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노트 1
폴 크리스토퍼 지음, 임선희 옮김 / 반디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해가 바뀌기 전 댄 브라운의 신작 [로스트 심벌]을 신나게 읽어댔었다. 한 해가 마감되고 있었는데 내겐 그 바뀜을 바라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09년의 결미엔 왜 그리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구해서 보느라고 나는 두 눈이 토끼눈알처럼 빨개지는 것도 모르고 밤낮없이 책읽기에 바빴다.  결국 새해가 되면서 그 동안 지친 눈을 쉬어주여야만 했다.  주인을 잘못 만난 눈에게 한없이 미안함을 느끼면서.

1월의 중순쯤 또 재미난 책을 발견하고 말았다.  출판된지 몇 년 된 묵은(?) 책이었는데, 무인도에서 보물을 발견해도 이만큼 기쁠까. 내게 책들은 그런 존재였다. 사랑받는 존재. 

숨겨져 있던 책이 가리키던 인물은 다빈치였다.  움베르토 에코의 글만큼이나 찰지고 구성진 플롯과 흥미롭지만 역사적 고증이 충분히 반영된 놀라운 명화의 비밀.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그렇게 비밀의 만찬으로 숨겨져 전해내려왔다.  다빈치와 그의 작품에 대해 놀라워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이 또 한 화가의 비밀이 발견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미켈란젤로였다.  제목조차 [미켈란젤로의 노트]인 이 책은 드로잉의 존재가 사람을 죽일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었다.  주변인 몇몇이 죽고 핀은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바티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치체이며 영적인 면에서는 거의 2십억에 가까운 사람들을 통치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 그곳에 누군가가 침입하여 정보를 캐고 있었다. 책이 시작하는 무렵 수녀원을 떠났던 한 아이. 프레데리코 보뜨라고 불리운 아이. 그리고 의문만을 남겨둔채 책은 2권을 향했다.

사실 [미켈란젤로 노트]는 [로스트 심벌]에 비해서 긴박감이 부족하고, [최후의 만찬]에 비해 과학적,역사적 증명이 허술하다. 그래도 2권으로 손을 뻗게 만드는 것은 그 비밀에 있었다. 끝까지 파헤치고자하는 그 비밀에 대한 호기심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켈란젤로 노트 2
폴 크리스토퍼 지음, 임선희 옮김 / 반디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크롤리와 피터의 죽음이후 핀과 발렌틴은 그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헤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연인으로 발전해나가는 두 사람.  중간중간에 암살자인 거짓신부가 찾아다니는 프레드에 대한 단서들이 드러나는 가운데 소설은 갈 곳을 잃어버린 듯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미켈란젤로나 그의 드로잉을 중심으로 썼더라면, 마치 다빈치코드나 비밀의 만찬처럼 그 본질에 접근했더라면 더 재미난 소설이 되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미켈란젤로의 노트에 관한 비밀을 그 시대로 끌고 가서 풀어내면서 역사적 고증을 통한 사실감 있는 역사추리물이 더 흥미를 유발해내지 않았을까. 

이 소설속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라고 작가가 지정해놓은 한 유명 화가의 노트는 방향을 잃었다. 꼭 그의 노트라는 설정이 아니더라도 이 소설은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리. 라 그라지에의 산 지오바니 올로페니오 수녀원에서 자란 프레데이코 보뜨는 1946년 6월 뉴욕에 도착했다. 이젠 60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는 그를 찾고 있는 암살자. 그는 바로 에우게니오 파첼리 즉 교황 피우스 12세의 아들이었다. 교황이 질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였다. 그래서 그는 표적이 되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글감이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렇게만 엮어가든지. 둘 중 하나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이야기가 반감된 이유는 함께 이기 때문이었다. 작가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닐까. 

수채화를 그리다보면 그럴때가 있다. 모자란 듯 해서 붓으로 더 덧칠을 해대면 아예 탁해져버려 수채화 본질의 투명성을 잃는 그런 때. 이 소설의 안타까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마치 후회가 가득해진 수채화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시작은 참 재미있었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템플기사단의 검
폴 크리스토퍼 지음, 전행선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템플기사단의 검]은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작가 폴 크리스토퍼에 대한 기대나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템플기사단이라는 제목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성단기사단 그리고 프리메이슨. 이들은 여러 영화나 책을 통해서도 검증되었듯 대단히 흥미로운 소재거리이기에 그들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일은 마치 추리소설풀이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템플기사단의 검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검이 가지는 중요성은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점층적으로 응집력있게 몰아가는 시간적 추적이 있어야 했는데, 소설에는 그것이 빠져 있었다. 극적인 긴장감과 속도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댄 브라운의 소설에 있었던 그것이 이 책에는 빠져 있었다. 실제로 흥미로울 수 있는 소재였는데, 몇 가지 이유로 이 책은 읽는 동안 약간의 지루함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약간 지루하더라도 캐릭터가 명확하다면 그래도 책은 끝까지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닥터 홀리데이와 페기 블랙스톡은 그다지 매력적인 화자로 와닿지 않았다. 김전일이나 유가와 교수 혹은 인디아나 존스, 로버트 랭던 등은 이야기의 재미를 배제해 두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하나의 브랜드 네이밍 가치를 지닌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이 어떤 사건에 뛰어들든 그들이 빠져드는 사건들이라면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힘. 캐릭터의 힘을 작가는 잊어버린 것일까. 

템플기사단의 검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호기심으로 다가섰다가 약간의 실망감으로 읽기를 끝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발 작가의 다음 작품은 이 두가지 만큼은 재미를 기대할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헌사를 읽으며 생각했다. 이것조차 소설의 일부일까. 아니면 정말 진실함이 묻어난 헌사일 뿐일까. 책의 첫장은 보통 "...에게 바칩니다"라고 간략히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파울로 코엘료는 헌사를 한 장 반이나 작성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 구구절절하게 적어야 했을까. 

헌사를 보면 십 년 전, 영적 탐색을 목적으로 한 순례의 길에 대한 후회가 담겨져 있다. "시간 낭비"라는 단어를 써 가면서. 람이라는 단체를 떠날 생각까지 했던 그에게 마스터는 순례의 길을 추천했는데, 그 길에서 페트루스를 만났다. 그리고 처음의 후회와는 달리 그 깨달음의 의미를 알게 되고 쓴 책이 출판되었을때 페트루스는 연락을 거절했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세월의 힘에 못이겨 연락이 끊긴 것인지는 정확치 않으나 저자는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가 장장 한장반이나 되는 페이지 속에 설명되어져 있다. 그래서 이 헌사가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순례자의 길은 고난와 가난이 함께 하는 길이다. 알고자 떠나는 길이 아니라 깨닫고자 떠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처음엔 그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저 칼을 찾기 위한 목적성 여행을 떠났으며 그것으로 인해 여행길이 내내 짜증스러웠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아주 사소한 결정 하나라도 당신 인생에 관해 다른 사람이 결정하도록 용납할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아내의 말을 빌어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고집스러운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로마의 방랑자"라고 불리는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가는 길, "수상가"라고 불리는 예수의 성묘로 향하는 길, "순례자"라고 불리는 사도 야고보의 성 유골에 이르는 길. 이 세가지 순례길 중에 그는 순례자의 길을 택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온통 검에 대한 생각뿐이었고 그 본질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다. 검은 하나의 결과일 뿐인데,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 길에서 깨달음을 발견해냈다. 순례자의 길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기적에 가까운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의 삶은 같아 보이면서도 결코 같지 않아졌다. 이것은 진실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콘클라베
로베르토 파치 지음, 전영미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conclave. 콘클라베는 "열쇠로 잠긴 방"이라는 뜻이다. 라팅어로, 가톨릭 교회의 교황 선출 선거 방식을 의미하며 선거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곳에서 선거를 진행한다.  이미 콘클라베는 대중들 앞에 많이 드러나 있다. 여러 작가들에 의해 소설화되고 영화화 되었기 때문이다. 굴뚝으로부터 흰연기가 나올때까지 수차례 계속되는 검은 연기의 향연. 그 지루함이 끝나고나면 가톨릭은 가장 지지받는 수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흔히 종교라고 하면 순교와 희생, 봉사를 떠올리기 쉽상이지만 이젠 종교도 정치권력이 배여있는 집단임을 어른이 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모임 속에는 반드시 그 권력구도가 생성되며 종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어른이 되어 있다. 

로베르토 파치의 소설 [콘클라베] 속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가장 희생적이면서 믿음,소망,사랑을 실천할 하나님의 숭고한 종을 뽑는 의식이 아니라 저마다 자신들의 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추기경을 천거하고 반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이래서는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하베무스 파팜이 공표될리 없었다. 

127명의 추기경들이 모두 투표를 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그럴 수 없는 것이 80세 이하의 추기경들이 모이다보니 건강상의 이유를 핑계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인원들도 속출했다. 124명이 투표해 참석했던 11회차 투표 결과도 무산되면서 12회차 투표를 준비하던 추기경들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탈리아에서 교황이 선출되어야 한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해오던 알폰소 체리니 밀라노 대주교나 교회에서 반대하는 마술에 심취한 레오폴드 탄자니아 주교, 회의에 불참하곤 하는 압둘라 조셉 레바논 주교 등등 많은 개성있는 대주교들이 모인 가운데 의견일치의 길은 멀고도 험해 보였다. 

하지만 콘클라베 도중 이상현상들이 계속되고, 결국 투표절차 없이 만장일치로 에토레 말베치 토리노 대주교가 교황으로 선출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기적같은 장면을 상상했었던 것 같다. 투표도 없이 모두의 마음에 신심이 일어 동의하는 장면. 하지만 반대로 그 장면이야말로 글로 읽는 순간 가장 모순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종일관 지루하게 이어지던 콘클라베의 끝이 결국 이렇다니...허무감까지 밀려왔다. 댄 브라운 식의 종미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좀 더 숭고한 결말을 기대했었는데, 역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기에 작품에 대한 실망이 밀려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자로서는 절대 알 수 없을 콘클라베에 대한 좋은 지식들을 이 책을 통해 얻는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상상이 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