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더 재밌는 암호의 세계 - 고대에서 현대까지 역사를 뒤흔든 암호의 모든 것 지식 벽돌
박영수 지음 / 초봄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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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에 대해 알고 싶어 읽게 된 책이다. 사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수많은 암호와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여는 비밀번호부터, 폰뱅킹, 컴퓨터 로그인, 심지어 현관문을 여는 도어락의 비밀번호까지.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암호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라 해도 무방할 듯 싶다. 하지만 암호는 단지 현대 기술의 산물인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며, 암호의 기원과 역사 속에서 암호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담아내고 있따. 고대부터 현대까지, 암호가 단순한 언어유희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략적 도구로 변모하는 과정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다. 그렇게 이 책은 암호의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을 다루며, 암호 해독의 기본 개념부터 현대의 첨단 암호 기술까지 폭넓게 탐구한다. 또한, 역사 속에서 암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담아내어 책 속에 폭 빠져들게 만든다.


암호의 역사는 이집트 나일강 변에 있는 미네 쿠프란 마을에서 시작된다. 약 4천여 년 전, 한 문필가가 통치자의 일생을 기록하기 위해 석판에 상형문자를 새겼는데, 문장의 위엄과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환자(은유적 단어 대치)를 사용하면서 암호의 시초가 되었다. 이처럼 암호는 고대부터 문서를 보호하고 의미를 은폐하기 위해 등장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 책은 이러한 암호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내었다.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암호 기술 중 가장 대표적인 예로 스파르타의 ‘스키테일 암호’를 들 수 있다. 기원전 400년경, 스파르타 군사 사령관들이 사용했던 이 암호는 일정 굵기의 원통(스키테일)에 양피지를 나선형으로 감고 그 위에 메시지를 적는 방식이었다. 양피지를 펼치면 글자가 뒤섞여 내용을 알 수 없지만, 같은 크기의 원통에 감으면 원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암호 기법이었다. 그리고 고대 암호는 단순히 문자를 치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보를 숨기는 기술도 포함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스파르타의 데마라토스가 페르시아 침략 계획을 나무판에 새기고 밀랍으로 덮어 전달한 경우가 있다. 이는 현대 암호학에서 '스테가노그래피'로 불리는 개념으로, 정보 은닉의 초기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암호의 기원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암호의 변천사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초창기 암호는 문자의 위치를 바꾸거나 동일한 문자 집합을 유지하면서 배열을 달리하는 '전치 암호' 형태로 발전했고, 이후 전쟁과 권력 다툼 속에서 더 복잡하고 치밀한 암호 체계로 진화했다. 암호는 단순한 비밀 기록을 넘어서 인류 역사와 문명에 깊이 관여하며 시대와 함께 변화해 온 것이라니 너무나 흥미롭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2장에 실린 유명인과 암호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부분은 암호가 역사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5세의 딸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어린 나이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갔다. 프랑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메리는 남편 프랑수아의 요절로 과부가 되었고, 이후 잉글랜드로 피신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견제로 18년간 감옥에 갇힌 채 세월을 보냈다.


감옥에서 탈출을 꿈꾸던 메리는 가톨릭 신자 배빙턴과 은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역모를 모의했다. 메리와 배빙턴이 사용한 암호는 알파벳 J, V, W 세 글자만 그대로 두고 나머지 23자는 기호로 바꿔 쓰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메리의 조력자였던 길버트 기포드는 사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비서관 프란시스 월싱엄에게 충성을 바친 이중 첩자였다. 결정적으로, 메리가 배빙턴의 역모 계획에 동의하며 작성한 답장은 기포드의 손을 거쳐 월싱엄에게 전달되었고, 이를 통해 월싱엄은 유명한 암호 해독가 토마스 펠립스를 동원해 암호문을 해독했다. 펠립스는 빈도 분석 기법을 사용하여 암호를 손쉽게 풀어냈고, 이를 통해 메리가 역모에 가담했음을 명백히 밝혀냈다. 결국 메리의 편지는 함정이 되어 돌아왔고, 월싱엄은 펠립스에게 메리의 필체로 공모자 명단을 요구하는 내용을 추가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속은 배빙턴은 음모자들의 이름을 적어 다시 보냈고, 결국 역모 가담자 전원은 체포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메리 역시 국가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단순한 암호 사용의 실패를 넘어서, 암호의 신뢰성에 대한 교훈을 남긴다. 메리는 자신이 사용한 암호가 안전하다고 믿고 중요 사항을 적었으나, 암호 해독 전문가의 손에서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은 단일 알파벳 환자 암호 시대의 종말을 알리며, 암호의 보안성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암호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때로는 전쟁의 승패를 가를 만큼 막대한 파급력을 지녔다. 암호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사용했던 암호 체계와 그로 인해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이 이야기 속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자신들이 만든 암호의 난공불락을 확신하며 자만심에 빠졌다. 그 당시 일본 외무성은 '퍼플 머신'이라 불리는 암호기를 사용하여 외교 전문을 암호화했다. 퍼플 머신은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기를 개량한 형태로, 일본은 이를 통해 암호문의 보안성을 극대화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미국은 일본의 암호 체계 중 하나였던 'J 시리즈 암호'와 'PA-K2 암호'를 비교적 손쉽게 해독했고, 이로 인해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의 '퍼플 암호'마저도 미국의 암호 해독반에 의해 해독됨으로써 일본의 전략적 기밀이 노출되었다. 문제는 일본의 자만이었다. 독일이 미국이 일본 암호를 해독하고 있다는 경고를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외무성은 이를 믿지 않고 암호 관리 체계의 일부만 수정했을 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이 같은 일본의 오판은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일본이 기존 암호를 고수하는 사이, 미국은 암호문을 통해 태평양 전쟁의 일본 군사 작전을 예측하며 대응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미드웨이 해전 등 주요 전투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었고, 결국 전쟁의 흐름 자체가 바뀌었다.


암호의 세계는 단순히 비밀을 숨기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암호의 해독 여부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군사적 우위를 결정짓는 상황에서 암호의 보안성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일본의 사례는 암호 체계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암호 해독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이처럼 이 책은 암호가 인류 역사와 문명에 미친 영향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풀어낸다. 특히 전쟁과 외교의 주요 순간에서 암호의 역할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파헤치며, 암호를 둘러싼 인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암호를 단순한 퍼즐이나 난제 이상의 가치로 이해하게 만들어 주며, 역사 속 암호 해독의 비밀을 밝히는 탐구의 여정을 선사한다.


암호는 고대 문자 발명과 함께 시작되어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이 책은 암호의 기원부터 현대의 암호화 기술까지 폭넓게 다루며, 역사 속 유명 인물과 암호의 흥미로운 일화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며, 디지털 시대의 보안을 책임지는 암호의 중요성은 오늘날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암호가 단순한 비밀 코드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온 중요한 기술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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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인간 이시후 창비아동문고 342
윤영주 지음, 김상욱 그림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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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 그림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희귀 질환으로 인해 냉동 보존 되었던 주인공 시후가 40년만에 깨어나 미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SF적 상상력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그 사이에 놓인 존재의 의미를 섬세하게 묻는다. 도시 위에 세워진 돔, 실제처럼 생생한 홀로그램,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인공지능 로봇 등이 아주 생생하면서도 세밀하게 담아낸 미래의 풍경들은 상상력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이야기에 완전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은 첫 장면부터 우리를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냉동 인간. 맞다, 나는 냉동인간이었지!"라는 말로 시작된 시후의 독백과 40년만에 깨어나 낯선 사람들과 공간에서 마주하는 장면은 생생하고 긴장감 있게 전개되며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열두 살 소녀 시후는 불치병에 걸려 마지막 수단으로 냉동보전을 선택했고, 그렇게 차가운 캡슐 안에서 무려 4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미래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 사이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고, 사람들은 예전의 도시 대신 여러 개의 거대한 돔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처럼 시후는 모든 것이 바뀐 낯선 세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 데 미래에서 40년만에 깨어난 시후는 괜찮은 걸까?


40년만에 보게 된 세상은 멋진 신세계처럼 보였다. 화려한 건물 사이로 초록이 우거지고,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 아래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풍경은 마치 꿈꿔온 미래처럼 보인다. 너른 공원에서 개들이 목줄 없이 자유롭게 뛰놀고, 아이들은 드론과 로봇 경주를 즐기며 신나게 놀고 있는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시후에게 멋진 신세계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 겉모습 뒤에 숨겨진 사회의 이면이 드러나게 되는데, 특히 수도 센트럴에서 멀리 떨어진 44지구에 살게 된 시후는 거주지에 따라 보이지 않는 위계와 차별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시후가 마주한 미래는 단지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감당하기 여러운 상실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차가운 냉동 캡슐 속에서 40년을 보내는 동안, 시후의 가족은 냉동 보존 기업 '프로즌'의 횡포 속에서도 그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시후가 눈을 뜬 세상엔 시후를 가장 사랑해주던 엄마와 할머니는 없었고, 자신에 기대고 귀엽던 동생 정후는 어느새 50세의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의 벽으로 인해 냉정하고 차가운 말투로 시후를 대하며, 조카 보라는 이제 시후와 동갑이 또래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건 거짓말이지?" 라고 외치던 시후의 절망과 무너진 현실 앞에서 힘없이 기절해버리는 장면은 시후의 혼란과 상실이 얼마나 큰 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과연 시후는 이 새로운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시후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시후가 마주한 차별과 외로움 속에서도 마음을 열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이 책의이야기는 한층 깊고 따뜻해진다. “내 바람이 보태지면 조금은 더 힘이 세질지도 모르는 거니까.”라는 시후의 말처럼,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노래를 만들며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아이들의 모습은 작은 용기가 모일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무대를 준비하며 점차 가까워지는 시후, 앙리, 페리, 그리고 보라의 모습은 아이들 사이의 연대와 우정, 그리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특히, “그래, 나한텐 나만이 가진 경험이 있다.”는 시후의 깨달음은,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일깨운다. 거대한 기업 ‘프로즌’의 그림자 아래에서도 끝내 침묵하지 않고 서로의 손을 잡는 아이들의 모습은 진심 어린 저항이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닐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이처럼 이 책은 연대의 가치와 작지만 뜨거운 저항의 힘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희망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기술과 미래 사회라는 흥미로운 설정 속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깊고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바나나팬케이크를 매개로 이어지는 가족의 사랑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자 시후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이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며 오랫동안 울컥하게 만든다. 또한,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마음, 서로를 위한 희생과 배려,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용기는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 책은 단지 한 소년의 적응과 성장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사랑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일깨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5월에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참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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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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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아주 감명깊게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가 특별증보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읽게 된 책이다. 무엇보다 이번 특별증보판에는 유시민 작가가 새롭게 쓴 서문과 함께 존 스트어트 밀의 <자유론>에 대한 글도 추가되었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서를 단순한 정보의 습득이나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과 감정을 담아내는 개인적 성장의 과정이라 일컫는다. 그는 '책은 세상에 나온 순간 독자의 것'이라는 말을 통해 독서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독자 각자가 고전을 통해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고 탐구하는 여정을 격려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서 처음 마주한 <죄와 벌>, 몰래 불을 켜고 읽던 <공산당 선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에 대한 인식을 뒤흔든 <역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시대를 지나 다시금 자유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자유론>까지. 이 책 속 고전들은 저자의 삶과 시대, 그리고 사유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은 왜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할까?',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가?', '사실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나는 진정 내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가?' 등과 같은 여러 본질적인 질문들을 고전을 통해 던지며 독자인 우리의 삶의 방향과 가치를 되묻는다. 한 시대의 지성으로서 우리 사회에 늘 명료한 통찰을 던저온 저자가 청춘 시절의 독서를 다시 돌아보며 써 내려간 이 책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찰과 성장의 여정을 되짚게 만들며 깊은 울림을 가져다 준다.


이 책의 본문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고전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해석을 넘어선 깊은 성찰의 여정임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다시 읽으며 주목하게 된 두냐와 소냐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젊은 시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두 인물의 존재가 나이를 먹은 지금, 전혀 다른 빛깔로 다가왔다는 그의 고백은 독서가 단지 내용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비범한 사람들’의 논리를 중심축으로 한 <죄와 벌> 속에서 저자는 오히려 평범한 사람인 두냐가 더욱 빛난다고 말한다. 속물 루쥔에게 탐욕의 대상이었고, 허무주의자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는 병적 집착의 대상이 되었으며, 라스꼴리니꼬프의 친구 라주미힌에게는 인생의 반려자가 된 인물인 그녀는 단지 이야기 속의 조연이 아닌,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애정을 쏟은 인물이었다. 특히 루쥔과의 결혼 문제를 두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의 삶을 단호히 거절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두냐의 말은 그녀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강인한 내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두냐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소냐와 같은 맥락에서 사랑과 존중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소냐가 몸을 팔며 가족을 부양했음에도 두냐는 그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며 따뜻하게 인사한다. 저자는 두 여인을 도스토옙스키가 끝없이 선망하고 흠모한 ‘러시아의 평범하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해석한다. 유형지에 따라간 소냐가 죄수들에게 어머니이자 누이처럼 사랑받는 장면은, 두냐와 소냐가 결국 동일한 정신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저자의 시각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저자의 해석은 단순히 문학적 분석을 넘어서 고전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의 본질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과거에는 스쳐 지나갔던 인물이 다시 읽는 지금에는 중심에 서게 되는 경험이야말로 이 책이 주는 깊은 감동이며, 우리가 고전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라 하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저자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다시 펼쳐 들고, 그 속에서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대목이다. 그가 정리한 리영희 선생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고결하다. 진실과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리영희의 글을 읽으며 그 질문이 자신에게 던져진 것처럼 느꼈다고 고백한다. “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했느냐. 관료화된 정당과 정부 안에서 비판적 지성을 잃지는 않았느냐.” 그 질문 앞에서 그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성찰을 게을리했던 순간들, 현실을 핑계로 진실을 외면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그는 ‘사상의 은사’ 앞에 서는 것이 왜 이토록 두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이 대목을 읽는 나 역시 그의 부끄러움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지식인이란 단지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실천에는 언제나 고통과 외로움이 따른다는 점에서, 리영희 선생이 살아온 길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묵직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고전이 던지는 물음에 답하는 저자의 고백을 통해 독자 스스로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번 특별증보판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다시 읽고 쓴 글을 새로 추가하였다. 이미 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자유론>을 인용해온 유시민 작가는, 왜 다시 이 책을 꺼내 들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 모두가 함께 겪었던 국가와 정치의 풍파를 소화해 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했다.” 그 말처럼 <자유론>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마주한 현실을 해석하고 견뎌낼 수 있는 지적이고도 도덕적인 기준을 제공한다.


계엄령이 내려졌던 그 밤 이후, 우리는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자유가 실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것임을 몸소 깨달았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는 어떤 정치체제 아래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기본이며, 밀은 이를 명확하게 강조했다. 저자는 밀의 사상을 통해, 우리가 겪은 위기의 순간들을 되돌아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저력을 확인한다. 그는 밀의 말 속에서 위로를 받았고, 그 위로를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고자 한다.

밀은 1859년에 쓴 책에서 마치 오늘의 우리를 보고 있는 듯하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밤을 지새운 사람들, 계엄의 국회를 막아섰던 시민들, ‘남태령의 기적’을 만든 청년들, 그리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자유와 정의를 향해 나아간 평범한 사람들. 유시민은 밀의 언어를 빌려, 이들에게 따뜻한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그대들은 인간의 모든 자랑스러운 것의 근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이 말에는 나는 너무나 뭉클한 감동과 가슴 아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자유론>을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유는 결코 주어진 것이 아니며, 이를 지켜내기 위한 시민의 연대와 노력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그는 밀의 사상을 통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 특별증보판에서 저자가 <자유론>을 선택한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고, 그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간곡한 당부이자 응원을 하기 위해서 아닐까.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한 가지 당부를 남긴다. 이 책은 고전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설서가 아니며, 자신의 시각으로 인해 책과 저자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책을 쓰는 사람에게 책을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듯, 독자에게도 책을 마음대로 읽을 권리가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자유롭게 읽고 각자의 감정과 사유로 받아들이는 독서의 기쁨을 일깨워준다.


책은 세상에 나온 순간 독자의 것이 된다. 다양한 삶의 경로를 거쳐온 유시민이라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도, 혹은 그가 건넨 이 책을 따라 고전을 새롭게 만나는 경험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의 해석에 꼭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독서란 결국, 저마다의 시선으로 고전을 새롭게 마주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 책은 15권의 고전들을 향한 한 사람의 치열한 성장과 성찰의 여정이자,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과 함께라면, 고전을 읽는 일이 단지 과거를 넘겨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여정이 될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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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지 할머니 건전지 가족
강인숙.전승배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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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건전지 시리즈'의 신작이다. 가족간의 사랑과 일상 속 안전을 유쾌하게 풀어낸 <건전지 아빠>와 <건전지 엄마>에 이어 이번에는 가족의 중심이자 지혜로운 어른인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섬세한 입체 촬영 기법으로 구현된 생동감 넘치는 장면과 야생동물과의 공존이라는 의미 있는 미시지까지 담아내며 이번 책에서는 시리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특히 어디론가 달려가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표지는 이 책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면지에 적힌 할머니에 대한 글은 할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손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언제나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할머니는 그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음을 안겨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이 되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은 책을 읽는 우리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따뜻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건전지 할머니는 세상에가 가장 씩씩하고 부지런한 건전지다. 마을의 중심이자 운동을 즐기는 동구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건전지 할머니는 매일 아침 혈압계 속에서 동구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방학을 맞아 손주 동구가 할머니를 찾아오면서 동구 할머니의 일상은 물론 건전지 할머니의 하루도 한층 더 분주해진다. 가스레인지 속에서 달콤한 간식을 준비하고, 라디오 속 DJ로 변신하여 동구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는 등, 건전지 할머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구 할머니와 함께 동구의 하루를 즐겁게 만든다. 틈틈이 보고 싶은 손주 건전지들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리움 속에서도 씩씩하고 즐겁게 하루를 채워가는 건전지 할머니의 모습이 이야기 속에 폭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동구와 할머니는 함께 밭에 나가 옥수수를 따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할머니가 잠시 바구니를 가지러 간 사이 동구는 호기심에 이끌려 아기 멧돼지를 따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멧돼지 가족과의 맞닥뜨리게 된 동구는 놀라게 되는데... 과연 동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동구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넘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잔잔하게 전하고 있다. 몸은 작지만 누구보다 큰 사랑을 가지고 있고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건전지 할머니의 우리 주변의 모든 할머니들을 떠올리게 만들며 미소짓게 한다. 손주를 향한 다정한 눈빛,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잊지 않는 그리움,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용기와 지혜는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깊이를 더욱 깊고 진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무렵, 건전지 할머니가 외치는 "충전 완료!"는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큰 울림을 남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지켜주고, 응원하고, 사랑하는 힘이 얼마나 크게 우리의 삶에 작용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만들면서 말이다.


알록달록한 펠트 인형과 섬세한 배경 소품이 어우러진 책 속 장면들은 시각적으로도 따스한 감정을 전하며 책을 넘길 때마다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그렇게 이 책은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가 공감하는 가족이야기를 너무나 따스하면서도 재미나게 담아내며 우리 모두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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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
토머스 R. 체크 지음, 김아림 옮김, 조정남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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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계기로 mRNA 백신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RNA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백신 개발의 핵심 기술로 RNA가 부각되면서, 그동안 DNA 중심으로 이해되었던 생명과학의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기존에는 DNA가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여겨졌고, RNA는 그 보조적 역할에 머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RNA가 단순한 유전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생명 조율자이자 변혁의 주체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RNA는 생물학, 의학, 생명공학의 혁신을 이끄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변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고 RNA에 대한 높아진 관심으로 인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989년 RNA의 촉매 작용(리보자임)을 발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분자생물학자 토머스 체크가 집필한 책으로, RNA에 대한 깊은 과학적 통찰과 애정을 담고 있다. 책은 RNA의 과학적 발견부터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mRNA 백신 개발, 텔로미어를 활용한 노화 연구 등 21세기 생명공학 기술 전반을 아우른다. 또한 전축, 스파게티, 워드 프로세서의 ‘복사 붙여넣기’ 기능 등 일상적 사물과 개념에 빗대어 복잡한 RNA 작용 원리를 쉽게 설명하여 생명과학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른 RNA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은 RNA가 어떻게 과학계에서 점차 핵심적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DNA가 생명의 열쇠로 여겨졌고, RNA는 보조적 역할에 머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RNA 역시 정보를 저장할 수 있으며, 세포 내에서 능동적으로 작용해 단백질 합성, 유전자 조절, 노화 방지 등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RNA 연구는 급격히 부상했다. 책은 종이접기에 비유될 만큼 유연한 RNA의 특성과, 이를 통해 생명의 기원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을 다양한 비유와 함께 쉽게 설명한다.


2000년대 이후 RNA 관련 연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수많은 노벨상 수상과 함께 RNA 기반 의약품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코로나19는 RNA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SARS-CoV-2가 RNA 바이러스라는 사실과 이를 겨냥해 개발된 mRNA 백신은 RNA 기술이 오랜 시간 축적한 성과임을 증명했다. 팬데믹 속에서 저자는 RNA 연구자에서 RNA 대중 해설자로 역할을 확장하며, 대중에게 RNA의 작동 원리와 의미를 알리려 노력했다.


책은 또한 RNA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RNA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류를 구하는 치료 기술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RNA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질병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생명과학과 의학의 미래를 여는 열쇠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생생하고 일관되게 추적하며, RNA가 과거의 조연에서 생명과학의 주연으로 올라서는 전환점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RNA 구조를 밝히는 과정에서 집단지성을 활용한 혁신적인 시도였다. RNA 접힘 구조를 예측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느리고 불확실했지만, 저자와 동료 연구자들은 수천 명의 일반인이 참여하는 게임형 프로젝트 ‘eteRNA’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RNA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참가자들도 퍼즐을 풀듯 RNA 구조를 설계하고, 가장 가능성 높은 해답을 실험으로 검증하는 방식이었다.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3만 7,000명의 참가자가 수백만 개의 RNA 구조 퍼즐을 해결했으며, 이들의 아이디어는 실제 연구 논문에 공동 저자로 등재될 정도로 뛰어난 결과를 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안정성이 뛰어난 mRNA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슈퍼 접힘 구조’를 설계하는 데도 대중의 힘이 활용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RNA 설계 문제를 게임 참가자들이 해결해낸 결과, 기존보다 월등히 높은 온도 안정성을 가진 mRNA 백신 후보가 탄생했다. 이는 향후 저개발국에서도 보다 쉽게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중요한 진전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RNA 연구가 더 이상 소수의 과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집단지성과 대중 참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해나가는 분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 책은 단순한 과학 연구 기록을 넘어, 과학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RNA가 생명의 놀라운 촉매제로서 처음 주목 받게 된 과정을 다룬다. 저자와 연구팀은 RNA가 단백질 없이도 효소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 즉 리보자임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기존의 생명과학 패러다임을 뒤흔들었고, 이 연구로 198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를 통해 RNA는 단순한 유전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생명 활동의 주체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2부에서는 RNA가 자연의 한계를 넘어 생명 자체를 개조하고 연장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RNA는 생명의 기원 문제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크리스퍼 기술을 통한 유전자 편집, 노화와 암을 결정짓는 텔로미어 연구, mRNA 백신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 책은 RNA가 어떻게 생명을 조율하고 변화시키며, 과학과 의학의 미래를 다시 쓰는 주요 동력으로 부상했는지를 심도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히 RNA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적인 원천과 인공적인 원천 모두에서 RNA가 어떻게 새롭게 진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확장될 가능성을 지녔음을 강조한다. 특히, RNA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분자이자, 미래 생명공학의 핵심 도구로서 동시에 역할하고 있다는 점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저자의 개인적인 연구 여정 또한 서사에 녹아 있어, RNA라는 경이로운 분자가 과학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실감나게 전달한다.


그리고 이 책은 생물학과 의학의 현재를 넘어 미래를 조망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RNA의 복잡한 원리들을 다양한 비유와 설명을 통해 풀어내,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RNA를 기반으로 한 유전자 치료, 맞춤형 의약품, 혁신적 신약 개발 등 최첨단 생명과학 연구의 최전선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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