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부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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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추리소설 작가

일본 미스터리·추리소설계의 거장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수도 없이 존재하였습니다.

바로

'에도가와 란포'.

그의 이름을 딴 '에도가와 란포 상'은 현재까지도 일본 추리소설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저는 그의 이름을 딴 상을 받은 작품들은 읽어보았지만 막상 그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의 작품을 만나고자 합니다.

왜 이번이었을까...?

그의 진정한 매력은 미스터리를 가득 머금은 단편 기담에서 더 빛을 발한다고 하였기에 이 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란포 세계'

직접 경험해 보겠습니다.

이 책을 덮은 후, 당신은 섬세하고 기괴한 매혹에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에도가와 란포가 초대하는 서늘한 물살 속에서

한 줄기의 땀이 등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오싹함에 사로잡히다

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책 속엔 1924년 발표된 <쌍생아> 부터 1931년 발표된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 까지, 에도가와 란포만의 그로테스크하고 잔혹한 상상력으로 쓰인 기담 16편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히 잔혹하고 기괴한 기담을 넘어서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처절한 내면이 담겨있었던 '란포 세계'.

그래서 마냥 섬뜩한 것이 아닌 끔찍한 우리의 본모습에 치가 떨렸었습니다.

첫 이야기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 형을 죽이고 형 행세를 하며 계속된 살육을 벌이는 남자의 이야기인 <쌍생아>.

결코 형을 원망해서가 아닙니다. 악인으로 태어난 저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저 쾌락을 얻고 싶은 마음뿐이었지요. - page 13

형을 죽인 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시하는 그.

하지만 저로서는 형제이기 때문에 도리어 죽일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경험이 있으실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간에게는 자신의 혈육을 증오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 감정에 대해서는 소설책 같은 데서도 자주 나오는 걸 보면 오직 저 혼자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 것 같은데, 타인에 대한 그 어떤 증오보다도 한층 더 견딜 수 없는 종류인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저처럼 얼굴까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의 경우에는 정말이지 극도로 참을 수 없어지는 것입니다. 딱히 어떤 이유가 없더라도 그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혈육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죽이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 page 17 ~ 18

범행에 대해 합리화시키며 '지문'을 이용한 트릭.

결국 자신임을 밝히게 된 어리석음에...

그리고 살인이나 죽음이 깃들지 않더라도 강렬했던 <인간 의자>.

여류 작가에게 한 통의 편지(?)가, 아니 원고가 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제목도 이름도 없이 갑자기 '부인'이라는 호칭으로 시작되는데...

어쩐지 기묘하면서도 불길함 예감이 들었지만 그런 면이 도리어 호기심을 자극해서 읽게 됩니다.

보기 드문 아주 추악한 얼굴을 가진 그.

전 어째서 이토록 죄 많은 사람으로 태어났을까요? 왜 이렇게 추하게 생겼으면서도 가슴속으로는 남몰래 격렬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걸까요? 괴물 같은 얼굴에다가 지지리도 가난한 직공에 지나지 않는 제 현실을 잊고 당치도 않게 달콤하고 호사스러운 온갖 '꿈'들을 그리고 있을까요? - page 88

그리곤 엽기적인 행위를 하게 되는데...

바로 의자 속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신기하거나 기이하거나 기분 나쁜 갖가지 경험을 했지만 결국 이렇게 글을 쓴 목적이 있었으니...

부인이 의자 속에 있는 저의 존재를 의식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염치없는 소리지만 저를 사랑해주셨으면 하고 바랐답니다. - page 105

까악!

소름 끼친 대목.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나머지는 직접 읽어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충격적이었던 <애벌레>.

전쟁으로 인해 팔다리가 모두 잘린 채 마치 살덩이로 만든 팽이처럼 몸을 들썩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군인.

불구자가 된 자신을 보살피며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처절한 육욕에 빠져버린 아내.

그런 아내를 향해

'용서해'

라며 가타카나 석 자를 남긴 채...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그 황급한 순간에도 도키코는, 칠흑 같은 밤에 애벌레 한 마리가 마른 나뭇가지를 기어 다니다 가지 끝에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 하니 바닥 모를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마치 환영처럼 그리고 있었다. - page 313

아내에게 남긴 이 메시지.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생의 아이러니가 불쾌함이나 그로테스크한 것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인간의 불온한 내면과 불안한 시대상을 촘촘하게 엮어 구축한 '란포 세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짜릿하고도 진한 울림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미스터리하고도 기괴한 기담들.

우리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내면엔 누가 있는지...

순간 소름이 끼쳤습니다.

서평단 이벤트에 참여하여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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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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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가치 읽는 독서에서 핫한 이 책.

마냥 핫하기만 했다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텐데 사람들의 평도 좋았었습니다.

그렇다면 읽어야지!

『훌훌』 로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과 제14회 권정생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이룬 '문경민' 작가.

"쉽사리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의 덩어리들을 정확하게 표현" _유영진,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심사평

한다는 평을 받는 그가 이번 책에서도 수많은 감정에 이름을 붙이며 변화무쌍한 청소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데...

저에겐 그와의 첫 작품인 이 책.

어떨지 기대되었습니다.

하고 싶다,

되고 싶다,

먹고 싶다, 같은 모든 욕심이

무너지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복어



내 별명은 청상가리. 조폭은 아니다. 자현기계공고 하이텍기계과 2학년. 키는 164cm에 몸무게는 55kg. 김두현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간혹 뒤에서 나를 청산가리라고 부르는 놈들이 있다. - page 5

금강복집 손자인 두현.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청산가리를 먹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실로 인해 그의 별명이 된 청상가리.

그런데 두현은 스스로를 '복어'라고 칭합니다.

왜...?!

겉보기에는 온순해 보이지만 입안에 니퍼 같은 이빨이 있고 내장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어서였다. - page 24

사실 엄마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걸 알았을 때,

아버지가 엄마에게 내던진 말을 기사로 읽었을 때,

두현의 마음에는 복어의 독보다 더 진한 독이 맺혔습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제든 뜨끈한 복국을 내어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곁에 있었기에,

그리고 어떤 문제든 같이 마음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준수가 있었기에

소박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쇠를 깎는 밀링을 배우며 미래를 탐색하던 두현과 준수는 인문계에서 전학 온 재경이 귀금 코리아 장귀녀 사장에게 맞서는 모습을 보며 사회로 나가게 되면 벌어질 일들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현장 실습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재경의 오빠 재석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끝까지 시위를 벌이는 재경.

"당신 같은 사람들이 노동자를 죽을 곳으로 몰아넣는 거야."

떨리는 재경의 목소리가 집 안 공기를 휘어잡았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용광로에 사람을 떨어뜨리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사람이 끼여 죽게 만드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이 콜센터 직원을 자살에 내몰리도록 내버려두고, 현장 실습생이 배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가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상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라고,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할 자유를 허락해 주니 얼마나 고맙냐고 떠드는 거야. 뻔뻔하고 파렴치하게." - page 107 ~ 108

그리곤 '돈이 최고라고 떠드는 이 후진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던집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현실은

흘러가는 시간을 느낄 때마다 초조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압박감은 결정을 해야만 해소될 수 있었다. 재경의 말마따나 우리는 시간 부자였지만 시간은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에 떠밀려 간다는 점에서 세상 모두는 평등했다. - page 133 ~ 134

더없이 가혹하기만 하였습니다.

10월이 되면서 두현은 마음을 다잡지 못합니다.

엄마의 기일이 있는 달이자 감옥에 간 아버지의 출소일이 머지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두현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준수와 재경을 보며, 이제 자신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면하고 무마하려 했던 비극적인 가족의 진실과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 결심하게 됩니다.

이제 아버지에게 갈 차례였다.

운명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은 존재했다. 조건에 매여 살고 싶지 않았다. 조건이 자격은 아닐 것이다. 잘 살아갈 조건, 행복할 조건 같은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잘 살 자격, 행복할 자격 같은 말에는 '뭐라는 거야?' 하며 눈을 치뜰 것이다. - page 185 ~ 186

세상살이는 버겁고 회복은 더디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결심한 두현, 준수, 재경.

이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봅니다.

슬픔이, 좌절이, 원한과 분노가 삶의 힘이 되기도 한다.

영혼을 잠식했던 독이 두현의 에너지가 되었길 빈다.

그렇게 길러진 야성으로 두현은 만만치 않은

세상을 마주할 것이다. _ 문경민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기대하는 것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일터에서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두어 명은 있었으면 했다. 억지로 근무 시간을 채우기보다는 내 몫을 확실히 할 수 있으면 했다. 이것이 나의 욕심이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하나 더 더하자면 세상을 밝히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page 186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이 역시도 우리에겐 희망이라는 사실이 더 안타까울 뿐이기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어른들의 몫에 대해 또다시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복국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뜨끈하고 말간 국물.

시원한 미나리 향.

저도 복국을 먹으며 한껏 날아오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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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편지
찰스 디킨스 외 지음, 홍수연 외 옮김 / B612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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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재치 그리고 비애를 적절히 혼합해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찰스 디킨스'.

그의 이름을 보자마자 이 소설을 덥석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니 이 소설은

찰스 디킨스윌키 콜린스의 콜라보 추리소설!

이라 하였습니다.

윌키 콜린스...?!

솔직히 몰랐었는데 그는 『흰옷을 입은 여인』, 『월장석』 을 비롯한 다수의 소설을 남겼고, 『월장석』 은 현대 추리소설의 시초이며, 현대 추리소설의 기본 규칙을 확립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니... 이리도 대단하신 분이셨다니...!

이렇게 또 한 분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두 거장의 콜라보 추리소설!

잔뜩 기대감을 안고 읽어보았습니다.

아직 현대 추리소설의 체계가 잡히지 않은 시기,

영문학의 두 거장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는

지워진 편지 속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낼까?

사라진 5백 파운드의 행방을 찾아라!

바다에서 온 편지



책장을 열어보니 두 거장이 주축이 되어 여러 작가들이 공동 집필한 작품이었습니다.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

사실 『바다에서 온 편지』 의 영문판은 무수히 많은 해외 출판사에서 발행해 판매되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원본에서 3장과 4장을 뺀 1, 2, 5장만을 책에 싣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온전히 디킨스가 쓴 글만을 선별해서 출간하려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는데...

하지만 이 책은

국내 최초 완역본!

이라는 것.

그래서 더 의미 깊었습니다.



치렁치렁한 푸른색 코트와 푸른색 바지를 입은 조르간 선장.

선장은 자신의 길고 치렁치렁한 푸른색 코트 가슴팍에 난 깊은 주머니에서 단단한 사각병을 꺼내게 됩니다.

그리고 운을 띠우는데...

"고향으로 향하던 내 마지막 항해에서." - page 30

남미에서 리버풀로 향하는 마지막 항해에서 거센 폭풍을 마주하게 된 그.

폭풍에 실려 표류하고 또 표류하던 중 어떤 섬을 마주하게 됩니다.

섬을 탐색하던 중 바깥쪽 암초 안 해초 더미 속에 병을 발견하게 되는데...

"지금 보고 있는 바로 이 구겨지고 접힌 종이를 발견했네. 보다시피 그 바깥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네. '이것을 발견하는 누구라도 고인이 정중히 부탁하니, 내용을 읽지 말고 영국 북데번주 스티프웨이스에 사는 알프레드 레이브록에게 전해주시오.' 성스러운 임무지." - page 33

그리하여 조르간 선장은 알프레드 레이브록에게 건네주었고

"이건 불쌍한 제 형의 필체예요!" - page 33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데 '불쌍한 아버지의 5백 파운드'라는 대목을 가리킨 젊은 레이브록.

"전 아버지가 이 돈과 관련해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을, 혹은 상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형이 바다 무덤에서 도난당한 돈이라고 엄숙히 경고한 마당에." - page 38

진상 규명을 하고자 젊은 레이브록은 떠나게 됩니다.

조르간 선장과 함께.



그러다 이들의 여정 중 뜻밖의 일을 마주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알프레드!" 내가 말했습니다. "나를 알아보겠어?" 동생의 내면에 설명할 수 없는 억눌린 공포가 있는 듯했고, 내 목소리가 그 공포를 불러일으킬까 봐 두려웠습니다. 나는 재빨리 동생의 손을 잡고 다시 말했습니다. "알프레드!" 내가 말했습니다... - page 170

죽은 줄 알았던 형을 마주하게 되고 아버지의 명예와 5백 파운드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얽히고설킨 이들의 이야기.

그럼에도 결론은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야기.

책장을 덮고 나서 피식 웃음이 났었습니다.

이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 안에 4~5개의 이야기가 포함된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했습니다.

중심 이야기는 사라진 5백 파운드에 대한 행방을 찾는 과정이고, 그 과정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족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4~5개의 액자소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가족과의 이별, 외딴 여관에서 발생한 기묘한 사건, 산행 중 발생한 사고, 배의 ㄴ난파 사고로 인한 고립 등 일상생활과 갑자기 분리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라든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자발적 분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오는 문제점들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뒤틀림까지...

이 얇은 소설 속에 압축되어 있었던 모든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 지리적 분리나 물리적 고립,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소통의 단절이 진실을 얼마나 모호하게 하는 최악의 악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추리소설의 틀이 잡히지 않았던 시대의 글이었기에 감안을 하고 본다면 아마도 짜릿한 매력을 지녔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저는... 뭐... 그랬습니다.

그리고 1, 2장을 읽고 난 뒤 3장의 이야기를 마주했을 때...

음... 뭐지?!

마치 폭풍에 실려 표류하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다행히 4장에서 무사히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1, 2, 5장만 실은 책이 많다고 했던 말이 이해되었고...

그럼에도 완역본을 읽어야만 느낄 수 있는 저자의 의도를.

누군가 이 소설을 읽는다면 꼭 완역본으로 읽어보길 권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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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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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 '카를로 로벨리'.

그가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화이트홀'이라는 미지의 세계, 지속적인 불확실성에 대한 실체를 추적하였다고 합니다.

이미 현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주요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며 극찬하였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이 책이 끌린 건 그의 책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랄까.

전에 그의 책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읽었었는데...

과학이지만 아주 쉬운 설명과 비유, 명쾌함, 문장에 깃든 아름다움까지...

여느 문학 못지않았기에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었고 그만큼 이번 작품 역시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현재 진행 중인 모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여행의 시작이 그러하듯, 어디로 이어질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첫 미소에, 우리가 어디서 함께 지내게 될지 물을 순 없으니... 나는 비행 계획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블랙홀의 지평선 끝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서는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그러고 나서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처럼 바닥을 통과해 다시 화이트홀로 나옵니다. 거기서 우리는 시간이 거꾸로 가면 어떻게 되는지 묻습니다. 몇 초이지만 몇 백만 년이기도 한 시간이 지난 후, 또는 이 얇은 책을 읽는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마침내 다시 나와서 별들을 봅니다. 우리가 보던 별들입니다.

따라오시겠습니까? - page 14 ~ 15

네!

따라가려 합니다.

현실의 맨 가장자리로 떠나는 숨 막히는 여정

인간의 방정식이 작동하지 않는 그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화이트홀



화이트홀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블랙홀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했습니다.

빅뱅 이후 우주 공간을 떠다니던 거대한 수소 구름은 자체 중력에 이끌려 밀도가 높아지고 수축합니다.

그러면서 가열되고 발화하여 태양과 같은 별이 되는데, 별은 구성 성분인 수소를 연소시켜 헬륨으로 바꿉니다.

이 연소로 인해 발생한 열이 만들어낸 팽창력이 별의 무게와 균형을 이루어, 별이 자신의 무게로 짓이겨지는 것을 막습니다.

이런 식으로 별은 수십억 년 동안 계속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기에...

결국 수소는 모두 소모되어 더 이상 타지 않는 헬륨과 다른 재로 변하게 됩니다.

별은 중력의 영향을 버티지 못하고 압축 붕괴하면서 '블랙홀'이라는 거대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별의 물질은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 가라앉는데 이때 별이 지녔던 에너지는 호킹 복사로 인해 점점 사라져갑니다.

블랙홀 속 별의 물질은 호킹 복사로 에너지를 계속 소진하고 동시에 점점 더 압착되어 끊임없이 작아지면서, 블랙홀의 공간과 시간을 깔때기 모양으로 왜곡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과정이 무한히 지속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별의 물질도, 블랙홀도, 공간과 시간도 결국 모두 파괴되어 결국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블랙홀의 종말을...

하지만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압착되어 작아지다 사라질 것 같았던 물질은 공간과 시간의 양자적 구조에 의해 더 이상 작아질 수 없는 공간의 최소 크기에 도달하면서 압착을 멈춥니다.

별의 물질도 최소 크기에 머무는데 이를 '플랑크 별'이라 하고 플랑크 별은 양자적 특성을 지니면서 양자 터널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양자 전이 하는데, 그 다른 세계가 바로 '화이트홀'이라 하였습니다.

만약, 블랙홀이 여정의 끝에 도달해 공처럼 튀어 올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이전에 지나온 길을 되돌아 간다면... 그것은 화이트홀로 변한 것입니다. - page 88

그는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하여 블랙홀의 종말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화이트홀로 환생하며 끊임없이 순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좀 더 확장시켜

인간은 우주 안에서 비록 미미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우주의 일부이므로

우리의 삶 역시 탄생과 죽음으로 일단락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처럼 어쩌면 그 너머로까지 이어져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공간과 시간,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실재와 관계를 맺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실재는 '그것'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서정시인들이 달에게 말을 걸 때처럼 말입니다. 《정글북》에서는 모든 동물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외침을 주고받죠.

"당신과 나, 우리는 같은 피를 나누었다."

나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를 항상 '당신'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물과 하나임을 인정하는 그런 '당신'이죠. 당신과 나, 우리는 같은 피를 나눈 것입니다. - page 173 ~ 174

라며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를 또다시 시작하고자 하였었습니다.

읽는 내내 황홀하였습니다.

깜깜한 우주 속에서 희미하지만 명확한 빛들 사이에서 결국 우리 모두 이어졌다는 이야기.

그 어떤 이야기보다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시간'의 의미가 우주 속에서 바라보니 무의미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연구한다는 것이 그것과 관계를 맺는 일이라는 점에서 친밀함마저 느껴졌었습니다.

그래서 더 우주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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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피도크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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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체가 딱!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역시 '피도크' 작가님이셨네요!

그다음에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나기...!

아이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막상 저는....

하하핫;;;

책 소개 글을 보니 아이보다 저에게 더 필요한 그림책이었습니다.

비를 두려워하는 아이.

같이 용기를 내볼까 합니다.

"인생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거야"

소나기



오늘은 소나기가 올 거야.

여기 비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발걸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한 아이.

갑작스러운 비에 옷이 젖고, 감기에 걸리기 전에 '우산'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도통 우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동물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것을 말하는데...

그때 하늘에서 구름이 구겨지는

소리가 나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어.

그래서 아이는 결심하게 됩니다.

그래!

우리가 우산을 만드는 거야!

동물 친구들과 완성한 우산.



얼기설기 엮은 나뭇잎 우산이 비를 막아 줄 리 없고...

결국 비에 쫄딱 젖게 된 아이.

그런데 비에 젖고 나니 아이는 깨닫게 됩니다.



빗속에서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알았거든.

그렇게 비를 두려워했던 아이는 빗속에서 행복해하고, 두려움을 이겨내었습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엄마! 나도 비 오는 거 좋아하는데!

빗물 소리도 좋고 맞으면 시원하고!

물웅덩이에 첨벙 거리는 거 재미있어!"

하며 다음에 비가 오면 우산을 쓰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면서 저는 속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다 감기 걸리면...

이 그림책에서는 '시작'이라는 두려움 앞에 선 모든 이들을 위한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처음'이라는 거...

기대와 설렘도 있겠지만 불안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다 큰 어른(?)인 저도 그러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기에!

도전 앞에 웅크리지 말고 용기를 내 보는 것!

아이뿐만 아니라 저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이 두려워 주저하는 이들.

그들의 용기에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건네며...

저도 가슴속 깊숙이 간직했던 것들을 조심스레 꺼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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