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사회 - 휴머니티는 커피로 흐른다
이명신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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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 <커피사회>에 끌릴 수 밖에 없었다. 하루를 커피로 시작하고 때로는 지친 일상 속에서 커피 한잔으로 위로를 받는 요즘의 우리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이 책은 커피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습관을 넘어, 우리 사회와 문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언어이자 관계의 매개체임을 깊이 있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매일의 삶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레 존재하는 커피를 통해 우리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나처럼 커피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읽는 다면 더 흥미롭고 더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커피 관련 서적이 다루는 역사, 원산지, 로스팅, 추출 기법 같은 기술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커피가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에 집중하는 책이다. 저자는 커피를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인간의 삶과 가치를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바라본다. 특히 '각성', '향유', '우애'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커피가 어떻게 인간의 욕망과 자유, 그리고 공동체 의식과 연결되는지를 탐구한다. '각성'은 졸음을 쫓고 일상을 버터내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인간의 본능과 의지를 나타낸다. '향유'는 취향을 통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커피를 즐기는 행위 속에서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우애'는 커피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소통과 공감을 촉진하는 공동체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통해 커피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인간다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나아가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매개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커피 한잔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친구와의 대화, 직장 동료와의 휴식,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순간 속에서 커피는 관계를 깊게 만들고 공감과 연대를 형성한다. 계층, 세대, 국적을 초월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가진 커피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이를 '호모 코베아 사피엔스(Homo Coffea Sapiens)', 즉 커피를 통해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류로 표현하며, 커피가 만들어가는 연결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총 18가지의 커피 음료를 중심으로 각각의 키워드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는 먼저 특정 커피 음료에 대한 소개와 레시가 등장하고, 이어서 그 커피에 담긴 의미와 사회문화적 맥락이 탐구된다. 그리 본 이야기 뒤에 이어 '데일리 커피 익스프레스'라는 부록을 통해 커피에 대한 상세한 개념 섦여과 그 음료와 어울리는 음악까지 추천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커피와 함께 하는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책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커피는 '각성'의 키워드에 연결된 에스프레소다. 저자는 자신의 첫 에스프레소 경험을 회상하며 강렬한 쓴맛이 밀려오던 순간을 묘사한다. 에스프레소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라 모든 커피 음료의 기반이 되는 '베이스'이며, 이를 통해 저자는 삶에서도 견고한 베이스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요리도 인생도 베이스가 탄탄하면 두려울 것이 없지만, 베이스가 약하면 불안과 두려움이 쉽게 파고든다. 우리는 종종 SNS 속 멋진 모습과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만, 중요한 것은 겉모습을 꾸미기보다 내면의 단단한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어떤 시럽과 크림을 더하기 전에, 기본이 제대로 잡혀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는 점에서 커피와 인생은 닮아 있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휴머니티도 '온잔한 나다움'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외부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상일수록 우리는 더욱 자기 자신만의 베이스를 견고하게 다져야 한다. 시간을 들여 제대로 된 '자기다움'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커피 한 잔 속에서도 삶의 본질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커피를 넘어 삶의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카라멜 마키아토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마키아토를 단순히 달콤한 커피 음료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마키아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 거품만 얹은 기본 마키아토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벅스에서 처음 개발한 카라멜 마키아토다. 카라멜 마키아토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바닐라 시럽과 스팀 우유를 넣고, 그 위에 풍성한 우유 거품을 얹은 뒤 캐러멜 시럽을 드리즐해 완성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카라멜 마키아토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음료를 저어 마시지만, 사실 이 음료는 섞지 않고 그대로 한 모금씩 음미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캐러멜 향, 부드러운 우유 거품,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 그리고 바닥에 깔린 바닐라 시럽의 달콤함이 순차적으로 느껴지며, 각각의 재료가 따로 또 같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살면서 진정한 휴식이 필요한 것처럼, 커피 한 잔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카라멜 마키아토는 그저 달달한 음료 정도로만 여겨왔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는 그동안 가졌던 오해를 풀고, 때때로 제대로 된 방식으로 카라멜 마키아토를 음미하며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는 여운을 남긴다.


아침이 되면 커피를 찾고, 하루 내내 커피를 곁에 두는 일상이 익숙해진 지금, 이 책은 커피를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열어주었다.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분주한 하루를 정리하고 고단한 삶을 견인하는 의식이며, 우리 사회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 책은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커피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며, 커피를 통해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선물한다.

결국, 휴머니티는 온전한 나다움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내리는 작은 선택과 습관들이 모여 우리를 만들어가듯, 매일의 좋은 커피 한 잔이 좋은 삶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이 책은 단순히 커피와 사회를 연결하는 인문학적 통찰을 넘어, 더 풍요로운 삶을 지속하고 싶은 ‘커피 인간’을 위한 가이드다. 이제 커피를 마실 때면,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삶의 연결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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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 마! 왕재미 3 - 인공 지능과 지구 최후의 날 속지 마! 왕재미 3
다영 지음, 유영근 그림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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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AI)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 그 활용 범위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하는 지는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무분별한 신뢰는 위험할 수 있으며, 비판적 사고 없이 AI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한 주제를 아주 흥미롭게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속지 마! 왕재미 3 : 인공 지능과 지구 최후의 날>은 우주 경찰 와재미가 AI를 둘러싼 가짜 뉴스와 싸우며,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는 지구 동물을 돕는 과정을 담아낸 과학 동화다.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EBS 교재 집필진인 다영 작가는 다양한 사례와 자료를 활용하여 AI에 대한 맹신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왕재미와 개구라 세력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게 바로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라 하겠다. 책을 읽다 보면 AI에 대한 핵심 개념을 익히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가짜 뉴스에 흔들리지 않는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과학적 탐구력과 올바른 판단력까지 길러주는 이 책은 AI 시대를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라 하겠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책은 '우주일보'의 한 장면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사라진 왕재미 총장에 대한 뉴스와 교도소에 갇혀 있던 치타의 탈옥 소식은 아프로 펼쳐질 흥미로운 사건들을 암시하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한층 높이고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왕재미가 개구라가 세상을 지배할 '알고리즘 괴물'을 만든다는 악몽을 꾸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꿈 속에서 본 끔찍한 광경이 잊히지 않아, 왕재미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과연 왕재미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든 알고리즘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개구라가 만들어 낸 이 괴물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AI 기술이 무분별하게 오용도리 경우 현실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본 이야기가 끝난 후 책 속 부록 '개구라의 사기 특강'에서는 인공 지능이 어떻게 학습하고 작동하는 지에 대한 상세할 설명을 담고 있다. 인공 지능은 인간의 뇌 속 신경세포처럼 작동하는 인공 신경망을 이용하여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인공 지능은 시간이 지나도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그대로 기억한다. 방대한 정보를 축적할 수 있어 마치 천재처럼 보이지만, 잘못된 정보를 학습할 경우 이를 그대로 전달하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사용할 때는 정보의 출처와 정확성을 꼼꼼히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AI가 학습한 데이터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구라는 이를 이용해 인공 지능을 교묘한 거짓말쟁이로 만들겠다는 계호기을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AI의 한계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과연 개구라는 어떠한 음모를 드러낼까?


악당 개구라는 번번이 자신의 음모를 막아서는 왕재미를 따돌리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조작된 '알고리즘 괴물'을 만들어낸다. 한 번 배운 것은 좀처럼 잊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는 인공지능의 특성을 악용하여 동물들이 AI를 맹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개구라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복권 당첨을 예측할 수 있다거나, AI 점술가가 모든 운명을 알아맞힐 수 있다 등의 거짓 정보를 퍼뜨리며 사기를 벌인다. 하지만 AI가 모든 것을 알고 실수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단순한 착각일 뿐이다. 책 속 다양한 이야기들은 인공지능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오늘날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저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무지에 호소하는 오류,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등 인공지능을 다룰 때 빠지기 쉬운 논리적 오류들을 흥미로운 사례와 함께 정말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책 속 왕재미의 생생한 추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AI를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잇는 비판적 사고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사실 '속지마 ! 왕재미' 시리즈의 배경인 라이어 시티는 몸집이 큰 동물들이 우대받고, 조그마한 곤충들은 하찮게 여겨지는 사회다. 하지만 왕재미, 예반디, 짱센 풍뎅이, 이 세 곤충은 크기로 평가받는 세상 속에서도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증명해 낸다. 힘이란 단순한 물리적인 강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를 배려하며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 자신을 믿고 끝까지 나아가는 힘, 그리고 동료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용기. 이들이 가진 힘은 그 어떤 것보다 강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왕재미와 이별 후 예반디와 짱센 풍뎅이는 라이어 시티 최초의 곤충 경찰이 되어 새로운 출발을 한다. 작은 곤충들이 편견을 뛰어넘고 연대하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작은 존재도 충분히 강하고 빛날 수 잇음을 깨닫게 만든다. 이 책은 크기나 힘으로 정의되는 세상에서 진정한 용기와 가치를 일깨우며,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작은 꿈을 더욱 단단하게 키워준다. 그렇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우리는 작고, 강하며, 빛나는 존재니까요."라는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기며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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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 (시절 시집 에디션)
김소형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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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문득 궁금해졌다. 시집의 제목에 왜 하필 '도넛'이 들어갔을까? 그리고 도넛을 나눈 다는 건 단순히 간식을 함께 먹는 일이 아니라, 서로 온기를 나누고,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시를 함께 나눌 때의 기분처럼 말이다.


이 시집은 시를 알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시의 문턱을 낮춘 따뜻한 초대장과 같은 책이다. 20명의 젊은 시인들이 저마다 10대 시절을 떠올리며 써 내려간 60편의 창작 시는 우리를 처음 시에 설레였던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창비청소년시선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한 이 책은, 시와 그동안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에게 시심을 되살리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 해 줄 것만 같다.


도서부의 즐거움


말하지 않아도 돼

여기서는 누구도 너의 조용함이 지나치다고

나무라지 않을 거거든


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가장 말이 없고

풍경이 되기보다 풍경을 지켜보길 좋아하는

도서관의 도서부원들


도서부의 즐거움이란

입을 다문 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서가를 지나며

네게만 들려주는 비밀을 고를 수 있다는 것


한 권의 책이 입을 열어

열 개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백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가장 말이 없지만

누구보다 빼곡한 문장이 머릿속에 출렁이고 있지

어디선든 생각에 잠겨 그 속을 유영할 수 있지


뒷자리의 누군가가 네 등을 두드리며

무슨 생각 해? 하고 물어 온다면


한 권의 근사한 책처럼

닫혀 있던 마음을 펼쳐

네가 가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겠지


p42 ~ p43


 이 시집에 실린 수록된 시들 중 조온윤 시인의 <도서부의 즐거움>이란 시는 유독 마음에 남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책을 너무나 좋아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이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도서관 한 편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순간들, 책 속 문장들이 속삭이듯 마음 속으로 스며 들던 기억들. 이 시는 마치 그 때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 했다. '말하지 않아도 돼'라는 첫 구절은 도서관이 품어주던 포근한 위로를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도서부원들을 '풍경이 되기보다 풍경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책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 그런 경험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고 이 시를 읽으니 그 시간들이 다시 내게로 오는 듯 했다.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이 입을 열어 열 개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백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라는 구절은 책이 주는 기적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조용하지만 깊고, 보이지 않지만 풍성한 생각의 세계들. 그리고 마침내 뒷자리의 누군가가 '무슨 생각을 해?'라고 물어올 때, 책처럼 자신의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는 마지막 장면은 문득 책을 대하며 설레이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어 더욱 좋았다.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지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는 숙제가 있었다 선생님은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마음이 간에 있다고 믿는대. 현지 가이드 아만다가 말해 줬는데 이유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 때 기념품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야자수 껍질로 만든 필통을 만지다 네 생각이 났는데 이런 게 정말 마음인 걸까?


집에 놀러 온 조카에게 물어본 적 있었다. 해수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망설이다 작은 두 손을 가슴에 얹으며 가리켰다. 심장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대문자 T라고 소문난 친구가 마음이란 뇌에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뇌 과학 연구가 어쩌고저쩌고 말할 때 알아, 하고 듣는 시늉을 하며 하품하는 순간 깨달았지. 마음은 몸 안에서 떠도는 거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굣길 친구들 가방에 매달려 흔들리는 키링들

모두 눈 코 입을 찾은 마음

저마다 반짝이는 지비츠를 샌들에 달아 놓고 물웅덩이를 뛰어 들어가는 마음


비가 잔뜩 들어 있는 구름처럼 무거워지는 날엔 엎드려 잠만 자고 싶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면 높은 계단도 두 칸씩 뛰어 내려오는 일

그러나 마음이 있어서 정말 귀찮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오늘은 온종일 내가 계속 술래였다.


p64 ~ p65


그리고 이 시집에서 또 한편, 깊은 인상을 남긴 시는 서윤후 시인의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지>였다. 마음에 대해 이토록 솔직하면서도 생생하게 적어 내려간 시를 읽으며, 문득 나 또한 마음이라는 게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되짚어 보게 되었다.


시의 첫 문장은 마치 어린 시절의 숙제처럼 시작된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는 숙제가 있었다.' 이 질문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품었을 법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시인은 마음을 찾기 위해 여러 경험을 떠올린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마음에 간에 있다고 믿는다는 이야기, 조카가 가슴을 가리키며 마음의 위치를 짐작하는 장면,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가 뇌에 있다고 단언하는 순간. 하지만 그 모든 답을 지나쳐 결국 도달한 깨달음은 '마음은 몸 안에서 떠도는 거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떠도는 마음의 형상을 섬세한 이미지로 포착한다. 하굣길 친구들의 가방에 매달린 키링, 저마다 반짝이는 지비츠를 달고 물웅덩이에 뛰어드는 샌들, 비 오는 날 무겁게 가라앉았다가 맑은 날엔 계단을 뛰어내리는 감정들. 마음은 그렇게 일정한 자리에 머무리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기쁘다가도 갑자기 무거워지고, 가벼워지기도 하며,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시인은 솔직한 탄식을 내뱉는다. '그러나 마음이 있어서 정말 귀찮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이 문장은 너무나도 솔직해서 오히려 위로가 된다. 마음은 우리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애가 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시는 그러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 자체가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이 시집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시를 모아둔 시집이 아니라, 시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시인들이 이 시를 집필하며 어떤 기억과 경험을 소환했는지, 어떤 고민과 마음을 담아냈는지를 기록한 '시작 노트'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시를 통해 지난간 나와 대화를 나누고, 현재의 나를 위로하는 과정들이 이 시집의 시들에 담겨져 있다. 서윤후 시인은 시를 쓰면서 '여전의 나와 조금 친해진 기분'을 느꼈고, 양안다 시인은 '현재의 제가 위로 받았'다고 고백한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 때로는 낯설고 어색할지라도 그 순간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이 시집은 조용히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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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문방구 2 : 어쭈 도사의 비밀 아무거나 문방구 2
정은정 지음, 유시연 그림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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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이야기를 무엇이든 들어주는 매력 만점의 도깨비가 운영하는 문방구가 다시 문을 열었다. 독창적인 설정과 유쾌한 전개로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은 '아무거나 문방구' 시리즈가 두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1권, <아무거나 문방구 1: 뚝딱! 이야기 한판>에서 도깨비 아무거나와 고양이 귀신 어서옵쇼가 신비한 물건으로 어린이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면서 따뜻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책, <아무거나 문방구 2: 어쭈 도사의 비밀>에서는 새로운 인물인 어쭈 도사가 등장하여 더욱 흥미로운 모험을 펼친다.


어쭈 도사가 문방구에 남긴 비밀스러운 그림 족자, 그리고 만나자마자 티격태격하는 도끼비 아무거나와 어쭈 도사의 관계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신비로운 사건과 유쾌한 캐릭터, 그리고 아이들이 문방구에서 마법 같은 물건을 얻으며 용기를 키우며 고민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생동감 있게 펼쳐져 이야기 속에 쏙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의 이야기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앞이야기'로 시작된다. 한밤중, 깊은 잠에 빠진 도깨비 아무거나를 찾아 한 장의 종이 쪼가리가 날아든다. 그런데 이 종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바로 어쭈 도사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앙숙 관계인 두 존재의 특별한 사연이 앞 이야기에서 밝혀진다.

과거, 어쭈 도사는 아무거나를 골탕 먹이려다 오히려 이야기 내기에 휘말려 자신도 모르게 비밀을 술술 털어놓고 만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다름 아닌 산신령들의 비밀이었다는 거다. 결국, 어쭈 도사의 말은 대나무를 타고 퍼져 나가 산신령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그날부터 그는 산신령을 피해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이 사건 이후, 아무거나와 어쭈 도사는 서로를 골탕 먹이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앙숙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어쭈 도사는 한밤중 아무거나 문방구에 몰래 침입해 아무거나가 모르는 사이에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계약서에는 도사가 휴가를 떠나는 동안 아무거나가 도사의 집을 청소하고, '얼씨구나 그림 족자'를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조건이 적혀 있다. 언제나 똑 부러지고 유능한 모습이었던 아무거나가 어쭈 도사의 꾐에 빠져 억울해하는 장면이나, 티격태격하며 보여 주는 이 둘의 앙숙 케미는 예상치 못한 웃음을 선사하며 우리를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제일 처음 나오는 '어쩌다 빨간부채 파란부채 세트'이야기의 주인공 지희는 예전에 아무거나 문방구에 갔을 때 '어저다 빨간부채 파란부채 세트'를 손에 넣게 된다. 부채를 휘두르면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에 빠진 지희는 몸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하며 장난을 치면서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하지만 장난이 지나쳐 결국 개구리에게 통째로 삼켜지는 예상치 못한 위기에 처하고 만다. 오빠 지우는 지희를 구하기 위해 개구리를 데리고 아무거나 문방구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지희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고서야 아무거나 문방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개구리 배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아무거나 문방구' 시리즈는 느닷없는 마법으로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기존의 판타지 동화와는 차별하된 구조로 주목 받았다. 아이들은 문방구를 찾아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 아무거나는 단순히 어린이의 마음을 읽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자신들의 고민과 마주하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에 가깝다. 문방구에서 얻은 신비로운 물건들 역시 고민 해결의 직접적인 열쇠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직면하도록 돕는 매개체일 뿐이다.


이 책에서도 지희 외의 다양한 어린이 손님들이 '구구절절 옛이갸기 물건' 코너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물건을 발견한다. 거짓말이 습관이 된 승우는 그림을 그리면 무엇이든 진짜로 만들어 주는 '알쏭달쏭 요술붓'을, 인기를 얻고 싶은 주아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단방귀 젤리'를, 친구의 새 물건을 탐내는 동화는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얼씨구나 그림족자'를 손에 넣는다. 이들은 마법 같은 물건 덕분에 순간적인 즐거움을 느끼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문방구를 찾아와 아무거나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처럼 아무거나 문방구는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특별한 장소가 된다.


그리고 본문의 이야기가 끝난 후 부록처럼 실린 '도깨비 이야기 장부'는 1권과는 달리 미래를 살아가는 아무거나의 모습을 재미있게 담아 읽는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앞으로 또 어떤 손님들이 아무거나 문방구를 찾아와 이야기를 펼치게 될 지 너무나 기대되는 <아무거나 문방구 시리즈>의 3권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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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과학자 - 망망대해의 바람과 물결 위에서 전하는 해양과학자의 일과 삶
남성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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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과학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게 된 책이다. 과연 해양과학자의 삶은 어떠한 모습인지, 그리고 바다 위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는 과연 무슨 일을 할지 너무 궁금했다. 우리가 푸른 행성이라 부르는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는 여전히 신비로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인류는 달에 발자국을 남겼지만, 바닷속 깊은 곳을 탐사한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바다는 기후를 조절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며, 수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지만, 우리는 바다가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이 책은 75회 이상 승선 조사를 경험한 해양물리학자 남성현 교수가 직접 바다로 나가 탐구한 바다의 진짜 모습을 담고 있다. 거친 파도와 태풍을 마주하며 관책해온 연구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바다라는 거대한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흥미진진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듯하다


이 책은 우리가 바다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바다의 극히 힐부분에 불과하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한다. 해변에서 눈으로 보이는 영역은 바다의 끝자락일 뿐, '진짜 바다'는 수평선 너머로 펼쳐진 광활한 공간이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거대한 물순환과 기후 조절을 담당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태평양만 해도 지구 표면의 3분의 1을 덮을 만큼 광대한데, 그 속에는 미생물과 플랑크톤부터 거대한 고래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며 복잡하고도 풍부한 해양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바다는 단순한 물의 집합이 아니라, 지구 전체와 연결된 생명과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변화하는 존재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아본다.


그리고 이 책은 바다 연구가 단순한 학문적인 연구를 넘어 예측할 수 없는 생생한 경험임을 보여준다. 연구를 위해 깊은 바닷속에 설치한 센서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어와 마주하는가 하면, 망망대해에서 몇 달씩 생활하면서 뱃사람과 같은 감각을 익여가는 저자의 여정이 아주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문어잡이 배부터 거대한 쇄빙선까지, 국내외 다양한 선박을 타며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심지어 남극까지 탐사하며 바다를 연구해왔다. 배 위에서의 생활은 단순한 과학 연구에 그치지 않는다. 태풍을 피해 열린 바베큐 파티, 흔들리는 배 안에서 안전하게 잠는 법, 예상치 못한 해양 생물과의 조우 등 오직 바다 한가운데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들이다. 또한 연구 과정에서 어촌 주민들의 도움을 받거나 어업 활동을 돕는 등 과학자의 삶과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습도 꽤 인상적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바다를 연구하는 일이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지구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바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인생에 대한 성찰로 확장한다. 높은 파도를 만나 몸을 가누기 어려운 순간이나, 태풍이 지나간 후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인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해양과학자로서 인생을 파도에 빗대어 말한다. 파도는 서로 다른 바닷물이 만나며 생겨나고, 결국 조화를 이루면 사그라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각자의 파장이 있으며, 잘 맞으면 조화로운 관계가 되고, 맞지 않으면 거친 물결처럼 충돌하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하나의 웨이브로 그려보며, 해양과학자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흐름을 성찰하는 데 이러한 시선은 꽤 신박하면서도 공감이 되어 나 역시 나의 삶에 대해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책은 해양과학이 단순한 학문적 탐구를 너머, 기후변화와 해양 주권이라는 중요한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2022년과 2024년 동일한 해역에서 승선 조사를 수행하며 직접 이상기후를 경험했다. 불과 2년 만에 극적으로 변화한 강우량은 바다가 기후 조절자로서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바다와 대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담수, 열, 기체 교환은 지구 기후 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를 연구하는 것이 기후 위기의 해결에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해양 연구의 필요성과 우리나라 해양 주권 문제를 강조한다. 국토 면적의 4배가 넘는 해양 영토를 지닌 한국은 해양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할 시대에 접어들었다. 조선시대 문순득이 바다를 통해 여러 나라를 떠돌았던 사례를 통해, 해양이 문화, 경제,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한반도 주변 해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바다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필수적임을 역설한다. 기후 위기 시대, 그리고 국제적 경쟁이 격화되는 지금, 바다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일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우리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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