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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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나토 카나에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백]의 다음 편.
[고백]이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면 다음 작품들은 시시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필력이 살아있다면 다음 작품들 역시 매력적일 것이다. 라는 이유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기다린 것은 새로 몰두할 작가였다. 그리고 [속죄]가 번역되었다. 

그녀의 속죄는 이언 매큐언의 작품과는 다르다. 어린 소녀의 잘못으로 어긋난 운명을 맞이했던 비운의 연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작 [고백]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들려주는 15년 전 범죄는 소녀들이 얽힌 범죄였다. 다만 고백에서는 "재수가 없었을 뿐.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내겐 그럴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라며 자기합리화를 했던 등장인물들이 풀어내는 "나의 이야기"였다면 속죄에서는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모두 나의 잘못이야"라고 자책하며 살아온 4소녀의 성장기가 담겨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 운명이 잔인하게 엇갈렸을 뿐이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나약한 인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 명은 살해되었고, 4명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했다. 그래서 이야기가 엮어졌다.

에미리는 도쿄에서 왔다. 집앞에 나가면 5분 이내 모든 것이 펼쳐졌던 편리함을 뒤로하고 아무것도 없는 시골로 향해야 했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그것이 그녀의 두번째 불행의 시작이었다. 첫번째 불행의 시작은 출생의 비밀에 있었고...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던 중 낯선 남자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한 채 죽었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에. 집에 있던 프랑스 인형처럼 가녀리고 숫기없던 사에는 에미리의 시체와 남겨졌고 풀어헤쳐진 에미리가 불쌍하게 느껴져 그애의 옷을 간추려 주었지만  이 날의 정신적 상처로 인해 결혼할때까지도 여성이 되지 못했다. 겉만 자란 소녀인채 에미리의 사촌에게 시집갔지만 그는 변태성애자였고 결국 남편을 죽였다.

마키.수영장에서 서바이벌 나이프를 들고 학생들을 향해 돌진하는 남자를 저지했지만 결국 언론은 그녀를 살인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 일이 그녀가 학부모 임시총회를 열게 된 계기이며, 그자리에서 15년전부터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사건에 대한 고백이 이어진다.  도망갈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후회와 함께 왜 남자를 저지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라면서...

유카.  형부의 아이를 뱉 유카는 출산직전이다. 어릴적부터 병약하면서도 영악스러웠던 언니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치 못한 채 자란 유카. 그녀에게 잘해준 어른은 딱 한 사람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따뜻하게 손잡아주었던 경찰관 아저씨였는데, 그 때문인지 경찰관에게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품게 된 유카. 형부가 경찰이라는 사실과 언니에 대한 반항심이 불러일으킨 그 하룻밤이 출산이라는 결과로 다가왔다. 하지만 유카도 결국 속죄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형부를 죽여버렸으니까.

아키코. 남자같던 아키코에게 에미리는 함께 공유할 것이 많은 친구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날 죽어버렸다. 비참하게. 그리고 아키코의 인생도 변했다. 히키코모리처럼 은둔생활을 하던 아키코는 오빠의 재혼과함께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는데, 새언니의 딸이 그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날 와카바를 만나러갔다가 그녀는 봐버렸다. 의붓딸 와카바를 성폭행하고 있는 오빠를. 그리고 그는 에미리의 살인범과 겹쳐지면서 아키코는 오빠를 죽이게 된다. 어린날의 트라우마는 이토록 강하게 4명의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미리 어머니가 밝히는 출생의 비밀과 범인. 존속살인이라는 것 외에도 범행방법이 성폭행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역시 4명이 걸어온 속죄의 세월이었다. 딸을 잃은 어머니가 내뱉은 분노의 저주가 그들의 삶의 행복을 앗아가버렸다. 그리고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버렸다. 지독하게 꼬여진 만남과 운명들. 누가 잘못한 것일까.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가난한 남자도, 연인을 잃고 딸을 그 아버지에게 잃은 어머니도, 친구의 죽음 앞에서 비겁했던 4명의 소녀들도 다들 희생자일 뿐이었다. 

[속죄]가 아닌 [고백]이라고 이름붙어도 좋을 미나토 카나에의 후작.
이젠 그녀의 다른 책인 [소녀]와 [N을 위해서]가 서둘러 번역되길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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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미스 프랭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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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코스에 악마가 나타났다.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남편으로 인해 산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에게까지 통찰력이 미치는 늙은 베르타.
그녀는 남편이 말한대로 언제나처럼 언덕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드디어 악마가 나타났다. 매우 젊고 핸섬한 남자의 모습으로.

우리가 유혹은 받게 되면 결국 그 유혹에 지고 만다는 것을 발견했소

마을 안에선 젊은 샹탈에게 접근해 온 악마.  악마의 유혹은 CF에서처럼 커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인간 본성에 관한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귓가에 속삭이면서 그는 그녀를 그리고 마을 전부를 유혹해대고 있었다. 그녀도 처음에는 솔깃했다. 그녀가 익숙해져 있는 그 모든 결핍. 삶은 그녀에게 늘 불공평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뒤바꿀 수 있는 부를 그가 약속했으니.

사람들은 모든 것을 바꾸길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변함없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로또보다 더 당첨확률이 확실한 이방인의 제안은 "사흘 안에 마을 안의 누군가를 살해하라"는  것이었다. 그들 중 단 한 명. 제물은 단 하나면 족했다. 시험에 빠진 마을은 순식간에 소돔과 고모라처럼 변해갔고,  "한 사람의 희생이 전 인류를 구원했다"는 신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화약고에 붓는 기름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희생자찾기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 그냥 물러서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니까

중국인들은 악마를 이미 죄값을 치른 영혼이라고 일컫는다고 했다. 이방인은 이미 죄값을 치른 영혼이 맞는 것일까. 그의 말에 흔들렸던 샹탈은 마을 사람들이 늙은 베르타를 제물로 고르자 대항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기 보다 모욕을 택한 어느 비겁한 사람의 일화처럼 단호한 입장을 취하기르리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나 그냥 물러서는 것이니까. 그게 더 쉬운 일이니까.  쉬운 일이 아닌 옳은 일을 택한 샹탈에겐 악마가 약속했던 금이 주어졌고 마을은 다시 예전처럼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악마는 정말 외부에서 온 것일까. 혹시 그들 안에서 세상밖으로 나왔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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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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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가, 눈알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 적이 또 있을까. 
오츠이치라는 작가는 출판사 북홀릭에 관심을 두면서 발견한 작가였다. 북홀릭이라는 출판사의 책들에 관심을 두면서 지난 주부터 그 출판사의 책들을 한 권씩 구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리플릿 한 장 속에는 중독되는 독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읽고 싶은 책에 대한 광고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출판되지 않은 신간들도 있는 것 같았다. 리플릿에는 실렸으나 검색에는 뜨지 않는 책들이 절반이나 되는 걸 보면 특히 [고백]의 저자 미나토 카나에의 후속편이 빨리 번역되기를 바랬는데, [속죄]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불행히도 아직 출판된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오츠이치는 "실종홀리데이"를 읽으면서 들어봤던 이름이긴 했지만 GOTH가 읽고 싶어 검색해 본 작가였다. 그의 또 다른 책 [암흑동화]를 읽으면서 솔직한 심정은 그 동안 눈알에 대해서 공포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점 정도였을 것이다. 눈. 언제나 달려있고, 언제나 끔뻑임 속에서 세상을 보여주는 신체기관. 하지만 이 신체가 이질감이 들고 언제부턴가 내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면 나는 정말 멀쩡할 수 있을까.

본다는 것과 보여진 다는 것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인데,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 날이었다. 

눈이 열리고 보여지는 영상이 아닌 기억된 영상이 보여지는 나날들이 계속된다면 그걸 견뎌낼 사람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 사실만으로도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느껴지진 않는지. 분명 나의 눈이지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신체기관이라니...
오츠이치는 이런 상상들을 하면서 공포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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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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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영원한 제자리 걸음일지도 모른다.

눈 오는 날, 눈이 쌓이면 발이 그 속으로 폭폭 빠져드는 것과 같이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인생은 그렇게 제자리에서 폭폭 빠져가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여러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가족들은 세상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하다.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 속에서 그려지는 떠난 아이가 남긴 물음표를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반쪽 가족들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성의 인연]에서처럼 추리소설 탐문하듯 밝혀내야할 비밀을 가진 가족들, 소설 [애자]에서는 이별앞에서 화해하는 가족이었고, 박선희 작가의 [파랑치타가 달려간다]에서처럼 간섭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편하게 그려진 가족도 있었다. 어느 글에서는 유쾌하고, 어느 글에서는 잔인하며, 또 어느 글에서는 애잔함이 묻어나는 이 "가족"이라는 이름.

 

전작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정이현 작가라면 분명 매혹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끌고 오지 않았을까라는 다소 로또적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바로 정글짐 속에 던져졌다.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라고 출사표를 던진 작가의 굳은 결의와 다짐을 그냥 지나쳤던 결과였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처럼 김상호의 가족들을 위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묘했다. 그 가족들은 마치 천조각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듯 함께 하고 있지만 따로따로인 느낌을 주는 가족이었다. 중국을 오가며 장기를 밀매하는 가장 김상호, 사랑하는 남자를 따로 두고 바람을 피우면서 사는 부인 진영옥,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의 원조를 바라는 전처 소생의 은성과 늘 자살충동을 느끼는 누나에 대해 무덤덤해져버린 동생 혜성, 그리고 오늘의 사건을 낳은 사라진 딸 유지.

 

유지는 김상호와 진영옥의 딸이자 혜성과 은성의 이복동생이다. 하지만 유지는 보통 드라마에서 등장하곤 하는 갈등의 해결요소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이 가족은 법적인 서류상에서는 다닥다닥 붙어 있더라도 감정적으론 아무도 이어져 있지 않다. 세상엔 이런 가족도 있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가족 구성원은 이렇듯 독특했다.

 

그리고 유지는 어느날 사라진다. 유괴인지 가출인지 모를 사라짐. 그리고 가족들은 각자 의심가는 용의자가 너무나 많아서 섣부르게 경찰을 부를 수도 없다. 아이리스 요원들로 사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은 살면서 너무나 많은 적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눈물로 호소하거나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궁금하게 만드는 무엇. 작가는 소금밭을 거닐 듯 따꼼따꼼하게 읽도록 만들어 두었지만 설탕같은 결말을 기대하지 않아도 만족스럽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상을 삐뚤어지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삐뚤어진 세상을 그저 두 눈으로 산 위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이랄까. 작가는 또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우리에게 손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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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의 기적
마르코 레이노 지음, 이현정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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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누구도 크리스마스만을 위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365일 중에 단 하루, 그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다. 산타클로스.
어린 시절엔 그를 믿다못해, 꾸벅꾸벅 졸면서도 기다리곤 했는데, 어른이 되면서 그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졌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산타클로스를 우리곁으로 다시 데려다 주었다. 

잘 있어, 우리집!!
어린 니콜라스가 집을 떠나게 된 이유는 혼자 남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곱 살 인생에 니콜라스는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바다는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는데, 하나는 아름다운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잔인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바다의 잔인함이 니콜라스의 가족을 삼켜버렸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동생 아다까지.

아주 작고 가난한 어부 마을, 크로바요키.
삶이 넉넉치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번갈아가며 니콜라스를 1년씩 돌보기로했다.  마을사람들은 니콜라스를 사랑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크고, 제일 사랑하는 것을 잃은 니콜라스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1년을 머물던 집을 떠나게 되면서 니콜라스는 그 집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초가 되어 그는 매년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만들었고, 그 선물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 앞에 전달되었다. 이런 니콜라스를 도운 사람이 함께 살게 된 이사키 아저씨였다.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니콜라스와의 생활로 달래고 있었다. 슬픔이 그들을 가족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니콜라스가 떠났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이들에게 배달된다. 그의 따뜻한 마음과 정신이 남아 마을에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코르바요키 마을 전체가 니콜라스의 가족이 되어 있었다.  유년시절 우리 곁을 떠났던 산타클로스는 이렇게 어느새 우리 마음 속에 되돌아와 있었다. 따뜻한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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