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베이컨, 자코메티, 호안 미로, 앙리 미쇼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고통스러우면서도 빛나는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삶이 곧 그의 작품이며, 그의 작품이 곧 그의 삶이다. - page 12
삶과 예술은 서로 미묘하면서도 때로는 자기 성찰적으로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해석을 경계하고
예술가의 성장 환경, 생각, 삶의 태도, 인간관계, 창작 과정, 예술관 등을 살펴봄으로써
개인적인 삶이 어떻게 예술과 얽히는지를 탐구하고
예술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한 미학적 매개체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중요한 방식임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이들의 이야기는 다시 만나면서 역시나!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이들의 이야기는 뭉클함에, 찬란함에 감탄을
그렇게 이들의 이야기들로부터
예술이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음
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몇 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피카소의 그늘에 가려진 예술가 '도라 마르'
주체적인 성격과 냉정한 지적 식견을 지녔던 그녀는 피카소의 뮤즈와 연인으로 서로에게 시너지를 주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 그녀는 우는 여자야. 수년간 나는 그녀를 고통받는 모습으로 그려 왔어. 그렇다고 사디즘적 관점에서 그리거나 즐거운 마음으로 그린 건 아니었어."
결국 피카소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수도사에 가까운 삶을 살아간 도라.
많은 이들에겐 우는 여자로 기억되어버린,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갔던 도라 미르.
그녀의 침묵이 그랬듯 그녀의 인생이, 작품이 이제는 그늘에서 벗어나 알려지길 바래봅니다.
교양과의 전쟁 '장 뒤뷔페'
'피카소가 20세기 전반기의 상징이 되었다면 앞으로는 그가 20세기 후반기를 대표하는 상징이 될 것이다.'
보통 사람의 가슴에 바로 가닿을 만한 미술품을 만들고자 했던 뒤뷔페.
그래서 주류의 미술이 아닌 비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며 순수하고도 독창적인 자신만의 미술사적 길을 창조하였는데
"예술을 향한 인간의 욕구는 절대적으로 원시적이며,
빵을 갈망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이다.
빵이 없다면 굶어 죽겠지만
예술 없이는 지루해 죽는다."
예술에 대한 틀을 깨주었던 장 뒤뷔페.
그의 작품이 지금의 저에게도 울림을 주는 건... 마음이 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 이후의 창작 '조란 무시치'
레지스탕스 일원과 가까이 지내는 것과 그의 정치적 성향을 암시하는 다른 행동이 더해져 결국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트리에스테의 감옥에 수감된 뒤 다하우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던 그.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끔찍한 상황 속 그가 경험한 모든 고통과 치욕 중에서도 그를 괴롭히며 끊임없이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극적 우아함'
다하우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무시치의 작품이 그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과장된 표현도, 복수심이나 분노의 흔적도 없다. 무시치는 그저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일어난 일이야. 일어나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일어나고 말았어." 사실을 전하지만 이야기로 풀어내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지휘관, 감시탑, 가스실, 생석회 무덤 같은 구체적인 장면을 묘사하지 않는다. 오직 이름 없는 시체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희생자들만이 놀라울 만큼 절제된 화풍으로 그려졌다. 마치 극도로 조용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소멸된 존재는 거친 결이 드러나는 캔버스의 표면에 희미한 흔적을 남길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감상자에게 '우리가 마지막이 아니다'라는 절대적인 진리이자 강렬한 경고를 남긴다. - page 294 ~ 295
과거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역사적 기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주었던 조란 무시치.
그의 메시지가 지금의 우리에게도 굵게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책을 통해 여럿 예술가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지만...
그들의 작품도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사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작품을 찾아 감상하는 시간이 더 걸렸다는...!)
예술가의 목소리는 그 시대에 그치지 않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감상을 넘어선 그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