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 수필집」
이 책에서 뽑아 옮겼다.
26. 겉보기 지혜
어떤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합당하지 않다거나 대수롭지 않다고 경멸하고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지혜인 것처럼 보이고자 한다. 어떤 사람은 항상 트집을 잡고 흔히 교묘한 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문제의 핵심을 회피한다. 이에 대해 겔리우스는 “교묘한 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문제의 중대성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자”라 했다.(116쪽)
겉보기에 지혜로운 듯한 자는 어쩌다가 명성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로 이러한 자를 등용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지혜를 가장하는 자보다는 어느 정도 아둔한 자를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117쪽)
116쪽의 겔리우스는 퀴릴라누스를 말함인데 베이컨이 착각해서 잘못 표기한 것이라 한다.(263쪽에 나와 있다.)
27. 우정
벗을 사귀어 얻게 되는 좋은 열매는, 온갖 감정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가득 차고 부풀어 오른 가슴을 편안히 하고 발산해준다는 점이다.(119쪽)
루이 11세도 괴롭도록 말이 없었다. “가슴을 갉아먹지 말라”고 한 피타고라스의 격언도 막연하지만 진실이다. 조금 심한 말이 될지는 모르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는 자는 자신의 가슴을 갉아먹는 식인종이다.(122쪽)
친구의 좋은 충고를 받기 전에 마음이 잡다한 생각으로 뒤얽혀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벗과 교류하고 대화함으로써 이지와 분별심이 분명해지고 정돈된다. 자신의 생각을 더욱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고, 더욱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으며, 생각이 말로 표현되었을 때 훨씬 다듬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혼자서 하루 종일 궁리하는 것보다 친구와 한 시간 동안 담론하는 편이 낫다.(123쪽)
고민이 생겼을 때 그것에 대해 친구에게 말함으로써 해결된 경험이 있다. 이런 점에서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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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기 싫다. 하루를 시작하는 게 귀찮다.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기 싫다. 잠을 청하는 대신 티브이로 시청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더 시청하고 싶다. 앞으로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하는 게 반갑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드는 게 반가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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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을 완독하여 리뷰를 쓰기 시작했으나 미완성에 그쳤다. 실패함.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완독하여 리뷰를 쓰기 시작했으나 미완성에 그쳤다. 실패함.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완독하여 리뷰를 쓰기 시작했으나 미완성에 그쳤다. 역시 실패함. 리뷰를 쓰는 것이 나는 힘들다. 그러니 책을 낸 알라디너들이여, 내가 그대들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섭섭해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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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의 강좌를 함께 수강했던 문우와 나는 여름 학기 3개월간의 강좌를 수강하지 않기로 했다. 더우니까 시간에 맞춰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땀이 나고 나가면서도 또 땀이 난다. 지치기 쉬운 여름 동안 스케줄을 하나 빼고 나니 맘이 편하다. 그런데 그 문우가 주 1회 함께 글을 쓰자고 제안해 왔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찬성했다. 그래서 둘이 요일을 정해서 매주 노트북을 갖고 한 카페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 카페에 도착하면 각자 따로 앉아 글을 몇 시간 쓰다가 집에 가기 전에 둘이 한자리에 앉아 수다 떨다가 헤어지는 것인데, 이미 해 본 경험이 있다. 한 명이라도 뜻이 맞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문학과 철학에 관한 강좌를 1년 5개월 동안 수강했다. 강좌는 시간을 꼭 지켜야 해서 부담스러웠다. 지각하는 날이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지. 그것에 비해 우리 둘이 글을 쓰는 것은 부담이 없다. 낮 12시 전후로 아무 때나 글을 쓰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면 되니까.
카페에서 주 1회 글을 쓰기로 한 건 내게 어떤 큰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다. 강좌를 들으러 가는 날, 운동하기 위해 발레를 하러 가는 날, 독서 모임에 가는 날, 스터디 모임에 가는 날, 장 보러 가는 날, 반찬 만들러 친정에 가는 날, 집안일을 하는 날 등으로 바쁘게 살다가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으면 내가 한가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기분 좋다. 한가한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 카페에 글 쓰러 가는 가장 큰 이유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은 바쁘게 사는 내가 내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