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책 속의 주인공에 몰입을 할 때가 있다.
김탁환의 열하광인을 읽으면서 작 중 ‘명은주’라는 여인에게 흠뻑 빠졌었다.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너무 맘에 들어 이 책을 참 여러번 읽었었다.
아마 내가 김탁환을 손가락 안에 꼽는 것도 ‘불멸’때문이 아니라 이 ‘열하광인’때문이었으리라.

가끔 ‘열하’가 미웠다. 나는 혼자 읽을 때는 이런 생각을 단 한 순간도 한 적이 없지만, 그녀가 온통 책에만 빠져, 나를 무시하고, 나와 운우지락을 나눌 때처럼 흥분할 때, 책이야말로 만만치 않은 연적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는 책 대신 나만 보라 말할 수도 없다. 책을 질투하는 사내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이런 내 마음이 때론 우습고 때론 한심했다. 더욱 비참한 사실은 이 책이야말로 너무 멋지고 사랑스러워, 내가 여자라도 매혹당하리라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책과 사귀었다. 깨끗하게 멀찍이 두고 조심스럽게 한 장 한 장 넘기는 식이 아니라 연모하는 사내 대하듯 그 책에 자신의 감정을 옮겼다. 겉표지에 입 맞추고 손바닥으로 쓸고 글자 하나하나를 검지로 만지며 내려가고 옆구리에 끼거나 젖가슴에 댄 채 잠들고 머리맡에 두었다가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냄새 맡고 여백에는 검지로 도장 찍는 흉내를 내며, 이 책과 영원히 함께 머무를게요 맹세했다. 그 책에 비하자면 나와의 사랑은 드문드문 허거웠다. 그녀와 나 사이에 책이 낀 것이 아니라 그녀와 책 사이에 내가 불청객처럼 찾아드는 격이다. 내가 슬쩍 책을 서안 밑으로 밀어두기라도 하면 그녀는 냉큼 책을 찾아서 품에 안고 앙처럼 웃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도 분명 저는 살았었죠. 한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요. 제삶의 첫 자리엔 이 책이 놓였고, 그때부터 전 비로소 숨 쉬고 걷고 밥 먹기 사작하였답니다.”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 고백이었다.(열하광인 상,114쪽)

그랬던 나는 열하광인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백탑파들 뿐만 아니라, ‘이옥’을 기억하고 있었다.
열하광인에서 이옥은 친척인 유등공의 그늘에 있는 변변치 못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 녀석에게 무슨 큰 약점이라도 잡히셨습니까? 자기가 입은 상처만 깊고 크다 떠드는 녀석과는 상종을 마십시오.”(열하광인 상,188쪽)

김내손은 염병에 까마귀 소리 같은 이옥의 장광설에 질린 듯 얼굴을 찌푸리며 짧게 물었다.(열하광인 하,146쪽)
“성품이 여려 탈이지 제멋대로는 아니네. 비유하자면 기상은 물과 같은 사람이지.”“물이라 하셨습니까?”“그렇다네. 아무 맛도 없는 듯하지만 모든 맛으로 변하는 물! 매실에 닿으면 신맛을 내고, 벌꿀을 따르면 건정과보다도 더 단맛이 나며, 소금 한 조각만 떨어져도 짠맛이 감돈다네. 기상은 이렇듯 천하 만물을 받아들여 그 느낌을 자유자재로 나타내는 재주를 지녔으이. 거북이나 물고기, 하얀 봉선화 등 미물을 읊은 부(賦)는 화광이 그린 꽃그림처럼 세밀하면서도 느낌이 또한 깊다네. 흰 봉선화를 차가운 매화의 아우나 아리따운 배꽃의 벗으로 두기가 어디 쉬운가. 특히 나는 기상의 ‘어부(魚賦)를 아낀다네. 물을 하나의 나라로 본다면 용은 임금일 테지. 작은 물고기에게 용이 아무리 인자하게 굴더라도 큰 고기들이 제 잇속을 챙기면 그 나라가 평안할 까닭이 없으이. 기상은 이렇게 노래했더군. 고래들이 작은 고기를 들이마셔 시서(詩書)로 삼고, 이무기나 악어는 작은 고기를 삼키고 씹어 삼농(三農)을 삼고,문절망둑이나 가물치들은 작은 고기를 덮쳐서 은과옥으로 삼는다고 말일세. 어떤가. 큰고기들을 피해 이리저리 숨고 도망치는 작은 고기들의 황망함과 고통이 손 끝에 닿는 것 같지 않은가? 저 고약한 황망함과 고통이 손 끝에 닿는 것 같지 않은가? 저 고약한 번승들을 몽땅 잡아 없앨 방도는 과연 없을까.”(열하광인 상 198,199쪽)


그랬던 차에, 이옥의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를 만나게 되었다.
이옥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던 게...
내가 그토록 흠뻑 빠졌던 김탁환의 ‘열하광인’은 결국 열하일기와 이탁오와 이옥 등을 읽고 나름대로 해석, 다시 버무려 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급기야 둘 중 하나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조로 이어졌고,
심한 논리적 비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역사적 사실들에 서사를 입히는 방식이라면 나라도 뚝딱 소설 한권쯤은 써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이옥을 뜯어보고 앞뒤를 헤쳐모아 살펴보아도,
자기가 입은 상처만 깊고 크다 떠드는 녀석도 아니고,
염병에 까마귀 소리 같은 장광설을 늘어놓을 사람도 아니다.
만들어낸 소설 한편을 가지고도 사람을 이렇게 곡해할 수 있는 것이구나 싶어 허탈하다.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는 책을 읽으면 알터이고,
내가 이토록 슬픈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제 명은주 따위는 잊어버리고, ‘묵취향’에 흠뻑 빠져야겠다.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는 이옥의 시작일 뿐이고,
생각을 깊게 하고 넓게 하는 참 좋은 글들이 많은데, 읽고 나면 어쩐 일인지 생각이 간소해진다.

<묵취향>의 서문

>> 접힌 부분 펼치기 >>

<초사>읽는 법

>> 접힌 부분 펼치기 >>

웹서핑을 하다가 <오늘의 장르문학>이라는 책에 김탁환이 필진으로 참여한 걸 봤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홀라당 샀을텐데, 오늘은 장바구니에 넣었다 뺏다 심히 망설여진다. 

아흑~이를 어쩔 거냐니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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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2-27 22:13   좋아요 0 | URL
열하광인이 이런 책이었군요. 이옥에 대한 이야기가 제법 나오는 모양이네요? 반가운 페이퍼였어요.

sslmo 2010-12-29 22:41   좋아요 0 | URL
이옥으로 버무려졌다고 할 수 있어요~^^

이옥의 대화나 생각만 이옥이었으면 좋겠는데,
이옥의 글들은 다른 주인공 급에 내어주고, 찌질이로 나와요~ㅠ.ㅠ

마녀고양이 2010-12-27 23:56   좋아요 0 | URL
ㅠㅠ, 한번 읽고 두번 읽고 세번을 읽었는데...
역시 옛 어구를 쓰는 책들은 어려워요 어려워요... ^^

있지, 옛 추억 하나 생각난다.. 내가 엄청 좋아한 선배였는데
그 선배는 내 책 취향이 못마땅하여 책을 선물했어요. 음....... 자기가
인용한 이런 책. 크.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 이젠 나이두 먹었으니
찬찬히 한번 읽어봐야 할건데 말이죠.

근데 그렇게 좋아했던 책이 짜집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라도 너무 서러웠겠다... 이긍~

sslmo 2010-12-29 22:47   좋아요 0 | URL
난, 그때나 지금이나 좀 옛스러운 사람이 좋은데...^^

그 선배는 지금 어디서 뭐해요?
이 책 그런대로 괜찮은 걸요~
누군가의 옛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니...

책 짜집기 부분은 아직도 서러워요~ㅠ.ㅠ

cyrus 2010-12-28 00:22   좋아요 0 | URL
제 친구 중에도 <열하광인> 덕분에 김탁환을 좋게 보는 녀석이 있는데,,,
음,, 소설이란게 이런거(?) 였군요,,^^;;

sslmo 2010-12-29 22:49   좋아요 0 | URL
소설이란 이런 거더군요.
그래도 김탁환 하면 알아주는 '스토리 텔러'인데 말예요.

하긴 열하광인 뒤에 보면, 참고문헌 해가지고 수십권이 나오니까요, 뭐~.

글샘 2010-12-28 00:47   좋아요 0 | URL
제가 김탁환을 왜 싫어할까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김탁환 책을 읽노라면 인문학, 역사학 책 읽었던 게 좀 이상하게 얽히고 꼬이는 것 같긴 해요.

sslmo 2010-12-29 22:5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왜 싫어할까'라니 좀 세신 듯~
좋아하지 않을까 정도로 둥글리셔도...?

2010-12-28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9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0-12-28 09:24   좋아요 0 | URL
열하광인
아, 김탁환 작가와의 만남에서 만나보고 참 멋져 보였어요
양철나무님
행복한 연말 되고 계시나요?
눈이 참 많이 왔는데 조심하셔요

sslmo 2010-12-29 22:56   좋아요 0 | URL
그쵸~
김탁환 님, 직접 보면 '쫌' 멋지죠?^^

님도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요,
내년에는 그동안을 발판 삼아 우뚝 서실 수 있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저절로 2010-12-28 09:45   좋아요 0 | URL
요즘 저는, 서양사 특히 중세사에 몰입해 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면
내가 지금 딴 동네에서 뭘 하고 있나
내 동네가 산 이력도 모르면서...!

<그녀와 나 사이에 책이 낀 것이 아니라 그녀와 책 사이에
내가 불청객처럼 찾아드는 격이다.>

혹, 제가 그 불청객은 아니겠지요???

sslmo 2010-12-29 23:10   좋아요 0 | URL
무슨 그리 섭섭한 말씀을...
올 한해, 에파타님 덕에 행복했는 걸요~^^

내년에는 얼굴 한번 볼 수 있었음 좋겠어요.
오늘 텔레비젼에서 진주온면 봤는데, 그거 엄청 맛있겠던데...

저절로 2010-12-30 09:19   좋아요 0 | URL
온면이든 냉면이든
오시기만 해요.
하늘에 별이라도 대령할터이니..=3

stella.K 2010-12-28 10:59   좋아요 0 | URL
ㅎㅎ 내 뭐래요, 김탁환은 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긴 그 사람뿐인가요? 역사 드라마 쓰는 사람 보면
좀 아슬아슬 걱정스러울 때가 많아요.
그래도 양철님 소설 쓴다면 전 열혈 광팬 될텐데. 진짜루!
이옥 전집이 있었군요. 나이들수록 저런 묵직하고 그윽히 향기나는 책이 끌려요.^^

sslmo 2010-12-29 23:11   좋아요 0 | URL
ㅎ,ㅎ...김탁환이 '좀'이라면,
제가 글을 쓰면 간을 떼어놓고 다니셔야 할지도...
님 간은 무사하시라고 제가 쓰지는 않고 열심히 읽기만 하려구요~^^

잘잘라 2010-12-28 12:47   좋아요 0 | URL
이옥, 처음 듣는 이름..

책 소개 읽고 왔어요. 문체때문에 살면서 이런 저런 불이익을 당하고 임금한테 문책도 당하면서두, 끝까지 자기 문체를 고집했다,는 대목에서 확- 끌려들었어요. 이옥,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sslmo 2010-12-29 23:15   좋아요 0 | URL
자기 문체를 고집할 수 있었던 저력으로 집안의 가산도 무시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집안에 재산이 없었다면,
책과 경험은 반으로 줄었을테고...글도 좀 줄지 않았을까요?^^

감은빛 2010-12-28 14:44   좋아요 0 | URL
이옥에 대한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여기서 만나는 군요.
저도 '오늘의 장르문학' 보고 장바구니에 넣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당장 읽을 책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서 참았습니다. ^^

sslmo 2010-12-29 23:1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역시 님과 저는 '관심사'가 겹친다니까요~^^

2010-12-29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9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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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네이버 국어사전)

사는 게 뭐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고, 심지어 유명한 작가가 썼다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간다. 

이 책은 내게 한장의 음반 같은 책이다.
보통 책은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지만, 음반은 필 꽂히는 것만 무한반복하여 듣는다. 

처음 intro가 나오는 것부터가 그렇다.
음반을 생각하고 설렁설렁 읽어 넘긴다.
그런데 웬걸, 처음부터 남의 얘기 같지가 않다. 
책을 고쳐 잡게 된다.  

-이래서 힙합을 헤드폰으로 듣는구나. 이건 정말, 일대일인데?
-그래?
-응. 나한테만 말하는 것 같고, 진짜 심장이 쿵쿵 뛴다. 단순하고 불안, 미숙?
어른들이 듣기에나 그렇지.
-근데 그런 게 묘하게 뭔가 막 사람을 움직여.그리고,(106쪽) 

처음 감정이입을 하기까지가 좀 힘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열일곱살 강연우의 1인칭 시점의 소설인데,
이 녀석이 이 시대 열일곱 먹은 소년 같지가 않았다.
속에 나이 4,50 근처에서 연애 못하고 죽은 처녀 귀신 쯤이 들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나이에 비해서 한참 조숙하다는 건 얘기했고 소심하고 섬세하기 까지 하다.
단지 사랑에 관해서만 숙맥이다.
(뭐, 러브 라인이야...나이에 관계 없이 처음이면 순진무구할 수 있는 거니까~) 

소년과 짝을 이루는 몇 명의 소년,소녀 들이 등장하는데,
소년의 친구들이 더 설득력 있었다.
겉넘고 싶고 그래서 겉넘어 보게 되는 질풍노도의 시기. 
 
강연우의 엄마 신민아는 엄마 같지 않다.
잘 봐줘야 누나 정도. 

폭풍우 몰아치는 날 카페에 앉아 창밖 경치를 봐야 했고, 어떤 새벽에는 취해 들어와 마구 깨우는 바람에 공원에 나가서 탠덤바이크를 태워저야 했고, 극장에서는 반드시 캐러멜 향 팝콘과 다이어트콜라를 나눠 먹어야 했고, 핑크색과 초록색 가발로 바꿔 써가며 스티커 사진을 찍어야 했고, 각기 다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거리를 걷다가 반쯤 남았을 때 바꿔 먹어야 했고, 집 앞 놀이터에 불려나가 캔맥주가 두 개쯤 비는 동안 스프라이트 한 캔을 마셔줘야 했고, 그네까지 밀어줘야 했고......이 모든 게 본인의 주장으로는 신 육아법이라고 한다.(351쪽)

그런 엄마 신민아 씨는 일곱살 어린 남자와 사귄다.
강연우는 그를 형이라고 부른다. 

사실 나는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 어설픈 위안은 삶을 계속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은 우리를 부조리한 오답에 적응하게 만든다. 그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거기 실려간다. 삶이란 오직,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생겨나고 변형되고 식고 다시 덥혀지며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니듯이, 위로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 잠깐씩 짧은 위로와 조우하며 생을 스쳐 지나가자고 말이다.
 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의 고독한 떠돌이 소년. 이 말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 <작가의 말>중에서 -

책 뒤의 '작가의 말'을 읽기 전까지,
제목은 <소년을 위로해줘>였지만, 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었다.
그런 일들을 겪어 내고도 꿋꿋이 잘 살아가고 있는 소년을 위로한다는 건,
삶을 계속 오해하게 만들고 그를 부조리한 오답에 적응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놔야 가능한 일인데,
아직 열일곱이라면 희망만을 얘기해도 좋은 나이가 아닐까?

오히려 소년의 어머니, 소녀의 아버지, 뭐 그런 사람들을 등 두들겨 주고 싶었다.
그 시기에 머물러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들,
심지어 이삿짐을 나르는 아저씨들 까지 위로해 주고 싶었다.

-정서가 메마르셨는데 양초가 저렇게 많겠냐?
-그건 또 그렇네. 박스에도 엄청 많아요. 초가 장난 아니게 무겁다는 거 처음 알았잖아. 어떻게 책박스보다 더해.(25쪽)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책보다 양초가 더 무겁다는 것.
책이 무겁다고 궁시렁 거리는 이삿짐 아저씨들에게 한번씩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와락 보듬고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등 두들겨 주고 싶었던 건 소녀의 아버지였다. 

 

네, 지금은 다르다는 것,압니다. 남자들도 자신들도 자신 속의 섬세함과 마음 약함 같은 거 드러내는 데 눈치 안 봐도 되고,때로는 그게 오히려 장점이 되고 있어요. 하지만 어떡합니까. 어릴 때부터 입어온 옷이 이미 피부나 마찬가지가 돼버린걸. 다른 옷을 입어볼 여유가 없었던 사람에게는 말입니다. 그옷이 살을 파고들어 흉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손바닥에 칼로 손금을 판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나는 그렇게 감정은 물론이고 운명까지도 ‘개척’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익히며 성장했어요. 타고난 감성은 억눌러야 했죠. 세상이 이렇게 달라진 것, 저도 환영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으면 훨씬 솔직하고 다정한 사람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고 부러운 마음도 많아요. 하지만 그건 머릿속 생각일 뿐이에요. 달라진 세상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동의하지만 훈련된 대로 꼰대 기질이 먼저 나와버리니까요. 출세와 돈밖에 모르는 사람, 점점 그렇게 돼가는 거죠.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합니다. 안 그러면 지금의 삶은 갖지 못했겠죠. 결혼도 마찬가지예요. 절실한 감정보다는 내게 반드시 필요한 대상이라는 확신이 열정을 만들었습니다. 사회적 기준에 맞는 조건을 하나씩 하나씩 갖춰나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니까요.(439쪽)

엄마 신민아씨는 내가 아는 누군가랑 좀 닮아 애착이 갔다.
남의 눈에 거스르지 않게 살고 싶어 친절을 익혔다지만, 어쨌거나 남들 눈에 조금은 튀게 살고 있는 엄마는, 연우에게 이런 충고를 한다.

-연우 네가 지나치게 예민한 거야. 그 아저씨들, 피곤해서 남 일에 그렇게 관심없어. 그리고, 피곤한 사람은 무신경할 수밖에 없거든. 배려라는 게 원래 뇌에서 나오는 거라 체력 소모가 엄청 많다구. 그걸 갖고 뭐라고 하면 안 되지.(41쪽)

-내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그게 관계를 가볍게 만들어주거든. 누구나 짐을 지는 건 싫어하니까. 연우야, 이거 중요한 문제야. 약간 멀리 있는 존재라야 매력적인 거야. 뜨겁게 얽히면 터져. 알았지?(47쪽) 

이쯤되면 연우의 엄마 신민아 씨는 세상에 무심해지라고 가르치고 있다.
헌데,이건 어찌보면 아들 연우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각성의 말 쯤으로 들린다. 
예민한 더듬이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적당한 거리감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말아야 하고,
그렇다고 아주 멀리 가지도 말아야 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볼 것이며,
그리고 규칙적으로 그가 그 자리에 있는 지 점검 정도는 해주어야 겠지.

이걸 이 책에선 이렇게 멋지게 얘기한다. 

-주변의 위험한 물건 다 치워놓고 마음껏 놀게 해주는 것, 그게 방목이야. 대부분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지만 결정적일 때는 개입을 해야 해. 그러니까, 멀리 있더라도 연결은 끊어지면 안 된다 이거야. 그런 걸 방목의 기술이라고 하지.(251쪽)
 
신민아의 법칙 중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이거였다.
...방정식이 안 풀리면 책을 덮고 밥을 먹어라. 무조건 붙잡고 끙끙대기보다는 새로운 기분으로 문제에 매달릴 수 있도록 체력을 보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본다. 연우야 잘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서 일이 저절로 잘 풀리는 건 아니야. 스스로 일을 잘 풀어가게 되는 거지. 그리고 말야, 서로 사이가 좋아서 가족이 행복한 게 아니라, 각기 제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가족이 사이가 좋아지는 법이야. 그러니까 내가 내 행복을 찾고 있는 건 너를 위한 일이기도 해.(214쪽) 

결국,
책 한권을 읽고 소년을 위로하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내가 등 두들김을 받고,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내'가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건, 그러니까 '가족'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제목을 슬쩍 바꿔 힙합처럼 읊조려본다.

아줌마도 위로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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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12-24 10:24   좋아요 0 | URL
아줌마도 위로해줘~ X2

sslmo 2010-12-26 02:22   좋아요 0 | URL
네,이리 오세요~^^
꼬옥(끌어 안고)
다독,다독,다독,해드릴게요~

마녀고양이 2010-12-24 10: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속에 나이 4,50 근처에서 연애 못하고 죽은 처녀 귀신이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나무꾼 님의 이 표현 죽이네요.

그런데 인용구들, 마음에 너무 들어오는데. 국내 소설을 매우매우 기피한다지만,
강하게 끌리는... 글귀들. 도저히 무시를 못 할거 같아요.
이거 11월 나온 신간이네? 신간 진짜 잘두 읽는다... ^^

나둥나둥 위로해줘. 자기에게는 위로의 뽀뽀 날리고 갑니다~ 좋은 연말~

sslmo 2010-12-26 02:27   좋아요 0 | URL
ㅎ,ㅎ...저도 국내소설 잘 안 읽잖아요.
근데 괜찮았어요.

12월에 나온 책들도 커버해 줘야 하는데, 요번 달은 책장 정리를 하고 있어서요.
항상 읽는 속도가 읽고 싶은 책을 못 따라가요~ㅠ.ㅠ

네, 님도 이리오시와요~
꼬옥
다독, 다독, 다독~

2010-12-24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6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2-24 10:47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이리오세요. 꼬옥~~~ ㅎㅎ
날이 춥지요? 그래도 마음은 따뜻한 연말연시 보내시기를요!!

sslmo 2010-12-26 02:29   좋아요 0 | URL
네~
님도요.
꼬옥
다독, 다독, 다독~

님도 몸도 마음도 따뜻하고 건강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를~!!!

2010-12-24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6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절로 2010-12-24 15:22   좋아요 0 | URL
나는 사실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
위로는 거울이 젤루 잘 해줘요.
거울 속에 비친 내 눈물이 젤루!

sslmo 2010-12-26 02:38   좋아요 0 | URL
저는 찜질방과 이불 뒤쓰고 누워 죽은 듯 자는거요.

자신을 말끄러미 쳐다보는 거 참 쉬운것 같으면서 어렵더라구요.
이렇게 님께 또 한가지를 배우네요, 감사~!!!

루체오페르 2010-12-24 16:40   좋아요 0 | URL
제가 해드릴 수도 없고...크^^;
옆의 소중한 누군가가 해주시길 바랍니다.ㅎ

양철나무꾼님 메리 크리스마스&해피 뉴 이어~^^

sslmo 2010-12-26 02:39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근데 저도 아줌이지만, 이 책에 나온 엄마 아빠들을 얘기했던 거였어요~

님과 님 가정에도 메리 크리스마스&해피 뉴 이어~^^

saint236 2010-12-24 17:16   좋아요 0 | URL
아줌마도 위로해줘^^ㅋㅋㅋ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시고요
2010 서재의 달인에 선정 되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sslmo 2010-12-26 02:41   좋아요 0 | URL
아저씨도 위로해 드릴게요,ㅋ~.
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셨겠죠?^^

서재의 달인은 얼떨떨합니다만,
암튼,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0-12-24 17:56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 이브 치고는.... 날이 너무 추워요~
아무튼,




sslmo 2010-12-26 02:43   좋아요 0 | URL
클스마스 잘 보내셨죠?^^
오늘은 더 춥더라구요.
노란별이랑 초록 글귀, 넘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2010-12-24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6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2-25 20:44   좋아요 0 | URL
지금 크리스마날 이브날에 편의점에 일하고 있는 88만원 세대 청년도 위로해주세요^^;;

sslmo 2010-12-26 02: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꼬옥.
다독, 다독, 다독~

내년 크리스마스 날엔 이쁜 여친 만드셔서,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2010-12-25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6 0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31 0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31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5 0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6 0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12-25 09:42   좋아요 0 | URL
배려라는 게 뇌에서 나오는거라 체력소모가 많은 거군요.ㅎㅎ
그래서 내가 지쳐있으면 배려를 잘 할 수 없게 되는거구요.^^
그러니 나의 심신이 지치지 않도록 좋은 에너지와 활력을 잘 불어넣어줘야겠어요.
한해동안 저도 참 고마웠어요, 나무꾼님.
좋은 글로 서로 위로가 되는 거 알죠.^^

sslmo 2010-12-26 03:06   좋아요 0 | URL
배려가 뇌에서 나오는거라 체력소모가 많은 거라는 말, 쫌 멋지죠~^^

내년엔, 님도 저도 쉬이 지치지 않도록 체력 안배를 잘 하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덕분에 저도 참 감사했습니다,프레이야님.

비로그인 2010-12-25 18:39   좋아요 0 | URL
양철님은 종종 귀여운 구석이 예상 외의 부분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
조금은 특별한 (또는 누군가에게만 특별할 수도 있겠지만요.) 토요일 저녁 즐거이 보내고 있으시지요? ㅎ

올 한해 많은 얘기들 감사합니다 :D

sslmo 2010-12-26 03:11   좋아요 0 | URL
무엇이 바람결님으로 하여금 '귀엽다'는 느낌이 들게 했을지 좀 궁금해지는 걸요~^^

요즘은 특별한 게 부담스러워 몸 사리게 돼요.
그렇게 그렇게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거, 어쩜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잊게 되는 공기나 햇볕 만큼 감사한 일일지도요~

오히려, 제가 님께 많이 자극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__)

세실 2010-12-25 21:59   좋아요 0 | URL
저두 위로 받고 싶어요. 이 책 읽으셨군요. 보관함에 담아둡니다.
님 얼마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행복하시길^*^
이곳엔 눈이 내립니다.

sslmo 2010-12-26 03:12   좋아요 0 | URL
네,
꼬옥.
다독, 다독, 다독~

화이트 크리스마스라서 좀 더 행복하셨겠는걸요~^^

2010-12-26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어느 집을 지나다가 발길이 멈췄다. 
미친 목련 봉오리가 맺혔던 그 집이었다.
대문 밖에 잘린 목련 가지들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담장을 삐져나온 잔가지들을 잘라낸 듯 한데, 
가지도 제법 튼실하고 수북히 쌓인 품이 뉘집 마당쇠가 공을 들였나 보다. 

난 살아있는 생명에 좀 무심한 편이어서,
길 잃은 강아지나 들고양이가 됐다면 무덤덤히 지나갔을 것이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나뭇가지라면 죽은 나뭇가지라고 생각해서 그러했을텐데, 
수북히 쌓인 가지 더미에 매달린 목련 봉오리들이 눈에 밟혔다.
나뭇가지들이, 매달린 봉오리들이, 색깔없는 피를 흘리며 눈물을 매달고 누워 있는 듯 느껴져 한참을 서성였다.

2.  
주말에 드라마를 봤다.
고두심이 엄마로 나오는 드라마였는데,
"이 나이에 병 하나 없는 사람 없다더라.
 이만하면 다행이다."

 이 대목에서 색깔없는 피, 매달고 있던 눈물을 토해냈다. 

고두심은 아버지 산소를 찾아,
"정신 차리고 꿋꿋이 잘 살라고 이만한 병 주셔서 감사해요."
이러는데,
이 작가 누군지 홈페이지 찾아 들어가
백일섭처럼 '망할놈의 여편네'라고 호통을 치려다가 접었다. 

극중 고두심은 예순 근처로 짐작된다.
자궁암 설정이었던 것 같은데,
그게 목련 고목에 피어나는 미친 꽃 봉오리처럼 그냥 떼어내기만 하면 되는 걸까?
꽃 피우지 못한다고 해서 나무가 아니고 여자가 아닌가? 
과연 현실의 고두심이었다면, '이만하면 다행이다' 라고 할 수 있을까? 

3.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감사해야 하겠다.
모든 살아있다가 스러져 간 것들에 감사해야 하겠다.
강하고 화려하게 내뿜는 것들은 물론이고,
약하고 소박하더라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에게도 감사해야 하겠다.
 
잘린 고목에서도 꽃은 핀다.
 

4.  
<시코쿠를 걷다>를 읽었다.
시코쿠에는 사찰을 돌며 순례하는 순례자만 있는게 아니란다.
순례자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내어주며 수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이 자신이 받은 것을 돌려주러 오는 '오셋타이'수행도 있단다. 
받는 사람이 아니라 베푸는 사람이 감사한단다.

겨울 내내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쉽게 지쳤다.
내 삶 또한 내 몸과 비슷했다.
그렇게 겨우내 몸과 마음이 고달픈 뒤에야
나는 떠날 생각을 했다.

“몇 번째예요, 이번이?”
“여섯 번째. 시코쿠는 저의 병원이에요.”
“병원이라니요?”
“스트레스가 심해요,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그런데 여기 와서 며칠 걸으면
그게 씻은 듯이 사라져요. 신기하지요!”

순례에서 많은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한다. 몸과 마음의 크고 작은 질병이 낫는, 혹은 호전되는.
나 또한 겨우내 떠나지 않던 감기가 시코쿠에 온 지 이틀 만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지 않았나.

“순례는 저의 종합병원이에요. 여기 오면 온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요.
아마도 저는 죽을 때까지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은 순례를 다닐 것 같아요.”

동감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 산책이든, 여행이든, 바다든, 산이든,
108배든, 기도든. 우리 모두는 그와 같은 자기만의 종합병원을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

5.
 

 

 

지현곤의 <달달한 인생>을 읽는다.
'시코쿠를 걷다'와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함부로 남을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 것.
전혀 불행하지 않았던 그를 불행한 존재로 못박아 버리는 건 너무 잔인하니까. 

 

                                지현곤 作 '노아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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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12-22 01:29   좋아요 0 | URL
함부로 남을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 것.
전혀 불행하지 않았던 그를 불행한 존재로 못박아 버리는 건 너무 잔인하니까

너무 멋진 말이네요.^^

'이만하면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다'라고 저도 말하고 싶어요.

sslmo 2010-12-24 09:04   좋아요 0 | URL
저도 이만하면 다행이다...말하고 살고 싶은데,

여기서 고두심 좀 마음 아프게 나와요.
좋아하는 찜질방을 돈 아까워서 못 간다고 나와요~ㅠ.ㅠ

마녀고양이 2010-12-22 08:29   좋아요 0 | URL
쫌!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감사해야 하겠다' 이 문구는 좋아, 삶에 도움이 된다니까. 하지만
'모든 살아있다가 스러져 간 것들에 감사해야 하겠다' 이 문구는 슬퍼지잖아요!
인위적으로라도 밝은 것만 생각해야,
감기 걸리고 직살나게 바쁘고 겨울 회색에 조금 우울해도... 덜 힘들지!

언젠가 같이.. 산림욕이나 갑시다. 맛난 공기 먹으러.
(그래도.... 페이퍼는 이쁘네~)

sslmo 2010-12-24 09:05   좋아요 0 | URL
네~
새해에도 계속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절로 2010-12-22 09:28   좋아요 0 | URL
노아방주 그림..피식 웃음이 새는데요. 인간은 아니지, 방주를 사주한 신은 어찌 그리도 자기 중심적인지요.

저, 오늘 자유부인이에요(신랑 허씨가 연수갔데용~그것도 박으로다가~근데 이게 자랑질 거리가 되긴한가 모르겠네@@)

sslmo 2010-12-24 09:07   좋아요 0 | URL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도 되야, 자유부인인게 자랑질로 들리죠~^^
둘이서 찜질방에서 만나 우리끼리 외박이라도 하게...
님과 전, 서울과 진주...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어요~ㅠ.ㅠ

저절로 2010-12-24 15:23   좋아요 0 | URL
힝! 불러만내봐요. 내가 어딘들 몬가나!

sslmo 2010-12-26 02:11   좋아요 0 | URL
하긴 그때 거기까지 왔다가신 걸 보면...한 액티브 하신 듯~!!!

서울 오실 일 있음 연락 주세요.
만사 제쳐놓고 나갈게요.
저도 혹 진주를 가게 되면 연락 드리지요~^^

잘잘라 2010-12-22 13:13   좋아요 0 | URL
겨울엔 꽃 나무를 알아보기 힘들어요.
꽃도 지고 잎도 지고, 옷 벗은 나무를 보고 왕벗나문지 단풍나문지? 또는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아, 벌써 딸리네. 이거야 원..) 그 수많은 나무가 겨울에는 다같이 그저 '겨울 나무'가 되버려요.

아아! 그렇지! 나무 하는 나무꾼 양철나무꾼님이 있었지!
겨울에도 우리가 사과나무와 은행나무를 구분해서 알아볼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세요!!! 부탁이예요^^

sslmo 2010-12-24 09:09   좋아요 0 | URL
우와~메리포핀스님, 멋져요~
전 저렇게 많은 나무 이름 몰라요.
제가 님을 '싸부'로 모셔야 겠는걸요~!!!

2010-12-22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12-22 18:45   좋아요 0 | URL
미친 목련이라는 표현이 왠지 정감가는걸요.
가끔 저도 생뚱맞게 피는 꽃 보면서 그런 생각 하거든요.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요.

오늘 차 라이닝만 고치러 갔다가 다른것도 고장났다고 해서 생각지도 못한 지출로 속은 쓰리지만 이만하길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그 표현은 이럴때 어울리는거죠.
암은..결코 그렇게 만만한 병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에구.

sslmo 2010-12-24 09:17   좋아요 0 | URL
에고고~~~
속이 좀 쓰리셨겠는걸요.
브레이크 라이닝도 손수 고치러 다니시고, 굿 드라이버신가 봐요.^^
저도 살살 달래서 간신히 모시고 다니고 있어서 말이죠.

차에 '이만하길 다행이다'가 아주 어울리는 걸요~

세실 2010-12-26 16:48   좋아요 0 | URL
라이닝은 옆지기가 말해줘서 안거예요. 딱 거기까지만 ㅋㅋ
직장 옆이 삼성 서비스센터라 조금만 이상하면 바로 간답니다.

sslmo 2010-12-27 21:34   좋아요 0 | URL
ㅎ,ㅎ...저는 직장 아래층이 옛날에 현대자동차 서비스 센타였는데,
불경기라 요즘은 카 오디오센터로 바뀌었다는~ㅠ.ㅠ

비로그인 2010-12-22 22:16   좋아요 0 | URL
저의 종합병원은 한강변에서 자전거타기에요. 그래서 자전거 자주 타기가 힘든 한여름 한겨울이 길게만 느껴지나봐요.

어떻게 지내세요? 연말은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네요..

sslmo 2010-12-24 09:22   좋아요 0 | URL
저의 종합병원은 '찜질방'이예요~^^

찜질방 가서 땀 쏙~빼고,
구운 계란이랑 식혜도 먹고,
두런 두런 낄낄거리다 보면 세상이 좀 살만한 곳이 되어 있더라구요~

연말, 전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어요.
1월까지는 정신이 좀 없으시겠네요.
그럴때일수록...건강 챙기셔야 하는 거 아시죠?^^

cyrus 2010-12-23 00:07   좋아요 0 | URL
<시코쿠를 걷다>라는 책의 표지를 보니 갑자기 수풀이 무성한 산에 혼자 가보고 싶네요.
나무꾼님이 언급하신 드라마 내용을 보니 주말 드라마 <결혼해주세요> 군요,
저희 어머니가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죠. ^^

sslmo 2010-12-24 09:25   좋아요 0 | URL
시코쿠를 걷다, 어머니에게 권해 드려요.
님은 '시코쿠' 말고 유레일 패쓰나 시벨리아 횡단 열차가 좋지 않을까요?^^

비로그인 2010-12-23 01:50   좋아요 0 | URL
자기만의 종합병원이라...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곰곰이 생각해봐겠는걸요. 나만의 종합병원은 과연 무엇인지 말예요^^

sslmo 2010-12-24 09:27   좋아요 0 | URL
제 종합병원은 조 위에서 '찜질방'이라고 말씀드렸고,
후와님의 종합병원은...그러니까...저도 궁금한걸요~^^

카스피 2010-12-23 11:29   좋아요 0 | URL
이런 한마디 하셨어야죠.물론 사람마다 생각하는것이 틀리겠지만 "정신 차리고 꿋꿋이 잘 살라고 이만한 병 주셔서 감사해요."라니 웬만한 성인군자 아니면 힘든 말입니다요^^;;;

sslmo 2010-12-24 09:31   좋아요 0 | URL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성인군자'를 감싸안고도 남지만 말이죠~^^

2010-12-23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2-23 16:20   좋아요 0 | URL

조만간 성탄이네요~ 집에서 조용히 만화책이나 배 깔고 누워서 보고 싶은데

아는 형이 결혼한다고 급작스럽게 연락해서 전주에 내려가게 됬네요 ㅎㅎ

올 한해 잘 갈무리 하시고~ 건강하시길 ^^

sslmo 2010-12-24 09:37   좋아요 0 | URL
전주 좋은 동네죠, 잘 다녀오세요.
근데 서울 날이 이렇게 추우면 그쪽은 눈이 많이 오던데,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부럽군요~^^

같은하늘 2010-12-23 18:09   좋아요 0 | URL
드라마를 안봐서 모르겠지만 그 상황에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요? 항상, 모두, 언제나~~~ 현실은 달랐다......

sslmo 2010-12-24 09:4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드라마를 오다가다 봐서, 자세한 내막은 잘 몰라요.
다만 어머니를 드러내기 위하여, 여자라는 건 간과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여~ㅠ.ㅠ

비로그인 2010-12-23 19:15   좋아요 0 | URL
훔..
색깔 없는 피, 매달려 있는 눈물.

양철님은 12월에 좀 민감하신 것인지.. 아님 체력 저하이신지..
많은 분들의 댓글로 기분 업 하시길 빌겠습니다. ^^

sslmo 2010-12-24 09:4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얘길 듣고보니 또 그렇네요.
살아있는 건 모두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데,
그렇게 간과하게 되는 게 속상했어요.

음~
한마디 더 보태자면, 어머니도 여자거든요.

바람결님의 댓글로 '훅..' 업 됐습니다~^^

風流男兒 2010-12-24 14:09   좋아요 0 | URL
댓글보다 지도편달 보고 잠깐 웃고가요
매맞을 편
매맞을 달.

sslmo 2010-12-26 02:17   좋아요 0 | URL
제가 잠깐이나마 風流男兒님께 웃음을 드렸다니,
저도 잠깐 웃게 되네요.

달리는 말에 채찍질 중요할까요?^^

글샘 2010-12-25 03:08   좋아요 0 | URL
오셋타이... 맘에 들죠?
주는 게 덕을 쌓는 수행이란 말... 메리 크리스 마스~

sslmo 2010-12-26 02:20   좋아요 0 | URL
시코쿠를 걷다, 님 서재에서 봤는걸요~^^
덕분에 좋은 책을 알게 됐어요.

2010-12-28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9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을 해야 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떠올랐다.
아니 리뷰를 쓰는 내내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라면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써낼까 싶었다.

난 간혹 시선이 시니컬한 편이다.
항상 그녀의 시선은 따뜻했었다.
내가 보기엔 그저 그랬어도,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녀가 리뷰로 써내면 따뜻하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어 있곤 했었다.

이 책이 내겐 그저 그랬다.
책 날개 안쪽을 보니 ‘로버트 F.영’은 ‘공상과학소설가’로 분류된다.
그의 작품들이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문제가 없는 데, 어디선가 한번쯤 등장했던 내용들이다 보니 신선함이 반감된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너무 많이 읽은거야’ 하고 퉁쳐 버리기엔 뭔가 개운치 않다.
1950년대,60년대에 쓰여진 작품들이 이제야 번역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흥미만 가지고 읽고 덮어버린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의 답보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를 붙일 수 있을만한 내용이다.
어느 걸 봐도 황당무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럴듯한 개연성을 갖고 있고, 적당히 재밌다.
‘공상과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거부감이나 이물감은 없다.
표제작이기도 한 <민들레 소녀>는 일본 에니메이션 ‘클라나드’에도 소개되어 좀 유명한가 보다.

난 <별들이 부른다>도 좋았다.

소녀는 계속해서 말했다.“왜 별다른 운명을 가진 사람만 훌륭하다고들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그건 그들만이 외로움을 견딜 줄 알기 때문이지. 그들은 그저 묵묵히 외로움을 견뎌 낼 줄 알거든. 하버드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켰다.(85쪽)

“인정하죠. 당신이 나에게 방과 식사를 줬어요. 하지만 난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하지도, 당신이 편하게 일을 하게도 못했죠. 하지만 그렇게 아낌없이 준 것들을 빌미로, 당신은 내가 인간의 존엄성을 가져보려고 할 때마다 내 영혼의 한조각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죠.”
앨리스는 단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누구도 영혼의 한 조각 같은 걸 신경 쓰지는 않아! 왜 그렇게 말하는 거니?”“걘 우주인이잖아.” 잭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주에서는 그렇게 얘기하거든. 우주인들끼리 말이야. 그건 그들을 미치게 하거나 아니면 벌써 미쳤다는 걸 모르게 해 주지!”(92쪽)

문제는 나이를 먹을수록 나의 우주는 줄어들고, 외로움은 점점 자라나는 데 있다. 외로움은 지식의 회랑과 말로 이루어진 대성당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단어와 말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힘이 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내가 광인이 되는 순간까지 또는 심해 바닥에 가라앉은 널빤지에 들어앉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수송선의 진로를 정하는 게 내 시간을 소모할 만큼 복잡한 과정이라고 해도, 조타실에서 혼자 배를 조종하는 시간들이 긴 밤이라고 해도, 외로움이 자라나는 상황과는 다를 것이다.(94쪽)


이 책은 별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외로움 같은 단어들이 이 시대에도 통용되는 언어들로 정의 되어 있다.  
특히 이 책 전편을 흐르는 시에 대한 통찰력은 돋보인다.

책을 읽으며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슬펐던 건,
미쳐야 할 순간에 멀쩡하고, 상처받아야 할 순간에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순간 깨달아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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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1 09:02   좋아요 0 | URL
아, 저 인용구 넘 좋다....
'그건 그들만이 외로움을 견딜 줄 알기 때문이지'.. 나 이런 사람 되고 싶거든요.
별다른 운명을 가지고 싶은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 되고 싶어요.
과연 가능할까나.. 워낙 외로움도 잘 타니까.

묘사가 참 좋은 책이네요.

sslmo 2010-12-22 01:08   좋아요 0 | URL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찬 책이예요.
사람들에 따라선 '참 좋다.'고 할 수도 있을텐데...내가 그간 장르소설을 너무 읽어주신게죠~^^

느린산책 2010-12-21 09:46   좋아요 0 | URL
양꾼님의 마지막 고백..뇌리에 박히네요.

sslmo 2010-12-22 01:10   좋아요 0 | URL
이 책, 좀 사랑스럽고 멜랑꼬리하여 이런 고백 가능해요.
어찌보면, 사랑 고백하기 참 좋겠다~^^

반딧불이 2010-12-21 14:31   좋아요 0 | URL
저의 문제는 나이를 먹을수록 우주는 티끌만큼 늘어나는데, 외로움은 순간적이지만 사무치는데 있는것 같아요.

sslmo 2010-12-22 01:12   좋아요 0 | URL
순간적이고 사무치는 거,이거 상처를 만들수도 있는데...
순간을 길게 잡아서 간격을 넓히고,사무치는 고저의 차를 줄여서 좁히고...
둥글려야죠~^^

그게 나이 먹는 힘이죠~!!!

저절로 2010-12-21 15:38   좋아요 0 | URL
미쳐야 할 순간에 멀쩡하고, 상처받아야 할 순간에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한 채..!

요즘 제가 똑 저래요.


sslmo 2010-12-22 01:13   좋아요 0 | URL
우리 머리 맞대고 대책을 강구해 보자구요~!

마녀고양이 2010-12-22 08:30   좋아요 0 | URL
무신 대책을 강구해염!
둘 다...... 햇살 보고 사세요!
(잔소리를 해야 해, 투덜투덜~~~)

sslmo 2010-12-24 09:00   좋아요 0 | URL
투덜이 스머프 같애,ㅋ~.

마고님도 끼워 줄게~!!!

꿈꾸는섬 2010-12-21 16:44   좋아요 0 | URL
인용구가 정말 좋네요.^^
나이들수록 우주는 줄어들고, 외로움은 점점 자라난다.
서글프긴 하지만 그게 사실이잖아요.^^

sslmo 2010-12-22 01:18   좋아요 0 | URL
언젠가 더 나이가 들어...
서로의 외로움을 꺼내 자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꿈섬님은 한참 영거하시잖아요~^^

꿈꾸는섬 2010-12-22 01:30   좋아요 0 | URL
ㅎㅎㅎ그쵸. 전 아직 조금 더 젊지요.ㅎㅎㅎ

sslmo 2010-12-24 09:01   좋아요 0 | URL
젊다는 거 보다 더 좋은 말이 없는 것 같애요~^^

같은하늘 2010-12-23 18:11   좋아요 0 | URL
대책을 강구해야 할 사람이 여기도 하나 추가요~~~ -.-;;;

sslmo 2010-12-24 09:01   좋아요 0 | URL
네, 님도 같이 머리를 맞대 보자구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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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알라딘의 글쓰기 기능이  심히 불안정하다. 
지난번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때도 그랬는데, 어제 새벽에도 한참 공들인 리뷰 하나가 홀라당 날라갔다. 아무리 되뇌려 해도 어제 그 필이 살지 않는다. 이 속성 날림의 리뷰가, 어제 '덕분'이 될지 '때문'이 될지 나도 모르겠다.

요즘 내 삶의 화두는 ‘심신의 안녕과 건강’ 이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모르는 '마음 관리법'에 관해서였다.누군가는 마음을 관리하려고 애쓰는 것도 집을 짓는 것과 같으니, 집을 짓지도 말고 탈출하지도 말고 그저 하루 세 번 웃으라고 점잖게 충고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이 책은 내게 심신 관리술로도 읽혔다.

솔직히 이 책이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
하긴 지능지수 170이 넘는 아저씨의 ‘심신 관리술’이 재밌다면,
나도 이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녔거나 똘끼 충만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어렵기까지 하다.
때문에 중간중간에 던져지는 방향을 제시하는 암시들을 놓치면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이드로스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선이 아닌지,
이를 말해달라고 누군가에게 굳이 간청해야 하겠는가.

And what is good,Phaedrus,
And what is not good -
Need we ask anyone to tell us these things?
라는 구절을 기억할 필요가 있고,
(나는 여기서 선이 禪인지 善인지 궁금하여, 원서를 찾아 보았다.)

또 한 부분,
원래 의도했던 바에 따르면, 사악한 파이드로스에게 승리를 거두는 이는 이 이야기의 서술자가 아니다. 오히려 승리를 거두는 이는 파이드로스를 항상 헐뜯고 비방했던 서술자에게 승리를 거두는 고결한 파이드로스다.
이 부분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자전적 소설이니,저자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저자가, 전기충격치료까지 받아가며 회복되었으나 기억력을 잃는다.
잃어버린 기억력을 되찾고자 열한 살 먹은 아들과 친구 내외와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정신적 삶과 기술공학적 삶 사이의 분열에 관한 책을 쓰고자 마음 먹었다고 얘기하는데,
결국 이 여행이 이 책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기본이 된단다.
내가 어림잡아 계산해 보니 이때 나이가 얼추 마흔 하나 였었다.
지금 내 나이 마흔 하나이다.
자연 나와 비교가 되는데, 궁금한 점도 있고 부럽기도 했다.

20대의 거의 전부를 학문과 군 생활과 여행으로 탕진하였고,
30대의 거의 전부를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보냈던 그에게,
여행을 같이 할 정도의 친구가 있다는 게 하나였고,
모터사이클을 장만하고 풍족한 여행을 할 여력이 있었다는 게 또 하나였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었으리라.

어찌되었건...그는 여행길에 오르게 되고, 그걸 책으로도 쓰게 된다.
그가 소설에서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선, 가치, 질, 소피스트, 수사학에 대한 탐구작업이었다고 한다.

“만일 그와 같은 중력의 법칙이 존재했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솔직히 말해 난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온갖 테스트란 테스트는 모두 통과한 것이 중력의 법칙 같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지니는 속성 가운데 단 하나라도 바로 그 중력의 법칙이라는 것이 소유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생각해낼 수 없으니깐 말이야. 그리고 존재하는 것들이 지니는 과학적 속성 가운데 단 하나라도 중력의 법칙이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낼 수 없으니까 말일세. 그런데도 그와 같은 중력의 법칙이 존재했다고 믿는 게 여전히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75쪽)

이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있음을 부각시키는 그런 논리이다.
초원을 텅비어 있다고 표현하는 게 의아했는데, 바로 ‘텅비어’ 와 대구를 이루는 ‘소유하는 것도’ 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물의 의미’ 와 ‘존재 자체’, 이쯤되면 머리가 뽀글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앞에서 언급했던 부분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서술자는 사악한 파이드로스에게 승리를 거둘 줄 알았는데,잃었던 기억을 되찾고 보니, 고결한 파이드로스 였던 것이다.
그리고 고결한 파이드로스가 승리를 거뒀다고 함으로, 자신의 잃었던 기억의 정당성을 찾지만...
(그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독자인 우리에겐 털어놓지만, )
같이 여행을 하는 존과 실비아 내외에게도 아들 크리스에게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다.
그는 또 다시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거나 전기충격요법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모터사이클 관리술에 대해선 그토록 집요하게 안으로 파고들었던 그가, 아이를 그렇게 방치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암튼, 이 책은 내게 선문답 같다.

그는 충돌했고...해체 되었으며...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실체를 모르는 그런 마음이라고 하여,
내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볼 마음 한켠,또는 내가 아끼는 그 누군가를 보듬어 안을 마음 한뼘,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서글프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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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2010-12-18 12:4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글은 항상 좋아서, 이 리뷰도 좋지만, 날라가 버린 리뷰님도 읽고 싶지 말입니다. ㅠㅠ

sslmo 2010-12-21 02:16   좋아요 0 | URL
이렇게 항상 칭찬해 주시니 말이죠~^^

그런 거 있죠, 날라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이제 웬만해선 알라딘 글쓰기에 바로 글을 쓰는 일은 삼갈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글이 날 것의 느낌이 덜하고 뜸하게 되네요.^^

마녀고양이 2010-12-18 14:06   좋아요 0 | URL
글 참 좋다.... ^^
그런데 책 참 어렵다... 아하하.

그러게요, 내내 나도 자신을 반성하고 돌이켜보고 이모저모 생각해 보지만,
누군가 한번 편안하게 껴안아줄 마음 한뼘 없으니, 서글프네요.
같은 병을 앓고 있는건가, 우리~ ^^

sslmo 2010-12-21 02:21   좋아요 0 | URL
빨간 불이 미친 듯 깜박이는?^^

이 책 참 어려워요.
난 이 책 옛날에 한번 보다가 팽개쳤었어요, 넘 난해해서.
난해함은 어느 정도 해소 되었는데...
그래도 이 아저씨, 별로예요.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말이죠~

아,근데...마고님은 심리학 공부하니까, 한번 훑어 보긴 해야 되겠죠?^^

루체오페르 2010-12-18 15:07   좋아요 0 | URL
옷 이 책 몇일전에 어떤 분의 추천으로 도서에 담아놨었는데 바로 양철님의 리뷰로 볼줄이야.^^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시는데 도움이 될듯하네요.ㅎㅎ

sslmo 2010-12-21 02:25   좋아요 0 | URL
옷~반가워라,루체오페르님!!!

이 책 읽으면 잃어버린 마음 위치 정도는 파악할지 모르는데, 다소 시니컬해져요~^^


순오기 2010-12-18 15:36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은 절대 손이 안 갈 거 같아요~ 그래서 님의 리뷰가 고맙지요.^^
연말이라고 밀린 일 처리한다고 마음만 분주하지 별로 진전이 없어요.ㅜㅜ
좋아서 하는 게 아니고 의무감으로 하는 거라서 그런 거 같아요.
누군가를 보듬어 줄 마음 한뼘이 저에게도 필요해요~

sslmo 2010-12-21 02:29   좋아요 0 | URL
그러시다면 리뷰를 좀 폼나게 써야할텐데,
너무 제 느낌 위주로 훑고 지나간게 아닌가 싶어요~ㅠ.ㅠ

연말이예요.
진짜 하기 싫어서 미뤄 둔 일만 골라서 처리해줄 몸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낭만인생 2010-12-18 22:57   좋아요 0 | URL
마음..
정말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인데도 가장 어렵네요.

sslmo 2010-12-21 02:3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낭만인생님~

네,그게 가장 어렵더라구요~^^

cyrus 2010-12-20 11:05   좋아요 0 | URL
아,, 생각보다 어려운 책인거 같아요. 분량만도 상당하던데..^^;;
파이드로스라면 플라톤의 동명 저작에 등장하는 사람 이름이기도 하는데,,
이 책에 대한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네요.
글쓰기 저장에 대한 나무꾼님의 심정,, 저도 이해가 갑니다.
나름 길게 써나가다가 갑작스런 오류에 걸리게 되면 뚜껑 열리게 되죠^^:;

sslmo 2010-12-21 02:35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배워 볼까 합니다~^^
(뚜껑 열릴 때마다 잠깐씩)
도대체가 컴맹이라서, 이게 내가 잘못해서 생긴 오류인가(?) 한참을 고민합니다.
꼭 그 오류는 글을 길게,장시간 썼을때만 걸리는 것일까요?

헐~플라톤을 기억해 내셨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2-27 17:40   좋아요 0 | URL
제겐 공감할 부분이 많은 소설이었어요. 물론 제가 그와 같은 수재는 아니지만요^^;
소설 속 아들이 피살되었더라구요. 이 소설을 써낸 후 그 일을 겪은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까 마음이 아프네요.
다른 판본으로도 읽어 보셨군요? 이번 판본은 역자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어 그런지 잘 읽히더군요.
서평 잘 읽고 갑니다~

sslmo 2010-12-27 21:3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파고세운닥나무님~^^
님의 멋진 리뷰를 보고 추천과 한방 꽝 눌렀었죠.

저도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내용들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읽혔어요.
그런데, 제가 한 아이의 엄마여서 그런가...
아들을 아이의 눈높이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눈높이에서 보려 하는게 맘 아팠어요.

아들이 피살되고, 아들의 오토바이를 싣고 또 한번 여행을 떠났었다고 되어있더군요.
저는 아들이 죽은 뒤에 태어나는 딸을 아들의 재림 쯤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하긴, 이해하려 한다고 이해가 될만한 상황은 아니지만서도~^^

후속편 '라일라'를 읽게 될지는 좀 고민해 봐야 겠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2-28 13:59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부분이 있겠군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미혼의 남성에겐 그저 주인공과의 동일시만이 주된 독해의 방법이 되었네요^^;
한국을 신비로운 나라라고만 묘사하는 게 걸리긴 했어요. 그들이 늘 갖는 생각인데, 작가 역시 다르지 않더군요.
<라일라>가 아직 번역이 안 되었지요? 읽어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sslmo 2010-12-29 22:33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제가 겸연쩍은걸요, 또 한 수 배웁니다.

저도 한국을 신비로운 나라로만 묘사한 것과 '성벽'에 대한 연구 등도 유감스러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인 탐구와 역자 분의 열정 등은 높이 살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