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대학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7
김동식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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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대학교'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평범한 대학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연구하는 대학이라니. 제목만으로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책 띠지에 적힌 "그런 예감이 드네요. 저의 작가 인생 내내 '악마'란 존재를 주구장창 써먹을 것 같은 예감이요. 그러면 그게 악마와 계약한 게 아니겠습니까"라는 김동식 작가의 유쾌한 멘트는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높였다. 이미 <회색인간> 등 여러 작품에서 신박한 설정과 인간 내면을 꿰뚫는 통찰력, 그리고 매번 예상을 뒤엎는 반전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 김동식 작가였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레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책에서는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인간의 본성과 그 이면을 또 어떤 방식으로 그려낼지 책을 읽기 전부터 설레임을 느꼈다.


이야기는 두꺼운 전공 서적을 품에 안은 한 악마가 다급히 ‘악마대학교’ 강의실로 들어서며 시작된다. 늦게 들어온 악마 ‘벨’은 학구열에 불타는(실제로 불꽃이 이는) 동료 악마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앉지만, 교수 악마는 그를 힐끔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곧이어 매해 6월에 열리는 ‘창의융합 경진대회’의 사전 발표가 시작되고, 벨은 ‘영생’을 주제로 시간 역재생기가 있다는 소문을 인간들에게 퍼뜨려 그 욕망을 자극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러나 교수는 “도대체 그게 뭔가? 그건 그냥 장난에 불과하잖아? 자네는 혹시 요정인가 악마인가?”라며 벨의 생각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자네 같은 조무래기”가 다룰 주제가 아니라고 혹평한다. 벨은 창피함과 낙담을 안고 ‘인간 욕망 동아리’ 방으로 향한다.


이 소설의 무대인 ‘창의융합 경진대회’는 “어떻게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것인가”를 겨루는 지옥의 명실상부한 최대 행사다. 이 대회에서 주목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지옥 대기업 스카우트 여부가 갈릴 만큼 악마들에겐 절체절명의 기회다. 동아리방에서 벨을 맞는 친구 아블로와 비델은 각자 준비한 ‘사랑’과 ‘도박’을 소재로 인간이 파멸하는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며 그를 위로한다. 두 친구의 아이디어는 악마다운 치밀함과 냉혹함이 묻어나, 벨의 아이디어는 더욱 형편없어 보이기만 한다. 발표일은 점점 다가오고, 벨은 불안과 압박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경쟁에 뛰어들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이렇듯 이 소설은 “지옥에도 악마대학교가 있다면?”이라는 단순한 상상에서 출발하지만, 악마들도 학점을 따지고 취업을 걱정하며, 서로의 ‘악마적인 수법’을 경쟁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의 치열한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절묘하게 드러내며 이야기 속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벨은 친구들에게 마력을 빌려 자신의 ‘영생’ 시뮬레이션을 실연해보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벨, 너는 ‘계약의 기본 1’ 수업을 듣지 않았나? 인간과 계약한 내용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걸 배웠을 텐데,”라며 계약의 원칙을 어긴 점을 꼼꼼히 짚고, “네 수법은 너무 한정적이고, 그 인간이 특수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평가도 이어진다. 벨은 친구들의 지적에 쉽게 반박하지 못하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장면에서 악마들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계약의 기본’ 같은 수칙이 있다는 설정이 무척 신박하게 다가왔다. 인간을 다루는 데 있어 규칙과 원칙을 강조하는 악마들의 모습이 유쾌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느껴졌고, 김동식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디테일이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하여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과연 벨은 자신만의 색다른 악마적 수법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의 좌충우돌 도전과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책을 직접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이 소설에는 김동식 작가 특유의 쉽고 담백한 문장, 그러나 그 안에 감춰진 날카로운 질문들은 강렬하게 살아 있다. 무엇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진짜 파멸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저자는 이야기 속 악마의 시선으로 오히려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악마대학교의 신입생에게 발행되는 ‘악마가 지켜야 할 규칙’ 세 가지다. ‘악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악마는 시간 약속을 엄수한다’, 그리고 ‘6월 창의융합 경진대회 발표를 앞두고 선배 악마들이 예민해질 수 있으니 되도록 자극하지 않는다’는 이 유쾌하면서도 신선한 설정이, 오히려 인간 사회와 닮아 있어 한 번 더 웃음을 짓게 한다. 악마라는 존재조차 결코 규칙을 어기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의 선택과 의지를 전적으로 존중한다는 점이 더욱 인상 깊다.


그리고 "악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욕망에 욕망으로 답할 뿐”이라는 구절은,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임을 깨닫게 만든다. 악마조차 한발짝 물러서서 인간의 가능성과 어리석음, 그리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선함까지 지켜보는 그 시선이 오히려 더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영생’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인간이 스스로 반복의 덫에 갇히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끝없는 욕망과도 맞닿아 있다. 저자는 결코 정답을 내리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하며, 어떤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중편소설이라는 새로운 틀 안에서도 김동식 작가는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았다. 일상에서 포착한 작은 아이디어와 세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냄으로써, 김동식 작가만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그렇기에 다음 작품에는 또 어떤 매력적인 세계와 캐릭터, 그리고 어떤 질문을 들고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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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사피엔스
해도연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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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인류가 모두 사라진 먼 미래, 오직 한 사람만이 깨어난다는 설정은 책을 읽자마자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27543년이라는 아득히 먼 미래, 그리고 인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폐허의 행성에서 홀로 존재하게 된 '마지막 사피엔스'인 주인공 에리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인류와 문명,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된다.


이야기는 주인공 에리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낯선 캡슐 안에서 눈을 뜬 에리카는 창밖에 펼쳐진 풍경이 자신이 기억하는 지구와은 전혀 다름을 깨닫게 당황한다. 어디인지, 언제인지 조차 알 수 없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에리카는 우연히 한 장의 오래된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속에는 자신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여자가 함께 웃고 있다. 그리고 사진 뒷면에는 '26세기, 밝은 미래에서 다시 만나'라는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가 적혀 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던 에리카는 곧 캡슐의 시간을 표시하는 장치를 발견하게 되고, 그제야 자신이 27543년에 깨어났음을 깨닫게 된다. 사진 속 약속했던 미래에서 무려 25000년이나 흐른 시점, 인류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지구에서 에리카는 홀로 방주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에리카는 또 하나의 캡슐 속에서 생명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함께 미래를 기약했을 동료일 수도 있었던 사람이 싸늘한 주검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에리카에게 절망적인 현실을 각인시킨다. 그 순간 터져나오는 에리카의 절규는 인류의 문명이 끝나버린 세상에서 홀로 남은 자가 느끼는 고독과 공포를 고스란히 느끼게 만든다.


이 후 소설은 인류 문명이 멸망한 27543년의 지구에서 홀로 깨어난 마지막 인간, 에리카의 고독한 생존과 진실 탐색의 여정을 그린다. 더 이상 살기 힘들어진 지구를 떠나기 위해 26세기 인류는 냉동 수면에 들어갔고, 일정 시점이 되면 방주가 열려 인류가 다시 깨어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방주는 열리지 않았고, 에리카는 약 2만 5천 년이 지난 후에야 홀로 깨어난 것이다. 그녀는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다른 생존자를 찾으려 노력하며, ‘구원’이라는 단서를 비롯한 과거의 흔적들을 통해 진실을 추적한다.


시간이 흐르며 지구의 숲속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에리카는 조랑말과 코끼리를 닮은 새로운 생명체 ‘켄티펀트’를 마주한다. 이들 모두는 귀에 귀걸이를 하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귀걸이가 없는 어린 개체와 유대감을 느낀 에리카는 그를 ‘켄티’라 부르며 친구가 된다. 에리카와 켄티는 함께 방주를 향해 여정을 이어가던 중, 그들이 마주한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이야기가 흘러 갈수록 더 흥미진진해지는 에리카의 여정과 신박하다 못해 기괴한 존재들은 과연 에리카가 마주한 진실이 무엇일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에리카의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인류의 종말 이후에도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깊은 질문을 남긴다. 에리카의 여정은 단순한 생존의 기록을 넘어, 극한의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의지와 남겨진 자로서의 책임감을 조명한다. 우리는 에리카가 마주한 끝없는 시간과 황폐한 세계를 함께 거닐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은 지구에 살아남은 존재가 반드시 인류이어야만 한다는 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에리카가 켄티펀트와의 유대, 그리고 새로운 지성체와의 만남을 통해 보여주는 여정은 ‘인간’이라는 범주의 한계를 넘어, 존재와 공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며, 오히려 인간의 외로움과 책임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멸망한 지구에 홀로 남은 에리카의 존재는, 끝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 가는지, 그리고 그 의미를 붙들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에리카의 외로운 발걸음을 따라가며,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끝까지 되새기게 한다. 마지막까지 이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에리카의 여정이 남긴 깊은 울림과 함께,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그 다양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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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당 산냥이 - 제2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저학년) 첫 읽기책 18
박보영 지음, 김민우 그림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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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 속 사랑스러운 산냥이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읽게 된 책이다. 동그란 눈망울의 산냥이와 호호당에 앉아 웃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 책이 과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실수투성이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간느 산냥이와 그런 산냥이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호호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담아내고 있다. 제2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화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 책은 유쾌하고 따뜻한 소동극이다. 천방지축에 에너지가 넘치는 고양이 산냥이는 미숙하지만 정많고,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모습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책은 신비로운 약초가 자라는 호약산과 호약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작고 허름한 약초방인 호호방,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산군 호호 할멈과 별난 조수 산냥이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푸릇한 기운이 가득한 초여름의 호약산의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 펼쳐진다. 평소엔 새소리만 들리던 호약산 입구가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바로 <백세 건강>이라는 영상 때문이다. 어떤 약초꾼이 호약산을 자랑하는 영상이었는데 과연 이 약초꾼은 누구이길래 이러한 영상을 제작한 것일까?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수가 치솟고 삽시간에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영상 속 신비의 약초가 자라는 호약산이라는 말에 혹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산으로 찾아오고, 사람들은 모두 호약산 꼭대기에 있다는 전설의 약초방 호호당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보게 되는 건 자욱한 안개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호약산의 산군이자 호호다으이 주인인 호호 할멈이 자리를 잡은 이후, 산꼭대기까지 오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이 신비로운 설정은 초반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며, 과연 호호당과 산냥이가 어떤 사건을 겪게 될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호호당으로 장면이 전환되어, 허름한 미닫이문이 '휙'하고 거칠게 열리며, 네 발에 흰 양말을 신은 듯한 귀여운 고양이 산냥이가 "호호 할멈!"이라고 외치며 등장한다. 몸집은 작지만 힘만큼은 장사인 산냥이는 문을 너무 세게 열었다가 호호 할멈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그런데 오늘 따라 산냥이는 유독 기분이 좋지 않다. 왜나면 호약산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 산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지 수상하다며 투덜대는 산냥이. 그러자 호호 할멈은은 불같이 화를 내며 산냥이에게 사람들 앞에선 절대 말조심 하라며 호통친다. 고양이가 말을 한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람들 앞에선 꼭 고양이 울음소리만 내던지, 아예 입을 닫든지 둘 중 하나만 하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호호 할멈. 이 장면만 봐도 왠지 산냥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렇듯 호호 할멈을 도와 약초방을 꾸려 나가는 매일 두 앞발이 초록 풀물이 들 정도로 열심히 약초를 캐러 다닌다. 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덤벙대는 탓에 매번 실수를 저지르고, 그때마다 호호 할멈에게 꾸지람을 듣기 일쑤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좋아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몫을 다하려는 산냥이의 모습은 서툴지만 진심 어린 용기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리 호약산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틈을 타 약초를 노리는 음흉한 너구리 '너굴 아재'까지 나타나며 사건은 점점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산냥이는 위기의 호호당을 지켜낼 수 있을까? 산냥이와 호호 할멈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호호당 산냥이>는 장난기 많고 엉뚱한 고양이 산냥이가 신비한 약초가 가득한 호약산을 지키기 위해 펼치는 유쾌한 소동을 담은 작품이다. 말썽꾸러기지만 마음만은 진심인 산냥이의 성장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지고, 호호 할멈과의 깊은 유대는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하늘다람쥐 오람이, 너굴 아재 등 개성 있는 동물 캐릭터들이 이야기에 활기를 더하며, 마을로 향한 산냥이의 첫 심부름과 새로운 친구 ‘송이’와의 만남은 어린이에게 환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산냥이는 실수투성이지만, 그 안에서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독자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든다. 특히 호호 할멈의 꾸짖음 없는 사랑과 기다림은 아이들이 세상과 마주할 때 필요한 어른의 존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결국 산냥이를 위한 ‘보물 1호’가 과거 산냥이가 정성껏 따다 준 깻잎이었다는 사실은, 사랑이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야기를 따뜻하게 마무리한다. 이 책은 사랑 속에서 마음껏 실수하며 성장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안의 산냥이를 발견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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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 부모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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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삶의 과정 속에서 부모든 가족이든 떠나보내는 일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 만큼, 그 이별에 대한 준비는 오히려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그런 현실 앞에 선 우리에게 담담하지만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미움받을 용기>로 잘 알려진 아들러 심리학자의 권위자 기시미 이치로는 오랜 시간 부모를 간병하며 겪은 돌봄와 상실의 경험을 통해 이 책을 썼다. 단순한 감상이나 추억의 회상이 아니라, 실제로 부모의 마지막을 함께한 이로서 마주한 감정의 파도, 일상의 무게, 죽음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철학적 통찰과 함께 풀어낸다. 부모도, 나도, 나이 들어가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이 여정을 준비하고 함께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지를 깨닫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아직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머물며 부모님의 노화를 실감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곤 한다. 그러나 어영부영하는 사이 부모님은 조금씩 늙어가고, 기억은 희미해지며,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저자는 그 순간을 준비하지 못하면 부모님의 현실을 외면하게 되고, 결국은 후회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준비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님이 아직 젊고 건강할 때, ‘부모님이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아니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미리 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단지 간병의 기술이나 제도적인 문제를 넘어서,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다. 특히 부모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라온 이들이라면, 이별의 순간까지 그 사랑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본인이 직접 겪은 간병의 시간과 수많은 감정의 파동을 숨김없이 털어놓으며, 자식으로서 무력함이나 슬픔을 받아들이는 용기에 대해 말한다. 때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며, 그 인정에서부터 진짜 돌봄이 시작된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용기’이다. 저자는 부모를 돌보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섬세하게 짚어내며, 무력감과 죄책감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으로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법을 이야기한다. 간병 과정에서 겪은 갈등과 후회, 그리고 회복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저자의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살아오다 꿈속에서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상실을 치유하는 인간적인 과정 그 자체다. 그리고 꽃이 피지 않더라도 물을 주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돌봤다는 일화는, 부모의 질병이나 노쇠함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저자는 부모와의 관계 회복에 있어서도 중요한 통찰을 전한다. 과거에 갈등이 있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간병을 통해 다시 쌓아가는 모습은, 돌봄이 단지 ‘의무’가 아닌 ‘관계의 재형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존경’의 의미를 되새긴다. 부모를 이상화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부모님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존재 자체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일깨운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가 부모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해준다. 간병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위로이자 용기, 그리고 실천적인 지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실용적인 조언과 함께 따뜻한 위로도 함께 건넨다. 부모님이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고, 자주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주어야 한다는 부분은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부모님이 자신이 가족의 일원으로 의미 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존경이자 사랑이라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기쁨은 반드시 존재하며,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소중한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부모님을 더 잘 돌보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만, 완벽한 돌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기는 한 문장, “부모님 곁에 있는 것, 그 자체로 의미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는, 그 어떤 말보다도 진한 위로로 다가온다.


결국 부모를 떠나보내는 여정은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인생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는 그 여정에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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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도 설계하는 시대가 온다 - AI와 바이오 혁명이 바꾸는 노화의 미래
박상철.권순용.강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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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단계이지만,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진보는 전례 없는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전환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들은 노화를 단지 쇠퇴와 퇴보가 아니라 인간이 직접 설계하고 조립할 수 있는 미래로 바라본다. 유전체 분석과 줄기세포 치료, 인공지능 기반의 예측 의료, 노화세포를 겨냥한 신약 등 혁신적인 기술이 인간의 생물학적 시계를 다시 쓰고 있으며, 이 책은 그러한 최첨단 과학이 우리의 삶과 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오래 사는 방법을 넘어 존엄과 자율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의미를 함께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현대 의학은 이제 단순히 수명을 연장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간답게 오래 사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삶의 길이만큼이나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노화 연구는 생명의 마지막까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최소한의 생명 조건이 무엇인지 명확히 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생명의 본질적 기능을 정의하고, 초고령 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되고 있다. 동시에 인류 수명의 궁극적 한계를 탐구하며 이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모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에 새로운 해답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AI와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융합이다. 특히 양자 컴퓨팅과 딥러닝 기술은 기존 컴퓨터가 처리하기 어려웠던 방대한 생체 데이터와 분자 간의 상호작용을 신속히 분석할 수 있게 만들어, 맞춤형 치료와 정밀의료 시대의 도래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단지 노화 속도를 늦추는 것을 넘어, 질병 예방과 치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우리는 AI가 이끄는 본격적인 노화 경영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 책은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결합을 통해 노화를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관리하는 '컨피던트 에이징(Confident Aging)'의 시대를 열었다고 강조한다. 과거에는 노화가 피할 수 없는 자연적 현상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AI와 빅데이터 분석으로 노화의 속도를 예측하고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나이 드는 삶이 중요한 목표로 자리 잡으며, 예방 의료와 건강 모니터링을 통해 개인 맞춤형 의료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 책은 AI가 질병 진단의 역할을 넘어, 생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노화의 진행 경로를 정확히 예측하고 관리하는 혁신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나노 센서와 로봇 기술이 세포 수준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알파폴드 같은 첨단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이 신약 개발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앞당기고 있다. 이러한 혁신은 의료와 바이오 산업의 전반적인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며,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기술적 진보에 그치지 않고, 존엄하고 자신감 있게 나이 드는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과 현실적인 전략을 함께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본다.


이 책에서 소개한 다양한 첨단 기술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엑소스켈레톤이다. 의료용 엑소스켈레톤은 노화를 더 이상 두려움이나 쇠퇴가 아닌, 창조적 재구성의 기회로 바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미 의료용 엑소스켈레톤 시장은 단순한 기술 개발 단계를 넘어 글로벌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 무대로 변하고 있으며, 특히 신경 인터페이스 기술과의 결합이 주목받고 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통해 사용자의 뇌 신호를 직접 읽어 움직임을 제어하는 이 기술은, 완전 마비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을 열어줄 획기적인 혁신으로 평가된다.


물론 엑소스켈레톤 기술이 본격적인 실용화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비용, 사용 편의성, 장기적인 안정성 및 효과 검증과 같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로봇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서 엑소스켈레톤 분야에서도 선두주자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지적하며, 기술의 미래가 매우 밝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결국 엑소스켈레톤은 기술이 단순히 노화를 늦추는 수준을 넘어, 삶의 질과 인간 존엄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구체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기술 발전이 단지 건강 수명의 연장을 넘어 삶의 방식과 사회적 역할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특히 줄기세포 재생, BCI, 엑소스켈레톤과 같은 첨단 기술이 고령자에게 자율성과 능동성을 제공하여, 노년층이 사회적 짐이 아닌 성장과 혁신의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술 발전에 대한 무조건적 낙관이나 비관을 경계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술 발전과 윤리적 기준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생물학적 불평등, 데이터 접근성과 통제권 같은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가 기술의 방향뿐 아니라 그 활용의 기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임을 분명히 한다.


또한 책은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동시에 디지털 친화적인 세대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에 주목한다. ‘K-시니어’라는 독특한 실험 집단이 웨어러블, 생체 임플란트, AR/VR 등의 기술을 통해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활약하는 모습을 생생히 전달하며, 한국형 고령화 모델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노화를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쇠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윤리를 결합하여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통찰을 제공하는 데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노화에 대한 개념과 대응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임을 이 책은 명확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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