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마음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았고 세계일주의 꿈도 포기하지 않았다.` 절멸의 고통을 통해 의식을 확장시키고, 삶의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게 하는 生의`환상`에 대한 이야기. 눈쌓인 겨울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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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빛 1

 

            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        

               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

               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고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혔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

               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

               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 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

               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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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4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4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5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5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 3

 

        - 마종기

         중세기의 낡고 어두운 수도원에서 듣던
         그 많은 총각들의 화음의 기도가
         높은 천장을 열고 하늘을 만든다.
         하늘 속에 몇 송이 연한 꽃을 피운다.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멀고 하염없었다.
         전생의 예감을 이끌고 긴 차표를 끊는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도심을 빠져나와
         빈 강촌의 햇살 눈부신 둑길을 지난다.
         미루나무가 춤추고 벌레들이 작게 웃는다.
         세상을 채우는 따뜻한 기적의 하루,
         얼굴 화끈거리는 지상의 눈물을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냄새가 난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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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3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4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담쟁이 

 

 



        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나를 가두었던 것들을 저 안쪽에 두고 



        내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지금도 먼 데서 오는 바람에
        내 몸은 뒤집히고, 밤은 무섭고, 달빛은
        面刀처럼 나를 긁는다 



        나는 안다
        나를 여기로 이끈 생각은 먼 곳을 보게 하고
        어떤 생각은 몸을 굳게 하거나
        뒷걸음질치게 한다 



        아, 겹겹의 내 흔적을 깔고 떨고 있는
        여기까지는 수없이 왔었다

 

 

                                         / 조은 詩集, <따뜻한 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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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20 12:08   좋아요 0 | URL
님, 좋은 시로 하루 시작해요^^
제겐 오늘 슬픈 아침이었는데, 좀 위안이 되네요.^^

appletreeje 2012-11-22 23:56   좋아요 0 | URL
좋은 밤 되세요~~

2012-11-20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2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의 접촉


           우리가 접촉을 원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가장 분명하고도
           심오한 이유는 접촉이 우리를 치유해주기 때문이다.
           손을 대면 한 방울의 물도 퍼져나가듯,
           우리가 안고 있던 고통도 가벼워진다.
           홀로 감당하다가 얻은 응어리도
           진실한 사랑의 접촉에 풀어진다.
           접촉은 모든 언어의 밑에 있는
           공통의 몸짓이자 에너지다.


           - 마크 네포의《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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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6 11:34   좋아요 0 | URL
님, 굿모닝~~~ 아니 벌써 정오가 다 돼가긴 하네요.ㅎㅎ
오늘아침 저도 이 글 받고 뚱딴지 같게도 '일곱번째 파도'에서 레오가 말하는
'접촉점'이 떠올라 아하~ 그렇구나 그래 맞아 이랬어요.^^
말은 그것에 닿지 못한다는... '그것'은 '접촉'이었어요.
행복한 하루 보내요, 우리^^

appletreeje 2012-11-16 12:13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때때로 말이 그것에 닿지 못하는..
저는 며칠전에 갑자기 부군상을 당한 친구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그냥 그 친구를 가만히 껴안아줬을 뿐이지요.. 부부끼리도..오랜 여행에서 돌아 온 자녀나 친구와도 마찬가지로. 정말 간절한 시간에는..자신도 모르게 몸이 먼저' 사랑의 인사'를 하더군요.
프레이야님께서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비로그인 2012-11-16 23:28   좋아요 0 | URL
요즘 난독과 오독에 시달리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공통의 몸짓을 고통의 몸짓으로 읽었어요.ㅠㅠ 접촉이, 단순한 스킨십 이상의 정신적인 어떤 것까지 포괄하고 있겠구나, 싶지만 물리적 접촉이 사실 더 큰 기쁨과 치유가 될 수 있다는 쪽으로 급선회(?)를 합니다. 굿나잇, 트리제님^^

appletreeje 2012-11-17 15:12   좋아요 0 | URL
아~~역시 컨디션님은 천재신것 같아요~~^^ 그렇네요. '고통의 몸짓'도 있겠네요. 저는 오늘 대녀의 혼배미사를 다녀왔어요.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가을길이 노란 은행잎들로 더욱 아름답더군요. 더 큰 기쁨과 치유를 오늘 막 태어난 신랑,신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