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같은 목소리
이자벨라 트루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여운(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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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라 트루머는 주로 추리소설을 작가이다. 그런 그녀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다. 미담의 주인공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으로 고생한 아버지의 모습을 담아 작품이 바로 <그림자 같은 목소리>이다.

 

책은 시종일관 담담한 흐름을 유지한다. 작품의 관점도 오로지 주인공인 알츠하이머 환자 지그프리트 그람바흐의 시선에서 바라본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병이 진행되어 가는 모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아주 가볍게 읽어갈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주인공의 모습이 나와 관계없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의 아버지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고모가 현재 알츠하이머로 요양 중이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병이 진행되면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모습에 가슴 쪽이 저려오고, 아픔과 슬픔이 번갈아가며 나의 마음을 휘감고, 때로는 분노가 치솟아 오르고, 어느 순간 그저 고요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이 있었다. 작가는 알츠하이머를 앓던 아버지의 머릿속을 파고들어가 기억에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썼다고 했지만 작품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을 자신의 아버지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것이 책이 주는 번째 매력이다.

 

번째 매력은 작가의 의도대로 알츠하이머로 점차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가 진행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병이 진행되면서 주인공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맞춰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는 치매 단계로 그저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그럴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자신이 조금 전에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 가볍게 그려지다 점차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하는 말도 잃어버리는 모습이 세세하게 그려지면서 마치 자신이 기억과 말을 잃어가고 있는 아닌가라는 생각이 정도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때때로 읊조리던 책의 제목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가장 적확하게 묘사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만들어낸 그림자 같은 목소리 결국 실체를 잃은 형체만 남은 환자의 모습을 너무나 기가 막히게 비유한 표현이었다.

 

마지막으로 환자나 가족이나 모두 힘든 상황이지만 주인공이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함께 하는 이가 가족이라는 , 또한 주인공이 무의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흘려내는 사고가 모두 가족 들어와 손주들이 것을 보면,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족은 가족이다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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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수술 보고서 시공 청소년 문학 56
송미경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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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소위 말하는 왕따에 관한 소설이다. 하지만 접근 방식이 상당히 독특하다. 왕따라 하면 왠지 심리 상담이나 정신 상담으로 풀어나가야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소설에서는 수술이라는 아주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형식도 환자 이연희가 직접 작성한 수술 후기에 수술을 집도한 의사 김광호가 주석을 덧붙이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연희는 진짜 광인일까? 그녀의 말을 되짚어보면 그녀가 스스로를 광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같다. 물론 광인이 자신을 광인이라고 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내가 언제부터 광인이었고 언제부터 다른 사람들과 달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정확이 말하자면 의사가 내게 광인이라고 말한 날부터 나는 내가 광인이라고 믿었어요. (p.12)

 

사실 나는 정상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나는 이대로였으니까요.(p.84)

 

누가 광인이고 누가 정상인이라는 걸까요? 수술을 받아야 사람은 짖는 소리를 내다가 심지어 쥐를 물어오기까지 자신이 아니라, 그런 나를 보며 즐거워한 우리 아이들이 아닌가요?(p.112)

 

작가는 이연희의 입을 통해 집단 따돌림을 당한 이연희가 정말 광인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런 질문이 던져졌을 , 머릿속에는 가해자보다 오히려 피해자가 문제 있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현실이 스치고 지나간다. 때로는 가해자가, 가해자의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피해자를 문제 있는 사람(광인)으로 몰아간다. 그런 상황이라면 과연 진정으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수술 장면에 들어가면 더욱 희한한 광경이 벌어진다. 책상 위에 환자를 눕혀놓고 치아 교정기와 비슷한 도구로 환자의 윗니와 아랫니를 고정시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게 한다. 그런 명의 의사가 환자 이연희에 관한 점수를 매기기 시작한다. 더플코트를 살펴보며 어떤 것은 가산 요인, 어떤 것은 감점 요인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는 마치 환자 이연희의 소리는 듣지 않은 그녀가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또한 초록색 스웨터의 색깔 문제로 다투다 손을 잡고 서로 용납하라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환자는 책상 위에 마치 제물처럼 묶어놓은 자신들의 면죄부만을 찾아 서로에게 괜찮다 외치는 어른들의 모습이 너무나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장면 이후로도 소설 <광인수술보고서> 명의 어른으로써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특히 이연희가 마지막 장면에서 말하듯이 () 주름을 모두 펴고, 기억을 모두 지우고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을 시대가, 어른들이, 또한 가족이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책이다.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소설을 부디 모두 어른들이 번쯤 보고 아이들을 위한 세상을 번쯤 다시 고민해보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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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사쿠라기 시노 지음, 전새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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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기 시노는 이번에 <순수의 영역>으로 처음 접하는 작가이다. 작가가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장편소설이 바로 작품이다. 작가 스스로 현재까지 모든 것이 작품에 담겨 있다고 정도이니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저절로 높아졌다. 관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질투라는 감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는 소개 내용에 따라 질투라는 감정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나갔다.

 

사랑과 전쟁을 너무 많이 보았나 보다. 작가가 그려낸 질투는 치정에 얽힌 선정적인 남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전반에서 질투라는 감정을 쉽게 찾아볼 없었다. 마지막 부분에 있는 표현으로써 작가가 보여주고자 질투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있었다.

 

질투란 멈출 반복해서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 명이면 가지 형태로, 자신만이 있는 세기로, 혼자만의 시간을 괴롭힌다. (p.372)

 

너무나 가슴에 닿는 말이었다. 질투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혼자 속앓이를 하며 괴로워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질투는 남녀 관계에서만 드러나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상사와 부하직원, 형제자매 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로뎅과 카미유 클로델의 관계를 보라. 연인이자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그들이었지만 탁월한 능력을 지닌 카미유 클로델을 향한 로뎅의 질투가 어떤 비극을 일으켰는지를 돌이켜보라. 작품에서도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준카와 그녀를 향한 류세이의 질투는 시종일관 보일 희미하게 그려지다 마지막 순간에서야 예기치 못한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질투심이라도 인간에게 필요한 소중한 감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질투심이 없다는 이토록 슬픈 일인 몰랐다. 인간으로서 뭔가 소중한 누락되어 있다. (p. 307)

 

작품에서 내가 주목했던 다른 주제는 순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였다. 책에서 순수로 대변되는 이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준카이다. 하지만 발달장애를 지닌 준카가 류세이의 전시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작가가 그려낸 준카의 모습을 보면서 순수라는 느낌보다는 순진하다는 느낌을 훨씬 많이 받았다. 순진과 순수,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예전에 순진과 순수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맑은 물이 가득 (순수) 비어있는 투명한 (순진) 비교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안을 들여다 있을 정도로 투명하고 맑지만 물이 담긴 컵에는 이상 다른 무언가가 들어갈 틈이 없지만 잔에는 깨끗하고 투명한 물이 담길 수도 혹은 더러운 무언가로 채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순수와 순진은 다르다. 그런데 내가 준카는 순진한 존재였지 순수한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에 구멍인 달을 보며 미움을 얘기하던 준카(순진한 준카) 요시후미와 이야기하면서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늘에 구멍에 넣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준카의 순수함을 찾을 있었다.

 

소설은 등장인물의 심리와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세밀히 묘사하면서 전반부에는 잔잔한 흐름을 보이다가 후반부에 들어 예기치 못한 반전을 보이며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이끌어나간다. 담담하지만 가슴 한켠이 저미는 듯한 공감의 아픔을 느끼게 책은 나를 작가의 다른 작품을 향해 떠나가는 여행자이면서도 작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관광객으로 변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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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 쓴 예배 이야기 : 다시, 예배를 꿈꾸다 쉽게 풀어 쓴 이야기
주승중 지음 / 두란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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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주인을 섬길 없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세상과 하나님을 모두 누리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잡고 있는 같지만 사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쪽에 걸치려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십자가가 아닌 세상을 택하기 때문이다(p.28)

 

예배를 향한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책은 초반부터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몽골 소녀 벌러르의 이야기는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던 내게 말로 표현할 없는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격과 감사로 잃어버린 소를 찾다가 예배 시간이 다가오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배를 드리러 달려온 소녀의 마음은 예배를 대하는 내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책은 신사참배 거부로 유명한 주기철 목사님의 손자이신 주승중 목사님이 평신도를 위해 쓰신 예배학 개론서이다. 책에서는 예배의 의미와 형식을 꼼꼼히 짚어가며 시대의 예배에서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하는지를 알려준다.

 

주를 위한 이곳에 예배하는 자들 중에 그가 찾는 없어 주님께서 슬퍼하시네. CCM 가사에 나오듯이 오늘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함을 알지만, 의미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깨달은 자는 얼마나 될까?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예배는 우리의 뜻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믿음도 역시 주님께서 주셔야 한다. 매일의 속에서 말씀에 대한 묵상이 없다면 진리로 예배드릴 없다. 나는 과연 이런 의미를 분명히 깨달은 상태에서 예배를 드리는 걸까? 성령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하면서 매일 매일 묵상하는가? 부끄럽지만 그렇지 못한 모습을 고백하게 된다.

 

진정한 예배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로 끝나지 않는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세상 가운데서의 우리 삶이 일치되어야 한다.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처럼 교회에서와 세상 속에서 모습이 너무나 다른 자들의 모습이 넘치는 시대이다. 아니 모습도 그렇다. 월요일 아침에 시작되는 모습을 보면 있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새롭게 시작된 주가 너무나 힘들고 귀찮을 뿐이다. 회사에 나가면 어떤가? 말씀이나 기도나 찬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수없는 업무에 파묻혀 허덕대며 하루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하다.

 

책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부분도 적지 않았다. 특히 예배의 형식과 안에 담긴 의미는 모태 신앙이 나도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내용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우리의 예배가 성경과 교회사에서 말하는 모습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인간 생활에서 일어날 있는 가장 중대하고, 가장 시급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라는 바르트의 말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예배가 올바로 세워지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예배를 올바르게 바라볼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영과 진리로, 또한 속에서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야 하는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바라며 책을 읽어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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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명 - 전 세계 100억 인류가 만들어낼 위협과 가능성
대니 돌링 지음, 안세민 옮김 / 알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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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스치듯 만나는 사람의 수는 아무리 많아봐야 만 명을 넘질 못한다. 내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들의 수를 보면 만 명도 참으로 많은 수치이다. 그런데 100억 명이란다. 인류가 2100년에 이르면 100억 명이 된단다. 이 수치도 중간 출산율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만약 예전과 비슷한 정도의 출산율이라면 268억 명에 달할 수도 있단다. 상상해보라. 이 좁아터진 지구에 100268억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이더라도 입고, 자고, 먹고 할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도 비관적인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설명한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말하는 논조는 이것이다. 인간은 위기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훨씬 지혜로워진다는 것이다. UN인구과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출산율이 더 빠르게 낮아지고 있고, 어쩌면 100억 명은 말 그래도 추정치로 남을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자녀가 둘 이상인 가정보다는 하나 혹은 아예 자녀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추세는 거의 대부분의 대륙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 자원이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게 함으로써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지구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소비를 줄여 지구 반대쪽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도움을 손길을 보내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식당들의 자발적 참여와 유니세프를 통한 어린이 후원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른 면에서 출산율을 낮추는 요소들은 이민, 교육 수준의 향상(특히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 등이 있다. 또한 석유 가격의 인상으로 인한 재생 에너지 기술 개발이 더욱 발전하고 있고, 현재 기술로도 세계 인구의 식량 수요를 충족시킬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의 미래가 희망의 정치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이윤 극대화라는 배타적인 탐욕이 아닌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미래의 어두움을 걷어내야 한다. 소수의 부자들이 소비하는 과도한 에너지와 자원을 서로 나누고, 빈곤을 공유하여 출산율과 빈부 격차를 줄이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면서 환경과 에너지를 보호하면서 서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구를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이런 희망의 정치가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기에 우리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인구 증가로 인한 미래의 모습을 도표와 사례 등을 들면서 설명하였기에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결코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비교급 형태를 그대로 번역한 어투가 많아 문장이 어색하다는 느낌이 있어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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