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베레나 카스트 지음, 김현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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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나이를 먹는 게 참 즐겁고 좋은 일이었다. 나이를 먹고 자랄수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좋은 어른이 될 꺼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이 먹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나이 먹는 것 = 늙음'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게 늙는 것만 있을까.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나이 먹는 것은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게 되면서 좀 더 현명하게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하게 되었고, 그러한 생각들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은 황혼에 점어든 심리학자가 전하는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노화를 하나의 질병처럼 여기지만 이 책은 노화나 노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책의 서두에서부터 노화는 삶의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야 하며 노년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젊은 시절만큼 행복감을 느끼며 때로는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저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여러 연구를 통해 인간은 나이 들수록 행복감을 더 느낀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인생의 주기를 살펴보면 보통 20세에 행복감을 크게 느끼고, 그 이후부터 삶의 만족감이 꾸준히 감소하다가 45세 이후부터 만족감이 다시 증가하며, 인생 후반기에는 20세의 행복감만큼 커진다. 이 시기를 '제 3의 인생기'라고 하며 인생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시기로 간주된다. 이를 저명한 노화 연구자이자 심리학자인 우르줄라 슈타우딩거는 이 노년의 행복감을 '행복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학자들이 노화 과정에서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조화와 풍요로움, 정서적 삶의 활력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이것이 아무리 노화로 인해 여러가지 타격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해도 큰 행복감을 이어가게 한다니 놀랍다. 그러니 노화를 미화하지도 악미화하지도 않고 우리가 살면서 겪어야 할 과제와 같이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나이듦은 모든 나이를 전반으로 확대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책의 서문에 65세에서 85세 사이인 제3의 인생기에 속하는 사람에게 더욱 맞는 이야기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제3의 인생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에 맞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이 드는 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이면서도 아주 세부적으로 잘 나열하고 있는데, 이는 비단 그 나이대에 속하지 않아도 삶의 태도로 아주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법들을 하나씩 삶의 태도로 삼고 실천하는 것은 현명하게 나이를 들어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방법인 동시에 진짜 어른이 되는 지름길이 될 듯 하다.


그러한 방법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날 그날 일어나는 일에 유연함과 열린 마음을 가져 보라'는 말이다. 매일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미래를 통제하려는 마음을 버리고서 새로이 경험하는 결함이나 불편함에 대해 '흥미롭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노년기에 마주하게 되는 실수와 불안감, 그리고 두려움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할 듯 싶다.


그리고 이 뿐만 아니라 노화와 노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대하여 어떻게 대하여야 좋을지를 이 책은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두려움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방법, 수치심에 대한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법과 사례를 아주 자세히 들어 설명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덜어준다.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의 죽음과 관련하여 애도와 분리 과정을 통해 자아를 재정비하는 방법과 자신의 죽음에 다가서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이별하는 자세로 사는 삶에 대해 말하며 죽음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보통 나이 든다는 것은 서글프고 고독하며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게 줄어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죽음을 향해 가까이 가는 것이라는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서두에서부터 이미 '행복의 역설'을 이야기하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우리를 일깨운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명하게 나이 드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나이 드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지만 그리 부정적인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나이 드는 것 역시 삶의 한 과정일 뿐이며 그렇기에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노년기에는 물론 많은 것을 잃게 되지만 새로 얻는 것도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만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더이상 나이 드는 것에 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고수하진 않을 듯 싶다.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삶의 질은 높아질 수 있다. 그리고 매일 평온하게 삶을 내려 놓는 연습을 하며 이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자유롭고 용기있게 삶에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죽음을 자기 삶 속으로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보다 활기차게 살 수 있음을 명심하자. 우리가 죽음을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이 나를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단순히 고독의 시간들이 외로움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애도의 마음을 가지고 죽음 역시 인간의 삶의 한 일부임을 받아들이다 보면 이별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삶은 창조적인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죽음의 기술은 삶의 기술이'라는 말은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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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 - 90세 스웨덴 할머니의 인생을 대하는 유쾌한 태도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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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1834년생, 올해 90세인 저자의 삶의 지혜가 담긴 에세이다. 스웨덴 식 미니멀 라이프 '데스 클리닝(daeath cleaning)을 전 세계에 알린 마르가레타 망누손의 신작이며, 이 책에는 망누손 할머니가 90년의 삶을 회고 하며 찾아낸 '나이 듦에 관한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록'을 담아내고 있다. 보통의 할머니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매력 넘치는 망누손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읽다보면 살면서 매 순간 유머를 잃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정확히 알고 행하며 나이를 들어가는 삶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저자는 1934년생이니 올해로 아흔 살이다. 나이를 헤아려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냉전, 쿠바 미사일 위기, 체르노빌 원전사고, 코로나 팬데믹에 지금의 기후 위기까지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위기를 몇 번이나 겪으며 살아왔다. 이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한 번 죽었다 깨어나기도 했다고 하니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분이라 하겠다. 이렇게나 모진 풍파를 넘고 넘은 아흔살이 된 할머니의 이야기라 하면 어찌보면 너무 라떼도 너무 라떼답거나 혹은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서 너무 진지하고 무겁기만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유쾌하기 그지 없다. 요즘 딱 젊은이들처럼 팬데믹 시대에 완전 적응하여서 왓츠앱을 켜놓고 절친과 글루바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 그야말로 최신식 할머니다. 그렇기에 여느 할머니와는 조금 달리 유쾌하고 삶의 매 순간 긍정적인 면모를 찾아내려 애쓰면서 살아가는 그녀가 전하는 14가지 메시지들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늙어서 얼굴에 생긴 주름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도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늘 웃으며 생긴 주름과 인상을 찌푸리며 생긴 주름은 정말 다르다. 그렇기에 얼굴에 생긴 주름 하나하나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망누손 할머니 역시 우리에게 웃으서 생긴 주름이 많은 얼굴은 늙어보이기보다는 행복해 보일 꺼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명심해야지. 찡그리는 시간보다 웃는 시간을 더 많이 갖도록 애쓰며 살아야 함을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지신을 억누르지 말고 자연스레 더 많이 웃으며 사는 삶. 그냥 생각만해도 웃음이 난다.


이 책에 담긴 망누손 할머니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정말 가슴에 새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다. 어떻게 나이 먹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친절하고도 솔직하며,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정말 도움이 될 만한 충고라고 할까. 그렇기에 꼭 명심하고 저자의 말을 따르며 살고 싶다. 그 중 젊은 이들과 관계에 대한 규칙은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해두고 싶을 정도다. 그녀는 진짜 행복은 젊은이들에게 둘려싸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로 당신이 대접 받고 싶은 대로 그들을 대접하라'는 말은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바로 기본이 되는 태도가 될 듯 싶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지.


그리고 이 책은 친절하게 망누손 할머니가 전하는 즐겁게 나이드는 방법을 정리하여 우리에게 다시 한번 전하고 있다. 이 책이 전하는 14가지의 방법을 모두 기억하며 삶의 곳곳에서 실천하면서 나 역시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혀 애쓰며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바로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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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홍 지음 / 부크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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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은 오늘 하루를 잘 견뎌낸 우리에게 전하는 눈부시고도 따스한 응원의 메세지를 가득 담아내고 있다.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어렵게 느껴질 때>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저자는 이번 책에서는 일상 속에서 애쓰는 독자들의 낮과 밤에 행복을 불어넣어 주고하 하는 마음의 글을 담고 있다. 우리 모두의 버팀이 마침내 커다란 기쁨으로 펼져질 수 있도록 이 책 가득 전해지는 응원의 메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북돋아지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제일 먼저 우리에게 눈 앞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는 말이 유행처럼 널리 쓰이곤 했지만 늘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혀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어디에도 행복은 없고, 지금 무엇이든 행복이라 느낄 수 있다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음을 명심하면 된다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놓인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리고 이곳에 있는 우리를 인정하고 살아할 수 있다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기에, 행복을 누리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누리며 사는 것이기에, 고생 끝에 행복이 오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 책의 곳곳에는 지금보다 더 괜찮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토닥이는 글들이 가득하다. 살면서 배우는 것들이라는 제목 아래 적혀진 문장들은 사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일 수도 있다. 뻔한 문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 하나씩 읽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격려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게 바로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리 길지 않은 글들 사이에 담긴 따뜻한 응원의 문장들. 그 문장들이 가진 기운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잠시 충전을 하는 듯하다.


바깥에서 타인에게는 "고마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잘만 하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살아 줘서 고마워.', '나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잠시 띵해졌다. 나역시 타인에게는 한없이 다정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나 엄격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저자의 말들에 공감이 갔다. 인간이기라면 당연히 부족한 것들마저도 완벽하기를 나 역시 바랬기에 그래서 내가 행복과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니, 저자의 말처럼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고마움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이 책의 문장을 빌려 '존재해 줘서 고맙다고, 부족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고, 다 괜찮다고. 애쓸때도, 애쓰지 않을 때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그런 나를 내가 가장 믿고 응원한다고.' 말해본다.


저자는 불행할 이유를 찾지 않으면 행복할 이유만 남고 우리가 향하는 모든 걸음이 행복이라 생각한다면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행복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다가올거라는 말이 너무 든든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우리는 행복할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는 한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을 다시금 나 자신에게 말해본다.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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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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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총기 난사라는 참혹한 비극으로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스스로를 포함하여 상처 입은 이웃과 마을을 치유해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서간체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깊은 상실감과 트라우마에 빠진 주인공과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끔찍한 상처와 슬픔을 애도하고 극복해가는지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며 서로의 곁을 지켜주며 서로를 구해내어가는지를 섬세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표현하여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은 주인공인 루카스가 자신의 정신분석가인 칼에게 보낸 18통의 편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루카스는 머제스틱 마을의 고등학교 상담 교사이다. 머제스틱 극장에서 잃어난 참사로 인해 아내를 잃었고 그의 정신분석가 칼 역시 아내를 잃었다. 참사 이후 칼은 더이상 루카스의 정신분석을 담당하지 않게 되었고, 정신분석이 절실히 필요한 루카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칼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책의 서두에는 도대체 미제스틱 극장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참사로 미제스틱 마을의 사람이 열여덟명이나 죽었으며 루카스는 열여덟 개의 장례식 중 열입곱 개에 참석했다. 끝까지 있지 못해도 어쨌든 얼굴이라도 비추려한 루카스. 과연 미제스틱 마을의 그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자신은 기억을 잘 하지 못하지만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채 집에만 틀여박혀 지내며 상실의 고통에 빠져 있던 루카스는 칼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와 슬픔을 함께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칼은 루카스의 편지에 답이 없는데, 왜 칼이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던 어느 날, 루카스의 집 마당에 누군가 텐트를 쳤고 머문다. 과연 누가 루카스의 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머무는 걸까? 루카스의 집을 찾아온 사람은 바로 루카스에게 상담 치료를 받던 학생이자 사건의 가해자인 제이콥의 동생 앨리였다.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던 앨리는 루카스의 집 뒷마당에 도망치듯 들어와서 텐트를 치고 살기 시작한다.


사실 루카스는 아직 아내 다아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다아시가 자신의 곁을 머문다고 여긴다. 천사로 변한 다아시가 자신의 주위를 머물다가 아무도 없는 밤이면 다시 루카스 앞에 나타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꼭 안아준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루카스를 찾아온 앨리에 대해서도 다아시가 자신이게 "저 아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야"라고 말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하튼 천성이 착한 루카스는 앨리까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 필요한 학점을 딸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그리고 앨리의 아이디어로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그 영화를 머제스틱 극장에서 상영하자고 뜻을 모으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뜻밖의 동맹이 맺어지고, 참사로 인해 무너진 마을을 일으키고 상처와 슬픔 속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구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총기 난사로 인한 사고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한 사고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안타깝게도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사고다. 이러한 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잃은 마을 사람들은 앨리와 루카스의 제안으로 시작된 영화를 함께 찍고 상영하는 과정에서 슬픔과 상처를 치유받는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곁을 지키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이루어낸 앨리, 루카스 그리고 미제스틱 마을 사람들 모두가 빛이라 할 수 있겠다.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모두를 구원하는 기적을 이루게 한 너무나 따뜻하고 눈부신 빛 말이다.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참사로 인해 부서지고 망가진 외로운 존재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선량하고 따스하며 눈부신 연대와 구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아내 다아시를 잃은 루카스의 슬픔과 상처, 그리고 혼란스러움을 섬세하게 잘 표현해내고 있어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그가 빨리 일어서길 응원하며 읽게 된다.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해 다시 일어서서 살아가고,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앨리를 보살피게 되는데, 앨리를 보살피고 이를 위해 영화를 찍게 되면서 그와 앨리, 마을 사람들을 서서히 치유되어간다. 이 책 속 깊은 상처를 받은 이들이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이해하게 되며 서로가 서로를 믿고 지지하는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그리고 끝까지 답이 없었던 칼의 이야기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루카스가 남긴 마지막 편지 속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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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 인류의 삶을 뒤바꾼 공진화의 힘
피터 J. 리처슨.로버트 보이드 지음, 김준홍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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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띠지 속 '<이기적 유전자>를 잇는 진화론의 또 다른 대표 도서'라는 문구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최재천 교수님 추천 도서라니 내용이 더욱 궁금했다. 이 책은 현대진화론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유전자-공진화론의 대표 도서이자 고전이다. 이 책은 우리의 행동과 정신에 유전자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의 등장 이후,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손꼽힌다. 2009년에 '유전자만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후 역자 주석을 새롭게 추가하고 그간의 시대 변화에 맞춰 서문을 보강한 개정판이다.


이 책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려면 먼저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면 좋은데 이 책의 서문에서 이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유전자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정보를 담아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전달하듯이, 문화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지 세계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담아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후손들에게 전달된다. 만약 이렇게 전달되는 문화적 변형인 신념, 가치, 기술이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원형에 가깝게 유지된다면 집단유전학에서 각 세대별로 유전자 빈도를 추적하듯이 문화적 변형의 빈도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유기체 진화의 힘인 자연선택, 유전자 흐름, 유전자 부동, 돌연변이에 대응하는 문화 진화의 힘을 세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책의 저자들은 3장에서 여러 종류의 편향, 문화적 돌연변이, 문화적 자연선택으로 제시하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학습 과정을 유전자 승계와 같은 독립적인 전달 체계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유전자의 진화와 문화의 진화가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이며 이를 때로는 이중 유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른 양상의 진화를 하였고, 문화적 진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생각해보다 보면 인간의 비정상적인 진화 체계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즉 저자는 문화는 우리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며 인간의 비정상적인 진화체계는 문화적 진화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에서는 유전자 중심의 진화심리학, 인간행동생태학과는 달리 인간 행동을 유전적, 문화적, 환경적 원인의 상호 작용으로 설명한다.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이 예측한 바에 의하면 문화의 개체군적인 현상으로 인해 유전자로만 진화된 심리만 존재할 때보다 환경에 대한 적응을 더 신속하게 진화시킬 수 있다. 인간은 단순히 쓴맛을 내는 식물은 경험에 따라 더이상 먹지 않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쓴맛을 내는 어떤 식물이 몸에 좋다는 지식을 공유하여 쓴맛을 내는 식물도 지속적으로 먹는 것이 이에 대한 예에 속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기적 문화적 변형으로 인해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부적응적인 도간념이 확산될 수 도 있는데 이에 대한 예로는 인간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적은 수의 자식에도 만족하는 것이 있다. 또는 문화적 집단 선택으로 인해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부적응적일지라도 집단 수준에서는 적응적인 협동의 규범과 '부족' 본능이 진화할 수도 있다. 협동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될 지라도 집단으로 볼 때는 이득인 경우가 이에 대한 예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실제적인 사례를 통하여 이해하게 쉽도록 설명하고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한 사례로 들고 있는 성인의 락토오스 소화 진화는 아주 흥미롭다. 전 세계 성인의 대다수가 우유 속의 당 성분인 락토오스를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가 부족하여 우유를 마시게 되면 락토오스는 소화관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박테리아에 의해서 발효되고, 이로 인해 장에 가스가 차거나 설사를 하게 된다. 어릴 때 엄마의 젖을 먹을 때는 우유를 소화하기 위해 필요했던 락토오스를 분해할 수 있던 효소는 성인이 되어서는 구지 필요가 없기에 사라지고, 대부분의 성인은 우유를 소화를 못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낙동업을 오랫동안 지속해온 유럽의 북서부 사람과 서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유목민들은 오랫동안 낙농업을 해왔고 요구르트나 치즈 등의 락토오스가 제거된 제품의 형태로 우유를 소비해 왔다. 그래서인지 이 집단의 일부의 성인들은 락토오스를 소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낙농업을 하지 않거나 낙농업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락토오스를 흡수할 수 있는 성인의 거의 없다고 한다. 인간의 진화가 어찌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실은 인간이 살아온 형태, 즉 문화와 함께 공진화한다는 것을 이를 통해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유전자-문화 공진화가 인간 심리의 유전적 진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유전자-문화 공진화 과정에서 문화적인 부분이 인간 사회 제도를 진화시키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 역시 놀랍다. 단기적으로는 오래되고 부족적인 사회적 본능 및 문화적으로 다양한 집단 간에 일어나는 자연선택을 통하여 문화의 진화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사회제도를 발생시킨다. 장기적으로 문화의 진화 작용은 인간만의 독특한 사회적 본능을 진화시키는 환경을 만들게 한다니,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역할에 대해 하나씩 알아갈 수록 더욱 놀랍고 흥미롭다. 이 책은 유전자-문하 공진화의 과정과 결과를 다양한 실례를 들어서 이해하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사회, 문화, 제도, 그리고 인간 자체에 대해 이해가 좀 더 쉽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저자는 앞으로 뇌과학과 연결되어진 진화론도 나올꺼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이 역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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