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흐름은 되풀이된다 - 시장의 주기와 추세를 읽는 눈
홍춘욱 지음 / 포르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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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박사의 『돈의 흐름은 되풀이된다』는 반복되는 자산 시장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야말로 투자와 생존의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에 두고 있다. 단순히 경제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되풀이되는 흐름 속에서 무엇을 읽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고 그는 말한다. 이 책은 그런 감각을 기르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한국은 대표적인 수출 중심 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다. 따라서 자산 시장을 분석할 때에도 내수보다 외부 변수, 특히 ‘수출’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한국 시장에서 금리보다 수출의 변화를 주요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수출을 예측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다름 아닌 ‘미국 소비자들의 씀씀이’다. 미국의 개인 소비 지출(PCE)과 시간당 실질 임금 상승률은 한국 기업들의 실적에 선행 지표처럼 작동하며 이는 다시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특히 ‘채찍 효과(Bull Whip Effect)’라는 공급망 이론을 활용해 설명의 설득력을 더한다. 소비 단계의 미세한 변화가 유통 단계를 거치며 증폭되고, 제조업과 자본재 산업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 미국 소비 시장의 흐름을 읽는 것이 곧 한국 자산 시장의 향방을 예측하는 키가 된다는 논리를 구축한다.


이러한 구조는 반도체 산업을 통해 구체화된다. 책에서는 인텔의 공동 창업자 밥 노이스가 주도한 ‘초저가 전략’을 중심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어떻게 ‘치킨 게임’식 가격 경쟁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생산 단가가 미래에 낮아질 것을 감안해 미리 가격을 인하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방식이다. 이 전략은 치열한 기술 투자와 설비 확충을 필요로 하고, 그로 인해 한국의 수출 기업은 항상 높은 실적 변동성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이 역시 자산 가격의 불안정성과 밀접히 연결된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지표와 데이터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심리, 특히 ‘내러티브’가 시장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경고한다. 로버트 실러의 이론을 인용하며, 시장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움직이고, 사람들은 진실보다 감정적으로 매력적인 이야기에 쉽게 휘둘린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책에서는 ‘베어스타운 투자 클럽’의 허상 사례를 통해, 감정에 기댄 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며, 결국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냉정한 대응’임을 일깨운다.


특이한 관찰 중 하나는 미국 소비 지표와 한국 부동산 가격 사이의 연동성이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흐름이 국내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미국 소비가 살아나면 한국의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이는 다시 고용과 임금 증가로 이어져 주택 수요 증가로 연결되는 흐름이 생겼다. 특히 서울처럼 집과 직장이 가까운 게 중요한 지역일수록, 미국 소비가 살아날수록 그 영향이 더 빨리 나타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미국 소비의 둔화 신호가 나타날 경우, 단순히 자산을 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산 구조를 점검하고 상황 변화에 맞춘 대응 전략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주택을 두 채 보유한 사람이라면 ‘똘똘한 한 채’가 아닌 자산의 매도 타이밍을 고려하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돈의 흐름은 되풀이된다』는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닌,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미래를 읽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다. 이 책은 경제학 입문서이자 실용적인 투자 안내서이며 동시에 ‘성실한 공부’가 결국 투자의 본질임을 보여주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매일 읽고, 매일 쓰고, 매일 실패를 복기하며 감각을 기른 홍춘욱 박사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한 사람의 변화 서사이기도 하다.



'포르체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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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정보 통신 버블 붕괴와 2008년 서브프라임 모지기 위기를 예측한 경제학자이자 교수인 로버트 실러는 ‘내러티브‘에 주목하라고 조언합니다. 여기서 내러티브narrative란, 사람들의 귀에 착 달라붙는 허구가 섞인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점은 특정 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확산된다는 점입니다. 내러티브의 힘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유명한 격언이 "친구가 부자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개인의 행복과 판단을 망치는 일은 없다"입니다.
이 격언을 잘 활용한 내러티브가 미국 소도지 베어스타운 투자 클럽의 성공 신화입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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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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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리네 발의 『스물두 번째 레인』은 물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조용히 건져 올리는 소설이다. 사랑과 책임, 상처와 용서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자, 자매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버텨낸 두 사람의 이야기다.

주인공 틸다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영장을 찾는다. 스물두 번째 레인을 따라 묵묵히 물살을 가르며 하루를 견딘다. 어쩌면 수영은 그녀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세 여성이 있다. 언니 틸다, 동생 이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다. 엄마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보다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방식에 더 익숙한 사람. 자식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어느 순간엔 그것을 스스로 망쳐버린다. 다시 잘해보려는 마음은 있지만, 그 의욕은 금세 무너지고 만다. 아마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이 그녀를 다시 끌어당긴다.

틸다는 그런 엄마를 향해 분노하면서도, 완전히 미워하지는 못한다. 연민과 혐오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그녀 안에 겹겹이 쌓여 있다. 동생 이다가 엄마에게 맞은 뒤의 모습을 보았을 때, 틸다 안의 분노는 한계에 다다른다. 결국 그녀는 차가운 얼음물 양동이를 엄마의 머리 위에 쏟는다. 책에서 엄마를 ‘괴물’이라 칭하는 장면은 감정의 극한을 드러내는 말이자 틸다의 절박한 외침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엄마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수긍한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다는 자각이 들어 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분노보다도 깊은 연민이 차오른다. 그저 미워할 수만은 없는 불쌍한 어른의 초상이 거기 있다.

이다는 나이에 비해 많은 것을 느끼고 이해하는 아이이다. 눈치가 빠르고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읽어낸다. 언니 틸다가 누구에게 마음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조심스레 그 감정을 건드리기도 한다. 마치 언니를 살짝 밀어주는 것처럼. 그런 이다는 틸다에게 삶의 이유이자 중심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자매의 관계가 무척 부러웠다. 누군가를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지키고, 또 그 존재만으로 마음의 버팀목이 되는 관계가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단단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틸다는 타인과 감정적 거리를 두는 데 익숙하다.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람을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해왔다. 그런 그녀 앞에 빅토르가 나타난다. 처음엔 경계하며 거리를 두지만, 조금씩 그의 존재에 익숙해진다. 눈에 띄는 고백도, 화려한 감정 표현도 없다. 대신 아주 작고 조용한 변화들이 틸다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 빅토르는 틸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저 곁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틸다는 그런 그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스물두 번째 레인』은 단지 가족의 붕괴를 그리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도 사랑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사랑은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것, 다친 마음 앞에 오래 머물러주는 것, 함께 침묵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런 감정들이 이 책에는 고요하게, 하지만 깊게 흐르고 있다.

책을 읽으며 틸다와 동생 이다의 관계가 내내 마음에 남았다. 자매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고, 빅토르와의 관계를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틸다의 감정선도 따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혼란 속에서도 물속을 헤엄치듯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틸다의 모습은, 대견하고 애틋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이 책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상처를 품고도 다시 나아가려는 모든 이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다산책방(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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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데?
긴 침묵이 이어진다. 내 질문에 대답을 얻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는데 그가 입을 뗀다.
빅토르 : "이런 외부인의 관점을 너희의 강점으로 인식하렴. 너희는 저 아래에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멋진 집이 없지만, 그럴수록 여기서 얻는 기회를 더 많이 이용하고 너희 자리를 찾아야 한다." 뭐 그런 종류의 말이었지.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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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 행복 사전
김은아 지음, 하선정 그림 / 담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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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의 『앤의 행복 사전』은 ‘빨간 머리 앤’을 향한 오래된 애정과 깊어진 시선을 담아낸 책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앤의 세계를 이루는 가장 따뜻한 조각들—‘단어’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들여다본다. 이 책은 그녀가 앤에 대해 써온 세 번째 이야기다. 첫 책 『앤과 함께 프린스에드워드섬을 걷다』에서는 앤 이야기의 주요 무대인 섬의 풍경과 공간을 따라 걸었고, 두 번째 책 『친애하는 나의 앤, 우리의 계절에게』에서는 여덟 권의 앤 시리즈 속 문장을 통해 계절의 감정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번 책 『앤의 행복 사전』에서는 앤이 사랑했던 ‘단어’들을 글감 삼아, 그 단어들 속에 깃든 감정과 삶의 태도를 따라가 본다.


작가는 처음엔 그저 앤과 루시 모드 몽고메리를 좋아하는 독자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그들을 좋아해온 마음은 이제 글이 되었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사람이 되었다. 앤에 관해서라면 어떤 이야기든 다 해보고 싶다는 그의 고백처럼, 이번 책에는 그동안 쌓여온 애정과 탐색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행복’, ‘설렘’, ‘용기’, ‘고요’, ‘그리움’처럼 앤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들을 모아,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앤의 언어’로 재해석해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해석서가 아니라 감성적인 문학 산책이자 사유의 여정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앤이 삶의 순간마다 얼마나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그 모든 순간에 이름을 붙여나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어떤 일에 설렘을 느끼고, 실패 앞에서도 배움을 얻고, 일상의 기쁨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앤의 모습은 단어 그 자체로 빛난다. 작가는 그런 앤의 삶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들을 수집해 풀어내며, 그 단어들이 결국 앤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든 힘이자, 독자들 각자의 삶을 환히 비춰주는 등불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앤이 사랑한 단어들은 단지 말의 조각이 아니라, 관계를 따뜻하게 만드는 표현이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였으며,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저자는 그런 단어들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며,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거니?”라는 앤의 질문에 조용히 귀 기울인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자신만의 ‘행복 사전’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삶의 어느 페이지쯤에서 그 문장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앤의 행복 사전』은 앤의 시선으로, 앤이 사랑했던 방식으로, 우리 일상 속 단어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그 단어들 사이에는 계절의 흐름이 있고, 삶의 속도가 있고, 사랑과 우정의 온기가 있다. 결국 이 책은, 잊고 있던 일상의 즐거움과 관계의 따스함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조용한 사전이며, ‘자신’이라는 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감성의 지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저마다의 ‘행복 사전’이 탄생하기를. 그리고 그 사전이 앤의 단어처럼 누군가의 삶을 비춰주는 말이 되기를, 작가는 조용히 기대하고 있다.


글 오른쪽에는 ‘은유 표현 글쓰기’라고 하여 글의 내용을 필사해볼 수 있는 페이지를 마련했다.

글을 따라 써보면서 앤이 삶을 사랑했던 방식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마지막에는 엄청 예쁜 컬러링북이 있어서 시간이 될 때 한번씩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이 너무 예뻐서 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때나 책상 한켠 어딘가에 세워 놓고 싶은 느낌이었다. 컬러링북에 있는 그림을 직접 한번 만나보시길 바란다.




'담다 2기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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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리는 것들은 다 귀여워 - 웅크림의 시간을 건너며 알게 된 행복의 비밀
이덕화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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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그림책 작가로 일하며 겪는 불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감정의 바닥까지 내려앉았던 작년 봄, 이덕화 작가는 밭을 만났다. 얼어붙은 흙, 마른 가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공기 속에서 그녀는 뜻밖의 생명력과 마주한다. 멀리서 보면 죽은 듯한 나뭇가지에서도 작고 단단한 생명의 망울이 맺혀 있었다. 마치 “참을 만큼 참았어”라고 말하듯. 그때 밭이 가르쳐 주었다. 웅크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지금 보이지 않아도, 숨은 에너지는 어느 날 반드시 피어나게 된다는 걸.


그 봄, 작가는 그렇게 ‘웅크리는 것들’이 얼마나 생에 대해 깊이 말하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자신의 일상을 조심스레 꺼내어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웅크리는 것들은 다 귀여워』다.


이 책은 삶의 거대한 고비나 극적인 순간들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고 사소한 하루들—밥을 먹고, 고양이를 안고, 주식 잔고를 확인하며 한숨 쉬고, 혼자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들—속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회복하고, 다시 조금씩 움직이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덕화 작가는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규칙하고 외로운 일인지 숨기지 않는다. 정해진 출근도 없고, 수입도 일정치 않다. 세상과 연결되는 끈이 느슨한 그 삶 안에서 그녀는 때때로 꿈에서조차 위로를 받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 이상한 상황에 웃음이 터지는 꿈, 그리고 어쩌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과 다시 마주치는 꿈. 현실이 버거울 때, 그런 꿈들이 감정의 균형을 잡아주는 무의식의 순간이 되어 준다.


책에는 고양시 작은 집에서의 나날들이 등장한다. 고양이와 강아지와 함께하고, 스스로 가꾸는 밭과 텃밭이 그 하루의 중심이 된다. 사람들과 북적이는 삶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고요한 삶 속에서 작가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가슴에서 하얀 종이배를 꺼내어 물에 동동 띄워 보낸다.

지금은 선명하게 살아 있는 모습이지만, 언젠가는 물에 스미어 사라질 수 있을 거야.”

(p21)


꿈속에서라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감정들, 기억들. 작가는 그 슬픔을 부드럽게 수면 위에 띄운다. 그것이 아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감정들이 얼마나 생생한지, 그림 한 컷, 짧은 한 문장으로 오롯이 전해진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다.

“지금의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혼자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다행이야.”

(p41)


이 말은 단지 과거의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건네는 말이다. 혼자라 느껴질 때조차, 사실은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누군가에게는 그 고백이 위로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중심에는 ‘웅크림’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웅크린다. 생존을 위해, 발현을 위해, 도약을 위해.”

(p53)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웅크리고 있는 내 자세마저도 부끄럽지 않다.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라는 작가의 시선은 말 그대로 따뜻하고 다정하다. 

그렇게 책은 말한다.

웅크린 것들은 조용하고, 둥글고, 깊어지고, 그래서 사랑스럽다.


『웅크리는 것들은 다 귀여워』는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친구 같은 책이다. 오늘 하루 조금 웅크렸더라도 괜찮다고, 그건 멈춘 게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라고 조용히 속삭여 준다. 작가의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따뜻한 숨 한 번 놓을 틈을 만들어 준다.


어디론가 가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그저 잠시 멈춰 이 책을 펼치면 된다.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도 이렇게 말해보는 거다.

“지금 이 모습도 괜찮아. 나, 참 잘 버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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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30대의 이덕화.

교통사고 같은 일을 당하고 얼마나 놀라고 힘들었니.
작가로서도 오븐에 넣은 것 같은 시간이었지.
네가 잘 버텨 준 덕에 지금의 나는 조금 안정을 찾았어.
그 시간을 잘 견뎌 줘서 정말 고마워.
지금의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혼자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다행이야.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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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너답게 빛날 거야
바리수 지음 / 부크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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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끼고 지키며, 내 속도대로 빛나는 삶을 선택하는 이야기!”


『어디서든 너답게 빛날 거야』는 바리수가 쓰고 그린 만화 에세이다. 

일상의 마음을 담은 글과 함께 장면마다 따뜻하게 녹아든 그림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만화 같지만 가볍지만은 않고, 에세이 같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조용하지만 솔직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일상의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엇! 이런 경험과 생각은 나도 해봤던 건데..”하는 순간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저자는 자신이 금방 싫증을 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자신의 성격을 단점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지금은 그 덕분에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더 정확히 알게 됐다고 한다. 나 역시 종종 시작만 요란하고 금세 흥미를 잃는 것들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게 단순히 끈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말 나와 안 맞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계속해서 묻는다.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한 걸까? 아니면 속보다 겉이 더 중요할까? 저자는 한때 외면만 가꾸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 시절이 가장 예뻤지만 가장 공허했다고 고백한다. 그 뒤로는 겉모습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나중에는 내면만 가꾸는 것도 외면을 소홀히 하는 게 스스로를 아끼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결국, 겉과 속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마음도 평온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허무하고 무기력한 순간들을 외면하지 않고 꼭 끌어안는 방식 때문이었다. “밍기적도 기적이다.” 정말 별것 아닌 말처럼 들리지만, 무언가를 하기 싫은 날에도 이 말을 떠올리면 그저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위로가 된다. 의욕이 넘치지 않아도, 힘이 없더라도, 조금씩 기어가는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이 말은 매일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장면은 ‘뜸’에 관한 이야기였다. 뭐든 바로 해치우고 싶은 성격 탓에 자주 조급해진다. 그런데 저자는 글을 써놓고 곧장 발행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다시 읽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설익은 부분들이 보이고, 글이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 뜸을 들일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더 나은 길을 걷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책 마지막에는 ‘해거리’라고 불리는 귤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해에는 열심히 열매를 맺고, 그 다음 해에는 지력을 회복하느라 과실을 적게 맺는다는 이야기다. 이 귤나무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해거리’의 리듬이 필요하지 않을까. 불타오르는 시기 뒤에는 반드시 쉼이 따라야 하고, 그렇게 쉬었다면 다시 채우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회복의 과정이다.


나 역시 한때 극심한 불안을 겪은 적이 있다. 매일이 시간에 쫓기는 것 같았고, 뭐든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히곤 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음에도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해거리’처럼 삶의 리듬을 조절하며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오히려 바쁠수록, 압박감이 클수록 나 자신의 상태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제대로 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귀한 마음은 받을 가치가 있는 이들에게만 전하면 된다.”는 구절이다. 저자처럼 나도 그동안 모든 사람에게 무던히 잘하려 애썼고, 상처를 주는 사람조차 이해하려고 애쓴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내 친절과 따뜻한 마음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아주는 사람, 그 소중함을 진심으로 헤아릴 줄 아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정말 뼈저리게 공감했고, 나 또한 그 마음을 오래도록 되새기게 되었다.


『어디서든 너답게 빛날 거야』는 거창한 인생 조언을 늘어놓는 에세이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감정과 순간들을 조용히 붙잡아 곱게 들여다본다. 책 속에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아주 다정한 태도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준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넘길수록 내 마음도 조금 더 아껴주고 싶어졌다. 모든 것이 언제나 순조롭진 않겠지만 언젠가는 나답게 빛나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믿음을 다시 품어 본다. 무엇보다 이 책은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읽힌다.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어느 연령대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마음이 지친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이다. 읽는 내내 조용히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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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꽂힌 말은 ‘LET IT BE’, 그대로 두는 것.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하고 그 외에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니 그대로 두자는 의미다.

그동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까지 어떻게든 막으려 애쓰며 괴로워했는데, 생각을 바꾸니 삶이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고 오히려 평화로워졌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많은 것들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고, 떠날 사람은 떠날 테고, 올 사람은 반드시 온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해졌다. 모든 것이.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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