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이면 기대되는 게 있다. 신문이다. 토요일 아침에 받아 보는 신문은 평일의 신문에 비해 내용이 풍성하고 재미있다. 특히 신간을 안내해 주는 지면에 흥미를 느낀다.


그 지면에서 내가 사고 싶은 책들을 고르곤 하는데, 그 책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책들엔 인간의 재밌는 심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 난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요즘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도 심리학이다. 인간의 심리엔 말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구석이 있다. 또 상반된 두 가지의 심리가 한 사람 속에 공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들을 나는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다.


이번에 신문에서 내 관심을 끈 책은 <가격은 없다>라는 책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인간의 재밌는 심리를 보여 주는 책들을 골라 보았다. (신문에서 <가격은 없다>에 대한 소개를 읽자마자 다른 책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 물건을 살 때의 심리 1


내 경험에 의하면 이렇다. 백화점에서 내가 고른 스카프가 4만 원이라고 하면 우선 비싸다는 느낌을 갖고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다른 스카프가 6만 원이라고 하면 4만 원짜리 스카프가 상대적으로 싸 보여 그것을 구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 내가 고른 구두가 20만 원이라고 하면 비싸다는 느낌을 갖고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다른 구두가 30만 원이라고 하면 20만 원짜리 구두가 상대적으로 싸 보여 그것을 구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심리를 설명해 주는 책이 있다.  

  


윌리엄 파운드 스톤 저, <가격은 없다>는 “다양한 가격 정책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거기에 얽힌 심리학적 분석들을 보여 준다. 경우에 따라서 ‘가격은 위험한 조작 장치’라는 주장을 편다.” “가격 설정이 중요한 것은, 팔리지 않는 상품이 팔리는 상품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 의하면) 800달러짜리 구두를 팔고 싶다면 바로 옆에 1200달러짜리 구두를 전시해 두면 되는 것이다.” - (조선일보, 2011. 09. 17.) 



 

“가격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 감정은 이제 뇌 스캔을 통해서 눈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상황만 달라지면 똑같은 가격이 할인된 가격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바가지요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격의 변화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포장 용기를 작게 만드는 것, 가격의 끝자리를 9로 맞춰 눈속임을 하는 것 등의 트릭들은 오래전부터 애용되어 왔다. 이제 가격 컨설턴팅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판촉술의 마지막 장에나 나올 법한 수법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최근 심리학에서 아주 중요하고 혁신적인 연구 결과들이 도입되고 있다. 가격을 매긴다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행동 속에서 우리는 마음속의 욕망을 숫자라는 대중의 언어로 바꾼다. 이 책은 이런 전환이 놀랄 만큼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과정임을 밝혀 준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2. 물건을 살 때의 심리 2


로버트 치알디니 저, <설득의 심리학>에 이런 글이 있다.  

 



어떤 부부가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냉장고 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이 그 특정 모델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그들의 표정이나 대화를 통하여 판매원에게 즉각적으로 간파되었다. 그러한 모습을 발견한 판매원은 그들 부부에게 접근하더니 “이 모델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지요? 그럴 만도 하지요. 이만한 기능을 가진 모델을 이 가격으로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지요? 제가 불과 20분 전에 그 모델을 다른 분에게 이미 팔아 버렸거든요. 제 기억으로는 우리 대리점에는 그 모델 재고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부의 얼굴에는 실망의 표정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모델의 재고가 없다는 사실에 그 모델의 가치가 갑자기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때 부부 중 한 사람이 판매원에게 그 모델의 제품을 근처 다른 대리점에서도 구할 수 없는가를 물었다. 이 질문에 판매원은 “글쎄, 혹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한번 알아보지요. 그런데 만일 다른 대리점에서 그 모델의 제품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을 구입하시겠습니까?”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손님들은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들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후, 판매원은 그들 부부가 원했던 모델을 근처 대리점에서 찾았다는 희소식을 전해 주면서 그들 앞에 계산서를 내놓았다. 그들이 원했던 모델이 실제로 구입 가능하다는 소식에 이들 부부는 그 모델의 제품을 구입하고 싶지 않다고 다시금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구입에 대한 의사결정은 이미 이루어졌고 구두로 그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힌 이상, 이제 와서 구매를 취소하기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들 부부 역시 말없이 볼펜을 집어들고 신용카드에 서명하고 있었다. - (로버트 치알디니 저, <설득의 심리학>, 331쪽.)


이와 같은 일은 우리도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희귀성에 너무 큰 가치를 두면 이렇게 된다.



3. 가짜 갱의 심리


고교동창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선배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그 모임엔 상당한 재력가들의 부인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임에 처음 나가게 됐을 때 그들의 겉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재력가의 부인이니 만큼 화려한 옷차림에 명품 가방을 들고 나올 줄 알았던 선배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매우 수수했던 것.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검정색이나 곤색의 정장 차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방도 명품으로 보일 만한 게 없었을 정도로 소박했다고 한다. 그들의 똑같은 옷차림에 대한, 그 선배의 말 한 마디가 압권이다.


“나는 그들만의 유니폼이 있는 줄 알았어.”


실제로 부자들 중에는 의외로 검소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사실 재력가는 재력가임을 사람들에게 나타낼 필요가 없다. 돈 많은 걸 주위에선 다 알 테니까.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부자들의 전형적인 옷차림과 거리가 먼 옷차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짜 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갱들의 전형적인 옷차림과 거리가 먼 옷차림을 할지도 모른다. 이것을 지적한 책이 있다. 정영문 저, <어떤 작위의 세계>라는 책이다.   

 

“그는 갱 흉내를 내며 걸을 때도 약간 갱처럼, 그것도 흑인 갱처럼 걸었고, 바지도 통이 넓은 것을 팬티가 때로는 살짝, 때로는 심하게 드러나게 입었는데, 나는 그가 걷는 모습을 보며 진짜 갱이 아니니까 갱 흉내를 내며 걸을 때도 약간 갱처럼 걸을 수 있는 거야. 진짜 갱이라면 갱 흉내를 내지는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정영문 저, <어떤 작위의 세계>, 10쪽.) - (조선일보, 2011. 09. 17.) 
 

“<어떤 작위의 세계>에는 뚜렷한 플롯이 없다. 이 소설은 표류기에 가까운 체류기인 동시에, '나'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들리는 대로 듣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지 않고 경험한 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관념과 실재가, 사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정영문식 상상의 박물지이기도 한 것이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


4. 자랑하는 심리 

      


버트런드 러셀에 의하면 누구나 자만심이 있다고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적든 많든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가치를 과장하지 않고도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뛰어난 능력을 타고나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가치를 과장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 (버트런드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 304쪽.)
 


피아노를 잘 친다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이 있는 사람의 경우,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다면 굳이 자신의 재능을 떠벌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만약 아무도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과장되게 말할 가능성이 있다.

인기가 많은, 유명한 연예인은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인기에 대해 자랑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 다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별로 인기 없는 연예인 또는 이제 인기를 조금 얻기 시작한 연예인은 연예인으로서의 자신의 존재가치를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자기의 인기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을 가능성이 많다. 
 


* 결론

우리들 대부분은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도 번번이 이런 심리들에 속아 어리석은 모습을 하고 산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그러할 경우엔 그것이 정확히 보이는데, 자신이 그러할 경우엔 그 어리석은 모습을 깨닫지 못한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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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9-2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중간한 것들이 과시욕이 심한 것이 사실이죠."나는 이 정도 산단 말이야. 저 가난뱅이들과는 다르거든!" 하는 심리.그래서 저 구름위의 상류층과 동일시하려고 몸부림치지만 정작 그 상류층 사람들은 중산층의 그러한 얼치기 짓거리를 비웃을 뿐이죠."뭐? 너희들이 우리하고 같이 놀려고 해? 웃기고 있네..." 하면서.

페크pek0501 2011-09-26 19:17   좋아요 0 | URL
"어중간한 것들이 과시욕이 심한 것이 사실이죠" - 맞습니다. ^^^ 어중간하는 것...ㅋㅋ

꼬마요정 2011-09-2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는 어중간하지 않아서 그저 가난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 서글프군요. 심리학 책 좀 읽으면서 얼치기로 배워도 결국 똑같은 것에 당하고 만답니다. 특히 희귀성에 가치를 두는 거 말이죠. 제가 고른 거 남이 손대면 저도 모르게 사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ㅠㅠ

어떻게 하면 안 넘어갈까 그런 거 적어놓은 책은 없나요..ㅜㅜ

페크pek0501 2011-09-26 19:18   좋아요 0 | URL
"제가 고른 거 남이 손대면 저도 모르게 사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ㅠㅠ" - 저도요.ㅋ

"어떻게 하면 안 넘어갈까 그런 거 적어놓은 책은 없나요" - 역시 저도요. ㅋ

신지 2011-09-26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에서 제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생각나네요 ^^

"다음은 어떤 가정에서 엄마와 딸이 나누는 대화이다.

딸 : 엄마 , 내 루이뷔통 핸드백 못 봤어?

어머니 : 못 봤어. 샤넬은 옷장 안에 있던데.

딸 : 샤넬은 저번에 메고 나갔잖아. 오늘은 루이뷔통을 갖고 나가야 되는데.

이 가정은 하류다. 상류라면 절대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상류층 딸이라면 자신의 핸드백의 브랜드명을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브랜드 핸드백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빨간색 핸드백"이란 식으로, 색깔로 구별할 것이다. 상류는 브랜드에 집착하지 않는다. 핸드백이 모조리 브랜드 제품이기 때문에 브랜드 따위엔 흥미가 없다.
(...) 예를 들어 계급 과민성에 걸린 중류가 자동차를 부를 때는 '리무진을 불러주게.''모범택시를 부탁하네'라고 하지만 상류는 그저 '차 좀 부탁하네'라고 말한다. 영어로는 ' Car, please.'다. "

ㅡp120~123, 90%가 하류로 전락한다, 후지이 겐키


페크pek0501 2011-09-26 19:21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오셨네요.

"리무진을 불러주게" - 이것, 재밌는데요.^^^

아주 좋은 이야기를 써 주셨어요. 어떻게 그런 책을 알고 계시는지...
어디에다 저장해 놔야겠어요. 나중에 써 먹게요.

신지 2011-09-26 19:47   좋아요 0 | URL

이렇게 인용한 문장만 보면 상류니 하류니 나누는 게 반감이 들지만 ㅡ 실은 일본사회를 참담한 양극화의 시대가 온다고 진단한 책입니다. '개성적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워드와 엑셀은 다룰 수 있지만 파워포인트는 못 한다....' 등등의 항목에 해당되는 저는 (이 책에 따르면) 신계급 사회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군요.ㅋ ㅡ 가방, 리무진 이야기는 일리가 있는지 친구들한테 얘기했더니 재밌어 하더군요. ^^


페크pek0501 2011-09-26 22:55   좋아요 0 | URL
그런 책이군요. 검색해 보겠습니다.

핸드백이나 차 이름을 말하는 건 벼락부자 스타일일 듯해요. 뼛속까지 부자들은 그렇지 않을 듯하니까요.^^^

2011-09-26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6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9-26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격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눈에 띄어요. 그러게.. 가격표는 안 보는게 상책이예요. ㅎㅎ

페크pek0501 2011-09-26 22:5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럼 쇼핑할 때 가격을 보지 말까요? ^^^ 그럼 최소한 가격표의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의 변화가 없을 테니까요.^^^

순오기 2011-09-27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되는 페이퍼네요.^^
앞으로 심리학이 뜰거라서 올해는 심리학과가 굉장히 높다네요.
심리학과를 꼽고 있던 우리아들, 너무 쎄서 수시를 심리학과 지원하지 못했어요.ㅠㅠ

페크pek0501 2011-09-27 11:29   좋아요 0 | URL
아, 벌써 수능의 계절이 오고 있네요. 그 마음 잘 알지요. 좋은 소식 있기를 바랄게요.

심리학과, 다시 대학 들어가게 된다면(그런 일은 절대 없지만) 심리학 전공하고 싶어요. ^^^

mono 2011-09-27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게 꼭 필요한 것, 내게 꼭 적당한 예산이 기준이 되면 될텐데...쉽진 않죠...
오늘 백화점 가는데 제 마음을 리딩하며 실험해보고 싶네요^^
알라딘 페이퍼 처음 와 봤는데 정말 잘읽었어요.
참, 저 중학교때 실제 재벌집에서 몇일 머문적 있는데 정말, 정말 검소했어요.
낡고 찌그러진 양은 냄비 빼곡한 주방싱크대는 잊혀지지가 않아요.^^

페크pek0501 2011-09-27 11:3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아마 부자들은 돈 많아서 그것만으로도 배 불러서? 사고 싶은 게 없나봐요. 뭐든 살 수 있다면 시시한가봐요.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여유롭게 무엇을 살 수 없으니 더 사고 싶은 것이고요. 원래 하지 말라는 것은(금지된 사랑처럼) 더 하고 싶은 심리처럼...^^^

아이리시스 2011-09-27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시 대학 들어가면 경제학 전공하고 싶어요, 페크님. 페크님따라 한 번 생각해 본건데, 대학원을 가려면 학부과정을 빡세게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공부가 싫어요.ㅜㅜ

있는 척 하지 말아야 겠어요, 아는 척도 말고. 제대로 찔려서 더이상 말을 못하겠습니다.ㅋㅋㅋ

페크pek0501 2011-09-27 21:51   좋아요 0 | URL
저도 대학은 다니고 싶지만 시험을 겨냥한 공부는 싫어요. 지금처럼 맘대로 읽고 싶은 책이나 읽고 사는 게 더 좋아요.

있는 척, 아는 척, ㅋㅋ 저는 잘난 척을 좀 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글 - 자랑하는 심리 - 의 글도 쓸 수 있는 거죠. 경험에 의해 인간을 꿰뚫어 본 거죠.^^^

그래서 요즘 페이퍼를 쓰거나 댓글을 쓰고 난 뒤 한 번 꼭 검토를 합니다. 잘난 척한 게 있나 없나 보려고...ㅋ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제가 아는 것에 대한 글이 있길래 제가 댓글을 길게 쓴 적 있어요. 마치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인 양. 그 다음날 보니깐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하던지... 쯧쯔 모자라, 모자라...^^^)

루쉰P 2011-10-02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0501님의 리뷰를 보면 하나의 주제를 통해 그 속에 정보를 분류 취합하는 능력이 탁월하신 것 같아요. 제가 제일 부러워 하는 능력이죠. ^^; 저도 나름 독서를 많이 하지만 정보 분석과 취합이 잘 되지가 않아요. 정리하다가 한 세월 가 버리거든요. ㅋㅋ

심리 분석은 저도 참 좋아해요. 제 자신을 보지 못하는 병이 있어서 그 병을 고치고자 제 심리를 파 헤치고 싶어하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아요. 전체적 책들이 그런 심리를 보여주는 책들 같아서 참으로 댕기네요. ㅋ

책을 너무 많이 사서 한 1년치 읽을 것을 미리 구입한 것 같은데 이런 심리는 무슨 심리인지? 책만 봐도 배 부르다. 뭔가 책장에 책만 봐도 읽은 느낌든다. 이런 것들은 정신병일까요? 아니면 심리적 문제일까요? 헤헤헤

페크pek0501 2011-10-03 13:3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루쉰님.

분류과 취합 - 이런 것 잘 몰라요.ㅋㅋ 그냥 글감이 생겨 어떤 주제가 정해지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책들이 있어서 한데 모아 보는 것이죠.

1년치의 읽을 것을 미리 구입하는 건, 아마 루쉰님뿐만 아니라 독서광들에게 흔히 있는 현상일 듯해요. 저도 그래요. 책을 사는 속도를 책을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딴 데엔 돈을 아끼면서도 책값은 전혀 아깝지 않아 아끼지 않는 것도 공통점일 듯해요. 그러니 정신병 운운은 하지 마시길...

오랜만에 올리신 글, 잘 보고 왔어요. ^^^

2011-10-03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3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코>를 읽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코>를 읽었다. 코가 긴 것에 열등감을 가진 사람과 그를 보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케노오에 사는, 오십을 넘긴 나이구는 어릴 적부터 궁중 승려가 된 지금까지 내심 코 때문에 고민을 하였다. 코가 특이하게 생겨서다. 그의 코는 길이가 대여섯 치나 되고 가늘고 긴 순대와 같은 모양으로 얼굴의 한가운데에 덜렁 걸려 있는 것이다. 그가 코 때문에 고민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긴 코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 누군가가 코를 떠받드는 도움 없이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또 하나는 코로 인해 웃음거리가 되어 상처 받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상적인 이야기 중에도 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제자가 잘 아는 의사로부터 긴 코를 짧게 줄이는 방법을 배워 왔다. 그 방법이란 단지 뜨거운 물에 코를 데치고, 그 코를 사람들에게 밟게 한다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코는 짧아졌다. 그러나 그의 짧은 코를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비웃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용건을 전하러 왔던 제자들도 얼굴을 들이대고 있을 때에는 참고 있지만, 그가 등을 돌리기만 하면 킬킬거리며 웃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같은 웃음이라도 코가 길었을 때와는 웃는 것이 어딘지 다른 것 같았다. 익숙한 긴 코보다도 익숙하지 않은 짧은 코가 우습다고 한다면 그뿐인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전에는 이렇게 드러나게 웃지 않았었다.”라는 생각을 하며 불쾌했으나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작가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이렇게 정리한다.




- 사람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의 감정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불행에 동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불행을 본인이 어떻게 해서든 풀어 나가면, 이번에는 사람들이 왠지 허전함을 느끼는 심보가 있다. 조금 과장을 해서 말하자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같은 불행에 빠지게 하고 싶은 생각까지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적대감을 그 사람에게 가지게 되는 것이다. - 나이구가 이유를 알 수 없으면서도 왠지 불쾌하게 생각한 것도 이케노오의 승려들의 태도에 이런 방관자의 이기주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 <아쿠타가와 대표단편선>, ‘코’ 55쪽~56쪽, 인덕 출판.




나이구는 섣불리 코를 고친 것이 오히려 원망스러워졌다. 그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어느 날 코가 하룻밤 사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예전의 그 긴 코로 돌아오자 이젠 비웃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후련한 마음이 되었다. 


2. 사촌이 땅을 사면 꼭 배가 아플까


실제로 자신의 코가 흉할 만큼 길게 생겨서 남들이 쳐다보며 웃는 것에 고통을 겪으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 코를 보고 웃어야 할까. 그 코에 대해 위로를 해야 할까. 아마도 그의 코를 보고도 모른 척함으로써 그의 고통을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당신의 코는 그리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난 당신의 코엔 관심이 없다’라는 태도가 가장 좋을 듯싶다.


자식을 잃었거나 배우자와 사별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심리적으로 자신의 불행을 모른 척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불행한 일에 대해 누군가가 위로를 한답시고 먼저 말을 꺼낸다면 오히려 그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는 척해 주길 바라는 경우는 본인 스스로 그 불행한 얘기를 먼저 꺼낼 때에 한하겠다. <코>의 주인공 역시, 일상적인 이야기 중에도 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이란 남의 불행이나 고통에 대하여 적지 않은 기쁨을 느낀다(E. 버어크)는 말이 사실일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남이 불행해진 것 그 자체에 대한 기쁨이라기보다 ‘나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었어.’라는 안도감 때문일 것 같다. 사실 남의 불행 그 자체가 자신에게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떡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불행해진 사람이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게 될지 모른다.


<코>를 읽고 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이것은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한다는 뜻의 말이다. “그 불행을 본인이 어떻게 해서든 풀어 나가면, 이번에는 사람들이 왠지 허전함을 느끼는 심보가 있다.(소설에서)”는 것도 이 속담과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사실일까. 알랭 드 보통(그의 저서 <불안>에서)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를 질투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이 같다고(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라고 한다. 아이스킬로스도 “질투심이 조금도 없이 친구의 성공을 기뻐하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는 한 사람도 없다.”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사촌에 대해 시기심을 갖나 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내가 배 아파도 좋으니 사촌이 땅을 샀으면 좋겠다. 아버지 형제가 일곱이다 보니 내겐 사촌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사업을 하다가 빚만 지게 되어 어렵게 사는 사촌이 내게 돈을 꿔 달라고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너무 큰 액수의 돈을 요구해서 꿔 주지는 못하고 미안한 마음에 그냥 약간의 돈 얼마를 그의 통장에 넣어 주었다. 어느 사촌에게 들었는데, 다른 사촌들에게도 돈 얘기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고 한다. 돈을 꿔 주지 못할 땐 부탁을 하는 사람이나 그 부탁을 들어 주지 못하는 사람이나 참 괴로운 일이다. 그러니 나로선 그 사촌이 잘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런 마음은 친구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사정에 처해 돈을 꿔 달라는 친구를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또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일이다. 돈을 꿔 주자니 그의 어려운 형편으로 보아 돌려받지 못 할 것 같고, 꿔 주지 않자니 인심을 잃는 일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꿔 줄 돈이 없을 때에도 마음 불편하긴 똑같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들이여, 사촌들이여, 땅을 사세요. 제가 배 아파하지 않을 터이니 제발….’   

 

 

..............................................................................  

<책 소개>

내가 읽은 책은 인덕 출판의 <아쿠타가와 대표단편선>이란 책인데, 이곳 알라딘에선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래된 책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책 다섯 권을 찾아 넣었다. 이 책들엔 <코>라는 작품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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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9-2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에서 읽었습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3629

페크pek0501 2011-09-23 16:56   좋아요 0 | URL
까르르~~~ 반갑습니다.

읽으셨군요. '나생문', '덤불 속'이란 소설도 좋은데, 이렇게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하고 놀랐지요. 신선한 충격이죠.

'여름이 갔네'라는 시 좋던대요. 댓글 남기려다가 댓글이 너무 많아 그냥 왔어요. 다음 새 글에다 첫 번째나 두 번째쯤에 댓글을 남기고 말겠어요.ㅋ 여기 다락방님처럼... 그래도 추천은 눌렀다는 것. 우린 또 좋은 글 보면 그냥 못 가죠.^^^

저도 다락방님을 따라해서...

'뜨거운 태양과 함께 여름이 갔어요. 그냥 가기 미안했는지 가을이란 선물을 내놓고 갔어요.' - pek0501 ^^^


노이에자이트 2011-09-2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잖은 무관심은 예의이기도 하죠.장애인들을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시선...그런 시선을 장애인들이 제일 싫어한다고 하죠.그냥 무관심하게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가는 게 더 나은데.너무 키가 작다거나 너무 뚱뚱한 사람을 봐도(코가 너무 큰 사람을 봐도) 그냥 모른 체 지나가주는 게 좋죠.관심이 좋은 게 아니에요.쓸 데 없는 관심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페크pek0501 2011-09-23 16:5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쓸 데 없는 관심, 이게 문제일 때가 많아요.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이고, 이건 곧 미성숙이죠. 우리 모두 잊지 말고 조심할 일입니다. ^^^

잘잘라 2011-09-23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저도 사촌이 땅 사길 바랍니다. 제발~
그리고 저는 그 땅에 집도 짓기를 바랍니다. 정말.
공사를 저에게 맡겨주기도 함께!!!
ㅎㅎㅎ

안녕하세요. 알라딘서재 메인에서 보고 왔어요.
파란 하늘 배경그림이 멋있어서 즐찾합니다.
저는 <코>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1-09-23 23:14   좋아요 0 | URL
환영합니다. 공사를 하시는군요.^^^

알라딘 서재에서 보셨군요. 제가 1위를 다 해 보네요.(살다 보니깐...ㅋ)

파란 하늘, 그러고 보니 제가 그동안 파란 하늘에 글을 쓴 것이네요. 넓네요. 오늘 정확히 본 것 같아요. 왜 전 푸른 나무들과 풍차만 보였는지... 제가 이렇답니다.^^^

좋은 가을 보내세요.(추신, 님의 블로그에 방문한 적이 몇 번 있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리시스 2011-09-23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사는 포핀스님에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저는 사촌이 땅 사는 거 싫어요. 내가 먼저 살래요. 아하하. 펙님도 그렇죠? 앞 페이퍼들은 제가 제일 먼저 보고 추천 누른 기억이 나는데(200번째 글도 보게 해주세요, 응원하면서) 왜 제 댓글 없는 걸까요? 저는 정말 정신이 없어요. 나름 참한데, 알라딘만 들어오면 여기저기 기웃대며 정신을 못 차려요. 펙님, 응원할게요. 혹시 모르고 있을까봐^-^

페크pek0501 2011-09-23 23:40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러셨어요? 저 혹시 몰랐어요.^^^

아직 안 주무셨군요. 아이리시스님도 알랭 드 보통의 책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그의 글을 이 글에도 인용해 썼는데, 리뷰도 쓴 적이 있어요. 앞으로 보통의 책은 다 사서 봐야지, 하고 있어요.

매우 반가웠다는 펙입니다. 닉네임이 펙이 나을까요, 페크가 나을까요?

아이리시스 2011-09-24 00:07   좋아요 0 | URL
아아, 그러면 팩 할래요? 팩?

페크pek0501 2011-09-24 00:18   좋아요 0 | URL
팩은 pack가 되어야 할 것 같으니까, 펙이나 페크가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한 건데, 펙은 좀 세게 보이지 않나요. 그래서 부~드~럽~게 페크 할래요.ㅋㅋ 앞으론 페크로 불러 주세요. 예전에도 이 이름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맘에 들어요. (제가 별 걸 다 묻고 상의하네요. 키득)^^^

아이리시스 2011-09-24 00:47   좋아요 0 | URL
네, 페크 당첨! 펙 보다는 페크가 좋네요. 팩도 좋은데, 오이팩!^^;
페크님, 상의해줘서 고마워요. 부드러운 페크님. 잘자요.^^

페크pek0501 2011-09-24 09:12   좋아요 0 | URL
네, 페크 당첨! 만장일치!... 고맙습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페크가 되길 희망하며...

 



질보다 양이었다 : 그동안 이곳에 백 개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이 103개째로 올리는 글이다.) 언제 그렇게 많은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글을 쓸 땐 몰랐는데 모아 놓고 보니 많은 것 같아 뿌듯하다. 물론 수백 개의 글을 올린 블로거들이 많으니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나’와 비교해서 말하는 것이다. 나로선 백 개의 글을 쓴 그 자체가 놀라운 성과이다.


글이 나아지지 않았다 : 그동안 올린 글을 보니 수작이 하나도 없고 고만고만한 수준의 글들인 것 같다. 쉽게 쓰는 글이라 그런 것 같다. 예전엔 공들여 글을 쓰는 자세로 썼기 때문에 몇날 며칠을 두고 한 편의 글을 잡고 지낸 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면 흡족하게 완성된 글이 있는가 하면 흡족하지 못한 글이 있었다. 그래서 비교적 잘 쓴 글과 잘 쓰지 못한 글의 수준 차이가 컸다. 지금은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가지고 몇 시간만에 써서 블로그에 올리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글들의 수준이 비슷하고, 월등하게 잘 쓴 글이 없다. 그러므로 이곳에 올린 글은 과거의 글과 비교할 때 ‘질’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양’적인 면에서만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질’적인 면에서는 발전이 없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나는 그런 그들을 부러워하며 글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책 읽는 방법 : 한때 책을 들고 살다시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땐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행복했던 때였다. 그런데 요즘은 책을 그 정도로 읽지 못하고 있다. 우선 책을 많이 읽으면 (그때보다 늙었으므로) 몸이 고단하고 눈은 피로하고 체력이 달려 내가 해야 할 다른 일들에 소홀해진다. 공부도 젊을 때 해야 하는 것 같다. 책을 읽을 땐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데 이런 식이다. 소설 한 권, 칼럼집(또는 에세이) 한 권, 심리학 한 권, 시집 한 권 등을 정해 놓고 하루에 두 시간은 이 책을, 두 시간은 저 책을 읽기도 하고, 오늘은 이 책을, 다음날은 저 책을 읽기도 한다.  이렇게 네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네 권을 새로 선정해 읽는다. 읽다가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연필로 밑줄을 긋는다. 또 오래 전에 이미 읽은 책을 꺼내 들춰 보는 버릇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어서 가장 좋은 점은 책에서 글감을 발견할 수 있는 점인 것 같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글을 쓰는가 : 그림을 배운 적이 있다. 피아노도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젠 그것들을 할 줄 모른다. 아주 옛일이 되어 버렸다. 이제 글쓰기만큼은 중단하지 않으려 한다. 우선 글쓰기가 즐겁고, 또 한 가지의 재능은 갖고 싶기 때문이다. 꼭 성공을 지향해서도 아니고, 어떤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잘 쓰고 싶다. 그것은 마치 피아노 연주에 취미가 생긴 사람이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 마음과도 같다. 책읽기가 재밌는 한, 나의 글쓰기는 지속될 것이다. 글쓰기가 재밌는 한, 나의 책읽기는 지속될 것이다.    


감사하다 : 이 블로그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연습장인 셈이다. 이 연습장이 없었다면 혼자서 백 개의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 준 ‘알라딘’에 감사하고, 내 글을 읽어 준 방문자들에게 감사하다. 더욱이 댓글을 남겨 주신 분들은 더욱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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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1-09-18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능으로 여기기보다
좋은 삶으로 받아들여
날마다 조금씩
사랑씨앗을
글에 담아 보셔요.

페크pek0501 2011-09-18 11:3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재능이란 말, 부끄럽네요. 사랑씨앗, 기억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된장님은 여러 책의 저자이시더군요. 제가 이렇게 정보에 어둡습니다. 파란여우님과 로쟈님이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묶어 책을 낸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그분들의 책은 구입해 갖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제라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책을 낸 사람들은 다 제 관심의 영역 안에 있는 분들이거든요.

님의 서재에 들어가 보았는데, 댓글을 남기려다가 못썼습니다. 이 쑥스러움, 고질병이죠. 다음에 다시 방문해서 왔다간 흔적을 남기겠습니다.

아드님이 참 잘 생기셨어요. 된장이란 닉네임이 멋지고요.^^^

댓글, 감사 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stella.K 2011-09-1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잘 모르겠는데,
우리 알라딘에선 진실하고, 진지하게 쓰면 추천을 많이 받는 것 같더라구요.
근데 중요한 건, 추천을 받으려고 글을 쓰면 안 된다는 거죠.
꼭 추천이 내가 글을 잘 쓰는 잣대일 수는 없을텐데
아무래도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주객을 전도시키지 않고 열심히 쓴다면 또 어느 땐가는 늘어있지 않겠어요?^^

페크pek0501 2011-09-18 21:18   좋아요 0 | URL
추천 받으려고 글을 쓴다?, 재밌군요.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자극제는 좋은 것 같은데요. 열심히 쓸 수만 있다면요.^^^

이왕 쓰려면 스텔라님의 프로젝트처럼 열정적으로 써야 하는 거죠. 제가 그 열정에 반해 드나들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 능력엔 한 달에 4~5편의 글을 올리는 게 적당한 것 같아요. 그것도 버거울 때가 있고, 딴 일에 정신이 팔리면 아예 못 올린 달도 있답니다.

추천 수가 0인 글도 저는 많아요. 그런데 이 싱거운 후기에 추천을 누르신 분들은 참 인간미 넘치십니다. 설마 이 글이 잘 써서 누르시진 않으셨겠죠. 당신의 말에 공감한다, 열심히 해라, 하면서 힘을 주고 싶으셔서 누르신 듯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알라디너들의 매너는 훌륭한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1-09-1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면서 자신이 더 깊이있고 성숙해진다면 좋겠지요.그런 글이 남들에게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댓글을 통해서도 많은 공부가 되는 것도 사실이죠.

페크pek0501 2011-09-18 21:18   좋아요 0 | URL
깊이와 성숙, 맞아요. 글쓰기는 정신 수양에 아주 좋죠. 그렇지만 그걸 위해서하기보다 일단 재밌으니까 마음이 끌려 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누구나...^^^

댓글에서 저도 많이 배워요. ^^^

달사르 2011-09-1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내 글을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에요. 저는 펙 님의 이 포스팅이 펙 님 방에서 읽는 첫 글인데요. 하하, 반갑습니다. ^^

일기장 같기도 하고, 연습장 같기도 하고, 때론 대화의 장 같은 이 공간의 고마움에 공감!

페크pek0501 2011-09-18 21:23   좋아요 0 | URL

새 손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많이 본 적은 있는 닉네임이네요. 아마 제가 방문한 적도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제 글을 좋아하는 소수의 독자들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으로 만족해요.(너무 속과 겉이 다르게, 폼생폼사 했나요?)ㅋㅋ

페크pek0501 2011-09-1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거운 후기를 쓴 이유 :

이렇게 백 개의 글에서 마침표를 찍고 앞으로 새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이 싱거운 후기를 썼습니다. 200개가 되는 그날을 향해 또 써야죠. 그때도 <이백 개의 글을 올리고 나서>라는 싱거운 후기를 쓰겠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언제 올까요... 오긴 오겠습니까?... 저도 가 봐야 알겠습니다.

2011-09-19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9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09-19 13:15   좋아요 0 | URL
추신 : 아, 님께 감사하다는 인사가 없었네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로 하여금 힘이 솟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또 추신 : 이 자리를 빌어, 이런 싱거운 글에 지지의 뜻을 표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지금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나봐요. 창 밖에 우산 쓴 사람들이 출현했어요... 비 오는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은 오후입니다. 모두,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1. ‘정반대의 마음 작동 1~2’를 쓰고 나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 글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 글감의 주제와 관련된 것들이 자연히 떠오른다.


‘정반대의 마음 작동’이란 글은 홍은희 저, <삶의 시간들>에서 하나의 부부싸움을 보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시각이 정반대인 것을 보고 쓰게 된 글이다. 이 글을 보자마자 내가 경험한 것들이 떠올랐다. 그중 타인에게 오해를 받았던 경험을 써 넣었는데, 쓰고 나니 고등학생 때 금붕어가 죽은 일이 생각났다. 그런데 금붕어 얘기까지 쓰면 글이 길어지고 산만할 것 같아 두 개로 나눠 글을 완성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주제로 하여 쓸 수도 있었는데, 그냥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이상한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나서 한 가지 빠뜨린 게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금붕어 이야기’에서 금붕어가 한 명의 친구가 생긴 것에 대해 반길지 적대시할지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은 나의 실수를 넣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문장을 넣었어야 했다.


“상대의 마음 작동이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원망할 게 아니라 미리 상대에 대해 알고자 노력해야 했다. 가령 금붕어의 경우, 그 금붕어가 새 친구가 생기는 것을 좋아할지 싫어할지에 대해 알려는 노력이 내게 없었다. 책을 찾아서라도 금붕어의 특성을 먼저 공부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글을 고치진 않았다. 그냥 다음에 쓸 때 유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 ‘익숙한 것들을 점검하라’를 쓰고 나서


이 글을 쓸 때 명언을 넣으려고 찾아본 명언 책엔 다음과 같이 딱 네 개의 명언만 있었다. 내가 쓰려는 ‘글의 주제’에 부합하는 명언들만 있었다는 게 신기하였다. 왜 다른 명언은 없을까. 얼마든지 다른 뜻의 명언이 있을 법한데. (여러분도 신기하지 않습니까. 다른 명언이 없다는 것이.)


모든 일은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스위프트)

비관주의는 일단 거기 익숙해지면 낙관주의처럼 편안한 것이다.(아널드 베넷)

아름다움은 곧 애인에게 익숙해져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게 된다.(J. 애디슨)

역경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더 이상 괴롭지도 않다.(클라우디아누스)

- <세계의 명언 2>, 해누리, 369쪽.


3.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의 리뷰를 쓰고 나서


책 제목이 영장류 인간과에 속하는 동물, 즉 인간에 대한 도감이라는 뜻 같다. 별점을 매길 때 네 개의 별표에만 점수를 줬다. 다섯 개의 별표에 모두 점수를 주지 않은 이유는, 나는 재밌게 읽었지만 그래서 이런 책을 또 사 볼 용의가 있지만, 에세이라는 장르에 관심 없는 독자나 인간관찰에 관심 없는 독자에겐 시시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별점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신중을 기했던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해 관찰한 글은 모두 좋아한다. 이 책에 있는 하나의 예를 소개하면 이런 글이 있다. 인간은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슬픔도 모른 채 잔칫집처럼 설치다가 장례식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 주는 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슬픔보다 놀람이 앞서 절절한 눈물을 흘리지도 못한 채 장례식이 끝났다. 문상객들의 밤참은 초밥이 좋을지, 아니면 이틀 연속으로 같은 음식을 내놓기엔 죄송하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했던 장어가 어떨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어서 차분히 울 수도 없었다.”(51쪽)


“유족 되시는 분들은 앉아 계세요.”(52쪽)


“그런 야단을 맞으면서도 방석이 모자라네, 재떨이는 준비했나, 하며 분주히 뛰어다녔다. 아버지는 아마도 저 세상으로 편히 가시지 못했을 것이다.”(52쪽)


그러고 나서 한참 지난 뒤에야 아버지의 슬픔을 느낀다. 나는 이런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에 마음이 끌린다.


4.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를 쓰고 나서


한 작가의 전작을 반 이상 읽고 나면 결국 작가가 어떤 메시지 하나를 독자에게 주고 싶어서 인물을 달리하고 사건을 달리하며 작품을 변형해서 썼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다 보니 비슷한 글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다. 주제는 같으나 다른 표현으로 쓴 글들이 많다. 내가 쓴 글들의 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인간의 일부일 뿐.

인간은 어리석다.

인간은 정확히 대답할 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조차 읽을 줄 모른다.

잘못을 저지르고 살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이것들을 하나로 압축해 표현하면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다’가 된다. 내가 알기로 인간은 불완전하고, 불합리하고, 오해의 왕이면서 착각의 왕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인간은 모순덩어리이다.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어서 독해(讀解)가 불가능한 존재이다.

인간이 독해 불가능한 존재임을 잘 알기에 어떻게든 독해 가능한 존재임을 밝혀 보려는 심리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5. <어느 독서광의 노트>라는 페이퍼 제목을 짓고 나서


독서광?(이건 건방지다), 독서애호가?(이건 길다), 독서가?(이건 밋밋하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 ‘어느 서평자의 고백’이란 글이 있다. 조지 오웰이 서평을 쓰던 시절에 대해 쓴 글인데(그는 서평을 많이 썼다), 난 그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나도 그 제목과 비슷한 이름을 짓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떠오른 게 ‘독서광’이었다. 그래서 ‘어느 독서광의 노트’라고 정한 것이다. 여기에 책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독서광’이라고 써서 블로그에 올려 놓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주 내가 건방을 떠는구나’ 싶어서였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뒤 생각이 달라졌다.


스스로 ‘독서광’이라고 하면 잘난 척하는 것 같아 고치려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독서광임을 나타내는 것이 잘난 척이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잘난 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독서광임을 자랑스러워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그저 책을 열광적으로 좋아할 뿐인데, 왜 독서광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야구광이나 영화광이나 낚시광이나 무엇이 다를까.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어느 독서광의 노트>,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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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디의 다른 얼굴


사람을 잘못 볼 때가 있다. 인품 좋은 사람으로 여겼던 사람이 사기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고, 냉정한 사람인 줄만 알았던 사람이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기도 한다. 또 누군가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가 제각기 다르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사람의 의외성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가까이 지내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서도 의외성에 놀라게 되는 일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으리라.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세계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위인들은 어떨까. 그들에게도 의외성이 있을까.


만약 우리가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 중에 그의 훌륭한 점에 반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외성이 숨어 있다면 우리는 그의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테면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마하트마 간디가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을 했다면 말이다. E. M. S. 남부디리파드 저,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이란 책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인도의 대표적 좌파 정치인인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간디의 또 다른 얼굴을 조명한다.

 


“간디는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이자 구심점이었으며 비폭력의 성자로 알려졌지만 완전무결한 ‘성인’이 아니라 문제적 인물, 논쟁적 인물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대중 폭동을 조장하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징병해 사지로 내모는 등 또 다른 얼굴을 가졌음을 (이 책은) 폭로한다.”(일요시사, 2011. 9. 5.)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 인도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징병해 사지로 내몬 사람, 바가트 싱을 비롯해 여러 혁명가들을 서둘러 처형해 달라고 영국 정부에 요청한 사람, 통념과 달리 정치적 목적에 따라 때로는 대중 폭동을 조장하고 방치한 사람,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인도국민회의당 의장이 된 수바스 찬드라 보세에게 압력을 가해 사퇴시키고 결국 쫓아낸 사람. 이 사람은 충격적이게도 마하트마 간디와 동일 인물이다.”(알라딘, 책소개)


우리는 간디가 어떤 사람인지를 간디의 말을 인용해서 쓴 수필, <무소유>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무소유>에서 간디의 말을 인용한 글을 보자.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한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중략)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법정 저, <무소유>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간디는 ‘자기 소유’를 경계하며 개인적 욕심을 모두 버린 삶을 살았다. 그런 간디의 이면의 삶을 보여 주는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이 책은 그의 의외성을 밝히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만든다. 하지만 그 내용엔 놀라겠지만 누구나 의외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엔 놀랄 일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이면을 발견하는 일은 다음과 같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루소는 그의 교육사상을 밝힌 <에밀>을 썼을 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았지만 자신의 다섯 명의 자식을 부양하기 힘들다며 고아원에 버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의 명작으로 탁월한 작가로 평가 받고 있지만 일확천금을 노렸던 도박꾼이었다.


마르크스는 뛰어난 경제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돈을 번 적이 없었다.


2. B사감의 다른 얼굴


현진건 저, <B사감과 러브 레터>라는 소설이 있다. 그 내용을 옮겨 보면 이러하다.


C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B사감이라면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예수꾼으로 유명하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의 주근깨투성이 얼굴은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칠 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B사감이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소위 ‘러브 레터’였다. 여학교 기숙사라면 으레 그런 편지가 많이 오는 것이지만, 학교로도 유명하고 또 아름다운 여학생이 많은 탓인지, 하루에도 몇 장씩 죽느니 사느니 하는 사랑 타령이 날아들어 왔다. 그런 편지는 물론 B사감의 손에 떨어진다. 달짝지근한 사연을 보는 족족 그는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편지를 든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낸다. 이처럼 B사감은 학생들에게 오는 러브 레터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화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을 만나러 오는 남자라면 아버지일지라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내란 믿지 못할 것, 우리 여성을 잡아먹으려는 마귀인 것, 연애가 자유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악마가 지어낸 소리라고 설법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숙사에서 괴상한 일이 벌어진다. 깊은 밤중에 어디선지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겨운 정담과 간드러진 웃음 소리가 들려오곤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한 여성이 학생들에게 온 러브 레터를 가지고 밤마다 혼자서 자기 방에서 연애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괴상한 일의 장본인은 놀랍게도 바로 B사감이었다.


그토록 근엄하게 보이던 그녀가, 러브 레터라면 질색하던 그녀가 러브 레터를 읽으며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B사감 역시 그런 러브 레터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날카롭게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의외성에 주목하게 한다. 
 



 

 

 

 

3. 당신에게도 의외성이 있다

 

나의 친척 중 한 분이 가정에선 가부장적이고 꽤 엄한 아버지인데, 외출하고 돌아오면 씻고 나서 자신이 신었던 양말을 꼭 빨아서 빨랫줄에 널어 놓고 잠자는 습관이 있었다. 술을 마시고 온 날도 그렇다고 한다. 정말 의외이지 않은가. 

잘난 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의외로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 수 있다. 무서움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의외로 겁쟁이일 수 있다.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의외로 보통 사람들보다 더 이기주의자일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의외성을 놓치고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서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남이 잘 모르는 의외성이 있을 것이다.  


간디의 불편한 진실을 통해 이런 생각을 했다. ‘오히려 의외성이 없는 사람이 의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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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11-09-1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혈한에게서 우연하게 츤데레적인 면을 발견하는 것과 성인으로 추앙된 사람이 소시적에 정치적 무뢰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차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기대치의 차이랄까요... 간디가 젊은 시절에 색을 밝혔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얼핏 들은 것 같지만요.

얼마전에 읽은 <현장 서유기>에서 인도에서 당나라로 돌아와 권세를 누리던 현장법사가 많은 법전을 가지고 당나라를 찾은 인도 승려를 (아마도 질투심에서?) 박해해 가난 속에 죽도록 방치했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오점이었다고 한 부분을 읽었는데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페크pek0501 2011-09-15 07:47   좋아요 0 | URL
방문, 감사 드립니다.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나 보군요. ^^^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워낙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한데 묶어 놨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그런 면이 있었어?>라고 놀라게 되는 경우에 있어선 똑같다고 생각되어 의외성으로 묶었어요. 정반대의 두 얼굴이 한 사람에게 공존한다는 게 흥미로워서 이 글을 썼습니다.

간디가 색을 밝혔다?, 퇴계 이황도 그런 얘기가 있는데, 이 글에 넣지 않았어요. 그건 의외성이라기보다 타고나는 것 같아서요. 맞는 말인지도 잘 몰라서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귀찮고 해서요. ㅋㅋ

댓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pkj0624 2011-09-14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잘난척을 하고, 겁이 많기 때문에 용감하려고 하고, 자신이 이기적인 것을 알기 때문에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죠. 우리의 무의식은 자아가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는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페크pek0501 2011-09-15 07:50   좋아요 0 | URL
방문, 감사 드립니다.

<7광구>라는 영화를 보니까, 한 사람이 죽어서 발견되는데, 그 범인을 잡겠다고 칼(이었나?) 같은 걸 들고 소리치며 설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괴물이 나타나니깐 그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며 도망치더라고요. 아마도 범인 잡겠다고 설치는 동안은 무섭지 않았을 거예요. 말하자면 공포를 쫓아내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죠. 저는 이런 사람의 심리가 재밌어요.

"우리의 무의식은 자아가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는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 이것, 좋은 말씀인 것 같네요. 배웠어요. 기억해 놓겠습니다.

댓글 남기는 것, 쉽지 않은 일인데, 매우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9-1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디가 어린 소녀를 좋아했다는 비화는 꽤 오래전에도 알려진 것 같습니다.이순신은 전투가 끝나고 한숨 돌릴 때면 첩을 불러 성교를 했다고 난중일기에도 썼죠.그런데 본부인을 부르진 않았어요.루소는 자기 회고록에 정말 부끄러운 과거사를 다 고백했고...애들을 버렸다는 이야기도 거기에 썼죠.솔직하긴 한데...

페크pek0501 2011-09-15 20:31   좋아요 0 | URL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의 지식과 정보가 많아 사실 글쓰기가 좀 어렵습니다. 님은 책에서 봤겠지만요...^^^

저는 성욕과 정력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서(선천적으로 타고 나서) 인격과 상관 없는 문제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순신은 한숨 돌릴 때 첩이 그리웠겠죠. 그래서 얼굴이라도 보자고 불렀는데, 밤이 되니 안고 싶었겠지요. 그런 것 아닐까요. 따져 보면 강간, 간통도 아닌데 첩을 부르는 건 그다지 잘못된 것 같지 않아요.

또 루소도 집필로 바빠서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어 고민하다가 고아원에 맡겼다면 큰 문제가 아닌 것도 같고...

다만 처음 들었을 때 그런 위인들의 모습에서 실망이 되긴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인지를 의심하게 만들긴 해요.

그런데 제가 갖는 생각은, 사람은 거기서 거기...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아요. 잘 모르겠지만...

추신 : 아, 반가웠다는 인사를 빼먹을 뻔 했어요. 요즘 님을 아주 가까운 이웃으로 생각한다는...ㅋ

노이에자이트 2011-09-15 20:52   좋아요 0 | URL
인간은 그러려니 하면서 적당히 체념하면 좋은데 우리나라에선 위인들을 무결점의 신으로 떠받들다 보니 아주 작은 흠집을 이야기하는 것도 못견뎌하죠.

이순신이 전쟁 중 첩과 거시기했다는 이야기에 여자들은 그럴 수가! 하는 반응이 많더군요.특히 본부인은 놔두고 왜 첩만! 하는 반응들...

서로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로 해요!

페크pek0501 2011-09-15 23:24   좋아요 0 | URL
님이 말씀하신 대로 "인간은 그러려니 하면서 적당히 체념하기"가 좋을 것 같아요. 인간이 '신'이길 바라면 안 되는 일이다, 생각하고요.^^^ 그래서 인간인 게야, 하면서 말이죠...

pjy 2011-09-1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람보는 눈이 별로 섬세하지 못해서 그 사람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오해와 기대로 실망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래도 책 좀 읽고, 인생공부 좀 하니 예전보다야 0.2% 나아지고 있는듯 스스로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1-09-15 23:2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도 님의 서재에 몇 번 들른 적이 있답니다.^^^ 이렇게 방문하신 흔적을 남겨 주시니 무척 고맙습니다.

댓글을 보니, 꽤 바른생활의 사람 같군요. 그런 사람, 좋아합니다.ㅋ

저는 가끔씩 바보짓을 하고 살아서, 삶의 지혜가 늘 부족함을 느껴요. 오늘 놀러온 친구에게 그 바보짓을 얘기하면서, 나 왜 그러니?, 라고 말해줬더니 재밌다며 하하하 웃더군요. 같이 웃었어요. 웃고 날려 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요. 저야말로 인생공부가 많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자주 봐요. pjy님...

글샘 2011-09-1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은 항상 이러할 거라고... 믿는 게 어리석은 건지도 모르죠.
사람은 늘 변할 수 있는 것이고, 그걸 인정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또 사람은 말에 매이고 기억에 매이고 글자에 매이는 어리석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이 몹시 덥습니다. 대구는 아마 무지 덥겠죠? ^^
인디언 섬먼지... 건강하게 넘기시길...

페크pek0501 2011-09-16 23:56   좋아요 0 | URL

저, 서울로 이사왔어요. ^^^ 벌써 1년이 넘었는 걸요.

사람은 늘 변할 수 있다는 것, 맞아요. 그런데 그보다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부분을 상대에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더 관심이 가요.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인데 자신의 눈엔 안 보인 경우요. 예를 들면 친구도 떨어져 살며 가끔씩 만나야 좋은 관계가 되지 만약 한 집에서 기거하는 관계가 되고 나면 많이 싸우게 될 가능성이 많고 그러면서 그동안 몰랐던 단점이 막 튀어나오기도 할 거예요. 그러다가 상대의 의외성에 놀라게도 되겠죠. 그만큼 우리는 누구에 대해서든 잘 모르고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반대의 두 얼굴이 한 사람에게 공존하는 게 신기해서 이 글 썼어요.

그런데 글샘님은 매우 오랜만에 방문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무척 반갑군요.

글샘님도 잘 지내시길... 시 감상이 하고 싶을 때 님의 서재에 들르고 있습니다.


미단 2011-12-0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외성...정도로 묶을 수 있는 이야기는 결코 , 결코,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들어왔습니다. 결코를 두번 쓴 데는 그 만한 이유와 절실함이 있다는 걸, 아시리라...생각하고 이정도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그럼...

페크pek0501 2011-12-02 21:08   좋아요 0 | URL
"의외성...정도로 묶을 수 있는 이야기는 결코 , 결코, 아니라는 말..."- 에 동의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관심 있게 읽어 주신 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