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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홀린 사람은 자기를 홀린 것이 그 사람의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것에 실려 있는 어떤 것,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기운이지,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 자체는 아닌 것이다. 홀림당한 사람은 이성적 판단을 할 줄 모른다. 아니, 홀림은 이성적 판단에 잡히지 않는다. (···) 따라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매력이다.
- 이승우 저, <사랑의 생애>,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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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사랑의 생애>를 완독했다. 위의 글을 읽다가 내가 대학 일년생이었던 과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 앞 다방에서 친구들과 넷이 모여 앉아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 얘기를 나눴던 어느 시간 속이다. 우리는 그때 남학생과 미팅을 몇 번 했던 터라 남자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은 때였다.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것 즉 미팅을 할 때 우리 눈에 어떤 남학생이 멋있게 보이는 건지 우린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 건지 하는 것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러니까 미팅 파트너의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이다. 외모인가? 학벌인가? 성격인가? 목소리인가? 집안인가?

 

 

누군가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저런 얘기 끝에 만장일치로 명쾌하게 내린 그때의 결론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것은 상대의 빼어난 외모도 아니고, 좋은 학벌도 아니고, 호감 가는 성격도 아니고, 성우와 같은 목소리도 아니고, 든든한 백이 있거나 부유한 집안도 아니고 그저 상대가 풍기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는 거라고 단정을 지었다. 다시 말해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가 좋으면 우리가 끌리는 것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우리 나이 고작 스물이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던 풋풋한 스물.

 

 

지금 생각하면 우리를 끌리게 하는 것이 상대의 ‘분위기’인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같은 조건의 두 사람 중에서 잘생긴 사람보다 잘생기지 않은 사람에게 끌리는 경우가 있다면 그 이유를 ‘분위기’로 설명할 땐 제법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에 따라 상대의 외모, 학벌, 성격, 목소리, 집안, 눈빛, 어떤 태도, 어떤 재주, 말솜씨, 지성미, 야성미 등 여러 변수 중 그 어떤 것에 유독 끌리는 게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는 그것들의 총합이 남들보다 월등하여 끌리는 경우도 있겠다. 반대로 초라해 보이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껴 끌리는 경우도 있겠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그의 매력을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어쩐지 그가 좋아.”라고 말할 경우다. 어쩌면 ‘어쩐지’라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큰 매력을 나타내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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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29 1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분위기.
그런데 그 나이 땐 분위기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잘 생겼냐, 못 생겼냐부터 따지지 않나요? ㅎ
암튼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어요.
지금은 우리의 자식들이 그럴 차례니 격세지감 입니다.ㅠ

오늘은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이불도 끌어 덮고 자고.
어떻게 날씨가 이럴 수 있는지 그 또한 신기할 정돕니다.
작년 이맘 때도 더워서 헥헥댔는데.
건강 조심하세요.^^

페크pek0501 2017-08-30 12:46   좋아요 2 | URL
분위기가 좋은 남자를 좋아하는 1인입니다만, 저도 미혼 시절 땐 외모 많이 따졌지요. 마치 그것이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양. 요즘 우리 딸들이 외모 따지는 걸 보니 한심하더군요. 중요한 건 외면이 아니라 내면인데 말이죠.

제가 터득한 바에 따르면 못생긴 사람도 재주 없는 사람도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걸 누가 발견하느냐에 따라 연애가 시작되지요. 이걸 실험으로 외국에서 증명한 일도 있어요. 직장에서 한쌍씩 묶어서 일을 시켰더니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거예요. 정확히 생각이 안 나는데 꽤 높은 퍼센트였어요.
배우들이 남녀 주인공을 맡으면 결혼에 골인하는 것도 그래서일 거라는 추측입니다.

날씨가 어제는 춥기까지 해서 이렇게 여름이 훌쩍 떠날 수 있는 건가, 의아해 했다는...

오늘도 좋은 날씨가 될 것 같습니다. 저녁이면 시원해질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2017-08-29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30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9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실보다는 만화에서 주로 나오는 상황인데, 상대가 불쌍하게 느껴져서 결혼해주는 동정혼이라는 게 있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반 고흐가 가난하고 병든 시엔과 결혼하고 싶었던 이유를 동정혼의 의미로 봤습니다.

페크pek0501 2017-08-30 12:50   좋아요 1 | URL
여자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남자들이 있어요. 예전에 그런 이유로 제임스딘이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가 눈물을 흘리면 안아 주고 싶게 만들죠.
남자들도 여자들의 눈물에 약한 경향이 있는 것 같고...
사랑은 저마다의 빛깔이 다 있어서 다 다른 감정으로 사랑하게 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사랑은 뭐다, 라고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qualia 2017-08-29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게 홀린 사람은 자기를 홀린 것이 그 사람의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것에 실려 있는 어떤 것,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기운이지,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 자체는 아닌 것이다. 홀림당한 사람은 이성적 판단을 할 줄 모른다. 아니, 홀림은 이성적 판단에 잡히지 않는다. (···) 따라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매력이다.
- 이승우 저, <사랑의 생애>, 72쪽.

→ 저는 pek0501 님께서 인용해주신 소설가 이승우의 윗글을 읽고, 인공지능(AI)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궁극적으로 인공으로 만든 유사 지능 혹은 시뮬레이션 지능(simulated intelligence, simulation of intelligence)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더 확신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은 결국 의식을 소유할 수는 없을 것이란 얘깁니다(적어도 근미래 2045년 안팎까지는). 기껏해야 유사 의식이나 시뮬레이션 의식(simulated consciousness, simulation of consciousness) 소유에 그치리라 봅니다. 인공지능이 의식을 지니지 못하는 한, 결국 인간을 모든 점에서 능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다는 것인지 소설가 이승우의 위 얘기를 중심으로 함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두 사람 F와 M이 있다고 합시다. F가 M한테 홀렸어요. 근데 F가 M한테 홀리기 위해선 반드시 F와 M 사이에 어떤 감각적 자극과 반응이 오고가야만 하죠. 즉 F가 M한테 홀렸다는 사실은 F와 M 사이에 어떤 감각적 자극과 반응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함축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감각적 자극과 반응 없이는 그 어떤 의식 작용(예컨대 홀림이라는 의식 작용)도 발생할 수 없다는 인과의 기본 사실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소설가 이승우는 F의 홀림이라는 의식적·심리적 변화를 초래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F 자신은 모른다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즉 당사자 F는 그 감각적 자극과 반응의 구체적 명세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게 소설가 이승우가 윗글에서 얘기하는 요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소설가 이승우의 위 얘기를 분석적 차원에서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F의 홀림을 야기한 감각적 자극(과 반응)의 후보로서 소설가 이승우가 윗글에서 예시한 것을 함 도식적으로 나타내 보죠.

①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것에 실려 있는 어떤 것
②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기운
③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 자체

윗글에서 소설가 이승우는 홀림을 야기한 것은, 좀 더 정확히 말해 홀림을 야기한 감각적 인과 요소는 ①과 ②이지 ③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①, ②, ③ 각각이 정확히 무엇인지 다시 더 세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①은 홀림을 야기한 것이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시각적 자극(물)에 ‘실려 있는’ 어떤 것이라는 얘기인데요. 이게 과연 무엇일까요? 시각적 자극에 실려 있는 것은 더 고차적인 시각적 자극일까요? 즉 더 미묘하고 더 섬세하고 고차적인 통합적 유형의 시각일까요? 그런 유형의 시각이 있을까요? 아니면 시각적 자극에 실려 있는 것은 시각적 자극 이외의 다른 유형의 자극인 것일까요? 위 짧은 인용문만 가지고는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을 듯합니다. 다만 시각적 자극에 실려 있는 어떤 것이라고 했으니까, 시각적 자극이 아닌 다른 유형의 자극이라고까진 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이걸 부정하면 위 문장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순의 악순환에 빠지는 무의미한 문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각 자극과 다른 여러 유형의 자극이 융합되거나 통합된 형태의 복합 자극일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해서 우리가 논의를 명료하게 진행하기 위해 일단은 ①을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일차적이고 개별적인 시각 자극을 중심으로 하지만 다른 여러 유형의 자극들과 융합되거나 통합된 형태의 복합적 시각 자극, 즉 좀 더 미묘하고 섬세하고 고차적인 통합적인 유형의 시각 자극이라고 합의해 보죠. 다음으로 ②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기운’은 더욱더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감각적 자극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촉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직설적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일종의 문학적 표현이랄 수 있는데요. 그래도 감각적 자극의 측면에서 분석을 해보면 단순히 일차적인 시·청·촉·후·미각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에 묻어서 함께 느껴져오는 어떤 감각의 총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즉 뭐라고 딱 꼬집어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감각의 총체를 기운이라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죠. 여기에서도 기운이라는 말에 현혹돼 감각이라는 근본적 인과 요소를 배제하면 애초에 말이 성립되지 않는 무한퇴행에 빠진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③은 말 그대로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 자체’라고 했으니까 일차적인 시각 자극을 직접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우리가 혼란스러움 없이 곧바로 동의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봅니다. 이제까지의 분석을 종합·정리·요약해 말하자면, 소설가 이승우의 얘기는 결국 홀림이라는 의식적 변화 즉 심리적 사건을 야기한 것은 일차적인 감각으로서의 개별적 시·청·촉·후·미각 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그것은 개별적 시·청·촉·후·미각들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좀 더 고차적인 것으로 통합된 감각의 총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가 이승우는 나아가 “홀림은 이성적 판단에 잡히지 않는다. (···) 따라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매력이다”라는 말도 합니다. 홀림에 대한 이런 명제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해 보죠.

④ 홀림은 이성적 판단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⑤ 홀림은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홀림의 의식적 속성을 얘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홀림을 야기한 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차적인 통합적 감각의 총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홀림 자체의 의식적·감정적 측면까지 이성적 접근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죠. 다시 말해 소설가 이승우는 홀림의 감각적 인과 관계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 감각적 인과 관계에 따라 발생한 홀림이라는 의식적 사건의 본질은 이성적(과학적)으론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저 홀림이라는 독특한 느낌이나 감각질(qualia)을 느낄 수 있을 뿐이란 것이죠. 이것은 pek0501 님께서 위에서 얘기한 분위기(일종의 mood)라는 개념에도 거의 동일하게 해당되는 얘기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위에서 말한 인공지능의 한계와 직결되는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공지능(AI)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인공으로 만든 유사 지능 혹은 시뮬레이션 지능(simulated intelligence, simulation of intelligence)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의식과 관련해선 기껏해야 유사 의식이나 시뮬레이션 의식(simulated consciousness, simulation of consciousness) 소유에 그칠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근본적으로 계산(computation, 연산, 전산)을 기반으로 하는 전기전자전산적 체계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의식의 본질에는 다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산은 궁극적으로 의식을 실현(realization, implementation, instantiation, 구현, 예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해서 홀림이라는 본질적으로 의식적인 사건을 인공지능은 파악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으리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pek0501 님의 윗글 중 맨 마지막 단락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끝맺도록 하죠.

《이런 경우는 어떤가? “그의 매력을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어쩐지 그가 좋아.”라고 말할 경우다. 어쩌면 ‘어쩐지’라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큰 매력을 나타내는 것인지 모른다.》

과연 인공지능 AI가 위와 같은 의식적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요? 물론 제가 판단하기에도 근미래(적어도 2045년까지)의 인공지능 로봇은 완벽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어떤 느낌을 느끼고 있는지를 완벽한 말솜씨로 우리한테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의 본질은 유사 지능 혹은 시뮬레이션 지능(simulated intelligence, simulation of intelligence)이거나 유사 의식 혹은 시뮬레이션 의식(simulated consciousness, simulation of consciousness)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공지능 로봇은 튜링 테스트를 충분히 통과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튜링 테스트로는 근본적으로 의식의 소유 여부를 판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뇌의 내부 나아가 의식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선 튜링 테스트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애초에 의식 내부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는 것으로 설정한 테스트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페크pek0501 2017-08-30 12:56   좋아요 1 | URL
qualia 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좋은 글은 댓글로 남기기 아깝지 않나요? 저 같으면 쓰다가 길어지면 페이퍼로 올리게 될 때가 있어요. 님도 페이퍼로 올려 보시길 강추합니다.
님의 댓글을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듯이 언젠가는 로봇을 하나씩 갖고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로봇에게 감정을 심게 됩니다. 그랬더니 나의 로봇과 내 딸의 로봇이 사랑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인간을 위해 복종하며 살아야 하나?‘그러면서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돈을 버는 방법도 알고 있어서 다른 데에 취직을 합니다.
나중엔 로봇이 반란을 일으키며 인간들과 싸우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하하~~ 제 상상입니다. 님의 댓글을 읽다가 생각난 걸 써 봤어요.
긴 댓글,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요즘 날씨가 좋아서(특히 저녁에) 걷는 걸 좋아합니다.
님도 좋은 늦여름을 만끽하시길...
댓글 감사합니다.

한수철 2017-08-29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는 제 기준에는 실패한 소설이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끝까지 읽지 않은 유일한 이승우의 소설이니까요.ㅎㅎㅎ 고루했어연.
농담입니다.
그나저나

이 소설은 남녀의 연애를 뭔가 ‘의고적‘으로 다뤘지요. 즉, 실망스러웠습니다. 제 기준에는 그렇습니다. 예컨대 한국의 이십 대 남녀가 이 소설을 읽는다면 몇 페이지 읽다가 집어던질 거라는 데 전재산을 걸고자 합니다.

아무튼

stellak 님의 댓글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댓글은

약간 기상천외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소설 외적인 이야기를 아무 전제도 없이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저라면 댓글을 달아 주기 너무나 어려울 것 같은데요. 오지랖이라면 실례했습니다. 어쨌거나

이승우의 장편소설 ‘사랑의 생애‘는 좀 별로였다는 생각입니다. 뭐,

그냥 그렇다고요.^^

qualia 2017-08-30 20:47   좋아요 1 | URL
아무튼

stellak 님의 댓글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댓글은

약간 기상천외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소설 외적인 이야기를 아무 전제도 없이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저라면 댓글을 달아 주기 너무나 어려울 것 같은데요. 오지랖이라면 실례했습니다. 어쨌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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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아요. ‘기상천외’는 너무 과한 칭찬의 말씀의 말씀인 것 같고요. 약간 맥락이 벗어난 느낌은 들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저는 pek0501 님의 윗글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이나 감정(emotion, feeling, affect)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요즈음, 인공지능의 의식 소유 여부 논제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라딘 블로그 동네에서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동네에서도 인공지능의 의식 소유 여부 논제에 대한 (댓)글들을 꽤 많이 써올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관심이 아주 고조돼 있던 참이었죠. 근데 딱 pek0501 님의 윗글을 읽게 된 거예요.

pek0501 님의 윗글은 우리 인간 의식의 핵심적인 속성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글입니다. pek0501 님께서 인용해주신 소설가 이승우의 ‘홀림’에 대한 단상뿐만 아니라 pek0501 님의 ‘분위기’에 대한 사유는 인간 의식 혹은 감정의 고유한 속성(property, attribute)이 어떤 것인지, 그런 속성들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떤 독자적 실체인지, 과연 인공지능이나 미래의 앤드로이드 로봇들은 그런 의식이나 감정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식/감정은 지능(intelligence)과 어떤 점에서 다르고 같은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논제들을 논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안성맞춤인 글이라는 것이죠.

함 생각해보세요. 과연 인공지능이, 그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앤드로이드가 저런 홀림과 분위기라는 미묘하고도 독특한, 그 신비로운 의식의 풍요로운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을까요? 단지 기계에 불과하고, 단지 계산이라는 디지털 연산으로 모든 걸 처리하는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저런 인간 고유의 감정과 느낌들을 생생하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자신의 내적 의식 세계의 풍경을, 감정의 섬세한 갈피갈피를 다채로운 의미를 지닌 언어로써 표현해낼 수 있을까요? 그래서 pek0501 님께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교 앞 다방에서 친구들과 옛 추억에 대해 즐겁게 얘기를 나누면서, 미팅 상대 남학생들한테 느꼈던 첫인상을 재미있게 풀어놓으면서 품평회를 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느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고 ‘마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과연 ‘초라해 보이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껴 끌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의식 소유 여부에 대한 논제를 다루는 데 아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들입니다. 위와 같은 질문들로부터 인공지능과 로봇의 의식 소유 여부에 대한 논의와 탐구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의식과 지능 개념에 대한 논자들의 철학적·과학적 입장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 일반이나 지식인 사회에 인공지능에 대한 논제가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흥미를 끄는 논제의 하나로 떠올랐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그런 무성한 논의들이 있음에도 위와 같은 기본적·본질적인 물음들에 대한 논의와 천착은 그닥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느끼고 있던 차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pek0501 님의 윗글을 읽고 제 의견을 써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pek0501 님께 속으로 아주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주 짧게 소설가 이승우의 ‘홀림’에 대한 단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올리려고 했던 것이었죠. 사실 소설가 이승우의 윗글은 매우 애매모호하고 매우 비일관적인 논리의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가의 단상이니까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문학가의 저런 문학적인 글을 논리적 분석의 잣대로 평가하고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격에 맞지 않는 ‘우물에 숭늉’이나 연목구어적인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소설가 이승우의 위 단상은 pek0501 님의 윗글이 그렇듯이 우리 인간 의식의 고유성을 너무나 깊고도 적실하게 드러내는 아주 훌륭한 사례의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인간 추월을 확실한 미래 사실로 맹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확신 혹은 맹신 중 지식(knowledge)이나 지능(intelligence) 분야의 인간 추월 주장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 봅니다. 하지만 의식에 관한 한 인공지능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해서 인공지능이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완전 추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느냐, 적어도 최소한 특이점 도래 예측 시점인 2045년 이전까지는 전혀 불가능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이런 근미래를 넘어 중미래 2099년까지도 인공지능·로봇·앤드로이드 등의 의식 소유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21세기 초 현대 인간의 기대수명을 편의상 100년이라고 한다면, 이 기대수명을 훨씬 넘어서는 150년 이상의 원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실효적·실질적·현실적 의미가 그닥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구체적 시간 설정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고 SF 영화적 공상과 환상을 펼치는 것은 미래 예측으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서 구체적 미래 시점을 밝히지 않고 인공지능·로봇·앤드로이드가 인류한테 반란을 일으켜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는 식으로 막연한 AI 종말론, AI 비관론을 아무런 논거도 없이 주장하는 것은 그 의미나 가치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논증은 그럴 듯하게 제시하지 못하는/않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근거 없는 억측과 강변이 대세인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문 철학자·과학자들 중에는 아주 설득력 있는 논증을 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죠. 해서 저는 인공지능의 완전 인간 추월을 주장하시는 분들한테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묻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인류한테 반란을 일으키고 심할 경우 인류를 멸종시키고 지구 종말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과연 저런 기본적·근본적 물음엔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런 물음에 설득력 있게 답할 수 없다면 그들의 AI 종말론, AI 비관론 주장은 허구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결론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충 이런 생각에서 제가 위 댓글을 써올렸다는 것이죠. 해서 (앞뒤 맥락을 모르는) 어떤 분들한테는 한수철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약간 기상천외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이번에도 쓰다 보니까 또 이렇게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아무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처음 올린 시각 : 2017-08-30 11:47]
[수정해 올린 시각 : 2017-08-30 12:53]
[다시 일부 수정 증보해 올린 시각 : 2017-08-30 20:46]

페크pek0501 2017-08-30 13:03   좋아요 1 | URL
한수철 님.
‘사랑의 생애‘는 저도 실패작이라고 봅니다. 사서 본 것을 후회할 정도예요.
오래전에 읽었던 <생의 이면>이 훨씬 좋았어요. 팬이라서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읽어서인지 실망하며 읽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독한 것은 술술 읽혀서이고 끝에가서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문장 반복과 의미 반복이 많은 것도 흠입니다.
왜 같은 저자의 소설인데 어떤 것은 매력적으로 읽히고 어떤 것은 시시하게 읽힐까요?
저는 저자가 매력적인 사람은 글도 매력적으로 쓸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보니 제 생각이 틀렸지 뭡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읽는다면 유익한 소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 작가의 연애 또는 사랑에 대한 분석이니까, 한 사람의 관점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물론 이것만 읽으면 안 되고 여러 책을 두루 봐야 제대로 연애 또는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7-08-30 13:13   좋아요 0 | URL
qualia 님,

˝근데 저는 pek0501 님의 윗글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이나 감정(emotion, feeling, affect)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기계에 불과하고, 단지 계산이라는 디지털 연산으로 모든 걸 처리하는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저런 인간 고유의 감정과 느낌들을 생생하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자신의 내적 의식 세계의 풍경을, 감정의 섬세한 갈피갈피를 다채로운 의미를 지닌 언어로써 표현해낼 수 있을까요?˝
- 이것에 희망을 겁니다. 로봇이 바둑에서 인간을 이길 순 있어도 인간을 못 따라오는 영역이 있으니 그것은 감정의 영역.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긴 댓글을 쉽게 쓰시는 분들은 저로선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좋은 댓글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qualia 2017-08-31 21:16   좋아요 1 | URL
pek0501 님, 한수철 님, 촌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가 이승우의 작품은 아주 오래전에 읽어본 것 같은데요. 좀 철학적인 취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에서 이승우의 소설이 꽤 읽힌다는 보도도 있었죠. 사실 위에 pek0501 님께서 위에 인용해주신 이승우의 ‘홀림/홀림당함’에 대한 단상은 분석적 잣대로 봤을 때는 매우 불투명한 문장이라고 봅니다. 제가 위 댓글들에서 나름대로 분석은 해봤습니다만, 어떤 일관적 논리성을 포착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소설가, 시인들의 단상 혹은 에세이에 그런 점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소설가나 시인들은 더욱더 그런 논리적 일관성을 벗어나 달아나야겠지요. 혹은 넘어서거나 추월해야 할 겁니다. 저 자신 또한 너무 했던 얘기 또 하고 중언부언하고 동어반복하고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 단계 더 올라서거나 한 단계 더 파고들어야 할 텐데요. 아무튼 그런 (미래의) 계기를 주신 pek0501 님과 한수철 님께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7-09-04 15:31   좋아요 0 | URL
qualia 님, 감사합니다.

청명한 하늘을 만끽하시길...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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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도 지났고 말복도 지났고 뜨거움도 지났다.
끝났다 여름은.

잔향만 남아 앞으로 며칠 더울 순 있어도...


그러니 실컷 봐 두자.
더위 때문에 지쳐서 놓친 아름다운 여름 풍경을.

이 풍경도 곧 지나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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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08-1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딘지 멋집니다.

페크pek0501 2017-08-19 22:12   좋아요 0 | URL
라로 님, 그렇죠?
홍천에 있는 생태숲입니다.
꽃 피는 봄의 풍경도 예쁘지만 저는 푸름이 가득한 여름이 더 예쁘다고 느낍니다.
사진 찍으면서 즐거웠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1.

 

 

 

 

 

 

 

 

 

 

 

 

 

 

 


..........
부대가 지나쳐갈 때 아주 어린 흑인 하나가 몸을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가 내게 보여준 표정은 우리가 예상하는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적대감이나 경멸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시무룩하지도 않았으며 호기심마저 없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수줍은 흑인의 표정이었다. 대단히 깊은 존경이 담긴 표정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이 가여운 소년은 프랑스 시민이라는 이유로 숲에서 끌려 나와 군대 주둔지에서 바닥을 문지르고 매독에 걸리면서도 백인 앞에서 정말 존경심을 느낀다. 백인이 그의 주인이라고 배웠고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흑인 부대가 행군하는 모습을 본다면 어느 백인이든(...)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우리가 이 사람들을 얼마나 더 속일 수 있을까? 그들이 총구를 반대쪽으로 돌릴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 <천천히, 스미는>, 147~148쪽, 조지오웰이 쓴 ‘마라케시’에서.
..........

 

 

나의 코멘트 :

역사가 말해 준다. 잘못된 것은 언젠가는 바로잡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2.

 

 

 

 

 

 

 

 

 

 

 

 

 


..........
도대체 경로석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부터가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노인이 서 있으면 젊은이가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인이 힘겹게 서 있어도 경로석이 아니므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과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대중교통에서 모든 좌석은 당연히 경로석이다.

 

-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137쪽.
..........

 

 

나의 코멘트 :

나의 고정 관념을 깨는 글이다. 난 왜 이런 글을 쓸 생각을 못했을까. 경로석이든 아니든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건 당연한 것을.

 

 

 

 

 

 

3.

 

 

 

 

 

 

 

 

 

 

 

 

 

 


..........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처럼 때로는 자기 자신과도 다르다.

 

- <장언과 성찰>, 51쪽.
..........

 

 

나의 코멘트 :
내가 나답지 않을 때가 있듯이, 당신도 당신답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만 모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다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고 착각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모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갑질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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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6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7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7-08-18 0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 흑인소년 이야기, 팍 꽂히네요
수줍은 존경이 담긴 표정 ㅡ사진전을 둘러 보면 그런 모습 볼 때가 있는데 그들의 선량한 눈빛이 속이는 자를 향한 총구에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진 못했어요~

페크pek0501 2017-08-18 22:48   좋아요 0 | URL
다크 님, 오랜만의 출현이시네요.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그들이 총구를 반대쪽으로 돌릴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표현을 저같은 사람은 할 수 없는지라 이런 게 바로 작가의 문장 기술이구나 생각했어요. 조지오웰은 문장력이 별로 좋지 않다고 평가 받는 작가인데도 말이죠.
같은 뜻을 담은 내용이라도 표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른데 요즘 저는 책 읽으면서 그 맛을 찾는 걸 즐기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신지 2017-08-18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이 사람들을 얼마나 더 속일 수 있을까? 그들이 총구를 반대쪽으로 돌릴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저도 요즘은 매사에 작용이 있으면, 응당 반작용이 있겠구나 싶은데, 조지오웰의 인용문, 강렬하네요. 그러고보니 항상 보관함에 있었으면서, 조지오웰 책은 아직 보지 못했네요.~

페크pek0501 2017-08-18 22:51   좋아요 1 | URL
신지 님, 안녕하세요?
조지오웰은 <1984년>같은 소설도 좋았지만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좋더라고요.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작가 같아요.
저도 조지오웰의 책을 많이 찾아 읽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즐거운 불금은 보내지 있지 못하지만 금요일 밤은 참 좋습니다.
굿 밤 되세요.

한수철 2017-08-18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마지막 코멘트는 아주 뛰어난 아포리즘이네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댓글 남겨 봅니다. 뭐, 기분이 라이트한 금요일 오전이라서요.ㅎㅎ

페크pek0501 2017-08-18 22:54   좋아요 0 | URL
아포리즘... ㅋㅋ 그런 글을 좋아할 뿐 아니라 그런 글 좀 써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영광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랜만에 옛 친구 세 분이 다녀가셨네요.
잊지 않고 찾아 주시니 반갑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자주 좀 보고 삽시다.(저부터...ㅋ)
 

 

 

 

 

 

 

 

 

 


1.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격언은 새가 일찍 일어나서 먹이를 찾았다는 뜻이지만, 벌레 입장에서 보면 일찍 일어나서 죽임을 당했다는 뜻이 된다. 벌레가 어디 숨어서 자고 있으면 죽임을 안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은 부지런해 먹이를 찾고, 다른 한쪽은 부지런해 죽임을 당한다. 이 격언은 주체를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인생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주체를 어느 쪽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시각차’라는 게 생기므로. 

 

 

 

 

 

2.
책상 정리를 하고 독서를 할 것인가, 독서를 하고 책상 정리를 할 것인가? 책상 정리를 먼저 하게 되면 그 일로 에너지가 소모되어 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독서하기 힘들어질 것 같다. 일단 독서를 하고 나서 책상 정리를 하자, 하는 쪽이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걸 맨 앞으로.

 

 

 

 

 

3.
난 여러 권을 병행해서 읽는 습관이 있는데 내용이 헷갈리지 않는 이유는 각기 다른 장르를 읽기 때문이다. 칼럼집, 소설, 에세이, 과학책 등을 함께 읽는 식이다. 만약 문체가 비슷한 작가의 에세이 두 권을 함께 읽는다면 헷갈릴 것이다. 한 시간은 이 책을, 한 시간은 저 책을 읽는다. 어제는 이 책을, 오늘은 저 책을 읽기도 한다. 왜 그렇게 여러 권을 함께 읽느냐? 하고 묻는 이가 있다면 이것에 대한 답은 ‘마음 끄는 책이 많기 때문이다.’가 되겠다. 피자만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스파케티도 먹고 싶고 콜라도 먹고 싶은 것처럼.

 

 

 

 

 

4.
더운 여름엔 미세먼지가 없는 점에 집중하고 미세먼지가 많은 봄엔 덥지 않은 점에 집중하면 좋을 듯하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거꾸로 집중하고 사는 것 같다. 여름엔 더위에 집중하고 봄엔 미세먼지에 집중하고.

 

 

 

 

 

5.
오늘 날씨가 무척 좋다고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늦여름인데 딱 늦여름의 날씨 같다. 오늘 새벽엔 잠자다가 다리가 추워서 이불을 끌어 덮었을 정도로 서늘함을 느꼈다. 서늘함이 느껴지는 여름, 이보다 더 좋은 날씨가 어디 있는가?

 

 

 

 

 

 

...............................................
현재 (즐겨찾기등록: 331명)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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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1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즐찾 꽤 많은데요? 축하합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선선하더군요.
어젠 모처럼 새벽에 자다가 이불을 꺼내 덥고 잤습니다.
앞으로 날씨가 개면 하늘은 보다 더 청명해지겠지요?
가을 다 와서 웬 2차 장마랍니까?
빨리 개었으면 좋겠어요.ㅠㅠ

페크pek0501 2017-08-17 11:49   좋아요 0 | URL
즐찾, 많았졌죠? 백 명 넘었다고 글 올린 적이 있는데...ㅋ

늦여름이 오래 지속되면 좋겠어요. 더운 여름은 싫지만 막상 가고 나서 완연한 가을이 되어 버리면 서운해질 것 같아서요. 오늘은 맑게 갠 하늘이 반갑네요.
고맙습니다.


북프리쿠키 2017-08-16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산샤의 측천무후랑 펄벅의 서태후를 병행해 읽다가 헷갈려서 혼났습니다.ㅎㅎ

꼬마요정 2017-08-16 17:01   좋아요 1 | URL
오호 측천무후랑 서태후 완전 헷갈리셨겠는데요. ㅎㅎ 시대는 달라도 어찌 그리 판박이일까요.

페크pek0501 2017-08-17 11:51   좋아요 0 | URL
북프리쿠키 님, 헷갈림의 경험을 하셨군요.
저는 에세이 두 권을 읽다가 어떤 내용이 어느 책의 에세이에서 읽었던 것인가로 헷갈린 적 있어서 되도록 같은 장르를 읽지 않기로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예외가 있지만요...

재밌는 말씀,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7-08-17 11:52   좋아요 0 | URL
꼬마요정 님도 잘 아시는군요. ㅋ

꼬마요정 2017-08-1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러 권 병행해서 읽는 거 좋아합니다. 이유는.. 이동 중일 때는 얇은 책을 선호하거나 가지고 있는 이북을 읽기 때문이죠. ㅎㅎ

페크pek0501 2017-08-17 11:54   좋아요 0 | URL
저도 얇은 책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있어요. 특히 시댁에 갈 때. 킥킥...
왠지 모르게 책을 가방에 넣어 다니면 목적지가 어디이든 발걸음이 즐거워지기 때문이죠.
한때 두꺼운 책을 분철할까 싶을 때도 있었죠.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cyrus 2017-08-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으면 우연히 새로운 접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다독술의 묘미입니다. ^^

페크pek0501 2017-08-17 11:5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게 다독술의 묘미이군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같은 내용을 저자마다 표현이 다르다는 것도 발견한 적이 있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회계원인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오페레타 공연을 보면서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와 버렸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 다음에 주위를 둘러본 그는 당황스런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자신의 대머리와 목을 장갑으로 열심히 닦으며 투덜거리는 것을 보고 그 노인에게 침이 튀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 노인은 운수성에 근무하는 브리잘로프 장군이었다.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장군의 귀에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만…….”라고 속삭였다. 장군은 “괜찮아요,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는 “제발 용서하십시오. 저는 그저…… 저도 모르게!”라고 다시 사과를 했고 장군은 “아, 앉으세요 제발! 공연 좀 봅시다!”라고 말했다. 휴식 시간에 그는 또 한번 장군에게 사과를 했고, 장군은 벌써 잊어버렸다고 말하며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떨었다. 그는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눈에는 원한이 담겨 있는 걸.’ 하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았다고 여겨져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장군에게 재채기에 대한 해명을 하러 찾아갔다. 장군은 접견실에서 청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는 또 사과의 말을 했고 장군은 그 바쁜 와중에 또 계속되는 그의 사과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 장군은 “여보세요, 날 놀리자는 겁니까, 뭡니까!”하고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그는 그 다음날에도 장군에게 찾아가 사과를 했다. 자신은 잊어버렸다고 말했는데도 필요 이상 반복되는 사과에 화가 난 장군은 급기야 소리를 빽 질렀다. “꺼져!!”라고. 이 말을 듣자 두려움에 질린 그는 속삭이듯 “뭐라고요?” 하고 물었고, 장군은 발을 구르며 되풀이 말했다. “꺼지라니까!!” 이 말을 들은 그는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집에 돌아온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은 채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이것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안톤 체호프의 ‘관리의 죽음’이란 단편 소설이다.

 

 

 

 

 

 

 

 

 

 

 

 

 

 

 

 

 

 

 

 

 

 

 

 


1.
나는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인 회계원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내가 ‘가상 인터뷰’를 해 보는 방식으로 써 봤다.

 

 

물음) 당신은 장군에게 한 번만 사과하고 말면 될 텐데 왜 여러 번 사과해서 장군을 짜증이 나게 했습니까?

 

 

회계원 : 저는 장군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일부러 침을 튀긴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재채기가 나와서 침을 튀기게 되었다고 정확히 말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뜻이 사과할 때마다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여러 번 사과를 하게 되었던 거죠.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여 걱정이 되었습니다.

 

 

물음) 당신은 그 사건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계원 : 그런 작은 일로 제가 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장군이 “꺼져!”라고 말을 하는 순간 독화살을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장군이 한 번 더 “꺼지라니까!”라고 말하자 제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고 공포를 느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소파에 누워 정신을 잃었나 본데 그게 죽음이었습니다.

 

 

 

 

 


2.
이번엔 장군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가상 인터뷰’를 해 보는 방식으로 써 봤다.

 

 

물음) 왜 당신은 회계원이 거듭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꺼져!”라고 화를 냈습니까?

 

 

장군 : 사과를 한 번 했으면 됐지 자꾸 사과하니까 화가 났습니다. 누구나 불쾌한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고 잊고 싶잖아요. 그런데 잊을 만하면 느닷없이 찾아와서 그 일을 상기시키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업무 중 그가 나타나 사과를 할 땐 피곤하게 느껴지고 지치고 짜증이 무척 나더군요.

 

 

 

 

 
3.
공연장에서 재채기가 나와 버린 일로 한 남자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즉 작가는 독자가 무엇을 느끼길 바랐을까?

 

 

내가 느낀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인간은 자기가 손해 본 것을 상기시키는 말에 위로를 받기보다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
- 공포를 느끼는 상상력이란 자신을 죽이기도 할 만큼 위력이 세다는 것.
- 마음의 병을 앓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기도 할 만큼 마음이란 신비롭다는 것.
- 사소한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로 죽을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는 것.
- 서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 서로를 배려할 수 없는 게 어리석은 인간의 심각한 문제라는 것.

- 인간관계에서 소통과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

- 이토록 어이없는 일이 세상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 (공연을 보면서) 지금은 행복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다른 일로)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 즉 행복이란 건 (재채기라는) 작은 일로도 얼마든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 언제 깨질지 모르는 게 행복이라는 것.

 

 

 

*

나중에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면 또 다른 것을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소설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므로.

 

 

 

**
‘단편 소설의 천재 작가’라서 그럴까. 체호프의 단편 중에는 어떤 매력을 가진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 그의 단편을 읽게 되면 반복해서 읽게 되고 또 다른 단편을 찾아보게 된다. 그는 한마디로 흥미롭고 개성이 있는 작품으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다. 지루해서 단편집을 완독하기 어려운 이가 있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여러 단편이 담겨 있는 단편집의 리뷰를 쓰려니까 쉽지 않다.

그래서 하나씩 써서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 리뷰로 올릴 계획이다.

이 글은 그 계획의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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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17-08-0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모파상의 단편이 생각 나네요

페크pek0501 2017-08-04 14:37   좋아요 0 | URL
모파상 단편집, 저도 읽었어요. 오래전에요.
리뷰를 써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하게 되네요.
글로 정리해 놓았으면 리뷰만 봐도 다 기억날 텐데 싶어서요.
첫 댓글에 감사합니다.

cyrus 2017-08-04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 나오는 소설‘을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페크pek0501 2017-08-05 15:30   좋아요 0 | URL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님이라면 충분히 그런 페이퍼를 잘 쓰실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써 보세요.

오늘 무척이나 더워서 혼잣말로,날씨가 미쳤군, 하고 있어요.
책을 읽으면 더워를 잊을 수 있으려나요?
댓글, 감사합니다.

마립간 2017-08-05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소설 3권을 동시에 읽으면서 독서에 브레이크가 걸려 있습니다.

영어로 된 ≪Still Alice≫은 재미는 있는데, 영어라서 빨리 읽지 못하고, ≪백년동안의 고독≫은 무슨 말인지 몰라 빨리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소설의 역할과 감정이입과 공감의 의미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7-08-05 15:2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으음... 저 같은 경우에 동시에 읽을 땐 장르를 달리해서 읽어요. 내용이 헷갈릴 것 같아서요.

제 사견을 말씀드리면 ≪백년동안의 고독≫은 재미없고 지루한 소설입니다. 읽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ㅋ 오래전 이것을 읽었는데 왜 노벨문학상 수상작인지 모르겠더군요.( 수준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요...ㅋ)
인물이 많이 나오고 헷갈려서 도표를 그려 가며 읽었어요. 누구는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는 누구의 자손이고... 뭐 이런 식으로요. 꼼꼼히 읽고 나서 읽은 걸 후회했답니다. 제가 얻은 게 없어 시간이 아까워서요.

은희경 저, <새의 선물>이나 나쓰메 소세키 저, <도련님>, 크로닌 저, <천국의 열쇠>는 다시 읽어도 좋을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집으로는 이문열 세계 명작산책이 10권으로 되어 있는데 저는 그중 다섯 권인가 여섯 권 읽었는데 다 괜찮았어요.
개인차가 있어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어쨌든 마립간 님이 재밌어 할 소설을 꼭 읽게 되셔서 소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비종 2017-08-05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결국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반응을 해석하는 존재인걸까요?

페크pek0501 2017-08-05 15:28   좋아요 1 | URL
그렇죠. 아무리 타인의 시선으로 보려 해도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고 주인공으로 생각되니까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네요... 고맙습니다.

AgalmA 2017-08-22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골이나 도선생 단편도 저런 예가 자주 나오죠. 러시아 소설에서 저런 과도한 정서와 행동으로 인한 몰락을 자주 접하는데 그 나라의 정서인가 관료제 폐해 포착인가 싶죠.

페크pek0501 2017-08-23 14:03   좋아요 1 | URL
좋은 댓글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제가 소설 뒤에 해설서가 있는 출판사의 책들을 보던 때가 있었는데 많은 소설이 잘못된 사회 구조나 관료제 폐해를 지적하는 의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소설에서조차도 ‘인간‘을 보게 됩니다. 인간 측면에서 보느냐, 사회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소설에 대한 느낀점은 달라지겠지요.

님의 댓글을 보니 아마도 체호프가 독자에게 가장 주고 싶은 메시지가 관료제 폐해였던 게 아닐까 생각되는군요.(시험문제에 나온다면 정답이 그거 같아요.ㅋ)
상사에겐 절대 복종해야 하고 어떤 명령도 거부해선 안 되고 심기를 불편하게 해선 안 되는 그런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체호프가 지적한 걸로 보여요. 이런 문화가 개선되어야 최근에 뉴스 거리가 된 ‘아내 갑질‘ 사건이 일어나지 않겠지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도 사회제도나 잘못된 결혼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지만 (자식을 버리고 사랑만을 택한 여인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로 읽을 수도 있어요. 행복이란 사랑만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여러 여건이 맞아떨어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사랑에 올인하는 순간 얼마나 위태로운 삶이 되는지 잘 알 수 있는 소설로 읽어도 손색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안나의 남편의 이중성 또는 남을 의식해서 이혼을 해 주지 않는 남편의 어리석음과, 그 문화도 비판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님의 댓글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어 많이 배웠다고 느낍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주 뵙기를...

AgalmA 2017-08-25 02:45   좋아요 2 | URL
소설의 인물이나 작가도 사회와 괴리될 순 없기 때문에 인간 vs 사회 구도로 나눠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어떻게 구조화해서 보여 주느냐가 더 중요하죠.
비평은 뭐랄까. 학문의 속성이 원래 그런 거지만 경향을 모아 통합해 보여 주려 해서 작품을 다양하게 읽는 걸 방해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게 내 생각과 맞아 떨어질 때 ˝맞아, 그런 거야˝ 정답화 하려고 한단 말이죠ㅎ; 저도 자주 이러죠ㅋ 그래서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맥락, 다른 관점을 제시해 줄 때 정말 기쁘죠.
체호프에 대한 제 인상은 러시아식 부조리였어요. 참 사람 불편하게 하는 걸 잘 끄집어 낸달까. 체호프도 더많이 읽어야 더 종합적인 제 견해로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이쯤에서 끝내야 될 거 같고요^^;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서도 아직 제 관점을 말하긴 섣불러서 뭐라 말씀드리긴 그렇네요.

별말 안했는데 장문의 댓글을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ㅎ;
댓글로 소통할 때도 많지만 오해와 트러블이 생길 때도 많아 요즘은 댓글 잘 안 남기게 돼 댓글 뜸한 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웃 수도 버거워서 북플 들어올 때 마침 만나게 되는 이웃 글을 보는 식이라 자주 못 오는 것도 죄송 말씀 드립니다/ 두루 돌아다니며 챙기는 분들 대단하다니까요ㅎ

페크pek0501 2017-08-27 15:34   좋아요 0 | URL
제 답글이 길 땐 댓글 내용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거나 상대에 대한 호감의 표시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뵙기를, 이라고 써서 제 뜻을 잘 전달했다고 생각했어요.ㅋ

늦여름의 선선함을 집에서 만끽하고 있는 일요일입니다.
좋은 날 되시기를...

긴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