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소리, 더 작은 소리


           지금 당신이 있는 장소에는
           숱한 소리와 목소리들이 웅성거리고 있어.
           그 속에서 가장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그 작은 소리가 확실히 들린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더 작은 소리를 찾아내는 거야.
           그 소리가 또 확실하게 들린다면
           그보다 더 작은 소리를 찾아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렇게
           천천히 당신 앞으로 침묵을 끌어내봐.
           어부가 그물을 당기듯이.

          - 후지와라 신야의《황천의 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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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전에 일을 하고 있는데, 벨이 딩동댕동, 딩동댕동 막 울려서 나갔다.

 

 문을 여니 친구들이 들이 닥치며 "어휴~괜찮구나."해서 "왜?" 했더니 사연인즉,

목요일 밤부터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고 어제도 그랬고. 처음에는 못 받았구나 하다가 아니,

설령 전화를 못 받았더라도 부재중 표시보고 전화가 올텐데 뭔일이 생긴건 아닌가 걱정하다가

오늘 또 걸었더니 역시 안 받아서 친구들과 연락해서 집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 짧은 시간에 논의한 얘기는 입원을 했나, 아니면 해외로 나갔나 그래도 전화를 안 받을 리는 없는데?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것 아냐? 분분하다가 집으로 왔다는 사연.

 

 어제부터 왠지 걸려오는 전화가 없었지만 별로 의식하지 않았고 오늘 확인하니 휴대폰이 고장난 것 같아 서비스센터를 오후에 갔는데 업무시간이 끝났다며 월요일에 오라해서 나는 또 맘 편하게  '그래, 간만에 아무 연락도 안 받고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지~~" 내심 그 상황을 즐기기까지 했는데, 한편에서는 별의별 추측과 걱정과 염려를 했던 것이다. 아뿔싸.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벗들의 사랑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행복한 주말밤이다.

 

  새삼, 휴대폰이 소통의 대리자가 돼버린 시대를 생각하고, 그 물건이 먹통이 되어 연락이 안되자 한밤중에 집으로까지 찾아온 친구들의 사랑을 확인하며, TV는 없어도 집전화라도 다시 달아야 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괜시리 실실 웃는 중이다. 에그~~메신저라도 하지~~^^

 

  "땡큐~땡큐~땡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마음임을 확인한 정말 감사한 밤이다.

 

  다음주에는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이곳 저곳에서 보내온 책들을 들고 친구들에게 '사랑의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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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안에서 살던 천년의 세월 동안 내 이름은 평화였다.엄마가 평화야, 라고 부르면 바다가 출렁이고 하늘이 춤췄다. 나는 온몸으로 내 이름을 느꼈다. 평화는 눈과 귀를 통하지 않고도 세상을 이해했다. 평화는 동물과, 꽃과, 별과, 바람과도 대화했지만 사람과는 아무것도 나눌 수 없었다.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는 척만 할 뿐 그것을 진정으로 갈구하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순간 갈기갈기 찢겨질 나를. 갈기갈기 찢은 후 다시 온전한 나를 갈구할 그들의 기만을. 나는 그안의 평화로만 남고 싶었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파괴당하고 싶지 않았으며,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의 욕망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내 이름은 평화였다.

 오직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평화를 나는 그 안에서 다 이해했다. (P.106~107)

 

 

 

 내가 진짜엄마를 찾는 이유는 진짜엄마가 그리워서도, 진짜엄마가 필요해서도 아니다. 가짜를 가짜라고 확신하기 위해서, 이유는 그뿐이다. 진짜를 찾아내야 가짜를 가짜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세상이 온통 가짜뿐이라면, 가짜가 가짜임을 증명할 수가 없지 않나. 가짜가 진짜인 척해도 뭐라 할 말이 없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꼭 진짜를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서 진짜인 척하는 가짜들을 진짜 가짜로 만들어 버릴 테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세상에 진짜란 게 하나도 없다면, 그러니까 온통 가짜뿐이라면 어쩌지? 그럼 세상에 진짜는 오직 나뿐인가? 정말 그럴 수도 있을까? 나는 진짜가 맞나? 내가 진짜임은 누가 확인해주지? 내가 진짜를 찾아 헤매듯, 세상의 어떤 진짜는 나를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꼭 진짜를 찾아야 한다. 내가 진짜임을 학인하기 위해서라도.(P.111~112)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내가 숨 쉬던 우주는 온통 까매서, 가끔 그 어둠에 치를 떨기도 했다. 시간도 공간도 내 안의 모든 감각도 소용없던 그때, 막막한 어둠에 짓눌려 구해달라고, 그 무엇도 흉내내지 못할 간절함을 품기도 했지만 나를 구할 것 또한 어둠뿐이었다. 암흑의 본질은 고독이었다. 나는 모든 구멍을 열고 내게 스미는 암흑을 응시하고 응시했다. 응시하는 그 곳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기시감 같은 반짝임, 반짝이는 나를 보는 것 또한 나와 암흑뿐이었다.

 내 앞에 나타난 나는 지나치게 흔한 세계.

 그것만이 전부였던 그 시절.

 나는 반짝이는 나를 봤다. 내 불행의 시발점. 모든 행복의 이면.((P.161~162)

 

 

  한참을 자고 일어나도 밤

  뜬눈으로 지새워도 밤

  천을 천 번씩 세는 내내 밤이다가

  아주 잠깐씩 환해질때가 있었어.

 

  그때 당신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P.223)

 

 

  진짜엄마란 대체 뭐지? 나는 왜 그것을 찾지? 거리를 헤매며 많은 사람을 보면 볼수록, 나는 그 이유를 서서히 잃어갔다. 알맹이 없는 목적을 품고 걷는 길은 고되고 무의미했지만, 나는 끝없이 걸었다. 누군가가 너는 왜 이 거리를 떠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지금까지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P,243)

 

 

 나의 진짜엄마는.

 거리를 떠돌며 내가 정했던 진짜엄마의 조건은 모두 껍데기고 포장이며 환상이고 거짓말이다. 나의 진짜엄마는 어떤 얼굴이라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결국,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다. 맞는 대신 때리는 자이고 때리는 게 번거로우면 죽여 없앨 수도 있다. 그 모든게 귀찮을땐 외면한다. 상관없는 척한다. 그 뿐이다. 오직 중요한 건 자신의 생존이다. 불행이나 행복 따위엔 관심도 없다. 이제야 알겠다. 그런 사람을 찾기는 너무나 쉽고, 너무 쉽기 때문에 나는 여태 못 찾고 있었다. 너무 흔하니까, 어디에나 있으니까.

 거울을 보면 그 속에도 있다. (P.274)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손바닥만 한 사진이 있었다. 그 속엔 젊은 아빠 엄마가 있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천사처럼 웃는다. 아빠의 얼굴엔 부끄러움과 만족감이 사이좋게 내려앉았다. 맑고 밝고 향기로운 봄날, 그 속엔 나도 있다. 엄마 배 속에서 작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입을 하나로 모은 나.  평화야, 엄마가 배에 손을 얹고 나를 부른다.

 찰칵,

 카메라도 나도 사이좋게 윙크.

 

 그속에서나는 평화였다. (P. 295)

 

 

  천년의 세월 중 내가 들었던 가장 달콤한 말은,

  사랑하는 우리 아가.

  내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엄마의 자그맣고 부지런한 심장.

  가장 황홀했던 건,

  아빠가 엄마 안에 들어와 우리 셋이 완전한 하나가 되던 느낌.

  그 안에서 짐작했던 최고의 행복은,

  당신이 나를 안고

  내 눈을 보며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순간. (P.296)

 

 

                                     

              / 최진영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한겨레출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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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는 영광'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혼자 있을 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고독은 자기 자신을 만나게 하고
타인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며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한다.

 

 

- 윌리엄 파워스의《속도에서 깊이로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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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일까? 마담Q가 드디어 8박9일의 미서부여행을 떠났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의 문자에 건너가 팩에 든 김들을 다 꺼내버리고 전장김들로 넣어주었고, 짐바브웨 동전과 터키 동전과 일본 동전과 쿼터로 된 동전들 속에서 사용할 동전들을 골라 주고, 혹시 과식이나 소화불량에 대비해 알로에환도 넣어 주고, 블랙모자와 비행기에서 신을 슬리퍼를 챙겨주고, 커피와 호박고구마를 먹으며 그녀의 명랑쾌활한 여행을 빌며 차문까지 닫아주고 안녕,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상한 해방감에...마치 휴가를 낸 듯한 경쾌함과 자유까지 느끼며 훌훌 웃는다.

 

 왜? 왜??  참 스트레스를  암암리에 많이 받았나 보다, 그녀와의 친교.

 

 이상하게 인간관계에 인색한 자신임에도 마담Q와의 친교는 마치, '적과의 동침' 같다고나 할까.

 시도 때도 없는 호출에 귀찮고 짜증도 나지만  무리없이 응해주고(하지만 저녁 이후에는, 내 작업에 몰두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때론 추임새도 날려주고, 단체문자도 대신 보내주고, 무엇인가 욕심내는 나의 것들도 아낌없이 내어주고 때론 유치원생보다 못한 그녀의 이기적이고 못된 본성에 대해 돌아서며 분노도 하고 경멸도 하지만..아..이상하게도..그럭저럭 잘 지내는 풍경이란. 희한한 일인 것이다. 이 현상은.

 

 그래도 아주 가끔씩 보여주는 천진난만함이랄까, 자신의 본능에 그렇게 충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을 처음 본 신기함이랄까, 경제적인 면으론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손실조차도 분노하는 투철한 경제관에 감탄해서일까,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에게 오는 것들은 200% 활용하는 발전성의 모습때문일까 아니면 아침마다 간이화단의 풀과 꽃들을 정성껏 잘 가꿔서 일까, 혹은 노래와 춤을 미치게 잘 추어서일까. 여하튼..이렇게.. 나와 정말 이상 야릇한 관계를 맺고 사는 나의 이웃, 마담Q

.

 그녀를 떠난 후에, 더 이상의 시간할애는 없을 것이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요 네스뵈의 '레오파드'를 다시 펼치며 해리 홀레의 매력속에 빠져야겠다. 왠지 '스노우맨'보단 긴장감이 떨어지는 듯은 하지만. 그리곤 플랜 린치의 '참행복의 비밀'과  앤소니 드 멜로신부의 '사랑으로 가는 길''(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가 더 좋았던 것 같고.)을 읽고  마스노 슌묘의 '스님의 청소법'도 읽어야 하며, 오후에 도착할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과  정용준의 소설, 고은 선생님의 '마치 잔칫날처럼'을 읽어야 할 것이다.

 

 참, 원초적인 홀가분함이다. 마치 마감에 파일전송을 한 것처럼.

 

 그런데 왠지 그녀가 보고 싶을 것 같다~^^.  So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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