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압축 교양수업 - 6000년 인류사를 단숨에 꿰뚫는 60가지 필수 교양
임성훈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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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물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류사를 이 책에서는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어디서 들어보긴 했는데, 정확히 알지 못하는 교양 지식 때문에 우물쭈물해 본 경험이 있다면 잘 찾아왔다. 교양 이야기 앞에서 움츠러들기만 했던 당신을 위해 이 한 권의 책이 든든한 교양 밑천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임성훈은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삶의 본질을 꿰뚫는 '문사철文史哲'을 접한 후 인문학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가 쌓은 방대한 지식으로부터의 깨달음을 대중들과 소통하며 나누고 있다. 현재 아레테인문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공공 기관, 기업체, 학교 등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총 네개의 장에 걸처 60가지 필수 교양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은 문명의 시작, 신과 인간, 이성과 자유 그리고 혁명의 시대, 죽음과 사랑 그리고 인간이라는 학문 등의 주제로 교양의 진한 재미를 제대로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억지로 이를 암기하려 애쓰기보다는 마치 지나가는 풍경 감상처럼 편안하게 즐기면 된다. 이에 책 속 인상적인 교양 지식을 요약해 봄으로써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로마제국의 내전內戰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국과의 정복전쟁을 통해 점차 영토를 확장하던 로마제국은 귀족과 민중 간의 부의 격차가 커지고 군사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제국의 운영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술라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는 상호 협력하는 '삼두 정치'를 고안해냈다.

갈리아 총독으로 10년 동안 800개 도시와 300개 나라를 굴복시키면서 카이사르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원로원 보수파 귀족들은 폼페이우스를 이용해 카이사르 제거 작전에 들어갔다.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귀국하라는 원로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군대와 함께 로마를 향해 진격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렇게 로마에서는 5년간의 내전이 발발했다. 카이사르는 3개월 만에 로마를 접수하고 폼페이우스군을 격파했다. 이집트로 달아난 폼페이우스는 결국 피살된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첩으로 삼고, 알렉산드리아 전쟁에서 승리해 그녀를 이집트 왕좌에 앉혔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당시 이집트를 떠나 돌아오던 길에 말썽을 부리던 폰토스 왕국의 군대를 빠르게 제압한 카이사르가 원로원에 전했던 이 말은 지금까지도 너무나도 유명한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카이사르에게 맡겼다. 하지만 민중들의 이같은 지지가 독이 되었다. 두려움에 떨던 원로원은 브루투스를 앞세워 카이사르 암살을 결행했다. 시대의 영웅 카이사르는 친아들로 여겼던 브루투스의 배신에 발등이 찍히고 말았다. 

소크라테스의 신탁 검증

소크라테스는 서른일곱 살에 포티다이아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아테네는 테세우스를 숭배하고 있었는데,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미궁에서 인신 공양을 받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비롯한 여러 괴물을 해치우고 아테네의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이다.

아테네는 힘없는 도시였던 포티다이아에 무리한 조공을 요구한 것도 모자라 중무장 보명 1천여 명을 선발대로 파견, 소크라테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3년간의 장기전으로 인해 아테네군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아테네군의 시체는 매장도 못해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고, 한편 포위당한 포티다이아인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아비규환 상태였다. 이 비극은 아테네의 팀욕 때문에 빚어진 참상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 전쟁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포티다이아 전투가 한창이던 시기, 소크라테스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카이레폰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찾았다. 그는 아폴론 신에게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인간이 있는지 물었고, 신의 뜻을 전하는 여사제의 답은 ‘없다’였다. 카이레폰의 말을 전해 들은 소크라테스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전쟁터에서 그토록 혼란스러웠는데 왜 신은 나보다 지혜로운 자가 없다고 말했을까?’ 고민 끝에 그는 신탁을 검증해 보기로 한다. 

그때부터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유명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미덕이 무엇인지 캐물었다. 정치가, 작가, 장인 등등. 그들과 대화를 나눈 소크라테스는 비로소 신의 뜻을 알게 된다. 그가 만난 유명 인사들은 하나같이 자신처럼 무지했지만 놀랍게도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오직 소크라테스만이 ‘아는 것이 없다’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검증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명>

오디세우스의 귀향歸鄕

그리스의 전설적인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원형이 되었다. 한편, 호메로스는 눈이 먼 소경으로 구걸하고 다녔다고도 말하고,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그리스 지성인들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수없이 인용, 작품 속의 영웅 이야기에 열광했다.

<일리아스>는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간에 10년 동안이나 이어진 트로이 전쟁이 배경이다. 전쟁의 마지막 50여 일 동안 그리스와 트로이 영웅들의 명예, 분노, 절망, 죽음 등을 그렸다.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그리스가 승리한 후 그리스의 작은 섬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귀향하면서 겪는 모험담을 다룬다. 이는 서양 문학에서 모험담의 원형이라고 불린다.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고난苦難.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바로 그러하다. 호메로스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우리네 인생이라는 여정이 한편으로 오디세우스의 귀향길과 같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고난을 통해 단련되고 성장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전해지는 오디세우스의 최후에 관한 여러 설을 망라했을 때 그의 노년이 불행했다는 기록은 없다. 화해와 평온이 가득했던 그의 말년처럼 고난의 길목마다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고향에 돌아온 그의 의지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인류사 최악의 펜데믹 흑사병

12~13세기에 찬란한 꽃을 피웠던 중세 유럽 봉건사회는 14세기부터 무너졌다. 장원 중심의 농촌경제와 길드 중심의 도시경제가 근간부터 흔들렸다. 그 원인으로는 기근, 십자군 원정 등 많은 것들이 얽혀 있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흑사병이었다. 

흑사병은 페스트의 일종으로 급성 열성 감염병인데, 종류가 많았고 유럽에서는 처음에 선腺페스트가, 나중에 폐肺페스트가 유행했다. 선페스트는 벼룩에 의해 감염되어 고열로 고통받다가 정신을 잃고 사망에 이르고 폐페스트는 페스트균이 폐에 침입해 피를 토하거나 고열 증세를 보이다가 호흡 곤란에 이어 정신을 잃고 사망하는데, 발병 후 사망까지 불과 24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망 직전 온몸에 종기가 번진 뒤 피부가 검은색으로 변해 이를 ‘흑사병’이라 불렀다. 

14세기 유럽의 의학 수준에서 흑사병에 걸린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았다. 페스트균을 막기 위해 환자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문에 못을 박거나 방에 불을 지르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사람들은 헝겊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안심할 수 없었고 하늘을 바라보며 신을 향해 기도할 뿐이었다.

이 병은 1346년경 크림반도의 해안 도시 카파에서 시작되어 흑해를 지나는 지중해 항로를 따라 퍼지며 순식간에 이탈리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당시 이탈리아 상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유목민의 공격을 받고 카파로 피난 온 뒤 이탈리아로 귀국했는데, 이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흑사병이 전염되었다. 중앙아시아와 흑해 인근에 흑사병을 옮긴 것은 몽골군이었다.

단테의 <신곡>

<신곡>은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 총 세 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지옥과 연옥에선 주인공 단테를 이끌어주는 길잡이로 베르길리우스가 등장하고 천국에선 베아트리체가 완벽한 신성이자 빛, 이상향이라면 지옥과 연옥의 베르길리우스는 아주 현실적인 길잡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단테는 행동만이 사람들을 비참함에서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작품 <신곡>을 ‘코메디아(Commedia)’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곡>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희극으로 여긴 것이다. 단테가 기획한 <신곡>은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만을 이야기하는 대서사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 시기, 인류의 역사도 드디어 <신곡>의 희망적인 메시지처럼 암흑과 같던 중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이성과 자유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내려 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책은 시민혁명의 전형으로 불리는 '프랑스 대혁명', 냉소적인 비관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삶은 고통'이란 외침, 미국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과 이에 대한 찬반으로 인해 발생한 미국 님북전쟁이 초래한 산업화,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의미,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가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등을 얘기한다.


교양을 채워 줄 든든한 밑천

책에 나오는 60가지 초압축 교양수업을 굳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을 필요는 없다. 이미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자신이 꼭 알고 싶은 이야기로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아무튼 한 권의 책이 우리들의 교양 수준을 업그레이해 줄 든든한 밑천임엔 틀림 없으니까 말이다. 교양에 목마른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인문 #인문교양 #문사철 #초압축교양수업 #임성훈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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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기쁨 - 온몸으로 불안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해방에 대하여
벨라 매키 지음, 김고명 옮김 / 갤리온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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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붙든다.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누군가는 웃음 속에서, 그리고 벨라 매키는 달리면서 그 시간을 견뎠다. 아니 살아냈다. <달리기의 기쁨>은 단지 달리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건 거대한 불안장애와 우울에 맞선 치열한 생존의 일기장이자, 녹다운 되어 나가떨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아주 유용한 '인생 재부팅 매뉴얼'이다. - '추천의 말'중에서


책의 저자
벨라 매키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밀리언셀러 작가, 그리고 러너이다. 런던 태생으로 <가디언>, <보그>, <바이스 뉴스> 등 유수의 매체에서 저널리스트 경력을 쌓았다. 어릴 적부터 언제 공황 발작이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장애를 안고 살았다. 직장 동료와의 결혼 생활도 1년만에 파경을 맞았고, 이후 악화된 불안장애가 그녀의 삶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어느날 갑자기 이 모든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녀는 난생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리는 무겁고,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뛰는 중엔 아무런 생각조차 없었다. 포기하고 싶을 땐 속으로 '딱 1분만 더'를 외치며 5분을 더 내달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의 세상은 달려온 거리만큼 커져 있었다.

총 10개 단락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 밸라 매키가 러닝을 통해 불안장애를 극복한 경험담을 다루는 에세이다. 영국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화제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영국의 포레스트 검프'로 불리는 '러닝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마치 거울 유리가 산산조각 난 듯한 결혼 후 파경破鏡은 여성에게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껄그러운 질문, 때론 수치심까지 남긴다. 다시 싱글 신분이 되고 일주일 쯤 지났을 때 문득 달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냥 달리고 싶었다. 그날은 그냥 달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운동장을 내달릴 엄두는 안 났다. 마트도 무서워서 못 가는 주제에 이런 야심 찬 포부는 언감생심임에도 열쇠를 챙기고 운동화 끈을 묶고 있었다. 낡은 레깅스 위에 티셔츠를 걸치고 아파트에서 30초 거리에 있는 어둑어둑한 골목길로 나섰다. 이튿날도 그 골목으로 나섰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느릿느릿 달리다가 이내 멈춰 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욕심이 과해 정강이 통증이 찾아왔고, 언덕길을 오르다가 패배를 인정하고 버스를 타기도 했다.

점점 더 멀리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아파트에서 가까운 길만 골라 달렸다. 몸뚱이는 느렸고, 마음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 두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나는 달리는 동안엔 별로 슬프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달리는 동안엔 불안하지 않았다. 

결혼이 파국을 맞고 몇 주가 지났지만 벨라 매키는 여전히 그 후유증에 비틀거렸다. 회사에 출근해선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숨죽여 울었다. 퇴근해 귀가한 후엔 바로 잠옷으로 환복換服, TV를 틀어 아무 방송이나 멍하니 시청했다. 외출하는 날엔 술을 때려 붓고 또 울었다. 

하지만 달릴 때는 그 모든 것을 잊어 버릴 수 있었다. 누군가의 안쓰럽다는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됐고, 허그를 한답시고 강한 포옹으로 숨통을 조이는 사람도 없었다. 아니,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형광색 옷을 입고 나른하게 달리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도시에 녹아들었다.

불안장애 유형

강박장애
공황장애
공포증(광장공포증, 폐소공포증 등)
사회불안장애(사회공포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범불안장애


(사진, 58쪽)

불안과 걱정은 엄연히 다르다.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정신 질환을 흉으로 보는 분위기를 완화하고 정신 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면 불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단순히 ‘슬픈 느낌’을 의미하지 않고 산후 우울증이 단순히 ‘육아 스트레스’를 의미하지 않듯이 불안증도 초조한 것과 다르다. 그리고 굉장히 흔하게 볼 수 있다.(58쪽)

오늘은 타이머를 보지 않고 10분 동안 쭉 달렸다. 처음이다. 평소엔 얼마나 버텼는지 봐야만 했다. 장족의 발전이다. 집을 나와 10분 동안 직선으로 달렸다. 큰 길이 끝난 후에는 큰 맘 먹고 언덕길을 올랐다. 두 팔의 흔들림을 원동력 삼아 지면을 디디며 속도를 높였다. 이제 날마다 달리는 게 익숙해지고 팔다리도 적응했는지 기분이 좋았다. 이날 총 18분을 달렸다.

처음으로 여동생과 함께 달렸다. 남과 같이 달리는 경우는 처음이다. 동생은 키도 크고 힘도 무지 세다. 170센티미터 키의 언니를 맨날 땅꼬마라고 놀린다. 팔씨름도 못한다, 병뚜껑 하나 따는 데도 낑낑댄다는 등 놀림받는 일이 일상이다. 이런 동생은 몇 년 더 일찍 달리기를 시작해 금방 재미를 붙인 후 밤에 와인 한 병 마시고 자도 다음 날 하프 마라톤을 거뜬히 완주한다.

여기는 베네치아, 외국에서 달리는 것은 처음이다. 엄마의 제안에 따라 주말을 낀 연휴에 여행을 갔다. 몇 달 동안 꾸준히 달리면서 두려움이 많이 잠잠해진 상태였다. 사흘이 지나자 도시의 구조가 얼추 감이 잡힌다. 마지막 날 아침, 낮잠 자는 엄마를 두고 달리고 있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달린다.

딱 1분만 더!’가 나의 슬로건이 됐다. 1분만 더 달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매초가 지옥 같아도 1분은 버틸 수 있다. 1분만 더 뛰자고 기를 쓰고 발을 떼다 보면 최소 5분은 더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낯선 곳에 가도 공황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다. 고요와 여유를 누렸다.

오늘은 에든버러를 달렸다. 친구와 휴대폰을 호텔에 남겨둔 채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번화가를 내달렸다. 붉은빛에 물든 에든버러성의 위용에 넋을 잃었다. 휴대폰 없이 달리기는 처음이다. 휴대폰 없이 가게에도 가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만약에, 혹시,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휴대폰은 그녀의 안전망이 셈이었다.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발언권을 모두 잃은 기분이었다. 남편은 그녀를 버렸고, 그녀의 내면에서 갈수록 커지는 불안감이 언젠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 뻔한데도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인생이 갑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 말이 완전히 도망가 버리기 전에 고삐를 잡으려고 황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에는 그 고삐가 손에 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것 같았다.


(사진, 235쪽)


달리기에 정석은 없다. 우리 동네의 어떤 할아버지는 매일 마트까지 달려간다. 낯 뜨거울 만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이마에는 1980년대 삼류 영화에 나왔을 법한 땀 흘림 방지 헤어밴드를 두른 채로. 할아버지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달리는 것을 보면 그게 할아버지에게 맞는 방식인 것 같다. 나도 처음 몇 주 동안은 근처 골목길을 벗어나지 못한 게 떠올랐다.(263쪽)

공원을 달리고 있다. 10킬로미터쯤 달렸다. 푹푹 찌는 날이다. 잔인한 여름은 여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나는 바짝 마른 땅이 좋고 눈을 찌르는 태양이 좋다. 매순간이 도전으로 느껴진다. 거의 발가벗다시피 하고 달리니까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최근엔 덜 멈추고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려고 밀어붙인다. 달리기가 인생의 일부가 됐다. 달리기가 체질이 됐다.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한때 전업투자자의 길을 걸었다. IMF 시절에 다니던 회사의 임원 신분을 던지고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내 인생의 리즈 시절이었다. 큰 돈을 벌었다.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처럼, 당시 나는 '딱 1억원만 더!'를 끝없이 추구했다. 승승장구하던 내 투자사업은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심적 고통을  이겨내려고 집 근처 올림픽공원을 매일 뛰었다. 아침에 거의 10킬로미터 이상을 뛰었다. 이후 주식을 정리한 돈으로 코스닥 기업 인수에 나섰다. 마魔가 끼었다. 졸지에 수백억을 탕진했다. 또다시 뛰면서 만회할 수 있다고 최면을 걸었다. 그러나 더 이상 리즈 시절은 없었다. 현재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는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에세이 #달리기의기쁨 #벨라매키 #갤리온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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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글은 처음이라 - 한번 깨달으면 평생 써먹는 글쓰기 수업
제갈현열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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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를 떤다고 믿었던 그 친구의 글에는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었어요. 반대로 당당하게 주장한다고 믿었던 내 글은 ‘읽는 사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죠.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렸습니다. 고작 한 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어요. 이 한 줄이 실은, 모든 것이었어요. 한 줄의 글이 만들 수 있는 놀라운 변화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 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제갈현렬은 작가, 마케팅 기획자, 경영 컨설턴트,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하며 모든 영역의 글쓰기를 다룬다. 20대엔 공모전 43관왕의 타이틀로 메이저 광고대행사에서 기획의 귀재로 불렸고, 30대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최근엔 경영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며 다수의 기업체를 위해 경영 자문과 함께 대학교에서 경영과 기획을 교육한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생산 수단으로서의 글쓰기, 관점 깨닫기, 구조 익히기, 표현 배우기, 기가 막히게 팔리는 글의 비밀 등을 차례로 설명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글은 무엇이 다른지와 필 듀센베리, 스티븐 킹 등 글쓰기 대가의 비법을 통해 '팔리는글'의 본질을 꿰뚫는 글쓰기 입문을 제시한다. 

살아가는 것은 시장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판매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시장에 속해 있다. 즉 가족 관계나 친구 관계 또는 연인 관계와 같은 관계 시장, 초중고와 대학교를 포함한 교육 시장, 그리고 직장이나 장사, 사업 같은 경제 시장 처럼 말이다. 그 어느 시장이든 우리는 적어도 한 곳 이상에는 속해 있다.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수행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시장을 벗어날 수 없다.

이같은 시장에 속해 있다는 의미는 시장 속에서 누군가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가 무언가를 교환한다는 것인데 친구 사이엔 마음을, 연인 사이엔 사랑을, 직장에선 직무 능력에 대한 인정과 믿음 등을 교환하는 것이다. 나아가 장사는 자신의 물건과 소비자의 돈을 교환한다. 그렇다. 이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판다는 의미로 이어지는 셈이다. 

시장이 내 글을 산다

내 글을 시장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인 시장이 주도적으로 ‘내 글’을 사게 되는 것니다. ‘내 글’은 팔리기 위해 존재하는 수동적 대상이다. 그래서 내 글을 산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시장이 되므로 아래와 같은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시장이 산다는 거지?’, 
‘그 시장은 내 글을 왜 사는 거지?’, 
‘그 시장이 원하는 건 뭐지?’ 

말 그대로 시장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마치 말장난 같은 이 문장은 사실 사고의 흐름을 완벽하게 바꾸어놓는 마법의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 안에 팔리는 글쓰기의 원리가 숨어 있다. '내 글을 시장에 파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내 글을 사는 것이다', 이 짧은 한 줄 속에 세상에서 팔리는 모든 글의 원리가 담겨 있는 셈이다. 그렇다. 팔리는 글은 시장이 원하는 것을 담은 글이다.

대가들의 공통점, '시장 우선주의'

사장, 시장, 시장 등등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가치는 시장에서 나온다. 그래서 항상 시장을 염두에 두고 모든 것을 시장 중심으로 생각하는 관점이 바로 '시장 우선주의'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글을 쓰기 전에 시장을 먼저 본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저자의 절대 기준이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시장이 듣길 원하는 이야기를 쓰겠다’

저자가 첫 책을 쓸때가 2012년, 벌써 13년 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힐링 열푼에 휩싸여 있었다. '힐링 캠프'라는 TV 프로그램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아프니가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등의 힐링 서적이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조금씩 지쳐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식상해한다는 얘기다. 누군가의 위로가 잠깐은 마음을 편하게 해줄지 몰라도 결국 현실을 바구지 못한다는 사실을 하나둘 깨닫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따뜻한 힐링이 아니라 현실적인 조언이란 생각이 들어 저자는 첫 책 <날개가 없다 그래서 뛰는 거다>를 집필 출간했던 것이다. 이후 <부의 확장>, <돈 공부는 처음이라> 등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았던 거다.  

처음부터 제대로

뭐든지 처음 시작할 때 올바른 방법을 익히지 않으면 나쁜 버릇이 들게 된다. 나쁜 버릇에 익숙해지면 옳은 방법으로 다시 바로잡는 데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한 법이다. 처음 배울 때보다 훨씬 큰 노력과 시간이 말이다. 첫 단추가 잘못되면 갈수록 옷의 어그러짐이 심해지는 법임을 우린 모두 잘 안다.

그래서 저자는 기획을 가르치면서 제일 힘들어하는 부류의 사람은 초보자가 아니라 잘못된 습관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강조한다. 잘못된 습관과 방식으로 기획을 하는 사람이나, 잘못된 글쓰기 버릇이 있는 사람을 가르치는 건, 기획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나 글쓰기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몇 곱절의 노력이 들어가서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에게도 그 나름의 익숙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익숙함은 탄성을 가지고 있다. 그 질긴 익숙함을 덜어내고 새로운 올바름을 넣는 일에는 많은 시간이 투입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그들이나 공히 마찬가지이니까. 처음에 제대로 배워야 한다.

팔리는 글의 비밀(나탈리 골드버그의 '습관')

나탈리 골드버그는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글쓰기 교육자이다. 그녀의 대표작이 바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로 전 세계에 150만 부 이상 판매량을 기록했을 정도이다. 그녀의 글쓰기 철학은 한 문장으로 쓰여 있다. "글쓰기는 호흡과 같다. 멈추면 죽는다."

그녀는 글쓰기에 어떠한 핑계도 허용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구가 없어도, 상황이 여의치않아도, 할 일이 많아도, 글이 생각나지 않아도, 글 쓸 기분이 아니라도 써야 한다고 말이다. 계속 쓰다보면 어느새 쓰고 싶어지는 경험을 함으로써 글쓰기 자체가 삶의 한 부분이 된다고 조언한다.   

팔리는 글에 관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도 유독 글쓰기가 안되는 날이 올 것이다. 글을 쓰는 데 한참을 망설이게 되는 날 말이다. 몰라서가 아니라도,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도 그런 날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그럴 때 나탈리 골드버그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아도 뭐라도 쓸 수 있는 습관을 들일 수 있길 기대한다.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어떻게든 글을 부여잡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 말이다.


기억에 남을 글 한 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말에 진정성을 담으라는 교훈이다. 이런 말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글 한 줄은 정말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 한 줄의 글을 만들기 위해 우린 쉼없이 글쓰기에 도전한다. 그러나 멈추는 순간 도전은 끝난다. 작가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처럼 글쓰기가 습관이 되었는지 나에게 질문한다. 글쓰기에 진심인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글쓰기 #팔리는글은처음이라 #제갈현열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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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세요, 책과 수프에서 - 따뜻한 위로의 공간, 선물 같은 하루
윤해 지음, 별사탕 그림 / 바른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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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야기 곳곳에는 우리들의 마음을 끄덕이게도, 잠시 반짝이게도, 가끔은 묵직한 미련들을 삼키게도 하는 문장들이 담겨 있다. 이 문장들은 결국, 한 스푼 두 스푼이 되어 책을 다 읽고 난 우리 마음의 속을 든든한 수프 한 그릇을 먹은 것처럼 따스하게 데운다. 그 수프가 콩소메 수프든, 닭고기 수프든 상관없이 말이다. - '추천하는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이 책의 작가 윤해는 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까웠기에 소외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으며, 이게 자산이 되어 작품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소회所懷를 밝힌다. 일곱 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소설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프랑스식 수프를 파는 작은 책방에 얽힌 스토리들이 전개된다.


이십대 초반의 선영은 만화가 지망생이다. 출품한 공모 응모작이 번번이 낙선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만화 연재 기회로 인해 우울한 나날을 보내지만 고시원 근처에 위치한 '수프 가든'이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처였다. 푸른 눈에 금발 아줌마가 운영하는 이 가게는 각종 달콤한 수제 초콜릿, 쿠키, 수프 등의 디저트를 팔고 있었고 특별히 수프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원고 작업에 지친 그녀의 피로를 해소하는 데 이만한 것도 없다.


즐겨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손님들을 위해 비치한 소량의 책 때문이다. 비록 많진 않아도 소설, 에세이, 잡지 등 장르가 다양했다. 이보다 더 마음이 쏠리는 데엔 큰 키에 마른 체형을 가진 가게 점원 정우의 넉살 좋은 웃음이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게 여주인은 조카인 정우에게 이 가게를 맡기고 프랑스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돌봐줄 가족이 없어서다. 정작 당사자인 정우는 혼자서 운영할 자신이 없어서 북카페를 할 장소를 물색 중이었다. 이에 선영이 정우에게 함께 수프 가든을 운영해 보자고 제의했다. 이미 사귀기 시작한 관계라서 정우는 이 제의를 수락했다.


그래서 새롭게 출발하게 된 가게의 이름이 '책과 수프'였다. 말하자면 책도 읽고 수프도 먹을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숲속의 오두막 같은 느낌을 주려고 통나무를 쌓아올려 외관을 꾸미고, 실내엔 골동품 같은 물건들을 배치했다.


(사진, 가게의 통나무 외관)


목요일 6시 30분, 목요일에 오는 여성 손님이 있다. 이 여성(민혜지)의 직업은 신문 기자였다. 수프 알로뇽 한 그릇을 포장 주문한 후, 수프가 준비되는 동안 책을 둘러본다.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를 구매할 수 있는지 묻는다. 손님이 원하면 판매도 가능하다고 답변한다. 혜지가 이 수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프랑스로 유학을 간 언니가 가끔 전송하는 사진 속의 음식을 연상시켜서다.


양파의 단맛은 빵과 치즈와 어우러져 입을 즐겁게 했다. 따듯한 수프사 목 뒤로 넘어가자 온기가 몸을 감사며 퍼졌다. 편안한 기분이 몸 전체로 느껴졌다. 이 순간 수프의 온기와 함께 고민도 외로움도 사라졌다. 찰나의 편안함은 이대로 끊나지 않고 긴 여운을 남겼다.


(사진, 수프 알로뇽)


수프 알로뇽은 프랑스식 양파 수프이다. 양파를 갈색이 날 때가지 서서히 볶아 단맛을 충분히 우려내어 만든 육수를 구운 빵 위에 붓고 치즈를 넉넉히 얹어 구워내 조리한다. 술 마신 다음날 숙취를 달래기 위해 먹는 풍습이 있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북카페 '책과 수프'를 찾는 다양한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느끼게 하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하루 일상에 찌든 직장인들에게 위로와 힐링이 될 듯해 일독을 권한다.


#소설 #쉬어가세요책과수프에서 #윤해 #위로 #힐링 #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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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신화 -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에서 배우는 완벽한 삶의 지혜
동명 지음 / 불광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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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구스타프 융은 신화를 집단적인 꿈이라고 보았다. 한 집단의 공통적인 염원이 신화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붓다의 신화는 붓다를 바라보는 불자들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신화화된 붓다의 생애는 민중이 바라는 붓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사실적인 붓다의 생애를 찾아내면서도 신화화된 붓다의 생애를 통해서는 그 신화가 상징하는 바를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 '들어가며'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동명 스님은 시인과 문학평론가로 20여 년간 활동했으며, 2010년 출가해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해 구족계를 받았다. 북한산 중흥사 총무,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광명시 금강정사 총무를 거쳐 현재 서울 잠실 불광사 주지를 맡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은 지난한 고뇌의 시간, 기나긴 도전과 모험의 길,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란 주제로 붓다의 삶을 스물아홉 개 이야기로 펼쳐나간다.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붓다의 일생과 그 발자취를 통해 우리들은 인간 붓다를 만나게 된다.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붓다의 생애에도 많은 신화가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한다. 먼저 탄생 장면부터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 오랫동안 임신이 안되던 마야부인의 태몽에 따르면 여섯 개의 황금색 상아를 가진 하얀 코끼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 들어옴으로써 비로소 임신이 된다. 부부간의 성관계에 의한 잉태가 아닌 것이다. 이는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잉태와 유사하다.

할리우드 영화도 영웅 이야기를 쉼없이 만들어낸다. 악을 물리치는 이 영웅에 우리들은 환호한다. 이런 영웅은 악당이 있기에 탄생한다. 하지만 만들어낸 영웅이 발전하는 만큼 악당 또한 발전하기에 영화는 비슷한 영웅을 계속 필요로 한다. 붓다의 신화는 인간 내면에 자리잡은 악당 덕분에 탄생했으리라. 이에 우리들은 내면의 악당을 물리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에 저자는 이를 일곱 가지로 정리한다.

원력願力을 굳건하게 세워라
모험하고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안주安住하지 말라
항상 성실하라
항상 자비심을 잃지 말라
내려놓음을 실천하라
알아차림을 실천하라

어떻게 살 것인가? 붓다의 신화는 청년 싯닷타가 출가의 소명을 잊어버릴까 봐 하늘의 신들이 자주 개입했다고 말한다. 즉 신들은 병자와 노인과 죽은 사람과 출가한 승려를 잇달아 보여준다. 즉 카필라 성城을 떠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해 싯닷타의 출가 의지를 확고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또 아들 '라훌라'의 탄생이 출가를 재촉했다.

왕자의 신분을 버린 싯닷타 앞엔 광활한 벌판이 펼쳐졌다. 막상 갈 곳도 분명치 않은 여행은 막막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도 결국 집으로 귀가한다. 그러나 출가자에겐 돌아갈 집이 없다. 본격적으로 길 떠나기 전 수염과 머리카락을 자른 싯닷타는 입고 있는 호화로운 옷도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때 천신 가띠까라 범천이 출가자에게 필요한 품목을 보시했다. 가사, 허리띠, 발우, 바늘과 실, 물 여과기, 양치용 막대기를 만드는 칼 등이었다.

붓다의 생애엔 수많은 천신이 등장한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천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보통 사람이야 이런 이야기를 모두 신화로 받아들인다. 길 걷다 갠지스강을 만난 붓다는 뱃사공에게 도강渡江을 부탁하자 사공은 공덕을 거부하고 처와 자식의 부양을 위해 배삯을 요구한다. 때마침 5백 마리의 기러기 떼가 날라가는 광경을 목격한 붓다는 게송을 읊었다. 사공은 결국 붓다가 날아가는 걸 보고 혼절해버렸다. 큰 복전福田을 눈 앞에서 놓쳤으니 말이다. 

기러기 떼가 항하를 건널 때
누구도 뱃삯을 요구하지 않는다네.
나도 이제 신통력을 발휘하여
저 기러기같이 허공을 날으리.

신통력神通力이란 일반적인 인간의 능력을 한참 뛰어남은 특별한 능력이다. 붓다가 단기간에 대규모 교단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신통력에 힘입은 바 크다. 붓다는 많은 이교도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른바 '쌍신변의 신통'을 보였다. 상반신에 불이 나타나는가 하면 하반신에서 물이 흐르고, 하반신에서 불이 나타나는가 하면 상상반신에서 물이 흐르게 햇다. 몸의 모든 부위에서 물과 불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불교 경전 <금강경金剛經>에선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강조한다. 보시를 했을지라도 햇다는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티를 내지 않는 행동을 말하는 셈인데, 어디 이게 쉽겠는가. 전시효과만 노리는 못되 먹은 정치인은 구호물품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기념촬영으로 흔적을 남기는 게 목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사진, 꺼지지 않는 등불)

목숨을 건 보시도 있다. 소위 '빈자 일등貧者一燈'에 대한 이야기이다. 붓다가 라자가하에 있을 때 아자따삿뚜 왕이 붓다와 제자들을 초청해 대중공양을 마친 후 궁궐문에서 죽림정사에 이르기까지 등을 설치토록 했고, 백성들도 동참하도록 했다.

가난한 노파 난다는 이 소식을 듣고 등 공양을 하고자 겨우 2전錢을 구걸해 가름집에 갔다. 이에 주인장은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백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과 같은 세상에 살면서 지금껏 공양을 한 적이 없었는데 백성도 동참할 수 있도록 허용하니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겠다는 답변이었다. 

노파는 밤이 깊어도 공양한 등불 앞에 서서 합장 자세를 견지했다. 날이 밝아 모든 등을 소등했지만 난다의 등은 세번이나 시도했지만 꺼지지 않았다. 목숨을 지탱해 줄 양식을 포기하고 공양을 한 노파에게 붓다(깨달은 사람, 해탈을 뜻함)를 이룰 것이라는 수기受記를 내린다. 

   
붓다의 위대함

아무리 힘세고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해도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위 하지 않는 이는 악마이지, 영웅이 아니다. 붓다야말로 세상의 뭇 영웅 중에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분이며, 마음이 지극히 평온한 분이며, 지극히 지혜로운 분이다. 어떤 신이나 영웅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했음을 상기하면, 붓다의 위대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 '나오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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