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안에서 떼굴거리다가 EBS에서 하는 '페인티드 베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옛날에도 한번 봤었는데, 
그때는 줄거리를 따라 가느라 몰랐는데,
다시 보니, 풍광이 끝내준다.
언제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장가계'를 한번 가보고 싶다.

영화는 책 보다 많이 순화시키고 둥글린 느낌이다.
인상깊었던 대사가 몇 있었는데,
"여자는 남자의 장점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는 않죠."
가 기억에 남는다. 

날 돌아보면,
사랑을 하는 데,장점이나 단점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라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위는 없다.
그냥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그렇게 그렇게 흘러간다.  

영화에서는 남자가 죽으며 여자에게,
"용서해 줘."
"당신은 잘못한게 없어요."
이런 대화가 오가는 데,
서머싯 모옴의 원작에선
"죽은 것은 개다."
이랬던 걸로 기억된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사랑했어.
당신이 목적과 이상이 쓸데 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먹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해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자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
                                                          서머싯 모옴의 <인생의 베일>중에서, 

이쯤되면 남자의 절절함에 가슴이 메어진다.

















 
그래서 올리버 골드 스미스의 시를 찾아 보다 만난 책 한권. 

 

 

 

 

 

가끔 '칼데콧 상 수상작'이라는 그림책을 보곤 하지만,정작 '칼데콧'의 그림책을 본 기억이 없었던 내게 이 책은 여러가지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 어렸을 때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의 그림들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칼데콧'풍의 그림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충격이었다.

책은 그림책이어서 몇장 되지 않아,쉽게 읽혀지지만 '생각하는 동화'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는 그림이 글의 부속물 정도로 여겨지던 틀을 벗어나 그림이 책의 주인이 되어 이야기를 설명하도록 하는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 냈습니다.따라서 그의 그림책은 글을 모르더라도 그림만 보고도 이야기를 이해하고 웃을 수 있습니다.'
라는 '작가소개'를 빌리지 않더라도,
그간의 내 습관대로 글로 내용을 파악하며 읽었을 때랑,천천히 그림을 음미하듯 따라가며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우선,그림에 두개의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화가가,사람들을 보는 시선과 개를 보는 시선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자기가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림이 터무니 없이 상상에 의해 그려지지도 않았다.

그림 속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이 일치한다.
한 남자가 있고,그 뒤를 따라 나오는 사람들의 복장이나 시선 등에도 일관성이 있다.
놀라서 도망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바람의방향, 뒷 남자의 쭈뼛한 머리까지 그려내는 것도 재밌고, 창문 안과 밖의 경계를 빗금 선으로만 표현해 내는 것도 놀랍다.
미친개 말고도 많은 개가 나오는 데,개의 종류나 표정이 다 다르지만,어느 하나 즐거워 하거나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마을에 나타난 개 한마리가,착한 남자에게 간택되어 졌다,관심 밖으로 밀려나고,질투심에 발광을 하고,버려지고 죽는...일련의 과정들이 그림들 안에 잘 녹아 들어 있다.
개는 그렇게 죽고 나서도,한 남자는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전 과정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처연해지기까지 하다.
작품해설에선,
"...어쩌면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말썽을 피우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하고 얘기해서,
미친개에게 일말의 책임을 지우려 하고 있지만 말이다.

개와 사람의 대비를 통해서 보여주려 한 것이 소통 부재-不通의 문제인것은 맞겠지만,
그 전에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자신의 평판이나 명성을 위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적절한 관심을 나눠줄 수도 없으면서 자신이 단지 외롭다고...개를 거둬 키우는 사람들에 관해서이다.

사랑이라는 허울 아래 자기 만의 방식으로 상대방과 소통하려 하는 것은,
사랑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통이 되는 것이다.

결국,시대를 막론하고 벽이나 베일,굴레를 떨쳐내고 소통하는 것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자신의 그릇을 과대평가하여 모두를 다 사랑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니까 말이다.

덧,
'로버트 F.영'의 단편선 <민들레소녀>를 읽고 있다.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편집장이었던 시절에 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사랑으로 글을 쓴다네." 누군가는 지체없이 이렇게 톡 쏘아붙였다. "잉크로 쓰는 게 나을 텐데."
로버트 F.영은 그 둘을 다 쓰곤 했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사물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단다.  
'난 마흔네 살이야! 저 소녀는 스무 살도 안 된 것 같은데,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12쪽)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해서 심난해 할 필요가 없다.
정말 제목 같은 풋풋한 결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살짝 가볍다.
화씨451의 그 소녀가 생각나는 건, 왠일인지 모르겠다.


댓글(3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2-13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12-13 23:50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긴 글을 꼼꼼히 읽어줬다는 얘기잖아.
내가 이리저리 널뛰기를 잘한다는 걸 암시롱~~~^^

'민들레소녀'의 결말까지 얘기해야 '어떤 사랑법'을 깔끔하게 매듭지을 수 있는데,
'민들레소녀'가 최신간이라서 내가 뭐라뭐라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해 버렸어요.
(그러니까,솔직히 나도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잘 모르겠어~ㅠ.ㅠ'속닥')

반딧불이 2010-12-13 23:48   좋아요 0 | URL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을 좋아해서 영화를 보고 장가계도 다녀왔어요. 영화속 풍경이 훨씬 더 아름다운건 엇갈린 사랑이지만 거기 두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sslmo 2010-12-13 23:54   좋아요 0 | URL
전 나오미 왓츠보다 에드워드 노튼이 좋아요.
장가계도 다녀오셨다구요, 부러워라~

"영화속 풍경이 훨씬 더 아름다운건 엇갈린 사랑이지만 거기 두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 구절 엄청 좋아요, 님의 해석의 깊이도요~^^

지나가다 2010-12-14 00:4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인용하신 부분은 인간의 굴레가 아니라 인생의 베일에서 나옵니다.
잠깐 착각하신 듯해서요. ^^;;

sslmo 2010-12-14 01: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잠깐 착각이 아니고,완전 착각하고 있었어요.
전 왜 페인티드 베일을 <인간의 굴레>라고 제 맘대로 해석했었는지요~ㅠ.ㅠ

웽스북스 2010-12-14 00:49   좋아요 0 | URL
페인티드베일 영화로도 나왔구나... 생각하면서 보고 있는데,
아뿔싸! 본 영화였군요. 그러고보니 영화속 장면이 참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해요

영화보다는 책을 더 재밌게 봤었어요. 하필 딱 그런 시기에 그 책을 만났었네요.

그나저나, 저는 이놈의 정신머리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이러는지 ㅜㅜ

sslmo 2010-12-14 01:39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이놈의 정신머리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이러는지...예요.
저도 영화는 너무 둥글렸지 싶었어요.

음~저는 중국에 목마라 있을 때,이 영화를 만났었네요~

웽스북스 2010-12-14 09:53   좋아요 0 | URL
아 ㅋ 저는 인간의 굴레랑도 같은 지점이니까 통하는 면이 있는 작품이구나, 라며 멋대로 해석해버렸는데, (그건 못봤거든요) 착각하셨던 거로군요 ㅎㅎㅎ 그럴 수도 있죠. ㅎㅎㅎ

새해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어요 우리 ㅋㅋ

sslmo 2010-12-14 17:30   좋아요 0 | URL
새해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것도 중요한데,
전 선입견이나 매너리즘 속에 절 가두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또 하나 누군가 충고해주면...
감사하게 쿨하게 받아들이기...새해 목표예요~^^

Arch 2010-12-14 10:00   좋아요 0 | URL
분명히 페인티드 베일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잘 기억 나지 않아 서지 검색으로 책 내용을 다시 보고 왔어요. 그래도 역시 기억이 안 나요. 보다가 말았던 것 같기도 하고. 서지 검색한김에 남들 페이퍼까지 다 읽고 와서야 다시 양철 나무꾼님 페이퍼로 와서 댓글 달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서지 검색은 좀 위험한 듯 ㅡ,.ㅜ;;

저는 저를 끌어올려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에 빠져든적이 없어요. 맘을 읽는 것도, '느낌으로 아는 것'도 부족해요. 그게 좋지 않다는걸 아는데 바뀌지도 않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런 자기 인식이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아, 저는 왜 아침부터 이렇게 오지게 긴 댓글을 달고 있을까요.

sslmo 2010-12-14 17:33   좋아요 0 | URL
제가 Arch님의 오지게 긴 댓글을 사랑한다는 걸 안 선견지명을 가지고 계신거겠죠~

제가 페이퍼 중간에서도 밝혔지만, 전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그렇게 그렇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날 돌아보면,
사랑을 하는 데,장점이나 단점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라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위는 없다.
그냥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그렇게 그렇게 흘러간다.

그리고 감사드려요.
다시 되돌아와, 이렇게 긴 코멘트를 남겨주셔서~~~^^

2010-12-14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4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10-12-14 11:58   좋아요 0 | URL
저 인용구문 안의 구절...
누군가를 사랑하면 다 저리 되는것 같아요.

sslmo 2010-12-14 17:45   좋아요 0 | URL
아,잉크냄새 님~
저 요즘도 가끔 마실은 가는데...흔적을 남기진 못했어요.
제가 누군가는 이제 저렇게 사랑할 수 없는데,
님의 글들은 저런 마음을 담아 읽고 있지요~^^

그곳은 겨울도 덜 추운 건가요?
건강하세요~!!!

cyrus 2010-12-14 22:16   좋아요 0 | URL
민음사에서 나온 서머싯 몸의 작품들을 가지고 있는데, 읽어봐야겠네요.
영화도 보면 참 좋은데,, 못 본 것도 아쉽기만 하네요. ^^;;

sslmo 2010-12-16 01:01   좋아요 0 | URL
왠지 cyrus님은 이 책 읽으셨을 것 같았는데...가지고 계시기만 하시군여.
나중에 한번 보세요.
찐한 사랑도 해보시고 책도 읽어보고 하세요.
영화도 참 좋은데...영화 보면 중국이 가고 싶어져요~^^

순오기 2010-12-14 23:45   좋아요 0 | URL
예전엔-알라딘놀이에 빠지기 전- EBS영화 꼭 챙겨봤는데...이젠 잊고 살아요.ㅜㅜ
버림받은 개의 이야기는 찜해둡니다.

sslmo 2010-12-16 01:03   좋아요 0 | URL
전 평일엔 텔레비젼 잘 안보고,주말에 가끔 봐요.
EBS공감,영화...좋아해요.
'버림받은 개'는 '칼데콧'그림이니 한번쯤 봐 줘도 괜찮아요~^^

2010-12-15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6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0-12-17 00:10   좋아요 0 | URL
영화도 책도 아직 못 봤지만, 써머싯 모옴이라면, 관심이 갑니다.
아직 어렸을 때, 그의 단편들을 읽으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던 시절이 있었죠.

어쩜 양철나무꾼님은 이렇게 제가 솔깃할만한 책만 소개하시는지 몰라요!

여러모로 늘 고맙습니다!
책 빌려주신단 말씀 무척 고마웠습니다!
그 말씀 한마디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

sslmo 2010-12-17 01:58   좋아요 0 | URL
저랑 취향이 겹치는 부분이 있으셔서 솔깃하신가 봐여~
(바꾸어 말하면,님이 올리시는 글들도 제겐 '심히' 지름신 이십니다,ㅋ~.)

책은 제가 가진 책을 읽은 후 드리겠다는 거였는데,
벌써 공수를 받으셨다니...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죠~

2010-12-17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8 0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0-12-23 18:14   좋아요 0 | URL
전 영화도 책도 모두 아이들 위주로 가고 있는지라...
이젠 아이들이 방학이니 저의 세상으 끝입니다.ㅜㅜ

sslmo 2011-01-11 06:03   좋아요 0 | URL
아~ 님의 댓글을 이제 봤네요~ㅠ.ㅠ
저도 방학하고 싶어요.^^
지금 아이들과 더불어 많이 즐기세요.
저희 아들보면 방학이어도 하나 좋을 것 없더라구요.
어찌보면 더 바쁜 듯~

2011-01-10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1 0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영화 '빠삐용'을 보면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끝없이 집을 벗어나 자유를 꿈꾸는 영혼과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제 스스로 집을 짓는 영혼.
난 빠삐용을 보는 내내 끝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빠삐용(스티브 맥퀸)의 자유의지보다,
그곳이 감옥이든 무인도든 자신이 씨뿌리고 울타리를 지어 훌륭한 집으로 가꾸는 더스틴 호프만이 좋았다.
어쩌면 이 두 종류의 사람 유형은 둘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반드시 공존해야 되지 않을까?

암튼 어떤 기준으로 나누게 되든, 자기랑 다른 유형과 어울려 공존할 때...
개인적으론 눈부신 발전을 이룰 것이고,인류는 안녕과 평화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 좀 아팠던 터라, 내 화두는 심신의 건강과 안녕이었다. 
뭐,에너지 고갈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벽제 화장터에 가서 새것으로 개비해 올 수도 없는 고로 살살 달래서 쓰는 수준이었다.
그런데,히말라야를 욕심 부리고 그러고 동네 뒷산을 오르면서, 몸이 삐그덕거렸다.
이 정도도 움직여 줄 수 없으면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지 싶어, 커피를 끊은지 3주 정도 됐다.
이제는 내가 아파서 커피를 끊은 건지 커피를 끊어서 아픈건지 헷갈린다. 
위성 중계 방송을 볼때 처럼 세상이 반박자쯤 늦게 돌아가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세상이 낯설지 않은데, 세상이 나를 낯설어 한다. 

지허스님의 책 두 권을 읽었다.
<선방일기>와 <사벽의 대화>
지극히 소박하지만 큰 깨달음을 준다.
<사벽의 대화>를 읽으면서, 지허스님과 석우스님에서 왜 빠삐용의 그들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침묵하면서 시래기를 뒤적일 뿐이었다. 진리 앞에서 군말이 필요할까.(15쪽) 

하지만 이 비정한 자기 본위의 생활에 틈이 생기거나 흠결이 생기면 수도란 끝장을 알리면서 선객은 태타(怠惰)에 사로잡힌 무위도식배가 되고 만다.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게 비정할수록 견성의 길은 열려지는 것이다. 전후좌우 상고하찰(上顧下察)해 보아도 견성은 끝내 혼돈된 자아로부터 출발하여,조화된 자아에서 멈춰질 수밖에 없다. 견성은 끝내 자아의 분방한 연역에서 적료한 자아로 귀납되어야 한다.
비정 속에서, 비정을 씹으면서도, 끝내 비정을 낳지 않으려는 몸부림,생명을 걸고 생명을 찾으려는 비정한 영혼의 편력(모험)이 바로 선객들의 상태다. 진실로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적이어야 할 뿐이다. 모순의 극한에는 조화가 있기 때문일까.(30쪽) 

"정신을 지탱하는 것은 뭐요?" 
"그거야 육체지요."
"뿌리 없는 나무가 잎을 피우지 못하고 구름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는 않을 게요. 육체를 무시한 정신이 있을 수 있겠소?"
"육체가 있으니 정신이 있는 게 아니겠소. 어찌 상식 이하의 말을 하오. 정신과 육체의 우열을 가름하자고 하면서 말이오."
......시비는 가려지지 못한 채 끝이 났다.중생이 사는 세상에서 시비란 가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중생이 바로 시와 비로 구성된 양면적인 존재니까.(49쪽) 

"선객은 반드시 본능 억제를 행해야만 견성이 가능할까요?"
......"퍽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명제군요."
"명제가 아니라 문제지요.해답은 충분조건이 충족될 때 얻어지겠지요.어서 잡시다.다사(多思)는 정신을 죽이고 포식은 육체를 죽인답니다." (56쪽) 

나아가지 못할 바에야 제자리걸음이라도 해야 할 텐데.(98쪽) 

"나는 적멸을 모릅니다. 그러나 적멸은 문자로써 표현할 수 없으며 적멸을 말하면 벌써 적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적멸을 말함은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지껄였다는 만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성성(惺惺)히 오득(悟得)해야 할 뿐입니다.적멸이니 피안이니 하는 사치스러운 용어를 쓰는 것은 나의 노파심 때문입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끝까지 어휘로써 빌려 쓴 것 뿐입니다."(105쪽)
                                                                                    <선방일기> 중에서,

 

나는 한동안 피彼와 차此를 어름하다가 급기야는 누더기에 묻은 눈을 털고 다시 비탈길을 기어오르면서 '유야무야'라는 나의 화두를 붙잡아 들었다. 흔 눈이 유인지 내가 무인지.내가 유인지,흰 눈이 무인지. 심산의 정적에 포외감袍畏感을 느끼고 기갈에 허덕이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14쪽)

저는 큰 고기도 아니지만 큰물을 바라지도 않습니다.눈에 보이는 커다란 선은 다투어 행하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선은 다투어 외면하려 합니다. 그런가 하면 눈에 보이는 커다란 악은 다투어 없애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악은 그대로 방치하는 게 오늘알까지의 대부분의 인간입니다.
조그마한 선은 행할수록 큰 선이 되고 조그마한 악은 방치할수록 큰 악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려는 까닭은 인간악人間惡인 명리名利와 위선 때문이겠습니다.

신성할 성聖의 성인聖人이 신격화된 인간이라면, 이룰 성成의 성인成人은 인격화 된 인간입니다.이미 지나가 버린 성인聖人이 하늘에 복지福地를 창조한 인간이라면, 앞으로 올 성인成人은 땅 위에 복지를 건설할 인간입니다. 성인成人은 초인超人이 아닙니다.초인은 인간을 초월한 인간을 말합니다.그러나 성인成人은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초월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176쪽) 

                                                                                     <사벽의 대화> 중에서,

더불어 읽고 있는 책 한 권.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라는 책을, 앞에서부터 또 뒤에서부터 야금야금 읽고 있다.
이 책의 명성은 익히 들어알고 있지만,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니다.
아무래도 난 영혼의 구도나 자유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이렇게 머물러 안분지족하고 살고 싶은가 보다. 

어찌되었건, 역자후기의 '사서 보든 빌려 보든 베껴 보든 빼앗아 보든 훔쳐 보든!' 이란 제목은 도발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댓글(4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같은하늘 2010-12-09 02:37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려서 인사드리고 가려는데...
으악~~ 제게는 너무나 어려운 책들~~

sslmo 2010-12-09 14:59   좋아요 0 | URL
선방일기는 예쁜 그림이랑 어우러져 그리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훈훈한 책이예요.
사벽의 대화는 좀 재미없어요~('속닥')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전혀 어렵지 않아요.
막 재미가 붙었어요~

감은빛 2010-12-09 03:45   좋아요 0 | URL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던데, 궁금합니다.

이 글을 읽다보니, 예전에 읽다가 그만둔 <주역>을 다시 꺼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sslmo 2010-12-09 15:01   좋아요 0 | URL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감은빛 님께 강추해요.
주역은 좀 어렵잖아요.
이 책은 좀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건 맞는데,그걸 참 적절하게 얘기해요.

마녀고양이 2010-12-09 08:32   좋아요 0 | URL
몸이 약한가보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많이 아팠나봐요?
하기사 그정도로 자신의 심신을 혹사시키면 당해낼 자가 있을까요?
성취도 좋고 지식도 좋고 관계도 좋지만,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마세요. 사실 좀 불안불안하거든...
오늘은 잔소리 좀 합니다. ^^

그리고........ 글이 점점 좋아지는군요. 자연스럽고 깊이있고.
그에 비해 아직도 제자리에서 헤매는 듯한 내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집니다.
음, 동갑내기라 그런가, 나의 라이벌 의식(피식....), 또는 콤플렉스는 머지? 나두 이런 자연스러운 글을 써봤으면 하는 바램을 가집니다.

마녀고양이 2010-12-09 08:47   좋아요 0 | URL
참.. 나무꾼님.
제 페이퍼 댓글 음악 말이죠, 유튜브까지 가야만 들을 수 있구,
거기다 댓글 달기가 안 되여.

소스 복사로 그냥 넣으시는거죠? 역시나 알라딘 에러일까?
생일 축하 감사드려여~

sslmo 2010-12-09 15:32   좋아요 0 | URL
잔소리가 되게 달콤하게 들리는 걸요.^^
글을 좀더 응축시키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ㅠ.ㅠ

음악이 그랬군요,제가 확인할 때까지는 말짱했었는데...
알라딘 에러는 아닌 것 같고,
유튜브가 요즘 삐그덕거리더라구요~^^

hina 2010-12-09 09:32   좋아요 0 | URL
아프셨었군요... 저는 오늘 아침 피를 볼 일이 있었는데...
괜찮았다가 그 선홍색을 마주하니 아찔하던데요...
날씨가 추워지니, 겨울철 차량 점검하듯 자기 몸 점검도 해야겠어요.
대비도 좀 하고요...
매일 몸보신 하긴 어렵더라도, 매끼 식사 잘 챙기시고
잠도 충분히 주무시고요. 건강하세요,나무꾼님!

sslmo 2010-12-09 15:07   좋아요 0 | URL
네,,,좀...
크게 아픈 건 아니고 나이가 들어 삐그덕거린다고 해야 할까~~~^^

상처 치료 잘하셨어요?
쇠붙이나 그딴 것이었다면 파상풍 주사 맞아 주세요~!!!

느린산책 2010-12-09 09:41   좋아요 0 | URL
뭣보다 커피를 끊으셨다니..참참
조금 맘에 걸리네요..^^

sslmo 2010-12-09 15:08   좋아요 0 | URL
커피를 끊고 마음을 내 몸에 맞겨볼까 하구요~^^

stella.K 2010-12-09 12:5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전 아직 스티브 맥퀸이 더 좋으니 어쩌죠?
가끔 현실이 갑갑하고 짜증나고 화날 때 내가 아직도 살고자 하는 욕망이
남아 있더란 말인가? 낮설어지기도 해요.
너무 참고, 비우고, 안하고 살려고 했더니 내가 너무 없어져 버리더라구요.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이 나이 먹어 뭘 해보겠다고 덤비는 것도 그렇고.
생각해 보니 내 나이가 그렇더라구요. 뭘 하기에도 뭐하고, 안 하기도 뭐하고.
그냥 새장에 갖힌 새라고나 할까? 그래서도 스티브 맥퀸이 좋은가 봅니다.
커피 왜 끊었어요? 뭐든 지나치면 안 좋지만 1,2잔은 몸에도 좋지 않을까요?ㅋ

sslmo 2010-12-09 15:1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스티브 맥퀸도 있고 더스틴 호프만도 있어야 겠죠.

전 이 나이에,참고 비우고 안하고 살려고 하는 건...늦바람 뿐이에요,ㅋ~.

마노아 2010-12-09 13:19   좋아요 0 | URL
어제는 참다참다가 밤 11시에 커피를 한 잔 더 마셨는데 커피 중독이 새삼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커피를 끊을 정도라니, 많이 편찮으신가 걱정되어요.
커피 대신 다른 차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sslmo 2010-12-09 15:12   좋아요 0 | URL
대단한 건 아닌데...이렇게들 걱정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따뜻해져 기분이 좋은걸요.

님들의 위로가 제겐 커피 이상이예요~^^

oren 2010-12-09 13:35   좋아요 0 | URL
정신과 몸의 관계는 컴퓨터로 따지면 software와 hardware의 관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hardware가 제대로 따라주지 못하면 software도 함께 버벅거리더라구요. 양철님처럼 고난도의 software를 매일 매일 가동하시는 분들은 특히 hareware를 MAINTENANCE 하는 일이 무척 중요할듯 싶습니다.

<선방일기>와 <사벽의 대화>는 너무 수준이 높아 읽기가 겁나는데, 모터싸이클 관리술은 꼭 사서 읽어봐야겠다 싶군요. 좋은 글도 고마운데 좋은 책까지 소개해줘서 더욱 고맙습니다.

sslmo 2010-12-09 15:17   좋아요 0 | URL
oren님 제대로 이해해 주셨군요.

뭐랄까,그랬어요.
제 마음은 8이나 9쯤 운용하고 살고 싶어하는데,
제 몸은 그동안 2나 3에서 왔다갔다 했던 거예요.
산을 오르면서 제 몸을 5나 6쯤으로 회복시키고 보니,
그동안 제 마음을 2나 3쯤 밖에 운용시키지 못하고 살았더라구요.

뒷산에 좀 더 열심히 올라야겠어요.
책은 3권 다 권하고 싶은데,'모터사이클관리술'은 꼭 권해 드려요.
은근 재밌더라구요~^^

oren 2010-12-09 16:28   좋아요 0 | URL
아무튼 관리술(MAINTENANCE)이 다방면으로 권해드릴 만한 거네요..ㅎㅎ

저절로 2010-12-09 14:16   좋아요 0 | URL

다사(多思)도 병이군요..
그나저나 제가 '독'을 드린 것 같군요.어쩌지요.

sslmo 2010-12-09 15:22   좋아요 0 | URL
커피를 안 마시고 살 수는 없을거예요,그러고 싶지도 않고...
다만 oren님 댓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제가 스스로 깨어있는 게 아니라 각성제의 도움을 받아 깨어 있는 거라는 걸 깨닫는 순간...조율 들어간 것 뿐이구요.

그리고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를,뱀은 독을 만든다잖아요.
제가 뱀과는 아니잖어요.
우직한 것이 님이 보기에도 소과 아니던가요?^^

cyrus 2010-12-09 15:50   좋아요 0 | URL
<선과 모터사이클> 이라는 책의 내용이 무척 궁금하네요. 한 번은 <모터사이클
필로소피>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나무꾼님이 보신 책은
철학 관련 도서는 아닌거 같습니다.

sslmo 2010-12-10 00:03   좋아요 0 | URL
'모터사이클 필로소피'도 혹 하긴 했었는데 말이죠.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꼭 권해드리고 싶어요.
생각을 넓고 깊게 뿐만이 아니라 조리있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음~철학관련이라고 하면 어려워하실려나?
다분히 철학적이예요.
이 작가 분이 한국전 당시 우리나라에 참전하셨었고,
그 뒤 인도에서도 공부하시고 하셨대요.
어제까지는 이렇게까지 아니었는데...오늘은 '강추'해요~^^

프레이야 2010-12-09 18:52   좋아요 0 | URL
아프셨군요. 심신의 건강이 최고지요.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고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그런 거 같아요.
건강하시기 바래요.
집을 탈출하려는 자와 집을 스스로 짓는 자, 한참 생각해보게 합니다.^^

sslmo 2010-12-10 00: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의 적절한 균형이란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요즘 프레이야님께 참 많은 다독임을 받는 것 같아요. 따뜻해요~^^

글샘 2010-12-09 20:49   좋아요 0 | URL
어제 통도사의 삼소굴을 갔다 왔습니다.
조용한 산 아래 작은 집 삼소굴을 보면서, 그 옆에서 타는 장작냄새를 맡으면서,
하루에 세 번이나 웃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집을 짓지도 말고,
집을 탈출하지도 말고, 세 번 웃는 건 어떨까요?

마음을 관리하려고 애쓰는 것도 집을 짓는 것 같습니다.
요즘 토지를 내쳐 읽고 있는데, 작가는 <주갑이>처럼 집같은 것 없는 사람에게 부러움을 표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얽매이지 않고 사는 삶. 그저 눈물이 나면 울고,
맺힌 일 있으면 노래로 풀고...

저랑 노래방이라도 가실까요? ㅎㅎㅎ

sslmo 2010-12-10 00:10   좋아요 0 | URL
그게 쉽지 않다니까요.

하루 세번 웃는 건 말이죠,머리에 꽃 꽂지 않는 이상 제겐 요원한 일 같아요~ㅠ.ㅠ

저,아직도 62666 안 까먹었어요.
그 담은요?^^

비로그인 2010-12-09 21:35   좋아요 0 | URL
<선과 모터사이클>은 아주 예전에 한번 나왔더랬는데 그때 퍽이나 열광했더랬어요. 이번 새 책은 번역서의 모범이 될 만한 책이라던데, 과연 그런가요?

저도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는 프레이야님 말씀에 동감이에요. 우리 내년엔 더 건강하자구요, 나무꾼님.

sslmo 2010-12-10 00:15   좋아요 0 | URL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빠져드는 책이예요.
장경렬님도 빼거나 더할게 없으신 분이죠.
맞춤법 철자 틀린 게 간혹 옥의 티처럼 동동 뜨지만,
아주 좋아요.

님은 벌써?
'애니 프루' 필이 약간 나죠~!!!

다락방 2010-12-09 23:2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은 일도 하시는 걸로 알고있는데, 대체 이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으시나요? 게다가 책을 허투로 읽지 않으시고 늘 그 책들을 읽으면서 다양하게 생각하시 잖아요.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간혹 양철나무꾼님의 글을 읽다보면 마음의 상처를 받고 계시는 구나 하는걸 보게 되곤 하는데, 양철나무꾼님이 요즘 몸이 좋지 않으신건 마음의 상처때문에 생긴가 아닌가 싶어요.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라는 책에 보면

육체는 해결 불가능한 위기가 찾아오면 병이라는 도피처를 구한다.(p.17)

라는 구절이 나와요. 양철나무꾼님의 건강이 좋아지실 때쯤엔 마음도 평안해지실 수 있기를 바랄게요.

sslmo 2010-12-10 00:17   좋아요 0 | URL
제가 댓글 읽고 울어보기는 또 처음이예요.
이 감동,이 느낌 잘 기억해 뒸다가...상처 입을 때 마다 꺼내 약처럼 발라주려구요.
무라카미 류는 몰라요,읽어 볼래요.
감사해요~(__)

2010-12-09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0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2-10 00:42   좋아요 0 | URL
이 많은 분들이 찾는 서재의 주인이신데 사명감에서라도 건강하셔야죠^^

sslmo 2010-12-11 09:4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후와님의 발걸음을 다 확인하고 종종 아파야겠는걸요~^^

후와님도 건강하시고,건필하세요~^^

hnine 2010-12-12 22:5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아프신 후 더 단단해지셔야 해요!

sslmo 2010-12-13 23:3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오늘은 이정도의 아픔을 가지고,
아프다고 말하는게 사치라고 여겨지는 그런 날이네요.
살아있음이 어찌 이리 눈물 겨운지요~ㅠ.ㅠ

2010-12-13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3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2-13 23:38   좋아요 0 | URL
오랜만의 서재 마실인데.. 왠지 양철님 삐그덕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오늘 밤엔 그 삐그덕.. 소리가 잦아 들길, 아니 내일부터 없어지길 빌겠습니다.

sslmo 2010-12-13 23: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결님도 이 겨울 삐그덕 거리는 일 없으시길...

전,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들으면서 다독여요~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네에서 마당이나 마당에 나무를 가진 집을 만나기 어렵다.
엊그제는 헐벗은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은 주황색 감 몇 알을 보았었는데, 오늘 지나다 보니 그 옆 목련 나무에 봉오리가 맺혔다.
"꽃은 어차피 지려고 피는 거잖아."
하고 웅얼거리지만 서도 채 피기도 전에 얼어버릴 봉오리에 마음이 아프다.

4월 초에,벌어진 겨울눈 사이로 터져 나오는 목련의 밞음을 그려서 안실장에게 제출했다. 그 밝음은 이 세상에 근거를 두지 않는 밝음인 것이어서 색깔의 기조를 잡기 어려웠다. 연필로는 밝음의 밑그림을 그리기가 불가능했다. 밑그림 없이 수채물감을 포개서 칠했고, 마른 다음에 덧칠했다. 물감이 아니라, 종이에서 밝음이 배어나오기를 나는 기다렸다.(122쪽)

흰종이 위에 흰 꽃을 그리려면 검은 물감을 쓸 수밖에 없다. 작약의 흰 꽃잎을 들여다보면 깊은 곳에서 검은색이 배어나온다.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색이었다. 물감을 풀어서 그 먼 색을 드러내려면 여러 번 덧칠할 수밖에 없다. 붓이 스치고 지나가는 결들이 겹쳐지면서, 그 안쪽에서 검은색이 흰색을 끌어낼 것이다.(132쪽)

ㆍㆍㆍ작약꽃은 피면서 동시에 졌고, 지면서 또 피었다. 검은색만이 흰색을 표현할 수 있었는데, 검은 수채물감을 풀어서 검은색이 사위는 자리에 흰색을 드러내는 것은 흰색 물감을 풀어서 새카만 꽃잎을 그리는 일과 같았다.(142쪽)

이 책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내겐 흰색을 표현하기 위해 그려내는 검은색이었다.
내 아버지의 지난한 일생을 얘기하기 위해 빗대어지는 '내 젊은날' 이었고,
숲 바깥에서의 삶을 대조하기 위한 '숲' 이었다.

주인공을 그려 넣어 배경을 흐리게 하는 것이 하나의 표현기법이듯이,
배경만을 그려 넣어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것도 하나의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물아홉의 조연주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것이,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신 이 땅의 남자들, 우리 아버지들 인듯하여 처연하고 눈물이 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아버지가 떠올라서 힘들었다.
아버지는 내게 풍요인 동시에 결핍이었다.
조연주의 아버지가 조연주를 키우신 그 방법으로 아버지가 나를 키우셨다.

ㆍㆍㆍㆍㆍㆍ혹시 남자 생기면 내 얘기 하지 마라.하더라도 나중에 해.
ㆍㆍㆍㆍㆍㆍ미안하다는 게 뭔지 아니?나는 이제 알 것 같다.미안하다,미안해.정말 미안해.미안해.(8쪽)  

아버지의 범죄사건에 함께 엮여들어갔던 전직 공무원 동료들과 아버지의 상관들, 그리고 아버지에게 뇌물을 바치고 잡혀들어갔던 특수유흥업소 주인, 무도장 주인,매춘업소 포주들도 일신상조회 회원 자격으로 문상을 왔다.(328쪽)

살아 남은 사람은 불쌍하고, 죽은 사람은 쓸쓸하다.
그것이 사는 일이며, 그리고 죽는 일이다.

이 책이 힘들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조연주의 삶이 이해가 되지 않아,감정이입을 하기 힘들었다.
부모를 거부하고 숲으로 들어가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걸 그녀는 난생을 꿈꾸는 것으로 정당화하려 하지만 설득력은 약하다.
스물아홉된 여자의 일상에 로맨스가(작가가 말하는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아버지를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두세달에 한번씩 감옥으로 찾아가는 것은,일종의 자기위안이었지 아버지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그것은 아니었다.

하지만,그녀를 이해하고 못하고는 내 몫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아버지를 향한 적절한 마음가짐을 깨달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다행이 아버지는 살아계시고 난 내 아버지를 향하여 그녀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안실장과 그의 아들만이 자폐가 아니라,
숲으로 들어간 누구나 자폐가 되는 것 같다.
자기를 닫아걸고 안으로 움추러 들기 쉬운 곳이 그 숲이까 말이다.

이제 그녀가 숲에서 걸어나와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다.
살아간다는 것은,어쩜 한걸음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리라.
부재에서 존재를 보고,빈자리에서 그를 느끼다.
이 책에는 그런 논리들로 가득하다.

- 이 큰 나무가 새파란 잎을 달고 있으니, 이 나무는 젊은 나무요, 늙은 나무요?
- 나무는 늙은 나무들도 젊은 잎을 틔우니까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하는 겁니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지요.(212쪽)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에 배웠던 소설의 3요소를 떠올려 봤다.
주제,구성,문체...이 셋을 소설의 3요소라고 했던 것 같은데,
주제도 있고,김훈만의 수사라고 할 수 있는 문체도 있는데,
이야기를 개연성 있게 끌어나가는 힘,서사라고 해야하는 것들이 한참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어쩜 이것이 작가 나름대로의 길들여진 것을 낯설게 하여,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친 건 소설을 다읽은 후 작가의 말을 읽고나서이다.

그녀가 숲에 머물던 기간이 10개월이다.
열달이라는 기간동안 그녀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열달이란 기간은 다시 얘기하면 잉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 젊은 날의 숲은 그래서 상실의 숲이 아니라,새로움을 잉태하는 숲이 아닐까?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얘기는 차치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땅의 남자들, 우리 아버지들 뿐만 아니라...
늙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외롭고 서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늙어도 서럽지 않으려면 제 스스로 도를 닦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보니,내게는 외로움의 도를 닦을 수 있는 책이 있다.
아직은 바느질을 할 시력은 되는 데,눈이 나빠지면 손의 감각으로도 할 수 있는 뜨개질을 해야 겠다.
화초를 키우고 동물을 키우기는 힘들겠다.
마음은 있지만,난 이들과 다른 음역대, 다른 파장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큰 글자 성경을 돋보기를 끼고 필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불경을 읽고 또 읽어 또랑또랑하게 암송을 해내는 방법도 있겠다. 

저물어 가는 석양 아래 무엇을 하게 되든, '
서럽고 외롭게 늙어가는 누군가 있을 것이고, '외롭게 따로' 지만 그러면서 '함께' 일 것이다.  


이 책은 내용도 한참 들여다 봤지만, 책 자체를 한참 들여다 봤다.
겉표지를 벗기자, 김훈님의 원고지 글씨가 인쇄된 회색 하드커버가 나타났다.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었다. 

책의 여주인공 이름이 '조연주'였는데, 이 책의 책임 편집자 이름도 '조연주'라고 단정하게 박혀 있었다.

45쪽에 보면,
"...도살장 사람들이 와서 각을 떼갔어."
라고 나오는데, '각을 뜨다'가 기본형이니까 '각을 떠갔어.'가 돼야 하지 않을까?

김훈처럼 문장을 벼리는 재주를 가진 사람의 일이다 보니, 뭐 대수인양 수선을 떨게 된다,ㅋ~.


각을 뜨다
              - 윤문자 -

마음에도 결이 있다
서툴러서 자칫 뼈를 다치게 할 때도 있지만
결 따라 잘만 다루면
치욕의 뼈들로부터
살을 잘 발라낼 수도 있다
너무 날이 선 것도,
이가 빠진 날도 안 된다
잘 벼려진 칼날로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
조그마한 흔들림도 용납하지 말 것!
생각의 삐죽한 각을 떠내면
그대로 꿀떡 삼킬 것!
     - '현대시학' 2010년 10월호 -


댓글(28)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절로 2010-12-07 18:18   좋아요 0 | URL
오히려 내 아버지를 향한 적절한 마음가짐을 깨달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오늘 글, 무척 아린데요.

sslmo 2010-12-08 00:37   좋아요 0 | URL
이 땅의 모든 남자들,우리 아버지에서...내 남편으로까지 이어졌어요.

매운 건 우유를 먹으면 좀 낫던데, 아린 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듬어 안고 다독여 드릴까요?^^

프레이야 2010-12-07 20:40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이 리뷰 읽으며 왜 전 눈물이 나죠.
지금 반쯤 녹음하고 했는데 뭐라 말하기 어려운 김훈식의 감동이 밀려오고 있거든요,
제 가슴에요. 세상의 밑바닥을 긁어서 가족을 먹이는 아버지를 저도 생각했어요.
위에 가져오신 시 '각을 뜨다'도 너무 좋아요.
치욕의 뼈들로부터 살을 잘 발라낼 수 있을까요? 우린.

sslmo 2010-12-08 00:42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프레이야님 목소리로 꼭 들어보고 싶어요.
언젠가 듣게 될 날이 있겠죠.
그냥 제 생각인데,님 목소리 김세원을 닮았을 것 같아요.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경쾌한 목소리.

저도 왜 우는 줄 모르고 울었는데,이제야 알겠어요.
'세상의 밑바닥을 긁어서 가족을 먹이는 아버지'때문이었나 봐요.

시,참 좋죠~?^^

blanca 2010-12-07 21:2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저도 김훈에게 서사가 너무 희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문체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 표지 저 지금 알았어요! 우아. <각을 뜨다>는 시의 인용 참 절묘해요. 시도 너무 와닿네요..

sslmo 2010-12-08 00:46   좋아요 0 | URL
님도 읽으셨군요?
제게 김훈은 '남한산성'이 절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분이 번역하신 책 중에 <패디 클라크 하하하>같은 건,
원작자의 서사가 살아있는데다가,수사가 덧입혀져서 완전 죽음인데 말이죠~

시는 저도 참 좋아요~^^

세실 2010-12-08 00:51   좋아요 0 | URL
마음에도 결이 있다.....조그마한 흔들림도 용납하지 말 것! 참 와닿는 문장이네요.
김훈 소설과 잘 어울리는 시예요.
이 책 갑자기 궁금해 집니다.

sslmo 2010-12-09 14:45   좋아요 0 | URL
실은...마음에 결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좀 복잡해졌어요.
결대로 가야할지,비껴가야할지,교차되어 가야할지...
마음이 벼리고 다스려야할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살아있는 걸 넘 소홀히 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말이죠~ㅠ.ㅠ

2010-12-08 02:29   좋아요 0 | URL
아직 못 읽어보았지만, 맨 첫줄로 쓰신 마당... 비평가 정효구의 {마당이야기}가 생각나고, 마당 넓은 집을 꿈꾸었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아마, 어쩌면, 마당은 이제 꿈으로만 남을 것 같아요... {장자} '양생주'의 포정해우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시이군요. 책읽기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아니 오래 읽다보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조차 아예 하지 않고, 그냥 페이지를 넘기며 낮과 밤을 이어가면서, 틈을 채우며 삶을 지속시키는 것, 저로서는 그것으로 족하다는... (쓰고보니 너무 허무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듯한데, 그건 아닙니다.^^ 저 스스로 너무 자의식을 갖지 말고 살고, 책을 읽자는 생각이 들어서랍니다.)

sslmo 2010-12-09 14:48   좋아요 0 | URL
허무주의,냉소주의처럼 읽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말끄러미 들여다보는 금붕어(?)마냥 객관적으로 읽혔어요~^^

네,저도 장자를 읽으면서 '소각뜬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됐어요.

꿈꾸는섬 2010-12-08 10:49   좋아요 0 | URL
어제도 들어와 이 글을 읽었는데 오늘도 들어와 이 글을 다시 읽어요.
내 젊은 날의 숲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는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가보군요.
전 아버지하면 아릿하게 저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둘 있어요. 그래서 눈시울이 붉어졌던가봐요.
'각을 뜨다'라는 시가 잘 어울리네요.
저도 시를 좀 더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sslmo 2010-12-09 14:50   좋아요 0 | URL
'내 젊은 날의 숲'맞는데...스물아홉 조연주의 삶이 맞는데...제가 감정이입을 그렇게 해서...그렇게 읽힌거죠.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릿저릿한게,저만이 아니었군요~^^

반딧불이 2010-12-08 14:17   좋아요 0 | URL
평생동안 칼을 갈지 않고 쓰는 백정에게 문혜왕이 그 방법을 물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마음의 살을 발라내는 시로도 접하게 되네요. 신경숙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울린다더니 이번에 김훈에 아버지로 사람들을 울리는 건가요?

sslmo 2010-12-09 14:53   좋아요 0 | URL
전 달인이 될려면 적어도 장자의 소각뜨는 신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쿨럭~
이 시 참 좋죠?^^

신경숙이랑 김훈이 세트는 아닐진데,
그리고 김훈이 꼭 아버지로만 읽히지는 않을수도 있는데,
제 개인사랑 엮어 너무 몰입하였던 거죠~^^

마녀고양이 2010-12-08 16:29   좋아요 0 | URL
굉장히 좋은 리뷰네요.
말 더 붙일 것도 없는 아련함을 느낍니다.

sslmo 2010-12-09 14:53   좋아요 0 | URL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__)

잘잘라 2010-12-08 18:0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을지, 좀 더 기다려볼래요.
나는 저렇게까지 끈질기게 글로 뭘 그려보려고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냥 쭐래쭐래 그를 따라 생각하는 맛을 들일까봐,,,

sslmo 2010-12-09 14:55   좋아요 0 | URL
적어도 이야기가 그려지지는 않으실겁니다.

목련이나 찔레꽃이나 작약이나 뭐 그런것들이실 거예요~^^

같은하늘 2010-12-09 02:42   좋아요 0 | URL
찜해놓고 보지 못하고 있는 책인데, 멋진 글이예요.^^
그리고 표지를 벗긴 책도 멋져요~~

sslmo 2010-12-09 14:56   좋아요 0 | URL
책 겉표지 속에 저렇게 멋진 보물이 감춰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따라쟁이 2010-12-18 12:43   좋아요 0 | URL
도저히. 그러니까 추천을 누르지 않고는 미쳐버릴것 같은 기분을.. 같이 근무하는 옆에 선생님 아이디 불러 보라고.. 막.. 추천을 눌러야 한다고... 막...

sslmo 2010-12-21 02:10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막.. 칭찬을 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는걸요~
잘 지내시죠?^^

전호인 2011-01-11 08:54   좋아요 0 | URL
이 달의 리뷰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내 젊은 날의 숲이 무엇일까를 곰곰히 회상하고 있는 데 무겁기만 하네요.ㅜㅜ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 데 언제 끝낼 지도 미지수지만 님의 리뷰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여 읽는내내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겠어요.
우왕 리뷰를 읽고 헷갈리는 것은 내 젊은 날의 숲과 아버지. 대체 무슨 관계이길래 라는 거였습니다. 소설자체가 아버지의 존재로 시작하고 있긴 합니다만. ㅠㅠ

sslmo 2011-01-13 01:52   좋아요 0 | URL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젊은 날의 숲은 '공부와의 싸움'이었습니다여~^^

다 읽으시면 이해가 되실걸요.
내 젊은 날의 숲과 아버지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남자가 읽어내는 김훈은 어떨지, 님의 멋진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모름지기 2011-01-11 13:49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리뷰가..왜 당선작이어야만하는지 알겠군요. ^^
"열 달"의 시간적 의미와 공간적 숲에 대한 적절한 이입이 무척 흥미롭네요. 본 책에서 몰랐던 새로운..부록을 받은 느낌?..이랄까. 멋진 글이예요.

sslmo 2011-01-13 01:54   좋아요 0 | URL
그냥 제 느낌일 뿐인데...그런 제 글에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샘 2011-01-13 10:56   좋아요 0 | URL
이렇게 멋진 리뷰를 쓰셨군요. ^^
이달의 리뷰 축하 드립니다.
그나저나... 김훈은 왜 자꾸 소설을 쓰는지, 마뜩잖아서 좀 읽기가 그렇습니다.

sslmo 2011-01-14 02:57   좋아요 0 | URL
샘께 멋지다는 소리를 들으니 쑥스러운 걸요.
그렇다고 간과할 수도 없는 게 김훈 이잖아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던 리영희 님이 별세하셨다. 
어제 아침 손석희 시선집중을 들으면서, 리영희 님이 떠올랐었다.
('토요일에 만난 사람'인가 하는 부제를 단 인터뷰 코너 이다.)
목소리를 그림으로 그리면 '서산대사의 선시' 같으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지난 겨울,(그러고 보니 작년 오늘이네~ㅠ.ㅠ) 손석희 시선 집중 인터뷰가 떠오른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머름지기 허튼 걸음을 말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 '우상과 이성' 중에서 -
 
   


2010년 1월2일 손석희 시선집중 인터뷰  

2009년12월5일 손석희 시선집중 인터뷰

2004년 기자협회 인터뷰
 

  

 


리영희 평전
김삼웅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2010년 12월

참 빠르다.
일찌기 오랫동안 기획된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10-12-05 12:09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에서야 봤습니다. 김구, 김대중, 김창숙 등의 평전으로 기억되는 김삼웅이 맡았군요. 선생의 마지막 책인데... 책으로나마 뵈어야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slmo 2010-12-07 23:52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김삼웅'님이 나오셨더라구요.
이 평전이 봄부터 기획된거고,
12월 3일 날 가져다 드렸는데,의식이 없으셨다네요.

암튼,입관할 때 같이 넣어드릴 정도로,이 책에 관심을 보이셨대요.
저도 책으로나마 뵈어야겠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이조부 2010-12-05 15:06   좋아요 0 | URL

하루 종일 마음이 안 좋아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sslmo 2010-12-07 23:54   좋아요 0 | URL
한동안은 마음 잡기 힘들 것 같아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잘잘라 2010-12-05 18:35   좋아요 0 | URL
최근 몇 년 사이, 큰 별이 너무 져서 밤이 계속 길어집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slmo 2010-12-07 23:5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큰별이 너무 많이요.
밤이 더 어둡고 더 길어지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프레이야 2010-12-05 19:28   좋아요 0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낮에 인터넷 기사들로 읽었습니다.

sslmo 2010-12-07 23:58   좋아요 0 | URL
저도 인터넷 기사들로 읽다가 감질 나서...종이신문으로 챙겨 다시 읽었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10-12-05 20:3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안하시길...

sslmo 2010-12-07 23:58   좋아요 0 | URL
네,그곳에선 평안하실 수 있겠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실 2010-12-06 04:27   좋아요 0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큰 별이 또 지셨어요......

sslmo 2010-12-08 00:0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밤하늘 걱정이 많겠어요.
남은 별들로 얼마나 밝힐 수 있으려나~
밤하늘을 바라봐도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것 같아요,이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절로 2010-12-06 13:32   좋아요 0 | URL
지성인이라는 것은 전체 개별적으로 살면서 또한 동시에 전체의 일원으로서 전체의 생존과 복지와 운명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런 삶이야말로 지성인이다..!!

저, 지금 울어요.
리영희 선생님도 가시고,
건축장이'톰'도 죽었어요....

sslmo 2010-12-08 00:12   좋아요 0 | URL
비교할 수 없어야 하지만,
대지의 기둥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비교될만한 일이지요.

60근처까지 온수가 안나오는 집에서 사셨다며,김삼웅님 청빈을 얘기하시는데...
지금부터 20년쯤 전에는 거의 연탄보일러에 때던 시대하니었나요?
건축장이 톰을 댁으로 보내드릴 걸 그랬어요.

고인의 명복을 빌며,
건축장이 톰을 애도하며,
에파타님,뚜욱~!!!
(2권,3권은 더 황홀해요.)


風流男兒 2010-12-06 10:20   좋아요 0 | URL
저는 항상 이렇게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아. 하고 그래요.
아쉬워요. 그저..

sslmo 2010-12-08 00: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이 분은 저작을 몇 권 줏어 읽기는 했는데,변변한 게 없어요.
마지막에 <리영희평전>을 학수고대하셨다고 하니,책으로나마 뵈야 겠어요.

꿈꾸는섬 2010-12-06 10:36   좋아요 0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slmo 2010-12-08 00:15   좋아요 0 | URL
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yrus 2010-12-06 11:13   좋아요 0 | URL
평전에 나온 뒤에 갑작스런 비보를 접하게 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sslmo 2010-12-08 00:18   좋아요 0 | URL
우리에겐 갑자그러웠는데,예견된 비보였다고 하네요.
12월3일 날 책을 들고 찾아뵜을 때,이미 의식이 없으셨대요.
그렇게 평전을 기다리셨는데,11월 하순 경에 겉표지만 확인하셨대요.

저도 평전이 나온 뒤에 날라든 비보인 줄 알고,법정스님 때를 떠올렸는데...
요번엔 당신께서 준비하신 일인가 봅니다.

oren 2010-12-06 11:37   좋아요 0 | URL
참으로 올곧게 살다 가신 우리 시대의 참 스승이셨는데, 기어이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slmo 2010-12-08 00:21   좋아요 0 | URL
'올곧다'라는 말이 이분을 위해 만들어진 말 같아요.
올곧으셨으니,뜻을 기리는 일은 크게 벗어나지 않아도 되겠죠.
실천할 수 있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쟈니 2010-12-07 10:46   좋아요 0 | URL
그제 소식을 접하고 참 맘이 아팠습니다. 가시기 전, 나라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셨어야 하는데.. 나라 꼴을 생각하면, 그분 맘이 편하진 않으셨을 겁니다..

sslmo 2010-12-08 00:23   좋아요 0 | URL
의식이 깨어있으신 동안은 둘러 얘기하는 법이 없으셨다죠.
저도 나라 꼴 생각하면 그분 맘이 편하지 않으셨겠다 싶다가도,
그분이 굽어 살펴주셔서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합니다.

같은하늘 2010-12-09 02:43   좋아요 0 | URL
저도 며칠전에 이 기사를 보고 어찌나 안타깝던지...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큰 별은 자꾸 사라지시고...ㅜㅜ

sslmo 2010-12-09 14:39   좋아요 0 | URL
네,밤이 아니어도 길을 나서면 헤맬 일이 더 많아졌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때만 그래요?" 

이책을 읽으면서 왜 <레옹>의 마틸다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네 덕에 삶이 뭔지도 알게 됐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릴거야."
이 구절 때문이었던 듯도 싶다. 

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을 겹쳐 읽었다.
그래선지 이 책의 들꽃 얘기들이 내 젊은 날의 숲으로 오버랩 됐다.
들꽃은 영어로 'wild flower' 정도 될 것 같고,
wild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자연 그대로의' 라는 뜻도 있다. 

참 이상하게도 나는 들꽃을 야생의 그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 그대로'는 순리의 다른 이름 쯤이라고 생각했다.
순리는 다른 이름으로 혜안이 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름으로 나이듦이라고 생각했었다.
야생을 젊은 날의 치기쯤으로 생각한 논리였다. 
그래서였을까?
들꽃의 '들'을 'wild'랑 연관시키는 것이,
' wild'에 '야생의'라는 뜻 외에 '자연 그래로'의 뜻이 있다는 게 생소했다.
그 생소함은 <내 젊은 날의 숲>한 구절로 익숙해 졌다.

나무줄기의 중심부는 죽어 있는데,그 죽은 뼈대로 나무를 버티어주고 나이테의 바깥층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 동시에 살아난다. 나무의 삶과 나무의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다.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내용이 다르고 진행방향이 다르고 작용이 다르다.
                                                                                -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215쪽 -

내게 이 책의 저자 '강우근'은 좀 특별나다.
난 '강우근'을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이 분의 <호랑이 뱃 속 여행>같은 그림을 우리 아들 어렸을 때 많이 봤었다.
'태몽을 호랑이 꿈을 꿔서'라고 억지로 개연성을 부여해 본다. 

그 후 7년동안 연재되었다는 이 글 중 몇 개만을 어디서 주워 읽었었다.
읽으면서 실은 들풀들과 그림으론 실제를 연상할 수 없어서, 사진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미련스럽게 투덜거렸다. 사진이 실제를 고스란히 담아 낼 수 없다는 걸,<내 젊은 날의 숲>에 나오는 세밀화가를 통해서 알게 됐다.
그러고 나서야 이 책의 그림들이 오히려 진짜라는 걸 알게 됐다.그림으로 알게 됐지만,그의 글들도 좋았다.
가득 찼지만 넘치지는 않았다.

새벽시장에서 야채 파는 할머니를 안고 흘리는 대통령 눈물은 가짜다.나물 파는 할머니가 등을 기댈 수 있고 또 찬바람을 막아주는 양버즘나무는 진짜 가로수다.(26쪽) 
 

"외래종을 뽑아낸다는 것은 다시 교란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또 다른 외래종의 침입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므로 외래종이 침입한 환경에서 고유의 자연을 보강하여 안전성을 도모하는 생태적 복원이 바람직한 외래종 퇴치 방법이다."(한국생태학회,<서울의 허파 남산>,<서울의 생태>생태적복원이란 병든 부분을 도려내기보다는 몸 전체를 튼튼하게 해서 질병을 물리치는 방법이다. (34쪽)


이렇게 사람이 가꾸는 곳에서는 천이가 멈춰 버린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귀화식물이 오히려 서울 토종에 걸맞지 않을까?(35쪽)

장맛비를 맞고 수부구북 자라나는 저 흔한 잡초들도 한 포기,한 포기가 수만 개 씨앗 가운데 살아남은 하나다. 쉽게 자라나는 것 같지만 수만 가지 시행착오를 피하고 살아남은 하나다. 쉽게 자라나는 것 같지만 수만 가지 시행착오를 피하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
그런 쥐꼬리망초 삶에 요행이란 없어 보인다.쥐꼬리망초가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은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하지만 쥐꼬리망초에게는 그게 최선의 방식이지 않을까.(49쪽)


명아주에서 이 얘기로 넘어가다니, 가득 찼지만 넘치지 않는 것은 그의 내공이 점점 깊어지기 때문인가 보다.

명아주는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들풀이다.
초록의 풀만을 본 사람들은 명아주가 '청려장'이라는 지팡이로 태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한다. 명아주는 풀이기 때문에 가벼워서 어르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팡이로 태어난다. 중풍에 좋다고 하는 데 근력이 떨어져 무거운 지팡이를 들 수 없기 때문인것도 같다. 무협지를 보면 도인들이 자기 몸체보다 큰 휘휘 꼬인 지팡이를 들고 나타나는데, 다 청려장이니까 가능한 얘기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절실하게 느끼는 게 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못난 구석이 있으면 잘난 데가 있게 마련이고,게다가 잘나고 못나고도 보기 나름이라 못났다는 게 다르게 보면 잘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잘나고 못난 게 아니라 다양하다는 것이다.엘리트주의에 찌든 교육 행정 관료들은 자기네들이 만든 잣대 하나로 이 다양한 것들을 재서는 일등에서 꼴찌까지 줄 세우려 한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건 소수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논리일 뿐이다.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양한 것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게 얼마나 재미난 삶인 줄 알지 못한다.(157쪽) 

처음 내가 'wild'에 품었던 생각을 짐작이나 했던 듯 깔끔하게 정리해 놓기도 한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고 스스로 살아간다.그래서 자연이다. 잡초가 많다는 것은 자연이 망가졌다는 것이고, 망가진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는 표시다. 몸에 상처가 나면 생기는 상처딱지 같은 게 잡초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되면 상처딱지가 떨어지듯 잡초는 더 이상 그곳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무작정 잡초만 뽑는 것은 아물지도 않은 상처딱지를 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꾸 이벤트를 벌이고 돈을 들여 그럴 듯하게 뭔가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건 상처를 덧나게 할 분이다.(185쪽) 
 
들꽃은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키를 낮추어 틈새에서 자라든 넓게 무리를 이뤄 자라든, 짧은 시간에 자라서 꽃 피고 열매를 맺든 긴 시간 끊임없이 꽃을 피워 많은 씨앗을 만들든, 들꽃은 홀로 살아남기 위해 여러가지 생존방식을 터득해 냈다. 또 한편으로 들꽃은 홀로 살아가지 않는다. 한 가지 식물만 자라는 곳은 사람이 가꾸는 밭뿐이다. 밭작물은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들꽃이 자라는 곳에는 여러 풀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주름잎 둘레에는 질경이가 꽃을 피우고, 새포아풀이나 개미자리가 섞여 자라고, 개망초, 괭이밥, 다닥냉이 따위도 함께 어울려 자란다.(210쪽)

글의 처음 레옹으로 돌아가,
죽어야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게 좀 서글프지만,
레옹이 죽고 그의 화초가 들판에 심기는 걸 보고, 잘 뿌리 내리길 바라는 건 나만이 아닐게다.
우리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들꽃이다.
너란 이름 나란 이름을 갖고 어울리고 흐드러지고 등돌리고,
또 다른 누군가와 어울리고 그러면서 '우리'라는 또 '동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일 게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0-12-03 20:42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소개하신 스텔라님의 글도 잘 읽었는데, 나무꾼님도 소개하시니
읽어보고 싶네요. 저자가 그림을 그린 분이셨다니 책 속의 저자의 그림들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slmo 2010-12-04 11:14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나오길 학수고대했었어요.^^
그림도 있고 판화도 있는데, 참 좋았어요.
글도 죽음이었구요.

책이 넘 좋아서 몇권 더 구입하려구요.
연말인사 하기 좋겠어요~^^

stella.K 2010-12-04 12:15   좋아요 0 | URL
저는 좀 분개하면서 읽었는데...
뭐 이를테면 정치하는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인가 싶어서 말입니다.
이렇게 꽃 하나 지켜주지 못하면서 인간을 위한다는 게 같지 안 잖아요.
전 그림도 나쁘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걸
아쉽더군요.
양철님 리뷰에 비하면 한없이 저질이라 부끄럽군요.ㅜ

2010-12-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4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12-03 23:27   좋아요 0 | URL
김훈의 신작을 우선으로 낭독녹음하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어 먼저 신청하고 시작했어요.ㅎㅎ 반쯤 했는데요,
세밀화와 나무와 꽃과 풀과 숲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김훈만의 필치로 괜찮더군요.
강우근의 저 책도 관심이 갑니다.
야생초편지도 왠지 떠오르네요.

sslmo 2010-12-04 11:20   좋아요 0 | URL
왠지 프레이야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아침인걸요~

김훈 책, 소리내어 읽기도 괜찮죠?^^
저 며칠전 13개월 짜리 조카를 잠깐 봐줄 일이 있었는데,
제 책을 갖고 와서 읽어 달라고 졸라서 좀 읽어줬는데...
호흡 고르기가 쉽고 편하더라구요~

야생초편지 떠올리기 쉬운데,
야생초편지와는 많이 틀려요~^^

gimssim 2010-12-04 07:56   좋아요 0 | URL
김훈의 소설을 글로 찍는 사진이지요.
저도 얼른 읽어봐댜겠어요.

sslmo 2010-12-04 11:22   좋아요 0 | URL
김훈은 어떤 분껜 소리내어 읽는 책이 될 수도,
어떤 분껜 글로 찍는 사진이 될 수도 있군요~^^

2010-12-0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7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0-12-09 02:52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여기저기 보여요.
또 다시 찜 목록이 늘어나고 있네요.^^

sslmo 2010-12-09 14:33   좋아요 0 | URL
'찜 목록'이란 표현 예쁜걸요.
전 요즘 책장도 비워내고,장바구니도 비워내고 있어요~^^
장바구니가 가난해지니까 책장이 헐렁해진다는 게 적절하겠네요.

감은빛 2010-12-09 03:28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이 기막힌 리뷰를 읽고 뭔가 댓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창을 닫아버렸습니다.
오늘 다시 들어와 읽었는데, 또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이 멋진 글에 어울리는 멋진 말을 남겨야 할텐데,
도저히 생각이 안나서, 그냥 다녀간 흔적만 남깁니다.

sslmo 2010-12-09 14:35   좋아요 0 | URL
흠~
이 책 감은빛님의 리뷰 죽음이었는데 말이죠.
때론 말줄임표 하나로도 느낌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고맙습니다,기막힌 리뷰라고 칭찬해 주셔서...꾸벅(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