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연인 1 - 엘리자베스 1세
필리파 그레고리 지음, 윤은진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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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 잉글랜드의 가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 많았던 한 여자는 죽고, 한 많았던 다른 여자는 여왕이 되었다. 
봄 꽃에 벌들이 날아들듯 그녀의 주변에 모여들었던 남자들. 권력과 외모 그리고 힘을 가진 그들을 물리치며 꿋꿋히 싱글 퀸이 되기로 결심을 굳혔던 엘리자베스.

영화 [엘리자베스]를 보면서 그 칙칙한 화면과 음산스러웠던 날씨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왕이 되면서 얼굴에 하얗게 납칠을 하고 나타났던 그녀의 슬픈 얼굴도. 

영국왕실의 고대사를 소재로 삼아왔던 필리파 그레고리에게 엘리자베스 여왕은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조선의 장희빈처럼 언니의 남자나 다른 여자의 남자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이용해 왔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누구하고도 결혼하지 않았다. 달콤하게 소설을 써 오던 필리파가 이번 엘리자베스에 이르러서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배신자 로버트 더들리. 모든 여성들을 꼬실 수 있었던 바람둥이 그는 여왕의 목표로 하고 있으면서도 여왕 주변의 여성과 밀회를 즐기는 등의 대담성을 보여왔다. 아내가 있으면서도 최고 권력자의 부군이 되기를 탐한 그의 권력욕. 자신의 집안이 몰락한 이유가 그 탐욕에 있었는데도 그는 역시 더들리 가문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얻지 못하는 자로 전락했다. 

여왕과 신하가 사랑에 빠졌지만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영리한 여자였다. 결코 착한 여자가 아니면서 그녀는 나쁜 여자인 평판을 즐겼다. 나라를 위해서 스스로를 위해서, 과거 그 끔찍한 곳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그녀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동정심이 일지 않는다. 그녀를 미워하게 되지도 않는다. 처세에 강하고 현명했다는 판단밖에 들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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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스페셜 에디션 1
김진 지음 / 이코믹스미디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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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장편소설 바람의 나라. 만화나 게임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사실 원작이 완결되기를 기다렸던 작품이었다. 중간에 읽기를 그만두었으니 완결되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결말이든 역사적인 암울함을 이미 알고 있으니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연이 죽으면서부터 사실 이 이야기는 빛을 잃었다. 


처음 이 만화를 접했을 때가 중학생때였던가...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름다운 꼬맹이 신랑신부가 그려진 브로마이드가 탐나서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만화잡지를 사러 갔었던 기억이 있다. 결국 방에 커다랗게 붙여놓았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던 기억도 함께 하고 있다. 역사의 반은 밝혀진 것에 있고 그 나머지 반은 상상 속에 있듯이 그들의 역사도 그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적절했던 그 가슴 시린 제목 "바람의 나라"는 감수성 예민했던 중학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애절했던 무휼과 연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햄릿처럼,리어왕처럼 대물림 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의 아비와 아들의 삶. 그들은 닮아 있어 어울릴 수 없었고 또한 다르기 때문에 이질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은 무휼의 하나밖에 없는 아내지만 정식부인이 아니다. 그녀는 차비로 들어왔다. 고구려태자인 무휼의 정비자리를 부여출신의 공주 연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정략결혼이었지만 열살이 조금 넘은 아이들에겐 그 이면의 의미보다는 그저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다쳐서 돌아오는 무휼을 어느새 사랑하게 되어버린 연에게 궁의 생활은 좀처럼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런 것이 언제나 아들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보이는 시아버지 유리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모수와 유화의 자식으로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뱃속의 자식 유리에게 부러진 칼날만을 남긴채 찾아오라고 이르렀고 세월이 흘러 그를 찾아간 유리는 아비의 처, 소서노의 두 아들을 제치고 왕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왕이라는 자리에 위태로움을 느껴야했고 스스로 강하고 엄격한 왕으로 거듭났다. 왕좌를 탐내는 이들을 제거하는데는 아들이라도 스스럼이 없었다. 그의 망상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큰 아들 도절태자는 약으로 자결하였고, 둘째 아들 해명태자는 졸본에서 죽으라 명을 받고 자결하였고, 어린 아들 여진은 비류수에 빠져 익사하였다. 


바람의 나라는 여진이 비류수에 빠져 죽는 날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아비의 마음과 왕의 마음, 이렇게 두개의 마음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으며 갈등의 시작과 파국의 시작을 동시에 알릴 수 있는 좋은 시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블랙홀에 빠져들듯 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상권은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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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성경 1
리하르트 뒤벨 지음, 강명순 옮김 / 대산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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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덱스 기가스는 "거대하다"는 뜻의 그리스어지만 <악마의 성경>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큰 중세의 필사본인 이 책은 남자 혼자 들 수 없는 무거운 무게로 600쪽 이상의 당나귀 피지에 새겨진 내용이라고 했다. 160마리의 당나귀의 희생으로 완성된 이 책은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원했던 것일까. 소설은 악마의 성경으로 인한 살육의 현장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1572년 보헤미아의 허름한 수도원에 감추어진 <악마의 성경>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고 도둑의 어린 아들이었던 안드레만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비의 헛된 욕망으로 인해 이미 가정을 잃은 아이는 비참하게 성장했고,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왠만한 백과사전 만큼이나 두꺼운 <악마의 성경>은 가공인물과 실제인물을 나눔으로써 혼선을 비켜가려고 하고 있었다. 아그네스,욜란타,자밀라,키프리안, 안드레이 등등은 작가의 상상력 안에서 탄생된 인물들이었고, 멜키오르,루돌프 2세, 마르틴 코리트코,헤르난도 니노 데 구에바라, 루투비히 폰 마드루초, 우르바노 7 세, 인노첸시오 9세 클레멘스 8세 등등은 실존 인물들이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악마의 성경>또한 현존한다는 사실이다. 악마가 하룻밤 사이에 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이 중세의 필사본으로 인해 이 소설은 탄생된 것이다. 

1편에서는 사건의 얽힘과 등장인물들이 엮이는 정도로 끝나고 있다.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한 줄로 줄거리를 압축하자면 그렇다. 2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사건의 전말과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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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성경 2
리하르트 뒤벨 지음, 강명순 옮김 / 대산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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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악마의 성경 스스로 인간에게 해를 끼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 인간들의 마음을 움직여 서로 죽이게 했고, 상하게 했고, 대립하게 만들었다. 결국 악마가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닐었을까. 그가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 악마는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수도원에서 대학살이 일어나고,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었던 일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지만 1572년 마지막으로 무역 행상을 떠났던 니콜라스 비간트에겐 시작인 일이 되어 버렸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아이를 하나 입양하기로 했고 입양된 여자아이로 인해 그는 행복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정 파탄이 일고 있었다. 

그 아이는 살아남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검정색 옷의 수도사들과 열 명의 프랑스 여인과 아이들의 대량 학살 속에서. 그 속에서 탄생한 아이였기에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그에게 전해졌고 그는 그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나갔다. 세월이 흘러 아그네스가 사랑에 빠졌을 때도 니콜라스는 그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딸을 보호하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아그네스와 사랑에 빠진 키프리안과 욜리아와 사랑에 빠진 안드레이. 그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또 하나의 소년 안드레이와 키프리안은 각각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의기투합했고 그들은 <악마의 성경>을 쫓아 수도원으로 향했다. 

사랑하는 욜리아를 잃은 안드레이와 아그네스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키프리안 그리고 다시 자행되는 어긋한 믿음을 가진 수사의 광란. 이 모든 것이 진압되고 나서 남은 것은 사랑과 가족이었다. 

사실 악마의 성경이 좀 더 지독하고 사악한 내용이길 기대했다. 악마의 성경이 전면에 나선다든지, 다빈치 코드처럼 쫓고 쫓기는 긴박한 사건의 연속이 되기를 기대했다. 방대한 양에 비해 소설은 스릴있는 추적을 허락하진 않았다. 그점에서 기대했던 재미는 살짝 떨어졌으나 악마의 성경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던 책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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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3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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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라는 요시오 할아버지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슬프게 만든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범인인데, 오히려 피해자의 가족들이 더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그런데 범인의 동기는 "그냥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아주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때때로 이토록 신랄하고 공포스럽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아낸다. 살인극을 연출하고 공범을 제거하고 그것도 모자라 친절한 관찰자인양 책을 써내고 선량한 얼굴로 인터뷰를 하면서 즐기는 살인자.  유족들의 마음을 이용하면서도 죄책감을 갖기보다는 게임을 펼치듯 스토리를 짜내는 사이코 패스적인 범인. 

보통 사건의 범인들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라는 명목아래 그들은 사건을 저지르고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가진다. 하지만 미미여사의 책 속 범인은 다르다. 그는 피해자를 이벤트 참가자로 보고 있으며 그의 시각 안에서는 시청자들은 구경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는 구경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살인 게임을 이어가고 있다. 

놀라고 화나는 것을 넘어서는 무서운 일이 책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3권 분량의 책 속에서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이 범죄자를 양상했나보다는 이 범죄자가 사회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에 경악해야 한다. 단지 책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미미여사는 사회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였다. 

등장인물간의 심리적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가운데 육천매가 넘는 긴 분량의 소설이 오 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며 연재되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애초에 작은 동네에 사는 세 명의 소년들이 그 시작점이었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다. 이 작은 원점에서 작가는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낸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3권을 차례차례 다 읽고 문득 두려움이 일었다. 작가가 말하는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뉴스를 보면 매번 터져나오는 사건 사고들 속에서 우리는 피스와 같은 인물을 발견한다. 또 가즈아키 같은 사람도 살아가고 있다. 신이치나 메구미도 세상어딘가에선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상상에 의한 산물이지만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도 오버랩 된다는 사실. 이 사실이 못견디게 두려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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