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벗 오어 다이
게리 샤피로 지음, 이동기 옮김 / 시공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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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 책을 통해 인터넷, 배너, 자막 기술, 드론, GPS, NFC, 비행 모드와 같이 오늘날 널리 쓰이는 기술의 피벗 과정과 클라우드 컴퓨팅, 사이버 보안, 양자 컴퓨팅, 로보틱스, 지속 가능성의 흐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역자 서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게리 샤피로는 비영리단체인 소비자기술협회CTA의 대표이사CEO로 조지타운대 로스클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다수의 방송 출연과 더불어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매체에 1천 편 이상의 칼럼을 기고하면서 정책 입안자와 재계 리더들에게 혁신 방향을 제시했다. 


총 아홉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피벗이란, 기술 산업에서의 피벗, 스타트업 피벗, 강제 피벗, 실패 피벗, 성공 피벗, 기술 산업 피벗의 결과, 국가는 왜 피벗해야 하는가?, 개인은 왜 또 피벗해야 하는가? 등을 통해 생존을 위헤 좋은 결정을 내려야 함을 강조한다. 


피벗은 전략이나 방향의 의도적 변경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피벗은 하나의 결정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개개인 혹은 종족으로서 생존하기 위해 좋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 여타 생명체와 다른 점이다. 


피벗이란 '축軸' 또는 '중심축'이란 뜻으로 스포츠 중 농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한 발을 지면에 고정시키는 피버팅(피보팅) 기술을 연상하면 될 듯하다. 즉, 한 발을 지면에 고정시킨 후 방향 전환 또는 공을 패스하는 기술이다. 


피벗의 유형


스타트업 피벗~ 성장 단계에서의 피벗

강제 피벗~ 자연재해, 감염병, 정부 규제로 경영 환경이 변할 때 

실패 피벗~ 실패로부터 시작

성공 피벗~ 성공을 발판삼아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 


현대적인 뜻의 '피벗'을 창조한 것은 기술 산업이다. 아마존의 창업자 베이조스의 비결은 빠른 피벗이다. 그는 단순히 시장 변화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빠르게 움직였다. 온라인 비즈니스를 호스팅하려 클라우드를 사용했을 때, 다른 경쟁사보다 3년 먼저 클라우드 서비스 판매가 가능함을 알았고, 이를 통해 엄청나고 독보적인 경쟁 우위를 가졌다. 

스타트업의 성공은 성장 단계부터 그 싹이 다르다. 바로 피벗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스튜디오 윌버 랩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창업자의 40퍼센트가 '살패하지 않으려' 피벗했다고 답했다. 성공한 스타트업 피벗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4가지 공통점이 뚜렷하다. 

호기심~ 기업가 페도라 리는 아버지가 청력 상실로 고통받던 모습을 지켜보던 중, 2019년 '누구나'를 설립했다. 난청인을 위한 밴드이자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출시한 제품은 내장 마이크가 주변 소리를 인지하고 진동을 통해 소리의 방향을 알려준다.

단호함~ 최초로 고양이 유전자 검사 기술을 개발한 베이스포스 설립자 안나 스카야는 주변에서 '고양이 아줌마'라고 불러도 아랑곳 않고 박람회 부스에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사람들은 오히려 베이스포스 고양이와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회복탄력성~ 찬드라 데밤은 실패를 학습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자신의 스타트업 드리프트를 애플에 매각한 후 아리스 MD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가상현실을 사용해 수술 중 환자에게 MRI와 같은 진단 이미지를 겹쳐 보여 줌으로싸 외과의에게 환자의 병변이나 부상에 대한 안내 지도를 제공한다.

헌신~ 필라 러닝의 CEO 다유 양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한 로봇 코디를 만들었다. 이처럼 기업가라면 자신의 사명에 대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불가피한 위기에 대처하려면 '강제 피벗'이 필요하다. CEO 바스티안이 이끈 델타항공의 대응은 팬데믹 시대 가장 기발하고 민첩한 피벗 사례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 정도다. 평소 승객의 5퍼센트도 탑승하지 못했고 500대 이상의 항공기가 계류 중이었음에도, 스케줄을 제한하고 자발적 휴직 프로그램을 도입해 약 2,000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직원 해고를 최대한 피했다. 휴직 직원에게는 의료보험 혜택을 유지하게 했다. 또한 유휴 항공기를 이용해 전국의 의료진을 수송하고 필수 의료 장비를 운반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팬데믹 동안 비대면 쇼핑 옵션이 각광받으면서 비대면 배송이 급증했다. 소매 업체도 이를 주목했다. 미국 최대 가전 소매 업체인 베스트바이는 즉시 비대면 픽업 모델을 도입했다. 그해 1분기 매장 내(혹은 ‘매장 인접’) 구매는 6.3퍼센트 감소하는 데 그쳤다. 감소 폭은 분석가의 예상보다 훨씬 적었고, 2분기에는 전년 대비 5.8퍼센트 높아지며 반등했다.

'실패 피벗'의 사례로 닉 우드먼이 설립한 고프로의 케이스를 살펴보자. 몇 차례의 실패를 딛고 방수용 카메라로 재기했지만 2015년에 출시한 제품은 버그가 많은 문제투성이였다. 첫 번째 적자 분기를 기록했다. 개발 중이던 신제품의 출시가 계속 지연됐고, 제품의 결함을 은폐했다는 이유로 집단 소송까지 당했다. 재기를 위해 회사는 직원 4분의 1을 해고했다. 우드먼은 다시 피벗해야 했다. 그는 회사 지출을 줄이고 기능이 많은 제품을 포기했다. 처음 성공을 가져다준 심플한 제품으로 복귀했다.

비즈니스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적절한 시기에 피벗하기다. 기회가 생기고 시장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제품, 서비스, 행동 및 태도를 바꿔야 한다. 이전의 성공을 기반으로 만든 피벗의 가치는, 실패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한 피벗에 비해 시간, 자원, 그리고 지식 측면에서 유리하다. 

수십 년간 파나소닉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엳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회사는 텔레비전, 전화기, VCR 등을 생산하는 가전 분야의 거물로 알려졌다. 이건 15년 전의 얘기다. 파나소닉의 가전 부문은 이제 북미에선 작은 비중에 불과하다. 이제는 전기차 및 첨단 기술에 사용되는 배터리, 에너지 저장 장치의 성장에 비할 수 없다. 성공 피벗을 하는 이들은 변화에 열광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스타트업 중 하나다. 미국은 성공 피벗을 해야 할 시점이다. 당파적 정치를 넘어 혁신 정책, 언론의 자유, 경쟁, 무역 등에 대한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글로벌 경쟁은 한층 치열해진다. 국가가 피벗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국 양당의 지도자는 무역을 제로섬 게임으로, 무역정책을 국내외에서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그러나 무역에 대한 고립주의적 접근은 미국을 위험한 방향으로 이끌며, 동맹국과의 협력과 상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나 홀로 헝거 게임’ 전략으로 풀려고 한다. 리쇼어링이란 아이디어로 제조업 중흥을 도모하고 있다. 관세전쟁 또한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종식시키고자 고안했지만, 돌고 돌아야 무역이 발전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을 무시한 듯한 전략으로 보인다.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피벗이 모여 만든 스토리


우리 모두들 삶의 궤적은 대부분 우리들이 만든 변곡점(피벗)에 달렸다. 크거나 작고, 그 중간쯤 된다. 어떠하든 그 중요성이 줄진 않는다. 우리 삶의 이야기는 우리가 만들거나 만들지 못하는, 크고 작은 피벗이 모여 만든 이야기다. 생존을 위한 결정과 선택이 바로 피벗인 셈이다.  


#경제경영 #경영전략 #경영기술 #피벗 #피벗오어다이 #게리사피로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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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필독 고전 - 중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동서양 고전 이야기
이현옥.이현주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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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어렵다'는 선입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고전 작품의 대부분은 사랑과 우정, 정의, 인생의 참된 의미 같은 친숙한 주제를 다룬다. 고전을 읽고 분속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관계와 사회현상을 판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며, 나아가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게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공저자인 이현옥은 현재 중학교 특수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현주는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를 거쳐 현재 장학사로 일하고 있다.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동양고전 고전문학, 동양고전 철학 윤리, 서양고전 고전문학, 서양고전 철학 윤리 등을 통해 고전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사고력과 창의력, 논리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준다.

허균의 '홍길동전' vs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조선 시대, 홍 판서의 자식 중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서자庶子가 있었는데, 해당 인물인 '길동'은 아버지와 형을 각각 아버지와 형으로 부를 수 없는 차별적 대우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도술을 익혀서 비범한 능력이 있음에도, 조선의 신분제도 때문에 그 능력을 펼칠 수가 없었다. 

한편, 판서의 또 다른 첩인 초란은 사랑을 독차지할 욕심에 자객을 보내 길동을 죽이려 시도했다. 이에 길동은 이같은 음모를 미리 눈치채고 가출家出한 후 세상을 유랑한다. 이후 산속에서 동지同志들을 모아 ‘활빈당’이라는 도적 떼를 만든다. 이들은 부정축재를 일삼으며 큰 부富를 축적한 탐관오리나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둔갑술과 분신술 등으로 길동은 관군들을 농락하며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다. 

이런 줄거리의 '홍길동전'은 허균(1569~1618년)이 쓴 한국 최초의 한글 소설이란 점이 이목을 끈다. 소설의 후반부 전개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을 내보인다. 이후 조선 왕이 길동이 요구하는 서자 차별 폐지와 함께 '호조판서' 벼슬을 내리지만 오히려 길동은 조선을 떠나 미지의 섬 율도국에 이상국가를 세우고 왕이 된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1478~1535년)가 쓴 '유토피아'도 섬이름이다. 실존이 아닌 상상의 섬이다. 이 섬의 주민은 10만 명이고, 가족 단위로 편성, 50가구가 모여 하나의 집단을 이뤄 '시포그란트'를 선출한다. 시포그란트들이 평의회를 구성하고 4명의 후보 중 1명을 평생직 '왕을 선출한다.

섬엔 화폐가 없다.
시장에서 누구나 필요한 물품을 가져가 사용한다.
모든 집은 같은 모양이며, 자물쇠가 없다.
2년 동안 농사를 지을 의무가 있다.
하루에 6시간 노동을 한다.
간통하거나 섬을 탈출하다 잡히면 '노예'가 된다.
10년 마다 이사를 가야한다.

홍길동전의 율도국,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모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말하자면 '이상향理想鄕'인 셈이다.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동진시대의 시인 도연명(365~427년)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거론한 '무릉도원'이 바로 이상향의 시초인 셈이다. 이같은 고전들은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비판함으로써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이상국가를 제안한다.


(사진, 탐구 주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vs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년)는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했다.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지 밝히기 위해 이성 자체를 비판한다. 지식을 오직 경험에서 얻는다는 ‘경험론’과 이성에서 얻는다는 ‘합리론’을 모두 비판하며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감성’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하기 전부터 모든 것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우리 마음속의 틀 안에서 인식한다. 시간과 공간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재된 형식과 같다.

둘째, ‘오성悟性’은 감각으로 들어온 잡다한 정보들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능력이며 ‘범주’(예: 원인과 결과, 양, 질)라는 12가지 규칙을 통해 세상을 개념적으로 파악한다. 

결국 우리가 아는 세상은 우리 마음이 시간, 공간, 범주라는 틀로 구성한 것이다. 즉, 우리는 대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없고,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습'(현상)만 알 수 있다. 반대로 결코 알 수 없는 대상 자체를 '물자체物自體'라고 부른다. 신, 영혼, 우주 전체와 같이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대상들은 우리의 이성이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과거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변형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소설에선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감정과 함께 재구성되며, 하나의 기억이 여러 감정과 연결된다. 이는 시간과 공간이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의 기억과 경험을 재생성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 탐구 주제) 

아는 만큼 보인다 

현대 그림은 참 난해難解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설명한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책 속엔 동서양의 고전문학과 철학 윤리에 관한 여러 책들이 소개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임에도 대학 시절 철학 개론 수업 시간에 머리카락을 뽑아가며 배웠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실려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듯하다. 

#인문 #고전공부 #청소년고전 #중등필독고전 #이현옥 #이현주 #체인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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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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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적으로는 2026년 6월의 지방 선거가 중요합니다. 제2차 공공기관 이전, 해양수산부를 시작으로 한 각종 정부 부처의 이동, 이에 맞먹는 행정수도 세종시의 건설 등, 한국 도시의 미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주장과 결정들이 2026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나오고 있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사진, 가제본 표지)


책의 저자 김시덕은 도시문헌학자이자 도시 답사가로 도시 발전과 팽창에 관한 그의 인사이트를 부동산 업계에서 크게 주목하고 있는 인물이다. 가끔 유튜브에도 출연하여 특정 지역의 신규 분양 아파트에 대한 미래상를 제시하기에 이를 즐겨 시청하는 편이다. 투자라기보다는 그저 방향성을 이해하는대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그의 주요 이력을 살펴보면 고려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 일본 총합연구대학원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21년 제70회 서울특별시 문화상(학술 부문)을 수상했다. 


총 2부에 걸쳐 13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2026년 대한민국 각 지역의 경제와 사회를 전망하며 도시 트렌드 제시한다. 3대 메가시티와 6대 소권으로 알아보는 해당 지역 경제의 호재와 악재를 망라하고 있다. 즉 대서울권, 동남권, 중부권이라는 3대 메가시티와 지방의 6대 소권으로 구분해 인사이트를 제시한다. 


책은 지난 선거가 끝나고 드러난 진실을 제일 먼저 거론하고 있다. 2024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 당시, 경기 김포ㆍ고양을 서울에 편입하겠다느니 GTXㆍ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를 신설ㆍ연장하겠다느니 하는 온갖 공약이 나왔다. 금방이라도 행정 편입이 이루어질 것처럼 사람들은 말했고, 또 GTX는 금방이라도 강원도ㆍ충청남도까지 연장될 것 같았고 A, B, C, D, E, F, G, H…… 하는 식으로 알파벳 노래를 여기저기서 불렀다. 나아가 전국 대도시의 철도와 강변 도로들 역시 금방이라도 지하화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연극이 끝난 후 텅빈 무대만 남겨지는 것처럼, 각종 유혹이 넘쳤던 선거가 끝나자 이제 우리들은 그 민낯을 보게 되었다. 지금껏 지속적으로 봐왔던 것처럼, 정권이 바뀌면 많은 기존 정책들은 흐지부지된다. 이를테면 국민들 위에 국회의원이라는 '옥상옥'이 생겨 이들 입맛대로 변한다.


교통망 건설은 항상 원래 예측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 지금껏 살면서 조기 착공의 케이스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정된 국가예산을 쪼개서 투입하므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선심성 빈 공약에 속아넘어가는 우리들이 한심할 뿐이다. 교통망도 수익성을 결코 외면할 수 없기에 이용객이 별 없는 노선은 후순위가 되기 마련이라 자꾸 더 늦어질 수밖에. 


교통망 지하화의 경우 또한 과연 이게 공개발 정책인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저자 또한 이를 강하게 질책한다. 기존의 교통망이 형성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서 이를 지하화한다는 게 비논리적이고 실현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총선 때 메가시티 논란이 처음 제기됐던 김포는 수도권 지하철 5호선을 김포, 인천 검단신도시까지 연장하려는 계획과도 연관되어 있다. 김포 한강신도시까지 연장하는 노선이 검단신도시까지 연결되기에 과연 검단에 얼마나 많은 정차역을 만들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김포와 인천 두 도시간에 극한 대립을 보이면 사업 추진은 어렵고, 김포의 서울 편입이란 메가시티는 당연히 물거품이 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위로 간다'는 속담이 딱 맞는 말이다.


2부에선 3대 메가시티와 지방의 6대 소권을 살펴본다. 메가시티는 대서울권, 동남권, 중부권으로 분류하고 이어서 지방 소권은 대구 구미 김천 소권, 동부 내륙 소권, 동해안 소권, 전북 서부 소권, 전남 서부 소권, 제주 소권 등 6대 소권으로 나뉘어 각 해당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 


대서울권은 서울 강남, 1기 신도시 재건축, 3기 신도시와 135만 호 건설, 위례신사선-위례과천선, 경기 서남부의 교통과 연약 지반, 미래 한국의 먹거리를 만들어 낼 삼각형 순으로 설명이 이어진다. 이중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넓은 평택을 논하며 삼성전자 반도체로 인해 수혜받을 단지 이외의 지역 미분양을 말하는 건 핀트가 틀렸다고 지적한다. 즉 평택 동북부의 지제에서 중부의 팽성 정도까지를 아파트 수혜 지역으로 단정한다. 미래 먹거리 삼각형은 당진 북부를 포함하여 경기 서남부와 충남 북부에 걸쳐 조성되고 있는 베이밸리 메가시티로 거대 프로젝트의 핵심은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도시의 미래는 시리즈로 이어진다


책은 굳이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본인이 관심을 가진 지역 위주로 핀셋 독서를 하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현재 내가 읽고 있는 가제본은 미완성 도서라 더욱 그러하다. 도시 발전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최근 정식으로 출간된 도서의 일독을 권한다. 


#경제 #부동산 #재테크 #한국도시의미래 #한국도시2026 #김시덕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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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스 1 - 어느 순박한 영혼의 이야기 울림 3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마이너스 옮김 / 해밀누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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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로서 <킵스>1권은 '성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 작품이었다. 성장에는 종종 아픔, 실수, 오해, 후회가 동반된다. 그리고 웰스는 그러한 '불완전한 성장의 서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그려낸 작가였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치열한 경쟁과 계급적 불안,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적 따뜻함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번역을 마치며' 중에서


(사진, 책표지)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1866년 노동계급 가정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정원 관리인이자 작은 상점의 점원으로 일했고, 어머니는 대저택의 가정부였다. 웰스는 어려운 형편 탓에 여러 공립학교를 옮겨 다녔고, 14살 무렵엔 본격적으로 생계를 위한 도제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같은 삶에서 탈피하고자 매일 밤 독서를 하며 스스로 교육탑을 쌓았다. 이후 연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회비평가로, 과학소설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다양한 장르에서 혁신적인 작품을 남겼다.


소설 <킵스>가 탄생한 20세기 초의 영국 시대상을 먼저 이해하면 독서에 도움이 될 듯하다. 당시 영국의 신분제 경제가 서서히 흔들리던 시기였다. 교육 기회의 확대, 산업 구조의 변화, 중산층의 급성장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귀족 중심 사회에 균열의 틈이 생기고 있었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보이지 않는 문턱은 여전히 견고한 존재였다.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킵스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삼촌 부부의 손에서 자란다. 삼촌은 뉴 롬니에서 작은 장난감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킵스는 이 가게에서 소위 도제 생활을 훈련받고 있다. 그는 물건을 정리하고, 규율을 암기하고, 가게 주인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가여운 신세였지만 내면엔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과 꿈이 자라나고 있었다. 작가 웰스 또한 도제 생활을 경험했기에 이를 매우 잘 그려낸 듯하다.


비록 어릴지라도 사랑의 감정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냥 원초적으로 생기는 모양이다. 평소 동네에서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던 시드 포닉의 여동생 앤을 좋아했다. 그리 긴 교제 기간이 아님에도 키스를 청했다가 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이즈음 그는 새로운 도제처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포크스톤의 상점에서 일하는 샬포드 씨가 삼촌에게 '그 아이를 좀 다듬고 싶다'는 뜻을 전했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킵스는 단 한 번 만이라도 앤을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핑계거리도 없이 거리를 세 번이나 건넜다. 포닉네 집 창문을 올려다보려고 말이다. 여전히 앤은 숨어 있었다. 때마침 만난 친구 시드에게 "앤에게 좀 물어봐 달라"고 요청했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렇게만 전하면 된다고 말했다. 둘 사이에 무슨 약속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마침내 킵스가 타고갈 버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문이 쾅 닫히자 그는 목을 빼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분홍색 평상복을 입은 꼬마가 버스를 추격하고 있었다. 앤이었다. 달리는 버스에 나란히 선 그녀는 "아티! 아티! 그것 있잖아! 내가 그거 했어!"라고 외쳤다. '그것'의 의미를 아는 킵스는 버스를 세웠다. 그러자 앤이 버스에 올라타 무언가를 손으로 전달했다. "오늘 아침에 했어"란 말을 하고 다시 버스에서 내렸다. 킵스의 손엔 '반쪽 6펜스 동전'이 있었다. 둘만이 아는 사랑의 증표였다.


(사진, 샬포드 잡화점 69쪽)


킵스는 다른 8명의 젊은 영국인들과 한 방을 사용했다. 혹한기를 제외하곤 자신의 외투, 여분의 속옷, 그리고 몇 장의 신문지를 덮고 자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그는 벌금 목록을 외웠고, 소포 묶는 법을 배웠으며, 가게 상품이 어디 있는지를 익혔다. 각종 천을 접고, 재고를 세고, 손님을 맞이하며, 길거리에서 샬포드를 만나면 모자를 벗는 법도 배웠다.


그의 일과는 아침 6시 30분에 시작되어 거의 녹초가 되어 발까지 아픈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 선암 도제 민턴은 "네가 더 이상 일을 못할 만큼 나이가 들면, 그들은 널 버릴 거야"라고 말했다. 이에 킵스는 한 가지 욕망만이 점점 또렷해졌다. 쏟아지는 잔소리와 모욕의 폭우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인내하며 지낸 5년, 킵스의 도제 순위도 이제 2위급과 맞먹는 위치까지 상승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무수한 여성들과의 약혼 경험이었다. 무려 여섯 번이나 되었다. 하지만 잡화점에서의 약혼은 구속력도 거의 없었다. 그저 일종의 유행이었다. 잡화점 아가씨들은 자신들이 하녀처럼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거다.


(사진, 여섯 번 약혼 91쪽)


그의 마음을 스쳐 지나간 젊은 여성들은 마치 버스 승객과도 같았다. 정해진 길 위에 잠시 나타났다가,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훌쩍 내리고 떠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벼운 연애 놀음은 그에게 끊임없는 흥밋거리였다. 그리고 노예 같은 세월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준 중요한 원동력이었던 셈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행복감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삶에 대한 불만은 그에게서 늘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어딘가 잘못되어 가고 있거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는 의심에 시달렸다. 장갑을 끼고, 문을 열어주고, 길의 ‘바깥쪽’으로 걷는 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완전한 신사가 되기 전, 그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무지의 늪을, 발을 헛디딜 수밖에 없는 불안감의 수렁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같은 성장의 길을 걷던 킵스의 운명에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부의 상속이었다. 신문에 올라온 유산 상속자 아더 킵스를 찾는 광고로 인해 '1년에 1,200파운드'를 수령하는 우연한 유산이었다. 이후 그는 도제 생활을 청산하고 소년기의 짝사랑인 헬렌 월싱엄과 약혼을 한다. 과연 킵스는 그토록 원하던 영국 신사로 도약할 수 있을까? 


(사진, 2권 책표지)


2권은 주인공 아서 킵스가 뜻밖의 유산을 상속받은 뒤, 본격적으로 "신분이 달라진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국면에서 시작되었다. 1권이 "가난한 직공 견습생이 갑자기 부자가 되는 이야기"의 쇼크를 다루었다면, 2권은 "부자가 된 뒤의 삶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야기였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킵스는 상류층의 기준에 맞는 '신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예법과 발음, 취향을 새로 익히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자라온 세계(잡화점 기숙사, 뉴 롬니의 초라한 거리, 삼촌 부부의 가게 등)와 점점 멀어지는 걸 느꼈다. 


특히, 헬렌과의 약혼 이후 그는 상류 사회의 식사 자리와 모임, 지적인 대화들 속에서 늘 한 템포 늦게 따라가는 사람으로 남았다. 빗나간 농담, 어설픈 단어 선택 등은 자신이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받을수록 오히려 위축감만 커졌다. 와중에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던 앤과의 재회가 일어난다. '반쪽 6펜스 동전'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풋풋했던 소년 시절로 돌아갔다. 


예나 지금이나 갑자기 돈벼락을 맞은 '졸부'에겐 항상 검은 그림자들이 어슬렁거린다. 킵스는 헬렌의 동생과 주변인들이 권하는 투자에 휘말려 함정에 빠지고 만다. "아무 일도 나와 상의하지 않고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는 헬렌의 말 앞에선 그는 함정에 빠진 느낌을 어렴풋이 받았던 것이다. 이후부터 그는 자신이 더 이상 헬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반면에 마음이 앤을 원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의 유산은 점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잘못된 투자 때문이다. 이제 킵스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앤과 함께 다시 소박한 일상으로 돌아가서 노동의 기쁨을 즐기는 것이었다. 소설 <킵스2>의 후반부는 두 사람이 작은 가게를 꾸리며, 빚을 갚는 삶을 그린다. 


돈은 왔다가 사라지지만, 가게는 자리를 지킨다 


마지막에 킵스는 "오만 파운드가 있어도 이 가게를 접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의 고백에서 과연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요즘 읽은 책인 성장소설 킵스가 비록 20세기 초 영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일지라도 진정한 존엄과 인간다움은 이 시대에도 유효한 듯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사진,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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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5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친구 감사합니다.
 

그림은 시대를 건너와 나의 시간을 두드리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조용한 통로가 됩니다. 그런 순간들을 글로 쓰면 더 깊이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림 앞에 선 나의 감정과 시간을 솔직하게 꺼내어 담는 그 과정 속에서 과거의 그리움, 현재의 치열함 또 미래의 간절함을 경험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가제본 책표지)


지금 읽고 있는 도서 <그림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는 곧 출간 예정인 책의 가제본이다. 향후 출간될 때 책의 제목이 바뀔 수도 있고 본문의 내용 또한 변경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 에세이를 다루는데 공저자는 엄민정, 이소희, 임리나, 정민이, 최수안 등 다섯 분의 작가들이 참여했으며, '그림 앞에서 마주한 삶과 글쓰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총 여섯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프리다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클림트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고흐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밀레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우리 그림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나의 미술관 이야기 등에 관해 다섯 분의 작가들이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프리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그린다" 

- 프리다 칼로(1907~1954)


임리나 작가는 "프리다는 디에고를 많이 의지했지요?"라고 안진옥 갤러리 반디트라소 대표에게 물었다. 소아마비를 앓았고 교통사고를 당해 온전히 못한 몸 상태 때문에 남편인 디에고를 떠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 프리다는 강한 여자였어요"였다.


(사진, 부러진 기둥)


열여덟 살에 큰 사고를 당해 허리와 다리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여자가 강하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프리다의 작품을 마주하고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프리다는 자신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을 정도로 강한 여성이었다. 좀처럼 바람기를 못 버렸던 화가이자 남편인 디에고와는 결국 결별했다.


클림트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싶은 사람은

내 그림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작품 <아델레의 초상>(1907년)를 그린 클림트는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황금기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 그림 속의 주인공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예술 후원자이자 자신만의 지적 세계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림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당시의 여성을 억누르던 프레임을 깨뜨리는 과감한 선언이었다. 즉 금박과 모자이크, 눈동자 문양은 여성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감춰야만 했던 여성들의 욕망을 빛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사진, 아델레 초상)


아델레는 클림트에게 "나는 그저 아름답게만 그려지는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알려진다. 이런 그녀의 사유思惟 흔적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셈이다. 금빛은 부富의 상징이 아닌 존재存在의 증거였다. 나 또한 이 그림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이 부끄러워진다


고흐


"예술은 삶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1888년 여름, 고흐는 아를에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고흐는 삶의 끝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기차여행에 비유했다. 그에게 죽음은 삶이란 기차의 脫線이 아니라, 별로 돌아가는 여정, 歸還이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도착하게 될 마지막역일지라도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으로 보였던 것 같다.


(사진,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우리가 타라스콩이나 루앙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듯,

별에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타야 해.

나이가 들어 맞이하는 평온한 죽음은,

별가지 걸어가는 길이란다"


당시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을 여러 작품 속에 담은 이유가 이렇게 철학적인 사유를 담고 있었다니 위대한 화가는 철학가이기도 하다. 


(사진, 별이 빛나는 밤)


예로부터 고대인들도 별을 신의 계시라 여겨 점성술과 별자리를 기록했었다. 또 그리스인들에게 별은 오리온, 카시오페이오(카시오페아)와 같은 비悲劇이 펼쳐지는 신화의 무대였다. 한국의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견우와 직녀 설화도 은하수를 건너지 못해 영원히 기다려야 하는 간절한 사랑을 상징한다. 아무튼 인간에게 별이란 죽어서 돌아가는 귀향처인 셈이다.


밀레


"제가 아는 가장 즐거운 일은 숲이나 경작지에서

느끼는 평화, 고요함입니다" 

-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밀레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富農의 장남이었다. 종교심 깊은 할머니 밑에서 자라 신앙적 사유가 깊었고, 뛰어난 실력 덕분에 주변의 도움으로 공부를 이어갔다. 에콜 데 보자르를 중퇴한 뒤에는 초상화가로 활동했으나, 생계가 어려워 신화화와 역사화를 그리던 시기를 거쳤다. 


(사진, 만종)


바르비종에 정착한 뒤부터 그는 농부의 삶을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농부의 일상을 그리는 것은 당시 부르주아 계층이 선호하지 않는 주제였기에 사회적 비판도 받았지만, 그는 끝내 붓을 거두지 않았다. 농촌의 삶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그의 작품 전반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작가 엄민정은 밀레가 그린 그림을 처음 접했던 장소가 동네 이발소였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보였던 명화 복사본으로 <만종>이나 <이삭 줍는 사람들> 등이었다. 이는 가게 벽면에 걸린 인테리어 소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가장 공감하는 밀레의 작품은 따로 있었다. 


(사진, 뜨개질 수업)


1860년 작 <뜨개질 수업>이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앉아 뜨개질을 배우는 장면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엿보게 한다.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 단정한 살림살이, 집중하는 아이의 표정 등이 마치 한 폭의 기도처럼 다가옴을 느꼈다. 코랄빛 스웨터를 입은 엄마의 손끝엔 사랑이, 바늘을 잡은 아이의 눈빛엔 배움의 기쁨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래서 밀레의 그림은 작가에게 "삶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술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 그림 


"얼레빗 참빗 품고 가도 제 복이 있으먼 잘산다" 

- 속담 


(사진, 어변성룡도)


이 장면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과거시험 합격을 기원하며 서재에 걸어두던 <어변성룡도>다. 폭포를 뛰어넘은 잉어가 용으로 변한다는 상징에서 '등용문登龍門'이란 말이 유래했는데, 그림 속에 '간절히 바라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민화는 조선 시대 백성들에게 어쩌면 판타지 영화나 웹툰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논밭에서 일하고, 장터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한 민초들이 방 안에 걸린 그림 앞에 앉아서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듯하다. 잉어가 용이 되고, 호랑이가 웃고, 포도송이처럼 복이 넘치는 그림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민화엔 염원이 담겨 있다. 


어변성룡도~ 도전과 성취

모란도~ 부귀와 영화榮華

포도도~ 자손 번창

호작도~ 복을 불러들이는 바람


(사진, 포도도)


민화 속 그림의 붉은 색은 복福을, 푸른색은 성장과 발전을 뜻했다. 최근 '케데헌' 열풍으로 용산에 위치한 중앙박물관이 외국인 방문객으로 문전성시였다는 소식이 방송을 탔다. 호작도 속 호랑이를 '더피'라는 이름의 굿즈로 선보이며 '솔드아웃'이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굿즈의 인기가 앞으로는 민화 복제본까지 이어지면 좋겠다. 


#에세이 #그림에세이 #가제본도서 #그림에머물다마음을씁니다 #엄민정 #이소희 #임리나 #정민이 #최수안 #북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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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25-12-1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림프나 반 고흐, 정말 좋아하는 화가예요.

호시우행 2025-12-15 21: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비슷한 취향인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