕콕 찌른 건 환경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TV를 보다 보면 북극곰의 터전을 지켜주세요라고 하면서 후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곤 하는데 환경 위기는 확실하지만 너무 먼 이야기 같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린 온난화의 극적인 진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인간이 무심히 흘리는 작은 쓰레기 하나가 극한의 공간인 남극이라는 곳에서 어떤 도미노현상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문장에 위압감이 느껴졌다.


누구도 남극의 주인이 아니며 국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의 빙원은, 빙산은, 유빙은 국가라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마치 우주의 행성처럼.” (14)


 가능하면 천연소재로 만들어진 옷과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고 자연의 흔적이 아닌 것들은 치워야 한다는 원칙을 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땅도 사실 인간이 발을 내딛기 전에는 남극과 같이 순수한 자연 공간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이 접근하기 어렵고, 설령 갔다 하더라도 나의 규칙을 내려놓고 그곳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 그 곳. 같은 지구에 있지만 다른 행성의 일부가 놓여있는 미지의 세계인 남극은 마치 나에겐 바닷속 용왕 마냥 빙붕의 핵에 살고 있는 펭귄대왕님이 허락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 같다. 그만큼 그 곳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단해보이면서도 게임을 통해 설거지 당번을 정하고 여자 팀원이 늘어나면 화장실 청소를 맡을 사람이 늘어난다고 안도하는 모습에 인간미를 느낀다.


 작가에게 남극이 꿈의 공간이었다면 나에게 그런 곳은 어디일까? 내가 만약 남극에 가게 된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곳을 마주할 수 있을까? , 출국하고 싶다!

"지금은 온난화가 먼일처럼 느껴지겠지만 한번 가시화되면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순식간일 거예요. 바로 몇 년 후일 수도 있어요.
- P89

"어쩌면 내가 남극까지 간 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 잘한 일은 앞으로도 계속 다른 형태의 ‘잘한 일’이 될 것이다. 눈을 감지 않아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대륙의 흰빛, 푸른빛, 살아 있는 펭귄과 고래의 매끈한 검은빛, 그리고 붉은 기지복을 입고 발맞추어 걸어주던 사람들의 빛. 그 모든 것을 품은 채 걷고 있으면 언제든 나는 나의 폴라 일지 속으로 들어갔다가 새로운 마름으로 한 발 걸을 수 있다. 그 재생과 순환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남극이 있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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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여자, 축구 - 슛 한 번에 온 마을이 들썩거리는 화제의 여자 축구팀 이야기
노해원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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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났다.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어울리던 친구들이니까 20년도 넘게 알고 지낸 아이들이다. 고깃집에 앉아 각자 사는 얘기를 하는데 한 친구가 나를 보더니 웃으며 한마디 한다. “우리 고은이~ 새댁인데 너무 몸 관리 안 하는 거 아니야? 너 옛날에 운동 엄청 잘 했잖아, 맨날 달리기도 선수 나가고. 나 졸업앨범에서 너 사진 봤어, 너가 달리기 하는 사진이 스냅으로 찍혀있잖아, 근데 이렇게 살이 찌면 어떡해?”


 그 친구의 말처럼 나는 말도 못하게 살이 쪘다. 오죽하면 내 몸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가 태어나줘야 꽤 보기 좋은 몸이 될 거라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수확하기 직전 쌀의 낟알처럼 가득 차 있는 나의 몸이 꿈꾸는 건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내가 꿈꿔도 되는 건가 하는 것들인데, 그것은 1. 달리기  2. 서핑  3. 물구나무 서기 이다. 괜찮을까? 나는 이미 양 어깨와 한 쪽 무릎을 수술했고 근막 이상으로 등과 목이 좋지 않고 자궁과 눈 한쪽도 큰 수술을 한 전천후 환자인데 말이다.


내면의 적당히 해?!”그래도 괜찮아!”라는 두 가지 자아가 전투를 벌이는 요즘 새로 나온 책 한 권에 대한 소개글을 보았고 귀여운 표지와 글에 이끌려 덜컥 신청해버렸다.

 제목은 <시골, 여자, 축구>, 정말 시골에서 여자들이 축구를 하는 내용을 담은 직관적인 제목의 글이다. 미리 나의 감상을 쓰자면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 글의 작가 노해원 님은 글 속에 나오는 반반FC라는 여자축구팀의 주장이자 세 아이의 엄마이다. 충남 홍성 작은 마을의 강아지 이름을 따서 지은 축구팀에서 조조, 봄봄, 은근, 노지, 민달팽이 코치 등 축구로 똘똘 뭉친 이들의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나는 불야성의 도시 한 가운데에서 살다가 저녁 8시만 되도 상점이 셔터를 내리는 지방으로 이사를 온 지라 아이들을 모두 재운 뒤 어둑하고 고요하기만 한 길을 지나 공을 차기 위해 나가는 느낌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갈수록 각자 인생이 강해지는 요즘 같은 때에 각자 워킹맘, 골드미스, 전업주부, 엄마 등 여자에게만 독특하게 부여되는 이름표를 내려두고 육각형 무늬로 이뤄진 공 하나에 집중하여 달리는 모습이 얼마나 신날지! 허리나 무릎을 다칠까봐 전전긍긍하는 내 물리적인 외형과는 달리 내 머리와 마음은 필드를 달리는 이 여인들에게 푹 빠져들어 이미 축구장을 함께 누비고 있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불필요한 걱정을 달고 사는 내 머리는 말끔히 정리되곤 한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 그렇고 그런 것! 모두 같은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고, 무거운 감정들은 너무나 쉽고 가볍게 풀리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함께 뛰는 선수들 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것도, 상대방과의 과격한 몸싸움에 거친 말이 툭 튀어나오는 것도 모두 이해와 배려를 통해 해결된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 할 것, 잘 못한 일들은 반드시 사과할 것! 단순하지 않은가?


타 축구팀의 요청으로 차출되어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지만 윗선의 행동으로 인해 남은 경기를 떠나며 아무리 좋아하는 축구라고 하더라도 자존심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는 부분을 읽으며 그간 상황에 맞추느라 불편한 감정이 있음에도 꾹꾹 참기만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하지만 자신을 다쳐가면서까지 억지로 맞춰 나갈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축구와 함께 뛰는 사람들, 그리고 면 단위의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잘 풀려 있는 것이 이 책의 큰 매력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중심인물들 모두가 특출 나게 뛰어난 영웅적인 인물이 아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평범한 한 명 한 명이기 때문에 글에 더 정감이 묻어난다.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이는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공을 차는 영희, 철수 엄마들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이런 평범한 듯 독특한 소재의 글이 이 책을 제11회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해본다, 내 몸에서 당장 20~30kg가 쏙 빠져 나와준다면 참 좋겠지만 일단 좋아하는 것을 차근차근 시작해보자고. 작가가 축구를 이야기 한다면 나는 내가 애정하는 줌바부터 해야겠다. 먹는 것도 당장 끊으면 부작용만 날 테니 내 몸에 맞게 조절해야지, 그럼 언젠가 달리기도, 서핑도, 물구나무서기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축구에 대한 마음을 키워 가고 있을 때 마을에 여자 축구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호기심 정도였다. 여전히 나는 애 엄마고,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제대로 된 운동 한번 안하고 살아 왔으니 축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계속 선긋기를 했다. 그런데 그 팀에 3남매, 4남매를 키우는 언니들이 나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소식은 내가 축구를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던 ‘애 엄마’라는 수식어를 깨끗이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속으로 그어 놓은 경계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언니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나갔다."

- P18

"항상 아이들과 함께하던 평소와는 달리 혼자서 고요한 차를 타고 축구를 하러 가는 길은 마치 해방의 터널을 지나는 기분마저 든다. 훈련장에 도착해 두 줄로 서서 운동장을 뛰는 스무 명 남짓한 여자들의 뒤통수를 보면 마음이 벅차다. 흩날리는 머리칼을 보며 ‘이 사람들도 집 밖으로 나오는 길에 나처럼 해방의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을까?’행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축구하는 여자들을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 P52

"운동장에서처럼 우리의 삶도 정확한 내 위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헷갈리고 싶지 않다. 내가 뛰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지켜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뛰어야 할지를 정확히 알아야 힘껏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언젠가 나도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 P84

"축구를 하고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내 안에 경계와 마주할 때마다 자꾸 뒷걸음질 쳤다 .축구 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할 수 없는 이유만 수없이 늘어났다. 한 번도 축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애 키우느라 할 시간과 체력도 없고, 무엇보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축구 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언니들이 축구를 하고, 나처럼 경험도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축구랑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여자들이 모여 달리는 모습을 보며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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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월급을 받고 있나요? - 사람이 성장하는 기업 MYSC의 급여명세서에 담긴 편지
김정태 지음 / 파지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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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나는 회사의 오너(주로 대표이사)가 자신의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기 때문에 그들을 부려먹어도 되는 존재, 그리고 다른 어떤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는 부속품 같은 존재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늘 사람을 귀하게 여겨주고 믿음을 주는 시그널을 계속 보낸다면 근속을 할 가능성도 높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당신은 어떤 월급을 받고 있나요?>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내가 예상했던 내용은 월급의 질적인, 또는 양적인 성장을 위한 자기계발서였다. 하지만 이 책은 생각 이상으로 인간적이다.

이 책은 사회혁신기업인 MYSC의 대표이자 이 책의 저자인 김정태 님이 자신의 직원들에게 급여명세서와 함께 보낸 글을 모아놓은 글이다. 무려 6년이나!!

 

 기업의 성장동력은 기업을 구성하는 인력의 성장과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리더의 역할이 그 성장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급여명세서와 함께 문장 하나하나에 에너지를 쏟아부은 듯한 이 글들을 보면 MYSC라는 기업이 건강한 기업일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밖에 없다.


 꾸준히 회사를 다닌 내 연배의 사람들은 이제 차장급 이상이다. 모두들 리더십을 공부할 때 나는 기업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그 내부를 구성하는 동력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이런 책을 읽으며 제3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 오늘 읽은 이 책을 통해 느낀 나의 감정은 이 한 줄로 정리된다.


이런 분(작가)이 내가 다니는 회사의 오너라면 참 좋겠다!”


 편지 속 문장 구절의 무게감을 놓치지 않은 듯, 좋은 글들이 많았다. MYSC의 직원 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월급쟁이', 그리고 자기성장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추천!!

 

* 파지트 서포터즈로서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여러분이 MYSC를 신뢰하고 믿는 만큼 MYSC 역시 모든 구성원에게 더욱 신뢰를 주는 조직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달도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큰 가치를 가지는 것들의 예는 외국어 실력, 축적된 경험과 인사이트, 성공 경험 등입니다. 조금 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찾아본다면 예쁜 말, 사랑스러운 태도, 헌신적인 리더십, 몰입하는 태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 성장의 마인드셋, 남을 빛내는 겸손 등이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시간이 흘러갈수록, 빠르게 흐를수록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68쪽 <시간의 복리효과> 중) - P68

"우리가 몸담은 영역과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 그리고 우리가 수행하는 업의 본질에는 실력과 운의 요소가 함께 섞여있습니다. 실력(자신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운(자신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며 오늘도 성장과 성숙의 길에 서 있는 사내기업가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118쪽 <운과 실력을 구분하는 것의 유익>) - P118

"insanely curios!(미친듯 호기심을 가져라!) 우리 삶의 주변에, 우리 삶의 상호작용 속엔 너무나 소중한 기획의 실마리들이 존재합니다. 다른 곳에서의 우연한 관찰과 경험을 옮겨 오면 어떤 곳에서는 간절히 기다려온 돌파구가 됩니다." (140쪽 <미친듯이 호기심을 가져라> 중) - P140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그 걸음을 멈추지 않을 때 복리의 마법이 시작됩니다. 오르막에서는 더더욱 겸손함을 내리막에서는 다시금 겸허함을 잊지 않는다면 어느 지점을 통과하더라도 우리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160쪽 <업이든 다운이든> 중)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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