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서른 아홉 살. 자유공원에서 노숙한지 두 달이나 되었답니다. 배가 고프답니다. 먹지를 못했는지 비쩍 말랐습니다. 말못할 사정으로 이혼하고 다니던 회사 사람들이 이혼했다고 수근대는 것이 싫어서 퇴직하고 퇴직금이라고 삼천만 원 정도 받아서 친구와 함께 인하대 앞에서 동업으로 장사를 했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빚이 이천오백만 원 정도 있답니다. 죽고싶은 마음 뿐이랍니다.


가진 것이라곤 헌옷 몇 벌 들어있는 가방 하나 뿐. 정신을 놓아버리면 이 가방마저 눈깜짝 할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게 헌 안전화라도 한 컬레 얻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민들레가게에 있는 헌 안전화를 드렸더니 좋아합니다. 

민들레 식구인 석원(가명) 씨가 다리 관절에 염증이 생겨서 인천의료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베로니카와 함께 세번 째 면회를 갔을 때 민들레국수집 vip 손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임00 씨입니다. 민들레국수집 시작할 때부터의 손님입니다. 혼자 외롭게 입원해 있습니다. 내일 위 절제 수술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이 한 푼도 없으니 난감한 모양입니다. 베로니카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눈물을 주루룩 흘립니다. 너무너무 고맙다고 합니다. 속옷과 수건 그리고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물티슈 등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곧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쓰라고 이만 원을 쥐어주었더니 너무너무 고맙다고 합니다. 수심에 가득찼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태풍 피해가 있습니다. 어린이 밥집 지붕 일부가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비 새는 곳에 덮었던 천막이 찢겨져 날아가버렸습니다. 다행이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고마운 분께서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 새책을 한 상자 보내주셨습니다.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서 책을 읽고 있는 우리 손님을 보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센터 1층은 이제 작은 도서관처럼 책읽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집에 식구가 늘었습니다. 민들레와 다롱이가 있는데 다롱이가 강아지 엄마가 되었습니다. 지난 7월 13일에 강아지 다섯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가장 약했던 한 놈이 죽었습니다. 그저께 두 마리를 분양했고 두 마리가 남았습니다. 9월 1일이면 전부 분양이 됩니다. 예쁜 강아지들이 새벽 서너 시가 되면 놀아달라고 끙끙거립니다. 엄마인 다롱이는 이제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지 않습니다. 강아지들이 가까이 오면 도망다니기 바쁩니다. 날카로운 이빨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한 시간 가량 놀아주면 다시 잠이 듭니다. 금새 똥 누고 오줌 싸고 난리가 아닙니다. 강아지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치워줘야 합니다. 그렇게 새벽을 보냅니다. 

 

                                        -민들레국수집, 민들레소식 8/29. 죽고싶은 마음 -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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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정호승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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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야 할 세가지 일


몸을 움직이는 것,
말을 하는 것,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
이 세가지가 학문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 정약용의《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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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노는 법



          참 수행자는 혼자 노는 법을 안다
          오는 이 없고 가는 이 없어도
          혼자 논다는 것은 매 순간
          존재의 느낌대로 순간을 사는 것
          아무런 대상 없이 혼자 노는 사람은
          밤과 낮이 구분이 없고
          생과 사도 두려움이 없다
          아무런 경계 없이 혼자 노는 사람은
          어디서든 스스로 충만할 줄 안다




                                       - 허허당의《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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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날개다

 

                                                                                 /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 두 살 라정식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친구들 여남은 명

                  뿐이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

                  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 $&*% 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 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 .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

                  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서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

                  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 문인수시집, <배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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