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환상 여행 - 궁궐에 숨은 73가지 동물을 찾아서
유물시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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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처마 끝이나 다리 밑, 굴똑 옆에 있는 동물 조각상과 마주쳤을 것이다. 그 작은 조각상들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면 이 책은 더 없이 흥미로운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경복궁 곳곳에 숨어 있는 100여 마리의 동물들을 따라가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궁궐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각 동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불길한 기운을 막고 궁을 수호하는 '순라군'의 역할을 맡은 상징적 존재로, 그 자리에 놓인 이류를 하나하나 밝혀나가는 여정은 경복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이 책은 '경복궁 동물 순례 지도'라는 이름으로 경복궁의 지도를 수록하여 궁궐의 수문장처럼 경복궁 입구를 지키는 해치부터, 북쪽 끝에 자리한 영추문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동물이 어디에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책의 시작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그 앞을 지키는 '해치'에 관한 이야기로 열리며, 그 자체만으로도 경복궁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네 차례나 다시 세워진 광화문은 조선의 건국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역사 속에서 수차례 사라지고 복원되기를 반복했다. 특히 2023년 10월, 고종 때의 모습을 바탕으로 복원된 월대와 함께 해치 석상의 본래 자리까지 되찾으며, 경복궁의 역사적 공간은 한층 더 풍성해졌다. 


광화문 앞에서 처음 만나는 해치는 위엄 있는 인상과는 달리 가까이 다가가면 익살맞고 친근한 표정을 발견하게 되는 존재다. 선악을 판별하는 상상 속의 동물로, 조선시대에 궁에 들어서는 이들이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다. 오늘날엔 많은 사람들이 해치 옆에서 사진을 남기며 그 곁을 지니지만, 해치가 지닌 싶은 상징성과 역사적 위치는 여전히 경복궁의 문기로서 굳건히 남아 있다.


그리고 해치 외에도 3문 천장에는 봉황, 용마, 거북 같은 동물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놀라울 따름이다. 경복궁을 몇 번이나 갔음에도 이태껏 이 책에 담긴 동물들을 다 보지 못했음이 안타깝게 다가올 정도로 신비로운 동물들이 참 많음이 놀라웠다. 그리고 고개들 들어 보면 보이는 지붕 끝을 장식하는 용의 형상과 '감괘' 문양에 담긴 깊은 의미와 왜 경복궁의 남문에는 물을 상징하는 장식이 필요했는지, 옛사람들이 불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어떤 상상력과 지혜를 발휘했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너무 쏠쏠하다.


책 속 동물들 가운데 특히 인상 깊은 존재는 광화문을 지나 금천 위 영제교를 지키는 수호동물, 바로 '천록'이다. 비늘로 덮인 몸, 이마에 난 뿔, 용의 머리와 말의 몸, 기린의 다리까지. 현실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이 상상 속 동물은 외부의 악운과 침입을 막는 변사의 상징으로, 예로부터 다리나 무덤, 궁궐 입구에 놓이던 존재다. 조선 후기 학자들의 기록을 통해 '천록'이라는 이름이 확인되었고, 그 의미는 '하늘이 내려준 복록'으로 왕의 자리, 곧 정통성과 번영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제교에는 총 네 마리의 천록이 놓여 있는데, 그중 하나는 유독 혀를 날름 내밀고 있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오늘날에는 이 모습을 본떠 '메롱해치'라는 친근한 캐릭터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익살스러운 모습 뒤에는 아픈 역사도 숨어 있다. 일제강점기 경복궁이 훼손되던 시기에 입술이 파손되어 혀가 길게 드러나 보이게 된것이다. 본래는 살짝 혀를 내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을 천록은, 지금은 마치 메롱하듯 익살스럽지만, 오히려 그 천진한 표정 속에서 경복궁이 겪은 시련과 회복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듯하다.


천록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위엄보다는, 오히려 궁궐을 찾는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친근한 첫 인상으로 기억된다. 경복궁의 초입에서 방문객과 처음 마주치는 이 동물은, 궁궐의 문턱을 훌쩍 넘게 해주는 반가운 안내자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경복궁 속 동물들의 이야기들은 단지 과거의 유물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의 궁궐을 넘어 조선의 시간과 상상력이 살아 숨쉬는 공간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유물시선'팀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혹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던 73마리의 동물들을 섬세한 일러스트와 함께 생생하게 되살려 생동감까지 함께 전한다. 움직임과 표정을 제대로 포착해낸 그림들은 각 동물에 담긴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사람들의 바람과 염원들이 어떻게 궁궐의 디테일에 녹아들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복궁의 돌다리, 지붕, 천장 깊숙한 곳까지 이토록 다양한 동물들이 의미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몇 번이고 보았던 경복궁 자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이제 경복궁은 더이상 멀리서 바라보는 유적지가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과 그들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환상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조선의 이상세계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과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가면서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지켜온 시간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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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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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좋아하는 1인인지라 책의 제목에 자연스레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야기'라는 단어가 가진 힘,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지킨다'는 말의 따뜻한 울림은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배가 시켰다. 더욱이 이 책이 영국에서 '국민소설'로 불릴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하니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이야기를 수집하는 청소 도우미,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특별한 이야기로 바뀌어 가는지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모두의 삶이 결국 하나의 소중한 이야기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야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이런 물음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재니스 역시 자신에게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야기 수집가가 되었다. 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청소 도우미 일을 시작한 이후로 사람들은 자연스레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고, 어느 새 그녀는 그 이야기들을 조용히 모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재니스는 사람들이 쉽게 말하지 않는 깊은 이야기를 조용히 받아주는 그릇과 같은 존재다. 그녀가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몸짓은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신호이자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지켜줄게요'라는 무언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으는 재니스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비어 있는 채로 남아 있다. 낮에는 남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와 남편의 잔소리를 마주할 때면 그녀는 자신이 모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되새기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재니스에게 이야기를 모으는 일은 그저 취미가 아니라 그녀가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이 책은 재니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는 방식으로 서서히 그 세계를 확장해나간다. 단순히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는 듯한 이야기지만 그녀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교차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풍성하고 깊어진다. 사실 재니스는 캠브리지에서도 손꼽히는 유능한 청소도우미다. 그녀가 청소를 맡은 집들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거나 단정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삶의 이야기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세계적인 테너 가수 조디의 집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의 내밀한 삶으로 나아간다. 자살한 남편을 남기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피오나, 언제나 자기밖에 모르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는 남편 마이크,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그래, 그래, 그래'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그래그래그래부인과 그녀의 남편. 심지어 말을 하는 듯한 폭스테리어 '테키우스'까지. 재니스가 만나는 인물은 하나같이 각자의 상처와 사연을 지닌채 그녀에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처 입은 피오나의 아들 애덤과 그래그래 부인의 시어머니이자 괴팍해 보이는 노부인 등 주변 인물들이 더해질 때마다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재니스가 가장 깊이 마음을 쓰게 되는 인물인 피오나의 아들 애덤과 그래그래그부인의 시어머니인 B 부인이며, 이들의 이야기는 재니스와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이야기도 더욱 깊어진다. 우선 애덤의 이야기로 돌아와, 피오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재니스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아차림을 깨닫고 애덤의 겪었을 상처의 깊이를 더욱 깊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재니스는 피오나에게 애덤과 함께 테키우스와 산책하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결정들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인 재니스에게는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심스레 애덤의 곁에 다가가 연결되게 된 재니스와 애덤의 작은 연결은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조용한 연대와 치유의 시작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처음엔 괴팍해보였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B 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니스는 그동안 외면하기만 했던 마음 깊숙이 숨겨둔 자신의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눈물을 흐리는 것으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들이 서서히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편 마이크와의 결별은 재니스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니스는 그동안 거리를 두었던 아들과 동생과의 오해를 풀고 진심을 나누며,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 보일 수 잇는 용기를 얻게 된다. 결국 이 책은 남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마침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재니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과 따듯한 위로를 선사한다. 과연 재니스는 어떠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B부인과 재니스는 가까워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써내려갈 새로운 이야기는 어떠한 모습일까? 그 답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이야기를 수집하는 청소도우미 재니스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성장소설이다. 평범한 삶 속에서도 비범함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에게난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으며, 인생은 그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임을 깨닫게 만든다. 삶의 소소한 조각들, 사람들의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특별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그 이야기들로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니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독자인 우리에게도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를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잊고 지냈던 소중한 기억들과 마주하게 될 듯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조금 지키고 내 이야기를 잃어버린 듯한 순간에, 혹은 누군가의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운 날에 읽으면 더욱 깊은 위로가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같이 삶의 의미와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책에서 조용하지만 따듯한 감동을 발견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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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철학자의 말 - 내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빛나는 철학의 문장들
김종원 지음 / 윌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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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인 '내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빛나는 철학의 문장들'이라는 표현에 마음이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혼란과 질문들, 예를 들어 친구와의 갈등이나 어른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말, 마음이 힘들 때 느껴지는 막막함 등과 같은 그 모든 순간에 철학자의 말들이 따뜻한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철학책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철학자들의 깊은 생각을 친절하게 섬세하게 풀어낸 이 책은, 아이들에게 철학이 멀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삶이 닿아 있는 친근한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만난 작가의 말을 읽는 순간, 이 책이 지금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책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는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꼭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만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며 스스로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철학적 태도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누구도 너의 선택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하며, 철학자들 역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단단한 주체로 성장해가는 데 꼭 필요한 용기를 심어준다.


또 하나는 예쁜 말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고, 결국 그 말은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메시지다. '꽃을 든 손에는 향기가 머무르듯, 예쁜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향기가 머문다'는 표현처럼, 말 한마디의 힘이 사람 사이의 온기를 만들고 마음을 회복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끼게 된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지친 날이 찾아왔을 때 이 책을 펼쳐보라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좋은 글은 지친 마음을 쉬게 해주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철학이 전해주는 깊은 울림과도 같다.


이 책은 아이들이 철학을 어렵지 않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먼저 철학자의 말을 소개한 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체 쉽게 풀어 설명하고 그 말이 남긴 철학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간단히 소개하여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고민이나 상황에 그 철학자의 말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마지막에 제시되는 '자기 확언'을 통해 아이들이 단지 글을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며 철학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짧지만 단단한 문장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지탱해주는 단단한 언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책의 아랫부분이나 노트에 필사를 해도 좋을 만큼 책에 실린 문장에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느껴진다. 이렇게 철학이 멀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는 따뜻한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부드럽고도 따뜻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여러 문장에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속도가 다른 건 걱정할 게 아니라, 오히려 기뻐할 일입니다. 나만의 길을 간다는 증거니까요. 나는 다른 속도로 가는 나를 믿고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싶다. 우리는 종종 모든 아이가 같은 길, 같은 속도로 나아가야 함을 강요하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무거운 억압과 강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모두가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가야만 성공하거나 행복해지는 것이 아님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따뜻한 철학의 목소리가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부디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속도를 존중하고,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 책은 단순히 똑똑한 아이가 아니라, 단단한 내면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기 위한 첫걸음을 제시하는 책이다.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힘,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태도. 이 모든 것이 철학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말하고 있다. 오늘의 아이들이 반드시 만나야할 진짜 공부가 있다면, 바로 이 책에 담긴 철학의 문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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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라는 세계 -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 것인가
켄 베인 지음, 오수원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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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소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한 책이다. 평생을 두고 되풀이하게 되는 이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가장 본질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대학을 거쳐 사회로 나아간느 동안,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아붓는다. 그러나 과연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세계 최고의 교수법 전문가이자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크 센델 교수를 비롯한 세계 석학들이 '멘토'로 인정하는 켄 바인이 30년에 걸쳐 연구한 배움의 본질을 바탕으로, 공부란 성적이나 스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깊이 있는 탐색임을 일깨워준다.


이 책에는 12년 만의 재출간을 축하하며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서문 속 저자의 말은 마음에 깊이 남는다. 그는 창의적인 삶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한국 독자들 덕분에 이 책의 논의가 더욱 풍부해졌고, 그들과의 소통이 바로 배움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창의적인 삶'이란 단지 기존의 지식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배움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설계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켄 베인은 이 책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전략적 학습자'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만 골라 학습하는 사람이다. 두번째는 '피상적 학습자'로, 실패를 두려워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버텨내는 데 집중한다. 마지막으로 '심층적 학습자'는 새로운 지식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배운 내용과 자기 삶을 연결하며 의미를 찾아나간다. 저자는 30년간 심층적 학습자들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야말로 진정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대하는 태도와 노력에 따라 확장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이 믿음이야말로, 공부를 삶의 도구가 아닌 삶 자체로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심층적 학습자들이 스스로에게 공부를 위한 힘과 동기를 부여하는 관점을 지니게 된 이유는 이들이 가지는 특징을 보면 알 수 있다. 심층적 학습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세 가지 핵심 특징이 있다. 첫째는 ‘호기심의 재발견’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느꼈던 순수한 궁금증을 다시 되살려, 세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배움 자체에서 기쁨을 느낀다.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을 접할 때마다 그것의 의미를 성찰하고, 다른 주제와 연결해 확장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지속적인 탐구는 그들의 삶을 더욱 흥미롭고 의미 있게 만든다.


둘째는 ‘창의성’이다. 심층적 학습자들은 아이디어와 통찰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에서 큰 동기를 얻는다. 그들은 결과보다 배움의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에 집중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창의적 사고를 적극 활용한다. 창의력은 그들에게 단순히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모든 인간은 유일무이하다’는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다. 타인의 고유한 시각과 통찰을 존중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 역시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얻는다. 다른 사람의 성취에서 감동과 배움을 얻고, 이를 자신만의 성장으로 전환할 줄 아는 능력이 이들에게는 자연스럽다.


이러한 심층적 학습자들의 특징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공부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호기심을 불태우고 창의성을 발휘하며 타인의 경험을 존중하는 과정일 때 비로소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배움은 목적이 아닌,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몸소 증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메시지는 '실패를 대하는 태도'였다. 에이미 상을 수상한 유명 방송인 스티븐 콜베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실패가 단순한 좌절이 아닌, 오히려 우리를 해방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티븐은 실패에 심각하게 몰입하지 않는 태도를 지녔고, 그 덕분에 성적이나 평가에 휘둘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를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피드백으로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학습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움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우리 모두가 공부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심층적 학습자들이 지닌 태도의 본질은 결국 '배움은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실패를 끌어안는 삶의 방식'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만든다.


이 책은 단순히 더 나은 성적을 위한 공부법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공부란 무엇인가’, ‘왜 배우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배움이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깊은 통찰을 전해준다. 특히 저자가 100여 명의 삶을 통해 밝혀낸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배움의 태도는,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적과 결과만을 좇는 공부에 지쳤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줄 것이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받아들이며, 호기심과 창의성을 삶으로 확장하는 공부,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성장시키는 공부임을 이 책은 강하게 주장한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왜, 어떻게 배우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당신에게 가장 든든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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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김준태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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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강한 끌림을 느꼈다.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이 처럼 간절하고 치열한 문장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궁금했다.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이야기'쯤으로 여겼지만 책을 읽다보니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왕이 던진 책문과 신하가 응답한 대책을 바탕으로, 위기 속 나라를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사유와 실천적 지혜를 담고 있다.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엇이 옳고 어떤 길이 바른지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몇백 년 전의 문답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분명하고 실제적인 해답을 제시해준다는 점이 놀라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이 과거 조선의 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에 대한 치열한 질문과 답면이 마치 '기출문제집'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던져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인들의 지혜를 빌려 오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 500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왕과 신하 간의 치열한 문답을 다루고 있다. 태종과 변개량, 세종과 신숙주, 연산군과 이목, 중종과 궈별, 선조와 조희일, 정조와 정약용, 철용과 김윤식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리더와 참모들이 이 나라의 앞날을 고민하며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 편마다 주제는 다르지만, 이 모든 문답을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바로 '수양'이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백성을 편안하기 위해, 그리고 군주의 마음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수양'이다. 학문에 힘쓰고 마음을 다스리며, 처음과 끝을 한결같게 하려면 수양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고 갈등을 조율하며,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옳은 충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수양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심지어 좋은 인재를 알아보는 일, 공정한 법 집행, 관계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판단하는 일까지도 모두 수양에서 비롯된다는 말에서 과연 그 시대를 움직였던 사상과 철학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변수가 많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중심을 잡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마음의 근력'이 더욱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수양의 본질과 호용을, 역사 속 실제 사례를 통해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설득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내면의 힘'이르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이 책은 태종과 그의 질문에 답한 변계량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태종은 가장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옛날 성군들은 어떻게 그처럼 어진 정치를 펼칠 수 있었는지, 지금 그러한 정치를 본받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고민이다. 이에 대해 변계량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때에 알맞아야 합니다."라며 '중도'와 '시의'를 강조하였다.


그가 말하는 '중도'는 단순한 중요이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하는 것도 아니며, 무조건 고전의 원칙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다. 그는 성현의 정신, 즉 이상과 원칙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이 현실 속에서 유연하게 구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철학 있는 실용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변계량은 "사의를 논하면서 세상해 아무해 중에 미치지 못하면 앝은 곳으로 흐를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이 원칙 없는 실용이 오히려 세상을 그르 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답은 단순히 조선 초기의 사상적 논의로 그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정치와 사회에도 유효한 질문과 답이다. 이상과 현실, 원칙과 실용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를 수 있는가? 변계량은 그 해답을 '근본을 잃지 않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에서 찾았다. 이는 바로 우리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갖춰야 할 리더쉽의 덕목이자,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정조와 정약용의 문답은 실용성과 현실감이라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정조는 당시 조선의 문제로, 신하들의 전문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어떻게 하면 인재를 효율적으로 등용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탁월한 인사제도 개혁안을 제시한다. 하급 관리에게는 다양한 직무 경험을 통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상급 관리에게는 임기를 길게 부여해 행정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인사의 기술적 운영을 넘어, 소외되거나 사장되는 인재가 없도록 하자는 제도적 철학이 담긴 대책이다.


정약용의 제안은 오늘날의 인사 행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부처의 장관이 2년 이상 재임하는 일이 드물고, 공공 영역에서 순환보직으로 인해 전문성이 축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중요한 정책과 행정이 단절되고, 조직의 신뢰도마저 흔들릴 수 있다. 더불어 그는 관행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출신 성분, 지위, 지역을 기준 삼아 인재를 제한하는 태도야말로 진짜 ‘인재 부족’을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조의 책문과 정약용의 대책은 단순히 당대의 행정 개혁안을 넘어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인재를 볼 줄 아는 눈'이며, 그 눈은 편견 없이, 차별 없이 열려 있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바로 이 당연함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쓸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고전적 문답은 오히려 더 명료하게 현재를 비춘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만은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담긴 문답은 왕도 신하도 모두 깊은 책임감과 신중함으로 고민한 끝에 던지고 응답한 질문과 답이다. 이들은 개인의 안위나 체면보다 나라의 앞날을 먼저 생각했고,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며 이상과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였다. 그 치열한 고민과 통찰은 몇백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유효하게 다가온다. 결국 이 책은 과거의 책문을 빌려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이 시대, 당신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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