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싶은 주일학교를 만드는 40가지 이야기
랜디 해머 지음, 이소희 옮김 / 북허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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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핸드폰 중에서도 이제는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추세이다. 스마트폰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하는 스마트폰이 있다 보니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간다. 예배 중에 게임하는 친구, 톡하는 친구, 인터넷 서핑하는 친구, 많은 아이들이 머리를 숙인 채 핸드폰에 빠져있는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스런 외침이 절로 터져 나온다. 예배 시간에 핸드폰을 사용 못하게 했더니 아예 교회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도 생긴다.

 

어느 책에선가 베드로와 바울은 말씀의 내용과 전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전한 이유는 개인적인 성격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말씀을 듣는 대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했다. 바울은 이방인, 특히 그리스인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베드로는 구약 성취를 중심으로, 바울은 사람들의 종교적, 철학적 호기심에 맞춰 말씀을 설파하였다. 이는 곧 동일한 말씀이지만 청중에 따라 내용과 전달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말씀을 전해야 한다. 물론 말씀이 가진 생명력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아이들이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는 전하는 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말씀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40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경의 중요한 이야기들을 내용에 맞는 시기에 다양한 활동과 함께 진행하여 아이들이 재미있게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길 수 있게 이끌어준다.

 

이 책은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말씀을 전하는 교역자뿐 아니라 일반 교사들이 활용해도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각 장 뒤편에 나온 추가활동을 교역자의 설교와 연계에 진행한다면 아마 더 큰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후손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아이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성경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정말로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교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많은 아이들이 다시 교회로 나아오는 그 날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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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즈 웨이워드파인즈 시리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변용란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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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갔는데 어느 순간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혀 다른 도시인 여수에 도착했을 때 받는 느낌이 이럴까? 처음과 끝이 완전히 다른 느낌이 사뭇 당황스럽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흥분된다.

 

후기에서 밝히듯이, 저자는 이 소설이 <트윈픽스>를 보고 받은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서 20년간 다듬고 다듬어낸 작품이라고 말한다. 후기를 읽고 나니 책을 보며 내가 받은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어느 정도 감이 온다. 1990년대 초반에 방영했던 트윈픽스는 그 기괴함과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잊히지 않는 미드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트윈픽스의 아류작 같다는 말은 아니다.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이 책은 트윈픽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성의 등장하며 이야기의 문이 열린다.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었던 미연방수사국 비밀 요원 에단은 자신이 웨이워드파인즈에서 두 명의 동료가 사라진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왔다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신분증과 소지품을 모두 잃어버린 에단은 웨이워드파인즈라는 조그마한 도시에서 왠지 모를 공포감과 함께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다 카페 여종업원인 베벌리가 자신의 집이라며 알려준 곳으로 그녀를 찾으러 간 에단은 그곳에서 사라진 동료의 시신을 발견한다. 연방 요원이라는 신분을 밝혔음에도 너무나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보안관, 자신을 망상증 환자로 몰아가는 젠킨스 박사 등 모든 상황이 에단을 혼란스럽게만 만드는데...

 

사라진 두 명의 동료. 그 중 한 명은 시체로 발견된다. 하지만 보안관은 오히려 에단을 범인이 아니냐는 듯이 다그친다. 무언가 이상스러운 공포감에 휩싸인 에단이 마을을 떠나고자 그의 뒤를 쫓는 온 마을 사람들, 아니 어린 아이들마저도 그를 뒤쫓아 온다. 소설은 단순한 스릴러물을 넘어 이상한 광기로 뒤덮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간다.

 

에단이 끊임없이 느끼는 공포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 그가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는? 소설 속 인물들의 시간이 뒤엉킨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런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마지막 장면을 읽기 전까지 알아차릴 수 없다(정말 뛰어난 독자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엉뚱한 결말 같기도 하지만 트윈픽스를 사랑한 사람이라면 그 감정을 이해할 만도 하다. 특히 이 작품이 작가가 구상하는 3부작 중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면.

 

예전에 모든 불을 끄고 트윈픽스를 보며 느꼈던 오싹함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휘감아들었던 정말 멋들어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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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유럽 - 전2권 -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
브랜든 심스 지음, 곽영완 옮김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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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석을 빼도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고 나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1453년부터 현재까지 유럽 대륙에서 펼쳐진 패권 투쟁의 역사를 다룬 책이기에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EUROPE,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다이내믹한 필체로 독자를 이끄는 책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사건, 역사적 인물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세밀함이 두드러지는 책이다. 방대한 분량의 정보와 지식이 시간적 흐름에 따라 기술되어 있어 중세 이후의 유럽 역사(패권투쟁을 중심으로)를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문득 패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 없이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원했던 국가가 있었을까가 궁금해졌다. 유럽 패권투쟁의 역사를 보면 그런 나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자신들이 패권을 차지할만한 역량이 되지 않는 경우라면 자신들에게 가장 이롭지 않은 혹은 가장 적대적인 국가가 패권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암중에 술책을 쓰기도 하고, 패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국가에 대항해 연합전선을 펼치기도 한다. 이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 다르지 않다. 중국 전국시대의 합종연횡을 생각하면 동양에서도 이와 유사한 외교정책이 펼쳐졌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말이 진리인가 보다.

 

유럽 패권투쟁의 역사를 말하면서 종교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슬람과 대립각을 세운 유럽 국가들은 무슬림에 대항할 동맹군을 찾아 오스만을 측면을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되찾고자 한다. 이런 이유로 시작된 탐험이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등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기회가 되고 이로 인해 인류 역사에서 잔혹한 약탈과 학대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럽의 패권투쟁은 로마제국의 뒤를 이은 신성로마제국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에는 독일이 있었다. 전략적인 측면이나 경제적, 군사적 측면, 특히 정통성이라는 측면에서 독일이 가진 중요성은 상당하다. 그렇기에 독일을 둘러싼 전쟁과 패권다툼은 끊이질 않는다. 결국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치며 동독, 서독으로 나누어졌지만 독일은 현재 통일 독일로 유럽연합을 이끌 정도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며 모든 유럽 국가들이 호시탐탐 노렸던 독일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옮긴이의 말처럼 독일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남북으로 나뉜 상황과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상황이 독일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특히 미국과 중국이 대립이 더욱 극심해진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인가? 섣불리 답을 말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유럽 패권투쟁의 역사에서 독일이 걸었던 길을 세밀히 살펴본다면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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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 사랑하자
유기성 지음 / 두란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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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많아진다.

친한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끊임없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그렇다.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위에 말한 내용들은 사랑에 빠지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공통된 증상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나에게도 이런 증상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가?

 

말이 많아진다. ,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기도하는 시간이 바쁘다는 핑계로 늘어나기는커녕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식기도조차 제대로 안 하는 게 현재 내 모습이다.

 

친한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에휴, 어렸을 때는 그나마 초코파이라도 받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열심히 얘기하고 교회로 데리고 갔는데, 요즘은 우리 아가에게도 예수님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끊임없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나마 가장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긴 한데 올해는 이마저도 시원치 않다. 그래도 1년에 성경 1, 매일은 아니지만 QT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주일날 듣는 설교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 이건 뭐라고 얘기하기도 뭐하니 그냥 패스하자.

 

이렇게 돌아보니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게 맞나 싶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요한일서를 강해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는 예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것이라고. 머릿속으로만 알고 율법으로만 따르던 바리새인처럼 그저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고. 게다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앞서 제시한 증상들에 더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증상이 있단다.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는 증상이 절로 나타난단다.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머릿속으로는 받아들여지지만 마음 한견에서 한숨이 나온다. 사랑해야 하는 걸 알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이를 어찌해야 하나? 솔직히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뿐인 내 모습은 무언가 문제가 있음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랑하라”, 이 말씀을 어떻게 따라야 하나? 나의 힘으로 가능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는 예수님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다. 말씀으로 예수님을 깊이 알고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될 때 우리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때에야 성령의 역사로 형제자매를, 또한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랑과 믿음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어주시고자 한다. 사랑으로 우리의 영을 살리고자 하신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었다면, 영원한 지옥의 고통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런 나를 천국으로, 영생으로 이끄신 사랑이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미워할 수 있을까?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할 수 있을까?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랑이지만 잊고 있었다.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를 잊고 있었다. 잊어버렸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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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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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또는 호랑이보다 더 두려운 존재이다”(p.122)

 

우리는 모두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을 바란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고 존중할 줄 아는 지도자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지도자를 찾아보긴 어렵다. 아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백성을 호구로만 여기는 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보니 이런 생각을 가진 자의 목소리는 어딘가에 파묻혀 버리고 만다.

 

위 글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호민론>에서 말한 내용이다. 그는 민중을 근본으로 한 민중의 복리를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설정했다. 조선 시대에 이런 사상을 가진 학자가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다. 그저 홍길동의 저자라고만 여겼기에 더욱 그러했다.

 

허균은 민본 정치를 위해 실제적인 정책을 제시한다. 그는 관람원다(官濫員多)’라고 말하며 정부의 폐단을 꼬집는다. 관람원다, 정부기구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쓸데없는 관원이 많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저 조선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정부조직들과 그 조직들이 행하는 일들을 보면 허균의 질타가 떠오른다.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 하나 처리하려고 해도 이리 가라, 저리 가라하면서 정작 책임지는 이가 아무도 없는 모습을 보면 울화통이 절로 터져 나온다.

 

허균은 또한 당쟁의 폐해와 붕당에 대해 말한다. 그는 <소인론>에서 붕당을 음붕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표현하는데, 음붕은 개인의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 파당을 짓고 떼거리로 남을 배척하고, 자기 파당이 아니면 무턱대고 배척하고 자기 파당이면 어떤 잘못이 있더라고 옳다고 편든다고 한다. 그렇기에 소인이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해독보다 더 큰 해독을 끼친다고 말한다.

 

음붕의 폐해, 이도 역시 조선시대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또한 정치 집단에 한하는 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패거리를 지어 자신의 패거리가 아니면 사장시켜버리는 행태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런 행태가 비리와 뒷거래로 이어진다. 이런 행태에 휘말려 인재가 등용되지 못한다.

 

허균은 소설과 시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고발하고 이에 저항한다. 서얼 차별 철폐, 가난한 백성의 구제, 탐관오리 응징 등 그가 가진 개혁적 사고를 보여준다. 그는 홍길동전이라는 작품을 통해 백성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였다.

 

허균은 백성과 함께 하며 백성을 사랑한 시대의 선각자였다. 시대의 사명을 깨달아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한다는 호민, 허균 그가 바로 진정한 호민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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