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는 숙녀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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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는 숙녀 시리즈' 첫 번째 책은 강렬했다.

추리소설가 나카야마의 여러 시리즈들을 재미나게 읽고 있지만 또 다른 시작인 '비웃는 숙녀' 는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소설인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보다 한결 수위가 높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 인명이 붙여진 제목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는 <비웃는 숙녀>는 왕따를 당하고 있던 '노노미야 쿄코'로부터 시작된다. 뚱뚱하고 못생기고 병약해서 표적이 된 소녀의 왕따는 아름다운 이종사촌이 같은 반으로 전학올 때까지 계속된다. 충격적인 방법으로 왕따를 종식시킨 미치루는 쿄코에게 골수까지 기증해주게 되고 고마움과 동경을 한꺼번에 품게 된 쿄코는 가정폭력과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사는 이종사촌 미치루를 구하기 위해 함께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로부터 10년 뒤, 데이토은행에서 보통예금을 담당하고 있는 '사기누마 사요' 는 동창회에서 학창시절 왕따였던 쿄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재빠르게 재혼해 버린 엄마에게서 일찍 독립하게 된 사요. 철저한 학점관리와 열심히 취득한 자격증 덕분에 현재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넉넉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보상심리로 명품에 홀릭하게 되면서 심한 빚독촉을 받고 있는 상황. 수입과 대출금을 간당간당하게 맞춰나가며 줄타기 중인 현재는 언제나 불안불안하다. 쇼핑을 멈출 수 없는 그녀에게 때마침 달콤한 유혹을 해 온 건 동창 쿄코였다. 그녀로부터 소개받은 미치루가 권한 방법 중 하나는 차명계좌를 이용한 방법. 범죄가 아니다. 단지 적은 금액을 잠깐 빌릴 뿐(p124) 이라며 양심을 저버린 사요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폭주하게 되고......그 결말은 너무나 뻔했다.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또 한번 독자에게 충격을 던져놓는데, 그 대상이 쿄코의 남동생인 '노노미야 히로키'였던 것. 쿄코와 미치루 악녀 콤비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듯했던 예상을 보기좋게 깨부수고 미련없이 싹 다 정리해버렸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무자비하게. 하지만 자신의 손은 더럽히지 않고. 이처럼 읽을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소설은 또 처음이라 이 미친 캐릭터에 진저리가 처질 무렵, '후루마키 오시에'가 등장한다.

 

 

정리해고 된 남편 대신 가정 경제를 책임지게 된 요시에. 소설을 쓰겠다며 집 안에서 룸펜으로 생활하고 있던 남편은 지난 2년간 몇 페이지 쓰지도 못한 채 성인 사이트를 뒤적이고 있는가 하면 갖은 원망만 토로하며 산다. 이런 남자를 믿고 살기엔 미래가 너무나 불안했던 그녀는 직장 동료를 통해 '생활 플래너 가모우 미치루'를 소개받게 된다. 혼자서는 도저히 결심할 수 없었던 선택을 하게 된 오시에.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3천만 엔에서 3억 엔으로 변경한 후 술을 잔뜩 먹여 음주운전 사고사로 위장한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곧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만다.

 

 

찜찜한 사건 속에서 꼭 발견하게 되는 이름 하나 '가모우 미치루'. 경찰은 주목하고 있던 그녀를 체포 해 법정에 세우지만 악마의 속삭임에 홀렸던 모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며 미치루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꼭두각시처럼 놀아났던 일이 분하지도 않았던 걸까. 자신의 잘못도 타인 탓으로 돌리는 인간들이 수두룩한 세상 속에서 왜 이들은 미치루를 감싸고 도는 걸까.

 

 

놀랍게도 이 모든 판이 미치루의 계획이었던 것. 그러니 결말이 권선징악 +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될 리가 없다. 현실에 존재할까봐 되레 무서워진 캐릭터인 미치루가 '이번에는 누구를 어떻게 낚을까(p431)' 썩소를 날리며 1권이 끝나버렸기에 앞으로 계속될 시리즈의 강도는 1권을 능가하리라 짐작된다.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주요 소재로 삼는 일본 추리 소설 장르인 '이야미스'를 좋아하진 않지만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라 읽었는데 학교촉력, 가정폭력, 성폭행, 횡령, 존속 살해, 보험금 살해...소재도 소재지만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을 마치 줄 꿴 인형을 다루듯 이용한다는 점도 읽는내내 마음을 참 불편하게 만든다. 이 시리즈의 끝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다른 시리즈의 주인공들과 어떻게 접목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소개글 그대로 '희대의 악녀'인 미치루에게도 만만하지 않은 적수가 나타나주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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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강영혜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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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카 할머니 시리즈2>엔 멋진 탐정 콤비 둘이 등장한다. 셜록 홈즈나 긴다이치 코스케 같이 '나는야 탐정'임을 공고하는 캐릭터가 아니지만 그들은 툭닥툭닥 대면서도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도쿄 고등법원의 판사를 그만둔 지 16년이 지난 전직 판사 시즈카는 조용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저축과 연금이 있고 건강하기에 그저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그무 번째 여성 재판관인 그녀를 여러 법과대학원에서는 객원 교수로 초청했고 임시 강연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나고야 법과대학 창립 50주년 기념 강연에서 폭발로 인해 숨겨져 있던 시체가 드러난다. 현장에 있던 시즈카와 휠체어를 탄 겐타로는 그곳에서 만나 사건에 얽혀들었다.

 

5년 전 완성된 기념비 속에 묻힌 이틀 전에 죽은 남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이 함께 해결해나가는 사건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노인들만 엮어 금전 사기를 친 '시니어 서포트' 사건과 평생 바르게 살았지만 아들 내외에게 연금을 다 빼앗기고 자꾸만 도둑질을 하다 잡히는 치매 노인 쇼조의 사정, 말년에 연대보증 때문에 가난하게 지냈지만 금슬이 좋았던 노부부의 갑작스러운 죽음, 수술자국 없이 봉합 상처만 남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고사까지....겉으로보기엔 참 다른 두 사람이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줄 때만큼은 의기투합해서 젊은 수사관들보다 바쁘게 사건을 풀어나가는 모습은 되레 시원시원하기까지 하다. 경험과 연륜에서 묻어나는 지혜와 인맥이 총 동원되어 풀려나가는 사건들과 부조합 같은 콤비의 케미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

 

깐깐하게 모든 일을 처리해 온 80세 전직 법관과 법과 말보다는 욱하는 마음 그리고 추진력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뚝심있는 할아버지 ceo는 겉과 달리 속은 좀 닮아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버릴 만한 일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타인을 돕고자하는 마음, 사회의 잣대가 아니라 양심과 자신만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에피소드를 읽을수록 닮은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래서 콤비인가. 싶을 정도로.

 

겐타로 영감의 결말을 안다. 이 작가의 첫 작품 속에서 그는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다른 시리즈 안에서나마 제멋대로 같지만 할 말 다 하며 사는 통쾌한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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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어느 날 - 기댈 곳 없는 사람과 갈 곳 없는 고양이가 만나 시작된 작은 기적
11월 지음 / 아라크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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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고양이도 폭력엔 상처받기 마련이다. 매맞던 어린 아내가 아이 셋을 낳고도 이혼을 생각했다면....속으로 얼마나 곪았을지....문장 하나에도 이렇게 가슴이 아려온다. 무엇보다 가족의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그 이중 상처는 보지 않아도 불보듯 뻔한 일 아닐까. 어떤 연유로든 때리는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말한 가족을 이해하긴 힘들지만 다행스러운 건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가.

 

그리고 거짓말처럼 어느 날, 버려진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쩌렁쩌렁한 위자료를 받은 것도 아니요, 아이들까지 도맡아야했던 녹록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묘연이 닿아 집사가 된 저자는 이제 두 고양이를 반려중인 집사다.

 

안락사 될 수 있다는 말에 차마 보호소로 고양이를 보내지 못했다는 그녀 곁에 남게 된 '감자'.

동물병원에서 고양이 목의 목걸이를 발견하곤 연락처로 전화했지만 몇 다리 건너, 건너 가게 되면서 결국 버려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마지막 보호자에게 연락했으나 끝내 통화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남겨졌다.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 곁으로.

 

'책임비 3만 원'에 데려 온 보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연탄난로가 있고, 신문지를 대충 찢어 만든 화장실이 있으며 아기 고양이가 방마다 바글바글했던 곳. 그날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저자는 '보리싹처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라' 는 염원을 담아 고양이의 이름을 '보리'라고 지었다. 회색빛의 예쁜 고양이 보리가 내 고양이(마요마요)를 닮아서일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상처 입고 불행한 사람일수록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절망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애도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서야 비로소 견딜 수 없는 모든 것을 거기 두고 돌아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p68

 

 

조용한 감자와 수다스러운 보리는 찰떡궁합은 아니었지만 나름 가족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같이 잠들기도 했다가 금새 툭닥툭닥 싸우기도 하고, 또 각자의 자리에서 잠들기도 하면서.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고백하는 집사에게 하루하루 위안을 선물하며 사랑받으며 산다. 고양이를 반려하는 집사들은 안다. 저 마음을.

그리고 어느새 수순처럼 내 고양이의 이쁨, 내 고양이의 귀함을 아는 집사들의 눈엔 척박한 삶을 사는 길고양이들의 삶이 물들듯 스며든다. 저자에겐 이미 죽어 묻어준 이름 없는 고양이부터 모모,나무,두부, 강아지 봉봉이가 있었다. 그녀의 손을 거쳐 현재의 보호자가 보내준 잘 지낸다는 사진들을 보며 함께 기뻐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험한 세상.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케어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게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져도 결국 마음이 더 불편한 사람의 몫이려니....생각하고 구조했던 몇몇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접하게 될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지!!! 이 마음을 알기 때문에 해당 페이지들이 더 특별하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말미에 "하지만 저는 살아남았고 세상 무엇도 그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강해서가 아니라 감자, 보리와 아이들을 지키며 점점 튼튼하게 버티게 되었을 그녀의 오늘을 응원하며 이 표현에 적극 공감꾹을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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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2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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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직지와 관련이 있고 최초 전파자가 고려나 조선에서 왔다라는 의문을 던진 김진명 작가의 <직지> 1권을 읽은 후, 뒷 부분이 궁금해져 바로 펼쳐든 <직지> 2권. 교수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시작된 기연의 조사는 직지에 가닿았고 유럽으로 넘어가 몇몇 장소와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 메모 속 '카레나'라는 인물찾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2권은 예상을 뒤엎고 현시점이 아닌 과거로 돌아가 기연의 상상 속 '카레나'를 생활시키는데......

조선 세종. 신미 대사와 더불어 비밀리에 '한글창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세종대왕은 산 속 숨겨진 작업장에서 양승락 부녀를 만나게 된다. 열일곱의 은수는 아비를 도와 편안한 한글서체를 써 왕을 감탄시켰고 무사히 한글이 탄생하는듯했으나 소설 <직지>는 한글창제에 포커스가 맞춰진 소설이 아니었다. 새로운 글자를 배척하는 인물들과 중국에 빌붙은 자들에 의해 아비는 죽고 딸은 납치되어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러나 세상엔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잡혀간 곳에서도 은수는 양아비 유겸의 비호를 받게 되고 또 다시 위기에 빠졌을 땐 황족 한왕과 북경으로 파견된 베르나스 신부의 도움을 받게 된다. 조선-중국-로마로 이어진 소녀 은수의 운명은 교황 앞에서 금속활자를 만드는 시연을 보임으로써 다시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진다.

조선에도 로마에도 글자와 책을 권력의 도구로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대량출판이 가능한 금속 활자의 등장을 반가워하지 않았는데, 조선에 세종대왕이 있듯 로마에는 쿠자누스로 불리는 철학자이자 신학자, 교수, 천문학자, 법학자.....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성직자가 있었다. 교황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의 인맥과 추진력,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남자. 유럽 최고의 권력과 부를 가진 인물인 그가 은수를 위해 움직였다. 처음에는 그 재능이 무척이나 뛰어나보여서.... 추후에는 아끼는 마음으로....

은수라는 이름 대신 '카레나'라는 이름을 지어준 쿠자누스는 그녀의 뜻에 따라 금속활자를 세상에 퍼뜨리기 위해 벗 구텐베르크를 소개했고 은수에게 전수받은 방법에 자신이 고안해낸 방식들을 더해 10년 만에 1286 페이지 분량의 금속활자 성경 180부를 인쇄했지만 푸스크의 계략에 빠져 성경과 인쇄기를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엔 푸스크의 이름이 아닌 구텐베르크의 이름이 남겨진다.

한편 구텐베르크에게 금속활자 만드는 방법을 전수한 후 침참에 든 은수는 그 방에서 나온 뒤에도 25년간 묵언수행을 하다 세낭크 수도원의 라벤더 꽃밭 외출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사실 그녀가 마지막에 내뱉은 말이 상감마마를 향한 문장이 아니라 쿠자누스를 향한 문장이길 기대했는데....이렇게 또 기대는 엇나갔다.

폴츠, 발트포겔, 율리아나 수녀원장, 에어바하.... 스쳐지나간 과거의 사람들을 뒤로 하고 현대로 돌아온 이야기는 기연이 독일로 날아가 펨블턴 만나면서 결말을 향해간다. 1권에서는 그토록 궁금했던 범인의 존재가 사실 이쯤되니 의미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구텐베르크와 직지를 마무리 짓는 과정에 주목하게 됐다. 구텐베르크를 인정해야 직지의 진짜 가치가 보인다는 말이 반목을 화합으로 이끄는 열쇠가 되어주길 바라며, 아쉬움은 살짝 남았지만 가독성 만큼은 최고인 김진명 작가의 소설<직지> 두 권 읽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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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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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경, 구텐베르크보다 80년이나 앞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고 달달 외웠을 뿐, 그 실체를 본 적도 없고 본래의 명칭이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긴 이름이라는 것도 잊고 살았다. 시험에 나오는 지식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머릿 속에서 삭제되나보다.

 

다시 되새김질 된 건 김진명 작가의 소설 <직지>를 읽으면서부터다. ‘바로 가리킨다’는 뜻의 직지는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상/하 두 권으로 인쇄되었으나 하권만 현존하며 이마저도 타국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중이라고 한다.

 

오래 되었다는 것 외에 어떤 매력이 있어 작가를 프랑스 아비뇽까지 날아가게 만든 것인지는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늘 그랬듯 작가가 던진 의문은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그리듯 점점 크게 번져 ‘정말 어떤 것이 진실일까?’ 궁금하게 만든다. 이번에도 역시.

 

사회부기자인 기연에게 살인 현장이란 인이 박일 정도로 익숙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한 대학교수가 살해된 현장은 너무나 참혹했다. 그 와중에 목에 난 상처는 흡사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린 형상이라 감식반도, 강력반장도 난감하게 만들고 말았다. 누가 ‘라틴어를 해석한 교수를 살해한 것일까?’ 궁금했던 기연은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전형우 교수가 제법 최근에 만난 김정진 교수를 찾아가 어떻게 ‘직지’와 얽히게 되었는지 파악했고 파리행 비행기표를 열심히 알아보다가 살해된 점에 착안해서 파리까지 날아갔다.

 

크게 밝혀진 것은 없었다. 1권 끝까지 범인의 윤곽은 잡히지 않았다.

아비뇽의 교황 요한 22세가 보낸 편지 속에 등장하는 ‘코룸’이 ‘고려’인지, ‘세케’가 ‘충숙왕’인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수도원에 전해지는 이야기 중 동방에서 온 승려 중 한 명이 살해되었다는 것과 이후 근처 수녀원에 바티칸의 추기경이 자주 방문했다는 점이 그녀의 흥미를 끌어냈다. 또 영국에서 만난 작가 펨블턴을 통해 범인이 ‘가톨릭 신자’일 거라는 정보를 전해 듣는다. 여러 모로 수상했던 ‘피셔 교수’.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 ‘카레나’라는 존재. 총 2권짜리 소설이라 1권에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거라 예상하고 읽었건만 한 권을 다 읽는 동안 의문만 여럿 남아 버렸다. 바티칸 수장고 관리신부를 만나면 이 모든 의문이 풀리고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

 

경찰이 아니라 기자와 교수 콤비가 쫓는 건 사실 범인이 아니라 ‘직지를 둘러싼 진실’에 더 가깝지만 2권에서는 명쾌하게 다 풀리길 기대하고 있다. 범인도, 역사적 진실도.

 

처음에 직지심경이라고 기억 그대로 썼지만 책을 읽고서야 올바른 표현이 아님을 깨달았다. 불경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직지’라고 쓰든가 ‘직지심체요절’이라고 쓰는 게 맞다.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바르게 잡히지 않았을 터. 이야기의 재미에 이끌려 소설을 읽었으나 이렇듯 바른 쓰임을 알게 되는 것은 책을 통해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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