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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당에서 현대와 손잡고 놀아보세 - 2024년 연우당 일기
변인복 지음 / 보민출판사 / 2025년 5월
평점 :
이 책은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게 해주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정립시켜 주고, 우리나가 아름다운 문화로 세계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민족의 사명감을 불러일으켜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한국의 역사와 사계절이 뚜렷한 '삼천리 금수강산'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끼게 되고, 우리나라에 대어난 것에 자긍심을 갖게 되리라고 본다. - '추천사 2'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변인복은 34년 동안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몸 담았던 교직생활을 퇴임하고 현재 연우당에서 24절기에 맞추어 텃밭을 가꾸고 옛 선조들의 전통문화인 세시풍속을 즐기며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뜰엔 우리 들꽃인 야생화를 심어 이를 감상하며 글을 쓰고 있으며, 뒷산엔 살구, 사과 등 유실수를 심어 기족과 지인들에게 맛보이려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2024년 한 해를 '연우당 일기'로 보여주고 있다. '난중일기'나 '안네의 일기'처럼 매일 쓴 일기가 쌓여 글쓴이의 인생이 되고 그것이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다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 즉 일년 365일의 하루하루를 잔치하는 기분으로 살면서 옛 마당에서 현대문화와 손잡고 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책의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함으로써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독서의 계절(1월 25일)
지금은 교직 생활을 마치고 한가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치열한 전쟁을 치르기도 하고, 가끔은 사랑의 갈등 속에 가슴 아파하며 간접적인 제2의 인생을 살기도 한다. 한번 짧게 살다 가는 인생이지만 책을 통해 수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보기도 하고 수만 년의 긴 세월을 살아보기도 하니 독서는 너무 매력적이고 행복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41쪽)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독서중인 저자의 모습과 새벽 독서를 즐기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됨을 느낀다. 진한 향이 풍기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독서삼매경에 빠진다면 스스로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영웅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밤이 긴 겨울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계절이 아닐까 싶다.
겨울밤엔 하늘의 별도 더욱 반짝이고 잘 보인다. 이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이 방해를 덜 받기 때문인데, 겨울엔 이동성 고기압과 차갑고 건조한 공기들이 하늘을 가득 채워 습기나 먼지에 의한 빛의 산란 현상이 여름철에 비해 덜하다고 한다.
도시에선 이 현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강원도나 경북 산간지대에선 이를 현저히 경험할 수 있다. 반짝이는 별 속엔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젊었던 총각 시절 하루라도 못보면 궁금해서 보고 싶었던 사람의 얼굴을 보려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곤 했다.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밤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어둔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세시풍속
세시풍속은 일 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고유의 풍속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은 달의 변화를 중심으로 태음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달은 한 달을 주기로 모양이 바뀌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달을 기준으로 모든 일을 결정했으며, 특히 예전에는 농업 국가였기에 농사일과 관련하여 계정의 변화에 다른 풍속들이 전해지게 되었다.(62쪽)
이 대목에선 저자의 관심 사항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아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IMF 사태 이후, 꾸준하게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나 또한 입춘, 경칩, 단오, 칠월칠석, 한가위, 동지 등 유의미한 절기節氣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농촌 출신이라 이런 개념에 더 익숙해서 아버님 기일은 단오 다음날, 어머님 생신은 칠월칠석 다음날로 기억하고 있다.
과거엔 연말연시면 절기가 표시된 달력을 구해 벽에 걸어두곤 했다. 시절이 바뀌어 지금은 은행, 공공기관 등도 달력 제작을 크게 줄일 정도로 절기나 세시풍속 등은 점점 잊혀져가는 느낌이다. 올해엔 달력을 구하지 못해 포기하고 있다가 동네 주민센터에서 협찬 들어온 12장짜리 벽달력을 얻을 수 있었다.
책엔 이런 날도 소개되었다. 머슴날(3월10일)이다. 지금껏 이런 날이 있는 줄 전혀 몰랐기에 이를 소개한다. 어릴 적 머슴형과 함께 소 꼴 먹이려 우리집 산에 가거나 화원유원지 인근 낙동강변에 나가 멱감고 조개 캐면서 어울려 지냈는데 이런 날이 있었다니 말이다.
세종실록에 머슴을 '외롭고 가난한 사람으로 의탁할 곳이 없어서 남의 고공雇工이 되는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머슴은 부잣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농사일은 물론, 궂은일을 도맡아 하다가 일 년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새경'이라는 수고비를 받았으나 경제지립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일 년 내내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주인들은 이런 머슴들의 노고를 알아주고 위로해 주려는 마음에서 하루만이라도 음식을 대접하고 즐기도록 해주었다. 바로 그 날이 음력 2월 1일 '노비일' 또는 '머슴날'이다. 겨울엔 '농한기'라 할 일이 별로 없지만, 음력 2월부터 본격적인 농사 준비가 시작되기에 머슴에게 이런 휴식을 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공교롭게 내 생일과 같은 날이라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가족의 머슴임을 상기하면서.
할미꽃 전설(4월 2일)
나이 마흔에 결혼한 사위를 장모님은 편애하셨다. 나보다 네 살 연하인 셋째 딸의 사는 모습이 늘 궁금해 서울에도 종종 나들이 오셨다.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나던 딸의 발목을 잡고 결혼해서 떠나라며 나와 맞선을 잡았다. 중매자는 처가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사촌 형수였다.
서로 인연이 되려고 결혼은 뒷전인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맞선을 보고 한달 만에 결혼이 성사됐다. 양가 부모님도 늦은 결혼이라 '쇠뿔은 단숨에 뺀다'는 심정으로 서둘렀다. 연로한 장모님은 심장이 좋지 않아 장기간 병원 신세를 졌다. 퇴원하고 일주일 만에 대구 인교동 본가에서 생을 마감했다. 장모님 산소엔 할미꽃이 핀다.
어느 마을에 딸 셋을 둔 어머님이 남편을 여의고 형편이 어려워 고생을 하면서도 잘 키워 시집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시집간 딸들이 보고 싶어 사나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날 먼 길을 떠나 첫째, 둘째 딸을 찾았으나 문전박대당하고 셋째 딸을 찾아가다가 눈길에 쓰러져 돌아가시게 되었다. 이를 발견한 셋째 딸이 슬피 울며 어머니를 잘 묻어드렸는데, 이듬해 봄 무덤 위에 허리가 굽은 모습의 붉은 꽃이 피었다.(135쪽)
훗날 세인들은 이꽃을 '할미꽃'이라 불렀다. 이를테면 잔혹동화인 셈인데,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갈수록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개인적으로 변질됨에 따라 부모님 섬기기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닐지라도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사진, 할미꽃)
옴니보어(11월 26일)
'옴니보어'라는 말이 있다. 라틴어에서 유래항 용어로, omni(모두)와 vore(먹다)가 결합한 단어로, 모든 것을 다 먹는 동물 즉, 다양한 먹이를 섭취하는 잡식성雜食性 동물을 의미하는 말이다.(428쪽)
요즈음은 이런 사전적 의미보다는 사회학적 개념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어던 특정 문화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은 문화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나이, 성별, 직업을 초월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살아간다면 오히려 멋진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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