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지 않는 공부법 - 모든 시험을 뚫는 합격 필승 공식
손의찬(메디소드) 지음 / 빅피시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공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이해를 잘하고 암기가 잘돼고 문제를 잘 풀면 공부는 완벽한 것 같다. 그게 안되니까 힘든거다. 이해력은 경험을 안하면 잘 모른다. 연애에 대해서도 모솔이면 연애에 대해서 아무리 얘기를 듣고 책으로 읽어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가 가장 재미가 없어서 몇 분을 못보겠다. 그러면 사람들하고 벽이 생기고 한계가 느껴진다. 내가 경험을 안해도 아주 이해를 잘하는 방법을 저자가 알려준다고 하니까 꼭 읽고 싶어서 읽었다.

내가 아는 세상은 방구석에서 책읽는 것밖에 없어서 더 많은 세상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다. 지식만 있고 이해가 없으면 소시오패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이해력이고 독해력 문해력인 것 같다. 그게 잘되면 공부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없는 것 같다. 나도 책을 읽을때 이해가 잘되고 재미있게 느껴지면 공부가 아니라 그냥 노는 느낌이라서 부담이 적고 계속 공부가 하고 싶어진다. 나도 정말 뛰어난 문해력과 이해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해를 그냥 하고 있으면 따로 안 외워도 되고 그 원리나 과정, 작동의 움직임을 알면 되는 것 같다. 저자가 이해력을 알려준다고 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적용을 해보고 더 알고 싶다. 저자 손의찬은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공부법 분야 채널 ‘메디소드’에서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공부법을 가르치며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수험생들의 멘토이자, 현직 최상위권 의대생, 스스로 ‘난독증’이 아닐까 하고 고민했을 정도로 교과서조차 제대로 읽기 힘든 집중력으로 인해 첫 수능을 망쳤다.

이후 다시는 실패할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수많은 공부법 책과 합격 수기, 해외 자료까지 샅샅이 살피며 온갖 공부법을 연구한 결과, 자신만의 길을 찾아냈다. 그가 말하는 가장 효율적인 공부 특유의 독해법과 이해를 통해 암기의 양을 절대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그 핵심을 담은 책이 바로 《외우지 않는 공부법》이다. 오랜 시간 공부로 고민해 왔다면, 이제 책이 합격에 이르는 길을 환하게 비춰줄 수 있다고 한다. 공부 내용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려면 우선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운동할 때도 그렇다. 체중 감량이 목적일 때와 근육 증량이 목적일 때는 방법이 다르다. 요리할 때도 그렇다. 건강한 식단이 목적일 때와 맛있는 식사가 목적일 때는 방법이 다르다.

독서의 목적은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정한 목적에 따라서 읽는 방식도 바뀐다. 글을 읽는 목적을 혼동할 때 문제가 생긴다. 지식을 배우고 싶은 데 감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사고력을 기르고 싶은데 효율적인 독해법만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만 맞히면 되는데 지나치게 깊게 고민하는 학생도 있다. 그래서 열심히 읽고도 독서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독서에는 수많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감정을 느끼기 위해 글을 읽을 때가 있다. 주로 문학을 그런 목적으로 읽는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낸 인물에게서 용기를 얻는다. 이러한 독서에는 특별한 독해법이 필요하지 않다. 문학 작품은 인간관계를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 관련된 경험이 없다면 읽어도 느끼는 게 없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 생기면 같은 글도 다르게 읽힌다. 사랑을 하면 서정적인 문학이 잘 읽히고, 고난을 겪으면 고난을 극복하는 문학이 잘 읽힌다. 주인공의 작은 독백까지도 생생하게 가슴에 꽂힌다.

책을 통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목적을 혼동하면 위험하다. 강렬한 감정과 연관된 상황을 잘 기억한다. 독서는 목적에 맞지 않게 읽는 것이다. 글을 읽는 가장 흔한 목적은 지식이다. 지혜를 얻는 것이다. 학생은 시험 준비를 위해 교과서를 읽는다. 생산성을 높이고 싶은 사람은 시간 관리법 책을 읽는다. 시험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법 책을 읽는다. 목적이 뚜렷할수록 독해법이 날카로워진다.

문제를 정확히 인지한다. 저자는 글은 어릴 때 배웠지만, 읽는 방법을 터득한 건 늦게였다. 책은 전부 이해할 필요도 없고, 전부 기억할 필요도 없다. 독서의 목적은 모든 글자를 읽기 위함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알기 위함이다. 책에 있는 모든 글자는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글자를 하나하나 기억하려고 하면 안 된다. 책을 쓴 작가도 모든 문장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책에서 정보를 효율적으로 습득하는 기술은 많이 알려져 있다.

독해력의 목적은 문제에서 옳은 답을 고르는 것이다. 문제의 답을 고를 수 있으면 잘 읽은 것이고, 답을 고를 수 없으면 잘못 읽은 것이다. 지식을 습득했는지, 열심히 생각하며 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가장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독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특히 문해력과 사고력이 강조된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만 읽어선 안 되고, 이해가 쉬운 부분만 읽어서도 안 된다. 능동적으로 고민하는 독해만이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어려운 문장을 고민해서 이해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다른 분야의 지식과 연결 짓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런 능동적인 독해 경험이 모여서 사고력이 된다. 목적에 따라 적합한 독해법은 다르다. 사고력을 높이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사고력을 높인다는 주장에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정도로만 읽는다는 목적감각이 부족하다. 읽는 순서를 바꿔서 효율을 높인다는 순서감각도 부족하다. 오직 능동감각만을 강조한다. 이러한 극단성은 경계해야 한다. 모든 공부에선 목적/순서/ 능동감각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면 공부의 다른 중요한 측면을 놓치게 된다. 읽는 순서를 바꾼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이런 생각은 오히려 공부의 효율을 낮추고, 저자를 힘들게 했다. 노력에 비해 남는 게 없어서 힘들었다. 이 모든 것은 알고 보니 순서 감각의 문제였다.

저자는 이 느낌을 깨달은 뒤에 글을 읽는 방식을 바꿨다. 모두 순서대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버렸다. 이해할 수 있는 곳부터 읽거나 필요한 내용부터 읽었다. 읽는 순서를 적극적으로 바꿨다. 그러자 남부럽지 않은 독해 속도를 갖게 되었다. 읽는 순서만 바꿔도 독해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독해는 ‘책에 적힌 지식’을 ‘내 머릿속 지식‘과 연결하는 작업이다. 두 가지가 쉽게 연결되는 책은 쉽게 읽힌다.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이 연결이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책에 적힌 순서가 모두에게 효율적인 순서는 아니다.

또한 책은 지식을 일렬로 펼쳐놓는다. 순간적이고 방향성이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지식은 입체적이다. 특정한 방향성이 없고, 순차적이지도 않다.

독해를 저자에게 맡기면 안 된다. 책을 좀 더 치밀하고 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책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종이에 불과하고, 필요한 걸 얻었다면 버려도 된다. 수험생의 목적은 지문을 이해하는 게 아니다. 지문에 딸린 문제를 푸는 것이 목적이다.

지문을 열심히 읽어도 문제를 풀 수 없다면 잘못 읽는 것이다. 반면 지문의 일부를 읽지 않아도 문제의 답만 정확히 고를 수 있다면 잘 읽은 것이다. 지문 독해의 방향성을 정하려면 문제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봐야한다. 글을 독해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독해는 단어 하나하나를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머릿속에서 조합하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보다 이런 내용이 아닐까라고 먼저 예측하고, 그 예측이 맞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읽기는 언어심리학적인 추론 게임이다.

읽기는 글자, 단어 문장의 정확하고, 디테일하고, 순차적인 인지와 이해가 아니다. 읽기는 선택적인 과정이다. 인지적 인풋 중에서 최소한 언어적 힌트를 사용해서 추론하는 것이다. 저자는 글의 결론부터 찾아 읽는 독해법을 배웠다. 그중에 요약된 부분을 먼저 읽는 방법이 있었다. 수험 교재를 읽을 때도 결론부터 읽을 수 있다. 바로 ‘문제’를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읽는 목적은 어차피 문제를 풀기 위함이다. 즉 문제가 공부의 결론이다. 문제는 푸는 데 필요한 중요한 문장이다.

대부분은 이론을 이해하고 문제를 확인하려 한다. 우리는 문제만 풀 수 있으면 된다. 그게 수험에서의 목적감각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수동적 공부가 지속되면서 공부가 늘어질 수 있다. 공부의 목적은 모든 개념을 이해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해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강의를 들으면 된다. 짧게 압축된 강의를 듣거나 발췌해서 들으면 효과적이다. 그런데 문제 풀이 위주의 공부를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공부법은 생각의 범위를 문제 풀이로 좁힌다는 것이다. 이 말은 반만 맞는 이야기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시험공부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문제를 잘 풀고 싶어서도 아니다. 시험 문제를 보는 게 빠르게 기초를 쌓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공부에서 보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 도구인지 직접 느껴봐야 한다. 계속 공부해도 지식이 내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어디에 정리할지 생각해야 한다. 지식은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필요할 때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이 단권화다.

단권화는 단순히 뿌듯해하거나 보기에 깔끔하라고 하는 게 아니다. 흩어진 지식을 하나의 체계로 모아 놓고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함이다. 단권화의 구체적인 방법은 기존 교재를 사용하는 방법과 직접 만드는 방법이 있다. 교재를 사용하는 방법은 기본서를 사용하는 방법과 요약서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두 교재는 성격이 다르다.

요약서는 결론만 요약해서 적혀 있고, 교과서나 기본서는 그 도출 과정까지도 적혀 있다. 기본서에는 거의 모든 내용이 적혀 있다. 그래서 기본서를 공부할 때는 내용을 줄여나가야 한다. 앞서 말했듯 단권화하는 이유는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시험 전에 다시 봐야 하는 부분은 표시해둬야 한다. 시험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지식에 표시해야 한다. 이해를 하면 억지로 외울 필요가 없고 독해는 요리처럼 직접 읽고 자신이 적용을 해봐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경이 쉬워지는 책 - 맥락과 흐름만 잡아도 성경 쉽게 읽을 수 있다
존 팀머 지음 / 터치북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난 매일 성경을 읽는다. 나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냥 책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이다. 책을 많이 읽었지만 다른 책들은 지식을 얻는 책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실존하고 실체가 있고 그대로 지켜야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난 오로지 말씀만 믿는다. 이 책을 읽고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면 족한 것 같다. 맥락과 흐름만 잡아도 성경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성경의 일관된 흐름과 관통으로 주제를 파악하며 성경 전체를 쉽게 이해하면 성경읽기와 묵상이 즐거워진다.

저자 존 팀머는 여러 세대에 걸쳐 말씀의 씨앗을 다음 세대에게 충실하게 심어 온 가정에서 태어났다. 네델란드 하클렘에서 태어난 그의 12세에 나치는 네델란드를 침공했으며, 청소년기를 추위, 굶주림, 위험, 두려움과 함께 보냈다. 거리 전도와 YFC에 참여해 신앙생활의 열심을 냈다. 1952년 미국으로 이주해 칼빈신학교와 하트퍼신학교 졸업 후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에서 신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4년 동안 일본 선교사로 기독개혁교회(CRC교단)를 섬겼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 리지우드기독개혁교회와 우드론 기독개혁교회에서 목회를 한 뒤 1995년에 은퇴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난 스토리 텔러인 그는 2009년 칼빈신학교 우수동문상을 수상했고, 그의 설교는 신선함과 깊이 그리고 언어적 경제성으로 유명하여 신학생들의 모델이자 설교자들의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교회 장년부 교육이라고 하면 대개 성경 본문을 정해 놓고 공부하는 방식을 떠올린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장년주일학교를 이런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물론 이런 형식도 적절치 못한 것은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평생의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교육에는 기독교 교리, 교회사, 교회행정, 기도, 기독교 윤리 등 다양한 과정이 포함되며, 그럼에도 각 과정은 주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한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신학 공부로 돌아가기 위한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신학이야말로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는 모든 교회교육의 열쇠이다. 『성경이 쉬워지는 책』은 하나의 맥락을 중심으로 성경을 흝어보는 책이다. 이 책은 성경에 대한 개관을 대략 날짜, 이름, 사건 등을 역사적 순서대로 개관하면서 성경의 숲을 본다.



중요한 가르침과 사건들의 연관성을 짚어보면서 이야기의 기본 뼈대를 세워간다. 성경을 관통하는 전체 의미를 살피면서 그 속에 담긴 정신과 의미를 파악하여 총체적으로 보는 방법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공부할 때 한 본문, 한 단락, 한 장 나아가 크게는 한권 정도로 나누어 보는 경향이 있다. 성경은 한 분의 저자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권의 책이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을 담은 한 권의 책으로 전체 맥락 가운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경의 전반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총체성이라는 맥락에서 공부해야 한다. 팀머의 선교사서 경험은 그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성경은 아직 ‘내 백성’ 이 되지 않은 사람들과 하나님 나라가 확립되지 못한 땅 그리고 그 땅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이자 왕의 통치로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선별적으로 성경을 읽는다. 어떤 책은 즐겨 읽고 어떤 책은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성경 일부에만 관심을 제한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그 결과는 매우 가치 있는 대부분 본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성경 본문의 깊은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성경 본문의 깊은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이어질 전체적인 맥락을 따로 분리하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성경을 묶음집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창세기 1장을 신화로 보는 것이 유행이다. 하지만 창세기는 신화가 아니다. 신화란 신에 대한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이야기다. 그러나 창세기는 신화와는 정반대다.

옛사람들의 사유가 만들어낸 신화를 거부하고 반박하며 파괴한다. 창세기 1장은 이방종교들의 핵심을 망치로 깨부수고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앞에 다른 모든 것들을 창조한 너의 주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다른 신은 없기 때문이다. 이집트 사람, 바벨론 사람, 그리고 페르시아 사람들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결정하는 신으로 태양, 달, 별 등을 신으로 섬겼다. 또 가나안 민족은 출산과 번식이라는 자연적 과정을 거룩하다고 믿었다.

창세기 1장의 주장은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이 신이라고 믿는 것들은 결코 신이 아니다. 그저 인간과 마찬가지로 다른 피조물일 뿐이다. 창조주라는 범주의 신은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있으며, 다른 모든 것은 만들어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반복적으로 주변의 정치적 강대국들이 믿는 신들의 공격을 받았다. 창세기 1장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피조물을 신적 위치까지 높이고 숭배하는 유혹에 대해 대적하라고 명령한다. 태초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마지막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손으로 지어진 성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한 성전은 타락 이후에야 필요했다.

태초에 창조를 성전으로 묘사하고 있는 창세기 1장과 새 창조를 성전이 없는 거룩한 성으로 비유하는 요한 계시록 21장 사이에서 잃어버린 피조물을 인간의 역사 안으로 침투하시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창조는 단지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존재하도록 하셨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창조는 지속적인 혼돈의 위협에 대항해서 하나님이 계속 창조를 지탱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의 영원하신 뜻과 섭리로 천지의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 공허한 흑암 속에서 세상을 빚어내는 일을 시작하셨다. 밤은 지금의 창조 가운데 일부로 남게 된 흑암의 흔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매일 밤 피조물의 윤곽은 형태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매일의, 아침은 일종의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 밤은 이 세상에 혼돈의 어둠 같은 것을 다시 가져오기 때문이다.



빛이 형태 없는 흑암 속에서 피조물을 비추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밤이 요한계시록에서 표현하고 있는 새 창조의 일부가 될 순 없다. 세 창조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 양이 있기 때문이다.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21:23) 이제 창세기 1장에서 일곱 번 (3,6,9,14,20,24,26)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표현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역사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역사였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의 제한을 넘어서면 안전하지 않고 오직 혼돈, 파괴 나아가 사망만이 있을 뿐임을 강조한다. 이 말은 우리의 삶에 오직 두 가지 선택이 있음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것인가, 혼돈의 권세에 굴복할 것인가? 이 선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열방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결정짓는다.

본문의 내용을 읽고나면 그 장의 내용을 공부하는 공간이 있다. ①창세기 1장의 중심 주제는 무엇인가? ②창조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 출애굽 사건과 닮았는가? ③저자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실수를 저지르는지에 대해 언급했다. ④창세기 1장을 다룬 이 장에서는 많은 사람의 큰 관심거리, 곧 “그리스도인은 우주의 기운에 관한 과학적 설명과 창조에 대한 성경적 설명을 어떻게 조화 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저자는 왜 문제를 다루지 않았는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아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암 9:7-8)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우리도 동일하게 모두 특별하게 만드셨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평가는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말씀하신다.

그런 우리를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와 지체들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하신 이유를 말해보자고 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다른 신들과 달리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신은 하나님을 깨끗게 비추는 거울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세상에 온전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내가 세상에 비추고 있는 형상은 무엇인가? 자신이 다 생각해봐야 한다.

일곱째 날에 일어난 ‘안식’은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라는 말씀에 근거해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안식일 제도가 신약 시대 이후 주일로 승화되었다. 하나님의 창조와 안식을 생각해 볼 때 주일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시편 8편은 창조주께서 드리는 찬양이다. 배운 바에 대한 응답으로 시편 8편을 읽어 본다.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본문을 읽고 저자의 질문에 답해본다. 아침과 밤이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라는 얘기가 새롭고 와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그램 독서법 - 하루 10분 가볍게 시작하는 독서 루틴 만들기
박세영 지음 / 프롬북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독서를 매일 하지만 아직도 어떤 독서법이 가장 좋은지 모른다는 게 기적이다. 책을 많이 읽어도 모르는 게 이렇게 많고 어떤 인생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도 신기하다. 아직도 읽을 책이 많다는 것도 너무 아이러니하다. 독서법도 끝없이 잘 모르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의문이다. 이 책을 읽고 독서법을 또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서 읽었다. 하루 10분 가볍게 시작하는 독서 루틴 만드는 게 중요하다.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이 달라진다.

저자 박세영은 초등학교 교사이자 도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책에 푹 빠진 독서 예찬론이지만, 어릴 때는 읽기가 너무 싫어서 엄마 잔소리를 피해 도망 다녔다. 그러나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은 잘 들어 공부는 곧잘 했고, 결국 교육대학 졸업 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정년까지 공무원생활하며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정해진 길로만 갈 줄 알았는데, 책이 끼어들었다.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병실을 지키던 중 무료함에 집어 든 책 한권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저자는 ‘책을 읽는데 이렇게 흥분된다고?’ 심지어 무게 잡는 인문학이나 고전도 아니었다. 그렇게 책 맛을 알아버린 뒤 이제는 출근하면 교실에서 아이들과 독서 시간을 나누고, 퇴근하면 SNS를 통해 어른들과 독서의 가치를 나누고 있다. 14만 구독자의 오디오북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책 읽는 어른’ 이라는 브랜드의 유튜브 채널,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해 도서 콘텐츠를 꾸준히 연재하고 있다.

저자는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 독서로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책을 읽을지 궁금하다. 그들의 비법만 흡수하면 누구나 크게 성공할 수 있을텐데, 3대째 전해 내려오는 할머니 특급 요리 레시피처럼 독서에도 그런 특별한 독서법이라는 게 존재할까? 독서법에 관한 글을 쓰면서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숱하게 읽어봤다. 무지개를 쫓는 소년처럼 특별한 독서법을 찾고 싶겠지만, 그런 건 없다.

독서법이란 단지 우리의 일상에 독서가 조금 더 스며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독서가 먼저이고 좋은 문장을 만나도 노트에 필사하지 않았다. 포스트잇을 붙인 뒤 나중에 컴퓨터에 저장했다. 책을 읽지 못하는 날이 있어도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는 게 좋다. 누군가 쓴 서평을 읽으면서도 만족해 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는 날은 찜찜했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읽었다.



자연의 섭리는 모르지만, 인간의 본성만큼 꿰뚫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사람은 가벼운 것에 끌린다. 어릴 때 읽었던 『이솝 우화』에도 나온다. 길을 가는 한 나그네에게 바람과 해님은 차례차례 도전을 한다.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 내기였다. 바람은 힘을 주어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려 한다. 있는 힘 없는 힘 짜내며 거세게 몰아붙이지만 오히려 나그네는 필사적으로 겉옷을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해님은 바람과 다른 전략 썼다. 힘을 빼고 그저 나그네 곁에 있었다. 가벼움 무거움보다 강하다.

현실도 그렇다. 부모님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연애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해하기 더 쉬울 거라 생각한다. 알다시피 부모가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연인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겉옷이 날아갈까 세게 움켜잡았던 나그네처럼 말이다. 난 연애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부모님이 안 좋아하면 안 좋아할 것 같다. 독서에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을 없앤다. 실패는 없다. 한 달에 한 권을 읽었다고 실패는 아니다.

저자가 알고 있는 특별한 독서법은

첫째, 완벽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읽지 않는다.

둘째,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채우는 맛에 읽는다.

셋째,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읽지 않는다.

넷째, 빈틈 많은 나를 채우는 맛에 읽는다. 이렇게 힘을 빼고 읽으면 독서는 일상이 된다.

독서 알고리즘을 최적화한다. 쇼츠를 끓을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고객 맞춤형 알고리즘 때문이다. 귀신 같이 내가 요즘 뭘 좋아하는지 잡아내어 보여준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내 입맛에 맞는 반찬들을 딱 차려주니 이보다 좋은 서비스가 없다. 가끔 부모님이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책장에 이렇게 책이 많은 데 볼 책이 없다고 불평하는 아이의 말이 꼭 핑계같아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장은 아이가 꾸몄는지 부모가 꾸몄는지 말이다. 구글, 메타와 같은 공룡기업이 만들어 놓은 알고리즘과 싸우려면 책장 정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

책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인문학을 읽으며 지식을 쌓고 싶은 사람, 비즈니스 책을 읽으며 실무에 적용하려는 사람, 성취감을 얻고 싶은 사람 등등이다. 저자는 3년 전에는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읽었다. 저자도 성공하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스스로에게 ‘Why’를 던지면서 읽는다. 저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도 몰입한다.

독서 습관을 들일 때 가끔은 독기도 필요하다. 이 책으로 인생을 바꾸겠다는 마음보다는 10분만큼은 책에 빠진다는 마음으로 읽는다. 『본능독서』를 보면 독서하는 순간만은 지금 읽고 있는 그 페이지에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루 10분은 한 권을 읽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시간의 양이 아닌 시간의 질이다. 매일 책을 읽다 보면 글씨를 쓰는 붓 자체가 달라진다. 100곱센티 면적을 채우려면 5년 전에는 100번을 왔다 갔다 해야 했지만, 지금은 10번이면 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지금 이 페이지에 마음을 둔다. 바로 읽고있는 그 페이지말이다.

독서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딸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방학 기간이면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다.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아들은 공부 안 해도 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셨을까? 그렇게 특별대우 받고 자랐지만 어른이 된 후엔 결국 메니에르증후군까지 겪게 되었다. 코끼리를 30번 돈 것처럼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서 눈을 잠깐도 멈추지 않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병명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아플 때의 ‘자신’을 이해한다. 몸이 온전치 않으면 독서고 뭐고 다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울트라 셀프』의 이리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남겼다.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싶어도 우울하거나 화가 난 상태에서는 쉽지 않다. 다시 말해 ‘좋은 생각이 나오지 않으면 이성이 아닌 감성을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독서를 잘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막힘없이 흐를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은 체력과도 밀접하다. 몸이 피곤하면 감정이 쉽게 예민해지고, 감정이 흔들리면 독서 집중력마저 무너진다. 독서가 의지의 문제가 아닌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친다. 이럴 때 버팀목이 되는 것이 체력이다. 이는 단순한 운동에서 끝나지 않고 독서를 지속할 수 있는 핵심 시스템이 되었다.

실제로 하루 30분만 걸어도 두뇌 혈류가 늘고 집중력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자 역시 이 원리를 몸으로 느낀다. 10분이라도 뛰면 코로 들어오는 산소가 마치 뇌 속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기분 탓이겠지만, 감정 역시 기분 탓 좋은 최적의 몸과 마음 상태라고 신호를 주는 셈이다. 축적한 에너지를 막힘없이 흘려보내는 순간, 독서는 비로소 몰입의 단계로 접어든다. 저자는 한때 약한 체력을 원망했다. 20대 후반 메니에르증후군이 왔을 때는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체력이 저자에게는 결핍이었다. 그리고 그 결핍은 저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몸에 좋은 습관을 유지하는 데 있어 결핍만큼 큰 원동력은 없었다. 매일, 매년 운동을 거를 수 없는 마땅한 이유가 되었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펴놓고 보는 시간’만 늘린다고 잘 되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습관과 루틴, 그리고 컨디션 관리가 필수다. 운동뿐 아니라 식습관 수면습관처럼 자신만의 ‘책을 읽기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자신만의 독서 시스템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그 편안함이 한 장, 한 줄에 더 몰입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자기계발서에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생생하게 상상하면 이루어진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바 목표를 글로 써야 이뤄질 가능성이 생기고, 쓰지 않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목표를 적는 순간, 그것은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 된다." 맞는 말 같다.

독서 지도를 만들면 독서는 글자를 읽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 다. 독서는 행동으로 연결된다. 책에서 얻은 통찰을 현실로 가져와 목표가 없었다면 저자는 여전히 ‘유튜브 한번 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며 책을 읽었을 게 뻔하다.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말하는 ‘행동하라’를 읽어도 목표가 없었다면 진짜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독서 지도에 명확히 그렸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어본다. 지도 사용 기한은 1년, 미리 캔버그나 칸바와 같은 사이트를 활용하면 이미지 파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원하는 목표를 눈치 보지 말고 다 붙여본다. 지도를 볼 때 두근거려야 한다.

인간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오는 기대감으로 살아간다. 로또 복권의 가치는 당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의 설렘에 있다. 다음은 지도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목표에 등을 돌리는 순간, 0.2초 만에 잊어버린다고 한다. 독서 지도를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었다면, 다음은 생활 곳곳에 목표를 몸에 스며들게 만든다. 지도는 독서의 방향을 잡아주는 시스템이 된다. 책을 즐겨 읽다가도 종종 멈추고 싶은 때가 찾아온다. 저자는 한때 1년에 80권씩을 읽어나가며 독서에 불이 붙었다.

박승오와 홍승완 작가의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에서 ”자신의 길을 충실히 걸으면 이 길의 끝에 푸른 바다가 놓여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지도를 보고도 엉뚱한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목표가 너무 멀어 보여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길은 통한다.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돌고 돌아서 도착하게 된다. 힘들더라도 지도를 펼쳐 묵묵히 독서를 이어나가야 한다. 자신만의 지도가 없으면 남이 만든 지도에 따라 걷게 되기 때문에 꼭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는데 왠지 모를 목표에 대한 강렬함과 열정이 생기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대한 개츠비 작가라는 걸 알게 되니까 몰입이 되더라구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국의 소설가다. 1896년에 태어난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광란의 20년대’에 두각을 나타냈다. 20세기 초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화려하고 향락적인 재즈 시대의 아이콘이다. 자서전적 소설 〈낙원의 이편〉 (1920)을 발표하면서 비평가와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그는 1925년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20세기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위대한 개츠비는 어마어마한 작품 같았다.

이후 〈밤은 부드러워〉( 1934)를 발표했으나 상업적으로 실패한다. 잇따른 작품의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부인 젤다의 병으로 절망에 빠진 피츠제럴드는 회복 불가능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1940년〈더라스트타이쿤〉을 집필하던 중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을 엮은 사람은 래디 W. 필립스는 저널리스트, 작가, 프로 포커 플레리어다. 〈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편집자였고, 그는 위스콘신 주의 몬로에 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대량생산고 대량소비로 호황이 지속되면서 ‘광란의 20년대 ’라고 불렸다. 피츠제럴드의 경력은 이런 시대적 흐름과 궤를 함께한다. 깁슨 걸이라 불리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여성상을 시작으로, 화려하고 요란한 1930년대를 보냈으며, 1940년대의 어둠 속에서 그의 생애는 끝자락에 이르렀다. 흥미롭게도 그의 삶은 그가 태어난 국가의 운명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는 언제나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를 반영했다. 또한 스스로 외부 세계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보통 사람들보다 강하다고 말하곤 했다. 이 경향은 상호적이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고 그의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도 그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려 했다.



이 책은 피츠제럴드가 글쓰기에 관하여 남긴 의견과 통찰을 모두 담고 있다. 이전에 출간된 《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과 짝궁 책이다. 와 대단한 책이다.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는 사람의 관점은 각기 달랐지만, 다른 작가들에게 아낌없이 조언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헤밍웨이는 가르치는 일을 즐겼다는 사실은 너무 유명하다. 피츠제럴드 전기를 쓴 안드레 르봇은 피츠제렐드 역시 ‘배운 것을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이라고 설명하며, 앤서니 포웰의 말을 인용한다.

가장 미국적인 두 작가가 지닌 글쓰기에 대한 신념의 차이가 궁금해진다. 이 두 작가는 세계를 향한 미국적 접근법을 대변한다. 헤밍웨이의 철학은 오늘은 남은 내 인생의 첫날이다라고 했다면 피츠제럴드의 철학은 조금 더 본질적이고 시적이며 헤밍웨이의 것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오늘은 연속적으로 보낸 지난 날들을 끓어내는 날이다.’라고 했다. 그의 철학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깊이 얽혀 있어서, 언젠가 말콤코울리는 피츠 제럴드에게 ‘마치 시계와 달력으로 가득찬 방에 사는 사람같다는 ’표현까지 했다.

감정과 경험은 언어 이전의 영역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그것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글자를 조합해야 한다. 피츠제럴드는 이 과정을 누구보다 탁월하게 해낸 작가다. 혼자라고 느끼던 감정이 사실은 모두의 보편적 감정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그는 문학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말한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가 가진 고독 과 좌절, 희망과 열정이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재즈 시대의 아이콘으로 결코 평탄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운명처럼 글쓰기를 시작했고, 생계를 위해 멈추지 않고 써내려갔다 하지만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는 일’임을 깨닫는다. 피츠제럴드는 문학가의 길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온전히 정제하여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시킨다고 했다. 또한 자신을 ‘문학적 도둑’이라 칭하며, 어디에서든 배움을 얻었다. 엉망으로 쓰인 책을 읽고 글쓰기에 용기를 얻었고, 위대한 작가의 글을 곱씹으며 위대한 이유를 파고들어 자신의 작품에 녹여냈다.

다른 작가를 경쟁자로 인식하기보다는 같은 소명을 짊어진 동료로 봤다. 그런 시각은 정말 좋은 시각같다. 조언을 구했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자신 역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사소한 것들을 중요한 것처럼 포장하는 게 특기였는데, 그런 책들도 거의 베스트셀러에 가까웠다. 그때 결심하고 책을 쓰기 시작 했다. 책을 쓰려면 메모부터 시작하는 거다. 아마 아주오랫동안 메모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언가 떠오르거나 기억이 나면, 반드시 적절한 자리에 적어 둬야 한다.

생각이 났을 때 바로 적어 둔다. 나중에 다시 떠올리면 처음처럼 생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는 무엇 하나 허투루 허비하지 않는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빨리 완성하고 싶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아름다워도 맥락에 맞지 않으면 잘라내야 한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 , 적당히 괜찮은 것, 심지어 뛰어나 보이는 것도 잘라낼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의 창작이 지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기존 스타일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듬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료를 고르는 것이다. 결국 모든 작가에게 글쓰기는 삶 그 자체나 마찬가지다. 아주 형편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하지만 결국 대부분 소화하기 쉬운 음식만 곱씹으며 산다. 사건이나 인물은 삶에서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언제나 그가 읽은 최근 작품의 관점에서 그걸 해석한다. 지성인에게는 수준을 낮춰서 글을 쓰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랭스턴 휴스나 스티븐 위트먼만 봐도 비극적인 책 한 권 쓰고 소식이 없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아나 정신을 가지지 못한 채 신경질적으로 주린 배만 움켜쥐어야 했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고 허영으로 기름칠을 좀 하고 나면, 세상은 낭만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얄팍한 대중물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진정성 있게 쓸 수 없게 된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제본은 다른 책들과 완전히 동일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겉표지랑 책에 찍히는 문양도 동일하게 하지만, 겉표지 추천사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멘켄, 루이스, 하워드, 뭐 이런 사람들 다 필요 없다고 했다.

만일 〈위대한 개츠비〉가 상업적으로 실패한다면 이유는 두 가지중 하나, 혹은 두 가지 때문일 것이다. 첫째, 제목이 그저 그렇다고 생각해 본다. 좋다기보다 오히려 나쁠 것이다. 둘째, 두 번째가 더 중요한 이유인데, 책에는 비중 있는 여성 인물이 전혀 없다. 요즘 소설 시장은 여성이 이끌어 가고 있는데 말이다. 비극적 결말은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겉표지 문구를 추천해보자면 ‘활기가 넘치는 초기 작품에서는 전례 없던 도전적인 미국소녀상을 그려냈고, 이후 진진한 분위기의 〈위대한 개츠비〉같은 작품을 탄생시키며 미국의 6대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전개, 다채로운 빛깔, 그리고 고요와 격정이 교차하는 리듬을 보여준 작가는 지금까지 없었다. 어조는 조금 조정해야겠지만 피츠제럴드는 해냈다.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은 삶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글쓰기는 성실함과 장인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난 저자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지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가 개츠비의 작가인 걸 알고 반가웠다. 항상 유튜버들도 그렇고 상대는 나를 모르지만 나혼자 안다고 해도 혼자서 반갑다. 이 책도 그런 느낌이었다. 개츠비의 얘기를 모두 알아서 저자가 가깝게 느껴졌거 그의 글쓰기가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