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p.23 - 피아니스트 조가람의 클래식 에세이
조가람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4월
평점 :
쇼팽의 Op.23은 발라드 1번, 차이콥스키의 Op.23은 피아노 협주곡 1번, 슈만의 Op.23은 밤의 노래, 라흐마니노프의 Op.23은 전주곡, 그리그의 Op.23은 페르귄트.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Op.23 즈음도 자신만의 매혹이 피어나던 어귀였습니다. - '작가의 말'중에서
책의 작가 조가람은 유럽 각지의 언론에서 호평받으며 음악성을 인정받은 피아니스트로 서울대학교 움대를 졸업한 후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 '한스 아이슬러'에서 최고 연주자과정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졸업하였다. 또 러시아 피아노의 거장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계보를 잇는 가브리엘레 쿠퍼나겔 교수에게 사사하였다.
그로아티아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1980년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현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쇼팽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창백한 가녀림, 타협 없는 눈빛을 지닌 잘생긴 청년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자아내는 그는 쑥스럽게 인사한 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예술에 맞고 틀림이 있겠냐마는, 콩쿠르의 세계에는 '정正'과 '誤'가 존재한다. 표준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의 연주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었다. '정격 연주'의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한 그의 파격적인 해석에 1980년의 바르샤바는 시끄러웠다. 결국 그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의 당시 실황 연주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흐름의 예상치를 뒤엎는 그의 연주를 들으면 어떤 이는 신경이 거슬릴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바보처럼 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후자後者였다.
끝없이 과거를 복원하고, 모방하고, 학습하여 재현하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 그 안에서 그는 여전히 창작과 창조성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그가 펼쳐낸 새로운 지평은 아름다웠다. 모두가 지쳐버린 예술의 불모지에서 다시금 불씨를 지핀 그는,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쇼팽의 '밤의 노래'
백건우는 음악의 정도正道에 다다르고자 지성의 신을 신고 한길을 걸어왓다. 그 길 위에서 정성 어린 진의의 음악으로 타인의 눈물을 닦아왔다. 이제 일흔셋, 그가 쇼팽의 일기장을 폈다. 그리고 쇼팽의 생각을 더듬어 따라가 본다.
1964년, 23세의 나이로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등장한 그는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에 가둘 수 없는 범세계적인 거장의 길을 걸었다. 청년 백건우는 이미, 한 세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업적을 세웠다. 그런데, 아마도 저자가 착각한 듯하다. 1969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4위(특별상 수상)입상한 것으로 나타난다.
쇼팽이 살았던 19세기의 속도가 21세기보다 두 배쯤 느렸다면, 그래서 사유의 양이 두 배쯤 많았다면, 쇼팽의 영혼은 일흔셋의 백건우와 동갑내기라 해도 괜찮을까? 그래서 그의 밤의 노래(야상곡夜想曲)는 이토록 깊이 스며드는가.
아니면, 이 바쁜 시대 속에서 홀로 모든 문화적 빠름을 뒤로 하고, 오로지 음악에 몰입한 세월을 살아낸 그의 삶의 정결함이, 쇼팽의 야상곡을 이해할 수 있는 문지방을 넘을 수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의 야상곡이 이토록 깊이 파고드는가.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
리스트((1811~1886년)는 헝가리계 독일인 피아니스트로 아이돌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린 남자였다. 뛰어난 문필가이자 위대한 작곡가였으며 숱한 여인들과 스캔들을 뿌렸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멸의 찬사를 받아 마땅한 비범한 음악가임에 틀림없다.
37세의 리스트는 러시아 출신의 문인, 공작부인, 유부녀였던 캐롤린 비트켄슈타인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이전 연인戀人인 열정적인 다구 부인과 달리 그녀는 이지적 매력으로 그을 사로잡았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우정으로 변했지만 그 깊이는 더욱 단단해졌다. 40년 동안 정서적 교류를 이어갔다.
이곡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프라일리그라트의 시詩에 선율을 더하고, 이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되었다.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리스트는 사랑을 꿈꾸었고, 그 꿈을 영원히 잠들지 않는 노래로 남겼다. 아름다운 그 꿈을 음표 하나하나에 새겨 넣었다.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시간이 오리니,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오래도록 잠들지 않은 그의 사랑 이야기, 이백 년의 시간을 건너서도,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이 사랑 노래. 사랑 앞에 비범한 사람도 평범해지고, 바로 이 평범함이 한 인간의 고귀한 깊은 내면의 고유한 비범함을 이끌어 낸다는 진실을 리스트는 노래한다. 그가 비트켄슈타인을 만나 수많은 내면의 음악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었듯이.(117쪽)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하면 엉킨 실타래가 보이고, 오래 보면 논리가 보이는 곡"이라고 말이다. 이어서 겉으로는 가슴 아픈 로맨틱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노골적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있고, 그 아래 다층적으로 첩첩이 숨겨진 멜로디들이 있다고 첨언한다.
그는 오랜 고뇌 끝에 낭만성과 대중성을 큰 맥으로 잡고, 그 아래에 흐르고 있는 복잡다단한 당대의 러시아 인간사가 섬세하게 얽힌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제국주의적 시선이나 정치적 시선을 담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불안한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지극한 한 사람으로서 그려냈죠. 그래서 이 곡은 어쩌면 교향곡 1번보다도, 피아노 협주곡 2번보다도 가장 라흐마니노프 자신에 가까운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172쪽)
1악장은 러시아를 횡단하는 기차에 탑승하며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러시아를 둘러보는 여행기가 시작된다. 여행에서 여러 사람 사는 모습들을 본다.
2악장은 1악장의 여행에서 둘러본 삶과 불가항력적인 시대적 아픔에 대한 사무치는 번뇌와 신에게 고함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3악장은 인간의 한계를 ㅅ시험하는 듯, 끝나고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각종 테크닉 때문에 마냥 인간적이지는 않다. 피아니스트들끼리는 라흐마니노프가 실수로 악보에 모래를 쏟았다고 농담할 정도로 까만 음표가 빽빽하다.
#에세이 #클래식에세이 #조가람 #피아니스트 #믹스커피 #원앤원북스
쇼팽의 Op.23은 발라드 1번, 차이콥스키의 Op.23은 피아노 협주곡 1번, 슈만의 Op.23은 밤의 노래, 라흐마니노프의 Op.23은 전주곡, 그리그의 Op.23은 페르귄트.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Op.23 즈음도 자심낭의 매혹이 피어나면던 어귀엿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책의 저자 조가람은 유럽 각자의 언론에서의 호평과 함께 음악성을 인정받는 피아니스트로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졸업한 후 독일 베를린국립음대 '한스 아이슬러'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독일 정부 주최 학술 교류 연구소 DAAD 상을 수상했다.
크로아티아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1980년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현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쇼팽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창백한 가녀림, 타협 없는 눈빛을 지닌 잘생긴 청년(1958년생)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자아내는 그는 쑥스럽게 인사한 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예술에 맞고 틀림이 있겠냐마는, 콩쿠르의 세계엔 '정正'과 '오誤'가 존재한다. 그의 연주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었다. '정격 연주'의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한 그의 파격적인 해석에 1980년의 바르샤바는 시끄러웠다. 결국 그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의 당시 실황 연주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흐름의 예상치를 뒤엎는 그의 연주를 들으면 어떤 이는 신경이 거슬릴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바보처럼 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후자에 속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1964년, 23세의 나이로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등장한 그는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에 가둘 수 없는 범세계적인 거장의 길을 걸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런데, 이는 저자의 착각인 듯싶다. 서울 태생의 백건우(1946년생)는 1968년 콩쿠르에서 4등으로 입상했다. 물론 한국인 최초로 입상했다. 이탈리아 페루초에서 거행되는 세계적 권위를 지닌 이 콩쿠르는 피아노 부문만 개최되는 대회이다.
쇼팽(1810~1849년)이 살았던 19세기의 속도가 21세기보다 두 배쯤 느렸다면, 그래서 사유의 양이 두 배쯤 많았다면, 쇼팽의 영혼은 일흔셋의 백건우와 동갑내기라 해도 괜찮을까? 그래서 백건우가 연주하는 쇼팽의 '밤의 노래'는 이토록 깊이 스며드는가.
아니면, 이 바쁜 시대 속에서 홀로 모든 문화적 빠름을 뒤로 하고, 오로지 음악에 몰입한 세월을 살아낸 그의 삶의 정결함이,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을 이해할 수 있는 문지방을 넘을 수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의 야상곡이 이토록 깊이 파고드는가.
리스트의 '사랑의 꿈'
프란츠 리스트(1811~1886년)는 아이돌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린 남자이다. 뛰어난 문필가이자 위대한 작곡가였으니 무수한 여인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37세의 리스트는 러시아 출신의 문인이자 공작부인인 캐롤린 비트켄슈타인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전에 사귀던 열정적인 연인과 달리 이지적인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결국 우정으로 변했지만, 그 깊이는 훨신 더 단단해졌다. 두 사람은 40년산 정서적 교류를 이어갔던 것이다. 음악가 리스트의 수많은 멸작들이 그녀와의 정신적 교류 속에서 탄생했다. 리스트는 연인에 대한 사랑을 음익으로 바쳤다. 바로 '사랑의 꿈'이다.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시간이 오리니,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이 곡은 독일 시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에 선율을 더해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되었다.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리스트는 사랑을 꿈꾸었고, 그 꿈을 영원히 잠들지 않는 노래로 남겼다. 아름다운 그 꿈을 음표 하나하나에 새겨 넣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도록 잠들지 않은 그의 사랑 이야기, 이백 년의 시간을 건너서도,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이 사랑 노래. 사랑 앞에 비범한 사람도 평범해지고, 바로 이 평범함이 한 인간의 고귀한 깊은 내면의 고유한 비범함을 이끌어 낸다는 진실을 리스트는 노래한다. 그가 비트켄슈타인을 만나 수많은 내면의 음악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었듯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처음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하면 엉킨 실타래가 보이고, 오래 보면 논리가 보이는' 곡이라고 평한다. 이어서 겉으로는 가슴 아픈 로맨틱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노골적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있고, 그 아래 첩첩이 숨겨진 멜로디들이 있다고 첨언한다. 총 3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종 콩쿠르에서 이 곡을 시도하는 연주가자들이 종종 있다.
1악장은 러시아를 횡단하는 기차에 탑승하며 시작된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는 소리 같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러시아를 둘러보는 여행이 시작된다.
2악장은 여행에서 둘러본 삶과 불가항력적인 시대적 아픔에 대한 사무치는 번뇌와 신에게 고함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3악장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듯 마냥 인간적이진 않다.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각종 테크닉 때문이다. 피아니스트들끼리는 라흐마니노프가 실수로 악보에 모래를 쏟았다고 농담할 정도로 까만 음표가 빽빽하다.
#에세이 #클래식에세이 #Op23 #조가람 #믹스커피 #원앤원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