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피스 - 금지된 열다섯 청어람 청소년 2
이진미 지음 / 청어람주니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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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엘피스:금지된 열다섯/ 이진미 장편소설/ 청어람주니어




성장소설의 아이콘 ‘데미안’의 핵심 문장인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를 완벽하게 구현한 소설을 만났다. 청어람주니어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진미 작가의 [엘피스:금지된 열다섯]이다. 청소년 대상으로 출간한 두 번째 이야기로, 미래 세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소재로 우리의 뇌를 깨운다. 


[엘피스:금지된 열다섯]에서는 환경호르몬, 로봇공학, 휴머노이드 등 오늘날 예측 가능한 미래가 그려진다.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한 미래지만, 이진미 작가의 노련한 눈썰미는 빈틈을 찾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관련 첨단 기술은 휴머노이드 개발을 실현시킨다. 이진미 작가는 ‘반려 휴머노이드’라는 화두를 꺼내 인간성, 존엄성의 의미와 규정에 관해 진지하고도 무거운 질문을 제시한다. 


책 제목인 ‘금지된 열다섯’과 ‘엘피스’의 조합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해지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엘피스의 아빠 진서우 박사와 W이 꿈꾸는 이상의 차이, 열다섯 동갑내기 엘피스와 노아가 겪는 성장통, 인간과 반려 휴머노이드의 관계를 잘 엮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분투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믿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삶은 누리는 게

아니라 버티고 견디는 거라 여기는 것 같아요."




기술의 발달로 풍요로워진 미래 사회에서도 물질을 넘어서는 정신적인 유대와 교류에 대한 본능은 인간 사회의 특성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기술로 구현된 행복의 한계 혹은 허상 그리고 일방적인 관계 설정과 규칙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엘피스가 금지된 열다섯이 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들은 여느 또래가 보여주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일상이지만, 배경이 된 미래사회에서는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이다. 사춘기와 휴머노이드 각성을 함께 겪은 엘피스가 감당해야 하는 혼란과 불안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걸 왜 궁금해하지?’로부터 시작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희망’을 뜻하는 엘피스는 그 답을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이 조그만 아이가 보여주는 담대한 용기에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부모로서 울컥하게 된다.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도 많이 주고.

휴머노이드가 아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의

삶을 누릴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이야."





[엘피스:금지된 열다섯]은 기술의 개발은 편리와 혁신으로 이어지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불합리, 차별 등 파생되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SF 장르가 지닌 무한한 상상력으로 그려지는 미래 사회는 ‘실현 가능성’을 품은 세상이기에 더 빠져들게 된다. 그렇기에 엘피스, 노아, 반디가 겪는 고통과 혼란이 더 크고 깊게 와닿았다. ‘나는 누구인가?’ 고민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고민하고 옳다고 믿는 길을 기꺼이 걸어가는 [엘피스:금지된 열다섯]은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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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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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라곰





삶의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면?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풋풋한 19세 대학생 넬이 자신이 죽을 날짜를 예언가에게 듣고 난 이후의 삶을 담고 있다. 

38세가 되면 죽는다는 예언은 넬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사실 이런 말을 들으면 믿든, 안 믿든 누구나 신경 쓰게 될 것이다. 특히 예언을 들은 다른 친구 소피가 그 날짜에 죽었기에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게 된다. 작가 샬럿 버터필드는 지정된 날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유예기간 동안 다양한 경험과 관계를 쌓는 넬의 자유로움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역설적으로 예언 날짜까지 안전은 보장되기에 넬은 '버킷리스트'를 해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죽음 디데이 이후에 주 포커스를 두고 있지만, 이점 역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넬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신나지만 위험한 모험을 즐긴다. 하지만, 죽음 디데이 이후에도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언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넬과 친구 헤일리의 보여준 반응을 보면 넬의 성향, 기질이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닐까. 모험과 스릴을 즐기고, 호기심이 크며, 잘 웃고,  잘 다가서는 유연한 넬은 매 순간을 바쁘게 살았다. 















"떠나는 것이 머무는 것보다 훨씬 쉬워. 

넌 가방을 메고 미지의 세계로 가는 네가

더 용감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모든 걸

해결하려면 다른 유형의 강인함이 필요해."





작가 샬럿 버터필드는 넬에게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우연한 만남이 교차하면서 삶의 궤적에 들어온 새로운 인물들과 엮이게 되면서 관계의 진정한 의미와 무게를 깨닫게 된다. 깊어져가는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느껴지는 온갖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한층 더 성숙해져가는 넬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었다. 
밀어내기에 급급했던, 도망치기에 바빴던 넬이 사랑하는 이들 곁에 둥지를 틀고 자리 잡아가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흐뭇해졌다. 상처받기 싫은 어린 새였던 넬은 마침내 곁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든든한 존재들이 있어 상처받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용한다. 




"넌 지금 네가 가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인생을 마주하고 있어.

네가 항상 혼자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



샬럿 작가는 개연성 있으면서도 특색 넘치는 글로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이 흡입력은 넬이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순간들에서 강력해진다. 톰, 주노, 안드레아 등 매력 넘치는 인물들과 처음 만나는 순간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글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을 스케치하듯 묘사한다. 그래서 그 인물을 이미지화하기 편하다. 소설을 눈으로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영상이 펼쳐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였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늘 인사를 건네겠다고 약속해.

그리고 뭐든 최고를 위해 아껴두지 마.

그럼 늘 제일 좋은 수정 물을 마실 수 있을 거야."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저어하던 넬이 '혼자인 삶' 대신 '함께 하는 삶'을 꾸려나가는 여정을 유머와 풍자, 유희로 채워나가는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소설이다. 특히 다양한 인간 군상의 출현에도 어수선하지 않고 각각의 개성을 잘 살려 읽는 재미와 맛이 크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 위태위태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다. 이 소설은 그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를 달콤하게 그려냈다.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서 있는 우리에게 든든한 응원과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넬다움을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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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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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구희 글·그림/ 한겨레출판




어느덧 굳이 나이를 세지 않는 연배가 되었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세월이 참 빠르구나' 생각하면서도 늙어간다, 나이 들어간다 인식하지 못한 채 지냈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계속되다 아이의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를 받은 날, 눈가의 주름이 유독 눈에 띄는 날, 남편 얼굴보다 휑한 정수리와 새치가 먼저 보이는 날, 문득 실체를 지닌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된다. 이번 하니포터10기 활동 도서인 구희 작가의 만화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자립할 나이가 되어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청년을 일컬어 '캥거루족'이라 한다. 배쪽 주머니 속에 새끼를 넣고 다니며 키우는 캥거루 모습이 연상된다. 캥거루족이 늘어나고 있는 오늘날,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만화의 형식으로 그들의 입장과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공감툰이다. 저자인 구희 작가보다 부모님 입장에서 받아들이며 읽게 되었다. 이제 곧 성인이 되는 큰 아이가 구희 작가에 오버랩되면서 피식 웃는 경우가 잦았다.








단란한 4인 구씨 가족의 장녀인 구희 작가가 30대가 되면서 '독립'에 대한 생각이 깊어져가는 이야기다. 독립 고민기이자 분투기인 이 만화는 MZ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구희 작가와 동생 '구죠'의 일상이 다른 어느 때보다 살기 퍽퍽한 고물가, 고스펙 경쟁 과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청년들의 '오늘'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현실적인 장벽과 삶의 가치관 변화로 출현한 '캥거루족'. 사회의 잣대로 비난받기도 하지만 그들 또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구희 작가는 특유의 유쾌한 그림체와 현실적인 에피소드로 풀어내고 있다. 이는 사회적 공감대로 이어진다. 


다정한 집에서 든든한 아군이자 수호천사인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여 평온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입시와 취업 준비를 거치면서 독립, 홀로 서는 것이 두려운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구희 개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고 싶으면서도 아늑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집과 가족들과 떨어져 자신의 섬을 꾸리는 일을 결심하는 게 쉽지 않다. 








구희 작가는 부모님 세대에 대한 존경과 경의, 가정 노동의 가치 환기와 감사, 사회적 퀘스트에 대한 부담, 독립과 자립,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 등등 평범한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생각하고 고민하며 고마워하는 지점에 대한 적절한 표현과 마음들을 이 한 권에 담아주었다. 사회가 정한 나이별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나의 길'을 찾고자 나아가는 구희 작가를, 청년을 가슴 깊이 응원한다.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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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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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진공 붕괴/ 해도연 소설집/ 한겨레출판



좋아하는 김초엽 작가의 책을 읽고 큰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과 전공자가 이렇게 글까지 잘 써도 되나요? 문과생들은 어떡하라고요." 본인 또한 문과형 이과 지망생이면서 말이다. '글', '이야기'를 창조하는 능력 혹은 욕구를 인간의 본능이라 한다면, 누구나 가히 작가가 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은연중에 '작가'는 문과 카테고리에 넣고는 설레발치는 모양새다. 아이가 말할 때는 웃어넘겼지만,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보다. 나의 보편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찬란한 시간을 보냈다. 바로 해도연 작가의 [진공 붕괴] 덕분이다. 우주 전문가가 탄탄한 전문 지식과 경이로운 상상력 그리고 체험이 녹아든 이야기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SF 장르의 신세계를 선사했다.






세 번째 작품집인 [진공 붕괴]가 해도연 작가와의 첫 만남이다. 단편으로 그려진 여섯 가지의 세계가 탄탄한 과학적 토양 위에서 줄기차게 확장되어나가는 호흡이 놀랍다. 어느 이야기 하나 단조롭지 않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한순간의 이완도 허용하지 않는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구조는 긴장감과 재미를 놓치지 않도록 독자를 이끈다. 여섯 편의 이야기 제각각 특색 있고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그중 <텅 빈 거품>, <마리 멜리에스>, <콜러스 신드롬>이 긴 여운을 남겼다.





과학이 토대가 되지만 인간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감정과 욕구가 녹아있는 이야기들이라 음미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소중한 존재에게 진실을 숨기면서 얻는 행복과 안녕이 진정한 것일까? 소멸 앞에서 '본인'와 '타인'의 경계가 유의미한 걸까? 진실을 '알지 못한' 이와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이 그리고 '알았으면서도 망각한' 이 중 선택해야 한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되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

해도연 작가는 하나의 글 안에서 한 가지 선택이 아닌 개개인의 성향과 입장들을 드러내는 여러 시선들을 담아내면서 독자들 스스로 고민하고 사유하도록 이끈다. 지구를 넘어서는 광활한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의 지능과 본능을 초월한 외계 생명체나 인조인간 혹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자 등등 범상치 않은 세계관의 터널을 건너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부딪치고 넘어지고 놀라고 전율하며 즐길 것이다. 등장인물이 되어보기도, 상대역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행간 사이를 탐색해 나갈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기술의 발달로도 모든 게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한계가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지킬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같은 생각이 아닐지라도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아파하고 슬퍼하는 그들이 아름다웠다.


해도연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 터전에서 인간의 보편적 감정(사랑, 기쁨, 행복, 환희, 부성애, 모성애…)과 가치(생명, 자유, 신뢰, 정직…)가 어떤 모습으로 피어나는지 지켜보면서 매료되었다. 우리의 지금이, 내일이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 바로 이 순간 나를 감싸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생경하면서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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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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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죽은 다음/ 희정 지음/ 한겨레출판


[죽은 다음]은 기록 노동자 '희정'이 전하는 죽음과 장례 이야기 그리고 돌고 돌아 사는 이야기였다.








'죽음'으로 시작해서 '장례'로 시선이 옮겨간 [죽은 다음]은 인터뷰를 위해 직접 '장례지도사 직업훈련'을 받은 저자가 담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다. 전통 상장례의 순서를 따라 구성된 장례 절차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이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시신 염습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저자는 '죽는 일보다 늙는 일에 대해 먼저 배웠다'고 했다. 아는 이의 죽음이 아니라면 시신을 보고 드는 느낌이 먼저일 것이다. '늙음' 그리고 '죽음'에 이른 존재에 대한 친애와 경의를 담은 숙연함이 두 손을 모아 쥐게 했을 테다. 


수의에 관한 이야기도 가슴 한편에 쌓였다. 너무 어릴 적에 유족이었기에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빠 장례에 입었던 삼베옷의 까끌까끌 거림과 하얀 끈 머리핀은 설핏 기억난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터라 부고 받는 횟수가 늘었다. 주변 지인들의 경험담에도 마음이 아리고 걱정이 앞선다. '죽음'은 이렇게 남은 이들에게 더 깊고 더 진하게 배어드는 듯하다. 무엇 하나 쉽지 않게 다가오는 장례라, 어느 수의 제작자분의 "마음이 쉽지가 않지."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에 하나 가져가는데, 그 옷을 정성스럽게 만들어드려야" 된다는 그 마음의 온기가 묵직하게 전해져 왔다. 




아마 그가 인생의 끝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관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일 거다.

가족이 생기고, 동료가 생기고,

친구라 부를 이들이 생겼다.

- 54쪽





요즘 장례는 장례식장에서 치러지는 게 대다수다. 그리고 상조회사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실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와 애도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장례식은 흔치 않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장례지도사 전문가를 직접적으로 접하지 않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생전 장례식'에 대한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한국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 세연을 위해 남편 진봉이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 마지막 잔치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회포를 푸는 세연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또, '작은 장례 추모식'도 의미 있는 마무리 같다. 고인을 배웅하는 진심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들끼리의 자리라 더 뜻깊으리라. 








우리의 삶은 평등하지 않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도 평등하지 않다. '가난한 자의 수의, 매듭' 등등 장례 문화가 장례업으로 외주화되면서 '돈'은 삶의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또 '관계'또한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연고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사회의 '가족제도'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시대의 변화에 대한 반응과 대응이 느린 사회체제와 법규로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가족'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관계들이 외면당하고 있었다. 




출산, 양육, 부양, 연명, 의료 그리고 장례까지.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일이

오직 가족 단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둔 사회는, (정상) 가족을 벗어나

구성원이 맺는 다양한 유대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무연고자가 증가한다.

274쪽




[죽은 다음] 책을 읽고, 장례 복지 시스템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무상 의료'처럼 '무상 장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를 기다려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의 슬로건을 떠올려보면 죽음과 장례를 국가가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지원하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나눔과나눔 박진옥 활동가의 '공영 장례'에 대한 환기와 고민이 크게 와닿았다. 

또, 여러 나라들의 장례 문화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다. 문화와 자연환경, 종교 등에 따라 죽음과 영혼, 장례에 대한 인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죽음과 장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시간 속에 무엇보다 '고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애도하는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글 중간중간에 추가된 인터뷰들이 '장례'현장에서 마음을 다해 고인의 마지막을 다듬고 보살펴주고, 사별자들의 감정을 세심히 들여봐주는 전문가들의 참모습을 전하고 있다. 

생명을 지닌 존재들은 모두 죽는다. 절대불변의 진리 앞에서 우리는 같은 위치이면서도 다른 듯하여 안타깝고 성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작정 고인의 명복을 빌었던 그때와 달리, 이제 사람에게 기대어 누군가의 평온을 빈다'라는 문장처럼 같은 곳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 곳곳에 발 딛고 서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연대를 믿는다. 더디더라도 더 나은 내일을 품고 하루에 하루를 더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안녕을 묻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요?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우리 사회의 존엄과 온기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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